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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30일 23시 06분 등록
인간적인 길 : 새로운 사회 민주주의를 위하여

에디터 / 주세열 옮김



1. 저자에 대하여

저자 서치를 하는 중 눈길을 끄는 표현이 있었다. 그가 ‘21세기 파우스트’로 지칭되는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파우스트는 괴테의 작품 속 인물이다. 그는 파우스트처럼 학문과 예술에 대한 종합적 지식인이라고 꼽힌다.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와 성찰, 취재를 통해 세계와 유럽이 가는 방향이 어디이며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짚는다고 한다.

아탈리는 공학, 토목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지도층 엘리트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국립 파리 행정학교(ENA)를 거쳤다. 그 후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득하고 후학을 양성하다가, 1974년 당시 사회당 당수 프랑수아 미테랑의 정치경제 특별 보좌관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1981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계속 그의 측근으로 자문 역할을 했으며, 1990년 유럽부흥은행(EBRD) 초대 총재로 부임하면서 미테랑 곁을 떠난 후에도 프랑스 중도좌파의 자문역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또 방글라데시 빈곤층을 위한 소액 융자기관인 그라민 은행에서 힌트를 얻어 1998년 '플래닛 파이낸스(PlaNet Finance)'를 설립, 회장직을 맡았기도 하다. 그는 여기에 이런 의미를 부여하였다. "소액대출이 은행 시스템을 지배할 것이다. 이는 관계를 상품화 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론에만 그치지 않는 실천적인 학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아탈리는 ‘미테랑의 휴대용 컴퓨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적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다. 이는 그의 저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문학, 사회과학, 경제학, 미래학 분야에 걸쳐 40여 권의 책을 펴냈다. 그가 펴낸 최초의 미래서라고 할 수 있는 <21세기의 승자>(1995)에서부터 자크 아탈리는 유목민 상품의 급부상과 지식 사회의 도래, 국제 사회의 패권 이동에 관한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후로 그가 펴낸 미래서의 연장선상에 있는 저서로는<21세기 사>, <합리적인 미치광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인간적인 길>등을 들 수 있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는 21세기의 패러다임을 6백만년 유목민(노마드)의 역사에서 찾고자 했으며, <인간적인 길>에서는 인간 중심의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라는 유토피아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최근 자크 아탈리는 자신의 모든 지식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는 <미래의 물결>을 다시 발간했다.

나는 앞서 제레미 리프킨이나 앨빈 토플러, 페이스 팝콘의 책을 접하면서, 이들은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까가 궁금하였다. 최근의 저서 <미래의 물결>에서, 그는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를 비롯한 11개국이 머지않아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면서 한국을 포함시켰다.

“일레븐에 속하는 나라 중에서는 한국이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한국의 1인당 총생산은 지금부터 2025년까지 2배로 증가할 것이다. 한국은 경제, 문화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을 것이며 한국의 기술력과 문화적 역동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한국적 모델은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성공적인 모델로서 점점 더 각광받을 것이며 심지어 일본에서조차도 미국식 모델 대신 한국식 모델을 모방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 특별 기고에서 한국이 이런 지위에 오르기 위해 선행해야 할 과제 역시 밝힌다.

공동체 의식과 집단적 욕망이 한국의 발전을 이룬 가장 큰 원동력이었지만, 사회 불평등으로 인해 이 원동력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예산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엄청난 사교육비와 여성해방 추세, 육아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점
역시 한국이 당면한 과제다. 인구 저하에 따른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크 아탈리는
가족정책, 교육정책, 이민정책을 개혁해야 한다고 한다.



2. 가슴으로 들어오는 구절

25p,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이야말로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과 진보란 것이 무위도식하는 시간의 증가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용감하게 인정해야 한다.

29p, 선거는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기회일 뿐이다. 대통령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뽑히는 거이 아니라, 항상 경쟁 상대가 밀려난 결과를 당선되는 것 뿐이다.

30p,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사회복지에서만 우파보다 좀 더 강한 집착을 보일 뿐 실장은 여타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자유주의적’ 정당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어설픈 좌파’인 것이다.

