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연구원

연구원들이

  • 권윤정
  • 조회 수 4809
  • 댓글 수 12
  • 추천 수 0
2012년 4월 4일 17시 06분 등록
 

백문이불여일견이 결론일까? 길을 나서기 전, 길을 가면서, 그러니까 내내, 구본형선생님이 발표공지와 함께 주신 정민교수님 집단인터뷰 미션의 연유가 궁금했다. 예상 답안을 몇 개 짚어보기도 했다.

 

이준 총무는 구본형 사부님 말씀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그 날로 후다닥 인터뷰 일정을 향해 움직였다. 그녀는 ‘빠릿빠릿’의 참값을 여러 경우를 통해 1년 동안 우리에게 보여줄 것 같다. 먼저 메일을 보내서 변경연 연구원에 대해 소개를 하고 우리가 써놓은 한시미학산책의 독후감을 정민선생님이 읽을 수 있도록 링크해놓았단다. 생각할 시간을 하루 반 드린 후 ‘전화해!’ 하영목 웨버님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시간차 공격을 성사시켜 덜컥 날을 받아왔다. 낭보를 전할 때, 전화를 저자가 바로 받은 걸 그녀가 대단히 감격스러워하고 신기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속하게 역할분담이 되었다. 웨버님은 맛있는 밥을 삼으로써 의논의 자리를 만드셨고, 나라정께서 부케급 꽃을 가져오고, 정민선생님을 몇 년 전부터 몰래 사모하고 있는 길수형님이 사회를 보고, 또 다른 사모자인 난다님이 전주에서 상경하도록 한승욱님이 연결하고, 문윤정님이 사진을 찍고, 세린낭자가 질문을 취합하고 선물을 골라 주었다. 떨어진 적은 있어도 떨어본 적은 없는 하영목 웨버님, 일본 출장 진성희님, 가야 남자 장재용님은 불참했다. 한양대 인문관 409호 문이 벌컥 열리고, 수많은 인터뷰 기사에서 그분이 그 기사속의 쉐타를 그대로 입은 채 우리 앞으로 덜컥 걸어 나올 때까지 다들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우리 애들이야. 적당히 다뤄줘. 괜찮은 녀석들인지 간도 좀 보고’ 이런 류의 사부님들 사이의 물밑 작업이 있었을 거라 추측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터뷰 잘 안하기로 소문난 분과의 집단인터뷰가 이리 쉽게 성사되었을 리 없지. 암 그렇고 말고.

 

2차 레이스 입장권을 받아들고 3권을 헐레벌떡 읽었다. 레이스 기간의 아드레날린 듬뿍 발린 긴장과 연합되어 있는 3권의 책을 잊지 못할 것 같다. 800페이지(아 어찌 이 페이지 수를 잊을쏘냐, 품질 유감의 무서운 역사가 녹아있는 책을) 역사를 쓴 헤로도투스 옹은 BC 480 할아버지라서 뵐 수가 없다. 구본형선생님은 호수 산책길과 외운 시 7편을 암송하게 하는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뵈었고, 다행스럽게도 1년 동안 그 무릎 근처에서 직접 배울 기회를 얻었다. 또 다른 생존 저자, 650페이지 책의 저자를 지금 만나러 간다. 이전에 절에서 스승님을 친견갈 때가 있다. 나는 그 분의 말씀보다도 존재 자체에서 가르침을 받곤 했다. 그 분 옆에 있는 것만으로 내가 환해지고 착해졌고, 입으로 미처 말하지 않은 나의 마음을 듣고 어루만져주는 느낌을 받았다. 학자이면서 작가인 분의 활동무대, 대부분의 그의 책을 잉태하고 출산한 연구실에 몸을 놓아보면 어떤 느낌일까? 원통형 파일 롤러 한 번 보고, 얼굴 보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악수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정민스님 인터뷰사진 171.jpg 

그 방 앞의 두근두근 (사진 제공 문윤정)

 

연구실은 생각보다 좁다. 양쪽에는 책들이 쌓여있다. 드르륵 밀도록 되어 있는 책장이 이중으로 양쪽에 서 있다. 이것이 사비를 들여 제작한 것임을 읽었다. 천정과 책장 사이에는 한지에 쓴 글자들이 있다. 피곤해서 쉴 때는 양수리 수종사를 찾아가고, 서예를 하신다는 사전조사가 있었던 우리는 쉽게 그 글씨를 쓴 이가 정민선생님임을 추측한다. 출입문은 병풍으로 가로막혀 있다. 정면, 빛이 밝게 들어오는 창문 앞에 화병이 있다. 꽃망울을 머금은 개나리 가지가 멋스럽게 꽂혀 있다. 그 앞에 두 대의 컴퓨터 모니터가 보인다. 한 대는 업무용, 한 대는 저작용인가? 서예붓이 주렴처럼 걸려있는 선생님의 책상과 T자를 그리며 손님들을 위한 긴 테이블이 있다. 잎차를 우려 마시는 용도로 보이는 중국식 차 주전자와 한국식 찻잔들, 집게로 주둥이를 집어둔 빠닥빠닥 차봉지가 여럿, 약간 물날린 전기주전자가 보인다. 난 화분이 몇 개 소담스레 앉아 있다. 우리는 주섬주섬 가지고 온 것을 꺼내놓고 죽 둘러 앉았다. 의자가 부족해서 대여섯 개 더 꺼내왔다.

