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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3일 05시 01분 등록
미래에 대한 짧은 여행

#1. 프롤로그

‘미래의 물결’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전철 안이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꿰뚫는 지성과 인류에 대한 따듯한 애정으로 써 내려갔을 그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미래에 대한 큰 그림들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새롭고 멋진 나날들에 미리 접속한 듯한 착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짝, 닦아냈다.


#2. 저자에 대하여



자크 아탈리 (Jaques Attali)는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수재'로 불리는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다. 그는 프랑스 최고 정책의 입안과 결정에 깊숙이 관여한 고위 경제 관료였으며, 동시에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 겸 유명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아탈리는 열네살 무렵,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와 파리 공과 대학(Polytechnique)에서 공학을, 에콜 드 민에서 토목 공학, 파리 고등 정치학교(Science Po)에서 정치 경제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최고 지도자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ENA)를 거쳐 1972년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까지 에콜 폴리테크닉과 파리 9대학, 소르본 대학 등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1974년에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 고문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했다. 1981년 사회당 정부의 집권 이후 1991년까지 미테랑 전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을 거쳐,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을 설립하여 초대 총재직을 역임했다.

1994년부터 컨설팅 및 투자 회사인 '아탈리 & 아소시에'(A&A, Attali & Associes)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또 1998년부터 현재까지 인터넷을 통해 소액대출 전문가를 양성하고, 소상공인들의 자립을 돕는 비영리기관 플래닛 파이낸스(PlaNet Finance)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약력만 잠시 살펴봐도 그의 광범위한 활동 범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의 지성에서 활동하는 지식인까지 그를 수식하는 명칭 또한 헤아릴 수 없다. 그의 완전한 모습은 알 수 없겠지만, 나름대로 몇 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그의 일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려 한다.

1) 유럽 최고의 석학

1980년대의 프랑스인들 사이에는 시험 성적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단연 자크 아탈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농담이 회자되기도 했다고 한다. 바로 한 군데만 합격해도 수재 소리를 듣는다는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인 ‘대학 위의 대학’, 그랑제콜을 네 군데나 거쳤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지성 쟈크 아탈리는 유럽최고의 석학으로 꼽힌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연구, 저술 활동, 폭넓은 지식과 혜안으로 미래를 짚어내는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왔다. 전 방위적인 지적 데이터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회의 변화를 예리하게 전망하는 자크 아탈리의 이름에는 항상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데, 이런 그를 앨빈 토플러는 “자크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40여 권의 저서를 냈고,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전 세계적으로 600만 부 상이 팔렸다고 한다. 국내에는 21세기 사전, 인간적인 길, 합리적인 미치광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마르크스 전기, 미테랑 평전 그리고 최근작인 미래의 물결 등이 변역, 소개되었다.

이외의 주요 저서로는 소리: 음악의 정치경제학 Bruits, conomie politique de la musique (1977), 지혜에 이르는 길 - 미로 Chemins de sagesse-Trait du labyrinthe (1996), 영생 La Vie ternelle(1989), 카니발의 질서-의학의 정치경제학 La Nouvelle conomie fran aise (1978) 등이다. ‘미로’와 같은 인문서적에서 ‘영생’과 같은 소설까지 걸쳐 있는 그의 저작들은 가히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말할 수 있다.

2) 낭만적 사회주의자

그를 수식하는 또 하나의 수식어 중의 하나가 낭만적 사회주의자이다. 이런 면모는 그의 저작 활동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마르크스 전기’나 ‘인간적인 길’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르크스 전기’에서 그는 말한다. 미래의 세대들이야말로 카를 마르크스를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런던의 빈궁 속에서 죽은 자식들을 놓고 슬퍼하면서 최선의 인류를 꿈꾸었던 그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특히 ‘인간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적인 길’에서 그는 좌파나 우파가 아닌, 새로운 사회 민주주의를 말한다. 그는 책에서‘오늘날,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유토피아에 진입하기 위한 선사(先史) 단계,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길로 접어들기 위한 길목에 서있다’고 선언한다.

그에게 인간적인 길이란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사회로 가는 길’이다. 그의 정치적 목적은 이처럼 시간의 새로운 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꿈꾼다. 사물과 서비스가 시장을 벗어남으로써 돈과의 교환이 중단되는 무상 제공의 사회를,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도 부와 즐거움을 동시에 창조할 수 있는 현실 속의 유토피아를 상상한다.

3) 활동하는 지성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단지 다음과 같은 것들뿐이다. 정의 구현을 위해 과학과 기술을 사용하는 것, 전세계적으로 빈곤을 퇴치하고 수직적 인간관계를 청산하며 민주주의를 제고하기 위해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잠재력을 활용하는 것, 다양성을 북돋워 주고 부를 함께 나누는 것, 보건과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고 군비를 삭감하는 것, 삼림을 재조성하고 청정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 모든 종류의 퓨전을 장려하고 사고 폭을 넓히는 법을 배우는 것,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고 더 나아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 ─ 요컨대 우리 전 세대에서 해주었더라면 참 좋았을 것들이다.” - 21세기 사전 中

그는 이러한 그의 정치적 신념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한다. 이론이나,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이끌어 나가고자 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나타난다.

