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연구원

연구원들이

  • 한정화
  • 조회 수 2586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07년 11월 16일 23시 34분 등록
예전에 그리다가 옆으로 치워두웠던 것을 마무리 하고는 다른 그림을 새로 시작했다.
정착액을 뿌려서 마무리 했다.



깔끔한 마무리가 없는 거친선이 그대로 드러난 다리.... 연출을 위해 엷은 회색톤을 만들었다가 밝은 곳을 밝게 두지 못한 것을 지적받아 다 지우고는 다시 흰색 콩테를 칠해서 만든 벽.




1)
"4B 연필로 경계가 모호한 것 하나 그리고 싶구요, 다른 하나는 금속 광택이 나는 것처럼 경계가 뚜렷한 것 그리고 싶어요."

콩테로 잘 나타나지 않는 경계를 그리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4B연필로 그리고 싶었다. 하나는 몽환적으로 다른 하나는 연필을 날카롭게 깍아서 깔끔하게...

마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경계가 모호해요"
자세히 들어다 보니 그렇다.
그리고는 다른 그림사진 하나 보여 주면서
"이것을 경계를 모호하게 그릴 수 있어요"



유화인데, 뒷태가 예쁜 누드 그림이었다. 붓 터치가 어느 정도 보이는 조금은 거친 인상주의 그림이었다.

마크 선생님 왈,
"사진을 가져다가 보고 경계를 모호하게 그릴 수도 있고 경계가 뚜렷하게 그릴 수도 있어요. "

그것은 연출의 문제인 것 같다. 자신이 어떤 느낌이 나게 그릴지 선택하는 것 말이다.

2) 기준은 어디? 비례 맞추기?
노트 크기의 3/4 정도 되는 그림을 4절지에 옮기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로 세로 비례를 맞추기 위해 그림의 경계가 되는 틀을 잡았다. 어느 정도를 잡아야 할지 몰랐다. 머리 속에는 '이 정도'라고 말할 뿐이었다.

여인의 상체와 하체의 덩어리를 사다리꼴을 두개 맞붙여 놓은 것으로 크게 잡아서 그렸다. 그 안에 몸매를 그리고 나니 웬지 어색하다. 상체를 지우고 다시 그리고 나니 하체와 또 맞지 않다. 이번에는 하체를 지우고. 그렇게 몇번을 반복하고 나니, 처음에 잡아둔 외곽선보다는 커져서 그림 전체 틀이 엄청 커졌다.

한시간 동안 헤맸는데, 아직 형태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어디에서 부터 시작해할지 몰라서 그냥 눈이 처음으로가는 데서 부터 시작했는데, 순서가 잘못되었나 보다.
"처음에 작게 시작했는데, 자꾸 고치다 보니 엄청 커졌어요. 어디를 기준으로 비례를 맞춰야 하나요? 책에서는 머리를 기준으로 몇 배 이런 식으로 하던데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대상을 보고 그렇게 하기는 힘들어요. 저도 그렇게 안해요. 그림을 보고 그릴 때, 우선은 그림틀 안에서 사람의 머리 위로 여백이 얼마나 있는지, 발 아래로 여백이 얼마나 되는지 봐서 대상의 전체 크기를 잡아요. 그런 후에 그 대상을 1/2로 나누고 셈플 그림에 표시를 하고, 종이도 그렇게 해요. 그리고, 반에 또 반을 표시해요."
자신이 처음에 원하던 크기로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초보자들이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것 중에 이것도 포함된다. 종이와 그리려고 하는 대상을 어느 정도의 비율로 그려야 할지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 크로키 수업에서 내게는 항상 종이가 작았던 것처럼. 그때는 모델의 잘록한 허리와 미끈한 다리에 눈이 가서 그것 그리고 나서 시간이 남길래 상채로 연장해서 그려가려니 늘 종이가 작았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먼저 허리선에 눈이 가고 둥그스름 명암대비 뚜렷한 엉덩이에 마음을 빼앗겼다. 전체를 먼저보지 못하니 틀어졌다. 그리다 보면 점점 커진다.


