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7년 5월 12일 07시 08분 등록
내가 경험을 해본 일이거나 내 업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이 힘이 들어가고 한 페이지에 걸쳐있는 많은 단어 중에서 유독 그 단어만 눈에 확 들어온다. 리오휴버만의 가자 아메리카로에서도 1700년대 미국의 성립초기에 영국제국의 벗어나 식민지 청산하게 된 과정에서 영국의 세관직원과 밀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1750년대 벤자민 플랭클린의 평론에서 영국세관원들의 행동을 신랄한 풍자를 섞어 표현하는 글이 나온다.

“ 무장한 함대를 이끌고 식민지 해안의 항만을 강·시내·골짜기 할 것 없이 구석구석 뒤지고 어떤 무역선이나 나룻배나 어부나 만나는 대로 붙들고 늘어져서 배에 실린 짐을 쑤시고 엎고 속속들이 뒤집은 다음, 통관되지 않은 일 센트짜리 핀이라도 발견하면 전체를 압수했다.”

나도 모르게 옛날 내가 했던 일이 떠올랐다. 1990년에 부산세관으로 첫 발령을 받은 후에 몇 번의 업무가 바뀌면서 직접 배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생겼다. 배가 부산항에 입항하면 세관의 입항수속 후 허가를 해주는 업무인데 수속서류를 살피고, 배를 한번 둘러본 후에 서명을 해주는 업무로 주로 펜만 가지고 하는 업무였다. 그와는 반대로 밀수조사를 하는 부서에서는 펜 대신에 드라이버나 망치 등 공구를 가지고 옷도 세관직원의 옷이 아닌 기름 때가 묻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배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밀수품이 은닉 여부를 확인한다. 아직도 한 여름에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는 기관실을 검색하는 것과 역한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연료탱크를 검사하는 일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표현대로 18세기 식민지 시대의 영국 세관직원들의 행태와는 같지 않지만, 시대를 떠나서 세관직원과 밀수범과의 쫒고 쫒기는 숨이 막히는 추격전과 긴장은 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밀수가 많아지고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자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조치로 5대 중범죄로 분류하여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여 하였다. 이렇게 처벌조항도 높아지고 단속도 심해지다 보니 밀수행태는 갈수록 지능화되고 그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무를 계속하다 보면 우연찮은 사건,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한번씩 일어나게 된다.

군대 제대 후에 다시 복직하여 부산항 감시를 하는 부서로 배치가 되었다. 주로 항구내 정박중인 선박의 감시와 출입하는 차량 및 인원을 검사하는 업무로 보통 24시간 교대근무를 한다. 그날따라 오후부터 이상하게 트럭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특정한 선박회사에 소속되어 하역장비나 비품 등을 운반해주는 2.5톤 트럭이었다. 운전기사는 별로 낯도 없었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나한테 인사를 하였는데 뭔가 느낌이 달랐다. 하루 저녁 근무를 마치고 나서 맞이하는 아침은 늘 분주하다. 일지 작성과 인수인계 준비, 식사로 정신이 없다. 초소 차량 출입문이 비어있어 나가보라는 계장님의 지시를 받고 바로 나와 보니 그 문제의 차량이 나오고 있었다. 차를 한쪽으로 세우고, 기사를 내리라고 하였다. 당황한 기사모습, 바쁘다며 빨리 회사로 가야한다고 한다. 운전석부터 차례로 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감이 왔는데, 계속해서 운전사를 살펴보니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그냥 이대로 보내기는 좀 그랬다. 긴장과 침묵의 시간이 흘러가고 안돼겠다 싶어 그냥 보내려고 하는데, 화물칸 밑 부분에 달린 시커먼 공구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을 열어보니 일제 캠코더 10대가 검은색 비밀봉지에 포장되어 들어 있었다.