1974년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 고문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했다. 1981년 사회당 정부의 집권 이후 미테랑 전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을 역임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 총재직을 역임하고, 현재는 컨설팅 회사인 '아탈리 & 아소시에'(Attali & Associes, www.aeta.net) 대표 겸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은행으로 창설된 플래닛 뱅크(www.planetfinance. org) 총재로 활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등에 투자하는 투자 회사, THC(the hyper company)를 운영하고 있다. .

이 밖에도 기아 구제기구 창립, 유럽신기술 개발프로그램 EUREKA 창설, 방글라데시 구호기구 설립, 유럽고등교육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4) 선지(先知/宣旨) 하는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인문학, 경제학, 정치학, 문학, 철학, 공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과 깊고 방대한 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해 왔다. 정보 기술력이 선도할 미래 사회 신인류의 패러다임을 상징하는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e)’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장본인이며, 국제 사회를 전망하는 담론들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이전부터 세계의 지정학적 중심이 태평양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외에도 기상 이변, 금융 거품 현상, 공산주의의 약화, 테러리즘의 위협, 노마디즘의 부상, 휴대폰과 인터넷을 비롯한 유목민적 상품의 만능 시대를 예견하고, 가상 현실, 네트워크, 여러 요소들을 끼워 맞추는 레고 문명(civil lego)이 21세기의 키워드가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는 ‘21세기 사전’의 서문에서 미래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래학에 대해 이와 같은 반박이 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예측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선 어느 때보다도 예측이 필요한 시대다. 자동차가 속력을 낼 때 전조등은 더 멀리 비춰야 하는 법이고, 세상은 확실히 점점 더 빨리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이 필요한 마지막 이유는 스스로 착오를 깨달음으로써 미래의 예측이 더욱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21세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이러할 것이다. 휘황찬란한 무도회장에는 진수성찬의 뷔페 음식이 마련되어 있고, 초대객들은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우아하게 춤을 춘다. 그런데 그들 중 몇 명만이 무도회장이 조만간 폭발할 것이라든가 아니면 아주 격렬한 싸움이 벌어질 것임을 알아차린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도회장을 황급히 빠져 나간다면 파티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고, 남아 있는다면 사고의 피해자가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상구 근처에서 춤을 춘다. 약간이라도 심상치 않은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몸을 피하기 위해 비상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런 것이다. 세상에 비상출구란 없다. 지옥으로 연결되는 출구 외에는…….’

그리고 주장한다. ‘우리는 명백한 것을 거부해야 하고 불가피한 것에 저항해야 한다’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지만 영원한 것에 대한 가능성은 늘 열려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인도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물꼬 트기’와 같은 것이다. 그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위험들과 가능성들을 미리 짚어내고, 최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금씩 방향을 틀게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곳으로 향할 수 있도록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준다.

‘미래의 물결’은 바로 이러한 그의 생각과 통찰이 하나로 집약된 일종의 최종 정리본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자크 아탈리의 ‘미래에 대한 짧은 이야기 (Une eve histoire de l'avenir)’ 속으로 들어가보자.


#3.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들

서문 _ 예측 가능한 미래의 역사

(6)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가 어디에서 오며 미래를 맞이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역사는 예측 가능하며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8) 필연적으로 이 세가지 미래의 흐름은 서로 얽힐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금도 이 세 물결은 서로 엮여있다. 하지만 나는 2060년경 인류의 우월한 조직 양식이자 역사의 궁극적 원동력인 하이퍼 민주주의가 결국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자유가 승리하리라는 뜻이다.

(11) 미래에 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에 이미 진행 중인 경향들을 극단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13) 인간의 역사는 권리를 지닌 개인, 즉 자신의 운명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도 자신과 똑 같은 만큼의 자유가 주어져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구속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개인의 출현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13-14) 기존의 권력자들보다 훨씬 거대하며 기동성 있는 또 하나의 지도자 계급인 상인들이 부를 분배하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을 고안해냈다. 바로 ‘시장’과 ‘민주주의’의 탄생이다. … 오늘날에 이르러서 이 두가지 방식의 영향력은 범세계적으로 퍼져 있으며, 미래 세계의 현실을 좌지우지할 것도 바로 이 시장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20) 한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미래에 관한 모든 예언이란 것이 무엇보다도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듯이 이 책 또한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긴 이야기

(26) 과거를 관통하며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며, 과거는 역사의 구조로 작용함으로써 다가올 몇 십 년 후가 어떤 식으로 조직될지 예측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의 무리는 언제나 부富와 언어, 영토, 철학, 우두머리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이때 세 가지 권력이 항상 공존했다. 기도 시간을 정하고 농사의 리듬을 결정하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관장하는 종교 권력, 사냥과 방어, 정복을 결정하는 군사 권력, 그리고 생산과 자금을 관장하며 노동의 결과를 상업화시키는 상업 권력이 바로 그것이다.