 

정리해온 질문지를 드렸다. 선생님과 2시간을 약속했다. 기품있는 옷을 입고 아름답게 화장을 한 길수형님이 떨면서도 우아한 진행을 했다. 길수형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복습을 하고 오늘 인터뷰를 준비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질문지를 읽어보시는 동안 ‘아, 질문지가 뭐 이래요? 선생님은 첫사랑 그녀와 결혼을 했는 지, 이런 걸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예요?’ 전주에서 아홉시 반 차를 타고 올라온 난다님이 우리를 웃기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나는 선생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는 제일 구석 자리에 앉았다. 낯을 가리는 나는 애초부터 질문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낀 것만도 감개무량했다. 질문을 하는 이들과 답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잠잠히 그 장면을 마음에 담으리라.

 

 정민교수님 인터뷰사진 090.jpg

 이야기하시는 정민 교수님 (사진제공 문윤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컥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다 뜬금없는 시점이었다. 경기도 남양주까지 갔다가 USB를 놓아두고 가서 다시 왔다는 이의 전화를 받느라 인터뷰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원래 외부강연을 잘 안하는데 그 이가 계란 스무 개, 직접 담은 뭘 싸들고 와서 3시간이나 인문관 409호 앞에 서서 기다렸단다, 그래서 평상시 원칙을 깨고 다산을 재조명하는 강연을 남양주시에 가서 해주었다고 했을 때 그랬다. 딱 보기에 군청 직원같은 직모의 그이 뒷꼭지를 유심히 보았다. 정민선생님이 고등학교 때 한시를 노래로 배웠다며 가사를 노래하셨던 순간 눈물을 한 방울 흘린 것 같다. 30년 홈커밍데이 때 학교에 갔더니 그 때 노래로 한시를 배웠다는 걸 기억하는 건 자신뿐이었다고 했다. 세 번째는 ‘나뭇잎 진 텅 빈 산에 부슬부슬 비는 내리고’라고 번역하던 한시를 ‘이 눔아, 그 글자가 뭐냐? 빌 공이지? 거기 텅 자가 어디 있냐? !’ 결국 군더더기 없는 글이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말씀하실 때였다. 그 스승님의 말씀을 그대로 재연하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데 울컥했다. 최근 시골에서 올라온 대학교 2학년 학생의 리포트를 받고서 그를 불러 같은 역할을 하고서 ‘그 학생에게도 청천벽력같이 들렸을 거다’며 고스란히 제자에게 되갚고 계신 걸 들었을 때, 도무지 논문작성에 대한 감을 못 잡는 대학원생을 지도하기 위해서 쓴 책이 다산의 지식경영법이었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그랬다. 우리가 돌려서 냄새를 맡은 스승의 옥편 한 권, 그 옆에 그 옥편만큼 나달나달해진 정민선생님의 옥편 세로 2개와 횡 1개를 볼 때 다시 뭉클했다. 일상의 흐름이 깨어지는 게 싫어서 약속은 대부분 점심식사 시간에 잡고, 저녁의 술약속은 거의 잡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랬다. 우연히 알게 된 연암에게 10년을 붙들려 있었다고 말했을 때도 그랬나 보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저 이를 잘 모르지만 그가 붙들려 있었다는 연암의 글이나 다산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했다. 정민교수님 말씀은 '이다' 체가 아니라 '합니다', '해요' 체였는데 '이다'로 정리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질문은 장성우선배님이 주신 거였다. 선생님은 이것은 다른 인터뷰에서 많이 다뤘다며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재미없다고 표현하셔서 재미있었다. 이걸 다룬 인터뷰 기사를 링크해 드렸으면 좋겠는데.   

 

질문 1. 예전 선비 정신 중에서 현대에서 꼭 살릴 필요가 있는 핵심적인 사상 혹은 정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기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의 관심에서 본다면요?

 

질문 2. 일과 삶의 균형이 행복한 삶의 척도로서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예전 선비들의 생활습관 혹은 가치관 중에서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질문 3. 18세기도 21세기와 마찬가지로 지식과 정보의 양이 갑자기 늘어났던 시대라고 교수님을 통해 알았습니다. 18세기에 대두되었던 화두와 현대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콘텐츠가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과거의 지식정보화사회를 벤치마킹하여 현대에 새로운 콘텐츠를 계발한다면 어떤 분야를 끌어올 수 있을까요? 특히 연암의 콘텐츠는 파워풀 하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의 흥미를 끄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최세린)

 

박사논문을 쓴 후 18세기 연암 박지원에 대해 10년 동안 작업했다. 정보 빅뱅이 있었다. 중국 백과사전적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선순위, 가치 체계가 와해되었다. 주자학, 성현 말씀이 우선이었고, 독서범위도 그러했다. 고금도서집성 1세트는 5천권인데 이것을 중국에서 가지고 들어오면서 정보에 대한 관점이 변했다. 처음에 북벌론을 주장했던 이들도 청나라를 공부해서 배우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초기 청나라 황제들만 해도 50년 재위기간 동안 오전 5시부터 밤 12시까지 정무를 본 성군들이 많았다.

