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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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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일 07시 36분 등록
주말이 지나 화실에 가보면 몇 개의 그림들이 늘어나 있다.
주말반 학생들이 주말 동안에 그린 것들이다.
추가된 그림들은 연필 소묘의 경우는 8절 크기가 보통이고, 4절 크기도 몇 점 있다. 유화의 경우에는 4절 크기가 대부분이다.

어느 날은 화실에 있는 책 중에서 다음 그림을 그리려고 뒤적 거리는 중에 재료를 다루는 법, 재료에 따른 표현 기법을 알려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림과 더불어 그림위에 붓과 화가의 손이 같이 찍힌 사진들을 보게되었다.
화실에서 쓰는 그림 자료들은 A4용지에 출력한 것, A4사이즈의 책 낱장을 뜯어서 코팅해 둔 것이어서, 그림의 실제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웠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완성된 그림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은 손바닥 사이즈였지만, 작업 중일 때는 손이 같이 찍혀 있어서 그림 속의 나무가, 집이, 학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셈플의 그림들은 실제는 아주 큰 그림들이었다. 2절지 크기, 혹은 전지 사이즈는 되는 그림들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그림을 4절이나 8절에 베껴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몇개의 형태는 옮겨 그려도 나타나겠지만, 터치나 세부의 치밀함은 옮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작은 그림에 세부적인 것을 꼼꼼하게 넣어야 하는 것이 답답해서 투덜거렸었다. 두꺼운 4B연필이나 콩테연필을 가늘게 깍아서 처리 하는 것들에서는 조금만 더 눌러서 힘을 줘도 형태가 어긋나기 일쑤였다.

마크 선생님께 책에서 본 그림의 사이즈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화실은 여러사람이 공간을 사용해야 해서 큰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다 하셨다. 또 하나의 이유는 큰 그림을 그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이다. 일주일에 2~3번 나와서 배우고 가는 학생들은 큰 그림을 시도하다가 완성의 기쁨을 알지 못하고 지루해하며 금새 그림 배우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주일 내에 완성이 가능한 사이즈로 연습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8절지 사이즈나, 4절지 사이즈로 하루 혹은 2일에 걸쳐서 그릴 수 있는 정도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지난 주에 내가 연습한 그림도 그랬다.
아마도 실제 원본의 사이즈는 전지 크기를 넘을 것이다. 내 손에 주워진 것은 사진으로 찍어서 A4 용지에 들어간 것이다.

밤의 숲을 그린 유화인데, 4B연필로 배껴 그렸다.

이 그림을 그려 보세요하고 마크 선생님이 내밀었을 때, 나는 잠시 크게 호흡을 해야 했다.
'하아, 유화의 터치가 살아있을 그림을 연필로 어떻게 표현한다냐. 시간이 엄청 걸리겠다.'

종이와 마주하고 앉았다.
슥슥 형태를 잡아간다. 시작이 반이다.

초반에는 여지껏 배운 방법으로 그렸다. 그것은 덩어리가 큰 것들을 그리는 방법이었다. 덩어리 하나에 밝음과 어두움이 같이 공존해서 형태를 이루는 것.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작은 덩어리들(나뭇잎)이 뭉쳐 있는 나무인 것이다.

'유화나 수채화로 그렸으면 붓으로 몇번 찍어서 형태를 잡았을 텐데. 이걸 어떻게 다 표현한다니. 목탄으로 한다고 해도 괜찮을 텐데. 연필로 언제 찍냐.'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중에도 손은 여지것 배운 덩이리 그는 방법으로 놀려댔다. 큰 덩이리, 분위기는 그 방법으로도 나타낼 수 있을 테니까.



오른쪽의 나무는 진하게 칠해서 밝은 부분을 지우고, 왼쪽의 나무는 나뭇잎들 하나하나를 찍어나가려고 했다. 마크 선생님께서도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 오른쪽 나무는 잎들이 많이 뭉쳐 있어서 가능할 것 같았고,왼쪽은 나무는 나뭇잎들 사이로 하늘이 많이 보여서 전체를 칠하고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른쪽 나무마져도 지워도 제대로 밝은 부분이 나오지 않았다. 어두움이 있어야 밝음이 나타나는 것이라서 지운 후에는 다시 나뭇잎의 형태를 따라 어둡게 해야 했다. 막막한 작업이었다.

문득 그림을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법으로 나무잎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도면에서 나무를 그리를 기법 중 하나, 만화에서 나뭇잎을 그리는 법을 따라하면 될 듯 했다. 셈플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지만, 상상으로 도식화해서 그렸다. 한 나뭇가지에 붙은 나뭇잎들을 덩어리로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을 여기에 도입했다. 나뭇잎들의 덩어리를 그래서 칠했다.

왼편의 나무는 잎사귀 하나 하나를 점으로 찍었다.
화실의 아트 선생님께서 지나가다가 보시고는 말을 거셨다.
"너도 지독하다. 그걸 하냐. 넌 예전에 그거 하기 싫어했잖냐?"
"지금은 필요하니까 해요."
붓으로 그리면 10분도 안 걸린 텐데, 연필로 하나씩 그리려니 답답했다. 그런면에서 하나의 도구만을 사용하는 것은 답답한 것이다. 아트 선생님은 그런 내 성격을 알고 계셨다. 예전대로 한다면, 급한 내 성격대로 한다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을 그림이다. 아니면 2~3가지의 재료를 써서 1~2시간 내에 끝내버렸을 것이다.

4B 연필의 사용. 그것으로 부터 그림그리는 법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4절 스케치북에 4B연필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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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12.04 14:29:26 *.75.15.205
사부님 표정 중에서 좋은 것을 하나 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13명의 제자 얼굴을 최후의 만찬처럼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 나중에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 같으면서... 날로 발전하는 모습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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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2.05 00:46:03 *.72.153.12
사부님은 한번 그려보려구, 사진 모으고 있는 중.

3기 연구원은 '플라톤학원'처럼 그려보고 싶어. 예전에 '철학자 인 아카데미'라고 말했던 그 작품말야. 그것처럼. 각자 책을 내면 자신이 골똘하는 주제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고려해서 배치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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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2.05 23:22:44 *.128.229.81
좋구나, 정화야. 재미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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