(27)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치체계의 연속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종교가 실질적인 권위를 갖는 제례적 체계, 군대가 최우선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제국적 체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집단이 권력을 행사하는 상업적 체제, 이렇게 세가지다. 첫 번째 체제는 신학적 이상을 추구하며, 두 번째 체제는 영토의 확장, 세 번째는 개인주의의 확산을 으뜸가는 이상으로 추구한다.

(30) 습득한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은 진보의 필요조건이다.

(34) 이들은 2백만 년 동안 배우고 익힌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 왔다. 미래의 우리 모습도 그렇게 만들어질 것이다.

(35) 성스러움은 금기를 정당화시킨다.

(37) 언어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시장은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39) 유목민과 정착민의 대결을 통해 인류는 힘과 자유를 얻는다.

(41) 제국이란 스스로를 방어하고 남을 공격할 만큼의 잉여생산이 있고 이를 통제할 수 있을 때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전략적인 통로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잉여분을 축적하지 못했을 때 막을 내린다.

자본주의의 짧은 역사

(46) 미래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경이로움을 선사할지 이해하고 싶다면, 그에 앞서서 과거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경이로움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능한 것과 변화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들을 집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를 안다는 것은 역사가 지닌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확실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48) 이 세 부족(그리스인, 페니키아인, 히브리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 역사상 최초로 이들은 지상에서의 인간 미래가 과거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아니 나아져야만 한다고 믿었다.

(52) 아시아에서는 인간을 욕망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하는 반면, 서구는 인간에게 자신이 가진 욕망을 자유롭게 실현하라고 부추긴다. 한쪽은 세계를 일종의 환상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세계만이 유일한 행동의 장이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한쪽은 영혼의 윤회를 말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영혼의 구원을 이야기한다.

(54) 1. 초강대 세력이 경쟁자의 공격을 받으면 제삼자가 어부지리를 얻는다. 2. 승자는 일반적으로 패자의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3.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은 계속 서쪽으로 이동한다. 비록 부의 대부분이 동쪽에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57) 종교적 교리가 제아무리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개인적인 자유를 향한 발걸음을 늦추지는 못한다.

(69-70) 제국적 체제에서 상업적 체제로의 전환은 노마디즘으로의 회귀를 낳았다. 농부가 다시 유목민으로 바뀐 것이다. … 노마디즘은 인류 문화의 초석으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다시금 그 존재를 드러냈으며, 후에 알게 되겠지만, 우리의 미래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75) 다른 모든 ‘거점’ 역시 베네치아처럼 자신의 결점을 뛰어넘음으로써 정상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83) 타지의 엘리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조건이다.

(84)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금융과 보험은 상업적 실세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86) 권력의 중앙집권을 용이하게 하리라고 믿는 새로운 통신기술이 실상은 그와 반대로 기존 권력을 분산시키는 막강한 적이다.

(93) 이렇듯 세상이 바뀌는 방식은 언제나 같다. 상업적 공간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그에 따라 산업화의 장도 넓어지고, 이렇게 되면 금융과 기술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학에 따라 새로운 부류의 창조적 계급, 즉 자유로우면서도 통제적인 집단이 광대한 농지와 해양 산업지대를 배경을 삼고 있는 현대적인 항구 도시에서 해군력과 상선들을 지휘해서 권력을 잡게 된다.

(99) 그 어떤 제국도, 겉보기와는 달리,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105) 1. 부족함은 새로운 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희귀함은 야심 많은 자들에게는 오히려 축복이다. 2. 누가 신기술을 발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문화적,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110) 권위적인 국가는 시장을 만들고 시장은 민주주의를 만든다.

(112) 앞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지배력 있는 금융가의 파산은 ‘거점’의 몰락을 기정사실화한다.

(121) 하나의 혁신적인 생각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그 생각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해도, 최소한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126) 첨단 기술의 발전과 성생활의 개방은 상업적 체제 내부에서 작용하는 역학 관계를 구조화한다.

(137) 이제까지 이룩한 수많은 발명은 다른 연구를 위해 공공 기금으로 지원 받은 학자들이 부수적으로 얻어낸 결과물이다.

(152) 사실 미래는 아마도 과거와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다만 과거보다 좀 더 낫거나 좀 더 못하거나 할 것이다. … 앞선 시대의 이야기, 즉 역사는 이러한 미래의 윤곽을 잡아 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미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소를 드러내 보여 줌으로써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미국이라는 제국의 종말

(158) 민주주의와 시장이 출현한 이래로 모든 진화는 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요컨대 세기가 거듭할수록 정치적 자유가 일반화되며, 욕망이 상업화한다는 사실이다.

