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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2일 11시 50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Two Experts on Death & Dying Teach Us About the Mysteries of Life & Life’

원서의 부제이다. ‘죽음과 임종 전문가가 가르치는 인생과 삶의 신비’. ‘죽음 전문가’. 뭔가 말로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그녀는 어째서 모든 성공이 보장되는 길을 마다하고 남들이 가지 않은 이 길을 걸어왔을까. 그녀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 해답이 나온다.

 

흔히들 말하는 죽음의 5단계(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 모델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얼마나 많은 죽음을 목도했으면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설명이 될까. 한편 고맙기도 하고 그 많은 죽음을 지켜봤다는 것에 애잔하기도 하다. 결국 나도 이 5단계를 거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아는 만큼 과연 죽음을 수용하기 쉬울까. 이제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전에는 죽음은 항상 나와는 상관없는 너무나 멀리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제는 결혼식보다는 장례식 부고를 많이 듣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슬픈 현실이지만 이 또한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서, 로스를 통해서 죽음을 잘 준비하고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퀴블러 로스의 일생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1926년 스위스에서 세쌍둥이의 하나로 태어났다. 세쌍둥이로서 엘리자베스는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하였다. 나는 누구이고 누구여야 하는가?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위해 그녀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6학년 때 쌍둥이 자매의 아픔을 경험하고는 의사가 되고자 결심하였다.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병자를 고치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것이 생애의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매춘부들과 전쟁부상자들을 돌보면서, 나치 수용소의 잔인한 수용소를 돌아보면서 삶의 목표를 다졌다. 그 후 의사가 되어 많은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엘리자베스는 의사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선하게, 돌봄의 자세를 가지고, 사랑을 지닌 인간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현대 의학은 죽음을 의술의 실패로 받아들이지만 그는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외롭고 고립된 환경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돌보는 이의 사랑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마지막까지 의미있는 삶을 살다가 죽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죽음을 관찰하고 생명이 떠나가는 것을 목도하는 동안 자연히 죽음 이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1970년대부터 <, 죽음, 전이라는 공동 연구회를 진행하였는데, 죽어가는 환자들과의 면담, 1주일간의 집중 강의, 그리고 질문과 대답의 시간, 또한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지닌 눈물과 분노를 극복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엘리자베스는 1970년대에 2만명 이상의 환자들과 면담을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고, 그렇기에 단순히 이 땅에 존재하고 생존해야 하는 그 이상의 삶을 위한 삶의 이유가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죽음이후에 대한 관심으로 사자(死者)와의 만남을 경험하고 난 뒤 자신이 운영하는 치료 센터를 건립하였다. 이후 본인 스스로 저 세상의 영들과 대화를 경험할 뿐 아니라, 영이 몸을 떠나는 경험, 삶의 다른 단계를 거쳐 영원한 세계를 경험한다. 특별히 천 번의 죽음, 다시 태어남에 대한 경험 등을 거쳐 산티 닐라야”(Shanti Nilaya: 산스크리트어로 최후의 평화의 집이란 의미이다. 곧 우리가 육체를 떠나 최후에 돌아갈 곳이다.)를 경험한다. 또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 속에 있는 생명에 대한 인식 곧 우주적 의식(cosmic consciousness)을 경험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운영하는 치료센터를 산티 닐라야로 개명한다.

 

산티 닐라야에서는 무제약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의 심리적이며 육체적이며 영적인 치유를 가져오는데 관심을 가지면서 <, 죽음, 전이> 워크샵은 날로 번창하여갔다. 노년에 이르러 에이즈 환자의 임종을 돌보는데 힘을 쏟았고 1990년 꿈에 그리던 Elizabeth Kubler-Ross 센터의 완공을 보게 된 후에는 사형수의 임종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죽음의 이해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을 수밖에 없다면 죽음의 현상을 의식적으로 회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이 그리고 자주 생각함으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오히려 극복해야 한다.

 

퀴블러 로스 박사에게서 삶과 죽음은 나눠지지 않는다. 삶은 죽음의 시작이고,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여정이다. 죽음이 삶의 한 과정이라면 이제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죽음을 통한 우리의 삶을 보다 의미있고 값있게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퀴블러 로스 박사의 생각이다.

 

이제 퀴블러 로스 박사가 쓴 몇 권의 책 내용을 살펴보자.

 

<죽음과 죽어감 (On Death and Dying), 1969>20세기 후반에 쓰여진 죽음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심리학적 연구 중 하나이다. 이 책은 퀴블러 로스 박사가 죽음과 삶 그리고 그 전이 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탄생시킨 책으로 죽음이 선고된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5가지 심리적 단계를 소개하고 있다. 곧 거부와 소외,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받아들임의 과정이 그것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직접 면담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퀴블러 로스 박사는 임박한 죽음이 죽음을 앞둔 환자와 환자를 돕는 관계자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혀 주고 있다. 곧 로스 박사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 죽음을 인식시켜 그가 그의 죽음을 완성된 삶의 가치 위에 승화시키도록 준비할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체적으로 이 책은 죽음을 다루면서 죽음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을 밝히는 책이다.

 

<죽음과 임종에 관한 의문과 해답 (Questions and Answers on Death and Dying)>은 퀴블러 로스 박사의 고전인 <죽음과 임종>의 책 자매편으로 쓰여진 책이다. <죽음과 임종>이 쓰여진 이후 700여 회의 강습회와 강연회월요강좌 지상강연 그리고 세미나에서 나온 349개 항목의 죽음에 대한 질문을 심리적 통찰을 거쳐 열정을 가지고 대답을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 퀴블러 로스 박사는 임종, 자살, 불치병(terminal illness), 안락사 등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논하고 있고, 어떻게 환자에게 죽음과 관련된 문제들을 말하고 다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죽음을 가까이에 둔 남아있는 자들이 어떻게 비탄의 경험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있다.

 

<죽음: 성장의 최후 단계(Death: The Final Stage of Growth)>는 일단 죽음을 인간 발달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죽음이 인간 실존의 의미에 중요한 일단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앞서도 지적한 것처럼 로스 박사는 인간은 완전을 향해 발전해 가는 과정에 있는 실존으로 이해한다. 죽음을 앞에 둔 임종자들이 겪는 5가지의 단계는 죽음 뿐 아니라 슬픔의 경험이나 특별한 종교적 과제에 부딪혔을 때에 그 충격을 받아들이기까지 같은 과정을 갖는 것으로 이해한다. 죽음도 이와 같이 삶의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죽음을 거부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하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면, 죽음은 거부할 것이 아니고 어떻게 죽음을 맞고 준비하며 죽음을 다루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죽음의 면전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살기 (To Live Until We Say Good-Bye)>는 퀴블러 로스 박사가 글을 쓰고 말 와쇼(Mal Warshaw)가 임종 환자들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사진으로 담아 만든 책이다. 죽음에 이르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양이 아니라 삶의 질이다.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인간답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이 일을 위해서 호스피스 프로그램도 책 말미에서 소개해주고 있다. 이 책도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돌봄은 환자의 편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제시하고 있고, 특별히 임종자들은 차디찬 병원에서보다는 가정에서 혹은 가족이 있는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허락되는 한 저들이 한 사람으로 끝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의료진과 시스템은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와 죽음(On Children and Death)>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어린이와 어른이 어떻게 다른지? 연령에 따른 죽음의 개념은 무엇인지? 이별기간동안 어떻게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를 도울 수 있는지? 아동자살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등의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로 쓰여졌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어린이들도 자신의 죽음을 직감적으로 곧 영적인 차원에서 안다고 한다. “어린이의 즉흥적인 그림, 창작적인 미술작품, , 처음에는 별 것 아닌것 같은 아이들의 말 등 그들의 숨겨진 메시지의 뜻을 어른들은 그들이 죽은 다음에야 깨닫게 된다.”

