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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5일 10시 02분 등록
스승님께

십여 년 전, 저는 오른팔로 왼팔의 팔꿈치를 받친 채 왼손의 검지와 엄지로 턱을 살짝 꼬집는 버릇이 있었지요. 이것은 당시 제가 참 믿고 따랐던 성경공부 리더의 습관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따르니 그의 버릇까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20대 초반의 제 신앙의 모델은 바로 그 사람이었고,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그만큼 따랐던 사람은 없었지요.

몇 주 전부터, 저에게는 또 하나의 버릇이 생겼습니다. 오른손을 살짝 굽혀 허공에다 공을 만지듯이 두어 바퀴 돌리는 모양인데, 전화를 할 때에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때에도 자주 이 버릇이 튀어나옵니다. 저는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 연구원 수업 때에야 알았습니다. 바로 스승님이 자주 취하는 포즈였으니까요. ^^

30대 초반인 지금, 저는 10년 만에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스승이 생겨났습니다. 전심으로 신뢰하니 누군가의 포즈를 버릇으로 삼는 일을 10년 만에 다시 맞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퍽 기쁜 일입니다.

제 책의 원고가 너무 길다는 출판사의 요청을 두고 선생님께 의논 드렸던 기억이 나시는지요? 선생님께서는 덜어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 한 마디에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장 분량 줄이기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스스로에게 참 놀랐습니다. 제가 스승님을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음을 진하게 확인하였던 순간이었지요. 믿고 따르는 분을 마음 속에 모신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요. 이제껏 모르고 지낸 순간이 아쉽네요.

지난 일 년을 돌아보니 살갑게 다가서지 못하는 제 성정 때문에 스승님과 더욱 어울려 뛰놀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더욱 많이 남은 앞날을 내다보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쫓아 열심히 살겠습니다.

제게는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마다 참고 견디는 못난 모습이 있더군요. 한 여인을 그리워하면서도 말 한 마디 못한 채 일 년을 지냈고,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표현 한 번 못하고 십 육년을 보내었습니다.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때에도 그냥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곤 했네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말씀 오늘에서야 올려 드립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법을 선생님께 참 많이 배웠기에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제자의 길을 걷겠습니다. 저는 “최악의 제자는 스승을 영원토록 빛나게 만드는 제자다”라는 니체의 말을 강연 때 자주 언급합니다. 이 말의 깊은 뜻을 제가 먼저 스승님 앞에서 실천하여 최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언제나 건강과 행복을 만끽하시는 삶으로 우리들 앞에 서 주세요.

훌륭한 스승, 구본형 선생님께 당신의 빛나는 삶을 감축 드리옵나이다!

2008년 5월 3일
제자 현운 Dream

*

편지를 쓰기 전,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싶어 이발을 하고 왔습니다. 선생님 앞에 예쁘게 차려 입고 싶어서 셔츠와 넥타이를 사러 갔다가 예쁜 넥타이 두 장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샤워를 하고 나서야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단숨에 쓸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십여 분이 걸렸습니다. 그저 내 마음을 쏟아내면 되었으니까요.

어제 선생님 앞에서 이 편지글을 읽어 드렸습니다. 가슴이 찡해졌고, 읽고 난 후 선생님은 나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픈 날이었습니다. 참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IP *.166.8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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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8.05.05 10:40:35 *.160.33.149

희석이가 나보고 더욱 열심히 살라고 똥침을 날리는구나.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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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8.05.05 20:34:29 *.145.231.77
보기 좋은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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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8.05.06 17:15:18 *.166.82.210
사부님이 선방을 날리셨사옵니다. 그 노란 종이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 언어로 제 삶 예견하여 주셨는지요? ^^ 저는 이제 딴 짓도 못하겠더군요. (하하하... 농담이지만 신나네요.)

사부님, 저는 사부님이 읽어주신 그 글을 읽으며 마음이 참 편안했습니다. 읽어주시는 것을 성취해야지, 라는 열망이 솟아오르기보다는 '그냥 살아온대로 살아가면 저런 모습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소명이 달성해야 할 과업이 아니라, 살아가는 존재 방식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지금까지처럼 살고 싶습니다. 아니 참 순수했던 십대처럼 살고 싶습니다. 살다보니 삶이 조금씩 복잡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길지도 않은 삶이었는데, 앞으로 더욱 길어지면 복잡함도 더할 것 같아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용기내어 진짜 나를 찾을 거예요. 나다움이 아닌 것은 하나 둘 버려가며 살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저도 사부님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운 영혼이 되겠지요.

어제 후배들에게 선물하려고 사부님의 책을 3권 샀습니다. 이십 대 초반, 사부님의 책을 만난 청량감을 그들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사부님은 누군가에 빛이 되었고, 그 빛은 계속 손을 거쳐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전하여지고 있는가 봅니다.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았네요... 그래서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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