(179) 두 가지 종류의 산업이 상품화된 시간을 지배적으로 경영하게 될 것이다. 바로 보험산업과 오락산업이다. … 보험이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하여 자기를 보호해주는 수단인 것이다. … 현재와 거리를 둠으로써 현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질 것이다. …모든 기업, 모든 국가들은 앞으로 보호와 오락이라는 두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재편성될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고 세계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발생하는 긴장감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206) 두가지 기술의 진보가 상업적 체제의 아홉번째 형태를 지금까지 유지시켜 왔다. 한가지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해서 정보 축적 능력을 꾸준히 함양시켰으며, 또 다른 한 가지는 배터리 용량을 키움으로써 에너지를 증가시켰다.

(210) 우리는 시간이야말로 진정으로 유일한 희귀재임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도 시간을 생산할 수 없으며, 아무도 자기가 가진 시간을 팔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시간을 축적할 수 없다.

(211) 이렇게 되면 상업적 체제의 출범 이후 인간들이 추구해 온 궁극적인 목표인 자유가 어쩌면 숙명적으로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인간이 만들어내 변덕의 허구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다.

미래의 첫 번째 물결: 하이퍼 제국

(242) 개인과 집단이 정체성이나, 인생관, 국가주권, 지식, 권력, 문화, 지정학 등과 맺고 있던 관계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앞으로 다가올 반세기 동안 우리가 당면하게 될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될 것이다.

(246)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제 죄책감은 덜 느끼는 반면, 훨씬 더 관용을 베풀게 된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망각은 후회를 동반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모든 것이 투명하기 때문에 후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249) 각 개인은 자기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의 간수가 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개인의 자유는 절정에 도달한다. 적어도 그렇다고 상상할 수 있다.

(256) 여기에 바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하이퍼 제국의 도래와 더불어 우리는, 과거 상업적 체제가 태동할 무렵처럼, 도시국가로의 회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259) 인간은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허전함과 고독감을 메우기 위해 점점 소비를 늘리고, 점점 더 스스로를 감시하며, 점점 더 오락을 추구할 것이다. 자가 감시기에 의해 끊임없이 확대되는, 이니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이는 개인의 자유는 각 개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공간, 개인적이건 직업적이건 구별없이 오직 그 공간 안에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고 느끼게끔 만들며, 각 개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유일한 규범으로 삼게 된다.

(261) 이렇게 되면 세계는 그저 나란히 줄지어 선 고독으로 가득 찬 곳이 되며, 사랑이란 그저 나란히 줄지어 선 수음手淫과 동의어가 되어 버릴 것이다.

(262) 우선 개인들이 임시로 모인 형태의 기업을 살펴보자. 이들은 흡사 연극 공연을 위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듯이, 정해진 하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능력과 자본을 모으게 될 것이며, 벌써 그런 식으로 운영되는 기업도 없지 않다. … 이 ‘극단’ (기업)은 ‘무대’ (기업의 상품이 팔리는 시장)에서 ‘공연’ (판매행위)을 벌이는데, 이 공연은 ‘관람객’ (소비자)이 있는 한 계속된다.

(263) ‘부족’들이 지속적으로 모인 형태의 기업은 첫 번째 부류의 기업보다 훨씬 드물 것이고, 서커스나 영화 스튜디오를 모델로 조직될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이름, 하나의 역사, 하나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져 나가는 형태가 될 것이다.

(270)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발명하려는 이들의 욕구는 노동과 소비, 창조, 거리 두기 사이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경계란 이들의 필요에 의해 사라져버릴 것이다.

(274) 이들에게는 보험에 들고 오락을 즐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보험에 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들을 사로잡는 강박관념이다. 또 ‘오락을 즐겨야 한다’, 이것은 강박관념을 잊기 위한 방편이다.

(278) 하위 유목민들이야말로 유토피아를 파는 상인들의 주요 타깃이다. 만일 하이퍼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를 일으키는 주역인 동시에 첫번째 희생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하이퍼 민주주의를 성사시켜야만 하는 이유인 동시에 이를 쟁취하는 승리자이기도 하다.

(285) 하이퍼 제국의 하이퍼 주민은 지구가 인류의 감옥인 동시에 오아시스라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방법, 즉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러한 시도는 시작되었다. 자기 자신의 성 정체성과 끝없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그는 자기 내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기 위하여 자신을 마치 물건처럼 생산해내려고 시도한다.

