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연구원

연구원들이

2008년 1월 14일 09시 46분 등록
#1. 고민하다.

"넌 이미지가 강하니까…", "하루도 길다.", "하나에 집중해라."

사부님의 선문답 같은 말씀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한가지에 집중하라. 좀 더 깊이 들어가라. 이번에 자신의 문제를 풀지 못하면, 내가 얼렁뚱땅 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순간에는 이런 고민을 끝내야 한다. 지금 해야 한다. … 이걸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다. 이 문제를 풀면 사람은 도약하게 된다. '더 훌륭한 내가 내 속에 숨어 있었구나!' 문득 깨닫게 된다."

"작가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러나 표현의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드러내. 그게 작가야. ... 작가가 된다는 것은 책임이야. 내가 속한 시대를 이야기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가져야 해."

다시 원점이다. 원점에서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나는 많은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분석적인 딱딱한 글도 싫다. 경계를 걷는 글을 쓰고 싶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 여기와 저기 사이, 너와 나 사이…. 지금 여기(Now, Here)에 있으면서 그 어디에도 없는(Nowhere)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시간과 공간 사이, 존재와 존재 없음의 사이… 그게 무엇일까? 대체 무엇일까?



#2. 두 개의 실마리

내가 쓴 칼럼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 속에 어떤 단서가 숨어 있을지 탐색해보았다.

* 공간의 시, 경계의 미학 中

"나는 여기에 있다. "과거와 미래의 충돌" 사이에 있다. 동시에 나는 여기에 없다. 내가 사유하는 만큼, 꿈꾸는 만큼이 나의 공간이다. 나는 나의 공간을 창조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현재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나에게 들어와서 하나의 의미를 띄게 된다. 텅 빈 바퀴의 중심에 무언가 소중한 것들이 피어난다.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내가 된다.

시간과 공간. 그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곳이다.

과거와 미래의 틈새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에 대해 나는 쓸 것이다. 낙서할 것이다. 사진을 찍을 것이다. 짧은 동영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작업들을 나는 '공간의 시, 경계의 미학'이라 이름 붙여본다. 내가 머무는 공간은 그렇게 현실과 상상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그림, 사진, 영상, 공간, 건축, 음악, 미술 등이 하나가 되어 춤을 추는 그런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낙서와 글이 만난 이것을 '그래프타입 _ Graff-Type'이라 한번 이름 붙여본다. 새로운 놀이의 시작이다. 내가 꿈꾸는 만큼이 나이다."

* Drawing Lines, Dreaming Ways 中

"A Day. One. (하루, 하나.) - 자기 자신을 찾는 일.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내가 바로 너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

나는 왜 여기에서 한 발 물러섰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남들과 다른 길,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을 가는 것이 두려웠을까? 그래서 좀 더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것일까?

"Graff+Type"은 일종은 방법론이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다른 이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내 머리 속에 있는 "A Day. One."은 '하루'동안의 이야기이자 '하루'의 이야기이다. '루'라는 주인공을 통해 보고, 듣고, 말하는 일종의 소설(?)이자, 영상 시이며 무형식의 산문이다. 시, 소설, 산문, 이미지와 글 사이의 경계를 모색하는 글이다.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에 관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그래, 모호하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에 약하다. 그것이 내가 한 발짝 물러선 이유일 것이다. 좀 더 안전해 보이는 책과 눈에 보이는 길로 물러선 이유일 것이다.



#3. 자궁 속에서의 하루

몸이 아팠다. 어릴 때는 곧잘 이랬다. 주말이 되면 아팠다. 익숙한 듯 낯선 불편함에 하루를 침대에서 보냈다. 미열 때문에 몽롱한 기분 속에서 책을 뒤적이다, 잠이 들었다, 깨곤 했다. 그렇게 하루가 갔다. 집 안의 자궁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 세상의 종말은 미래의 어떤 순간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순간, 세계를 보는 방법이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이런 순간을 경험하면 이 세상은 물질의 세상이 아닌, 빛의 세상이 될 겁니다." - 조셉 캠벨

"오늘날 아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즉흥적인 것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결정타는 왼손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 발터 벤야민

"흐름이 멈추어서 '굳은' 상태를 장소라고 한다면, 길들은 가상적인 진행 과정을 나타낸다. 시간은 공간 속에서 전후 관계의 현상을 드러내는 텍스트로 간주되기 때문에, 걷는 사람은 텍스트를 읽는 독자가 된다. … 공간과 시간은 분리할 수 없게 서로 얽혀 있다. 공간은 시간의 차원을 잠재적 특질로 내포하고 있다." - 볼프강 마이젠하이머

조셉 캠벨, 발터 벤야민, 그리고 볼프강 마이젠하이머의 책을 들추었다. 신화와 길, 공간과 시간 사이를 이리 저리 헤매 다녔다. 그들이 나를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떠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현대의 이미지, 현대의 신화를 찾아 떠날 것이다.

