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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4일 12시 31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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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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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물여섯에 그의 고향 순창을 떠나왔다.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고향 내의 40km 반경 이내를 두발로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에게 고향은 그의 26살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곳에서 나서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그곳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것은 그의 고향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의 아버지, 그의 형제들도 그랬다.
그에게 고향을 떠날 마음을 심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발로 걸어서 전부를 돌만큼 그의 고향은 작은 곳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곳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것은 그의 완전한 독립을 의미했다. 그는 이제 아버지와 형제의 그늘을 벗어나 한 가족의 가장으로 독립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에게 떠남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했다.

그가 새로 정착한 곳은 신태인이란 곳이었다. 고향에서 한나절을 꼬박 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야 몇 번의 차를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 그는 어느 노부부의 문간방에 세들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의 집주인은 장인어른과 몇 다리를 건너서 아는 사람이다. 처음 그는 그 노부부의 소작농으로 시작했다.

그는 젊었고, 그만을 바라보는 아내가 있었고, 자식이 셋이나 있었다. 그는 힘써 일했다. 그는 논농사를 지었고, 그의 아내와 늙으신 어머니는 힘써 밭을 일구었다. 그는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이 벌고 싶었다. 고향에서는 그의 앞으로 주어진 작은 땅이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논과 밭을 돌보는 것도 해야 하지만 형들의 논과 밭에 나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일하는 것에 흥이 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달랐다. 힘써 일한 만큼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는 경운기를 장만했다. 자신의 논밭 뿐 아니라, 동네의 논밭까지 갈아가며 삯을 받았다.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몇 번이나 낡은 경운기를 새것으로 바꾸는 것을 거듭한 후에 그는 새로운 기계 하나를 더 장만했다. 그것은 트럭 비슷한 것이었는데, 트럭보다는 작고 경운기 만큼 힘이 좋은 삼발이였다. 건설 붐을 타고, 모래가 많이 필요했다. 그는 열심히 모래를 실어 날랐다. 그가 있는 신태인은 모래가 많은 금강변과 가까운 곳이었다.

신태인에서 3년쯤 되었을 때, 그는 그가 살고 있는 곳이 좁게 느껴졌다. 신태인은 3년동안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에게 나타난 변화란 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이었다. 일곱식구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과 자식을 더 큰 곳에 내놓고 싶어졌다.

그는 멀리 도청 소재지인 전주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원정을 다녔다. 새로운 기계 운전법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였다. 깡촌인 신태인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가 없었다. 몇 달을 원정을 다녔다. 그렇게 할만했다. 굴삭기는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었다. 그는 열심히 배웠다. 그 복잡한 기계, 굴삭기(포크레인)은 외국에서 들여온 기계라서 부속품 이름은 대부분이 영어였다. 그는 무작정 외웠다. 책을 다 외울만큼. 그렇게 해서 그는 자격증을 땄다. 그리곤 전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큰 공사가 있는 곳마다 굴삭기를 따라 돌아다녔다. 공사건설현장은 하루에 10시간 일이 집중된다. 기계를 워밍업 시키는 것까지 챙겨야 해서 그는 늘 새벽밥을 먹어야 했다. 가족이 있는 집에는 한달에 한번 혹은 2주에 한번 갈수 있었다.

그가 굴삭기 운전을 배운 때는 건설경기 붐이었다. 그는 부지런히 벌어 자신의 장비를 장만했다. 건설업은 날로날로 성장하고 있었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게임’이란 큰 붐으로 어디나 파헤져지고 새로 지어졌다. 그때는 건설이 한숨 쉬어하는 동절기에도 할일이 많았다. 농업기계화와 더불어 농경지정리가 여기저기에서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에겐 쉴 틈이 없었다.

그후 건설경기 붐을 타고 기계만 있으면 얼마든지 일할 것 같은 건설경기는 차츰 죽었다. 한때는 여러 대를 굴렸지만 현재는 한대로 줄어있다. 굴삭기 운전을 배우고 20년이 지난 것이다.

그는 이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기계가 좋은 그에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기계다. 20년동안 닦고 조이고, 기름 친 기계. 그 기계도 언젠가는 생명이 다하는 것을 여러차례 보아왔다. 그러나, 그 기계는 여전히 유용하다. 그에게는 그 기계의 일부만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고향과 가까운 어느 곳에 폐차장과 고물상을 겸한 것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의 딸은 그의 기질을 물려 받았다.
그가 스물여섯에 고향집을 떠나왔듯이, 그의 딸도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집을 떠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첫 직장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집을 떠나길 희망했으므로.