 

죽음을 인지한 아이들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죽음을 맞기 위해 신뢰할 만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또한 죽음이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명력 있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아름다움에 싸여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죽은 것은 진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여정을 앞서간 것뿐이다.”

 

결국 아이들은 나비가 되어 진정한 세계로 옮겨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육체라는 형체는 진정한 삶이 아닌 껍질, 즉 번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번 알게 되면, 떠나보내는 데 대해 갈등을 덜 느낄 것이고, 모든 대가를 치러가면서 생명을 연장시키지 않은데 대해서도 죄의식을 덜 가질 것이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듯이 임종자를 돕는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평생을 통해 20,000여명의 임종자들을 도왔던 그녀는 죽음을 통해 죽음으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의 삶은 계속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임종자를 향한 그녀의 방법은 상담의 기초를 이루는 것으로, 먼저 임종자에게 주의를 기울여 저들의 편에서 들어주고, 그리고 나서 의술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인간은 죽음 앞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연성과 누구나 죽는다는 보편성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죽음을 공포나 두려움으로 맞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죽음을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죽음을 적극적으로 만나게 하는 몇 가지 퀴블러 로스 박사의 신념이 있다.

 

첫째로, 이 세상의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로, 그녀는 인간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이해한다. 아울러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본다. 삶의 한 과정으로서 죽음이란 끝이 아니고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삶을 전제한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결국 죽음을 통해 삶의 이야기 곧 삶의 중요성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결국 퀴블러 로스 박사의 임종자들을 위한 삶은 무조건적인 인간 사랑에서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인간사랑은 인간만 사랑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 둘은 밀접히 관련이 되어 있다. 인간의 탐욕, 미움이 서로의 죽음을 가져왔고, 이 땅을 황폐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고 퀴블러 로스 박사는 경고한다.

 

이 점에서 퀴블러 로스 박사는 궁극적인 인류의 과제를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인류의 질병을 치유할 최고의 약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용서하고, 동정과 이해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치유함으로서 우리는 어머니 대지를 치유할 수 있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교훈을 인류가 배우는 길은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 더 소중한 자리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임종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저들을 돌보며 배려해야 한다.

 

죽음 앞에서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돕는 일을 통해서 인류는 비로소 인간의 궁극적 과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것을 온 몸으로 살았던 이가 퀴블러 로스 박사이다.

 

출처: http://stmarysclinic.tistory.com/621

 

류시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번역가는 시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나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시도 그의 작품인줄 알았다. 그러나 번역한 시였다. 그러나 지금에야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안다. 이 멋진 시를 소개해준 것에 감사하고 영어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우리말로 번역한 것에 또한 감사하다. 그리고 아마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은 책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나는 시인으로 풀어낸 우리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배움과 깨달음의 책 인생 수업에는 행복하라는 숙제뿐

 

9.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교사들이다.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의 강으로 내몰린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책이나 철학자들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사람들이다. 죽음 앞에 가식은 없다. 두려움도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은 그 어떤 철학자보다 큰 가르침을 줄수 있을 것이다.

 

9. 우리는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예외없이 삶이라는 학교에 등록한 것이다. 수업이 하루 24시간인 학교에, 살아 있는 한 그 수업은 계속된다.

 

9. 우리가 지구로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나비가 누에를 벗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허락된다. 시간이 되면 우리는 집에서 신에게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나비처럼 떠날 수 있고,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

죽음이 곧 모든 것이 끝남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말을 믿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비주의라고 해야 하나. 오히려 이런 것에 끌리고 있다.

 

10. 우리가 배워야 할 과목들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다. 나아가 이 수업은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 하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것이 이 수업의 완성이다. 는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모습을 바꿔 가며 배움을 계속하는 존재인가?

정말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많은 책들을 통해서 조금씩 해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 하나만 해도 이 과정의 중요한 결과이다.

 

10. 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 직면한 이들의 가르침은 어떤 종교의 설교보다도 뛰어나다. 그들은 책이나 경전에서 얻은 경구가 아닌, 자신들의 육성으로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일깨운다.

결국 자기들의 육성으로 자기의 인생을 얘기하는 것 만큼 진실로 와 닿을수는 없다.

 

10.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얼마 다행인가를 몇 번이나 생각한다. 그 깨달음을 훨씬 일찍 시작했다는 것에 감사하다. 비록 주변의 말들에 흔들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10.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고, 놀이이다.

 

11. 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난 참 불행한 인간인 것 같다. 별에 대해 별은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혹성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부터 별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 그저 바다에서 수많은 별들을 볼 때 그 감정들만 남아있다.

 

11.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알긴 아는데 이렇게 살긴 너무 어렵다. 바보같이. 별 것 없는데

 

11.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갈 거예요. 그곳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놀 거예요.”.... 악기를 배웠더라면 연주하고 노래할 텐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죽음에 대한 가장 멋진 말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젠 나도 죽음에 대해 피하지만 말고 어떻게 죽을 것이고 죽어서 무엇을 할것인지 생각을 해봐야겠다. 나는 피아노를 연주해야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면서

 

12.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인간은 창문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다. 태양이 밖에 있을때는 반짝하고 빛이 나지만, 어둠이 드리울 때 스테인드 글라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안의 빛에서 나타난다.

성당에서 바라본 그 은은한 빛은 참 아름다웠다.

 

12. 우리가 알고 잇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실패를 알고, 고통을 겪고, 상실을 경험하며, 깊은 구덩이에 빠져 길을 찾아 헤맨 이들이다. 그들은 동정심과 따뜻함, 사랑과 배려로 가득한, 곧 삶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부족과 결핍을 아는 사람만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12. 기러기들은 언제 태양을 향해 날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알까? 우리 인간은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어떻게 알까?

 

13. 의식의 절정은 그녀의 두 자녀가 관 앞에서 작은 상자를 열었을 때였다. 상자 안에서 한 마리의 호랑나비가 날아올랐다.

4번의 유산 끝에 아들과 딸이 있다고 한다. 정말 멋진 장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가 죽으면 어떤 장례식을 할지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부탁해야겠다. 지금의 장례식은 정말 너무 싫다. 장례식에 대한 칼럼을 한번 써봐야겠다.

 

13. 그녀가 나비 수수게끼에 빠진 것은 소녀 시절 자원봉사자로 폴란드 마이데넥의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였다. 수용소 내부 벽에는 곳곳에 손톱이나 돌조각으로 새긴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왜 나비일까? .......수수께끼가 풀린 것은 그로부터 스무 해가 흘러 스위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뉴욕과 시카고 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을 때였다. 스스로도 유체이탈 등 다양한 신비경험을 하면서 그녀는 인간의 몸은 나비가 날아오르는 번데기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임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수용소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도 그녀처럼 영혼의 영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이 책의 표지에는 나비가 한 마리 그려져 있다. 왜 나비인질 알겠다.

 

14. “평생을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죽음에 대한 책을 써온 나는 꼭 책 한 권을 더 쓰고 싶었다.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닐 삶과 살아가는 일에 대한 책 말이다. 삶의 끝에서 배울 수 잇는 것들로 글로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썼고, 아직까지 삶에 도전하고 그 결과를 음미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사한다.”

 

14. 작별을 고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이 곳에 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행복하라는 것 외에는 다른 숙제가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시도한 적이 언제였는가? 마지막으로 멀리 떠나 본 적이 언제였는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껴안아 본 적이 언제였는가?

