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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8일 11시 49분 등록

저자 연구

유발 하라리, 제국주의자인가? 행복 탐구자인가?

지난번 저자 연구에서 역사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행복해졌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유보했었다. 지난주까지 읽은 분량 3부 인류의 통합 에서는 쉽게 아니라는 답을 찾을 수 있었지만 이번주에 읽게 될 4부에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장이 있어서였다.

 

책을 읽기 전에도 유발 하라리라는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해 초에 알파고 사태등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과 맞물려 그의 책과 강연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유명했고, <사피엔스>는 나의 읽고 싶은 책 목록에도 있었다. 연구원 과정 커리큘럼에 이 책이 있어서 잘 됐다 싶었다. 명성답게 책은 재미있고 페이지도 잘 넘어갔다. <철학 이야기>를 읽고난 뒤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읽을수록 조금씩 불편해지고 공감이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3 11장 제국의 비전이 그랬다. 그래서 제국주의가 정당했다는 건가? 앞으로 우리가 21세기 버전의 제국주의를 다시 추구해야한다는 건가?

나만 불편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문화평론가 박민영은 인물과 사상’ 2017, 1.2월호에서 <사피엔스>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빅 히스토리에 대한 빈약함과 함께 유발 하라리의 제국주의적 관점을 비판했다. 그는 먼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 전체의 잘못이라고 한 전지구적 문제에 가장 큰 책임은 정치가와 자본가가 지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들에 대한 얘기가 없음을 비판했다. 그는 또 “137억년 가량의 우주역사를 24시간으로 줄이면 인간의 역사는 1초에도 못 미친다”며 광대한 우주역사에 눈길이 쏠리면 “현대사회의 가장 첨예한 자본의 문제, 그 자본이 조정하거나 접수하는 정치권력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리 없다”고 주장했다그리고 지구제국이 건설된다 한들 진짜 전지구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박 평론가는 하라리가 ‘옛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라고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주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구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전지구적 문제 운운하는 것은 실제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원화된 권력과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한 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번에 유발 하라리의 신간 <호모 데우스>의 발간과 방한을 맞아 박민영 평론가와 유발 하라리가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 박민영 평론가: 당신은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전 지구적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지구(세계) 제국 건설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세계 문제에 대한 대책이 지구 제국이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나는 지구 제국이 건설될 경우 현실적으로 그 주체는 글로벌 자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말해달라.

- 유발 하라리: 우리는 어떠한 문제들에 대해 전 지구적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글로벌 자본주의 세력이 스스로를 강화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가면’일 수 있다는 당신의 우려에 나도 공감한다. 전 지구적 차원의 협력이 세계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돼서는 안되며,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시장세력이 결정을 내리는 것을 믿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19세기와 20세기엔 시장세력이 내리는 결정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운영됐지만, 그것은 소비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력이 넘쳤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중요성을 잃어감에 따라 시장세력이 그들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성장에 대한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규제 메커니즘과 자유시장 방식 간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 경향신문 2017 7 13


 유발 하라리의 답이 확 와닿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제국주의자인가, 아닌가? 위의 답만으로는 잘 모르겠다. <호모 데우스>를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며칠 전에 한국에서 강연 프로그램도 찍었다고 하던데... 좀 더 찾아 보고 새 책도 읽어봐야겠다. 


그렇다면 이제 행복에 대한 그의 대답은? 그는 불교의 행복에 대한 접근을 인용해 행복에 대해 아래와 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러므로 행복의 관건은 의미에 대한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내 개인적 내러티브가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이것은 꽤 우울한 결론이다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사피엔스> 556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이것이 불교 명상의 목표이다명상을 할 때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찰하여 모든 감정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며그런 감정을 추구하는 것의 덧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그런 추구를 중단하면 마음은 느긋하고밝고만족스러워진다즐거움분노권태정욕 등 모든 종류의 감정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사라지지만일단 당신이 특정한 감정에 대한 추구를 멈추면 어떤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그 결과 완전한 평정을 얻게 된다평생 미친 듯이 쾌락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평정이다. ~ 그러다 마침내 그는 모래에 주저앉아파도가 마음대로 오고 가게 놔둔다얼마나 평화로운가!" <사피엔스> 558

 

사람들의 기대가 충족되었느냐의 여부, 쾌락적 감정을 즐기는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된 질문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고대의 수렵채집인이나 중세의 농부보다 이런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을까?” <사피엔스> 560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4부 과학혁명

1.     무지의 발견

353 지난 5백 년간 간 가장 눈에 띄는 단 하나의 결정적 순간은 1945 7 16일 오전 5 29 45초였다. 정확히 그때, 미국 과학자들은 앨러머고도 사막에 첫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그 순간 이후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뿐 아니라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귀다.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뿐 아니라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그 능력을 발휘하지 않게 되기만을 바란다.

 

356 1.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용의.

현대 과학은 라틴어로 표현하면 이그노라무스 ignoramus – 우리는 모른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개념이나 아이디어, 이론도 신성하지 않으며 도전을 벗어난 대상이 아니다. ~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인류의 역사뿐 아니라 개개인의 역사도 이래야 할 것 같다. 지금 나는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나에 대해서 다 알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모습을 남이 볼 수도 있고 내가 스스로 발견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라고 나를 틀에 가두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잇다고 생각하자.