 

예전에는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지금은 정보 자체가 아니라 판별해서 이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지 모른다. 예를 하나 든다면 내가 대학원 때 ‘고인이 말하기를’ 문구가 나오면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몰라, 스승님의 말씀에 의존해야했다. 요즘은 관련 문구 몇 개만 넣어 인터넷을 검색하면 어느 책 어느 구절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은 규장각 검서관이었다. 임금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 이들은 정보력에서 탁월한 역량을 가졌다. 이들은 중국을 다녀왔다. 만약 다산이 중국을 다녀왔더라면 영향력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구조 쇄신, 부패구조 척결 등에 머물렀다. 북학파는 자신들이 듣고 본 것을 했다. 나만 해도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90년대 초에 삼보컴퓨터 제러드를 사용했다. 당시로서는 얼리 어댑터였다. 그 당시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중앙일보를 컴퓨터로 볼 수 있다고 교수들을 불러 보여주었는데 1시간동안 로딩이 안되어 포기했었다. 그런데 과연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창조적인 시간을 더 늘이고 있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서양 역시 백과사전파가 나오면서 지식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한 책이 1100권이나 되는데 알파벳순서로 나아가다 보면 신(god) G로 시작되니 지식체계에서 중간쯤 되었다. 이것은 지식 서열체계를 무너뜨렸다. 지식의 민주주의다. 다산보다 빠르고 연암보다 느리다. 우리나라는 유럽 백과전서파보다 빠르거나 같다. 이것은 도시화, 인쇄술의 발달 등에 힘입었다. 우리나라 북학파에게도 기존 가치가 무너진 충격 상황에서 어떻게 추스를까,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가 핵심질문이었다. <다산선생지식경영법>에서 태도와 정보를 다루는 법을 썼다. 현대와 똑같다. 삶의 본질은 변한 적이 없고, 물질적 기기가 발달했을 뿐이다. 생노병사는 변하지 않았다. 과거의 과거급제는 일류대학 입학, 대기업 입사로, 좋은 배우자를 얻고자 하는 것도 같다. 욕망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18세기의  갈등, 해결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같다. 원리를 갖고 적용하면 여전히 힘있는 대답, 정확한 대답이 된다.   

 

다산과 연암은 극과 극으로 다르다. 다산은 무릎 위에 앉혀놓고 알아먹을 때까지 시시콜콜히 말한다. 과정을 일러주고 관리한다. 연암은 던져놓고 빠진다. 원리를 일러주고 뒷짐 진다. 연암에 대해서는 <비슷한 것은 가짜다>에서 이야기했다. 연암을 대학원생에게 가이드라인을 일러주고 3~4주 읽히면 무섭다고 한다. 다산이 정답을 해결하는 법을 알려준다면 연암은 질문 던지는 법을 알려준다. 만약 두 사람이 합쳐지면 마징가 제트가 될 거다. 18세기 지식사회의 변화는 연암에서 시작되고 다산에서 방법으로 정리되었다. 지식경영법에서 다산을 정리했다. 이것은 태도의 총결판이다.

 

연암은 방법론보다는 사유방법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장님의 비단옷 비유, 눈 뜬 장님이 집을 찾아가는 비유, 귀이명과 코골이, 나막신, 가죽신 짝짝이를 신고 말을 타고 가는 이의 비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모든 것에서 연암은 혼란스럽게 한 후 툭 치고 빠진다. 기회가 되면 연암에 대해 한 번 읽어보세요. 연암의 열하일기의 문장은 top 10에 드는 것이다. 열하일기는 대만, 일본, 중국의 필요에 의해 간행된 우리 문장이다. 레토릭이 아니라 사유의 문제다. 글 속 생각이 무서운 것이다.

 

객관지성이라고 하는데 모든 이가 다른 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까? 저는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환경부 산하 기관의 연구원입니다. 기후변화만 보더라도 국가, 인류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가 다 다릅니다. 바른 길로 가고 사회에 공헌하고 환원하고 싶은데 제대로 가고 있는가 싶습니다. (정나라)

 

그렇다. 같은 사람이라도 30, 40대의 대답, 어제와 오늘의 대답이 다르다. 객관지성은 이런저런 것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고, 저울질 할 수 있고, 누가 봐도 타당한 사유의 매커니즘이다.

 

자기검열이 계속 있어야 한다. 만약 자기검열이 없다면 이용호(?) 같은 이가 된다. 온실가스 때문에 100% 기후변화가 온다고 볼 수 있을까? 18세기 조선시대 숙종연간에 간빙기, 소빙하기가 있었다. 100년간 굉장히 추었다. 얼어 죽은 기록이 있다. 이 시기에 서양에서도 페스트로 죽은 이들이 많았다. 난방이 없었으므로 한겨울 한파에 굶어죽고 영양 상태가 나쁘니 질병에 많이 걸렸다. 왕조실록 숙종조에도 자식을 잡아먹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쩌면 지구가 지금 따뜻한 타이밍일 수 있다. 도덕적 판단의 범위가 아니다. 옳은 진리값이 다르다. 균형잡힌 시각이 중요하다.