 

14. 살고 Live 사랑하고 Love 웃으라 Laugh. 그리고 배우라 Learn.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거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이것만큼 중요하고 명료한 것이 있을까.

 

1장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이다.

인생 후반부. 이제야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 출발이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의 여행은 더 좋을 것이 분명하다.

 

17.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고,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양손을 옆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운전대를 놔버린 것입니다. 삶에, 그리고 죽음에 순순히 나 자신을 맡겼습니다.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여자처럼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아님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벗어나려고 했을까?

 

17. 단지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이상의, 더 큰 의미를 지닌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바꿀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늘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살아왔지만, 이제는 손바닥 위에 부드러운 깃털이 놓인 것처럼 평화롭게 손을 편 채로도 삶을 살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 일정시간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다. 내가 그렇듯이

 

17. 죽음의 문턱 가까이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여성 역시 한가지 배움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배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배움입니다.

 

17. 인간 모두의 깊은 내면에는 자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어떤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에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8.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은 삶 속에서 배움을 얻으려 하고 그 해답을 찾습니다. 두려움과 후회와 싸우고, 의미와 사랑과 용기를 추구하며, 상처와 상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려고 시도합니다.

 

18. 불행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18. 그들은 절망이라는 어둠 속에서 남은 생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이 배움이 모두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준다는 것을 누구나 깨닫습니다.

 

19.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이 배움들은 무엇일까요?......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비난, ,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또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배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들도 있습니다.

 

19. “난 내 삶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즐겁다.”라고 누군가는 말했듯이,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완벽해진다는 것에 너무 목말라 있었다. 그러나 결코 완벽하게 될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은 다음에도 완벽에 가까워지려 했었다. 답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인데. 많은 시간을 돌아와서 깨달음이 허무하긴 하지만.

 

20. 죽음이라는 종착점에서 바라본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발견해 나갈 것입니다.

 

20. 삶에서 큰 상실감에 빠졌을 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간직하고,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20. 그들은 더 이상 직장이나 가족에 대한 좋은 소식, 월급 인상이나 휴가를 기다리면서 내일을 살지 않습니다. ‘오늘의 모든 풍요로움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슴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많은 책들이 오늘, 현재를 강조한다. 무경계에서 얘기했지만 과거, 미래는 없다고. 오로지 현재만 있다고. ‘카르페디엠

 

20. 오늘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삶이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흐르는 단순한 진리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에 대해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런 사랑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대부분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1.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합니다. 조건이 가장 나쁠 때, 오히려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삶입니다.

부족과 결핍이 창조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21. 당신은 결코 당신의 이력서, 배경, 성적, 실수, 육체, 역할, 직함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 안에는 정의 내릴 수 없는 불변의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추구해오던 것들이 다 정렬되어 있다.

 

22. 삶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더 진실해지고, 정직해지고, 더 진정한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아이가 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아직 정확하게 어떤 그림인지는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22.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궁극적인 배움입니다.

죽을 때까지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노력에서 변화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23. 가장 뛰어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 버렸을 뿐입니다.

약점을 보완하기 보다는 강점을 강화하는 것, 그저 자기의 장애물,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것

 

23. 불행히도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현실에서 쓰고 있어야 하는 가면과 역할들에 가려져 있기가 쉽습니다. 부모, 회사원, 공동체의 리더, 아웃사이더, 모범생, 반항아, 아픈 부모를 돌보는 착한 아이 등의 역할은 우리의 자아를 파묻는 바윗돌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그런 역할이 강요되기도 합니다.

적절한 가면의 수

 

23. “결혼 전에는 좋았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뭔가 잘못된 것 같아.” 결혼하기 전의 그들은 그 자신들이었지만, 결혼한 뒤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남편아내의 역할을 떠맡으려고 했습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스스로 어떤 배우자가 되고 싶은가를 찾는 대신에 말입니다.

딱 내 모습이다. 최근에 너무 냉전이었다. 냉전은 화해의 모드로 돌아서고 있지만 언젠가 또 냉전. 지겹고 돌아서면 후회하는데 이해가 어렵다.

 

23. 난 삼촌 노릇은 훌륭하게 해냈는데, 아빠 노릇을 하려니 정말 힘이 들어.” 삼촌이었을 때는 아이들과 마음으로 교류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되자, 자신이 맡아야 할 특정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역할이 그가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남의 집 자식과 내 자식이 왜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육아휴직만 하면, 직장만 그만두면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역할자체가 진정한 아빠를 가로막는 것

 

25.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자 자신이 그저 그들의 자기만족을 위해 이용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은근히 저자 뒤끝있네. 그렇지만 눈여볼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이다. 시작과 끝. 그리고 작은 부분이 가장 크게 다가갈수 있다.

 

26.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간디에서 히틀러까지, 모든 인물이 될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히틀러가 될 수 있는 면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간디에서 히틀러. 정말 멋진 표현이다.

 

26. 자신에게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단 인정하고 나면 노력으로 그것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26. 자신이 특별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가면을 벗어 버리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순간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삶은 가식적이기 때문입니다. 추가 반대쪽 끝까지 올라가야만, 다시 말해 때로는 진솔한 불평도 늘어놓을 줄 알아야만 진정한 자신이 되는 중간 지점으로 올 수 있습니다.

 

27. 더 이상 필요없게 된 방어술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힘든 시절에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한 뒤, 떠나 보내야 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합니다.

나는 가질 수 없는 능력에 굉장히 슬퍼했다.

 

27. 어떤 인간관계는 잘 풀릴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언제나 의견 충돌과 실망이 있게 마련입니다. 만일 당신이 모든 문제를 떠맡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버리지 못한다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과 자연스러운 것의 차이

 

28. 당신은 이제 자신이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자신이 한 행동들의 근원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착하지 않다는 두려움, 천국에 못 갈 것이라는 두려움, 호감을 못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당신은 보상을 받기 위해 그 역할을 이용한 것입니다.

내가 쓰고자 하는 책의 두려움에 적합한 부분이네. 참고.

 

29.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모두 인정할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역할을 잃는 것이 슬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가까워지는 편이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본래의 당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늘 같은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원래 인정하기가 힘든 법이다. 역할을 잃어버린 나. 집에서의 새로운 역할이 어색하기만 하다.

 

29. 우리는 늘 사건들의 흐름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가 마음먹는 대로 되는 일도 있꼬 그렇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30.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깨닫는 순간 사람들은 심하게 절망합니다. 자신을 알려는 노력의 첫걸음을 시작하려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31. 생명이 얼만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내려는 최초의 시도를 합니다.

그나마 나는 이런 최악의 상황이 아닌 이른 시기에 탐색을 시도한 셈이다.

 

31.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지려면 또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면 일상적인 일에서 그것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입고 있는 옷에 이르기까지. 기쁨과 평화를 주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 ‘하고 싶은일보다는 해야만 하는일에 자신이 얼마나 붙잡혀 사는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안다면 제일 좋다. 그것을 찾기가 어렵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별 방법이 없다. 하나씩 해보면 된다. 나에게는 지금 책쓰기

 

32. 내 마음속에는 아침 늦게까지 자고, 느긋하게 몇몇 군데만 관광하고, 하루 한시간 씩 베란다나 해변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봐야만 성이 차는 열성적인 관광객은 나 자신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내가 꿈꾸는 여행은 바로 이런 것이다.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다음 여행때부터는 꼭.

 

35.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지만, 어쨌든 축하해요.’ 그 순간부터 나는 이 남자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을 말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고,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못된 놈인지를 나만 봐도.

 

35.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심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게 현실적인 정답이다.

 

36. 삶이란 마치 파이와 같지. 부모님께 한 조각,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조각, 아이들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그렇게 한 조각씩 떼어 주다 보면 삶이 끝날 때쯤엔 자신을 위한 파이를 한 조각도 남겨두지 못한 사람도 있단다.