 

367 대부분의 역사 내내 수학은 난해한 분야였고, 교양 있는 사람들도 이를 진지하게 공부한 예가 드물었다. 중세 유럽에서 논리학, 문법, 수사학이 교육의 핵심을 이룬 반면, 수학 교습은 단순한 산술과 기하를 넘어서는 경우가 없었다. 통계학은 아무도 공부하지 않았다. 모든 학문 분야 왕자는 신학이었고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날 수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논리학은 철학의 한 분과로만 존재한다. 신학은 신학교에서만 배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배우려 하거나 배우도록 강요 받는다. 정밀과학을 향하는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고, ‘정밀하다는 말의 정의는 수학적 도구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분야였던 인간 언어의 연구(언어학)나 인간 심리의 연구(심리학)조차 점점 더 수학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정밀과학이라고 소개하려 한다. 이제 통계학은 물리학이나 생물학만이 아니라 심리학, 경제학, 정치학의 기초 필수 과목이 되었다.

 

374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류문화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황금시대는 과거에 있었고, 세상은 퇴화하지는 않더라도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지혜를 엄격히 추종한다면 좋았던 옛 시절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인간의 창의성으로 일상생활의 이런저런 측면을 개선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지식으로 세상의 근본 문제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가 떠오른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2010년 현재를 살고 있지만 20세기 초반을 황금시대라고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마법과 같이 그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그가 우상처럼 여기는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를 만나며 행복해한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묘령의 여인은 19세기 말이 황금시대라며 그 시대로 같이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막상 19세기 말의 고갱 등 예술가들은 르네상스가 황금시대였다고 말하며 그리워한다.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가면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황금시대라고 부르며 만족해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그리스/로마 시대를 그리워할지도 모르지. 예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을 황금시대라 여기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383 최근 유전공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의 평균 수명을 두 배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서도 동일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노공학자들은 수백만 개의 나노 로봇으로 구성된 생체공학적 면역계를 개발 중이다. 그 로봇들은 우리 몸속에 살면서 막힌 혈관을 뚫고, 바이어스와 세균과 싸우고, 암세포를 제거하며, 심지어 노화과정을 되돌릴 것이다. 몇몇 진지한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불멸은 아니다. 사고를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외상을 당하지 않는 한 생명이 무한히 연장될 수 있다) 전망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     과학과 제국의 결혼

395 쿡의 배는 군대의 보호를 받은 과학탐사대였을까, 아니면 소수의 과학자가 따라붙은 군사원정대였을까? 이것은 연료통이 반쯤 찼는지 반쯤 비었는지를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 다에 해당한다. 과학혁명과 현대 제국주의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제임스 쿡 선장과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 같은 사람들은 과학과 제국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불운한 트루가니니도 마찬가지였다.

 

397 어떻게 유라시아 변방에 있던 이들은 그 오지에서 뛰쳐나와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보통은 그 공의 큰 부분을 유럽 과학자에게 돌린다. 물론 1850년 이래 유럽의 세계 지배가 군사-산업-과학 복합체와 기술의 묘기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근대 후기의 성공한 제국들은 모두가 기술적 혁신을 이루리라는 희망을 품고 과학연구를 장려했으며, 많은 과학자들은 제국주의 주인을 위해 무기, 의학, 기술을 개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 민간기술의 중요서도 군사기술 못지 않았다. 통조림은 병사들을 먹여 살렸고, 철도와 증기선은 군대와 장비를 수송했다. 그러는 동안 새로운 의약품이 병사와 선원과 기관차 엔지니어들을 치료했다. 병참 부분에서의 이 같은 진보는 유럽인의 아프리카 정복에 기관총보다 더욱 중요한 역학을 했다.

하지만 1850년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군사-산업-과학 복합체는 아직 유년기였고, 과학혁명의 과실은 여물지 않았으며,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강대국들 사이의 기술 격차는 크지 않았다. 1770년 제임스 쿡은 분명 호주 원주민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을 지녔지만, 그렇기로는 중국인이나 오토만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호주를 탐험하고 식민지로 만든 사람은 제임스 쿡 선장이었을까? 왜 왕롱안 선장이나 후세인 파샤 선장이 아니었을까? 더욱 중요한 문제로, 만일 1770년 유럽인들이 무슬림, 인도인, 중국인보다 기술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 다음 세기에 자신들과 나머지 온 세상 사이에 그렇게 큰 격차를 만들 수 있었을까?

어째서 군사-산업-과학 복합체는 인도가 아니라 유럽에서 꽃피었을까? 영국이 약진했을 때 어째서 프랑스, 독일, 미국은 재빨리 따라가고 중국은 뒤처졌을까? 산업화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사이의 격차가 명백한 정치경제적 요인이 되었을 때, 어째서 러시아, 이탈리아, 호주는 그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고 페르시아, 이집트, 오토만 제국은 실패했을까?

나도 매우 궁금하게 여겼던 점이다.

 

399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그거라면 공짜로 베끼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프랑스와 미국이 재빨리 영국의 발자국을 뒤따랐던 것은 가장 중요한 신화와 사회구조를 이미 영국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은 사회에 대한 생각과 사회의 조직 방식이 달랐던 탓에 그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없었다.

정말 이게 전부일까? 매우 서구 우월주의적 시각이 보인다. 문득 유발 하라리는 중국 등 동양의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399 매우 높은 탑을 세우고 있는 두 건축가를 상상해 보자. 한 사람은 나무와 진흙 벽돌을, 다른 사람은 강철과 콘크리트를 재료로 쓴다. 처음에는 두 방법 사이에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두 탑이 모두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높이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결정적 문턱을 지나면, 나무와 진흙은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이에 비해 강철과 콘크리트는 시야가 미치는 한 층층이 계속 올라간다.

