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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2일 08시 29분 등록

어제보다 나은 식당(11) - 나는 식당비즈니스가 싫었다

식당에 출근하는 일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싫었다. 하루가 지겨웠고 앉아 있는 것이 무엇보다 지겨웠다. 아무 할 일도 없었고 할 일을 찾아보지도 않았다. 내가 고작 식당 사장이나 하고 있다니? 내가 꿈꾸던 세상은 이게 아니었다. 화려한 인테리어에 샤프한 책상에서 결재를 하는 젊은 기업의 오너가 내가 꿈꾸던 인생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왜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가?

내 자신이 싫은 이유를 찾아 적어 보았다. 무엇보다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싫었다.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서 아버님은 공부를 꽤나 하신 분이셨다. 손님이 오실라치면 언제나 사랑에 불려가서 큰 절을 하고 무릎 꿇고 앉아서 말씀을 듣다가 나가 보라는 말씀이 있어야 사랑에서 나왔다. 사대부의 모습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던 생활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님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님을 존경했다. 세상에 그 누구보다 존경하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아버님이었다. 아마도 머릿속에는 글공부만이 유일한 양반들의 할 일이라는 생각이 어린 시절 인이 배이듯이 뇌리 속에 박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게 된 식당일에 재미가 붙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호랑이 없는 산에는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급식비즈니스에서 거래처 만나는 접대영업이 싫어서 식당 비즈니스로 옮겼더니만 여기서는 자발적 영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이 되었다. 얼굴 보러 오는 지인들의 연락을 받으면 고마운 마음에 손님과 같이 얘기도 하면서 술을 한 잔 두 잔 하다 보면 밤이 깊어갔다. 그런 날이 일주일에 닷새는 기본이고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술에 절어 살았다. 처음 고깃집을 하던 해는 일년에 300일은 술을 먹고 살았던 것 같다. 어느 틈엔지 술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술로 하루를 마감하는 생활에 찌여 사는 것을 보면서 서글퍼졌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비애감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식당을 하다 보면 개인적인 생활이 없어진다. 아침 일찍부터 시장을 보는 것에서부터 점심 장사를 준비하다 보면 오전이 지나가고, 점심장사를 마치고 한 숨 돌리다 보면 밥 한술 뜨고 저녁장사를 시작해야 한다. 손님이 많으면 많아서 걱정, 없으면 없어서 걱정, 그렇게 하다 보면 퇴근시간이 다 된다. 종업원들을 퇴근시키고 집에 들어오면 빨라야 밤 11시가 다 된다. 일 년 365일이 명절을 빼면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이 시간표대로 움직인다. 나중에는 술을 먹는 일이 많아져 웨이터 겸 출퇴근 기사를 채용하긴 했지만. 주말에도 출근하지 말라는 아이들의 투정을 뒤로 한 채로 집을 나서는 심정은 다시는 식당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하였다.

무엇보다 전망이 없다는 점이 가장 싫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폼생폼사를 좋아했다. 생긴 옷걸이는 볼 품 없어도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펑펑 써면서 사는 것을 좋아했다. 어찌보면 허풍선 기질도 없잖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좋았던 내가 매여사는 이 짓에 지겨워했던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식당비즈니스를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식당을 키워나가서 뭔가를 도모하는 방향보다는 그저 현실만 원망한 것이었다.

돈을 벌려고 했던 식당이었지만 재미가 없으니 까먹기만 했다. 4년 동안 3억을 까먹었다. 그동안 벌었던 돈을 다 투자하고서도 부족해 여기 저기 돈을 끌어다 댔으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아내는 식당을 시작한지 6개월만에 포기하지고 했다. 그때 포기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갈수록 식당에 대한 증오로까지 발전했다.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벌었더라면 오히려 덜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직업에 대한 애정의 부족, 술을 먹어야만 가능한 식당영업의 서글펌, 개인 생활의 포기로 인한 가정불화, 삶에 대한 전망의 상실, 돈이 되지 않는 식당 등이 식당 비즈니스를 싫어하게 만들었다. 정말이었다. 무엇하나 재미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삶에 대한 상실의 시기였었다. 지옥보다 싫었던 4년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시작하지 말았으면 나았을 것을, 시작했다면 죽어라고 매달려야 하는 것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모습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나락으로까지 몰고 간 셈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직업으로 바뀌면서 재미와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성공한 경영자여야 한다는 의무가 이 짐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의무감은 아무 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재미없게 만들었다. 자포자기는 일상화되었고, 지겨운 것이 되었고, 반복되었다. 서른여덟에서 마흔하나로 이어진 황금 같은 젊음이 무엇보다도 생명이 없는 무덤으로 만들어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한 사람의 자서전 같은 책을 읽었다.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허무하게 하는 감정들’이 ‘뜬금없는 과거의 잔상들로 마음이 분열’되어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어느 시간에 읽게 된 이 책은 나를 오열하게 만들었다. 참 많이 울었다. 혼자서 목 놓아 엉엉 울었다. ‘40대의 마지막 폭염’같은 정열을 다시 쏟고 싶은 생각에 스스로를 일으키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 줄을 몰라 헤멨다. 그저 바닥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되는 것을 열 자 깊숙한 물이 말라버린 우물에 빠져 삶을 포기한 것처럼 일어날 생각도 못한 채 하늘에서 동아줄 한 가닥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동아줄은 내려와 곁에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왜 강남의 아파트 한 채를 늘리기 위해 모든 시간을 그 욕망에 다 쓰고 말았을까? 모호하고 불확실함 속에서 그것만이 가능한 성취로 보였기 때문일까?”(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 27p)

그랬다. 먹고 살만했던 현실을 외면하고 지금보다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물욕이 인생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낳았고 그것은 무리한 목표를 세우게 하였다. 한 번 잘못 엉켜진 바퀴를 부서져 더 이상 굴러가지 못할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 구르게 만들었다. 지금의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야만 일어설 수 있었다. 욕심을 버리진 못했지만 적어도 속에서 뱉어내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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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
2006.06.12 23:56:23 *.44.152.193
자로, 그랬었군. 여행 잘 하고 돌아오시게. 마음이 세상으로만 바깥으로만 향한다면 산 속에 앉아 있다 해도 오래지 않아 또 어디론가 가지 않고 못 베길 걸세. 이제는 우리도 자신을 그만 괴롭히고 평화롭게 해주며 살 나이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평화롭게 조용하게 자연스럽게 사는 법을 배울 나이지. 무엇을 하든 '나'는 가능한 없게 해야 할 나이지 않는가. 자네의 고백은 언제나 참 솔직해서 뭔가 할 말을 찾게 하는구만. 잘 자게. 내일은 새로운 해가 떠오를 걸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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