 

FTA에 대해서 예를 든다면 무조건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득이 있고 실이 있는데 국가적으로는 득이 실보다 많으니 선택을 했을 거고, 득을 얻는 쪽에서 어떻게 실이 있는 데로 이득을 돌려서 보완할 지를 보아야한다

 

글을 잘 쓴다는 것도 생각이 좋은 것이고,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다. 번지르르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다. 균형잡힌 양쪽의 시각을 갖고 있고, 균형잡아 나가려는 태도와 내가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태도는 다르다. 균형잡힌 사유를 하자는 것이 객관지성이다. 이것이 인문학의 사유, 공부의 의미다.

 

질문 4, 교수님께서는 작가의 길을 가고 계신데 그 길이 본인의 길이라는 것을 언제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어릴 적에 한시의 매력에 빠져서 지금의 길을 가고 계신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어린 나이에 한시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길을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한승욱, 진성희)

 

질문 5. 책을 집필하시면서 가장 어려움에 부딪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어려움을 만나시면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갈 때 갈등이 없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내놓을 때도 고독, 외로움, 슬럼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희 연구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이준, 진성희)

 

공부의 과정이 필연적이지 않다. 우연한 계기가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등학교 때 한시선생님이 재미있었다. 노래로 부르셨다. 집에 와서 오르간으로 옮겨 불러봤다. 고등학교 교과서의 한시를 다 외웠다. 얼마 전에 30년 홈커밍데이가 있어 가보니 한시를 노래로 배웠다고 기억하는 이는 나 혼자였다. 대학원에서 고전을 전공했는데 고전시가를 하신 선생님이 매력적이었다. 당연히 나는 고문을 하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한양대 국문과에서 한문학 논문은 내가 처음이었다. 4학년 때 한문 특강을 들으러 갔다.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았다가 맹자 첫구절부터 박살이 났다. 그 선생님에게서 계속 배웠다. 가방 모찌 7년을 했다. 스승님을 오래 모시며 사랑을 많이 받았다. 80년대의 한문학도 반독재, 반체제 분위기에서, 논문도 지식인의 애민정신, 현실인식, 사회의식, 이데올로기 사상의 생명성 등 문학성 자체보다 문학성의 기초는 사상성이고 삐라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박목월선생처럼 순문학을 하는 분들께 배웠고 이러한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꼈다. 내가 만약 다른 학풍의 학교에서 공부했다면 그리로 갔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중국어를 공부하고 중국 한시를 보았다. 거기에 현실인식적인 면이 없었다. 당시의 미학적 표현, 당시의 아름다움을 다루고 있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90년대에 문단이 바뀌었다. 이해인, 서정윤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지루했는데 파워풀한 컨텐츠가 와서 그것이 트랜드가 되었다. 트렌드에는 필연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한시로 석사 논문을 썼다. 석주 권필에 대해 석사를 하고 나니 지도교수님이 운양 김윤식에 대해 박사논문을 해보라고 하셨다. 광해군 때 맞아죽은 반골 시인에 대해 공부한 후 을사오적의 하나이면서 친일파인 시인에 대해 하려니 마음이 안내켜서 2년간 차일피일 미뤘다. 다른 사람 하면 안되냐고 여쭈니 "그래라, 지도교수 바꿔서.."라고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운양의 글 중 문장에 대한 것과 거기서 범위를 넓혀서 조선후기 문장론을 박사논문에서 다루었다. 그리고 도망을 갔다. 그 줄기의 끝이 박지원 다음 세대였다. 박사논문을 마치고 나서 얼마 안되어 학계의 큰 선배 한 분이 나를 보자하셨다. 찾아갔다. ‘연암을 봐야한다. 전두환은 민주화에 대해 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가 민주화를 했나?’ 그렇게 연암을 만났다. 연암은 어렵더라. 연암에게 붙들려서 10년을 보냈다. 나는 한시에서 출발해 산문을 공부했고 18세기 지식경영의 문제를 다루다 문화사적 비젼을 생각해 봤다. 학문적 관심사가 이렇게 흘러갔다.

 

연암은 재미있게 읽고 나서 망연자실해졌다. 설명을 들고 읽으면 좀 수월하다. 나는 연암을 만나 사유의 변화가 컸다. 그는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질문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렇다. 질문의 경로를 바꿔야 한다. 현재와 같은 질문 방식은 안된다. 질문 경로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연암만한 조련사가 없다. 연암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길을 벼리어 가면 질문을 바꿀 수 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나의 대학원 제자를 독자로 상정하며 쓴 책이다. 논문작성법이다. 그렇게 쓴 걸 학생들은 학습법으로 읽고, CEO는 경제경영법으로 읽는다.

 

박지원 열하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너무 어려웠습니다. (허정화)

 

열하일기는 어렵다. 한 번에 안들어온다. 고미숙은 노마디즘 관점에서 썼다. 비유하자면 연암은 노마디적 지식인, 다산은 정주민이다. 우리 시대는 유목민스런 시대다. 익숙한 나를 결별하고 새로운 나로 떠나가려 한다. 열하일기는 스토리가 아니라 조선시대 닫힌 사회에서 만주벌 등 열린 곳으로 나아가는 문화충격에 대한 책이다. 열하일기에서는 ‘사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하다. , 간 모두 사이다. 제는 나라와 나라의 사이다. 이것이 연암의 숙제이고 관점이었다. 이것을 강고하게 쌓여있던 정신적 각질을 깨트리는 과정으로 읽으면 놀랍다. 치고 빠지고, 진지한 이야기 하다가 실없는 소리로 맺는 회색적인 글쓰기를 하는 연암을 읽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고전문장과 연암박지원><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참고 바란다.