파이를 키우는 것도 답이 될수 있지 않을까?

 

2장 사랑 없이 여행하지 말라

 

38. 사랑, 정의 내리기조차 매우 힘든 이것은 삶에서 유일하게 진실하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반대말이고, 관계의 본질이고, 행복의 근원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가장 깊은 부분이고, 우리 안에 살면서 우리를 연결해주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은 지식, 학벌, 권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행위 너머에 있습니다. 또한 삶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환상과 꿈, 공허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은 진실의 근원입니다

 

38. 사랑이 가진 모든 힘과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어렵습니다. 평생 사랑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얻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사랑을 얻으면 그것이 오래가지 않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갖게 되는 그림입니다.

사랑에 대한 대단한 착각

 

39. 진실한 사랑은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방법으로는 그것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완벽한 동반자나 가장 좋은 친구를 찾으려는 꿈속에서는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39. 우리들 대부분은 무조건적인 사랑, 곧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자신에게 바쳐지는 사랑을 원합니다.

 

39. 하지만 슬프게도 이 삶에서 경험하는 사랑은 대부분 매우 조건적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해주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재미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잘하기 때문에, 살림을 잘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41. 서로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버려야 평화롭고 행복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엄격한 조건을 내세웁니다.

그러니 숨막히고 저항하고 불신하는 거겠지. 나를 돌아보는 시간

 

42. 무조건적인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에게 주는 사랑입니다.

 

42. 우리는 아이들의 웃음이나 좋은 성적, 말을 잘 듣는 것에 대해 보상을 해줌으로써 결국 사랑에 조건을 다는 법을 가르칩니다.

어쩔수 없지 않은가? 보상은 어느정도 필요한 거라 생각이 든다. 그래도 뭘하면 뭘 주겠다는 거래는 이제는 피해야겠다.

 

45. 삶이라는 이 여행을 사랑 없이는 하지 마.

 

45. 우리는 일찍부터 남자를, 여자를, 결혼을, 부모를, 배우자의 부모를, 동료를, 직장 상사를, 심지어는 삶 그 자체를 믿지 않도록 배워왔습니다.

 

48. 우리는 모두 삶, 사랑, 모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그것들을 시도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로만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들은 언뜻 우리를 보호해 주는 듯하지만, 사실은 우리를 가두고 삶에 거리를 두게 합니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습니다. 만약 타야할 자전거와 사랑해야할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그것을 할 때입니다

 

49.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기 도취나 이기주의와 종종 혼동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잘 맞는 짝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렇게 배웠고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49. 사랑이 그토록 많은 것들을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이라면, 대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49. 당신은 당신의 영혼에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때는 스스로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일들로 삶을 채우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 일입니다.

 

49.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생산적으로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늦잠을 자는 쪽이 영혼에 더 많은 영양을 공급할지도 모릅니다.

늦게 일어나면 죄책감이 들고 하루를 잘 보내지 못했다는 강박관념이 강하다. 연구원 과정까지만.

50.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범하면 스스로를 쓸모없고 실패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오히려 남에게 관대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듯이 스스로에게도 친절하고 너그러워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너무 관대하면 안된다. 적당히. 남에게는 관대히. 나에게는 엄격히. 난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51. 결국 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나는 힘들게 보낸 그 사흘을 아무 의미 없이 잊지는 말자고 다짐했어요. 그때까지 살아온 것과 똑같이 살지는 않겠다고요.

나도 이하선 종양이라는 수술을 받았다. 검사결과 다행히 양성으로 판정받았고 위험한 수술이지만 비교적 잘 끝났다. 그때의 다짐이 아마 이랬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내 머릿속에 지우개로 쓱싹. 인간이란 존재가 참 무섭다. 하긴 이래야 인간이지. 그 감정을 그대로 간다면 아마 피곤할수도 있을 것이다.

 

52. 그후로도 계속 그럼 마음 자세를 잃지 않았어요. 파티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가게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베풀수록 더 많은 사랑을 느끼게 되었어요. 더 많은 사랑을 느낄수록 나 자신을 사랑하기도 쉬워졌고요.

 

52.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주위에 언제나 있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장벽을 없애는 것입니다.

 

52.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54.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냥 옆에 있어 줄 수는 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것이 가장 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요?

남자들은 항상 아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든다. 그냥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최근에야 깨달아가고 있다.

 

56.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7. 사랑은 바로 곁에 있어 주는 것이며 돌봐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다. 아마 진리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들과 아내 옆에서 지켜봐준다는 것. 요즘과 같은 행복. 물론 갈등도 있지만

 

60.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 모든 아름다운 경험 속에, 때로는 비극 속에 존재합니다. 사랑은 삶에 깊은 의미를 불어넣는 순수한 재료입니다. 사랑은 살아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우리 안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은 신과 신성함에 대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손을 뻗어 그것을 붙잡기만 하면 됩니다.

신과 신성함에 경험이라. 저자는 죽음을 체험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신의 존재에 대한 체험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것일 것이다. 융처럼

 

3장 관계는 자신을 보는 문

 

63. 생을 다 살고 나서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볼 때, 내가 그 순간들에 한쪽 다리만 걸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바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느끼길 바라요. 나는 남편이 내게 잠시 동안 맡겨진 선물일 뿐, 영원히 내 곁에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어요.

이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무리 사랑해서 만나서 결혼했다고 하지만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때는 이런 결과는 아닐 것이다.

63. 전 생애 동안 우리는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가 선택해서 맺은 관계도 있고, 부모 형제처럼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관계도 있습니다. 그 관계들을 통해 우리는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살면서 엄청난 관계를 맺는다.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그런 만남을 통해 배운다는 말은 결국 많은 상처와 고통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겠지.

 

63. 배우자나 가족,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면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만나는 사람 모두와 관계를 맺습니다.

 

64.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부터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맺고 있는 각각의 관계들에는 나 자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하나의 관계에서 우리가 취하는 태도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관계들에서도 똑같이 드러납니다.

 

65. 우리는 낭만적인 사랑, 곧 연애만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사랑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수만큼이난 주위에 많습니다.

 

65. 우연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란 없습니다..... 지나가는 사람과의 사사로운 마주침에서조차 우리는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관계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와 관계맺는 사람들에게 대해 애정을 갖고 대하기. 그들의 지위가 높고 낮음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주기

 

65. 이성과 사랑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내가 이만큼 하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정식으로 요구는 못하지만 머릿속에는 가득하다.

 

66. 누구나 결혼만 하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리지 않을까?’라는 식의 생각을 해본 적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66. 이성과의 사랑은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매우 독특하고 완벽한 존재임을, 곧 결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내가 쓸모 있고 소중하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이므로

 

66. 관계는 우리의 삶을 치유해 줄 수도 없고 치유 해주지도 않습니다.

 

66. 우리는 모든 개구리가 왕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누군가를 찾을 때까지는 자신이 반쪽에 불과하고, 완벽히 맞추어져야 하는 퍼즐의 일부라고 세뇌되었기 때문입니다.

 

66. 그 대신 특별한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믿게 됩니다.

여자와 같이 나도 영화나 드라마와 같이 내게도 사랑이 다가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67.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는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앤은 무엇엔가 갇힌 듯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열정이 식었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쪽이 심각한 병을 앓으며 죽음을 향해 치달아 가는 상황에서 맺어진 관계의 경우, 이런 일이 흔히 발생합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맺었는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여자란. 인간이란 알수 없다.