개인의 삶에도 적용해야할 경구로 보인다. 나는 나무와 진흙으로 금방 무너질 탑을 쌓고 있나? 아니면 강철과 콘크리트로 쌓고 있을까? 느리다고 초조해하지 말고 어떤 재료를 가지고 탑을 쌓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401 핵심요인은 식물을 찾는 식물학자와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데 있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둘 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둘 다 희망했다.

 

404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407 그가 유명할 이유라고는 우리는 모른다라고 말할 용기가 있었던 점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 사실에는 어떤 시적 정의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과학혁명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유럽인에게 과거의 전통보다 지금의 관찰 결과를 더 선호하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뿐 아니라 아메리카를 정복하겠다는 욕망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지식을 맹렬한 속도로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방대한 새 영토를 통제하기를 원한다면 신대륙의 지리, 기후, 식물상, 동물상,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해서 막대한 양의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기독교 성경이나 예시 지리서, 고대 구비 전통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제 유럽의 지리학자뿐 아니라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일하는 학자들은 채워 넣을 공백이 있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론이 완전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들 가운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409 이 지도를 본 사람에게 최소한의 호기심이 있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점 너머에는 뭐가 있지?” 지도는 답을 주지 않는다. 보는 사람에게 돛을 올리고 찾아보라고 요구할 뿐.

개인의 발전도 그렇고 인류 역사의 발전도 그렇다. 역시 호기심이 가장 큰 발전의 원동력인 것 같다.

 

413 이런 인종청소는 아즈텍 제국의 바로 코 앞에서 일어났지만, 코르테스가 제국의 동부 연안에 상륙했을 때 아즈텍인들은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잇었다. 스페인인들은 우주에서 침공해온 외계인 같았다. 아즈텍 사람들은 스스로 온 세상을 다 알고 있으며 그중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르테스와그의 부하들이 오늘날의 베라크루스 항구에 해당하는 화창한 해변에 상륙한 사건은 아즈텍인들이 완전히 미지의 사람들과 조우하는 첫 사례였다.

 

417 피사로는 코르테스를 모방했다. 그를 스스로 스페인 왕의 평화사절이라고 선언하고, 잉카의 지배자 아타후알파를 초대했다. 그러고는 외교 접견 자리에서 그를 납치했다. 피사로는 마비된 제국을 현지 동맹자들의 도움을 받아 정복해나갔다. 만일 잉카 제국의 피지배 민족들이 멕시코 주민들의 운명을 알았더라면, 침략자들과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오래 전에 단체 관람으로 본 영화 미션이 떠올랐다. 그 때는 무슨 내용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음악과 폭포가 멋있다는 것과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원주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잔혹한 장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아이의 눈에도 서구 제국주의의 잔인함이 보였었나 보다.

 

419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에서 알제리 게릴라들은 압도적인 수적, 기술적, 경제적 우위를 점한 프랑스군을 무찔렀다. 알제리인들이 승리한 것은 전 지구적인 반식민 네트워크의 지원을 받은 덕분이었으며, 전 세계 미디어를 동원해 자신들의 명분을 알리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또한 프랑스 자체 내의 여론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끌 줄 알았다. 작은 북베트남이 미국이란 거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기반으로 한 덕분이었다. 만일 국지적 전투가 전 지구적 대의명분의 대상이 된다면 초강대국이라도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 게릴라군은 보여주었다. 만일 몬테주마 2세가 스페인의 여론을 조작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스페인의 라이벌인 포르투갈이나 프랑스, 혹은 오토만 제국에게 지원을 받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3.     자본주의의 교리

431 하지만 근대 경제사를 알기 위해서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성장이란 단어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근대 경제는 마치 호르몬이 넘쳐나는 십대처럼 성장해왔다. 찾을 수 잇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늘 몇 센티미터 더 많이 자랐다.

 

435 현재 그녀에게는 꿈은 많지만 구체적인 자원은 없다. 빵집을 짓는 유일한 방법은 도급업자 중에서 외상으로 일해주고 몇 년 후에 돈을 받을 용의가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 몇 년 후에 빵집이 돈을 벌기 시작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도급업자는 드물다. 따라서 우리의 기업가는 곤경에 처한다. 빵집이 없으면 케이크를 구울 수가 없고, 케이크가 없으면 돈을 벌 수 없으며, 돈이 없으면 도급업자를 고용할 수 없고, 도급업자가 없으면 빵집도 없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경제는 얼어붙어 있었다.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발견되었다. 미래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

 

436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준다. 신용은 우리의 미래 자원이 현재 자원보다 훨씬 더 풍부할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래의 수입을 이용해서 현재에 무엇을 건설할 수 있다면, 새롭고 놀라운 기회가 수없이 많이 열린다.

 

438 신용은 오늘의 파이와 내일의 파이 간의 차이다. 만일 파이 크기가 늘 같다면 왜 외상을 주겠는가? 당신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손을 벌리는 제빵사나 왕이 다른 경쟁자의 파이 조각을 훔칠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 한, 그런 위험은 감수할 수 없을 것이다. ~

이것은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였다. 신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규 사업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신규 사업이 힘들었기 때문에 경제는 성장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성장이 없었으니 사람들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판단했고,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외상 주는 것을 경계했다. 불황에 대한 기대는 자기 실현적이었다.

 

440 하지만 스미스의 주장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반이다 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아이디어에 속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도덕적, 정치적 관점에서는 더더욱 혁명적이다. 스미스는 사실상 탐욕이 선한 것이며, 내가 부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기주의가 곧 이타주의라고.