 

다산문집이 최초로 발행된 때는 1930년대였다. 안정복,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모두 읽히지 않은 글을 쓴 이들이다. 자기 살기 바쁜데 남에게 영향 미치길 바랄까? 자기 삶을 포맷하고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이다. 이 분들에게도 글 쓰는 과정 자체가 합목적적인 것이었다. 좋아서 기뻐하고 그 과정에서 남이 기뻐해주면 그만이다. 연암이 훼(훼손), (기림)은 재인(남의 손에 있고), 시비재기 라고 했다. 내가 이 일을 하는게 기쁘냐 하는 것은 내게 달린 일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시비다. 남이 말을 들어주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산은 세상에는 2가지 기준이 있다고 말했다. 옳고 그름, 이롭고 해됨의 기준이다. 이것을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옳고 이로운 것, 옳은데 내게 손해가 나는 것, 나쁜데 내게 이득이 되는 것, 나쁘고 손해가 나는 것. 1안은 드물다. 2안은 손해를 보니 싫어한다. 인성교육은 2, 3안의 선택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3번째를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내가 손해를 보아도 질서를 지키는 게 옳다. 그래야 세상이 변한다. 인성 교육과 창의성 교육은 절대로 같이 갈 수 없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제일 위험한 지점은 괴상한 것을 참신한 것과 혼동하는 것이다. 엉뚱한 것과 참신한 것은 다르다.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한다.

 

 

질문 6. 정민선생님의 문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그래서 같은 접속사가 거의 없습니다. 문장력을 길러보고 싶어 정민교수님은 어떻게 훌륭한 문장력을 가지게 되셨는지 찾아보니 <생각없는 생각>이란 책을 추천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책을 사서 읽어보니 그 책은 군더더기가 더 없어서 무서웠습니다. 저희가 그 책에서 무엇을 새겨 글을 써야 하는 지 알려주세요. 문장력이 좋아지려면 어떤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문윤정)

 

<스승의 옥편>에서 썼다. 내가 번역한 한시를 보더니 스승님이 “거기 텅이 어디 있니? 나뭇잎이나 잎이나‘ 불호령을 하셨다.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이렇게 짧은 글이 되었다. 스승님께 받은 문장컨설팅이다. 박사학위 청구 논문을 제출한 후 1달 정도 시간이 있었다. 접속사를 모두 없앴다. 문장에는 ’이다‘, ’있다‘, ’것이다‘체가 있다. ’것이다‘는 모두 ’이다‘로 바꿀 수 있다. ’있다‘는 늘어지고 짜증스럽다. ’것이다‘는 권위적인 글에 많다. 자신이 쓴 글의 피어리드 앞부분에 밑줄을 그어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 ’있다‘를 ’이다‘로 바꾸려면 주어를 변화시켜야 한다. BE 동사를 모두 ’있다‘로 번역하면 거지같은 번역이 된다. ’이다‘는 쨉, ’있다‘는 어퍼컷, ’것이다‘는 스트레이트 쯤 된다.

 

문장은 자르세요. 습관적으로 관용어절 물고 들어가는 버릇을 고치세요. ~했던 그는’을 ‘그는 ~했다. ~했다’고 3,4개의 문장으로 나누세요. 자기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좋다. 남이 소리내어 읽어주면 더 좋다. 남들이 들으면서 이상한 건 모두 틀렸다고 보면 된다. 소리 내어 최소한 3번 읽으세요.

 

다작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작보다는 타작을 문제삼아 주세요. 책의 질이 떨어지느냐가 문제일 거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서 기러기가 걸려들면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 평소에 파일링을 해 둔다. (둥근 파일 정리대 보여주심, 그리고 스승님의 옥편을 보여주심. 돌아가며 냄새를 맡아보고 손으로 쓸어보았다.)

 

정민교수님_옥편.jpg 

스승님의 옥편과 정민교수님의 옥편 2권 (사진 제공 문윤정)

 

 

질문 7. 삶의 균형을 어찌 맞춰야 할까요? (정나라)

 

인생 카운슬링까지? (웃음) 나도 오지랖이 넓고, 호기심이 많아 자주 옆길로 샌다. 그렇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여러 가지 충동이 모두 일관성이 있다. 내가 쓴 책들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 본인에게 정돈되지 않고, 상대가 보기에도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도 좋다. 가다가 보면 주력할 것이 나온다. 1년에 여러 권의 책을 낸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조금씩 누적되어 온 것들이다. 예를 들면 아침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시를 한 수씩 번역해 내 홈페이지에 올린 게 오언절구 삼백수, 칠언절구 삼백수 해서 육백여 수가 되었다. 나는 매일 시 한 수씩 감상해 올렸지만 통합파일은 작가의 생몰연도 내림차순으로 정리를 해서 한시사가 된다. 이건 6,7년 전에 마무리된 원고다. 삶을 바꾼 만남 같은 것은 어딘가에 기고를 했던 것들이 몇 년치 모인다. 조금 독자들한테는 눈치를 본다. 책을 쉽게 낸다는 평가에 신경쓰기 보담 마케팅을 해야 하는 출판사 입장이 있다.