 

68. 난 내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 그와의 관계를 이용해 나를 치유하려 했고 성공적인 관계를 맺으려 했는지 깨달았어요. 잭슨이 용기있게 진실을 말해 준 덕분에, 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삶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하면서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들 속에 숨어 있다는 걸 터득했어요.

부부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대화임에 분명하다. 나는 집사람과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면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문제를 알면서도 잘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부터 서운한게 있으면 속에 넣어두지 말고 대화를 해야함을.

 

69. 완전한 삶은 당신 자신 안에서부터 나와야만 합니다.

 

69. 이상적인 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런 무력감은 언젠가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생겨날 것입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완전한 모습은 당신 안에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70. 진정한 해답은 그런 특별한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완성하는 데 있습니다. 사랑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70. 사랑을 찾고 있다면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배울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스승이 나타난다는 것을, 당신이 관계를 맺을 시기가 되면 특별한 누군가가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람들과 어울려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진짜 이 말에 동의한다. 지금의 와이프도 결코 여자로 만날려고 해서 만난게 아니었다. 알고 지내던 오빠동생에서 어느 시기가 되니 연인이 되었고 부부가 되었다. 그 전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정말 소개팅 수없이 했는데 내 짝은 없었다.

 

71. 사랑은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전혀 다른 많은 것들을 우리 문 앞에 가져다 놓을 것입니다. 신에게 사랑을 달라고 기도한다 해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곧장 달려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이 우리 삶에 나타날지 모릅니다.

 

72. 대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나를 화나게 할 때가 많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에게는 가장 훌륭한 스승입니다.

 

 

72. 가족관계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과의 관계처럼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결방법을 찾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 해결 방법이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들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

73.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듯이 관계 속에서 서로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 줍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진다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바라는 이유는 관계를 통해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를 바꾸거나 관계를 변화시키면 완벽해지고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73.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바꾸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꿀 수 없으며, 바꾸려 해서도 안됩니다. 그들이 절대로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또 그들이 변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진정한 그들로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73. 관계는 깨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모든 관계는 상호 작용입니다.

 

73. 만일 우리 관계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가 지루해한다는 뜻이죠, 아니면 더 나쁘게는, 내가 지루한 사람이거나.

 

74. 거울이론의 긍정적인 면은 문제가 자기 안에 있으며, 따라서 접근이 가능하고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 상대방을 더 좋게 고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언제나 당신이 중심입니다.

 

74.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뿐입니다. 자신에 대해 노력하다보면 상황은 저절로 좋아집니다. 관계가 좋아졌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관계는 그대로인데 두 사람이 변화한 것입니다.

 

75. 만일 사랑이 고통스럽고 복잡한 것이라 여겨진다면, 왜 그런가를 추적해 봐야 합니다.

최근 나는 와이프와 냉전 중일 때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어 보인다. 이것 자체가 잘못 된 것이겠지.

 

75. 불행히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지배나 속임수, 심지어 증오라고까지 생각합니다. ....대부분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불행한 관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76.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에 머무르려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 때분이고, 둘째는 모든 관계에는 해결의 여지가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지나가고 영영 다시 못 볼수도 있다.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지금 바로.

 

76. 사람들이 당신의 진실한 마음과 애정에 대해 아무렇게나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또한 사랑에 대한 해묵은 정의가 당신의 현재 삶을 좌우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자기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그리고 과거의 테이프 위에 새로운 것을 녹음함으로써 규칙을 새로 쓸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이런 것이라는 정의가 애당초 가능하기나 하나. 진실한 마음이 가는대로. 테이프 위에 새로운 것을 녹음한다는 표현은 좀 오래되었네. 바꾸어 보면 과거의 파일위에 새로운 파일을 덮어 씌우는 것.

 

77. 상대방을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환상이 제거된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77. 자신의 진실을 상대방과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을 화나게 하는 문제에 대해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변화를 기대하며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생각을 공유하고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대화의 원칙. 항상 진실되게.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하는 것. 협상이 아니잖아.

 

78. 우리는 여전히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에 적합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훈계하려 들고,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에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보여 주고 싶어합니다.

가장 위험한 사고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이들에게 이렇게 은연중에 행동하고 있다. 꼰대가 될 수밖에 없지만 항상 경계해야 하는.

 

78. 미래에 대한 그림과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환상, 계획이나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사랑은 생명을 갖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이끌려는 방향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사랑을 조종하는 데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흐르는 대로 맡겨 두면,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지 않은 놀랍고 멋진 장소로 우리를 데려갈 것입니다.

 

78. 모든 관계가 평생 동안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우리는 관계에서 그것이 완성을 위한 어느 지점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완성에 이를수 있는지 거듭거듭 돌아봐야 합니다.

 

79. 죽음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면 그 관계가 실패했다고 여깁니다. 마치 완벽하고 성공적인 삶이란 95년 동안 지속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성공적이고 완성된 관계란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79. 더 이상 관계가 필요치 않을 때, 관계 그 자체는 성공적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우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끝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

 

80. 사람들은 헤어졌다가 또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아직 관계가 끝나지 않았고,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남아 있을 때 일어납니다. 하지만 때로 겉으로는 관계가 이미 끝났지만 마음속으로 그것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삶에서는 마무리를 지어야할 때가 있습니다. 마무리란 관계의 완성과 실패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80. 관계에 실수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일어납니다. 첫만남에서부터 마지막 작별 인사까지,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관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자신이 미리 갖고 있는 기준을 버릴 때, 누구를 얼마나 오래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신에게 선물 받은 위대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한계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분명 신의 존재를 얘기하는데 다른 저자에 비해서는 그렇게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4장 상실과 이별의 수업

 

당신은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만일 당신이 고통 속에 있다면, 만일 당신이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머리를 모래에 묻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주려는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다.

 

82.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이 우주가 당신을 상실이라고 하는 인생의 박사 과정에도 등록해 놓았음을 깨달아야 해요.”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집과 자동차, 직장, 돈과 젊음,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까지도 우리가 잠시 빌려온 것입니다.

현역에 있을 때 선배와 얘기를 나누었다. 선배가 말했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신대 가까이 있으면서 얼굴도 자주 뵜으면 하는데 다음 보직을 어디로 해야할지 고민이다.” 내가 말했다. “선배님, 진급이 먼저일까요? 어머니가 먼저일까요?” “당연히 어머니가 먼저이지. 그렇게 하는게 맞겠지?”“그럼요 선배님, 저라면 어머니 집 근처 부대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눴지만 결국 그 선배는 진급에 유리한 자리로 갔다. 그 선배를 뭐라 할 수는 없다. 결국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므로. 그만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놓기가 쉽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놓아버린 나도 지금도 아쉬움이 완전 없어지지는 않는데.

 

83. 상실과 이별은 우리 가슴에 난 구멍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주는 사랑을 담아둘 수 있는 구멍이기도 합니다.

 

84. 우리가 그들의 주인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현실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갖고 잇는 것들에 대한 소유권 역시 영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모든 것을 언제까지나 소유하고 있으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그리고 상실을 막으려는 어떤 시도도 허사로 끝납니다.

 

84.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잃어가는지 알고 있으며 그 가치를 이해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85. 많은 사람들이 삶이 곧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생 상실과 싸우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상실없이 변화할 수 없고, 우리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상실없이도 변화할수 있다면 좋을텐데 인간인 이상 불가하겠지/

 

86. 죽음을 포함한 모든 상실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다섯 단계의 반응은, 삶에서 겪는 모든 크고 작은 상실에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

 

87. 우리는 매번 여러 가지 형태로 상실을 경험하며, 그것에 반응합니다. 이렇게 축적된 상실의 경험은 삶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잃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입니다.

 

88. 상실은 우리에게 공허함과 무기력함,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감정을 남깁니다.