경제 이론은 완벽한 상황과 인간을 가정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이와는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완벽하게 통제되는 세상도 인간도 없다.

 

445 지난 몇 년간 은행과 정부는 미친 듯이 돈을 찍어냈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경제성장을 멈추게 할지 모른다고 모든 사람이 겁에 질려있다. 그래서 그들은 난데없이 조 단위의 달러와 유로와 엔을 만들어서 값싼 신용을 시스템에 펌프질해 넣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의 거품이 터지기 전에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가 어찌해서든 뭔가 정말 큰 건수를 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실험실에 잇는 사람들에게 달려 잇다. 생명공학 기술이나 나노기술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새로운 발견은 온전히 새로운 산업 영역을 창조해낼 수 있으며, 그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은행과 정부가 2008년부터 만들어낸 조 단위의 환상의 돈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거품이 터지기 전에 연구실들이 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미래는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447 1484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왕을 찾아가, 동아시아를 향한 새 무역로를 개척할 테니 선단을 구성할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런 탐사는 위험이 크고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었다. ~ 포르투갈 왕은 거절했다. 하지만 오늘날 사업의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처럼, 콜럼버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 그는 번번이 거절당했다. ~

그는 숙달된 로비스트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도움으로 이사벨라 여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모든 어린이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이사벨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콜럼버스의 발견으로 스페인인들은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금광과 은광을 개발했으며 사탕수수와 담배를 재배할 대형 농장을 건설하여 스페인의 왕, 은행가, 상인을 상상도 하지 못한 만큼 부자가 되게 만들어주었다. ~

1백년 뒤의 왕자들과 은행가들은 콜럼버스의 후계자들에게 전보다 훨씬 많은 신용대출을 기꺼이 해주고 싶어 했다. 이들은 아메리카에서 거둔 수확 덕분에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은, 왕자들과 은행가들이 탐사의 잠재력에 대해 더 큰 신뢰를 갖고 있었으며 기꺼이 자신들의 돈으로 참여하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마법의 순환이었다. 신용대출은 새 발견을 할 자금을 공급했고, 발견은 식민지로 이어졌고, 식민지는 수익을 제공했으며, 수익은 신뢰를 만들어냈고, 신뢰는 더 많은 신용대출로 바뀌었다. 누르하치와 나디르 샤는 수천 킬로미터를 전진한 후에 연료가 떨어졌지만, 자본주의 사업가들은 정복을 거듭하면 할수록 재정적 탄력이 점점 더 붙었다.

 

460 영국 왕은 1858년에 이르러서야 인도를 국유화했고, 동인도회사의 민영 군대도 이 때 국유화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가게 주인들의 나라라며 비웃었지만, 결국 그 가게 주인들에게 패배했다. 가게 주인들이 세운 제국은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었다.

 

463 자본과 정치의 힘찬 포옹은 신용시장에서 크나큰 의미가 있었다. 어떤 경제가 지닌 신용의 양은 새로운 유전의 발견이나 새 기계의 발명 같은 순수한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체제 변화나 좀 더 대담한 해외정책 같은 정치적 사건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나바리노 전투 이후 영국 자본주의자들은 해외의 위험한 거래에 돈을 투자할 용의를 더 많이 나타냈다. 외국의 채무자가 변제를 거부한다면 여왕의 군대가 돈을 받아내주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463 오늘날 한 나라의 신용등급이 천연자원보다 경제적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용등급은 그 나라가 부채를 갚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순수한 경제적 데이터 외에도 정치, 사회, 심지어 문화적 요인을 고려해서 매겨진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라도 독재 정부에 전쟁이 만연하고 사법제도가 부패해 있다면 등급이 낮은 것이 보통이다. 그 결과 이 나라는 상대적 빈곤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석유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천연자원이 없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며, 사법제도가 공정하고, 자유정부를 가진 나라는 신용등급을 높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나라는 싼 대가로 많은 자본을 모아 좋은 교육제도를 지원하고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465 하지만 극단적인 자유시장 신봉주의는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는 믿음만큼이나 순진한 것이다. 모든 정치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시장 같은 것은 원래 없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은 미래에 대한 믿음인데, 이 자원은 도둑들과 사기꾼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 ~

왕이 시장을 적절히 규율하는 업무에 실패하면 신뢰의 상실, 신용의 축소,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우리가 1719년 미시시피 버블에서 배운 교훈이 이것이었다. 혹시 잊은 사람이 있었다면 2007년 미국의 주택시장 버블과 그 결과로 일어난 신용 붕괴와 불황이 상기시켜주었을 것이다.

공감한다.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1719년 뿐만 아니라 겨우 10년 전인 2007년에도 그리고 현재도 신용 붕괴와 불황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468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그렇기는커녕, 이윤과 생산량을 늘리려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성장은 쉽사리 파국으로 치닫는다. ~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 회사의 경영자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탕수수 농장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농장주들이 농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그들이 원한 유일한 정보는 손익을 담은 깔끔한 장부였다. ~

인도네시아에서 동인도 회사가 벌인 군사작전에 돈을 댄 것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고, 자선사업에 돈을 내고, 좋은 음악과 미술을 즐기는 네덜란드의 정직한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바, 수마트라, 말라카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중히 여기지 않았다. 지구 한켠에서 현대 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수없이 많은 범죄와 악행이 뒤따랐다.