(287) 다시 말해서, 이제 인공물로 만들어질 인간은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더 이상 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

미래의 두 번째 물결: 하이퍼 분쟁

(304) 자본주의 대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주장을 폈던 과거의 공산주의 혁명과는 달리, 이들 새로운 시위자들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후 시장이나 민주주의 내부에서는 그 어떤 유토피아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321) 미래에 가장 중요한 무기는 적절한 홍보와 통신, 적절한 타이밍에 이루어지는 위협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것이다.

(343) 인간의 비극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반드시 그 일을 저지르고 만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미래의 세 번째 물결: 하이퍼 민주주의

(346) Dixi et salvavi animam meam 나는 오로지 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마치 자신이 독일 사회주의자들에게 제안한 정치 강령이 그가 보기엔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음을,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와, 자본주의로 인한 황홀하기도 하고 자멸적이기도 한 결과를 책임질 용기도 능력도 없음을 독자들에게 암시하기 위해 적어 놓은 것 같은 묘한 문장이었다.

(347) 지금 우리는 이 두 사람처럼 미래에 대한 신념을 공공연하게 표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인류는 시장도, 과학이나 전쟁도, 그 어떤 무지함과 악의도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는 없음을 다시 한 번 만방에 알려야 한다.

(349)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선한 의도만으로 견고한 무엇인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 선례가 없었다.

(351-352) 우선 내가 트랜스휴먼trans human이라고 부르는 전위적 주역들이 나서서 관계 위주의 기업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 트랜스휴먼 각자는 이타적인 지구 시민이며, 유목민인 동시에 정착민이고,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자기 이웃과 동등하고, 세계에 대해서 호의적이며 자기 아닌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트랜스휴먼들은 한데 어울려 범지구적인 기구들을 탄생시키며 산업체들의 궤도를 수정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방향을 틀게 된 산업체들은 각 개인의 행복을 위해 가장 본질적인 상품들(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좋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을 만들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공동 소유품들(여기서는 중지衆智, 즉 집단적 지능이라는 차원이 중요하다)을 개발할 것이다.

(353) 역사는 오직 모험심 많고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힘쓰며,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중요성을 앞세울 때에만(이 일은 대체로 이들을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만든다) 방향을 튼다.

(353) 미래에 이 창조적 계급 가운데 미래의 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개인들이 나타나, 자신의 행복이 결국 타인의 행복에 달려 있으며 인간을 단결하여 평화를 사랑해야만 지속해서 생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상업화된 창의적 계급에 속하지 않으며, 해적을 위해 일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나는 ‘트랜스휴먼’이라고 부른다. … 이들은 자신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며, 다만 세계의 용익권用益權을 가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트랜스휴먼은 정착민들의 덕목(민첩함, 친절, 장기적인 안목)과 유목민들의 덕목(끈기, 기억력, 직관력)을 두루 갖추고 있을 것이다.

(361) 특히 지극히 본질적이고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새로운 권리, 즉 유소년기를 제대로 보낼 수 있는 권리가 신설될 것이다. 유소년기를 제대로 보랠 권리란 곧 자녀의 유소년기를 제대로 지켜 주어야 하는 부모의 의무임이 명시될 것이다.

(368) 집단 지능은 개별적인 지능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교량 같은 지능을 가리킨다. 이 지능이 있어야만 개별적인 지능들이 모여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

(369-370)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의 하이퍼 지능에서는 인간도 지극히 작은 하나의 구성원에 불과하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의 하이퍼 지능은 따라서 인류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371)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재산은 뭐니 뭐니 해도 ‘좋은 시간’일 것이다. 좋은 시간이란 각자가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시간을 말한다.

(371) 하이퍼 민주주의의 두 프로젝트, 즉 개별적 프로젝트와 집단적 프로젝트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상승작용을 한다. 인류의 본편적 지능은 각자가 누리는 좋은 시간과 더불어 향상될 것이며, 역으로 보편적 지능은 각자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374) 나는 21세기가 끝나기 전 언젠가, 많은 장애물이나 현기증 나는 절벽에 부딪히거나 희화된 고정관념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하이퍼 제국이 상당한 규모로 커져서, 인간의 정체성이 파괴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세계의 단일성을 인식하게끔 되는 날이 오리라고 믿고 싶다. 나는 또한 빠른 시일 내에 인류 자신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날 정도로 하이퍼 폭력이 판을 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나는 트랜스휴먼들이 수적으로도 충분해지고 제법 잘 조직되어 미래의 첫 번째 물결을 무사히 통과하고 두 번째 물결은 파괴시킬 수 있으리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374-375) 끝으로 나는 내가 여기에 기술한 끔찍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실제로는 그 같은 미래가 절대로 도래하지 않게끔 도와주리라고 믿고 싶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거대한 무질서 너머로, 인생 여행을 떠나는 모든 여행자들을 화기애애하게 맞아주는 지구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가 올 때까지 많은 그 때가 올 때까지 많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며, 그 사건들은 내가 상상한 사건들보다 더 참혹할 수도 있고, 훨씬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사건들을 묵묵히 겪어내는 동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인류의 마지막 남은 불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호할 것이다. 문필가들은 훌륭한 글을 남겼을 것이고, 미술가들은 걸작품을 완성했을 것이다.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을 것이고, 음악가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다.