32p, 하지만 여기서 내 의도는 어설픈 좌파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결산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앞으로 성취해야 할 일에 대한 교훈을 이끌어내는 일이다.

37p,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적소유를 넘어서는 것이 집단 소유가 아니라 무상제공이며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것을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책임과 지식의 공유라는 점, 맹목적 권력인 시장을 넘어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42p,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과 민주주의가 공공업무와 개인의 업무의 관리에 있어 거의 유일하게 허용된 메커니즘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비록 형식적이라 해도 이 양자가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인 개인적 자유의 실현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과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강화하며 이를 통해 양자가 서로 강화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42p, 시장은 민주주의를 탄생시키고 키우는 데 기여한다.

43p, 시장은 지배정당의 눈치를 보지 않는 새로운 경제적 또는 지적 권력의 대두를 촉진한다.

44p, 민주주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계획경제 시스템은 시장 메커니즘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게 된다.

45p, 시장과 민주주의가 결합된 이러한 역동성은 오늘날 사회의 모든 동력을 주도하고 있다. 개인적 견해를 바꿀 수 있는 절대적이고 무제한한 권리를 전제하면서 모든 도덕을 초월하는 개인주의가 팽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역동성 때문이다.

46p, 커뮤니케이션 신기술은 차츰 시장과 민주주의에 대한 견제 세력을 강화해 갈 것이다.

49p, 시장 민주주의는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형식이 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에게 역사란 결국 자유를 가능케 하는 시장과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삶의 양태가 지구상 다섯 대륙에서 점진적이며 동시다발적으로, 혼란스럽기는 하나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보편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이외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51p, 변덕의 지배와 새로운 것의 횡포가 개개인의 삶과 공동체 생활의 모든 차원에 침투하고 있다. 그 속에서 저마다 불성실과 방종과 기만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도록 부추켜진다. 이로써 황폐한 결과가 초래되고 있으니, 곧 ‘자유가 충실성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54p, 시장과 민주주의의 불균형. 그것은 두 메커니즘 간 차이의 근거 자체에 기인한다. 민주주의의 범위와 운용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복잡한 집단적 결정과 행동이 필요한 반면,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은 개인이 선택한 리듬에 따랄 별 어려움 없이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정보 제공이나 여가 생활, 안전을 위한 감시나 더욱 다양해진 유형의 생산 등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의 탈 중앙 집중화를 실현함으로써, 기술향상은 대중의 이익을 회상하고 민영 서비스 영역과 그에 대한 욕구를 강화한다.

57p, 민주주의에 대한 시장의 승리로 인해 국가는 시장이 조장하는 소득과 자산의 불공평한 분배구조를 바로잡을 수단을 박탈당하고 있다.

58p, 교육이나 지식 획득과 관련한 이러한 불공평성은 소수 집단의 빈곤 문제를 악화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거마저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시장이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지역에서 경제성장을 촉발하고 있다. 그것은 생활수준의 차이가 커지는 것과 세계의 중심지가 옮겨가는 것으로 표출된다.

65p, 상품화는 인간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있어, 세계는 서로 적대적인 무리들이 휩쓸고 다니는 장터로 변해갈 것이다. 나는 이것을 ‘시장 사회’라고 부른다.

67p, 시장사회는 자신이 조금도 흔들림 없이 존속하기 위해 외형적 민주주의조차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시장사회는 조금씩 새로운 전체주의 형태로 흘러갈 게 틀림없는데,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감시당하고 제제 받을 것이며 자유의 형태조차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70p, 모든 형태의 인간관계가 조금씩 상품화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장사회’는 상업적 목적으로 모든 것이 거래 가능한 ‘상품사회’로 이전해 간다. 확대된 시장에서 최고의 정부는 부재하는 정부이다.

72p, 장기적 차원의 도덕성을 자유의 변덕과 대립시키면서 매우 복고적인 권력의 회복을 주장한다. 나는 이를 ‘도덕적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여러 형태의 도덕적 전체주의가 나서서 고용불안 및 생계취약 문제에 대해 자기류의 해답을 제공하려 들 것이다.

76p, 미국, 유럽 양쪽 모두 자신들이 지금까지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더불어 약탈을 범해 온 지구라는 행성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입장임을 잊고 있다.

