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이한숙
  • 조회 수 19296
  • 댓글 수 9
  • 추천 수 0
2008년 7월 26일 07시 12분 등록


예술이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이야기를 담고있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아주많다. 하지만 어려운것은 자신이 어떤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생기면 그것을 들려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 데미안 허스트

1.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그런 호기심들은 내 안에 오래 갇혀 있었다. 호기심을 장려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이 그 중의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학교에 다녔으면서도 학교의 장외 활동으로도 미술관에 가본 기억이 없으니. 그리고 내게 부과된 많은 역할과 책무들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것들은 나에게서 시간을 앗아갔다. 무언가에 호기심이 생겨도 그것에 물을 주고 가꿀 시간이 없었다. ‘알고 싶다, 경험하고 싶다. 배워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은 반짝하고 다가왔다가 바쁜 일과에 묻혀 사라지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안의 호기심을 자꾸 낚아채서 밝은 햇빛 속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게되었다. 수년간 내가 해온 일 중의 하나가 공연을 기획하는 것이었지만 사실 나는 적극적인 기획자는 아니었다. 회사와 연이 닿는 해외의 유명 합창단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시작으로 클래식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초대하는 아티스트들의 영역을 넓혀가긴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현대 공연예술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일이 한국 공연 시장의 성격 상 개인 에이전시에게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혹은 한국에서 시대와 인간의 삶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과 이슈들이 현대예술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물을 제대로 주진 못하지만 내 관심은 언제나 그곳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다.

2.
내게는 '현대'라는 이름을 달고 시도되는 모든 예술이 재미있다. 어떤 예술이든 그 의미와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는 이전의 예술은 전복이나 극복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예술의 한 영역 안에서도 그런 전복이나 극복이 일어나지만, 예술 간에도 마찬가지다. 예술과 예술 사이에 경계나 바운더리가 무너지고, 심지어는 장르 간에도 혼용이 이루어진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젊은 작가들 (이제 나는 그들 보다 나이가 많다), 나이 어린 그들이 던지는 의미심장한 질문들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현대라는 이름을 달고 행해지는 모든 예술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에 돌을 던진다. 돌이 던져진 자리에는 파문이 인다. 현대 예술은 상식적인 규범 속에 갇힌 우리들 머리 속으로는 납득이 잘 안가는 언어를 사용한다. 현대미술, 현대무용, 현대건축… 현대라는 이름을 단 것들은 일단 우리들 눈에 낯설다. 편안하고, 익숙한 것에 먼저 눈이 가는 우리들에게 현대예술은 왠지 불편하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나를 들쑤시고  내 안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존의 익숙한 것들을 탈피해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하고 시도하는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만나면 나는 그들 마음 속에 든 생각이 궁금하고, 그 생각에 조금 닿았다고 믿어질 때는 무릎을 탁 치며 ‘아하!’하고 감탄하게 된다.

현대미술은 마치 친구사귀기와 같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낯설고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자꾸 보고 말을 건네다 보면 차츰 익숙해진다. 미술 작품도 익숙해지기까지는 발품을 팔고 공부를 해야 한다. 같은 작품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전시의 형태와 배열에 따라서도 사뭇 다른 각도로 보이게 마련이다. 미술관을 다니면서 항상 느끼는 건 나의 상상력과 경험이 얼마나 부족하고 제한적인가 하는 것이다. 특히 작가들의 시상천외한 생각을 만날 때마다 나는 제한적인 상상력에 철퇴를 맞는 기분이다. 