 

470 2014년의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해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아프리카의 농부와 인도네시아의 노동자가 집에 가져오는 식량은 5백년 전보다 더 적다.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의 성장은 거대한 사기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인류와 세계 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을지라도 기아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더욱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472 모든 파이에는 원자재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두운 결말을 예언하는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조만간 우리 지구의 원자재와 에너지를 고갈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4.     산업의 바퀴

473 우리의 직관과는 반대로,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의 에너지와 원자재 사용량은 급격히 늘었지만 이용 가능한 자원과 에너지의 양도 늘어났다. 둘 중 하나가 부족해서 경제성장이 느려질 위험이 생기면 그때마다 과학적, 기술적 연구에 투자가 흘러 들어갔다. 그러면 예외 없이 기존 자원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와 원자재가 만들어졌다.

 

479 석유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알려져 있던 물질이었고, 지붕에 방수처리를 하거나 회전축이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그 이상의 효용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석유를 위해 피를 흘린다는 생각은 우스꽝스럽게 들렸을 것이다. 땅을 놓고, 혹은 금이나 후추, 노예를 두고 싸울 수는 있지만 석유라니.

 

480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과 몇십 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 가능한 화석연료가 고갈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

상업혁명 기간에 우리는 우리가 사실 엑사줄의 수십억 배의 수십억 배 에너지를 품은 거대한 에너지의 바다 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오로지 더 나은 펌프를 발명하는 것뿐이었다.

 

484 심지어 동식물까지 기계화되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 중심 종교에 의해 신성한 지위로 격상될 무렵, 농장 동물들은 더 이상 고통과 비참함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로 간주되지 않았고 기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동물은 공장 비슷한 시설에서 대량 생산되며, 몸체의 형태도 산업 수요에 맞게 형성된다. 거대한 생산라인의 톱니로서 전 생애를 보내며, 그 수명과 삶의 질은 해당 기업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결정된다. 산업이 동물들이 제법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도록 신경 쓰는 경우에도, 그들의 사회적, 심리적 욕구에는 본질적 흥미가 없다. (생산량에 직접 영향이 있는 경우는 예외다). ~

복잡한 감정 세계를 지닌 살아있는 동물을 마치 기계처럼 대하는 것은 그들에게 육체적 불편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스트레스와 심리적 좌절을 안겨준다.

 

486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 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달걀과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짬을 내어 자기가 살이나 그 산물을 먹고 있는 닭과 암소, 돼지를 생각하는 일이 드물다. 실제로 생각해본 사람들은 종종 그런 동물은 실제로 기계와 다를 것이 거의 없어 감정이나 느낌이 없고 고통을 느낄 능력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우리의 우유 기계나 달걀 기계를 빚어내는 바로 그 과학 분야는 최근 포유류와 조류가 복잡한 감각과 감정적 기질을 지녔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을 증명해냈다. 육체적 통증을 느끼는 것은 물론, 정서적 고통도 느낀다는 것이다.

바로 무관심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487 산업화된 농업의 비극은 동물의 주관적 욕구는 무시하면서 객관적 욕구만 잘 챙긴다는 점이다. ~ 원숭이는 물질적 필요를 넘어서는 심리적 필요와 욕구를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고, 만일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매우 큰 고통을 받는다. 할로의 새끼 원숭이들이 젖도 안 주는 천 엄마의 품에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한 것은 이들이 젖만이 아니라 감정적인 유대도 찾고 있기 때문이었다.

 

490 오늘날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철강과 의류를 만들고 구조물을 세운다. 더불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무수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전구, 휴대전화, 카메라, 식기세척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문제가 생겼다. 누가 이 모든 물건을 구매할 것인가?

 

491 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로 하여금 제 자신에게 잔치를 베풀어 실컷 먹게 하고,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 스스로 죽이게끔 한다. 검약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

소비지상주의 윤리가 꽃피었다는 사실은 식품 시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통 농업사회는 굶주림이라는 무시무시한 그늘속에서 살았다. 오늘날의 풍요사회에서 건강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만인데, 그 폐해는 가난한 사람이(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잔뜩 먹는다) 부자들보다(이들은 유기농 샐러드와 과일 스무디를 먹는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입는다.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현대 인간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가장 큰 모순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나도 이 모순을 이용해서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이 모순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기에……

 

493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

 

5.     끝없는 혁명

497 오늘날 인류는 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조차 멸종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매우 잘 버티고 잇는 생물들도 있다. 가령 들쥐와 바퀴벌레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끈질긴 생명체들은 아마도 핵무기로 인한 아마겟돈의 폐허의 바닥을 헤치고 기어 나올 공산이 크다. 자신들의 유전자를 퍼뜨릴 능력과 준비를 갖춘 상태로. 어쩌면 지금부터 6,500만 년 후 지능 높은 쥐들은 인류가 일으킨 대량 살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켜볼 지도 모른다.

 

507 국가와 시장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그들은 말했다. “개인이 되어라. 누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라. 부모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네게 맞는 직업을 택하라. 그 때문에 공동체의 연장자가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어디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라. 그 때문에 가족 만찬에 매주 참석할 수 없게 되더라도. 당신은 더 이상 가족이나 공동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 즉 국가와 시장이 당신을 돌볼 것이다. 식량과 주거, 교육과 의료, 복지와 직업을 제공할 것이다. 연금과 보험을 제공하고 당신을 보호해줄 것이다.”

