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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11시 08분 등록

저자소개: 빅터 프랭클 (*함규진의 유대인의 초상에서 발췌)

 

빅터 프랭클은 1905 3 26일에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슈타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가브리엘은 공무원이었고, 어머니 엘사는 대대로 랍비를 배출해온 집안 출신으로 모두 경건한 유대인 중산층이었다. 2 1녀의 차남인 그는 훗날, 아침마다 유대식으로 기도를 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릴 때 기억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생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그가 지망한 것은 랍비가 아니라 의사였다. 겨우 3세 때 “나 커서 의사 될래!”라고 하자, 본래 의사를 꿈꾸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공무원을 선택했던 아버지 가브리엘은 아주 대견스러워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의과대학을 견학시켜주곤 했으며, 프랭클은 의과대생들조차 진저리를 치는 시체 냄새와 포르말린 냄새를 흐뭇한 표정으로 음미했다고 한다.

 

어린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의사의 꿈은 의사놀이로도 이어졌다. 장난을 좋아하고 어찌 보면 ‘교활’하기도 한 그의 면모는 그때 이미 싹수를 나타냈다. 여동생 슈텔라와 의사놀이를 하며 “손님,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있네요. 수술을 해야 해요” 하고는 여동생의 입에 가위를 넣고 무언가 하는 시늉을 내더니, 다른 손에 감추어둔 돌조각을 내보이며 “수술이 잘 끝났어요. 이걸 잘라냈으니 이젠 안 아플 거예요. 그럼 수술비 내세요!” 이렇게 말하고 부모님이 여동생에게 준 용돈을 우려냈다는 이야기다.

 

12세 때는 11세 때 프로이트가 간접경험한 ‘아버지의 치욕’과 흡사한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라이히스 다리를 혼자서 건너가는데, 불량소년 5명이 그를 막아서더니 “너 유대인이지?” 하며 시비를 걸더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비슷한 상황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모욕을 받아들였고, 이는 어린 프로이트에게 분노와 경멸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러면 프랭클은? 그의 말대로라면 저항하지도 달아나지도 않았다. 다만 침착하게 “맞아. 나 유대인이야. 그래서 뭐? 유대인은 인간도 아니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불량소년들은 주춤대더니, 그의 솜털 하나 건드리지 않고 가버렸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는 불량소년들조차 인간미가 넘쳤던 것일까? 프랭클은 이 에피소드를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한 결과, 그들의 양심이 눈을 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이야기다. 아무튼 아버지에게 실망한 어린 프로이트가 ‘정복자’를 꿈꾸기 시작하고 결국 ‘아무도 손대지 못했던 정신세계의 정복자’를 지향해나갔듯, 이 에피소드도 프랭클의 인생 경로에 의미심장한 지표가 되었다. 그는 ‘박해받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순교자도 투사도 아닌,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신념을 지켜나가는 ‘정신적 영웅’이 될 것이었다.

 

1918,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으며 바야흐로 암울한 시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13세가 된 프랭클은 개인적으로 알찬 성장 시대를 맞이했다. 그는 명문 슈페를김나지움의 우등생이었고, 10대 청소년을 넘어서는 영역에 벌써 발을 디디고 있었다. 그는 학과 공부뿐 아니라 철학, 심리학, 정치학까지 새로운 지식을 열광적으로 흡수했으며, 정신분석학의 기틀을 다지고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있던 프로이트와 편지로 대화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공원에 앉아서 생각을 거듭하다가 그 자리에서 논문 한 편을 써서 프로이트에게 보냈다. 프로이트의 반응은 프랭클의 기대 이상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국제저널』에 싣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직 대학에도 가지 못한 10대 학생이 하루아침에 쓴 논문이 ‘당대 최고수’에게 인정을 받고,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학술지에 실리다니! 논문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져서 프랭클이 김나지움을 졸업한 1924년에야 게재되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기까지 꽤나 오래 걸렸던 프로이트에 비해 프랭클의 전도는 양양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평생의 취미로 삼게 될 암벽 등반에 입문한 것도 이때였다(뭐든 ‘어려움에 도전해 극복’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70대에도 자일과 로프를 둘러메고 암벽을 탔으며, 그래서 등산객들 사이에는 그가 세계적인 심리학자가 아니라 ‘훌륭한 등반가’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프랭클은 1923년에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빈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신경학과 정신의학을 전공한다. 1924년에는 ‘오스트리아 사회주의 청소년협회’ 회장을 맡는 등 정치에도 손을 댔지만, 곧 의학 공부와 심리치료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냥 순조로운 듯했던 그의 앞길이 이때쯤 사잇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불운에 의해서라기보다 스스로 택한 길이었다. 마침내 『정신분석 국제저널』에 논문을 실은 프랭클은 유명한 빈정신분석협회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고, 어렵지 않게 프로이트의 추천을 얻어 가입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면담을 맡은 폴 페데른(Paul Federn)은 프랭클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일단 의과대학부터 마치고 보자’는 뜻을 전했다. 실망한 프랭클은 이를 계기로 정신분석과 프로이트 이론 자체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복잡한 인간의 행동을 오직 쾌락 원칙으로만 설명해도 되는 것일까? 유년기의 경험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다면, 인간은 사실상 진정한 자유를 가지지 못한 존재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서, 프랭클은 한때 프로이트의 동지였다가 결별한 아들러에게 접근했다.

