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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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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4일 19시 52분 등록
* 삼성SDI의 ‘최고경영자의 영상 편지’

삼성 SDI는 2003년 신입사원들에게 최고경영자의 영상 편지를 보냈다. 영상 편지는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사원 가족에게도 배달됐다. CD로 제작된 영상 편지의 제목은 ‘새 식구가 된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New Family)'였다.

“삼성SDI 가족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최고경영자이기 전에 자녀를 둔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습니다.”

신입사원과 가족들에게 배달된 영상 편지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과거 일부 회사에서 편지를 통해 최고경영자의 메시지를 전달한 적은 있었지만, 최고경영자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서 축하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영상 편지를 신입사원들의 가정에 전달한 것은 드문 일이었다.

영상 편지에는 입사 면접과 연수 교육 장면 등 새롭게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의 걸음마가 들어 있다. 또한 회사에 대한 소개, 비전, 선배 사원의 회고, 그리고 최고경영자의 영상 메시지가 담겨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의 영상 메시지는 ‘다 큰 어린아이’라며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됐다고 한다. ‘소중한 자제를 얻어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경영자의 담담한 각오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는 회사의 구성원도 최고경영자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직원의 가족들은 대부분 최고경영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얼굴을 모르는 일반인들을 고객 혹은 잠재 고객으로 여겨 투자를 많이 했지만, 드러나지 않은 확실한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구성원의 가족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구성원의 가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조금만 개선되어도 기업은 중요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식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그 가족은 다른 회사보다 더 큰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구성원의 가족들은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고, 가족이 회사를 이해하는 것은 직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 이수화학의 퇴직자 트랙킹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때로 너무나 단순하다. 사직서라는 이름의 종이에 형식적인 이유를 적어 제출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만 떠나는 마당에 구차해지는 것 같아 입을 다물고 그저 마음 맞던 동료들이 마련해준 환송연에 한두 번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다. 어렵게 입사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업무에 익숙해지는 과정과 비교하면, 떠나는 경우는 허무해보이기까지 한다.

퇴직의 사유를 보면 회사의 관심과 진지한 대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처우 보상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었을 수도 있고, 상사 동료와의 관계, 자기계발의 욕구 등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책임자와의 면담과 간단한 조치를 통해서 해소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만큼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다.


석유화학 기업인 이수화학은 2002년 4월부터 '퇴직자 트래킹' 프로세스를 실시하고 있다. 퇴직자 트래킹은 인재의 관리 및 이탈 방지 프로그램으로, 여기서 '트랙킹한다'는 것은 퇴직의 사유, 그동안 회사에서의 애로사항, 회사에 대한 건의 사항 등을 파악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물론 과거에도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업에서 인력을 책임지는 부서장이 퇴직 신청을 한 직원을 따로 불러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퇴직을 만류하기도 했다. 다만 그것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된 프로세스로 정착할 필요가 있었다.

퇴직자 트랙킹 프로세스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가급적 애로사항을 해결하여 고급 인재가 이탈하는 것을 막는다.
둘째, 의견 수렴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고 퇴직 의사를 밝히기 전에 예방하고 지원 방안을 도출하는 자료로 활용한다.
셋째, 퇴직한 후에도 회사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고객으로 남도록 신뢰의 밑거름을 쌓는다.


퇴직자 트랙킹 프로세스가 도입되면서 구체적으로 강화된 부분은 퇴직 면담의 의무화다. 과거에는 현업 부사장의 자체적 판단에 의해 필요한 경우 면담을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프로세스 도입을 계기로 소속 부서장과 HR 부서장이 1, 2차에 걸쳐 퇴직 면담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우수 핵심인력이라고 판단될 경우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서 퇴직 의사자를 면담하고 있다. HR팀의 관계자는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굳이 퇴직하지 않아도 될 인재의 유출을 막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면담을 통해서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항목은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 일정하게 정해진 양식에 따라 구체적인 퇴직 사유를 파악하고 근무 여건, 애로사항이나 회사에 대한 건의사항을 청취한다. 또 퇴직을 하더라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긴급 연락처를 반드시 기입하도록 하여 네트워크를 유지한다.

