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박노진
  • 조회 수 537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6년 7월 4일 09시 49분 등록

어제보다 나은 식당(28) - 밥보다 술을 팔아야 남지

요식업 협회에 등록한 업소를 분류해 보면 전체 등록업소의 10% 정도는 유흥업소, 호프집, 카페 등의 비식당업소가 차지한다. 또 10% 정도의 분식점, 제과점 등이 있다. 전체 등록업소의 80%가 일반 식당이다. 80%의 일반 식당 중에서 술을 팔지 않는 식당이 몇 곳이나 될까? 모르긴 해도 거의 대부분 술을 팔 것으로 추측된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술집과 밥집은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믹스한 상황이 되어 있다. 이런 현상은 술집보다 밥집이 더 적극적이다. 술을 팔지 않으면 매상도 오르지 않을뿐더러 손님이 오지 않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식사를 한 후 2차는 호프 한 잔! 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이 선택한 자연스러운 결과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나는 한정식 식당을 운영한다. 우리 식당은 술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 잘해야 하루에 소주를 기준으로 10병 정도 팔리려나? 그래도 매상은 왠만한 고깃집 못지 않다. 주 소비자층을 주부고객, 가족손님으로 정한 면도 있었지만 단체나 모임에서도 꽤 오는 편이다. 문제는 이런 손님들조차 술을 별로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아해 했었다. 단체 손님이 오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매상을 팔아 주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요인은 술이었다. 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매상을 올릴 수 있는 아주 편한 장사다. 그런데 술이 팔리지 않는 현상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이젠 당연한 틀이 되어 버렸다. 나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만다. 그런데 나보다 종업원들이 더 좋아한다. 술을 팔지 않으니 손님들의 회전율이 빨라지고 술주정을 하지 않으니 일하기가 편하고 제때 퇴근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아! 이거구나. 무릎을 쳤다. 술을 권하지 않는 식당, 술을 원하는 손님이 있으니 술을 팔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술을 먹지 않아도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만들자.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이후 우리 식당은 음식에 더욱 승부를 걸었다. 술보다는 밥에 목숨을 건 것이다.

한 때는 술을 없애려고도 한 적이 있었다. 신촌 어느 낙지 집 에서는 여성과 동반하지 않는 남자 손님은 거절하고 술도 한 명당 소주 한 병만 판다고 한다. 이 식당처럼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술을 팔기는 판다. 그러나 가능한 술을 팔지 않으려고 한다. 술을 먹지 않으면 음식 맛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술을 먹으러 오는 손님은 우리 식당에 오면 실망하게 된다. 우리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은 음식 맛이 떨어지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이제 우리 식당은 맛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식당이 되어 버렸다.

음식과 술. 우리나라만큼 식당에 가서 술을 많이 먹는 민족이 또 있을까? 의례껏 “소주 한 병 주세요.”를 외친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소주부터 한 잔 돌린다. 본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김치나 반찬을 안주삼아 서너 잔을 마신다. 빈속에 술이 들어가니 몸은 이미 알콜을 받아들일 완벽한 자세가 되어 버린다. 그 때부터 술 반 음식 반으로 뱃속에 집어넣는다. 음식 맛을 음미할 여유도 없다. 여기 저기서 술잔이 날라 오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밥 한 숟갈 떠 넣지도 못한 채 식당을 나오는 사람도 꽤 있다. 식당에서 휘청일 정도로 술에 취해 2차, 3차를 외치다 새벽녘에서야 집에 들어가는 부류의 근본 원인은 식당에서 밥보다 술을 먼저 먹은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식당에서 술을 파는 것을 말릴 수야 없지만 식당의 기본은 음식이고 맛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래된 식당일수록, 음식 명가로 이름난 식당일수록 자세히 보면 음식의 맛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술은 음식을 빛나게 하는 조연일 뿐이다. 내가 만드는 음식으로 손님을 끌어 모아야지 술이나 다른 것으로 손님을 오게 하면 오래 갈 수 없다. 술 손님은 트렌드가 바뀌면 이동한다. 인테리어가 새롭다거나 술을 더 잘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면 서슴치 않고 그곳으로 옮긴다. 그에게는 그 날 하루 기분 좋게 해 줄 술이 음식보다 더 중요하니까. 당신은 그런 손님을 위해서 죽어라고 노력해 보지만 당신에게 식상한 손님은 매몰차게 당신을 떠나간다.