한국의 가까운 미래

(378) 우선 첫번째 이유를 보자. 과거에 한국은 제조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윤, 이동성, 기술혁신, 운송 기술 등보다 농업과 식품산업, 지대地代와 그 지대에 밀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관료들의 이익을 우선시해왔다. 뿐만 아니라 권력을 숭배하고 민중의 힘을 두려워했으며, 철옹성처럼 견고한 관료계급을 떠받들며 과거를 미화하고 과거에 대한 향수 속에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두번째로, 한국은 오랫동안 해양산업을 소홀히 했다. … 마지막으로, 한국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자력으로 ‘창조적 계급을 키우거나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다. … 한국은 이 같은 ‘창조적 계급’ 대신, 어떻게 해서든지 위험 부담을 줄이려고 애쓰는 이론가나 관리계급, 다시 말해서 개개의 문제를 종합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달인들을 키워냈을 뿐이다.

옮긴이의 말

(386)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이 앞으로 다가올 50년 후의 미래를 결정 짓는다!”

(388) 내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나 아닌 남도 자유로워야 함을 인정하는 이타적이고 형제애적인 사회, 창의적 계급이 지닌 우수한 재능과 예술적 업적이 고무되고 존중되며 공유되는 미래의 사회를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4. 내가 저자라면

아찔하다. 그는 38억 년 전부터 시작하여 21세기에 이르는 방대한 시간을 넘나든다. 또한 지구가 너무 좁다는 듯 마치 공기를 가지고 놀듯이 전세계를 아우른다.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인문, 예술 등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지식의 경계를 초월하는 진정한 하이퍼 노마드다.

그렇지만 그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지성의 힘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인류에 대한애정과 따뜻한 감성으로 승화시킨다. 아니, 그런 사랑과 인간미가 바로 그가 이런 책을 쓰는 원동력인 듯 하다. 지금까지 ‘미래’란 키워드를 통해 4명의 작가를 만났다. 그들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은 이러하다.

리프킨은 극단적이라 재미있었다.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번뜩였다. 순간, 순간 미래의 어느 순간을 엿볼 수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체를 하나로 묶어내는 힘이 부족해 보였다. 날카로운 통찰에 비해 해결 방식이 조금 미흡했다.

앨빈 토플러는 리프킨과 반대에 서있었다. 가령 토론할 때 재미있는 사람은 대다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열정적으로 반대하며 흥분하는 사람이다. 리프킨이 이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앨빈 토플러는 차분한 사람이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금 재미가 없었다. 변화의 물결을 면밀히 지켜봐 온 미래학자답게 미래의 구성원리와 큰 그림을 보여주었지만 모호한 결론이 아쉬웠다. 끝맺음이 힘이 없어 보였다.

페이스 팝콘은 톡톡 튀는 재미로 보다 표층적인 흐름인 소비자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 했다. 현재의 중요성, 수많은 통찰력, 반짝이는 재기를 보여주었지만 너무 마케팅 오리엔티드된 좁은 시야가 눈에 거슬렸다.

자크 아탈리는 자유로웠다. 그에게는 인용문이 필요 없었고, 방대한 데이터도 이젠 어딘가 치워버렸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 인문과 과학,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래의 시나리오와 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나에게 그는 4명 중 단연 최고의 스승이었다. 이론과 현실의 조화, 날카로운 지성과 따뜻한 감성의 조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사이의 균형 등 내가 닮고 싶은 멋진 모습들이 그에게서 엿보였다.

1) 책의 장단점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책 한 권을 통해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한 눈에 헤아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자크 아탈리는 오래 시간 동안 갈고 닦아온 지성과 혜안으로 시공을 다양한 축을 넘나들며 어마어마한 시간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또한 3개의 미래 시나리오를 통해 낙관론과 비관론의 경계를 사뿐히 넘어 버리는 노련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

지성과 감성이 잘 조화되어 있다. 그는 우선 날카로운 지성의 칼로 인류의 역사와 공간이란 생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라낸다.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의 역사로 시간의 축을 바꿔버리고, 9개 거점론으로 공간의 이동을 가뿐히 요리해내는 것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또한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3가지의 미래 이야기라는 시나리오를 통해 우리의 가슴을 움직인다. 날카로운 칼놀림에 인간의 마음이 담긴 레시피, 실로 60년 경력의 일류 요리사 솜씨다.

반면 단점을 찾아보면 많은 부분에서 같은 이야기들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는 시간의 흐름과 구성의 전개 상 각 부분이 어느 정도 겹칠 수 있기 때문인 듯 보이지만, 읽는 도중 흐름이 끊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나는 이를 ‘미래의 편린들이 현재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고차적인의 은유일 것이라고 굳이 변명해본다.