 

88.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간이 그 모든 것을 치유하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 시간이라는 약. 정말 죽을 것만 같았는데 그녀없이 살아지더라. 또 다른 여자를 만난기도 하고. 나는 여기에 한가지 더 처방한다. 사람으로 상실된 것은 사람으로 치유가 되어야 함.

 

88. 우리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기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상실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배움 중 하나입니다.

 

89. 곁에 없다는 사실이 언제나 마음을 성장시켜 주지만은 않습니다. 때로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고독감과 공허를 안겨 줍니다. 상실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또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성장 없이는 상실의 경험도 있을 수 없습니다.

 

89.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상실이 무서워서 사랑을 하지 않는 것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있으려나. 만신창이가 되도 사랑을 해야지. 아이를 낳아야지.

 

89. 중년의 나이에 이르면 머리카락은 조금 빠지지만, 외모 못지않게 내면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퇴직하면 수입은 없어지지만,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노년에 이르면 자식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베풀었던 사랑을 돌려받습니다.

외국도 자식에게 손 벌리는 것은 어쩔수 없나보다. 더 자유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입없이는 궁핍한 자유이다. 최소한의 생활비는 벌어야 한다.

 

90. 살아있는 사람과의 이별이 훨씬 더 힘든 경험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음으로 영원히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경우에는 가슴속이나 기억 속에 계속 살아있기 때문에 그와 함께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91. 의학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험을 한 사람들로부터 다음의 공통된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한결 같이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이제 죽음이란 필요 없어진 옷을 벗는 것처럼 육체를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셋째, 그들은 죽음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느꼈고, 자신이 모든 사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더불어 어떤 상실감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92. 상실은 인간을 하나로 묶어 주고, 서로 깊이 이해하게 해줍니다.

 

95.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는 이유는 그 물건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물건과는 상관없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나에게는 애석하게도 상징될만한 물건이 안보이네.

 

96. 난 분명 그들을 사랑했는데, 왜 별로 슬프지가 않지?

난 사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런 반응이 나올까봐 두렵다. 그들을 사랑하는데 왜 울음이 안나올까 걱정이 되는걸까.

 

97. 우리는 각자 다른 시기에 각각의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저마다 유예 기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그 감정들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그 감정들은 어딘가에 안전하게 숨어 있습니다.

유예기간이라. 그렇겠다. 어느 순간에 터질 것이다. 우연히 발견의 그들의 물건에서, 추억에서

 

98. 사람들은 흔히 사랑하던 사람, 특히 뒤섞인 감정을 느낀 부모님을 잃었을 때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상실감을 헤쳐 나가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는 자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98. 책임을 다해 우리를 돌봐 준 사람들의 죽음에 우리는 슬픔을 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야할 사랑을 주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도 마찬가지로 슬퍼합니다.

왜 그럴까. 부모니까. 형제니까. 가족이니까.

 

99. 슬픔의 방식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삶의 어느 한 지점에 묶여 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우리는 치유될 것입니다.

시간과 일을 통해 극복되는 것.

 

99.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봅니다. 그러다 보면 누군의 도움 없이도 홀로 설 수 있게 됩니다.

 

100. 상실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본래의 상실이 일어난 상황으로 돌아게 됩니다.

 

101. 아무리 상실을 겪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결국 찾아옵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면 상실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의 상실입니다.

 

101.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상실을 막을 수도 없고, 상실이 없는 상황을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101. 상실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며, 필연적인 것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102. 상실은 종종 어른이 되는 입문식입니다.

 

102. 사회가 상실을 경험하듯, 가정과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실을 둘러싸고 가정은 혼란을 겪습니다. 그 구성원들이 헤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상실을 충분히 겪고 나면 변화하고 재결합하게 됩니다.

 

103. 고통을 겪는 것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선문답이네.

 

103. 나아가 정말로 소중한 것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당신이 느낀 사랑과 당신이 준 사랑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104. 가장 고통스런 상실을 겪는 와중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온갖 상실과 고통이 당신에게 밀어닥치더라도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상실감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삶이라는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갑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군대의 2, 낭비의 시간이다.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굴러간다.

 

5장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 모두 제로가 된다. 삶의 끝에서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이 얼마나 많은 학위를 가졌으며, 얼마나 큰 집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고급차를 굴리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107. “모든 게 그날 길바닥에서 어린 시절 내게 있던 힘을 떠올린 덕분이에요. 내가 지닌 힘을 기억해내지 못했다면 난 오래전에 죽었을 거에요.” 우리의 진정한 힘은 사회적 지위나 넉넉한 은행 잔고, 번듯한 직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강인한, 그리고 고귀한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09. 우리는 부와 힘을 동등한 것으로 여기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돈을 갖게 되어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면 크게 실망합니다. 가난을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들만큼 많은 수의 부자들이 자살을 합니다. 프로이트는 만일 자신에게 부유한 환자를 진찰할지 가난한 환자를 진찰할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이지 않고 부유한 쪽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부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번 부자이고 싶다. 원하는 대로. 기부도 하고.

 

109. “난 가난해진 게 아니라 재정적으로 파산한 거네. 가난이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지. 그러니 난 결코 가난하지 않아.”

나도 그렇게 얘기하고 싶다. 그러나 정말 이렇게 수용하고 인정하는게 어렵다.

 

109. 가난하다는 것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돈이 바닥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입니다. 돈이 호주머니를 드나드는 것과 상관없이 자신이 언제나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스스로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부유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난하게 생각하는 것의 정반대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부의 출발입니다.

 

110. 우리는 흔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충고를 듣습니다. 때로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정확한 진실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면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보다 더 큰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벤츠가 앞을 지나가면 다시 작아진다. ?

 

110. 수없이 많은 임종의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뉘우칩니다. “난 한 번도 내 꿈을 추구해본 적이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본 적이 없어.”, “난 돈의 노예였어.” 하고 말입니다. “사무실에 좀 더 늦게까지 남아서 일할 걸 그랬어.”,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훨씬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이다. 여기에 부정할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13. 이 우주가 박사님과 저를 같은 공항, 같은 비행기로 이끌었고, 같은 시각에 같은 화장실로 인도한 셈이잖아요?

이렇게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 누군가에는 짜증나는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은총인 셈이다. 어떤 상황에서 나의 입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번주 오프수업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서울로 가는 열차 안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지나가면서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쓰러뜨려 내 옷에 커피가 잔뜩 흘렀다. 순간 짜증이 났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모르는 남자는 그냥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물티슈와 휴지를 찾아 구석구석 닦고 바닥에 떨어진 커피까지 치우는데 상당시간 걸렸다. 화장실을 갔다가 그 남자를 보고 한마디 할려다가 말았다. 이미 커피가 업어진 것 사실이고 지금에 와서 얘기한들 달라질게 없다. 기분좋게 서울 올라가는 그 사람은 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냥 나 혼자만 이 상황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자기 합리화인줄 모르겠지만..

 

113.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이미 일어나도록 예정된 일에 대해, 그것을 막거나 조종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한 행동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일은 신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일어납니다. 진정한 힘이란 그런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리송한 부분이다. 세상 모든 일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모든 일은 그냥 우연일 뿐이고 신이란 존재는 없다고 얘기한다.

 

114. 실수나 무능력한 면들만 바라보면, 그 부분에 자신을 가두게 됩니다. 난 지금까지 부족했어. 하지만 이제부턴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하고 스스로를 말하면서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위험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돈이 더 많다면, 직장에서 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면, 더 많이 존경받게 된다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우습게도 불과 몇 해전까지만 해도 내 모습이었다. 그러니 항상 불만족스럽고 내 환경을 비관하고 내 주변사람들에게 불만이 너무 많았다.