 

1925, 그는 아들러 학파에 가입했으며 프로이트의 잡지에 논문을 실은 지 1년 만에 아들러의 잡지에 논문을 실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러의 심리학에도 곧 회의를 느꼈다. 프로이트와는 달리 쾌락보다 권력을 중시하지만, 아들러도 단순한 원리로 사람의 행동을 풀이하려는 입장임은 마찬가지였다. 또한 프로이트나 아들러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인간을 ‘해석’하는일에 중점을 두면서, 그런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변혁’을, 다시 말해 갱생할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었다. 프랭클은 심리치료사의 일이란 환자가 스스로 일어서게끔 돕는 데 있지, 환자를 치료사와 과거 앞에 무력한 존재로 만들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는 데 있지 않다고 보았다. 프랭클은 자신이 프로이트와 아들러에게 큰 빚을 졌으며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선 덕분에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라고 겸손한 듯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말을 되새겨 보면 그가 두 거인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 있다는 뜻도 된다. 그는 정신분석의 치료 가능성을 계속해서 의심했으며,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호전되었다는 사람은 일시적이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1926, 그는 뒤셀도르프의 개인심리학 국제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영광’을 얻었지만 그 자리를 빌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원칙을 여러모로 비판해버렸다. 이런 ‘배은망덕’에 프로이트가 그랬듯 아들러도 펄펄 뛰었으며, 몇 개월 뒤 그는 아들러 학파에서 추방당했다. 이로써 정신의학 계통에서 고립된 셈인 프랭클은 다소 의기소침해졌지만, 곧 무소의 뿔처럼 자신만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22세의 의과대학생에 불과했지만, 우울증과 이에 연관된 자살 문제에 일찍부터 관심을 보이면서 그 분야에서 자신의 입지를 꾸준히 쌓아두었다. 당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혼란스러웠던 빈에서는 청소년 자살자가 속출했는데, 프랭클의 계획에 따라 청소년 상담센터를 세우자 4년 만에 자살자가 1명도 나오지 않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빈의 상담센터가 성공하자 프랭클은 유럽의 다른 6개 도시에도 센터를 개설할 수 있었다.

 

그는 실무뿐 아니라 이론에서도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나갔다. 당시 유럽 지성계를 뒤흔들던 철학책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존재와시간』이었다. 프랭클도 이 책에 열심히 매달렸으며 마침내 인간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접근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세계 내에 던져진 존재’이며, 따라서 우연을 벗어날 수 없지만 전혀 허무한 존재는 아니다. 그와 연결되어 있는 ‘세계’가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속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를 찾게 될 때, 그는 던져진 존재인 자신을 넘어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프랭클은 심리학적 기반에 철학적 사유를 더하고, 자신이 살면서 체험해온 지혜와 판단을 덧붙여 ‘로고테라피’를 구성해냈다. 로고스(logos)와 테라피(therapy)를 결합한 이 신조어는 인간이 과거에 얽매여 살 것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도록 한다. 그리고 무의식이나 자아에 머물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초월하도록 한다.

 

1937, 프랭클은 마침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여동생 슈텔라의 집에 자신만의 정신신경과 병원을 열었다. 그러나 빈은 점점 거칠어지는 나치당의 분란으로 흉흉했고, 4년 전에 독일을 장악한 히틀러의 마수를 막을 힘도 없었다. 1938 3 11, 오스트리아는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프랭클은 그날, 빈 중심가의 극장에서 강연을 하고 “총통 만세! 유대인들은 꺼져라!”라는 나치들의 외침이 가득한 거리를 한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걸어 귀가했다.

 

오스트리아를 접수한 나치는 곧바로 무차별 학살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유대인들의 인권을 하나하나 박탈해갔다. 유대인은 전문직에 종사할 수 없고, 건물이나 기업을 소유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 다닐 자격도 없었다. 자동차나 마차를 타고 다녀서도 안 되었다. 강제로 거리 청소 등에 동원되어도 항의할 수 없고, 유대 교회가 불타고 물건을 마구 훔쳐가는 데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모든 유대인은 그들을 상징하는 노란색 별을 옷에 붙이고 다녀야 했고, 이름도 남자는 이스라엘, 여자는 사라를 덧붙여 불러야 했다. 예배, 결혼식, 음악회, 장례식 등 문명사회의 인간이 누리는 모든 축제와 의례에 참석할 자격도 송두리째 박탈되었다.