 

516 현대사회의 속성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카멜레온의 색을 규정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잇는 유일한 속성은 끊임없는 변화다. 우리는 여기에 익숙해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질서를 바뀔 수 있는 무엇, 우리가 마음대로 가공하고 개선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이전 지배자들의 주된 약속은 전통적 질서를 수호하겠다거나 심지어 잃어버린 모종의 황금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지만, 지난 2세기 동안 정치에서는 구세계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더 나은 것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가장 보수적인 정당조차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만 약속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사회 개혁, 교육 개혁, 경제 개혁을 약속하고, 어떤 때는 공약을 실천하기도 한다.

 

526 첫 번째이자 다른 무엇보다,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 핵무기는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집단 자살로 바꾸어 놓았으며, 군대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둘째,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면 그 이익은 작아졌다. 역사상 재부분의 기간 동안 정치 조직체들은 적의 영토를 약탈하거나 병합함으로써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부는 들판과 가축, 노예와 금 같은 물질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약탈이나 점령이 쉬웠다. 오늘날 부는 주로 인적 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된다. 그 결과 이것을 가져가거나 무력으로 정복하기가 어려워졌다. ~ 전쟁의 이익이 전만 못해진 데 비해, 평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익성이 좋아졌다. 전통 농업 경제체제에서 장거리 교역과 해외 투자는 부차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전쟁 비용을 피하는 것을 차치하면, 평화는 그다지 수익을 낳지 못했다. ~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대외 교역과 투자는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므로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중국과 미국이 평화를 유지하는 한, 중국인들은 미국에 제품을 팔고 월스트리트에서 거래함 미국의 투자를 받아서 번영할 수 있다. ~

우리는 지구 제국의 형성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의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제국 역시 그 국경 내에서 평화를 강제한다. 그리고 그 국경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세계 제국은 세계 평화를 효과적으로 강제한다.

 

6.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530 오늘날 인류는 예전이라면 동화에서나 들어보았을 부를 누리고 있다. 과학과 산업혁명 덕분에 인류는 초인적 힘과 실질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 사회질서는 완전히 바뀌었으며 정치, 일상생활, 인간의 심리도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지난 5세기 동안 인류가 쌓아온 부는 우리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을 주었는가? 무한한 에너지원의 발견은 우리 앞에 무한한 행복의 창고를 열어주었는가? 좀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인지혁명 이래 험난했던 7만 년의 세월은 세상을 더욱 살기 좋은 것으로 만들었는가? 바람 없는 달 표면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국을 남겼던 닐 암스트롱은 3만 년 전 쇼베 동굴에 손자국을 남겼던 이름 모를 수렵채집인보다 더 행복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농업과 도시, 글쓰기와 화폐 제도, 제국과 과학,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531 만일 경제성장과 자립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자본주의의 이점은 무엇일까? 만일 대제국의 신민이 독립국의 신민보다 일반적으로 더 행복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예컨대 가나 사람들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때가 내부에서 자라난 독재자의 지배를 받을 때보다 더 행복했던 것으로 판명된다면 어찌되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탈식민지화 과정에 대해, 민족 자결의 가치에 대해 뭐라고 말할 것인가?

이래서 유발 하라리가 제국주의자란 비난을 받는 것 같다.

 

536 어쩌면 현대의 풍요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번영에도 불구하고 소외와 무의미 때문에 크게 고통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보다 잘살지 못했던 선조들이 공동체, 종교, 자연과의 결합속에서 커다란 만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537 흥미로운 결론 중 하나는,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까지만이며,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돈은 중요치 않다. 경제 사다리의 맨 밑에 붙박여 있는 사람의 경우, 돈이 많으면 행복이 커진다. 만일 당신이 식당 아르바이트로 연간 1,200만 원을 벌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인데 갑자기 5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당신의 주관적 안녕은 오랫동안 큰 폭으로 높아진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더 이상 빚의 늪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힐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연봉 2 5천만 원을 받는 대기업 임원이 10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회사 이사회에서 갑자기 연봉을 두 배로 올리기로 결정했다면, 이로 인해 높아진 행복감은 몇 주 밖에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더 세련된 차를 사고, 저택 같은 집으로 옮기고, 시바스 리갈 12년산 대신에 밸런타인 30년을 마시는 데 익숙해지겠지만, 이 모든 것은 머지 않아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가장 최고의 가치로 두고 추구하는 건 왜일까? 많은 사람이 그 정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일까?

 

538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질병과 행복의 관계다. 질병이 단기적인 행복감을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행복감을 감소시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뿐인데, 하나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병이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다.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은 단기간 우울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만일 병이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이들이 평가하는 주관적 행복은 건강한 사람과 같은 수준이다.

이 부분은 다소 이해가 안 간다. 내가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유발 하라리도 이런 경험은 없어서이지 않을까?

 

539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에 돈과 건강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간에 유대감이 강하고 구성원을 잘 돕는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즉 가족이 제 구실을 못하거나 소속될 공동체를 찾지 못한 이들에 비해서 훨씬 행복하다. 결혼은 특히 중요하다. 좋은 결혼은 행복과, 나쁜 결혼은 불행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각종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조건은 물론이거니와 신체적 조건과도 상관 없다. 무일푼의 병자라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행복감이 높다. 다만 병자의 가난이 너무 심하지 않고, 그 병이 퇴행성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540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당신이 손수레를 원해서 손수레를 얻었다면 만족하지만, 새 페라리를 원했는데 중고 피아트밖에 가지지 못한다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복권 당첨이든 끔찍한 자동차 사고든 시간이 지나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태가 좋아지면 기대도 부풀게 마련이라, 객관적 조건이 극적으로 좋아져도 불만일 수 있다. 상황이 나빠지면 기대가 작아지기 마련이라,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행복감은 이전과 비슷할 수 있다. ~