3.
오늘(6.27)은 신문(중앙일보)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인터뷰를 보게 된 것만으로 행운의 하루다. 마침 양념으로 갈아둔 마늘이 떨어져 거실에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깐 마늘을 올려둘 마땅한 종이를 찾다가 손에 잡힌 것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오늘 신문, 두꺼운 신문의 한 갈피를 떼내어 펼쳤는데 문화면이었다. 거기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데미안 허스트 단독 인터뷰’란 제호와 함께 선글라스처럼 두터운 안경을 낀 허스트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아, 이 작가. 얼른 내용을 읽고 싶었지만 마늘을 까며 보고 있던 영화,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를 마저 보느라 잠시 읽는 것을 유보해 두었다. 적지 않은 양의 마늘을 우두커니 까다 보니 시간이 아까워서 까는 동안 영화 한 편 보자하며 고른 것이 이 영화다. '하나 TV'의 해외영화 '로맨스' 편에서 골랐다. 아카데미 여우, 남우 주연상을 받은 영화란다. 잭 니콜슨의 연기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 영화를 보게된 것이지만, 낯선 여배우 헬렌 헌트의 리얼한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 대목에 던져주는 훈훈한 웃음. 좋은 영화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방에 들어와 데미안 인터뷰 기사를 읽고, 이전에 읽었던 현대미술에 관한 책과 기사들을 꺼내 본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그의 작품들을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뒷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작품들이 가진 저마다의 서늘한 파격과 엽기적인 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수장으로 세계 현대 미술에 경악과 흥분을 가져다 주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 그 시절의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젊은 청년의 제한없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에 마당을 깔아주는 그 사회의 시스템이 한 없이 부러웠다. 당시 우리에게는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변변한 공공 미술관 하나 없었다. 끊임없이 무언가 시도하고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20대의 젊은 우리들은 정치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헛된 에너지를 쏟으며 청춘을 낭비하고 있었다.

데미안 허스트, 그는 누구인가. 그는 21세기에 떠오른 작가 중 엽기적 성향으로 경악과 찬사를 동시에 받는 영국 출신의 설치미술가, '미스터 죽음(Mr.Death)',악마의 자식(Devil Child)’,‘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 ‘컬트 조각가’, ‘잔혹한 현대작가' 라는 수식어가 붙는, 현대 미술계의 비틀즈라 불릴 만큼 전설적인 인물이다.

1980년 후반 런던의 골드 스미스 대학 학생이던 허스트는 같은 학교 출신의 젊은 아티스들을 모아 버려진 뒷골목 창고들을 그대로 이용하여 프리즈(Freeze)라는 제목으로 파격적인 전시를 열었다. 찰스 사치의 후원으로 기획한 이 일련의 전시는, 이어지는 현대 의학(Modern Medicine), 노름꾼(Gambler) 전시와 함께 대성공을 거두었다. 허스트는 그 여세를 몰아 그 전시에 참가했던 젊은 예술가들을 이끌고 일약 영국 런던을 뉴욕에 이어 현대 미술의 중심축으로 만들었다.

허스트가 주류로 떠오르는데는 20세기 말 새롭게 부활한 영국 문화가 배경이 되어주었다. 보수적인 여왕이 동성애자 엘튼 존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고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등 ‘브릿팝’ 밴드들이 전성기를 맞고, 패션학교 세인트 마틴을 갓 졸업한 알렉산더 매퀸과 스텔라 매카트니 등이 주목 받으면서 런던은 패션의 중심에 다시 섰다. 그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데미안 허스트로 대표되는 젊은 미술가 그룹 YBA도 등장했다.

사소하고 비천하기까지 한 사물들을 예술의 문맥으로 이동시키는 그의 작업은 보이스나 나우먼, 심지어 뒤샹까지 그 선례로 거론된다. 또한 대중매체와 소비문명의 감각을 체질화한다는 점에서 제프 쿤스와 같은 미국의 포스트팝 작가들이 더 가까운 선배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YBA가 이 모든 선례들과 구분되는 것은 모든 양식과 매체, 주제를 가로지르는 다양성과 파격 때문이다. 이들은 매스미디어와 상품의 세계를 거침없이 드나들면서 각종 주제들을 섭렵해왔다. 그러나 허스트가 가장 스마트한 것은 그가 예술의 영역을 떠나서는 작품이 안 팔린다는 것을 재빨리 간파한 영악한 현실주의자라는 점에 있다. 기존 제도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너무 멀리 가지는 않는 허스트의 전략은 경영학의 케이스 스터디 감이다. 그

는 YBA라는 탄탄한 브랜드 네임을 최대한 활용해 왔다. 지금껏 그가 기획하는 모든 전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승승장구해왔다. 덕분에 그는 현재 매튜 바니와 더불어 세계 예술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사라 루카스, 게리 흄, 피오나 래이 등(지금은 익숙한 이름들이지만 당시에는 낯선 신인들이었다)이 포함된 그의 기획 전시는 영국과 미국의 유수 딜러들의 눈길을 끌며 영국 현대 미술의 지난 10년의 모습을 주조해 왔다.

