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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8일 01시 01분 등록

<역사 속의 영웅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이 시대를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예술가 미켈란젤로를 다시 만났다.

이 책에서 그를 다룬 내용은 몇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어느 새 그 시대와 그의 작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세계를 접하고 감명 받았던 몇 해 전 그 설레임의 기억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무엇에 나는 그렇게 사로잡혔을까.

르네상스 시대가 개인과 인본주의의 바탕을 두고 있었으나, 여전히 기독교라는 종교는 신앙이고 생활이었다. 교황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의 나라인 이탈리아는 특히 더 했다. 그 시대의 예술작품이란 교회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태반이었다. 당시의 복고주의와 맞물려, 성서를 재현하고 재해석하는 요청과 그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주였다. 그러다보니 성스러움에 대한 강박관념에 비현실적이고 딱딱해지기 쉬웠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대부분 역시 교회와 교황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서와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신격화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이 배어나게 하였다. 그들도 느꼈을 괴로움과 슬픔 고민을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였다. 그 안에는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묻어 있다. 내면의 정념 그대로를 표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역동적이고 당당하고 힘찼다. 동시대의 미술가인 라파엘로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피에타>, 성모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이 조각상은 나를 처음 사로잡은 작품이다. 고뇌의 얼굴로 축 늘어져 있는 그리스도와 그런 그를 품에 안고 바라보고 있는 마리아. 그들의 형언할 수 없는 풍부한 표정. 그리고 조각의 사실적인 섬세함... 윌 듀런트는 과도한 의상과 주름, 자식보다 더 젊어 보이는 성모의 모습을 들어 비판하기도 했으나, 나는 그보다 먼저 인간적인 숭고함마저 느꼈다.

4년 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조수의 도움 없이 혼자 완성한 역작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미켈란젤로는 <천지 창조>, <인간의 타락>, <노아 이야기>의 3장 9화면을 구약 내용의 순서와는 반대로 그리며, 그 화면 사이에 예언자나 천사(天使)나 역사(力士)를 배치하고 복잡한 모습을 부여하여, 인간군상의 모습을 부각하였다 한다.

그 후 교황 레오3세의 요청으로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최후의 심판> 역시 도상학(圖像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당시의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와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 안에는 신성해야 할 성인들이 발가벗은 채 등장하고 천사들은 날개도 없이 못 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 등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벗어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그에 얽힌 일화 몇 가지를 볼까. <최후의 심판> 작업 시 방문한 한 추기경이 성인들이 모두 발가벗고 있음을 지적하자, 그를 지옥의 사신 미노스로 그려놓음으로써 영원히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였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와의 알현을 거절하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로마를 떠났다. ‘당신의 명령으로 저는 궁전에서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오늘 이후로 저를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로마 이외의 곳에서 저를 찾으셔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 후 교황이 그를 다시 부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는 일화는 웃음마저 자아낸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당당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이르자 나는 문득 독일의 대표적인 음악가인 베토벤이 오버랩되었다. 그는 미켈란젤로보다 약 3세기 후의 사람이며, 지역적으로도 별 연관성이 없다. 그런 그의 곡들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함이 느껴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의 절정기인 1770년에 태어났으며, 고전파의 거장인 하이든과 대표적 궁정 음악가인 살리에리 등에게 사사하였다. 그러나 그의 곡들은 정통 고전파의 정적인 음악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는 30대 들어서 귓병을 앓기 시작하여 점점 악화되었다. 음악가가 청력을 잃는다는 것은 엄청난 시련이었다. 절망한 그는 연주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작곡에 몰두하였다. 그 후
<영웅교향곡>을 작곡하면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영향을 벗어났다는 평을 듣는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창작의 전성기를 맞으며, 교향곡<전원><합창><운명>, 피아노협주곡<황제> 등의 불후의 명작을 작곡한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는 달리 베토벤은 처음부터 독립된 인격으로서 출발하였다. 그는 궁정악장이나 작곡가 등의 직함을 바라지 않고, 빈의 귀족계급과 대등하게 교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마음으로부터 마음으로’의 대화이고, 새로운 창조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그의 음악의 배후에는 당시 세상을 움직이던 프랑스의 혁명정신과 계몽주의에 유도된 새로운 시민계급의 윤리가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베토벤의 창작은 한 시기마다 새로운 과제를 자신에게 부과하여, 그것을 해결하여 완성시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그의 곡에서 역시 인간적인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무겁고 침울하지만 다이내믹하고 힘찼다. 그리고 때로는 서정적이고 가슴을 울리는 곡을 썼다. 동시대의 고전파 궁정 음악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곡 하나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흠뻑 묻어나면서 또한 그를 담고 있는 하나의 세계였다.

