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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8일 07시 34분 등록
한참을 그리다가 이제 됐다 싶어 고개를 들면 어느새 9시이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거나 '시간이 멈춘 것 같다'라는 표현을 종종하곤 하는 데 내가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경우 중에 하나가 바로 그림을 그릴 때 인 것같다. 한시간 조금 넘게 한가지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그림이다. '지루해 시간이 왜 이리 더디가지'라는 말을 그림을 그리면서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1시간이 지나고는 어디에 손을 대야할지 나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다. 그대부터는 이성이 작동을 하나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줄리아 카메론이 몇 번이고 말했던 것처럼 센서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것에 흠을 잡아가는 것. 어쩌면 이게 이중적 시각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자유롭게, 두번째는 규율을 적용하여'

내가 가진 감성과 이성이 주로 작동하는 시간이 다른 것이다. 한번씩 서로에게 양보한다. 시간을 체크할 수 있는 놈은 나중에 작동하는 녀석이다.

다 그리고 났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
여기서 멈춘다. 디테일에서 효과가 나지 않기 때문에 비평과 비판으로 좀더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이성도 한발 물러선다.


<벚꽃 그림 전체>

배운 것의 나날의 기록을 위해서 사진으로 남겨둔다.
내가 예전에 어땠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미술교실에는 그림을 잘 그려보겠다고 마음 먹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미 자신은 그림을 못 그린다고 단정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잘 그리고 싶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그런 사고를 깨주기 위해 배우기 시작할 때의 그림과 미술교실 과정을 어느 정도 진행한 후의 그림을 나란히 보게 한단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자신의 그리는 능력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둔다고 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늘 더 잘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사고의 틀은 무섭다. 내게서 자유를 빼앗아 간다.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지인 중에 하나가 자신은 어렷을 적에 그림을 잘 그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런 그가 부러웠다.

나는 잘 잊는 사람이다. 잊고 지냈다. 내가 그림을 꽤나 잘 그렸다는 것을.



마음에 드는 그림을, 대가의 작품을 똑같이 모사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그림에 대해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어느새 화실의 선생님의 칭찬이 있어야만 나 자신에게 만족하곤 했다. 지금 몰두하는 게 똑같이 그리기이다. 똑같이 그리면서 기법이나 분위기를 배워보겠다 하면서...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초보자들은 자신의 초기의 작품을 대가의 작품과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자신안에 아티스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고 한다(줄리아 카메론의 말). 대가와 비교하면서 자신이 그리고 싶어한다는 욕구를 비평으로 눌러버린다. 잘 할 수 있을 때 해야한다는 핑계는 늘 아티스트를 시작하지 못하게 만든다.


부분1


부분2


부분3


부분4

사진을 보고 그리는 지금도 난 무엇에 집착하던가. '사진과 똑같이 그리기?'

오랫동안 화실에 얼굴을 보이지 않던 화실의 주인 '아트' 선생님께서 머리에 붕대를 붙이고는 나타나셨다.
그림이 화사하다 말씀하시면서... 사진과 그림의 차이를 말씀해 주신다. 내가 참고한 사진은 촛점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어서 시선이 중앙으로 몰리게 되어 있다. 주변은 희미하고 중앙에는 촛점이 맞아서 자연히 그쪽으로 시선이 간다. 그림에서는 달리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주제로 잡은 대상을 따라서 시선이 이동을 하게 한다. 아마도 그림에 맛을 더하는 것인가 보다. 다른 자료 사진이 많다면 시선이 흐르는 지점을 따라서 섬세한 표현을 더할 수 있을 텐데 하셨다. 가진 사진이 덜렁 한장 뿐이니... 그것을 뭔가를 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도 하셨다.

화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내 자신이 그림을 제법 잘 그린다고 여겼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게 사라졌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1시간 안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시점에 손을 떨지 않고 붓이 삐지지 않게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주어지는 수업시간 1,2시간내에 한장을 거뜬히 그렸겠지. 제시간 내에 자신의 손 근육을 제대로 썼다는 것일 테니까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고 스스로 우쭐하게 하는 것을 즐겼다.

어렸을 적에 내가 그린 그림의 패턴은 크게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섬세한 손놀림'이 그리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4절지 안에 여러가지를 넣어서 복잡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리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 취향대로 패턴대로 그려왔던 것이다.

12~13살쯤 되면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배우기를 포기하는 때가 이 시기인데... 자유롭게 잘 그리다가는 사실묘사에 집착하다가 화가처럼 보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 채 포기한다고 한다. 그 시기를 REAL에 몰두하는 시기인 것이다. 난 그림에 있어서는 12살로 돌아갔나보다.

입시 미술을 공부하는 미술학과 지망생은 하루에 몇시간씩 화실에서 그림을 그려댄다. 무엇을 배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짐작으로는 그 REAL에 몰두하나 보다 한다. 석고뎃생에서 주로 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니까. 직접 거기서 그것을 해본 사람이 아닌 주위의 인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열심히 배워서 미대에 입학을 하고는 몇년 안되어서 미술방면으로 계속하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민은 Real이 아니라 창의성 부분이라고 한다. 경쟁을 통해 선발되어서 거길 입학한 사람들은 잘 그리는 것은 어느정도 비슷비슷하다고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뭔가를 창조해 내는 것.... real를 넘어선 뭔가를 찾는 것에서 힘겨워한단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지금 내가 연습하는 Real이라는 것 말고 다른 것 말이다.

화실에서 벚꽃 그림을 마무리하고 다음엔 무엇을 연습할까 하면서 여기저기 화집을 뒤적거리다 본 도록에서 어느 화가의 말이 집에오는 동안 내내 떠올라서 생각이 꼬리를 물었던 것 같다. 계속 두고 두고 음미하고 픈 말이라서 사진으로 적어왔다.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글의 제목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이다.

그림을 그린다. 더군다나 전문화가의 길을 간다면 그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라야 할 것이다.
사물을 보는 정확한 눈, 열린 마음, 다양한 느낌 따위, 말하자면 그림에 대한 충분한 양분을 섭취하되 어떻게 받아들이며 소화하느냐, 작가의 힘일테다. 덧붙여 타고난 성격과 습관 또한 양분 못지 않은 영양소다.

우리가 크든 작은 그림 안에 자신을 표현해 낸다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자신의 마음과 창의력, 다양한 작가의 체험이 묻어 있어야 하고 신중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 잘못 만연되어 있는 사회적 통념은 그저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의식에 있다.

그러나 잘 그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끊임없는 창의적 생각과 모험 정신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중하지 말고 예술적 감각을 찾아 더듬이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훈련해 나가야 한다. 조금 서툴더라도 자신 안에 뭉쳐 있는 정형적 틀을 깨트려 버리는 것, 그림의 본질은 그대로 두되 자신의 색깔을 찾아 꾸준하고 치열하게 헤쳐 나가는 일이다. 이제는 바쁜 땀이 아니라 미련하고 질펀한 눈물이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의 욕심을 벗어나 가끔 관조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도 높은 예술혼과 만남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

- 김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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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2 16:16:42 *.41.62.203

그러니까, 기존 화가들은 치열한 아이템 전쟁입니다.
그게 지나쳐서 표절까지 가는 거죠.
이 그림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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