길을 걸으며, 길의 의미를 물을 것이다. 공간과 시간의 미로를 탐색할 것이다. 시간과 공간, 과거와 미래, 현실과 꿈, 그 모든 것이 만나는 치열한 현장에 나는 서 있을 것이다.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의 의미를 물을 것이다.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것이다. 혀로 핥을 것이다. 손 끝으로 쓰다듬을 것이다. 감각의 끝을 지나,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꿰뚫을 것이다.


#4. A Day. One. (하루. 하나.)

'하루. 하나.'는 '나는 여기 있는데, 너는 거기에 있구나.' 그 삶의 아득한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다. 꿈과 현실 사이, 과거와 미래 사이, 그 '뜻 밖의 중간(in between)'에 대한 이야기이다. 캄캄한 심연과 엄청난 간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이야기이다.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아니 멈춘 듯한, 이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노래한 "시간의 점"에 대한 이야기, 프루스트가 들려주었던 '범속한 각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갑자기 건너 뛰는, 도약과 영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스테리움 트레멘둠 에 파스키난스(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 그 '무섭고도 놀라운 신비'에 대한 이야기이다. '루'의 눈과 입을 통해 이야기하는 나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그건 TV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것과 같아. 세상이 흔들리고, 기억과 몽상이 뒤섞이고,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고, 채널이 흔들리며 다른 주파수가 잡히기도 하는, 그 미로 속을 여행하는 것이지. 그렇게 만나고, 부딪히고, 충돌하고, 깨어지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그러다 문득 내려 앉는 것이지. 순간, 어느 하나에로 합쳐지는 것이지…"



#5. 목차 아닌 목차

조금은 무책임하지만 사실 어떤 형식과 종류의 책이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자신의 경계를 모색하는 실험이자, 200페이지 가량의 얇은 책이 될 것 같다는 예감 외엔 그냥 끝까지 가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선은 '하루'라는 시간을 24개로 쪼개어 24개의 단편들로 채우려 한다. 러프한 목차를 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시간과 장소로 이루어진 목차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둠의 저편'이란 소설에서 챕터를 하루 동안의 시간으로 나누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구성의 차별성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할 듯 하다.)


*프롤로그 (독백)
_ 눈을 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A.M. 05:10 / 집
_ 꿈과 현실 사이. 흔들림과 뒤척임 사이. 파란 유리 조각이 반짝인다. 창 밖, 푸른 선이 흐른다.

A.M. 07:05 / 집
_ 너를 안는다. 네 안의 고운 숨결이 나를 다독인다.

A.M. 10:23 / 섬진강
_ 네 눈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몸과 몸이 만난다. 부드러운 산의 곡선 사이, 거꾸로 흐르는 강.

AM. 11:35 / 통영
_ 은빛으로 부서지는 햇살. 아름다운 산책의 끝. 어딘가 가슴 아린, 어린 시절의 단편.

*인터미션 (독백)
_ 우린 서로 다른 꿈을 꾸었던 것일까?

P.M. 12:21 / 서울
_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삶의 정오', 자신에게 충실해지는 차라투스트라의 시간…

P.M. 01:37 / 남해
_ 늙은 바닷가. 텅 빈 허공에 달린 그네. 너의 노래. 떠나감. 멀어지는 등.

P.M. 02:25 / 미정
_ 네가 바로 나였구나!

P.M. 04:00 / 미정
_ 빨래를 넌다. 아까운 햇살의 끝자락에 나를 널어 말린다.

P.M. 04:40 / 대구
_ 다시 흔들림. 그곳은 일년 내내 비. 흔들림과 흔들림 사이, 허공에 발을 내딛는다.

P.M. 05:30 / 미정
_ 낮과 밤의 경계, 마법의 시간. 그 곳에서 너를 만난다. 소중한 순간,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눈부신 순간의 꽃봉오리들...

*인터미션 (독백)
_ 내린다. 가장 낮은 곳으로…

P.M. 07:30 / 미정
_ 잠수함, 가라앉다. 수은의 대기. 숨이 막힌다.