그의 섬뜩한 작품들은 당대 가장 비싼 값에 팔려 나갔다. 최근 그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해(For the Love of God, 사진 위)’는 1억 달러에 팔렸다. 인간의 두개골에 백금틀을 씌우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이 작품은 생존작가로서 최고액을 기록했다.

그를 결정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거대한 상어를 포르말린 수조에 넣은 1991년작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다. 이후 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란 작품으로 그는 또 다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분리된 어머니와 아이'는 어미소와 송아지를 길이 방향으로 가른 뒤 포름알데이드 수조 두 개에 담가둔 것이다. 분리된 수조 사이로 관람자가 걸어가면 드러난 소의 내장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그는 삶과 죽음, 가벼움과 무거움, 유한함과 무한함에 대한 탐구를 표현한다. 다양성과 예측 불허성, 특유의 유머야말로 그의 전매특허다.

이처럼 박제된 상어나, 양, 슬라이스로 끔찍하게 잘려진 소나 돼지를 통해 그는 관객들의 면전 앞에 바로 죽음을 보여준다. 관객들에게 죽음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의 화두는 명백하다. 그것은 언제나 삶과 죽음이다. 그가 삶과 죽음에 대해 천착하게 된 건 대학 재학시절 시체 영안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연사 연작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도 죽음에 대해 접근한다. 삼성 리움 박물관 상설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죽음의 덫’이라는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가. 벽 한 곳을 가득 메꾼 진열장에는 수천 종의 약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인간이 먹는 알약의 수는 그처럼 다양하지만 인간은 결국 죽는다. 특별히 주문 제조한 색색의 알약들과 인간의 죽음은 명백히 대비된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살기 위해 오히려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삶에 대한 그의 철학을 볼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 모두 죽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나? 난 죽고 싶지 않다. 적어도 오늘은’. 그의 작품 중에 ‘찬가’(Hymn)와 ‘채러티’(Charity)는 천안 아라리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찬가’는 자신의 아들이 가지고 놀던 교육용 인체 교재를 6미터 높이로 확대시킨 작품이다. ‘채러티’는 부러진 다리에 헤진 옷을 입고 자선 모금상자를 들고 있는 불쌍하고 누추한 소녀를 통해 자선행위가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을 나타낸 작품이다.

그러나 허스트의 뒤에는 찬사 못지 않게 비난도 함께 따라다닌다. 예술의 가치를 비즈니스로 치환하고, 언제나 상업성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며, 자극적이고 혐오스런 것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작가라는 비난이 그것이다. 앤디 워홀처럼 많은 조수를 거느리고 대량으로 많은 작품들을 내놓는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당당하다.

"내가 그리는 점 회화(spot painting) 같은 것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작품을 제작하는 실제 행위자가 아니라 누구의 개념과 아이디어에 의해 작품이 제작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를 옹호하고 싶다. 그는 인체 도감부터 해부학, 과학 전분야에 걸쳐 폭넓은 공부를 하였으며 미술사에도 박식하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고민하는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예술이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를 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다. 일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것을 들려주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찾은 사람이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다양하다. 페인팅, 조각, 실크 스크린, 설치 미술에 이르기까지, 그는 아직도 계속해서 실험하고 모색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토록 열심히 활동하고 자기 철학이 분명한 그를 쉽게 비난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식지 않는 그의 열정과 예술적 기지에 박수를 보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가지, 그의 작품 세계에 미쳤을 그의 어머니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 있어 소개한다. 아마도 내가 애를 기르는 엄마여서 그 말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는 그림을 그리고는 이제 ‘다 그렸다’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도화지 끝에 종이 조각을 이어 붙이고는 ‘계속하렴’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여기서 확장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도화지가 갖는 한계를 한번 벗어나면 확장은 쉬워진다.”
_
이 글과 관련하여 더 알고 싶은 사람은 KBS다큐멘터리 5부작 中 제4편 ‘영국, 미술의 신화를 만들다 ‘편을 참고하길…
IP *.51.218.170

