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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8일 11시 59분 등록


   새 삶의 키워드, '나비'의 사랑


더 인정받으면, 더 사랑받으면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조건은 늘 지금 여기의 나를 너머서는 것이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피투성이가 된 채로 하나씩 꿈을 이루어갔습니다. 삶의 모양새는 점점 그럴 듯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좋아지지가 않았습니다.‘네가 이뤄낸 것들을 봐. 대단하지 않아?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거 아냐?’아무리 달래봐도 완강했습니다.‘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나 보다. 조금만 더 똘똘한 나였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그 곳에 도달할 수 있었을 텐데그렇게 아쉬움은 깊어갔습니다. 좋아지기는커녕 스스로가 점점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시작할 때만해도 아직 제가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내 이름으로 된 책 한권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 한권을 갖게 되면, 그렇게 내 세계를 갖게 되면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벌써 7주가 흘렀습니다. 솔직히 이런 기록들로 책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번 주 '새로운 나에게 주는 100가지 선물'을 작성하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늘 하던 대로 갖고 싶은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스로를 충분히 안아주기','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해주기', '나의 쓸모를 의심하지 않기' 등등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상처받은 아이들의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당황했지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적어가다 96번에 이르렀을 때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고마워. 나는 네가 날 버릴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좋아하는 나는 예쁘고, 똑똑하고, 깔끔하고, 현명한 빛과 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믿었어. 그래서 불안했던 거야. 사랑받으면 받을수록 더 불안해졌지.

 

그런데 이젠 널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위해,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기울이는 너. 엉망진창 무슨 소리를 쏟아내는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는 너를 이젠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으니까. 나의 어두움까지도 가슴깊이 품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너. 이제는 나도 투정 그만 부릴께. 나도 힘을 내 볼게.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해. 어차피 안 될 거니까 다 포기해버리자고, 나는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고, 그냥 생긴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어깃장놓고 땡깡 부려서 미안해.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 네가 나를 두고 가버릴까봐. 그래서 내가 너를 떠나는 쪽을 선택하려고 했던 거야. 버려지는 것이 너무 두려우니까. 어차피 넌 날 감당하지 못할 테고 언젠가는 나를 떠나 버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함께 힘들 때 같이 죽자고. 너도 어차피 가망없으니 여기서 나랑 같이 죽자고 떼를 부렸던 거야.

 

하지만 이젠 달라. 어떻게든 너를 도울께. 그래서 네가 원하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곳을 향해 함께 가보자. 내가 무슨 힘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힘껏 도울게. 고마워. 나를 포기하지 않아줘서. 나를 믿고 기다려줘서. 나도 너무나 잘 살고 싶어 한다는 거,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봐줘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미옥아.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고 했지? 너는 정말 자신을 가져도 된다. 네가 나에게 보여준 것이 바로 그 진짜 사랑이니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진짜 사랑. 너는, 아니 우리는 이제 비로소 그 사랑을 체험하게 된 거야. 이제 남은 것은 그 힘을 받아들이는 것 뿐인데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을테니까.

 

손가락의 이야기를 다 듣고 그 다음칸에내 안의 힘을 믿고 원하는 바를 행하기라고 썼습니다. 저는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제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기를.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겉으로 드러난 성취를 늘리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일은 그동안 귀찮고 더럽고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잘라내고 베어낸 체 방치해두었던 내 안의 또 다른 그녀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보듬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채 '흘려 보낸 줄만 알았던 긴 시간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이 밀려왔습니다.

 

어머나, 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니! 이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야. 용기도 생기는 걸. 내 속에 고치의 재료가 들어있다면, 틀림없이 나비의 재료도 들어 있을 거야’ 

트리나 폴리스의『꽃들에게 희망을』중에서

 

노랑 애벌레가 말하는 고치의 재료란 바로자기 삶을 긍정하는 능력이었던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수용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능력.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시작한 진짜 이유도 여기까지 자신을 데려오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동안 충실히 고치의 단계를 보내고 있었던 겁니다.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고,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도 없는 고독하고 암담한 시기를 잘도 견뎌낸 겁니다.