가뜩이나 몇 달간 단속 실적이 없다는 과장님의 호통 속에 가라앉았던 과 분위기도 살아나서 좋았고, 거기에 덤으로 표창과 포상금까지 받았다. 그 몇 짧은 순간에 일어났던 팽팽함과 짜릿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IP *.118.101.221

프로필 이미지
향인
2007.05.12 05:42:30 *.48.43.83
하하하, 옛날 생각 떠오르게 하시네...허기사 이미 공소시효 지났으니.
잠은 주무시고 쓴거유? 샌거유?
정말 이런 동시성.. 굿모닝?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07.05.12 09:44:12 *.99.120.184
소전, 약속대로 칼럼을 일찍 올렸네. 베리 굿~~

세관원으로서의 소전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묵직함 속의 예리함....
긴장된 장면들이 연상되어 재미있게 읽었다.
프로필 이미지
오윤
2007.05.13 00:36:15 *.129.52.5
영훈오라버니... 저도 공감가는 부분을 읽을 때 눈에 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막 그 대목만 여러 번 읽을며 속으로 마저마저 이런답니다.... ^^ 이 책에서 개척자들을 두고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라고 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갑자기
혼자 자취할 때가 생각 나더라고요.

살아야 하니까 요리를 혼자 하기 시작했는데 가끔 궁합이 맞지 않는
재료들이 한 두 개씩 남을 때면, 사람이 아주 발명의 여왕이 되요 ㅋㅋ
남은 두부 위에 치즈 쪼각 얹어서 후라이팬에다 구워 먹기 뭐 이런거.
먹다 남은 허니머스타드 소스에 밥비벼 먹기 뭐 이런거.
이러다 보면 요리도 늘어요 ㅎㅎㅎ
(근데 내가 요리 잘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믿더라 )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7.05.14 12:41:44 *.218.204.98
아니 형이 그런 사람이었단 말이에요? 아 세상 무섭다. ㅎㅎ

동남아 불법 체류자 단속 하시는 건 아니죠???
프로필 이미지
최영훈
2007.05.14 17:34:31 *.99.241.60
여기 세상도 매일 사건과 해결의 연속이 있습니다.
일상의 지루함을 느낄만한 여유는 사실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에, 잔무에, 보고서를 써야하고,
밀수업무를 단속하는 직원은 정말 고생합니다.

여해형님 : 많이 힘이 드네요..이번주도 화이팅..

막 내 : 언제나 그 요리를 맛볼수 있을까..

옹 박 : 아직 진면목을 보려면 멀었다. ㅎㅎ 불법 체류자는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와 해양경찰청 업부라 나와는 상관없음..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52 (칼럼9) 속살의 꽃을 피워내는 역사 [8] 素賢소라 2007.05.10 3896
5051 산맥의 최고봉은 모든 산의 높이를 안다 [4] 현운 이희석 2007.05.10 4180
5050 [칼럼10] 변화가 시작되는 곳 [6] 余海 송창용 2007.05.10 3638
5049 -->[re]자신을 사로 잡는 글 [8] 부지깽이 2007.05.11 3877
5048 [8]써니는 엔트로피! (우리는 30년 후를 확인한다) [10] 써니 2007.05.11 3782
» [칼럼010]세관직원과 밀수 [5] 素田최영훈 2007.05.12 3844
5046 (1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7] 香仁 이은남 2007.05.12 4731
5045 유년의 집짓기 놀이에 붙이는 글 [3] 최정희 2007.05.13 3912
5044 [칼럼 10] 강한 자가 외롭다 [10] 海瀞 오윤 2007.05.13 3748
5043 (10) 황야가 개척자에게 가르쳐 준 것 [7] 박승오 2007.05.14 3556
5042 [010] 가자, 태안반도로! [7] 香山 신종윤 2007.05.14 3305
5041 흔들리며 피는 꽃이 있다고, 사랑까지 흔들며 해서는 안 되리라. [9] 현운 이희석 2007.05.14 4192
5040 그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딸 [7] 교정 한정화 2007.05.14 3658
5039 [칼럼010] 이 곳에 위치함의 의미 [7] 好瀞 민선 2007.05.14 3827
5038 (10) 일상의 풍경들 [12] 時田 김도윤 2007.05.19 3557
5037 (11) 대화 _ 책, 풍경, 마음 사이의... [5] 時田 김도윤 2007.05.25 3443
5036 [칼럼11] 영웅이 되자. [2] 余海 송창용 2007.05.25 3331
5035 [칼럼11] 경복궁에서 만난 역사속의 영웅들 [3] 素田최영훈 2007.05.27 3865
5034 [칼럼011] 미켈란젤로와 베토벤 [5] 好瀞 민선 2007.05.28 3405
5033 (11)수면의 유혹 [3] 香仁 이은남 2007.05.28 3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