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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4일 12시 11분 등록
집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제 아기는 아기구요. 제 막내동생이 낳은 우리 집안의 첫번째 아이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집에 갔더니 동생이 아기를 친정집에 맡겼네요.
동생이 제부랑 마트에 물건을 사러간 동안 아기를 봤습니다.

가족들을 기다리다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저, 그리고 조카 정민이랑 크리스마스 케잌에 불을 붙이고 불고, 먹었습니다.
초코가 듬뿍 뿌려진 티라미수케이크.
조카놈이 케익을 덥칩니다.
아버지께서는 케익을 조금 떼어서 입에 넣어줍니다.
"어따 너도 먹어봐라."
아기는 입을 오무작모무작 거리면서 손은 여전히 케익을 덥칩니다.
조카가 8개월째인데, 뭐든지 입으로 확인합니다.
지가 신던 신발을 쥐어줘도 빨아대고, 엄마 지갑을 씹어대고, 열쇠 꾸러미도 빨고, 책도 입으로 넣고, 귤, 과자 봉지 손에 집히는 것은 자꾸 입으로 넣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뭘 먹는 것을 보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오돌오돌 떨면서 먹습니다.
귤을 먹을 때 보면, 그게 얼마나 신지 그 참을 수 없는 신맛 때문에 얼굴에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이녀석은 먹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아기들은 그렇게 충격적인 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왜 먹을까요?

아버지와 저는
'그래 너도 먹어봐라.'
하며 먹여주지만 이 꼬마놈에겐 한번 먹어 보는 거, 한번 해보는 아니고, '먹는다' '한다'입니다.
제대로 씹지 못하는 작은 젖니 4개로 오무작오무작. 감당할 수 없는 신맛에, 감당할 수 없는 단맛에 온몸을 떨면서 먹습니다.

아기 엄마가 나중에 와서 저와 아버지를 마구 나무랍니다.
'어른들한테 단 것인데, 아기한테는 얼마나 달겠어?'
생각 좀 해가며 먹이라고 마구 혼났죠. 아버지야 옛날분이니까 말려도 안되지만 이모라는 사람이 아무튼 아무 생각없이 그런다고 마구 혼났죠.

아기는 손과 얼굴에 초코를 잔뜩 묻히고, 그 손을 옷에 닦아 벌써 거지꼴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니들 키울 때, 흙 파먹고 그래도 아무 이상 없이 잘만 크더라.'
하하하,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아기에게 아무거나 먹입니다. 해보라며, 먹어보라며, 괜찮다고 합니다.

아기 엄마인 동생은 기겁을 하지만,
아버지와 저는 해보고 싶은 것은 해봐라이지요.

아기는 알까요? 우리가 이상한 것을 먹인다는 것을.
저야 아기 엄마 없을 때, 신발도 빨아보라고 건네주지만서도.... (히히히. 정말 몸에 나쁜 것은 안줍니다. 신발은 안 더러워요. ㅎ흐흐흐.)

아기는 뭘 몰라서 아무거나 먹고, 건네주는 대로 받아서는 입으로 가져갑니다.
아기는 아무거나 먹습니다.
아기는 한번 해보는 게 아니라, 그냥 합니다.
모르니까 그냥하겠지만 그래도, 아기가 부럽습니다.

'너는 꼭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냐?'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저는 그렇습니다. 먹어봐야 압니다.
해봐야 알거든요. 책들이 설명해주는 것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경험이 부족해서도 그렇고, 하지 말라는 것을 어떻게 되는지, 진짜 그렇게 되는지 알고 싶어서 해볼 때도 있습니다. 해봐야 압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해보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이 콩을 먹으면 배가 아파. 그리고 키가 잘 안커.' 그것을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배 아픈 것을 보았으면서도 콩을 먹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런 콩도 한번쯤은... 먹어보고 싶습니다. 죽는거는 아니니까.

올해엔 이상한 콩을 많이 집어 먹을 것 같습니다.
알고도 먹고, 모르고도 먹고,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아무것이나 주워먹는 조카 때문에,
다시 한번 아기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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