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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4일 21시 37분 등록

광활한 평야.

사람을 태운 말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다. 신호가 울리면 일제히 힘껏 달린다. 말이 땅을 박차며 일으킨 먼지 때문에 뿌옇다. 서로를 견제한다. 부딪히기도 하고 피하기도 한다. 저 멀리 붉은 깃발이 보인다. 저것을 먼저 가서 뽑는 사람이 그만큼의 땅을 가진다.

영화 < Far and Away >속의 한 장면이다. <가자, 아메리카로!>를 읽다보니 이 장면이 생각났다. 서부 개쳑기의 미국인들의 생활을 담은 영화였다. 소작농의 아들과 지주의 딸의 사랑과 야망을 그린 이야기인가.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10여년 전에 본 영화다. 하지만 위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야말로 땅따먹기다. 이걸 여태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이런 식으로 땅을 가진다는 것이 당시 나로서는 무척 생소하고 신기했나보다. 그 넓은 땅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왔다갔다 하는지. 그곳의 땅이 넓긴 넓구나.

땅덩어리의 크기로 따지면 중국도 만만치 않다. 동부 연안의 평야 지대는 몇 시간을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다. 차로 두어 시간 이동하는 거리는 먼 것도 아니다. ‘얼마나 더 가면 되죠?’ 택시 기사에게 물으니 ‘금방 갑니다.’한다. 그리고 30분~1시간 간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나라에서도 국내 이동이 비행기로 몇 시간씩 걸린다.

중국 도시에서는 건물이나 조형물이 보통 대규모다. 저렇게 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띄엄띄엄이다. 여기 큼지막한 건물 하나, 저만큼 건너 큼지막한 건물 하나. 걸어서 이동하기 벅차다. 물론 상해 푸동 지구처럼 계획적으로 몰아 넣은 곳은 그 정도는 아니다만. 우리 나라와는 거리의 개념이 다르다.

그런데 바로 인접해 있는 홍콩에 가면 전혀 반대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길도 좁다. 복잡하다. 물론 홍콩은 1997년까지 중국 영토가 아닌 채, 본토와는 격리되어 발전했다. 어쨌든 같은 중국 영토 안에 이렇게 다른 두 모습이 공존한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싱가폴은 어떠한가. 홍콩처럼 복잡하고 좁은 느낌은 아니더라도 이 나라 역시 작다. 하루 이틀이면 웬만한 곳은 다 간다. 고 안에서도 화교, 말레이시아인, 인도인 등 다 인종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곳이다.


나는 몇 나라들의 땅덩어리 크기를 생각하다가, 각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특수성에서 본 저력의 원천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문화적 배경에서 머무르지 않는, 더 저변에 깔린 다른 차원의 근원적 원천. 힘의 뿌리를 박고 있는 토대가 되는 자궁과 같은 것은 무엇일까.

미국과 중국은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다. 땅이 넓다는 것은 여러 종류의 토양과 기후도 함께 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에 따른 개발 가능성도 다양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영토가 넓으면 각종 자원이 풍부할 가능성이 높다. 인구도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 두 나라는 실제로도 그렇다. 자체 생산량과 소비량도 엄청나다. 중국은 아직 경제가 성장 일로에 있다. 현재는 경제 대국이라 할 수 없으나 정치 외교적인 입지는 강대국이다. 이는 넓은 땅덩어리와 인구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다는 것. 태생적인 재산이다. 이것 자체가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저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영토가 작은 나라는 가진 것이 없는 것일까.

홍콩과 싱가폴은 어떤가,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이 경우도 어울리는 것일까. 이 두 곳은 비록 덩치는 작지만 해마다 막대한 외화를 유통하고 벌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지리적 입지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교역과 유통에서 허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발 붙이고 있는 곳은 작지만 시야는 넓고 멀리까지 뻗쳤다. 그들의 원천은 오히려 지리적으로 원래 갖고 있는 것이 적음에서 기인하였다.

일본과 영국과 같은 섬나라. 이들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져 있다. 밖으로 진출하려면 바다를 정복해야 했다. 전통적으로 강한 해군력을 지닌 이들 나라, 조선 해양 강국인 이들 나라의 저력은 사방이 바다로 고립되어 있다는 것에서 연유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떨어져 있듯 존재하다 보니 주변국과의 교류가 그만큼 어려웠다. 그들이 보였던 침략의 역사와 제국주의적 기질은 역설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지리적 특성에서 까닭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국은 광대한 중국의 오른쪽 위쪽에 맞닿아 있는 조그마한 반도국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나라 일본과 접하고 있다. 일본을 건너서면 태평양이다. 민감하게 나올 분도 있겠지만, 다시 지도를 놓고 보니 나는 한국이 이 두 나라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외침이 잦았던 역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극동 아시아의 이 조그마한 나라, 이 나라가 지리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곳에 위치함의 의미는 무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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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13 12:27:39 *.142.243.87
아.. 또다시 고질병이 도지네요.
생각이 확대되다가 수습이 어려운 거대 담론까지 가버리고 말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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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5.14 10:20:06 *.218.204.98
ㅋㅋ 그 사이 영화 제목 고쳤구나? 말해줄까 했었는데..
검색해보니 책 중에 영화로 몬 미국 역사에 관한 것이 있더라. 30편의 영화를 미국 시대별로 구분해 놓고 있던데.. 참 기발한 발상이지? ㅎㅎ
시간날때 American History X (에드워드 노튼 주연)을 한번 보시길. 흑인과 백인에 관한 내용인데 아주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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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14 12:28:55 *.244.218.10
ㅋㅋ 봤구나.
아메리칸 히스토리 엑스라... 재밌겠다. 시간날 때 봐봐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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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4 18:33:44 *.99.241.60
국가 경쟁력을 산정할때 지가(땅값)을 산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땅은 변수로써 중요하지 않아고 하더군요.
일본의 경우도 땅값이 비싼 만큼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고, 덴마크 같은 경우는 해수면보다 낮은 땅을
활용하여 물류허브기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전 김재철 무역협회장님의 말씀인
지도를 거꾸로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인다 처럼.
바다에서 육지를 보면 광활한 대륙이 보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가야 될 방향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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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14 22:09:45 *.72.153.12
<파 앤 어웨이 > 광야를 향해 내달리던 씬 지금도 생생합니다.
92년인가 93도인가 하여간 90년대 초반에 본 영화인데... 전주에 와이드 스크린이 처음으로 등장해서 개봉한 영화였습니다. 마구 내달리다가 야트막한 언덕을 탐크루즈가 올라섰을 때, 그의 눈에 비친 너른 들이 시야에 확 펼쳐지는 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그 순간 '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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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
2007.05.23 11:09:31 *.200.97.235
저는 요즘 우리민족이 반도국이상이였다는 자료를 많이 접하였고, 또 얼마전 읽은 함석헌 선생의 저서를 통해서도 우리나라가 과거 결코 작은나라가 아니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한반도에 국한되어 우리를 스스로 옭아매었고, 헌법마저도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로 국한시켜 놓았다는 사실에서 참 재미있는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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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28 01:05:59 *.142.241.143
네... 그랬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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