93p,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나라는 내부적으로 위축되게 마련이다.

95p, 프랑스는 지금 네 가지 운명 사이에서 선택에 주저하고 있다. 세계와 직면하기를 피하다가 스스로 위축되는 것, 세계화 흐름에 적극 참여하여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생계취약 문제의 확대를 받아들이면서 경쟁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 시장사외가 내포한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부를 좀 더 잘 분배하는 것,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시장이 지닌 최선의 측면을 민주주의가 가장 강력히 제공할 수 있는 것과 결합시키는 것.

100p, 사회민주주의 정당 중 일부는 여전히 사회주의의 교조를 읊어대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특정한 지역이나 국가 차원에서 시장경제의 경영자가 되었다.

108p, 이들의 정책 프로그램은 국가수입 중 공공지출의 몫을 줄이는 데 우선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120p, 프랑스 좌파. 심도 있는 협상에 의해 필요한 개혁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나라를 하릴없는 기대에 묶어 둔 채, ‘동결된’ 공공역역에서의 모든 변화를 ‘이것도 저것도 모두 거부하는’ 잘못된 자세로 가로막음으로써 소심한 국가 관리체제를 유지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125p, 오늘날 좌파 지도자 대부분은 상상력이 배제된 현실주의와 무책임한 유토피아 사이에 묶여 있을 뿐이다.

136p, 시간이 가장 귀중한 재화인 까닭은 인간이 생산, 공급, 교환, 판매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137p, 정치의 주된 사명은 ‘양질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는 곧 주도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그리고 젊게 사는 것이고, 다가올 세대도 그들의 시대에 양질의 시간을 보내고, 창조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매분을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137p, 노동의 질을 바꾸며 질적 조건을 발전시키고, 책임을 확장하며 노동 외 시간의 질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145p, 유토피아란 저마다 ‘양질의 시간’, 진정으로 ‘충만한 시간’, ‘주도적으로 성취해 가는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곳에 있다. 나는 이를 ‘인간적인 길’이라고 부른다.

146p, 시장의 저쪽에는 생산재화의 집단소유가 아니라 ‘무상제공’이 있다. 민주주의의 저쪽에는 전체에 대한 소수 혹은 소수에 대한 전체의 독재가 아니라 ‘책임성’에 있다. 쇼의 저쪽에는 선전이 아니라 ‘지식’이 있다.

146p, 무상제공에 관하여. 사물과 서비스가 시장을 벗어나 돈과의 교환이 중단되어야 한다. 노동이 매매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행해질 필요가 있다.

147p, 지식에 관하여. 각 사람이 ‘자기 통찰’의 수단, 곧 학습과 호기심,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 등을 위한 수단을 가져야 한다.

148p, 이러한 사회에서는 저마다 ‘주도적으로 성취해 가는 삶을 살아가므로’ 양질의 시간, 지식, 건강 등에 대해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릴 여지를 갖게 되고, 또 자신에게 적합한 송공 모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150p, 인간적인 길은 노력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 지식과 책임과 무상제공은 저절로 실현되지 않는다.

153p, 인간적인 길로 가기 위한 전략은 시장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며 그 뒤에 이 둘을 동시에 넘어서는 것이다.

155p, 자유 속에서 인간적일 길로 나아가게 하고, ‘양질의 시간’을 지향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새롭게 나아가게 하고, 이것이 의미를 창조하며 시장사회에서 해방되게 해주는 그런 시간, 나는 이것을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라고 명명할 것이다.

155p, 새로운 사회민주주의가 시장 사회민주주의와 구별되는 점은 시장 상품과 공공서비스에의 평등한 접근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벗어난 영역을 확대하고 인간의 책임성을 강화하며 시간 사용에 있어서 상업적인 것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도록 돕는다는 데에 있다.

161p, 핵심 재화는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양질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 누구나 필요로 하는 재화 전체이다.......최소한 하나의 네트워크에 소속되는 것이 핵심 재화 중 하나인데, 이는 고립되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따라서 돕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활동을 하던 하지 않던 뭔가에 유용해질 수단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163p, 노동, 소비, 오락, 직업교육 같은 행위들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소속된 공동체의 상황을 개선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이라 부를 수 있다.