 

114. 왜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고 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래, 지금 이순간이야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그래 내일 더 잘 해보자한다.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나를 자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낙타가 아닌 사자가, 사자가 아닌 어린아이가, 어린아이가 아닌 초인이 될 때까지.

 

115. 죽음을 앞둔 사람은 내일이 없으므로 더 이상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게임을 할 수가 없습니다.

 

115. 신은 우리가 이 삶과 스스로에게 설정해 놓은 한계를 보지 않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나쁜 날은 좋은 날이 될 수 있고, 불행한 관계는 회복될 수 있으며, 여러 잘못들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들으면 마치 정말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직까지 그러나 신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더 믿는다. 신에 의해 좌우된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내일을 꿈꾸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116.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진정한 힘과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이 그리는 미술 작품 속에 있습니다. 자신이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감사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 갖고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일, 자신의 독특함에 감사하는 일. 백만 년이 흐른다 해도 당신과 똑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117. 이런 게 바로 삶이고, 난 더 이상은 필요 없어.

 

117. 우리 안에는 많은 힘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데는 너무도 무지합니다. 진정한 힘은 자신이 누구인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깨닫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20. 이런 반응을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전혀 근거없는 죄의식입니다. 이것은 2차 대전 후 포로수용소의 생존자들이 왜 내가 아닌 그들이 죽었지?’ 하는 의문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함으로써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120. 죽을 사람과 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신이나 우주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질문에 해답은 있을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더 살도록 선택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만일 내가 더 살도록 선택받았다면, 난 지금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천안함, 세월호 참사. 내가 될수도 있었고 우리 아이들이 될수도 있었다. 우리가 선택받은것에 대해 감사하여 제대로 살자.

 

121. 죄의식을 느끼는 심리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다는 자기 비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 내면을 향한 분노입니다.

 

121. 타인의 욕구와 삶은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욕구와 삶은 무시하도록 말입니다. ....종종 우리는 행복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종속관계의 대표적 증상은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너무 늦기 전에 아니오라고 큰 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를 외치는 바틀비처럼. 난 이제부터 바틀비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 강렬한 대사였다. 내 책에 이 내용도 추가.

 

121.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욕망은 죄의식이 자라기에 비옥한 토양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죄의식을 길러내는 전부는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낍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시기에 상실의 고통을 겪은 아이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런 죄의식을 극복하거나 차단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123. 어느 정도까지는 죄의식이 필요합니다. 죄의식이 없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면 경보등도 사라질 것입니다.

 

124. 죄의식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고 있음을, 또는 본래의 모습에서 일탈했음을 알깨워 줍니다. 죄의식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127. 죄의식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가에 대한 것인 반면, 수치심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가에 대한 감정입니다.

 

129. 삶이 아무리 불공평하게 생각되더라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생을 마감할 때 삶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거야.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단다.

어제보다 아름다운 오늘을 위해, 어제보다 성장하기 위해

 

131. 죄의식은 언제나 과거의 일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과거는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다닙니다. 자기 비난은 지금 이 순간의 실체를 회피하는 하나의 길이며, 과거를 미래로까지 끌고 갑니다.

 

132. 고해를 함으로써 우리는 비밀스런 짐들을 덜어 내고, 자신보다 더 큰 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우리가 여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치유의 열쇠는 용서입니다. 용서란 과거를 인정하고 보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132.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를 용서할 때, 자기 비난은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비난이 아니라 용서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 배움을 얻을 때 진정으로 자유로워집니다.

 

6장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134. 삶은 시간이 지배합니다. 우리는 시간에 의해 살고, 또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시간 속에서 생을 마칩니다.

 

136. 시간이 흘러가면 모든 것들이 변화합니다. 안도 변하고 바깥도 변합니다. 우리는 대개 변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조차 그것에 저항합니다.

 

136. 우리가 환영하든 거부하든 변화는 일어납니다. 삶의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변화는 우리에게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136. 유방암을 두차례나 이겨낸 작가 로니 카예는 삶에서 하나의 문이 닫히면 언제나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그 사이의 복도는 매우 좁고 길다.”

 

136. 변화는 대개 지금까지의 문이 닫히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문들의 이름은 끝, 완성, 이별, 죽음 등입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불안정한 시기로 들어갑니다. 그 시기는 닫혀진 문을 보고 슬퍼하면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가 가장 힘이 드는 때입니다.

 

137.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느끼는 바로 그때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시작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변화에 맞서 싸운다면 평생 싸움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껴안는 방법, 아니면 적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138. 많은 이들에게 젊은 시절의 꿈은 늙은 시절의 후회가 됩니다. 삶이 끝나가기 때문이 아니라, 그 꿈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멋지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하루를, 그리고 하나의 계절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삶을 산다면, 우리는 그날들을 다시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후회를 가져다주는 것은 살지 않은 삶입니다.

그래도 지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 열렬히. 늘 꿈꾸는 것인데.

 

140.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부모님을 바라볼까요? 사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다.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141. 우리는 대개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는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봅니다.

 

141. 지금 이 순간에 살지 않으면, 행복을 발견할 수도 없습니다. 과거의 문을 닫지 말고 가끔씩 그 문을 들여다보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42. 애인과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내일 아침 수업 따위는 잊고 대화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한 번에 한가지 일만 하는 겁니다.

중요한 문제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잊고 지내는 것.

 

146. 삶의 완성에는 단 두가지가 필요할 뿐입니다. 탄생과 죽음이 그것입니다.

 

146. 주어진 시간이 다하기 전까지 우리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48. 인간은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을 난 굳게 믿어요

군대 2년은 고통의 시간이지만 그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149.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두려움은 한 가지 좋은 역할을 합니다. , 우리에게 사랑을 선택하도록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성장과 치유의 갈망입니다. 이는 또 다른 선택의 기회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선택, 두려움 대신 사랑을 환상대신 현실을, 과거 대신 현재를 선택하기 위한 기회입니다.

 

151. 두려움 속에서 자란 우리는 미래에도 두려움만을 볼 뿐입니다.

 

156. 트로이는 사랑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친절은 언제나 두려움을 이깁니다. 두려움은 사랑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두려움은 대개 텅 빈 마음 속에 깃들며, 사랑과 친절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 그것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157. 모든 두려움의 근원은 대개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160. 두려움은 항상 과거에 일어난 어떤 경험이나 일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여겨지는 어떤 일들을 걱정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산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닌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사는 것, 그것이 인간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으로 채울 때,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습니다.

 

163.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분노, 방어, 자만심 등 여러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지혜로 바꾸어야 합니다.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사랑과 친절의 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 때 당신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164. 진정한 자유는 가장 두려운 일들을 대담하게 행할 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붙들리지 않고 크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당신은 삶을 잃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게 됩니다.

 

 

164. 헬렌 켈러는 말했습니다.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두려움이 주는 이런 배움들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경이롭고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우리가 꿈꾸던 삶을.

 

7장 영원과 하루

 

168. 억압된 하루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채로 마음속에 남습니다.

 

169. 화가 난다는 것은 우리가 상처를 입었거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말해 줍니다. 많은 상황에서 그것은 정상적으로 건강한 반응입니다.

 

170. 우리 사회에서는 스스로의 감정과 접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인간이 몸을 통해 느낀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185. 놀이는 내면의 기쁨이 바깥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웃음, 노래, , 수영, 등산, 요리, 달리기, 게임 등 즐거움을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189.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은 정말 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취미란 본래 결과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재미로 하는 일입니다

 

8장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202. 인내가 주는 한 가지 배움은 원하는 것을 언제나 얻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원하지만 한동안 얻을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식일지라도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203. 인내심의 열쇠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믿음, 인간이 모르는 큰 계획이 존재한다는 신뢰를 키우는 데 있습니다.