 

약속은 주로 점심 때 잡는다. 저녁시간에 술 먹자는 걸 제일 싫어한다. 차를 두고 가는 것이 불편하고 무엇보다 내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기 때문이다.

 

 

질문 8. 선생님 홈페이지의 각시붓꽃 아이디를 쓰는 분은 어떤 인연이신가요? 홈페이지에 가면 선생님 글보다 각시붓꽃 글이 더 많습니다. (이길수)

 

<한시 속의 새>책을 쓰고 있을 때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본다. 그 책을 쓰려는데 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어야지. 인터넷 새 동호회에 가입을 했다. 새에 대한 한시를 날마다 내가 올려놓았다. 어느 날 올린 한시의 내용은 부모 새 중 한 마리가 떨어져 죽으니까 남은 새 한 마리가 제 새끼들을 떨어뜨려 죽였더라, 그 새들의 입을 열어보니 가시가 들었더라,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어찌 이런가 하는 거였다. 댓글들이 바로 올라왔다. 그건 선생님이 모르시는 소리다, 새는 배우자가 없어지면 새끼를 기를 수 없다며 하루에 먹이를 물고 오는 횟수를 통계내어 올렸다. 그리고 새 목구멍에는 역류를 방지하는 장치가 있는데 그게 가시처럼 보였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이걸 어디 가서 알 수 있겠나? 그럼 나는 그 내용을 책에다가 쓴다. 각시붓꽃 아이디 쓰는 이를 그 동호회에서 알게 되었다. 시와 관련한 메일을 주고받은 적은 있다. 만난 적은 없다. 지금은 내가 번역했던 한시 600수의 파일을 통째로 넘겨주고 그이가 시를 올리고 있다.

 

 

질문 9. 선생님은 후세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김이준)

 

저 친구는 주로 평가에 관심이 있군 (일동 웃음) 필요한 것은 과정이다. 결과는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 내가 즐거워서 한 공부였다. , 남이 알아주니까 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와 만나고, 자기와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고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좌표 설정이 가장 중요하다. 기억되느냐는 후세의 일이다. 나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다만 열심히 살았다는 말은 듣고 싶다.

 

 

정민스님 인터뷰사진 167.jpg

 얼굴 도장 (사진 제공 문윤정)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사부님은 정민선생님을 집단 인터뷰 하라고 하셨을까? 정민선생님이 구본형사부님과 가르치는 스타일이 매우 비슷하다고 인터뷰 기사를 여러 개 리뷰했던 길수형님은 말했다. 그게 다산의 방식인지 연암의 방식인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나는 새끼 거위들을 생각한다. 거위는 알에서 나온 그 순간 처음 본 대상, 자기 옆에 있던 이를 엄마로 여기고 제깍 애착을 형성해서 졸졸 따라 다닌다. 거위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지만 대부분 거위다. 정민선생님은 두 가지 면에서 거위 엄마다. 첫 번째는 눈을 다시 감고 제 집을 찾아가라는 연암 박지원의 글로 시작한 <한시미학산책> 책과의 인연을 통해 시란 무엇이고 시인(작가)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밑알을 주셨다. 이전에 시와 미학에 대한 다른 걸 공부해본 적이 없는 백지상태인 나로서는 정민선생님의 의견, 또는 정민선생님이 소개하는 옛 선인들의 의견을 개론, 주춧돌로 삼게 되리라. 선생님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둘째는 그의 다른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스승과 제자’에 대한 모델을 배운다. 다산 정약용과 강진 제자 황상의 인연에 대해, 스승의 옥편을 종종 꺼내어 냄새 맡는 정민선생님 본인의 인연에 대해 들으면서 이제 스승님을 모시고 공부를 시작하려는 우리 마음의 본을 삼게 된다. 더욱이 같이 가는 팀의 각자에게 스승이자 친구로 오래 멀리 가라 하셨다.

 

앞으로 1년 동안 우리는 8기 연구원 과정을 통해 50권의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 책들은 모두 저자와의 만남의 장이 된다. 그 저자와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자 인생에 영향을 끼치도록 허용하고, 적극적으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중에는 돌아가신 분도 있고, 오늘처럼 우리가 삶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사람도 잇고, 그저 책을 통해 흠모할 수 밖에 없는 분도 있으리라. 그 만남들이 기대가 된다. 또한 이 과정은 10명의 도반들과 함께 만나는 집단지성의 길이다. 이건 혼자 공부와는 확연히 다르리라.

 

돌아와서는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나의 좌표를 어찌 설정할 건지, 어떤 과정을 가지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를 하시니 그것에 대해 되묻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연구원 과정을 마친 후 쓰고 싶어하는 졸업용 책의 이름을 써서 정민이라는 큰 나무에 살짝 붙여두고 싶어진다. 팔팔이가 엮은 시집을 선물로 드렸는데 다음에 각자 이름자가 적힌 자기 책을 들고 다시 뵙겠다고 나무 등걸에 새겨 놓거나 화살 하나 쏘아 보내고 싶어진다. 구본형 사부님이 우리가 스스로와 세운 언약의 보증인이 되어 주듯이 정민선생님도 ‘그러냐? 그럼 그러든지’ 하실까? 

 

아, 중요한 사실, 정민 교수님과 구본형 사부님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통화하거나 만나본 적이 없다. 놀라워라.  

