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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8일 05시 15분 등록

막부장님 안녕하세요.

이게 얼마만이에요? 우리가 그 회사를 떠난 게 2001년 말이었으니까 어느새 16년이 다 되어가네요. 갑자기 무슨 일이냐구요? 오랜만에 홍콩에 왔더니 부장님이 떠올라서요. 비록 공항 안에만 있다가 내일 아침 첫 비행기로 떠날거지만, 10여 년 전에 컨퍼런스니 교육이니 해서 일하러 왔다가, 놀기만 하다 갔던 기억도 나고, 부장님을 처음 만났던 곳이기도 해서 모처럼 연락 드려요. Vice President 셨으니까 한국 직함으로 하면 부사장이었는데, 왠지 부장이 더 입에 붙네요. 어차피 영어로 대화하면 이름을 부르니까, 우리말로 할 때는 그냥 부장님이라고 부를게요.

몇 년 전에 아시아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사실 링크드인(LinkedIn)에서 클릭 한번만 하면 뭐하고 사는지도 알 수 있고,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세상이니, 참 영혼 없는 질문이다 싶긴 하네요.

 

2000 9월이었죠. 저는 그때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광고 회사에 잘 다니고 있었고, 일도 재미 있어서 직장을 옮길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일을 한지 1년도 안됐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도 못했던 나름 스카우트제안이라는 걸 받고 기쁘기 보다는 당황스러웠더랬어요. 그 때는 그 쪽 업계가 워낙에 이직도 잦고 스카우트를 빙자한 인력 빼가기 및 몸 값 높이기 등이 흔했기에, 스카우트라는 게 사실 놀라울 것도 자랑할 것도 아니었지요. 다만 저한테까지 그런 일어날 줄은 몰랐는데…… 그만둘 생각도 전혀 없었고, 만족하며 다니던 직장을, 전화 인터뷰 한번만에 그만두기로 결정한 건, 바로 그 회사가 홍콩 회사였기 때문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때는 외국 회사, 특히 홍콩이나 뉴욕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에서 일하는 게 제 로망이었거든요.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면서 해외로 자주 출장을 다니고, 외국인들과 영어로 회의하고, 특급 호텔에서 기업 런칭 파티를 하는 등 화려한 겉모습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그림 속에 내가 있다니, 마치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라도 된 듯 황홀했었지요. 그런데 초반의 잠깐, 꿈꿔왔던 시간이 지나자 스타트업 기업의 고달픔과 외로움이 너무 크게 다가 왔었어요.

게다가 전 한국 지사의 첫번째 직원이었잖아요. 맞아요. 홍콩에서 일하는 걸로 알았었는데, 사실은 홍콩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거였죠. 고객부터 사무실까지 아무것도 세팅이 안 돼 있어서 처음부터 다 만들어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사정이 그렇다보니 직원 채용도 쉽지 않아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곳에서 일하겠다고 잘 다니던 직장을 나왔나 후회도 많이 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부장님과 전화로 인터뷰할 때 잘 못알아 들어서 어떤 상태에 있는 회사인지 정확히 모르고 그냥 홍콩 회사이고, 스톡 옵션 많이 준다는 말에 덜컥 결정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무식해서 용감했던 거였네요.

 

그런데 부장님은 영어로 인터뷰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었던, 이제 고작 3년차 직장인이었던 저를 왜 채용했던 건가요? 게다가 원래 하기로 했던 사업 개발이 아니라 광고 기획 업무를 하라고 하셨죠. 말이 좋아서 기획이지,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은 사실 광고주 관리와 영업의 다른 표현이잖아요. 전 직장에서도 광고주 관리를 했었지만, 그 곳은 이미 정착한 광고주들이 많이 있어서 말 그대로 관리만 하면 됐던데 비해, 이 곳은 새로 시작하는 회사라 광고주도 처음부터 찾아 나서야 하는 거였고요.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나, 이제라도 그만 둔다고 할까?’ 몇 번이나 망설였는지 몰라요. 그런데 긴장감으로 토할 것 같던 경쟁 PT를 몇 번하고 나니까, 일이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요. 하나 둘 광고주가 늘어가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새로운 광고주들은 제가 만든 제안서가 자신들의 고객 성향과 마케팅 방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된 게 좋아서 선택했다고 했어요. 기존 업체들의 늘 똑같은 제안과는 다르다고요. 아마도 도널드 클리프턴의 용어로 말하면 개별화의 재능이 발휘되었던가 봐요. 최상화도 있었겠네요. 그냥 잘 하는 정도로는 성에 안 찼고, 아주 잘 만들어서 광고주들의 감탄을 듣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매일 야근의 연속이었고, 삼성동에서 부천까지 택시타는 돈으로 월세 내고도 남겠다 싶어서 서울로 이사도 했었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없던 회사가 점점 커가는 걸 보며, “우리 베이비라고 부르며 동료들과 함께 즐거워했어요. 이건 성취테마이겠네요. 참 불확실한 정보만 갖고도 빠른 결정과 행동으로 옮기는 일도 어려움 없이 잘 했고, 결과도 좋았으니까 행동테마도 있었다고 해야겠죠.