 

203.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내심은 규칙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근육과 같습니다. 날마다 훈련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205. 피해를 당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아.”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삶이 운명의 수순을 밟아간다면,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휴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208.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최악이라고 여기지는 말아야 합니다. 일이 일어나고 전개되는 과정을 신뢰해야 합니다.

 

209. 흔히 우리는 개인의 삶이 건강, , 연애 생활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삶은 결코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삶은 당신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삶은 당신이 여러 상황들에 얼마만큼의 사랑, 자비, 유머, 인내를 실천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209. 우주는 당신이 결혼을 했는지 여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주는 당신의 삶에 누가 있는지 없는 지보다 당신의 사랑의 경험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건강에만 신경 쓰기보다 건강 상태가 어떠하든 당신이 하는 삶의 경험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주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신의 본질이며,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진정한 당신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주가 필요한 것들의 당신 삶 속에 가져다 놓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것을 신뢰하고 인내하는 일입니다.

 

215. 삶에 자신을 내맡기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일어나 내 뜻대로가 아닌, ‘당신의 뜻대로를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218. 나는 받는 법, 감사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인내와 받아들임을 배워야 합니다. 일생동안 나는 끊임없이 베풀었지만 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얻어야 할 배움입니다. 사랑을 받고 보호를 받고, 보살핌을 베푸는 대신 보살핌을 받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221. 나쁜 상황들 속에는 우리는 불행할 대로 불행하지만, 그 사실 자체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상황이 주는 배움을 얻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223. 평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순응할 때입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때입니다.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느낀다면,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 싶다면, 순종할 때입니다.

 

224. 삶을 되돌아본다면, 가장 중요한 순간과 멋진 기회들이 반드시 당신을 세워 놓은 계획과 노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이 그때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의 일치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바도 받아들임이 일하는 방식이며, 삶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9장 용서와 치유의 시간

 

229. 문제는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 없거나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계속 아프게 하는 상처입니다.

 

229. 우리는 용서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용서의 선택권은 상처를 입힌 사람보다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더 중요한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230. 용서하려면 우리에게 상처를 준 상대방의 당시 상태가 최선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잘못 이상의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42. 행복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행복은 일어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인식하고, 그 전체를 어떤 마음 상태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243. ‘다만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라.’ 그 노력이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테크닉을 배우거나 행복 창조 이벤트 행사에 참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행복은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는 데서 옵니다. 그리고 행복은 느낄수록 더 많아집니다.

 

249. 폭풍우는 항상 지나갑니다. 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낮은 없고 영원히 지속되는 폭풍우는 없듯이, 우리는 삶이라는 추위에서 앞뒤로 오가며 좋고 나쁨, 낮과 밤, 음과 양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이 배워야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가르칩니다.

 

10장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257.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배운다는 것을 불가능하며, 이번 삶에서는 깨닫지 못하게 될 배움들도 많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배움입니다.

 

260.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아기의 머리를 만져본 것은? 정말을 음식을 맛보고 즐긴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본 것은? 파란 하늘을 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이것은 다시 얻지 못할 지도 모르는 경험들입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한 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 가까이에 살지만 바다를 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보다 별 아래에 살지만 가끔이라도 하늘을 올려다 보나요? 삶을 진정으로 만지고 맛보고 있나요? 평범한 것 속에서 특별한 것을 보고 느끼나요?

늘 보는 바다지만 바다를 보면 행복했다. 가슴이 탁 트이곤 했다. 매일 아침 출근시 바닷가에 들러 심호흡을 한번하고 파도소리를 맞으면서 그렇게 출근했다.

 

261.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

 

262. 우리들 각자는 내면에 간디와 히틀러가 있습니다. .... 간디는 우리 안에 있는 최상의 것, 우리 안의 가장 자비로운 모습이고, 히틀러는 최악의 것, 부정적이고 편협한 모습이다. 그런 편협함과 부정적인 모습을 걷어 내고, 우리 자신과 서로의 안에 있는 최상의 것을 발견하는 일이 곧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263. 난 지금까지 무난하게 살아왔지만, 한 번이라도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위해 열정을 쏟아 본 적이 있어나?

이 책 통틀어 가장 가슴 깊이 다가오는 말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무난하게 살아왔고 무난하게 업무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것만큼 재미없는 삶은 없다. 지금의 삶이 내가 가슴 뛰는 삶이다.

 

263. “난 진정한 삶을 살았다.”

 

데이비드 케슬러의 말

 

265. 삶이라고 하는 길고 때로는 낯선 여행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발견합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대부분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는 진정 누구인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삶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그리고 어두운 골짜기에 우리는 진실한 사랑과 관계가 무엇인지 배웁니다.

 

266. 마더 테레사는 자신이 한 가장 중요한 일은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삶이란 그토록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분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삶은 어떤 것을 이루어 나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그 이루어 나감의 완성입니다.”

 

266. 우리들 대부분은 죽음은 물론 삶조차도 완성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삶은 이루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266.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은 우리가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배움들을 일깨워 주는 스승입니다. 삶의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라야 삶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삶에서 배운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고, 삶의 소중한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에게서 우리는 영웅을 발견합니다. 그 영웅은 삶에서 한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초월해서 존재하며, 우리를 가슴 뛰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낄수 있도록.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분석)

제목이 인생수업이다. 10개의 강의로 되어 있다. 크게 보면 제목만 보면 각각의 강의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죽음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랑, 상실, 시간, 용서, 죄의식, 나는 누구인가?, 배움, 관계 등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갈등과 그러한 갈등이 죽음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등 등)

 

죽음의 여의사라고 불리는 저자가 왜 죽음에 관해 관심을 가졌고, 그러한 일들에 종사해왔는지에 대한 자기 얘기가 들어가는 한 장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물론 자서전을 읽으면 되겠지만.). 그리고 그러한 삶을 통해 저자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으면 한다.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 등)

 

아무리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심리학자가 삶에 대해 얘기해도 죽어가는 보통 사람의 얘기만큼 큰 울림은 없을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교사들이다.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의 강으로 내몰린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9페이지)”

그리고 사람들이 삶에 대한 태도가 변하게 되는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들에게서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책을 집필할때 중요한 점을 깨달았다. 아무리 자기가 논리적이고 어떤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한다고 할지라도 실제 사례만큼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책을 쓰고자 하는 내가 주의깊게 봐야할 점이다.

 

직장을 그만둔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아무리 백번 잘한 일이야라고 생각을 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마음속에 묻어두고 있던 문제를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아직 나는 세상을 아직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들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정말 잘 한 일이야’.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래서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좋은 것은 같이 나눠야 되고 내가 능력이 된다면 씨앗들을 뿌리고 싶다는 소망까지.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저자의 눈으로-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이 책을 읽는 연령대별 독자들은 아마 느끼는 것들이 너무나 다를 것이다. 죽음이 얼마남지 않은 중장년층들, 멀게만 느껴지는 청년층, 그리고 죽음자체를 생각하지 않은 청소년들.

저자는 수 많은 죽음을 목도해왔다. 내가 저자라면 이들의 죽음을 10, 20, 30대 등과 같이 연령대별로 공감할 수 있는 죽음으로 구분해서 <10대들을 위한 인생수업>, <20대를 위한 인생수업>과 같이 세부적으로 구분해 봤을 것이다. 이 책을 10대나 20대들에게 읽으라고 하면 경험하지 않은 일들이기에 크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기 또래의 경험이 결국은 가장 크게 와닿을 것이기에 이렇게 구분해서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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