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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8일 17시 38분 등록
레스토랑 마케팅 2 - 10년 동안 배운 단 한 줄의 마케팅구절

당분간 마케팅에 관한 글은 인용과 해석 그리고 내가 실제 해왔던 과정에 대한 주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론에 관한 생각과 실천을 통한 사색이 혼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독자들이 그 상황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 나의 바램이다.
먹는 장사를 업으로 삼은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1997년 1월 11일 첫 번째 사업자 등록을 했으니 강산이 한번정도는 변할 만큼의 시간이 지난 셈이다. 3년 정도가 지난 후에야 책으로부터 비즈니스의 길을 찾고자 했다. 그러니까 초기 3년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맨땅에 헤딩만 한 셈이었다.

울고 싶은 아이에게 뭐라고 하게 되면 큰 소리로 울기부터 시작한다. 그 당시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울고 싶어도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것이 서글펐었다. 서른 몇 살의 어린 나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긴 터널 속에 책이 주는 희망을 찾을 때까지 갇혀 있어야만 했다. 왜 어렵고 힘들게 거래를 하게 된 고객이 하루 아침에 계약을 해지해 버릴까? 힘들게 준비한 밥을 이것도 밥이냐고 눈앞에서 식판을 던져 버리지? 갑사 담당이 전화 하면 무조건 읍소부터 해야 하나? 재계약 때가 되면 밥 사주고 술 사주고 뒷돈 찔러줘야만 도장 찍을 수 있는 건가? 명절때나 휴가 철이 되면 알아서 바리바리 챙겨주어야 후환이 생기지 않는 거지? 현장에서 배운 마케팅은 책에서 나오는 이론과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내가 잘못 살은 것일까? 아님 책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생겼다. 책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비즈니스가 되지 않았다. 소위 영업빨이 받지 않는 것이다. 적당히 챙겨주고 가끔 괜찮은 술집에서 형님, 동생하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던 방식을 거절하고 나서부터 내 손님들이 발길을 끊어버린 것이다. 병신, 혼자 육갑떨고 있네.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까불고 있어. 내 고객들은 변화를 싫어했다. 아니 싫어한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해오던 관례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야 자기 상사도 챙겨줄 수 있고 부서 회식비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승승장구하던 비즈니스는 정체하기 시작했고 성공한 경영자였던 나의 자질은 의심받기 시작하였다.

다시 2년이 지날 무렵 시장을 포기하였다. 단체급식이란 시장은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든 존재의 공간이었지만 시장은 나를 밀어내 버렸다. 내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술수와 기만, 아부와 적당한 뒷거래가 무성한 자리에서 내가 서 있을 만한 자리는 없었다. 결국 나는 실패한 경영자였던 셈이다. 무던히도 힘을 쏟아봤지만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지역의 중소기업이 끼여 들 자리는 너무나 작았다. 골프와 접대로 이어지던 관행을 거부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곤 나를 버린 시장을 이제는 내가 버려야만 했다.

존재의 이전을 통해 새로이 선택한 시장은 식당이었다. 오직 맛과 정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곳, 최고의 재료와 어머니같은 마음으로 만드는 음식을 판매하는 외식시장은 신대륙 같았다. 어렵게 시작한 식당비즈니스였지만 한번 어려워진 식당을 불과 6개월만에 되살렸고 나는 다시 예전의 명성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역시 대단한 친구야.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나 행운은 아직 내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해 말 광우병 파동이 일어나면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던 나는 한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져 버렸다. 무능력한 경영자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신대륙은 금은보화가 가득한 꿈의 세계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숨통마저 끊어버리려 했던 신의 안배였을까?

동시에 마흔이라는 아주 지독한 성장통을 앓았던 그 때 나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 성공한 기업가, 영업에 관한 타고난 재주꾼, 죽어있는 식당을 되살리는 마이다스의 손, 운동권에서 사업가로 변신에 성공한 명성, 꽤나 모았던 재물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무리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일까? 무분별한 다각화가 재앙이 되어 버린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오직 빚과 실패한 경영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술과 담배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고 한치 앞을 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삶에 대한 의욕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건만 왜 그렇게 자학하고 힘들어 했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그때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였다. 그러기를 한동안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어떤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사람의 10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몇 번을 읽고 다시 읽으면서 내 삶을 드리웠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책이 희망을 주고 치유를 할 수 있음을 느꼈다. 다시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였다. 희망이 싹을 피우면서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시간들을 뒤로 보낼 수 있었다. 첫 사업자 등록을 한 시점으로부터 8년이 지났을 무렵이니까 벌써 마흔을 넘긴 나이가 되어 버렸다.

고객이 누구인지, 시장이 어디인지,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무척 비싼 수업료를 내고 졸업한 학생처럼 조심스럽게 그리고 은밀하게 시장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상대를 고르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현장에서 배운 낡은 습관을 벗어 던지고 다시 출발할 땅을 튼튼하게 다지는 것이었다. 담배를 끊었고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비즈니스에 관한 책을 읽었다.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무렵 가장 많이 읽은 책이 마케팅과 사람에 관한 것들이었다. 다시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상처도 아물었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났다. 무엇보다 봄이 생기를 머금게 만들어 주었다. 숨죽여 살았던 지난 시간들과 작별하고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다. I'm back!

지난 1년은 세상과 시장에 나를 마케팅하는 과정이었다. 거칠지만 절제하였고 원숙하게 보였지만 힘은 부족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시장을 도전과 쟁취의 대상으로 여겼다면 이제는 그들을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했다. 고객들을 쫓아다녔다면 지금은 그들이 쫓아오도록 유혹하였다. 뒷거래와 협잡으로 거래했던 과거를 버리고 당당함과 매력으로 나를 팔았다. 내가 만든 비즈니스가 남이 만든 세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과장하지 않으려 애를 썼고 있는 그대로 시장에서 평가받기를 원했다.

한 집 건너 식당이라는 말이 나도는 치열한 시장에서 새로 시작한 식당비즈니스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고객을 도울 것 인가였다. 직원들이 행복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매일 조금씩 어제보다 나은 식당이 되는 것이었다. 차츰 누군가의 입에서 나와 내 식당이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나를 찾아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친 입소문은 그들 스스로 나의 식당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객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해도 현장에서의 경험이 없으면 배는 산으로 가고 만다. 책에서 읽은 마케팅 이론은 실천을 통해서 검증되어야 한다. 맛이든 분위기든 서비스든 어떤 것이든 고객을 중심으로 바라봐야 하고 만들어져야 한다. 마케팅이란 돈을 버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창출하고 돕는 과정을 그리는 개념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먹는 장사를 통해서 배운 결론은 이렇게 단순하다. 같은 길을 돌아 돌아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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