물론,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에게 시련을 주었을 것이고, 이런 사실은 그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상관 없이, 그의 음악을 향한 불굴의 의지 그 불꽃, 같은 시기의 음악과는 차별화된 음악의 창조, 그의 작품 속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와 베토벤.
현재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넘어서는 혜안을 가졌으며, 그것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노력을 쏟을 줄 알았다. 그리고 때로는 고집스럽기까지 하고 쉽게 꺾이지 않는 주관을 가졌으며, 때로는 반항적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세계에 혼을 다하는 열정을 지녔다. 그리고 시대를 넘어서는 힘을 펼칠 수 있었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비단 예술에만 해당될 것은 아니겠다.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의 바닥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한 획을 그을 수 있으며,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일 것이다.

바뀐다는 것, 변화라는 것, 개혁이라는 것, 크게는 혁명이라는 것, 모두 지금을 알고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럴 만한 에너지가 내재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일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이던 사회적이던 국가적이던 간에, 창조적 소수가 이끌던 민중에서 태동하던지 간에 말이다.


마지막으로,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작업할 때의 일화 하나를 이야기한다. <역사 속의 영웅들>에서도 소개되는 이 장면에서 그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교황 : ‘언제 끝나나?’
미켈란젤로 : ‘예술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가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모두 마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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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5.28 19:14:34 *.112.72.168
누나. 이번엔 왠지 어깨가 무거워보인다.
글쓰기전에 교훈들을 연결시키고, 내용을 다 구성하려고 하지 않아보는 것은 어때요? 누나 이야기를 편안하게 쓰다가 자연스럽게 이끌어지는 메세지를 당겨보세요.
일단 '기억이 난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거에요,
방금 쓴 문장은 쳐다보지 말고, 오로지 그냥 한번 죽 써보는 거에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리듬이 잡히는 날이 오죠. 눈물이 흐를 지도몰라요. 쓰면서는 유치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다음날 보면 의외로 괜찮을 때가 많아요. 지나치게 어색한 부분만 손보면 좋은 글이 되는 경우도 많죠. 누나.. 한번도 해 본적 없다면 한번 해봐요. 까짓거 우리가 하는 것도 역시 '실험과 모색' 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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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28 20:40:13 *.142.243.87
그래. 고맙다.
이번엔 뭔가 편편치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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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5.29 08:12:19 *.114.56.245
로마를 거쳐 유럽 영국까지 여행길을 호정 씨 덕분에 다시 돌아봅니다.
삐에타상 앞에서서 '엄마'를 매몰차게 물리친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미(Mom'란 과연 무엇일까요? 호정씨에게는 어려운 질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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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01 07:58:16 *.244.218.10
난 정말 모르겠다.
언제 보면 '이렇게 밖에 못쓰나?' 싶다가,
또 언제 보면 '이게 뭐 어때서?' 하기도 하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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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09:50:07 *.210.34.134

The western wedding gowns style for those who want a full-on fairytale look! No longer disparaged as a "meringue", this western bridesmaid dresses is favoured by celebrity and royal br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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