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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31일 11시 29분 등록
화실의 진도에 따라서 이번에는 풍경화를 그리기로 했다. 파스텔로 인물화 한점, 정물화 한점, 풍경화 한점씩을 그려보고 그 후에는 다양하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것이다.

풍경화라, 풍경화... 많은 화집을 또 뒤적거린다. 눈에 띄는 것과 그리고 싶은 것은 내가 그릴 수 있는 실력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생님께 어떤 것을 그리는 게 좋을까 여쭈어보았더니, 어느 것이 마음에 드냐고 물으신다. 모네의 그림이다. 내 마음에 드는 것들은 대부분이 인상파화가들이 그린 그림이거나 단색이 가득하고 여백이 많은 그림들이다. 그전에 골랐던 그림은 정원에 넝쿨 흰장미가 가득 핀 것을 그린 것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것은 너무 어렵다고 하셨었다. 이번에 고른 그림도 그런가보다.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을 일부 모아둔 화집에 실린 그림들도 어려운 거라고 하셨다. 인상파의 유화 그림을 연필 파스텔로 옮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 그림은 이것들 뿐이다. 나는 모호한 경계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어느 그림은 색이 좋아서, 어느 그림은 강렬한 인상 때문에 어느 그림은 획기적인 기법 때문에, 어떤 것은 화면을 분할하는 선 때문에.... 이렇게 좋은 이유를 다양하게 댈 수 있다. 손으로 여러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낸 것들은 개성이란 것을 갖기 때문에, 한 가지 기준만으로 느낌이 좋다,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림을 선택하기 전에 나는 또 여러 가지로 머리를 굴려본다. 그 생각들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풍경화에 대한 생각들이다. ‘앞뒤가 분명한 깊이가 깊은 풍경화를 한번 그려볼까?’ ‘물은 그리기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물에 뭐가 많이 비친 것을 그려볼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어도 되나?’ 어쩌면 풍경화를 이러이러해야한다는 것이 그리기 전부터 가득한 것 같다. 먼저 느낌에 따른 그림이 있고 나중에 분류가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정립된 것도 아닌 것이 머리 속만을 혼란스럽게 하니 그림은 나중이고 생각이 많은가 보다.



느낌도 좋고 내가 그려볼 만하겠다 싶어 찍은 그림은 모네의 그림이다. 1880년에 그려진 것으로 화집에는 ‘Banks of Seine, Vetheuil’이라고 씌여있다. 7.44cm × 100.5cm의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그림이다. Vetheuil은 지명인 모양이다. '센강의 강둑'이라고 그냥 부른다.

파스텔 연필을 연필이 아닌 파스텔 덩어리처럼 쓰고 싶다. 내 손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종이위에서는 그대로 드러난다. 이제까지 연습했던 그림들에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선들이 가늘게 드러나서 눈에 거슬렸었는데 그 선이란 게 내가 손쓰는 습관에 따라서 나는 것이었다. 오른손으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사선을 긋는 습관이 그대로 종이에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또 가늘게 깍아서 했는지 뭉뚝하게 했는지 모두 드러나 버린다. 왼손으로 그린 그림인지 오른손으로 그린 그림인지가 넓은 면에 선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보면 금방 드러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선은 똑같이 베껴 그릴 수 없다고들 한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느 부분에서 힘이 들어갔는지를 똑같이 흉내낼 수가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필체가 드러나고 남이 한 사인은 구별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림에서도 일부에서 그런게 보이는 듯 하다.

나는 내가 평소에 하는 것보다도 더 매끄럽게 보이길 원한다. 옆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주 촘촘하게 손목을 놀려서 항아리를 매끄럽게 그린 것을 보았다. 유약을 발라서 구운 항아리의 매끄러움과 그 매끈러운 표현에 비치는 광택이 그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옆사람도 파스텔 연필로 그렸는데.... 다른 재료를 쓴 듯한 느낌이 난다. 내가 그린 것과는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다.

그것을 부러워하며 나는 좀좀하게 선을 넣으려고 노력했다. 실제로는 빠른 속도로 하면서도 나는 진득하게 종이에 손을 댈때와 손을 뗄 때의 강도가 거의 비슷해서 조심스럽게 다룬 것처럼... 넓게 펴서 발라둔 것처럼 보이길 바라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모네의 그림은 실제로는 부드럽게 펴바른 그림은 아니다. 언 듯 보기에도 짧은 선들이 많이 들어가서 잎사귀를 나타낸 것처럼 보인다. 물결 또한 그러하다. 매끄러운 물이 아니라, 물 또한 부서지는 느낌이다. 우선은 종이의 색이 보이지 않게 바탕을 메꾸어 둔다. 바탕에서는 부드럽게 그리고 색점으로 느낌을 풍부하게 생각으로 시작한다.

아트 선생님은 인상파 그림을 볼 때는 인상파처럼 보라고 하신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무의 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초록이 아니고 덤블들이 파랑, 남색, 군청들로 앞쪽의 나무와 뒤쪽의 나무들이 색이 다르다고 일러주신다. 공기가 원근을 나타내어서 뒤쪽의 나무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초록이 아니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따라하면서 형태를 따오고, 선을 따오면서 화가가 생각하는 것까지 따와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다. 인상파 그림을 보고 그릴 때는 '인상파 화가처럼'. 화가와 그리는 대상 사이에서 대상이 멀어질수록 화가와 물체 사이에는 더 많은 공기가 있게 되고... 공기의 양만큼이나 색이 변하여 청색을 드러낸다. 내가 앞쪽의 나무 덤블에 몰두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뒤쪽 원경에 있는 나무들과 산을 짚어주시며 원근감이란 것을 말씀하신다.

이번 그림에 욕심을 부리는 것을 다 담을 수 있을까? 교묘한 터치로 왼손인지 오른손으로 그린 것인지 드러내지 말 것, 앞쪽에 나무인지 꽃 무리인지를 표현할 것, 물에 비친 그림자로 물을 표현할 것, 물 위에 부서지는 빛을 표현할 것, 원경의 덤블을 표현하여 원근감을 넣을 것, 하늘의 구름을 부드럽게 표현할 것, 하늘의 구름이 물에 비친 것 표현하고 싶다.



‘그런데 대체 그건 어느 시점부터 넣어야 하는 거야?’
지금 이 위에 자꾸 색을 얹어가면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얹어지면서 섞이기도 해서 원하지 않는 효과가 나오기도 하니까 어느 시점에서 원하는 것을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해본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려보고 싶은 것, 마음에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기에 좀 어려운 것이라 선생님께서는 추천하시지 않는 그림인 것 같다. 수업 진도상 이런 것을 꼭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하면 그것을 진득하게 어떻게 할지 물어보고 다른 사람이 해 놓은 것을 보기도 하겠는데... 이번에는 참고할 그림이 없다. 선생님께 여쭈어 볼 밖에. 여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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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 시점에 바로 정리하지 않고 몇일 지나서 정리하다 보니, 그때의 느낌은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날의 미묘한 감정과, 그릴 때의 생생함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이 없다고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미묘한 뭔가가 있었는 데, 말로 표현하기는 모호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것까지 잊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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