166p, 소비 행위든 노동이든 가릴 것 없이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용하기만 하다면 보수 지급이 가능하다. 활동 하나하나에 대한 보수액은 민간영역인 경우 시장 논리에 따라, 민간영역이 아닐 경우 민주주의 방식에 따라 정하면 된다.

167p, 가족, 친구, 국가 모든 형태의 네트워크에 대한 소속은 ‘인간관계성 자산’이다.

167p, 가난함이란 지금까지 ‘갖지’ 못한 것이었으나, 가까운 장래에는 ‘소속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미래에는 첫째가는 자산이 네트워크에 소속이 될 것이다. 이것은 ‘주도적으로 성취해 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선적 조건이 될 것이다.

168p, 어떤 공동체 내부에서의 인간관계성 환경의 핵심적 구성요소 중 하나는 ‘공정성’, 곧 수입, 권력, 자산 등의 서열의 정당성에 관한 정서이다. 공정성에 대한 정서는 빈곤의 과잉과 재산의 분산해 부의 과잉에 덜 의존한다.

170p, ‘인간관계성 기업’은 상품성을 갖고 있거나 그렇지 않은 인간 관계성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인간관계성 시장’은 도움을 줄 기회를 찾는 사람과 도움을 찾는 사람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실재의 혹은 가상적 장소이다.

221p,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유토피아에 진입하기 위한 선사단계,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서 있다. 순간의 폭력과 일상의 조촐함과 이상의 과잉 속에서 이제 우리에게는 이 길에서 앞으로 나갈 일만 남았다.



3. 내가 저자라면

인간적인 길과 사회민주주의

나는 정치라고 하면 이데올로기, 사상, 정당, 정책, 정치가, 전쟁 등의 단어가 먼저 떠올랐으며, 이들과 관련된 이론이나 사건들이 머리를 뒤범벅였었다. 시간이 재화임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것이 정치와 연결되고,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다? 궁금했다.

자크 아탈리는 시간이라는 재화는 인간이 생산, 공급, 교환, 판매할 수 없으므로 중요하다 했다. ‘양질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주된 사명이라 했다. 양질의 시간은 스트레스 받으며 찢기는 시간이 아닌 주도적으로 성취해가는 시간, 이것으로 충만한 시간이다. 양질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주도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그리고 젊게 사는 것이고, 다가올 세대도 그들의 시대에 양질의 시간을 보내고, 창조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매분을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유토피아란 양질의 시간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며, 저자는 이것을 ‘인간적인 길’이라 한다.

인간적인 길로 가기 위한 전략은 시장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며, 저자는 이를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라고 명명한다.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이것이 시장 민주주의와 다른 특징은 시장 상품과 공공서비스에의 평등한 접근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벗어난 영역을 확대하고 인간의 책임성을 강화하며 시간 사용에 있어서 상업적인 것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도록 돕는다는 데에 있다고 한다.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와 경쟁으로 작용하는 시장사회와 상품사회를 초월한다. 자크 아탈리는 이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을 ‘관계’, ‘네트워크’, ‘인간관계성 자산(네트워크에 대한 소속)’,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 ‘핵심재화’, ‘인간관계성 경제’를 들며 차가운 시장세계의 논리를 넘어선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말 그대로 ‘인간적인 길’이다.

유토피아적 요소가 다분한 느낌이었다. 생소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어떻게’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자연히 그 실천 방안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개혁 과제 - 국가라는 공동체

나는 미래로 가는 과정의 중요한 키워드로 ‘해체’를 꼽았었다. 기존의 조직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어떤 양상으로든 해체될 것이며, 다시 모이기를 할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에도 기술의 발달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거리감이 상당히 줄었다. 국민들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에 무관심해지며 국가에 대한 기대나 희망을 접어간다.

현재의 국가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다시 서는 과정이 일어난다면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국가라는 공동체는 사람이 접하는 공동체로서는 크기가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또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이다. 나는 해체라는 물결이 훑고 간 후 국가라는 공동체가 미래에 어떻게 정의되고 어떤 역할을 할지가 계속 의문이었다.

