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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3일 23시 31분 등록
마실 1년 그리고 ...

2006년 2월 마지막 날 저녁, 마실 열쇠를 건네받고 밤늦게까지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당장 내일부터 식당 문을 열어야 하는 눈앞에 닥친 일보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하는 당시의 상황이 서글펐기 때문이었고 앞으로 닥칠 여러 가지 일들이 희망보다는 걱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어떤 일을 결정하기 위해 장기간 고민하고 요리조리 재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 않고 불과 일주일 만에 결정하고 시작한 것이어서 답답한 마음은 달리 누구에게 내비칠 수가 없었다. 아내는 말리다 못해 결코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황에 기대야 할 사람은 이번 일을 시작하게 만든 후배와 형수밖에 없었다.

꽃샘추위가 맹렬한 기세로 처음 시작한 식당을 몰아세웠고 한 번 떠나가 버린 고객의 마음은 흩날리는 낙엽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낙담만 할 수 없었다. 먼저 고객 반응에 대한 다각적인 리서치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략을 만들었다. 그리고 예전 식당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요리선생님도 내려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메뉴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3월과 4월은 지난 몇 년간 마실을 짓누르고 있었던 나쁜 기운을 걷어내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되었고 이를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전력을 기울인 시간이 되었다.
메뉴를 전면적으로 교체한 후 최소 6개월은 고객들의 반응을 지켜볼 것이라고 결심하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반응에 마음 졸이던 생각,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말했던가. 몇 달 지나지 않아 기존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떠나가 버려 지난 날 대박이 났던 마실의 경험과 노하우를 기대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 인상된 가격 때문에 자리에 앉았다가도 나가버리거나 예전 음식이 훨씬 낫다는 고객들의 평가는 여름이 끝날 때까지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당시 내가 믿어야 했던 것은 오직 같이 일했던 직원들과 시간뿐이었다.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친절한 서비스로 고객을 유혹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소위 대박이 터질 수 있겠다 싶은 확신이 든 11월이 오기 전까지 식당을 하게 된 원인의 하나였던 후배의 독립으로 오히려 이러한 모든 고통과 인내의 과정들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벌써 4번의 계절을 보내고 나니 아직 부족하기만 하지만 나름대로 고생하고 노력했던 창업 1년 동안의 과정을 그려보고 싶기도 하고, 식당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느낀 바를 정리해 보고 싶다. 보험 하는 지인이나 친척이 없는 이가 없듯이 많은 사람들의 주위에 식당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얕은 나의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먼저 식당은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한 노동집약적인 대면접촉비즈니스다. 사람의 욕구 중 식욕만큼 정기적으로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공장의 자동화생산라인처럼 버턴을 누르면 자동적으로 음식이 상위에 차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규격화된 음식이 주는 기계적인 시스템보다는 먹거리에 대한 다양한 욕망이 펼쳐지는 식탁을 좋아하는 한 식당비즈니스는 사람에 의해서 준비되고 차려지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비즈니스로 남아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식당이라는 업에서 대면접촉을 통한 일대일 서비스가 외식산업의 성공요인 것을 알 수 있듯이 식당비즈니스는 사람을 가장 중요한 자본으로 여기는 고감도의 서비스연출 사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통한 자기만족을 느끼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다음으로는 고객만족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서비스비즈니스라고 주장하고 싶다. 어떤 비즈니스 영역에도 고객만족이라는 명제가 주된 가치로 나타나겠지만 특히 이 분야에서는 정도가 더 심하다. 산업의 연관성이 있다면 대기업의 하청생산시스템으로 진입해서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받고 문제가 있으면 개선해서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이쪽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독과점이라든가 하는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하지 않는 면도 있긴 하지만 고객이 외면하는 순간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부침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매출과 원가 그리고 이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만족이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메뉴개발에서부터 조리와 서빙 그리고 공간의 연출까지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은 오직 하나,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느냐이다.

또한 이 분야는 생산·판매·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다품종 소량생산 비즈니스의 성격을 뛰고 있다. 소비하러 현장으로 방문하여 주문과 동시에 음식을 만들고 대부분 그 자리에서 먹는 식당업이야말로 종합예술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 그것도 열 명이 와서 제각기 다른 음식을 주문해도 일일이 그에 맞춰 음식을 내오지 않는가. 이러한 류의 업무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매일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넋이 빠질 수밖에 없다. 완제품 재고가 발생하지 않고 당연히 장기저장이 불가능한 특성도 같이 지니게 된다. 순발력이 느린 이라면 식당비즈니스는 다시 한 번 고려해 봐야 한다.

No Customer, No Business. 경영의 명제가 되어버린 이 간단한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식당비즈니스는 더 이상 재미있을 수 없을 것이다. 원가, 이익, 매출 등 경영을 표현하는 모든 수치는 고객이 외면한 식당 앞에서는 무의미해진다. 식당비즈니스를 시작했다면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업무는 고객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경영의 목적은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다. 좋은 경영은 고객을 돕는 것이라고 배웠다. 어떻게 ‘밥’으로 고객을 도울 것인가를 생각하라. 나는 맛있는 음식을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좋은 공간을 만들어 우리 식당을 찾은 고객들의 목적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내가 고객을 돕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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