면담자로 들어가는 부서장급이나 HR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면담 프로세스와 트랙킹 스킬 강화 교육이 주기적으로 실시된다. 핵심인력이라고 판단되는 퇴직 의사자의 경우, 그 사유가 처우 보상에 있을 때는 반드시 대안을 제시해서 수용 여부를 다시 한 번 신중히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나아가 영업 비밀의 유출 방지를 위한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한 과정이다.

퇴직자 트랙킹 프로세스가 확립되면서 평소에 인재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 강화됐다. 특히 HR 부서장이 우수 인력이 퇴직 의사를 갖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우 퇴직 절차와 관계없이 신속하게 당사자와 면담을 실시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퇴직자 트랙킹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평가를 해야겠지만 초기 성과는 긍정적이다. 이수화학은 2003년 9월 노동부 주관 신노사 문화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2003년 10월에는 '한경-레버링 훌륭한 일터상'을 수상했다.

삼성SDI의 한 신입사원은 “부모님과 함께 사장님이 직접 출연한 화면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이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부모들도 자식이 다니는 회사와 최고경영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삼성SDI는 예상보다 반응이 좋은 것을 확인하고 2004년과 2005년에도 이 제도를 시행했다.

삼성 SDI와 이수화학이 직원의 마음을 잡고 비교적 초기부터 효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결정적인 요인이 ‘관계’라고 생각한다. 삼성SDI에서 실시하고 있는 ‘최고경영자의 영상 편지’는 신입사원과 그들의 가족과 관계를 맺기 위한 시도이다. 이수화학의 퇴직자 트랙킹도 필요한 인재의 이탈을 막고 예방하기 위해 관계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사례 모두 관계에 관한 것이다.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한국 사회는 관계를 중요시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관계가 무너지거나 한 사람이 비자발적으로 어떤 관계에서 소외되는 것은 큰 일이다. 소위 말하는 ‘왕따’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관계를 잘 정립하면 효과가 매우 크다. 관계의 수준이 이해와 관용과 신뢰의 수준이 된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은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에서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동양 사회가 서양 사회보다 관계(상호의존성)를 중요시하며 보다 집합주의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람(人)을 의미하는 한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개인의 독립성이 중요하지만 동양에서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해보시오’라는 요구에 미국과 캐나다인들은 주로 자신의 성격과 행동에 대해 말했다. 반면에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적 맥락(이를테면 가족, 친구, 학교, 직장)을 활용하여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이것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자신에 대해 발표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문화 연구가인 게리트 홉스테드(Geert Hofstede)의 국가 간 문화적 차이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집합주의(collectivism) 문화’가 강한 나라이다. 홉스테드가 5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개인주의 지수(individualism index)’ 순위(여기서 말하는 순위는 문화의 차이를 의미할 뿐 어떤 우수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에서 한국은 43번째에 위치했다. 1위는 미국이었고 2위는 오스트레일리아, 영국이 3위였다. 우리가 집합주의 문화가 강한 것으로 흔히 생각하는 일본은 22위로 인도(21위)에 이어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순위에 올랐다. 중국은 연구 대상 국가에서는 빠졌지만, 홍콩(37위)과 대만(44위)의 순위로 미루어 볼 때 강한 집합주의 문화를 갖고 있을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홉스테드에 따르면,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기업과 직원 간의 관계가 상호이익에 기반을 둔 일종의 계약이지만, 집합주의에서의 그것은 가족관계와 비슷한 경향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한 가족’, ‘한 식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집합주의 문화가 강한 나라의 국민일수록 정체감의 근원을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찾는다. 이것은 니스벳이 위에서 지적한 것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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