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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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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8일 09시 12분 등록

전 주 목요일, 이제 막 단풍이 들려는 아름다운 날에 친구들과 번개 골프를 쳤다.

10월은 골퍼들에게 최상의 날씨이기 때문에 부킹이 어려운데 한 친구가 수시로 싸이트에 들어갔다가 좋은 시간대를 잡게 된 것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공기는 맑았다.  심호흡을 하니 서울에서의 찌들어 우그러진 폐가 페트병 펴지듯이 쫘악 펴지는 기분이었다.

상쾌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햇빛과 바람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

공을 치다 뒤돌아보면 앞 쪽 잔디와 색이 다르다. 햇빛을 받아 겨자색으로 물든 잔디를 바라보면 아름다와서 기뻤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속으로 찬송을 불렀다.


친구 하나는 잘 치고, 두 친구는 퇴직 전,후에 골프에 입문해서 이제 막 초보 단계이다.

그런데 두 친구는 처음 골프를 배우던 나와 태도가 아주 달랐다. 레슨을 계속 받고 연습하며 그렇게 열심일 수가 없다.  

나는 구력은 오래되었으나 레슨은 커녕 연습도 안하니 못 치는 사람이다. 즉 우리 셋은 이래저래 못치는 사람이다.

나는 그나마 살이라도 있어서 가끔 팔 힘으로 나가는데 두 친구는 살조차 없어 그나마 쉽지 않다.

이러니 우리 셋은 공 잘 치는 친구들이 끼어주지를 않아 설움을 당하는 입장이다.

우리 셋이 날짜가 맞아 어렵게 뭉쳐도 잘 치는 친구 한 사람 초대하기 어렵다.

잘 치는 사람은 우리 셋과 함께 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 시간이 안맞아 그럴 수도 있는데 )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돈을 더 내고 셋이서만 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누군가 어쩌다 한번 잘 맞으면  ' 와 너 장타다, 잘 치네' 하며 우리끼리 좋아하다 캐디를 웃기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남편은 늘  '그만 하면 잘 치는거야'  이렇게만 말해주었다.

누구도 내가 못친다고 타박주거나 눈치를 받은 적이 없었다. ( 아마 내가 눈치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페어웨이 아닌 곳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도 잘 쳐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공치다 말고 공밭을 발견하여 공줍는 재미를 공 잘치는 재미보다 더 크게 느낀 날도 있었다.

나의 골프장 추억은 어디서 공을 제일 많이 줏었는가였다. 

잘 치는 사람은 공 잘 치는 것에 몰두한다.  타수를 줄이고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는 풍경을 보거나 딴짓을 한다.  그저 그날 하루 웃으며 재미있게 보낸 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다 전 주 목요일, 한 친구의 번개같은 부킹실력으로 번개골프를 치게 된 것이다.

전반 7번째 홀을 지나면서 나는  '아우 홀인원한번 해야하는데' 하고 아무 뜻없이 말을 했다.  다들 깔깔 웃었다.

8번째 파 3 홀,  110m 거리에서 못 치는 셋 중에서도 제일 못치는 친구가  마지막으로 공을 쳤다.

홀 저 만치 아래로 공이 떨어지더니 통 통 굴러서 홀컵에 쏘옥  빨려들어갔다.

우와~~어머머머~~~ 와하하하하 박수치고 하이파이브 하고 난리가 났다. 뒷 팀에서도 박수를 쳐 주었다. 

나도 처음 보는 홀인원이었다.

아니 말은 내가 했는데 친구가 결실을 맺었네!!!  운도 역시 노력하는 사람에게 온다는 것을 눈으로도 확인했다.

우리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동안 잘 치는 친구들에게서 왕따 당한 설움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우리가 캐디와 홀인원에 대한 의식(?) 을 치루는 동안 한 친구는  어느 틈에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 영상을 친구들 단톡방에 올리면서 그녀도 설움을 씻는 것 같았다. 다들 자기가 한 것 처럼 기뻐했다.

우리는  동반자가 좋기 때문이라며 자화자찬도 했다.

그 다음 홀에서는 버디도 하고  파도 하고 장타도 나왔다.

골프가 멘탈게임이라더니 기쁨의 힘이 그렇게 컸다. 


사실 나는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갈 때는 늘 미안해서 좌불안석이 된다.

홀인원한 친구는 그런 나를 태우고 다니면서 내가 미안해하면 '어차피 내가 가는건데 그러지마' 하면서 보드랍게 말해주었다.

그녀의 이런 마음씀씀이가 그날의 행운을 가져왔다고 나는 굳게 믿는 것이다.


그녀는 첫번째로 남편에게 전화했고 두번째로는 '이 골프장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거야? ' 였다.

클럽하우스에 도착하자 홀인원 증서가 나왔다.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구경하였다. 다음번에 가면 그녀의 이름이 골프장에 올라있을 것이다.

그 이름 밑에서 사진찍을 것을 기약하는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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