또, 앞에서 장점으로 언급했던 날카로운 논리들, 가령 정착민 vs. 유목민의 역사. 9개 거점론 등은 자칫 양날의 검이 되어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화에는 위험이 따를 수 밖에 없고,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은 비판이 따르게 마련인 듯 하다. 오히려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뭉툭한 칼은 비판의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2) 책의 재구성

이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인용문이 거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책의 끝에는 당연히 있을 법한 참고 문헌조차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 책을 쓴 것일까?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내가 볼 때, 이 책은 그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통합하는 종합 정리본이다. 인간적인 길, 21세기 사전, 호모 노마드 등 그의 전작을 살펴보면. 그 곳에서 이미 이 책에 언급된 이론들과 3가지 미래 시나리오의 흔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의 참고 문헌은 바로 그의 전작들인 셈이다.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을 것이다. 경제에 대한 이론, 정치에 대한 소신, 미래에 대한 통찰, 역사에 대한 시선 등을 고민해서 하나 둘, 책으로 풀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머리 속에서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졌겠지. 연결되었겠지. 그는 아마 책의 분량에 비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 책을 써나갔는지도 모른다. 지성으로 풀어내고, 가슴으로 엮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이런 책을 한번쯤은 써보고 싶다. 매일 꾸준히 보고 배운 것들이 나의 몸이 되고 되고, 머리 속의 모든 파편들. 가슴 속의 마음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큰 그림을 그리는 날. 일필휘지로 한 권의 책을 써내는 미래의 그 날을 그려본다.

다시 한번 책을 살펴보니, 과거의 이야기가 150 페이지, 미래의 이야기가 약 220페이지이다. 미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과거에 책의 약 절반 가량을 할애한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때, 올해 3월, 여행의 초입에 서 계시던 에릭 홉스봄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는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참나무나 삼나무가 아니라, 지구의 절반을 누비고 다니면서 극지방에서도 열대지방에서 잘 사는 철새’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가에는 역설적으로 ‘기동성과 넓은 영토를 내려다보고 살필 수 있는 능력’, 즉 ‘자기의 뿌리를 넘어서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 미래를 보기 위해선, 과거를 보아야 한다. 과거를 읽기 위해선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한계를 넘어서라고 말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많이 듣고, 많이 배워야 한다. 많이 보고, 느껴야 몸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 빠져나간다. 그 자리에 자신의 생각이 생겨나고, 의견이 생기고, 통찰이 생기고, 미래를 읽는 눈이 생긴다.

그러니 ‘미래의 물결’과 같은 책을 하루 아침에 쓸 수는 없다. 이런 책을 쓰기 위해선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가령, 이런 방식은 어떨까? (또, 혼자 신이 나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프로젝트 제목은 가칭 ‘Little Little Big Big Book’이다. 말 그대로 아주 작은 책이지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키워드를 풀어낸 키워드 책이자, 하이퍼 텍스트로 연동되는 온라인 북이다.

LLBB 북 시리즈는 미래의 중요한 키워드들을 선점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미래, 변화, 기술, 정체성, 경영, 영성, 문화, 교육, 감각, 창조와 같은 단어들이다. 이 책은 이미지와 짧은 글들로 구성될 것이다. 감각적이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핵심 키워드에 대한 중요한 담론들과 통찰력을 담아낼 것이다. 이 책은 앞으로의 새로운 세계를 보기 위한 준비 작업이 될 것이다.

자, 여기에 연구원들의 힘을 더해본다. 자크 아탈리는 한 인터뷰에서 ‘개인의 창조력보다는 커뮤니티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창조물에 의해 사회가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경영이란 항목을 생각해보자. 승오의 힘과 승완이 형의 힘을 더할 수 있겠다. 여기에 사부님의 조언을 반드시 구해야 되겠지. 그럼 기술(IT)이란 분야는? 여기에는 종윤이 형, 창용 형님의 힘에 재동이 형과 병곤이 형의 조언을 더해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정체성이란 키워드는? 여기엔 민선 누나, 은남 누나, 영훈 형님의 힘에 허락하신다면 초아 선생님의 조언을 더할 수 있겠지. 그래. 정체성은 과거를 아는 것에서, 현재를 제대로 사는 것에서, 그리고 변화의 흐름을 읽는 것에서 나오니까. 또 중요한 키워드로 교육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여기엔 모두다 관심이 많을 테지만, 최선생님과 정화 누나가 적격이겠다. 한선생님의 힘을 빌려볼 수도 있겠네. 지금과 같은 교육 방식으로 미래를 헤쳐나갈 순 없을 테니…

영성이란 키워드는 소라누나, 써니 누나가 머리에 탁, 떠오르네, 여기에 희석이 당연히 가세할 테고, 그리고 요한이 형의 조언을 더하면 되겠네. 그리고 젊을 때 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테지. 창조, 문화와 같은 키워드들. 여기에는 오윤과 귀자의 힘을 빌릴 수 있을까?