예언자, 시인, 철학자들은 수천 년 전부터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542 하지만 당신이 오늘날의 십대 청소년이라면, 스스로 부적격자라고 느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설사 학교에서 만나는 다른 애들이 못 생겼다 하더라도 그렇다. 당신은 그 애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TV나 페이스북, 대형 광고판에서 매일 보는 영화배우, 운동선수, 슈퍼모델과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543 심지어 영원한 생명도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번 상상해보자. 모든 질병을 고치는 치료법, 노화를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요법, 젊음을 영원히 유지하는 회춘요법 등을 찾아냈다고 하자. 그 직접적인 결과는 분노와 불안이 사상 유례없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새로운 기적의 요법을 받을 돈이 없는 사람 대사수의 사람 들은 격렬한 분노에 휩싸일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가난하고 압박받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해온 것은 적어도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믿음이었다. 부자나 권력자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은 죽어야 하는데 부자는 영원히 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요법을 받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그렇게 희열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용법이 생명과 젊음을 연장해줄 수는 있지만, 시체를 되살리지는 못한다. 나와 내 사랑하는 이가 영원히 살 수는 있지만 트럭에 치이거나 테러리스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그렇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영원히 살 수 잇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아주 조그만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몹시 싫어하게 될 것이며, 배우자나 자녀, 친한 친구를 잃는 데 따르는 고통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545 진화에서 행복과 불행이 맡는 역할은 생존과 번식을 부추기거나 그만두게 하는 것과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진화의 결과 우리가 너무 불행해하지도 행복해하지도 않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진화는 우리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몰려오는 쾌락적 감각을 누릴 수 있게 했지만, 그런 느낌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조만간 이 느낌은 가라앉고, 불쾌한 느낌에게 자리를 내준다.

 

549 사람들은 이런 저런 정치 혁명이나 사회 개혁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체의 생화학은 거듭해서 이들을 속인다.

실질적인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진전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는 마침내 진정한 행복의 열쇠가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나 반란이나 이데올로기에 시간을 그만 낭비하고, 대신 우리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에, 즉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을 조작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

미국 대공황의 절정기인 1932년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 속에서, 행복은 최고의 가치이며 향정신성 약물이 경찰과 투표 대신 정치의 기반 자리를 차지한다. 모든 사람은 날마다 소마라는 약을 복용하는데, 생산성과 효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합성 마약이다.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 정부는 전쟁이나 혁명, 파업이나 시위로 인해 위협받는 일이 전혀 없다. 모든 사람이 현재의 상황에 어떻든 대단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헉슬리의 미래상은 조지 오웰의 <1984>보다 훨씬 더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대부분의 독자는 헉슬리가 그려내는 세상을 괴물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기는 힘들다. 모든 사람이 항상 행복하다는데,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마음이 불편할 뿐 아니라 무섭기까지 하다. 인간이라기 보다는 그냥 살아있는 좀비, 노동력이 되는 것 같다.

 

552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기 독재자의 비참한 노예로 볼 수도 있고, ‘사랑을 다해 새 생명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 큰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체계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553 그러므로 행복의 관건은 의미에 대한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 내러티브가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꽤 우울한 결론이다. 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558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저런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이것이 불교 명상의 목표이다. 명상을 할 때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 관찰하여 모든 감정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며, 그런 감정을 추구하는 것의 덧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추구를 중단하면 마음은 느긋하고, 밝고, 만족스러워진다. 즐거움, 분노, 권태, 정욕 등 모든 종류의 감정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일단 당신이 특정한 감정에 대한 추구를 멈추면 어떤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완전한 평정을 얻게 된다. 평생 미친 듯이 쾌락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평정이다. ~ 그러다 마침내 그는 모래에 주저앉아, 파도가 마음대로 오고 가게 놔둔다. 얼마나 평화로운가!

 

560 사람들의 기대가 충족되었느냐의 여부, 쾌락적 감정을 즐기는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된 질문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고대의 수렵채집인이나 중세의 농부보다 이런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을까?

 

7.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567 인권 운동가들은 유전공학이 우리 모두를 노예로 삼을 슈퍼맨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구약의 예레미야서는 생물학적 독재자가 두려움 없는 병사와 복종하는 노동자를 대량 복제한다는 종말론적 전망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체로 너무나 많은 가능성의 문이 너무나 일찍 열리고 있고, 우리의 유전자 조작 능력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이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할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고 느낀다.

 

568 만일 바람둥이 밭쥐에게 유전자 하나를 삽입함으로써 충실하고 애정 깊은 남편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쥐(그리고 사람)의 개체의 행태뿐 아니라 그 사회구조까지 유전적으로 조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시대의 도래가 멀지 않은 것이 아닐까?

 

571 생명공학이 네안데르탈인을 정말 부활시킬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막을 내리게 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우리가 우리의 유전자를 주물럭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은 있다.

 

575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 중에 가장 혁명적인 것은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방법을 고안하려는 시도다. 컴퓨터가 인간 뇌의 전기 신호를 읽어내는 동시에 뇌가 읽을 수 잇는 신호를 내보내는 것이 목표다. 이런 인터페이스가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한다면, 혹은 여러 개의 뇌를 직접 연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해서 일종의 뇌 인터넷을 만들어낸다면?