대충 덩어리를 표시했을 때, 마크선생님이 보시고... 비례가 맞지 않다고 하셨다. 셈플보다 내가 그려 놓은 여인은 어깨가 더 좁아져 있었다. 재보라고 해서 어깨의 넓이와 하체 엉덩이의 넓이를 재니 셈플은 어깨쪽이 훨씬 넒은데, 내가 그린 것은 상하가 거의 일자다. 이런, 이런. 한시간 동안이나 헤메고도 중요선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구나. 그리고 또 내가 그린 쪽이 훨신 날씬하다.
아아. 화실 끝나는 시간이다. 젠장.

기준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 경우는 나를 사로잡은 것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이나 그림에서의 중앙이 기준이 아니라 눈에 가는 곳이 기준점이 된다. 마크 선생님의 경우는 전체를 보고, 그리고 그것을 조각내가며 하는 방법을 쓰시는 것 같다.

비례를 맞추는 것은 다음날 연습 부분으로 남겨둔다.

3) 연출
경계없이 부드럽게 하려고 했으니 세부묘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칠하고는 휴지로 문질러서 경계를 없앨 생각이었으니까. 모호하게 몽환적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빠르게 시원하게 손을 놀려댔다. 세부는 무시했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오른쪽 배경은 처음부터 까맣게 했다. 오른쪽의 밝은 몸을 드러내기 위해 오른쪽 배경은 어둡게, 왼쪽의 어두운 몸의 선을 드러내기 위해 왼쪽 배경은 밝게... 남겨두었다.
어느 정도 여자의 몸을 어느정도 그렸다 싶을 때, 왼쪽 배경을 칠했다. 그리고는 위에서 아래쪽으로 부드럽게 세로선을 흐르듯이 지우개로 지웠다. 마치 커튼이 드리워진 것처럼. 여자의 몸이 흐르듯이 배경을 흐르게 했다. 지우개로 지워낸 세로선이 마음에 들었다.

여자를 직접 그리지 않고, 여자를 상징하는 것을 그리게 하면 대부분이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흐르는 부드러운 세로선을 긋는다고 한다. 여성의 부드러움은 가로선이 아니라 세로선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선을 사선으로 자르는 수직보다는 수평에 가까운 선이 추가된다. 수평에 가까운 선은 아마도 S라인을 연상하게 하는 상체와 하체를 나누는 선이라고 여겨진다. 한쪽으로 무게 중심을 두어서 선 발 때문에 수평이 아닌 허리선, 그리고 약간 틀어진 어깨선..... 이 셈플을 보면서는 그 생각이 자꾸 났다.

마크 선생님은 그림을 보시고 오른쪽 배경(커튼)을 더 어둡게 하라고 하셨다. 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셈플에서 보여지는 것만큼 더 대비를 주라고 하셨다. 칠한 후에 부드럽게 하기 위해 휴지로 지워내고 다시 어두워지게 하고 휴지로 지우고 하기를 여러번 반복해서 점차 어두움을 추가했다. 그렇게 대비를 주다가 문득 다른 대비를 주고 싶었다.

부드러운 몸과는 뚜렷이 대비가 되는 거친 선.
어쩌면 오른쪽 어두운 부분은 일종의 커튼일 것이다.
커튼의 부드러움을 무시하고 거친 선을 넣었다.



더 넣어야겠다. 부족해 보인다.

4) P.S.

Q(Tao) : "보고 그려도 비례를 잘 못 맞추는 경우...... 혹시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이상형을 따라가지 않나요?"
A(Mark): "사람들은 대상을 자신과 닮게 그려요."

그림이 나와 닮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곧 내 모습대로 그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글이 글 쓴 사람을 그대로 닮은 것처럼, 그림이 화가를 꼭 닮을거라는 믿음은 변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림 그리는 것을 멀리 해오지 않았던가. 나를 닮은 그림이 나올까봐 두려워서.

지금은 나 스스로를 받아들일만큼까지 성장했다.

5) P.S.

그림으로 만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몸을 보고 싶다.
생명이 있는 몸. 만지고 싶은 몸....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하늘거리는 나뭇가지.
웃고 있는 꽃.
살아서 꿈틀대는 바위.
상냥히 말을 걸고 있는 바람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IP *.72.153.12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11.19 11:21:38 *.75.15.205
정화는 착하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자연의 순응을 닮았을 때 아름답다. 때로는 인공이 더 아름다울 때도 있다. 생명에 진정성이 있을 때가 아닐까?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