 

댓글에 댓글을 달기 위해 며칠 연구원 이야기에 오가다 나는 깨달았다. 8팔은 추측과 오해일 예상답안을 머금은 채 멈추지 않아도 된다. 그분께 직접 묻고, 육성 답을 들을 수 있다. '정민교수님과의 집단 인터뷰에서 팔팔이들이 무엇을 배우길 바라셨습니까? 저(희)는 이런저런 걸 느끼고 배웠습니다만' 요 정도 멘트를 쓸 수 있겠다. 이마저도 나에게는 수 차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지만. 이건 연구원 과정의 묘미, 특권일 거다. 놀라워라! 2

IP *.114.49.161

프로필 이미지
id: 문윤정
2012.04.04 20:01:56 *.85.249.182

언제 인터뷰기사가 올라오나 궁금해서 홈피에 몇 번씩 들어왔는데, 드디오 올라왔군요. 

권윤정님! 어쩜 이렇게 인터뷰기사를 잘 작성하셨습니까?

찬탄과 감탄을 마구마구 보냅니다.

자분자분 그리고 우리의 귀에 대고  낮은 음조로 조근조근  들려주는 문장도 맘에 듭니다.

그 내용 또한 두고두고 공부로 삼아도 좋을 정도로 알차고 읽을거리가 많습니다.

과제물하기도 시간이 빠듯할 텐데,

시간 내어 이렇게 수고해 주셨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일면도 없는 분을 인터뷰하는 것이 당연하답니다!

우리 사부님의 방식이 맞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4.05 06:20:38 *.154.223.199

칼리여신님이시여^^

아, 인터뷰 전문이신 여신님 댓글을 읽으며 저 막 힘나서 궁둥춤 추고 있어요. 이힝이힝

 

보내주신 사진은 아직 사용하지 못했어요.

용량을 줄이는 프로그램이 안깔려 있었어요.

오늘 아침에 작업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사진의 출처를 꼭 밝히겠습니다.

정민선생님의 사적공간을 보호하면서 사진을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해볼수록 사적공간을 열어주신 교수님이 감사합니다.)

메일, 전화에 대한 답이 늦었어요.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id: 문윤정
2012.04.06 20:26:26 *.85.249.182

사진 고루시는 안목이 굉장히 높아요.

심미안까지 갖추신 콩두님!

너무 멋져요!!!

'사진제공 문윤정'을 사진마다 붙여주셔서

부끄러움이 확~~~~~~ 올랐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올해는 열심히 사진 찍는 해로 잡아야 할까 봐요^^

 

 

프로필 이미지
2012.04.05 16:03:27 *.51.145.193

현장의 생생함 전해주신 콩두누님^^ 감사합니다.

도반들을 힘껏 도와 끝까지 같이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질문하는 힘...부분에서 잠시 생각이 멈추었습니다.

옥편 냄새 맡을 때...빵 터졌습니다. smell~s goooood 하는 게 상상되서^^

 

프로필 이미지
2012.04.06 10:36:07 *.114.49.161

재용랑 오셨군요. ^^ 반갑습니다. (춤추고 있어요.)

(김해는 가야, 가야 남자 장재용, 재용 처용 말놀이 하다 

처용랑 재용랑 캬 이러며 혼자 놀고 있슴다.  -_-;)

스멜스 구웃을 한 다음에는 손 힘으로 쫘악 찢어서 쩍 벌린 입이 미어져라

베어물고 우물우물 질감과 맛, 육즙을 느껴야 할 듯 합니다.  

 

끝까지 같이 가는 재용랑, 완전 든든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후발대 바로 앞에서 산을 따라다닌 1인^^

프로필 이미지
2012.04.06 04:55:56 *.214.149.78

콩두언니! 글을 읽으며 그날의 감동이 새록새록 합니다.

전 그날 정민 교수님의 정면에 자리를 잡는 행운을 누려

마치 영화를 보듯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가 있었죠.

교수님의 표정과 손짓... 그리고  학자의 날카로운 눈빛과 스승의 자애로운 미소가

아직도 마음속에 그대롭니다. 정리 뿐 아니라 글에도 언니의 고민과 애정이 담뿍 담겨 있어

읽는 내내 한줄 써놓고... 한참 고민하고...

한 줄 써놓고... 또 한번 줄여보고 하는 언니 모습이 떠올랐답니다. (맞나요? ^^)

감사합니다. 새벽을 언니의 글로 열은 오늘,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아요 ^________^  

 

프로필 이미지
2012.04.06 10:47:22 *.114.49.161

나라짱! (나라정! 부르려다 수줍어져서 이렇게 불러요.)

새벽에 단 댓글을 아침에 보고 저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했어요.^^

한 줄 써놓고 고민하고, 줄이며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정민선생님이 일러주신대로 3번 입으로 읽어봐야지 했는데 언감생심. 

꽁지와  발등에 불 붙어서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올라오자 시작을 했어요. 그 담에는 막 썼어요. 못 고치고요.

이건 딴 소린데요, 교수님의 정면에 자리잡는 것이 나라짱에게는 행운으로 느껴졌다는 게 저는 신기합니다.

그 가운데 자리는 저한테는 완전 벌 서는 자리인데 말입니다.

심장 벌렁거리고 신경이 안정이 안되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맵니다.