프로필 이미지
2008.07.26 08:11:01 *.180.129.147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잭 니콜슨의 상처, 강박적인 까칠의 상징,
보도 블럭등,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여배우도 매력적이었죠.
중년판, 해리& 샐리판이라며, 흥행에도 성공했죠.
소은글 읽다 보니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여독은 다 풀었는지,..... 바지런하게 올린 칼럼 보고 있으니
아침이 즐겁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8.07.26 08:58:41 *.36.210.11
그녀, 여독 풀 사이도 없이 꿈만 몽땅 끌어안고 돌아왔나 부당.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살아서.
프로필 이미지
초아
2008.07.26 18:12:52 *.253.249.72
아직까지 정열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대의 붓끝에 반한 남자가 항상 뇌리에 밖혀 꿈에도 볼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대같이 어렵고 유식한 글을 좋아하지 않했는데 이제 중독이 되는 것 같고 나도 닮아가는 것 같다.
이틀전에 세번째 글을 탈고하고 출판사로 보냈는데 자신이 없다.
특히 자네 글을 읽으니 구 시대의 인물은 물러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배우려니 너무 늦었다.
왜 이렇게 늦게야 글을 쓰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나를 짓누른다.
소은 은 이룰 것이다.
새로운 장르의 지기철학을...
정말 잘 읽었네...
프로필 이미지
소은
2008.07.28 00:35:22 *.127.99.61
초아선생님, 아직까지 정열을 간직한 선생님이 멋집니다.
좋은 작가의 길은 언제나 요원한 것 같습니다.
초아 선생님의 글은 핵심을 꿰고 있어 힘이 있습니다.
그런 삶의 지혜가 저에겐 많이 부족합니다.
제 글을 열심히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좋은 기운으로 지지해주시는 것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녁 저는 좋은 분을 만나
좋은 기운을 많이 받고와서 아주 행복합니다.
내 옆에서 아직 안자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4 녀석들의 장성한 모습도 저를 아주 흐믓하게 합니다.
그들의 멋진 엄마,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거암
2008.07.28 11:21:03 *.244.220.254
예술에 대한 지극한 사랑!
지난 오프 수업에서 발표하신 글 기억나세요?
그때의 강렬함과 불꽃같은 호흡이 아직도 지워지지가 않네요. ^^
프로필 이미지
현웅
2008.07.28 11:30:40 *.117.68.202
예술에 대해 많이 배워야 겠어요.
사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그 주범이 나였어요.
음~~~
예술가가 보는 세상은 어떤것인지 궁금하게 하내요..

몇일은 쉬셨는지요. ^)^
프로필 이미지
2008.07.28 12:44:26 *.64.21.2
예술은 너무 어려워.
그래서 이런 말이 아주 실감나.
'예술은 길고 내 가방끈은 짧다.'

프로필 이미지
현정
2008.07.28 19:26:05 *.128.98.93
아무도 주목 하지 않는 젊고 가난한 작가가 충격적인 작품을 내어 놓아 세상을 비웃고 희롱한 면에 대해 저는 무척이나 통쾌했습니다. 모름지기 인간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호주 어느 박물관에서 그의 초기작을 보았는데 너무도 감명이 깊었습니다. 소름이 확 돋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상업적이건 아니건 암튼 보통인간이 아닙니다. 사고치는 스케일이 매우 크답니다..그래서..내 스타일...
프로필 이미지
차칸양
2008.07.29 17:16:20 *.122.143.151
예술과 문화,
관심은 많은데,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솔직히 엄두가 나질 않아요.
그들의 창조와 파괴, 그리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자유분방함이 좋고 부러워요.
너무 사회규범에 얽매여 살아온 것 같아요.
머리가 굳어져 가는 것이 안타깝네요.
지금부터라도 유연하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고 싶어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