자크 아탈리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개혁 과제로 열 가지를 제시한다. 물론 국가의 과제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다시 적어본다. 아홉 번째는 유럽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라 넣지 않았다. 좀 길다.

첫째, 국가 공동체에 대해 제고한다.

언어의 보존. 공유하는 언어 없이는 국가도 있을 수 없다.
안전대책의 조직화.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질서와 안녕을 확보해야 유지된다.
다양한 사회공동체는 인정하되 배타적 집단주의는 거부한다.
공정한 사회 환경을 만든다. 물질적 자산과 인간관계성 자산을 늘리는 데 목표를 둔다.
긴밀히 연결된 전 국민적 네트워크를 조직한다. 영토에 한정되어 있지 않는다.
에너지 의존도를 줄인다.

둘째, 시장의 효율성을 강화한다.

고임금 고용을 유도한다.
영리성 혹은 인관관계성 개인 기업을 어렵지 않게 창립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다.
노동에 의해 취득된 재산에 대해서는 세무나 사회복지 차원에서 혜택을 입을 수 있게 한다.

셋째, 노동을 재구성한다.

소외되고 스트레스를 주는 노동과 출퇴근 시간의 양을 줄여준다.
창조적이고 각자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노동의 가치를 높이며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는 새로운 형식의 노동양식을 중시한다.
기업 운영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조합과 소비자, 지역 주민을 참여시킴으로써 기업의 다양한 주체에게 책임을 지도록 한다.
책임 있는 기업윤리를 북돋움으로써 권리, 도덕, 안전, 환경보전에 관한 갖가지 요구를 기업이 더 존중하도록 만들 것이다.
인간관계성 기업의 창설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교육이나 사고 예방과 관련된 서비스에 재정 혜택을 주고 ‘무상 제공’을 목표로 하여 비영리 인간관계성 기업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인간관계성 시장의 조직을 잘 정비함으로써 유용한 일에 도움이 될 기회를 찾는 사람과 도움을 원하는 사람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개개인의 사회자본의 질을 향상시킨다.

어린이에게 속한 권리. 애정과 관용으로 보살핌을 받으면서 아무런 책임도 맡지 않는 시기를 보낼 권리가 있다.
가족에 대한 권리. 자녀의 행복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도록 어른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게도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할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지식에 대한 권리. 누구나 인간관계성 자산에 대한 권리, ‘양질의 시간’을 누리며, ‘주도적으로 성취해 가는 삶’을 살아갈 수단을 확보해 줄 지식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보건의료에 관한 권리. 인간관계성 환경의 정착을 전제로 한다.
은퇴에 대한 권리.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이나 속박된 시간의 기간을 지나서도 적절한 수입을 확보할 권리가 있다.

다섯째, 사회유용성소득의 도입을 통해 고용불안 및 생계취약으로부터 보호한다.

소득과 노동을 구분해 실업을 해소해야 한다. 각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소득 획득 자격을 갖추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네트워크에 대한 소속의 권리를 제공한다.
고용불안 및 생계취약으로부터 보호하는 메커니즘을 두는 것이 나약함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

여섯째, 무상제공을 확대한다.

공공서비스의 혜택을 받는 대가로 돈 대신 노동을 제공케 하는 물물교환 방식을 거부해야 한다.
사법정의, 치안, 국방, 교육 보건의료 등의 주요 공공서비스의 무상제공을 고수한다.
일부계층에게 식료품, 주택, 보건의료, 교통, 교육 등의 핵심재화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일정한 재정적 지원을 갖추어 무료 혹 자원봉사 활동을 지원한다.
어떤 명분으로도 상품화될 수 없는 리스트를 작성하여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선언한다.

일곱째, 국가의 역할을 재고한다.

‘공공지출’을 통해 공공서비스에 대한 재정조달을 해야 한다.
공공서비스의 경영관리를 ‘독립적 대행기구’에 양도하며, 정부는 이들을 감시한다.

여덟째,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책임성의 차원으로 옮겨간다.

노동조합, 시민단체, 정당에 대한 가입을 고무할 필요가 있다.
각종 지역기관은 그들의 책무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부문별로 통합한다.
시민에게 발의권을 부여함으로써 직접 책임을 행사하도록 여건을 조성한다.