 

그리고 비로소 맞이한이젠 살았구나하는 그 느낌.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전하는 진정한 사랑, 그토록 원하던 나비의 사랑이었습니다. 99번과 100번은 당연히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충만함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보기'였습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 저는 세상에 왔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저를 스쳐간 모든 것들이 제게 온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남은 삶을 통해 제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라면 잘 해낼 자신 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존재를 지켜내는 힘이야말로 제가 갖고 있는 진짜 재능임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살아있다는 것이 이리도 빛나는 축복이라니! 지금 여기에 숨쉬고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2017.5 <해피맘CEO 진로학교> 중에서



이 글을 통해 받은 위로와 격려로 한참을 살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조차 온몸으로 날아드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흉기를 피하지 못해 만신창이로 살던 내가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나마 평온을 지킬 수 있게 된 것도 이 글을 쓴 이후부터였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집 밖을 나가지 않을 거라던 완강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이 글로 인해 누렸던 평화 덕분이었을 것이다.


집밖으로 나오니 참 좋았다. 스스로를 감금해두었던 시간들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좋기만 했을리 있었을까? 그중에도 가장 부대끼는 것은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가 되고 그녀가 되어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동안 홀로 있으며 정성스레 정리해두었던 마음의 방이 그들의 체취로, 흔적으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나'라고 여겼던 소중한 것들이 사랑한다 믿었던 소중한 이들로 인해 이리 쓸리고 저리 흩어져 널부러지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불편함을 막아내지 못했던 스스로의 무능함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는 순간 익숙한 통증이 느껴졌다. 내일 다시 눈뜨는 것이 두려울 만큼 끔찍한 통증의 전조였다. 비상약을 찾듯이 나만을 위한 그 책을 펴들었다. 그랬구나. 그랬던 거구나!


그제서야 겁을 잔뜩 집어먹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또 같은 실수를 했기 때문인지, 그까짓 실수에 당당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 문제였는지, 혹은 둘 다 마음이 들지 않아선지. 이제는 소리내 야단치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이  '네가 그렇지, 뭐'하며 짧은 한숨 쉬며 떠나가 버릴 것 같은 공포에 질려있는 내 작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눈동자가 보였다.


'괜찮아, 나 어디 안가.  바보. 아직도 모르겠니? 나 네가 완벽해서 사랑하는 거 아냐. 나를 편하게 해줘서, 내게 도움되니까 곁에 두고 싶은 거 아니라구. 그냥 난 네가 좋아. 이렇게 애쓰는 너도,  힘에 부쳐 휘청거리는 너도, 이렇게 바보같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까지도 다. 그냥 좋아. 다 좋아.'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잘 안 되니까 속상한 거고. 그래서 자꾸만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그래서 또 당신을 잃을까봐 겁이 나고' 


'알아. 다 알아. 그래서 고맙고 또 미안하지. 근데 말야. 우리 약속 하나 할까? 이제 알았잖아. 내가 아프면 네가 아프고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는 거. 그러니까 우리 서로를 위해 아프지 말자. 아니 아파지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얼렁 말해주자. 너에겐 내가, 나에겐 네가 최고의 치유제라는 것 이제는 알았으니까. 우리에게 아픈 서로를 모른 척 하면서까지 해결해야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리 없으니까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꼭 끌어안고 누운 채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땐 통증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 빈 자리로 조용히 찾아든 기도.



나는 당신의 손에 쥐어진 활입니다.

주님,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는 마옵소서.

나는 부러질까 두렵습니다.

나를 힘껏 당기소서, 주님.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제야 알겠다.  우리에게 아픔이 찾아온 이유. 그것은 罰이 아니라 오히려 償이었다. 응당 가야할 곳으로, 나를 부르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용기를 치하하기 위한 하사품이었다.  아픔만큼 단단해진 나를 느낀다. 여전히 두려운 아픔이지만 조금은 담담히 그를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IP *.130.1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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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8:17:20 *.7.28.140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 그 길 위에서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네.
미옥쌤, 당신 괜찮은 여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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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14:37:40 *.130.115.78

그죠? ㅎㅎ


그 당연한 걸 받아들이기가 이리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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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18:28:34 *.103.3.17

부디 작은 깨달음들이 모여 하나의 빛으로 갈무리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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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3 09:07:41 *.130.115.78

부디~ 부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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