비스듬히 숨어서 촛불이 밝혀둔 방의 노란빛, 향이 퍼진 공기처럼 공간을 느끼는 게 편안해요. 

꽃, 빵, 외모 뿐만 아니라 정면도 담당하셨군요.

앞으로도 정면과 맨 앞, 가운데를 잘 부탁합니다!  

금요일입니다. 숙제를 생각하면 으매 이걸 내가 해낼수 있을까나 벌벌 댑니다. 

해내놓고 나면 또 뿌듯하고 자랑스럽겠지요? 우리 모두 화이팅^^

프로필 이미지
2012.04.07 08:55:05 *.166.205.132

녹음을 풀어 놓은 듯 자세하고 친근한 말투가 정답습니다.

혹시 국어 전공이신지? ^^

문장력에 대한 질문에 정민교수님이 '이다', '있다', '것이다' 체를 설명한 부분에서 깜짝놀랐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었고, 나의 문장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리뷰 덕분에 저도 스승을 한분 더 알게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4.07 20:41:35 *.154.223.199

국어전공아닙니다.^^ (칭찬같아서 혼자 폭풍 웃음 하고 있습니다) 

디립다 받아적어서 썼어요. 국어전공이고, 군더더기를 안 두는 정민선생님의 말투가 생각납니다. 

양갱선배님의 댓글에 연예인 싸인 받은 듯 기뻐합니다. 면접여행 생각도 나고요.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4.08 22:26:51 *.38.222.35

ㅋㅋㅋ.. 인터뷰 잼있게 잘 봤습니다~~~ 정민 선생님의 문장 쓰는 비법이 인상적이네요..

 

생생한 인터뷰 현장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용~~~!!!^^

프로필 이미지
2012.04.10 09:49:15 *.114.49.161

미나선배님 안녕하세요? ^^ 

제가 면접여행 때 뵌 선배님들의 이름과 사진, 얼굴이 아직 뒤엉켜 있는 상태입니다.

만났던 그 분을 생각하면서 댓글 쓰고 있는데 맞나, 아닌가 합니다. ^^

댓글 감사합니다.

정민선생님은 책이든 논문이든 기고든 다 쓴 후 3번씩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 보고, 나중에는 사모님더러

한 번 읽어달라 부탁도 드린다고 들었어요. 200페이지 논문도 다 소리내어 읽으신다고 했을 때 감탄했어요.

게시판에서 자주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2.04.10 10:01:35 *.192.175.177

생생하고 감동적인 후기 두 편 모두 잘 보았습니다.

아직 여러분들을 만나뵙지 못해서 사진과 이름과 올리신 글들은 매칭되지 않지만 ^^;;

그래도 '팔팔이'분들의 느낌이 마구 전달되는 느낌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정민교수님의 책을 한 권도 보지 못했지만 읽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아오르게 하는 인터뷰였습니다.

그리고 책도 읽기 전에 여러가지 좋은 말씀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것은 모두 팔팔이 분들, 특히 정리에 애써주신 권윤정님 덕이네요.

감사합니다.

꽃피는 봄날 여러분들을 만날 기대에, 더욱 주말이 기다려집니다. 그때 뵐께요 ^^

- 6기 이선형 드림-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8 2012 총회 사진모음 file [4] 신재동 2012.04.16 2065
527 8기 - 총회 준비 모임 file [3] 레몬 2012.04.13 2190
526 <보니엠> 그룹 리즈 미첼과의 인터뷰, 공연 안내 file 한숙 2012.04.12 5605
525 [다시보기] 2011 이탈리아여행 file [2] 사샤 2012.04.07 2212
» 8기의 정민 교수님 집단 인터뷰 후기 2 file [12] 권윤정 2012.04.04 4809
523 8기의 정민 교수님 집단 인터뷰 후기 file [14] 레몬 2012.03.31 5363
522 8기 광화문 회동! file [5] 레몬 2012.03.31 3713
521 괴산 여우숲 가는 길 file 양갱 2012.03.22 4564
520 2차 북페어 뒷풀이 file [1] 철학하는 인사쟁이 2012.03.16 2207
519 2012년 2차 북페어의 현장으로 file 철학하는 인사쟁이 2012.03.16 2869
518 2012년 1차 북페어 현장 르뽀!!! file 재키 제동 2012.03.07 3325
517 [나는 작가다] 2012년 2차 BOOK FAIR file [7] 재키 제동 2012.03.01 2116
516 조셉켐벨 <신화의 힘> 다큐멘터리 EBS 방영요청합시다! [4] [1] 뫼르소 2012.02.02 3287
515 [나는 작가다] 2012년 1차 BOOK FAIR file [5] 재키 제동 2012.02.01 2566
514 2012년 땡7이 주요 행사 일정 [1] 재키 제동 2012.01.16 2121
513 2012년 1차 북페어 일정 공지 [1] 재키 제동 2012.01.16 2514
512 2011 이야기와 음악이 있는 樂송년회 결산내역입니다. [5] 미나 2011.12.17 2143
511 제1회 '나는 연구원이다' 참가소감 file [16] 한명석 2011.12.12 2698
510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분을 찾습니다 구라현정 2011.12.02 2469
509 [Wanted] 2011변경연 10대 뉴스와 스토리를 찾아라!!!! [2] 미나 2011.11.27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