술과 인테리어 보다는 맛과 분위기를 중요시하게 되면 오랫동안 장사할 수 있게 되고 먹고 살 수 있다. 음식도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자꾸 연습하면 솜씨가 늘게 되어 있다. 매일 똑 같은 방식이 아니라 요리책도 보고, 맛있다는 음식점을 찾아가서 먹어보고, 소스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 보는 실험 속에서 맛은 진보하게 된다. 두 명, 세 명이 오는 손님을 위해 오늘은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볼까 하고 생각하는 과정에 식당의 모습이 바뀌게 된다. 하다 못해 테이블위에 조그마한 꽃 한 송이 올려놓을 수 있지 않는가. 들어오는 입구에 계절마다 장식을 할 수 있고 꽃씨도 심을 수 있다. 겨울에는 보리를 심어 보라. 얼마나 파릇한가. 이것이 맛과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가득차야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식당을 만들 수 있다.

엄격한 품질 기준을 가져야 한다. 맛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당신만의 기준을 가져라. 맵다고 하면 귀가 쫑긋 해서 주방에 쪼르르 달려가 싱겁게 하라고 잔소리하고, 싱겁다고 하면 좀 짜게 하라고 닦달하는 경영자가 되어선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메인 음식이 원하는 기준을 정한 다음에는 당신만의 맛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라. 그리고 만들어 낸 그 맛을 당신의 기준 속에 기억하라. 그리고 그 맛을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라. 맛은 진보한다. 진보와 유지는 상반된 개념이다. 유지는 맛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조건이고 진보는 변화하는 손님을 위해 더 나은 맛을 개발하는 조건이다. 서로 어울려 돕고 발전시키는 개념으로서 봐야 한다.


IP *.118.67.8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어제보다 나은 식당(28) - 밥보다 술을 팔아야 남지 박노진 2006.07.04 5371
5111 어제보다 나은 식당(29) - 싼 맛에 교포 아줌마 쓴다고? [1] 박노진 2006.07.04 6007
5110 어제보다 나은 식당(30) - 모든 것은 고객의 요구에서 시작된다. 박노진 2006.07.05 4396
5109 어제보다 나은 식당(31) - 행복한 직원, 만족한 고객 박노진 2006.07.06 5004
5108 어제보다 나은 식당(32) - 먼저 주어라, 그것도 왕창 퍼 주어라 박노진 2006.07.06 4887
5107 어제보다 나은 식당(33) - 홍보, 입소문이 최고야 박노진 2006.07.06 4729
5106 My First Book 내용 전개 ver 0.5 file [1] 정경빈 2006.07.07 5120
5105 어제보다 나은 식당(34) - 종업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어라.(1) 박노진 2006.07.12 4311
5104 어제보다 나은 식당(35) - 당신만의 무엇, 그것을 찾아라 박노진 2006.07.12 4744
5103 어제보다 나은 식당(36) - 행동은 말보다 크게 울린다 박노진 2006.07.12 4679
5102 어제보다 나은 식당(37) - 계획된 투자, 1년의 고통 박노진` 2006.07.13 4962
5101 어제보다 나은 식당(38) - 식당비즈니스에 관한 꿈 1(꿈의 법칙) 박노진 2006.07.17 5146
5100 어제보다 나은 식당(39) - 식당비즈니스의 꿈 2(장점과 단점을 살려라) 박노진 2006.07.17 4455
5099 어제보다 나은 식당(40) - 식당비즈니스의 꿈 3(미래의 법칙) 박노진 2006.07.17 4505
5098 어제보다 나은 식당(41) - 식당비즈니스의 꿈 4(시간의 법칙) 박노진 2006.07.17 4553
5097 어제보다 나은 식당(42) - 프롤로그 1 박노진 2006.07.19 4169
5096 어제보다 나은 식당(43) - 프롤로그 2 박노진 2006.07.19 4370
5095 어제보다 나은 식당(44)- 프롤로그 3 박노진 2006.07.19 4066
5094 어제보다 나은 식당(45) - 프롤로그 4 박노진 2006.07.19 4071
5093 어제보다 나은 식당(46) - 프롤로그 5 박노진 2006.07.19 3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