….

A.M. 00:14 / 섬진강
_ 문득 떠올랐다. 너와 내가 만났던 그 강가, 하얀 모래밭. 순간이 영원 같던…

….

A.M. 04:59 / 집
_ 다시 새벽. 또 다른 시작. 수면 아래의 웅성거림. 슬프고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다.

*에필로그 / 미정
_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풍경. 부디 늘 행복하길...



#6. 어떻게 쓸 것인가?

총 24개의 장소를 방문할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일상의 공간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추천을 통해 선정한 평범하지만, 특별한 장소를 방문할 것이다. 그 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반짝이는 유리조각 같은 이미지들을 모을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공간과 오감의 끝, 그 충돌 지점을 탐색할 것이다.

책, 노트북, 카메라(혹은 캠코더)를 들고, 어떤 장소를 걷는다. 걸으면서 이미지들을 탐색한다. 모은 이미지들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그 안에서 돋아나는 의미들을 재구성한다. 이미지와 글을 통해 순간과 싸울 것이다. 감각의 틈새를 모색할 것이다. 이를 'Image Walking, Street Writing'이라 이름 붙인다.

이를 위해 이미지 수집을 위한 휴일 중 하루와 이를 재구성하기 위해 나머지 일주일의 새벽 2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총 24주, 약 6개월이 초안 작업 기간으로 소요된다. 그리고 1~2달 정도의 후반 작업과 편집을 통해 최종 원고를 마무리할 것이다.




*** 아직 상태가 온전치 못한가 봅니다. 내용이 두서가 없네요. 다시 읽어보니, 두 권의 책이 하나에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IP *.249.162.200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8.01.14 21:43:57 *.128.229.81

하루를 특별하게 하는 무엇은 하루의 일상적 경계를 넘어설 때 가능할 것이다. 하루의 경계선, 그 금제를 넘어선 24개의 장면을 구체적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 하면 그 속에 도윤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여, 새로운 형식을 실험해 보아라. 지루하고 뻔한 하루의 경계를 퇴폐적이 아닌 방식으로 넘나들다 보면 그 장면과 이야기가 특별함을 이루게 될 터인데, 그게 또 독자들에게 특별한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시도해 보아라. 그러면 점점 확실해 질 수 잇을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8.01.15 08:21:30 *.180.46.11
어딘가로 떠나던 차,그리고 유리창에 얼굴 가까이 대고 밖을 응시하는 한 사람.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는 그 순간, 그 공간

장항의 갈대밭.

도윤의 마음이 공간으로 녹아드는 순간.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8 2008년 현운의 독서 계획 [2] 현운 이희석 2007.12.27 2480
487 몇 가지 공지사항 [2] 옹박 2007.12.27 2415
486 과제를 제때에 제출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1] 한정화 2007.12.28 2584
485 읽을 책들(12,28 수정) [1] 香仁 이은남 2007.12.28 2152
484 새해 꿈♥사랑♥ 복 많이 받으세요. [4] 써니 2008.01.01 2529
483 또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7] 香仁 이은남 2008.01.03 2623
482 연구원 4기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2] 써니 2008.01.03 2532
481 앞으로 읽을 책 [4] 한정화 2008.01.03 2729
480 수업에서(종윤이 발표하는 중에) [2] 한정화 2008.01.06 2532
479 2008년1월 5일 수업풍경 [11] 素田 최영훈 2008.01.08 3079
478 3기 9차(2008년 첫번째) 수업 후기- [8] [2] 한정화 2008.01.08 2547
477 화실일기 7 - 검은 배경 교정 한정화 2008.01.13 2970
476 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책 제목과 목차) [2] 교정 한정화 2008.01.14 2520
» A Day.One. (하루.하나.) ver.1 [2] 時田 김도윤 2008.01.14 3131
474 모순에 빠지다 [3] 송창용 2008.01.14 2810
473 [첫책]공무원으로 산다는 것 [4] 素田최영훈 2008.01.15 3281
472 1~3월에 읽을 책 (개정판) [2] 香山 신종윤 2008.01.16 2927
471 책 제목과 목차(키워드) [2] 써니 2008.01.17 3685
470 화실일기 8 - 흑과 백을 구분하기 [1] 한정화 2008.01.20 2969
469 번역 이벤트!!! 상품 있음!!! [10] 香山 신종윤 2008.01.30 2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