머리에 떠오르는 데로 적어보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서로의 힘을 묶어보면 좀 더 쉽게 무언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힘주어 고민하지 말고, 가볍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여기에 모두의 아이디어를 더한다면 각자의 관심을 아우르면서 한데 어울릴 수 있는 멋진 놀이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음,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5. 에필로그

에릭 홉스봄 할아버지에서 시작된 여행은 이제, 미래를 거쳐 과거로 향한다. 미래로 갔더니 과거를 보라 말하고, 답은 현재에 있다 한다. 우리 안에 있다 한다. 그러면 과거로 가보면 또 어떤 결론이 나올까? 흠, 여행은 떠나봐야 아는 것이니 너무 미리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

자크 아탈리의 자료를 찾아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다 보면 문득 아래 그림이 눈에 딱 걸렸다. 피터 브뤼겔(Peter Brueghel)의 사육제와 사순제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or Carnival's Quarrel with Lent)이다.



자크 아탈리는 ‘소리: 음악의 정치경제학 (Bruits, conomie politique de la musique, 1977)’ 이란 책을 이 그림을 통해 풀어냈다고 한다. 음악의 역사와 음악 만이 갖는 미학적 힘을 사회 과학적 해석과 정치적 욕망으로 해석해낸 미학서이자 탁월한 음악 이론서란 평이 붙어있다. 음악과 그림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라, 한껏 구미가 당기지만, 아쉽게도 국내에 번역이 안되어있다. 아마 카니발은 소음을, 사순제는 정제된 음악을 의미할 테지. 그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음악과 정치의 관계를 풀어내었겠지, 하는 생각은 어렴풋이 드는데… 한참 동안 이곳 저곳을 헤매다 마음을 접는다.

읽을 책이 많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많이 남았다. 여기에 원서까지 보려면 너무 벅차겠지. 그렇게 조금은 섭섭했는데 생각해보니, 내년에 남아있을 두 번째 여행이 기다려진다. 올해의 여행에서 발견한 샛길들을 따라 자유롭게 돌아다닐 나 만의 두 번째 여행. 그건 아마 올해의 보너스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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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5.01 14:10:38 *.99.120.184
'미래'라는 4월의 주제를 가장 잘 즐긴 이는 아마 도윤씨일거야.
미래에 관심도 많고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재능도 있고 현재의 직업과도 딱 맞네.
그래서 너무 아탈리에 심취에 버려 냉철함을 잠시 잊은 것 아닌지.....
그래도 지금처럼 앞으로도 재능의 날개로 훨훨 날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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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01 16:05:07 *.167.145.56
나무랄데 없는 리뷰이다. 전체를 이해하고 그의 사상에 심취한 것 같다. 좋은 글 잘 일고 나간다.

사육제와 사순제의 싸움의 그림을 크게하여 보고 싶고 도윤의 해설도 곁들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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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02 05:50:08 *.60.237.51
초아선생님, 지난 주에 강연 정말 잘 들었는데, 감상을 제대로 못 전해드린 듯 하여 죄송합니다. 4월에 미래를 공부하고, 5월에 역사를 공부하고 나면, 결국 현재로 돌아와 '주역'을 읽어야 되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예감해 보았습니다... 브뤼겔의 그림은 다시 한번 올리겠습니다^^

창용 형님, 그러네요^^ 처음 만난 자크 아탈리가 제 맘에 들었나봅니다. 다른 리뷰를 보면서 조금 균형을 잡아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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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신
2007.05.02 23:23:55 *.27.82.224
이번 리뷰는 꼭꼭 씹어 보아야 겠습니다.
리뷰를 통해 여러 미래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도윤님의 '미래'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집니다.

덩달아 '자크 아탈리'에 매료되는듯 합니다. 꼭 이 책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LLBB북 시리즈에 저도 꼭 참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ㅎㅎ^^

미래에서과거로현재로이어지는 그 여행~~!!!
함께하는 즐거움이 큽니다~

화이팅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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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03 09:56:55 *.249.167.156
효신님, 언제라도 대환영입니다. 그럼 '미래'란 키워드는 자리를 비워두겠습니다^^

초아선생님, 글 아래에 브뤼겔의 그림을 올려 두었습니다. 작은 즐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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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9.05 18:37:56 *.134.133.157
형.. 저도 형의 리뷰에 놀라고 갑니다. 이제서야 읽은 것을 후회하면서 갑니다. 형과 같은 팀이라는 사실에 기분좋아하며 갑니다. 그리고, 도전을 받은만큼 더욱 열심히 공부하자, 라고 다짐하며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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