 

그런데 재능을 발휘하며 재미있게 잘 키워가던 우리의 베이비는 오래 살지는 못했어요. 막 돌을 지나고 이제 잘 키우는 일만 남았다 싶었는데, 갑자기 한국 지사 폐쇄 결정이 내려졌죠. 2001년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도산했고, 거기에는 우리의 고객이나 파트너사도 여럿 있었어요. 그들의 도산은 우리 회사의 수익성에도 영향을 크게 끼쳤고, 한국 시장의 불확실성을 부정적으로 보던 본사에서 폐쇄 조치를 내린 거였어요. 그때 부장님이 못 막아줘서 그렇다며 원망도 많이 했어요. 본사와 상관없이 우리끼리 해보자고 한국 직원들끼리 의기투합하기도 했지만 마음만 갖고는 안 되더라고요. 무엇보다도 내가 어떻게 키운 베이비인데……’ 라며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네요.  

그렇게 우리의 모험(venture)1년만에 실패로 끝났어요. 그래서 화가 낫냐고요? 당연히 즐겁지는 않았죠. 그 때 너무 힘들게 일했던 거에 대한 반발로 안티구아(Antigua), 지브롤타(Gibraltar) 등에서 살며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며 노는 자유와 행복감도 즐겼었구요. 그런데 타고난 성향이나 재능은 어쩔 수 없나봐요. 그렇게 놀다가 다시 공부하겠다며 대학원에 들어갔거든요. 그 때 추천서 써주셨으니까 잘 아시잖아요. 여기서 드디어 마지막 배움테마가 나오네요.

 

그게 그렇더라구요. 제가 싫다고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부럽다고 노력한다고 해서 새로운 재능이 생기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노력하면 흉내는 낼 수 있지만 타고난 사람들은 못 따라 가는 것 같아요. 싫다고 해서 없어지지도 않구요.

오늘만 해도 그렇거든요. 공항으로 가기 전에 북리뷰랑 칼럼까지 다 쓰고 나오겠다고 해 놓고, 북리뷰만 겨우 완성하고 나왔어요. 그러면 그냥 칼럼은 한 주 빠져도 될텐데 기어이 노트북을 들고 와서 홍콩 공항에서 칼럼을 쓰고 있네요. 이래서 사람들이 저보고 인간미가 없다고 하나봐요. 그래도 부장님이 떠오르는 바람에 글감이 생겨서 다행이에요. ^^

그런데 막부장님, 내일 푸켓에 도착해서는 절대 노트북 안 열어 볼 거에요. 사실 아직도 마무리 못한 일이 좀 있지만 그거 안 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내일부터 1주일간은 휴가니까 그냥 다 잊어버릴래요. 아예 와이파이 연결을 안 해서 카톡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을까봐요. 그래도 동기들이 북리뷰랑 칼럼을 어떻게 썼는지는 궁금하니까 그것까지만 보고 닫을래요.

 

마지막으로 부장님, 저에게 재능을 발휘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던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러고 보니 부장님이야말로 직원들의 강점을 기반으로 잘 관리하셨던 훌륭한 관리자이셨던 것 같네요. 그리고 정말 멋진 추천서 써주신 것도 감사드리구요. 아무래도 부장님 추천서 덕에 제가 인터뷰도 안 하고 대학원에 합격했던 것 같아요. 정말 마지막으로 오늘 제 머릿속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병 없이 즐거운 한 주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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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9 14:54:23 *.124.22.184

북리뷰에 나왔던 분석력 뛰어나셨던 부장님에게 편지를 썼군요.

휴가 떠나며 칼럼 던지고 와이파이도 카톡도 안 한다. 와~ 멋져요. ㅎㅎㅎ

우리의 여행때 휴가 다녀온 이야기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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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05:25:23 *.106.204.231

홍콩발 칼럼 멋지네요. 이렇게 멋진 상사 만나는 것도 인생의 큰 축복이죠. 물론 수정누나의 잘남덕분이겠지만. 베이비를 계속 키워나갔으면 지금쯤 유명인이 될수도 있을텐데 아쉬움이 살짝 남네요. 누나의 강점을 한눈에 알수 있네요.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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