열째, 세계정부의 탄생에 힘을 모은다.

하나의 세계정부 ‘세계정부위원회’는 세계적 차원의 쟁점이 제기된 한정된 영역에서 인류 전체의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그 결정을 모두가 존중하도록 만들 수단을 가진다. 새로운 범국가적 사법기구가 생기고, 국제중앙은행이 나타난다. 세금 거두는 역할을 할 행정집행부를 갖춘다.


정치학 수업 듣는 느낌이었다. 정책론 논문 보는 줄 알았다. 나는 좌파, 우파, 민주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등의 개념을 다시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책 양은 많지 않지만 내용은 넓고 심오했다. 실천적 방안을 다룬 개혁 과제 열 가지 부분에서도, 고개는 끄덕였지만 와 닿는 느낌은 아니었다. 관념적 사고에 약한 내 탓도 있으리라만, 이 책에 깊이 빠져들기에는 지금의 내 지식과 사고가 얕은 듯하다. 언제고 천천히 다시 음미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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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01 04:14:41 *.115.162.12
사실 현상의 샐활에서 자크 아탈리를 논하고 그의 책을 북 리뷰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경제학을 전공하고 교수님으로부터 강의를 들어도 어려운 일인데 현재의 연구원들을 아무런 강좌도,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써가니 무척이나 대견스럽다.

민선이의 글을 읽으면서 그대가 가진 고집스런 성품이 보인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그대를 기다린다. 이런 씩으로 천천히 변화해 보아라. 자신도 모르게 많은 지식이 축적하고 쉽게 석학의 깊은 이념이 눈에 들어 오는 시절이 온다.

"離 利貞 亨 畜牝牛 吉"
< 그대의 제일 어려운 점은 시간을 역행 했기 때문이다. 순한 소를 닮아 그뜻을 기르는 것 같이 하면 길하다.>

* 방황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남을 축하한다. 잘읽고 음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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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7.05.01 21:47:18 *.254.66.72
호정님, 많이 어려우셨죠? 저 또한 예전에 학교에서 전공으로 '생물학'을 하다보니 이런 쪽엔 완전히 문외한입니다. 더군다나 전공외에도 정치,경제,경영, 인문, 사상, 철학, 세무, 회계 다 쳐다보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사 들어와 고생 무지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쪽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습니다. ^^

하지만 글을 쓰시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강점은 강점대로 심화하여 키워나가고 단점은 강점으로 바꿀 필요는 없으나 어느 정도의 보완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월 한달 많이 힘드셨죠? 이제 장미의 계절 5월입니다. 그리고 아카시아향 가득할 5월이기도 합니다. 요즘 일교차가 너무 심하네요. 저도 콧물 조금씩 훌쩍이고 있는데, 감기 항상 조심하시고 건강하게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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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7.05.02 09:22:11 *.57.36.34
호정님 어려운 책을 잘도 소화하셨네요

모든 책이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에 대한 내용이
전부예요. 자크 아탈리도 찌든삶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삶을 살자고 외친듯합니다.

물론 이해하기 힘든 용어의 나열이 우리를 거슬리게 하지만
심오한 이론이란 것이 모두 인간이 만들었기에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들도 알 수 있을 거예요
5월의 봄기운에 흠뻑젖어 역사속으로 들어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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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02 09:57:06 *.180.46.120
여기 [인간적인 길]에서도 자크 아탈리는 '양질의 시간' 혹은 '선한시간' '좋은시간'이라고 불리는 시간이란 재화를 얘기했네요. 민선씨의 리뷰를 읽다가 자크 아탈리는 왜 자꾸 민주주의와 시장을 얘기하면서 그것으로 이야기를 귀결하려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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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02 23:02:03 *.142.243.73
초아선생님/
네, 저도 시간을 거스르는 것 같습니다. 진작 할 것을 지금 하면서 고민하고 충격먹고...
그나저나 저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내딛는 게 어울리나요.
그런 말을 몇 번 들었더니 그런게 나인가 싶기도 하고.

양재우님/ 도명수선배님.
감사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느끼는 게 있고 배우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이제는 눈을 과거로 돌려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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