만일 뇌가 집단적인 기억은행에 직접 접속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의 기억, 의식, 정체성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런 상황이 되면 가령 한 사이보그가 다른 사이보그의 기억을 검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마치 자신의 것인 듯 기억하게 된다. 이것은 남의 기억을 듣거나 자서전을 통해 읽거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마음이 집단으로 연결되면 자아나 성정체성 같은 개념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스스로를 알고 자신의 꿈을 좇을까? 그 꿈이 자신의 마음속이 아니라 모종의 집단 꿈저장소에 존재한다면 말이다.

 

580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하류계급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속였다. 사실 가난한 농부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지능은 황태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의학적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581 하지만 미래 기술의 진정한 잠재력은 호모 사피엔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수송 수단과 무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욕망까지 말이다. 영원히 젊은 사이보그에 비하면 우주선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사이보그가 번식도 하지 않고, 성별도 없으며, 다른 존재들과 생각을 직접 공유할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집중하고 기억하는 능력은 인간의 수천 배에 이르며,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는 대신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 아마도 우리와 미래의 주인공들의 차이는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보다 더욱 클 것이다. 적어도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은 같은 인간이지만, 우리의 후계자들은 신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582 우리는 새로운 특이점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개념 , , 남자, 여자, 사랑, 미움 이 완전히 무관해지는 지점 말이다. 그 지점을 넘어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게 무엇이든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583 우리가 과학자들이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조작할 수 잇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힘든 시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미래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우리보다 진실로 우월한 존재를,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을 바라보듯이 우리를 무시하면서 바라볼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583 오늘날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들이 이런 예언을 정말로 실현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미래는 알 수 없다. 만일 지난 몇 페이지에서 나왔던 예측들이 모두 실현된다면, 놀라운 일일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한 모퉁이만 돌면 금방 일어날 것 같아 보이는 일도 미처 예상치 못한 장애로 실현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 결과 예상 박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도 잇다. 1940년대에 원자력의 시대가 갑자기 도래했을 때, 2000년쯤에는 원자력을 활용하는 다양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이 만발했었다.

스푸트니크 위성과 아폴로 11호 우주선이 세계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을 당시, 사람들은 앞다투어 20세기 말이 되면 우리가 화성과 명왕성에 건설한 우주 식민지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런 예측 중에서 실현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편 인터넷의 존재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85 만일 우리 후손들의 의식이 작동하는 차원이 정말로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면(혹은 우리의 의식을 넘어서서 우리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지만), 그들이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사회조직이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라거나, 성벽이 남성과여성으로 갈린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역사상의 위대한 논쟁들은 중요하다. 적어도 이 신들의 첫 세대만큼은 인간 설계자들의 문화적 아이디어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이미지에 따라 창조될까? 자본주의? 이슬람? 페미니즘?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그들이 가는 길은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586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길가메시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다. 길가메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이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후기_신이 된 동물

587 오늘날 이들은 신이 되려는 참이다.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588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리의 기술은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왕복선으로 발전해왔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잇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옮긴이의 말

592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사피엔스가 놀라울 정도로 잘하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같은 정도로 잘못한 영역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장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해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저자라면

 

l  목차에 대하여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세가지 혁명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에 인류의 통합을 추가하여 글을 구성했다. 인류의 역사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구성해서 각 혁명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보이게 구성한 점은 좋다고 본다. 그런데 중간에 3인류의 통합은 좀 뜬금없이 끼어든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 어울리는 것 같았다. 물론 시간 순서대로 구성하다 보니 그랬겠지만 마지막에 따로 빼던가 세 가지 혁명에 분산해서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l  보완이 필요한 점

인류의 역사를 Macro-historical 관점에서 서술한 점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이 일어났던 고대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가장 중요하다고 (현대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근.현대 부분이 너무 간단하게 서술된 것 같다. 책이 너무 두꺼워질 수도 있겠지만 근.현대 부분을 좀더 보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또한 너무 서구 역사의 시점에서만 쓰여진 것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l  이 책의 장점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인류(사피엔스)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몰랐던 부분에 대해 쓴 점이라든가 새로운 관점 제시 등이 흥미로웠다.

가장 큰 장점은 역사 발전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행복해졌는나?” 평소에 생각은 하지만 역사를 공부할 때 이를 떠올리지는 않았었다. 실제로 아주 먼 과거 사람들 수렵채집인, 중세 농부 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하는 시간을 갖게 한 것이 좋았다. 그리고 정말 내가 그들에 비해 행복한가?’라고 진지한 고민을 하는 계기를 갖게 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l  내가 저자라면 

동양사를 대폭 보완하겠다. 물론 근대사에서 신대륙 개발 등 유럽, 서구의 역할이 컸다는 건 인정하지만 동양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을 거의 다루지 않으면서 사피엔스의 역사를 썼다고 할 수는 없겠다.

또한 근/현대 역사도 보다 자세히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시간의 양으로 따지자면 인류사에서 근/현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절대적 시간이 아니라 중요도로 따진다면 근/현대사가 지금보다는 훨씬 추가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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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8 18:28:26 *.18.218.234

행복탐구자라는 별칭 좋은데요. 그래서 행복한가, 과거보다 더 행복한가, 미래의 통제된 행복(모두가 언제나 행복한)이 과연 좋을 것인가. 그런 질문을 하게끔 하고 생각해보게 해서 좋았던 거 같아요.


미드나잇 인 파리 보고 싶네요. 그런 내용인지 몰랐네. 

미션의 영화장면 언급하셨는데..나도 이 책 읽고 태즈메이니아의 트루가니니가 마음에 남더라구요.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지켜보고 있는 학살.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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