취직해서 가게 된 첫 번째 근무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경제적으로는 독립을 했지만 육체적인 완전한 독립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통근이 가능한 거리였다. 몇 달은 관사에 있었지만, 대부분을 집에서 통근을 했다.

1년 4개월이 지나고, 다른 곳에 발령을 받았다.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먼 거리였다. 광주였다. 직장이 있는 그곳에 자취를 시작했다. 이제 겨우 육체적 독립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정서적 독립까지는 하지 못했다.

광주에서의 생활은 길지 않았다. 다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세 번째 지역은 대전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의 이동은 더 나은 것을 찾아서 자신의 의지로 자발적 이동이었다면 그녀의 경우는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녀는 보내지는 것이었다. 하나 더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는 아버지는 원하는 만큼 일하고 보상을 받은 것이라면, 그녀는 원하는 만큼 일하면 안되는 것이었고, 보상체계도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네 번째 지역은 그녀가 선택했다. 남쪽부터 시작해 점차 북쪽으로의 이동은 현재, 서울에서 멈추었다. 이동의 시기까지 그녀가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에 시기까지 같이 맞추질 못했다.

서울은 그녀의 베이스캠프이다. 그녀는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베이스캠프로 돌아올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이 쫓는 것을 따라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이동시켜야 했지만 그녀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이동이 자유로워졌는데, 그녀는 그 자유를 마음대로 누리지 않는다. 아니, 누리지 못한다. 그녀를 잡아끄는 유혹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동의 자유는 주워졌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른다. 어쩌면, 너무 많은 고민이란 안개가 아름다운 유혹을 가리고 있는 것인지도.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옮겨 새출발을 할 때 두렵지 않았을까?
또 다시 이동을 생각하는 그는 어떤 심정일까?
뒤로 남겨둔 것들을 자꾸 뒤돌아 보지 않았을까?
그의 발을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딸.
딸은 고민할 때, 아버지에게 물어야 한다.
IP *.72.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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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5.14 08:32:21 *.209.121.126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군요. 우리들의 아버지, 어떻게 그 긴 세월을 가족에만 헌신하며 사셨는지.

집을 떠나고 싶어한, 우리들의 젊은 시절, 그리고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그대의 현주소.

너무 많이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니까, 백프로를 기대하지 말고 칠십프로의 유혹만 되어도 받아들여보면 어떨까요? 체험으로 배워야 진짜 내 것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몸에 힘을 빼고 쓴 좋은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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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5.14 10:59:01 *.99.120.184
변경에서 자신을 찾기 시작했군요.
좋은 시도이고 분명히 찾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뚜벅 뚜벅 자신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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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5.14 14:53:45 *.227.22.57
아버지... 괜히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코끝이 찡합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결혼하셨던 덕에 제 나이 무렵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마다,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전화라도 한통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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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
2007.05.14 15:58:07 *.92.200.65
지금의 베이스캠프도 언제가 떠날 날이 있겠죠?
그 때까지 신명나게 놀아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제 모습과 다른 부모님의 삶이 가슴에 벅차 오를때가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아버지를 기억하게 하는군요.

편안한 글을 읽고 힘을 냅니다.정화 연구원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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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4 18:18:42 *.99.241.60
부모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것 같습니다.
아마 그 은혜가 너무 넓고 깊어서 우리가 쉽게 보고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부모님을 이해한다는것은
아마 저도 그만큼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느끼겠지요.

지난번에 은사님의 결혼식에 갔는데,
애를 낳아서 키우면서 부모의 마음을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딸을 키워서 시집을 보내는 마음을 겪어보니
부모님의 마음은 알려면 아직도 한참이 남았다 고 하시더군요.

암튼 이렇게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자 대물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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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14 21:13:56 *.72.153.12
부모님은 저를 찾아가는 길목에 이정표처럼 서 계십니다.
부모님을 닮았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꼽아보니 안 닮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가 더 어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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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7.05.16 18:37:12 *.183.177.20
바로 위의 정화누나 얘기 동감..^^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조금씩 관심가지고 들여다 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내가 이 분들의 거의 모든 것을 다 물려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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