 

오스트리아를 접수한 나치는 유대인들의 인권을 하나하나 박탈해갔다. 모든 유대인은 그들을 상징하는 노란색 별을 옷에 붙이고 다녀야 했다.유력한 유대인들은 속속 망명길에 올랐으며, 프랭클의 여동생 슈텔라도 뉴질랜드로 떠났다. 그러나 프랭클은 앞서 신청한 미국 비자가 나왔는데도 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극도로 쇠약해져서 먼 길을 떠나기가 불가능한 부모를 버려두고 갈 수 없다는 이유가 있었다. 로스차일드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프랭클의 의사 자격증은 박탈되었으며, 병원도 빼앗겼다. 그러나 당분간 유대인 환자를 진료하는 일만은 허용되었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암암리에 말살하려고 도입한 ‘정신병자 안락사 계획’에 유대인들이 휘말려 죽어가는 것을 막는 일을 저버릴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앞의 위험이 두려워서 등을 돌리는 것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큼 쓸모 있는 전문가는 나치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여동생을 속여 넘겼던 것처럼, 불량소년들의 린치를 피했던 것처럼, 학창 시절 야단치는 선생님들을 청산유수의 언변으로 구워삶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치들을 잘 구슬러서 위기를 넘길 수 있으리라고 자신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심지어 새로 가정을 꾸리기까지 했다. 상대는 로스차일드 병원의 간호사인 틸리 그로서였다. 두 사람은 1941 12월에 결혼했으며, 그 직후로는 나치가 유대인의 결혼조차 불허했기에 마지막으로 나치 치하 빈에서 결혼한 유대인 부부가 되었다.

 

1942 9 25, 마침내 운명이 프랭클 부부의 신혼집 문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프랭클이 졸업한 슈페를김나지움으로 끌려갔다가 임시 수용소인 체코슬로바키아의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프랭클의 부모, 장모, 형 발터도 함께였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던 아버지 가브리엘은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테레지엔슈타트에서 병사했다. 1944 5월에는 장모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으며, 도착하자마자 ‘처리 대상’으로 분류되어 가스실에서 죽었다. 10월에는 프랭클이 이송 열차에 올랐다. 아내는 이송 대상 명단에 없었지만, 자청해 남편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그들의 인연은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 안이 끝이었다.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남녀로 분리 수용되면서 부부는 떨어졌으며, 그것이 마지막 작별이 되었다. 얼마 후 아내는 베르겐벨센 수용소로 이송되어 죽었고, 테레지엔슈타트에 남아 있던 어머니와 형도 아우슈비츠로 왔다. 가족 상봉은 없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가스실에서, 형은 강제 노동 도중에 최후를 맞이했다.

 

프랭클은 1945 4 27, 튀르크하임 수용소에서 미군에 의해 해방 되었다. 그는 나치가 소멸된 빈에 돌아왔다. 그리고 의사 일을 계속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저술하는 일도 잊지 않았으며, 그 책은 27개 언어로 번역되고 영어판만 400만 부가 팔렸다. 가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여동생과 다시 만났고, 재혼도 했다(이번에도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엘리 슈빈트였다. 두 사람은 틸리의 죽음을 공식 확인하고 이틀 만에 결혼했다). 놀라운 책을 쓴 놀라운 사상가로서 세계 각국에서 강연회도 열었고, 더 많은 환자와 더 많은 암벽과 더 많은 책을 접했다. 그리고 1997 9 2, 심장수술의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1984년 판에 부친 서문

 

3 우선 나는 우리 시대의 불행을 기록해 놓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 나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대단한 성과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목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 이 책을 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이것이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적색 표지에 철조망이 그려진 강렬한 디자인이었다. 이번 표지도 그렇지만 절대 매력적인 표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고 책 제목(영문 제목 역시)도 죽음, 수용소 등의 단어가 있음에도 나는 그 때 왜 이 책에 손이 갔을까. 이 책이 갖고 있는 이끌림은 오직 순도 100%의 진정성 덕일 것이다.

 

5 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 뿐이었다.그리고 만약 강제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입증된다면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귀울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6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욕과잉 vs 무관심.

 

7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그 의미를 풀어보면,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제목은 우리의 비극적인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샘솟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붙여진 것이다.

비극과 낙관이라는 상황에 붙여진 다른 시간차원.

 

옮긴이 서문

 

8 이 책과 나의 첫번째 만남은 여기서부터였다. 전쟁이 휩쓸고 간 거리, 추위와 굶주림에 고픈 배를 움켜잡고서 어지럽고 메스꺼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가판대에 놓여 있는 헌 책 한 권이 겨우 눈에 들어온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는 앉은 채로 읽어내려갔다. 전율과 감동으로 몸서리치며 번쩍 정신이 든다. ‘, 그래도 거기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은가.’ 널브러져 앉은 내 꼴이 부끄러워서 벌떡 일어났다.

옮긴이 서문도 책만큼이나 내용이 강렬해서 도대체 옮긴이가 누구인가 다시 봤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픈 배를 움켜쥐고 쓰레기통에서 남은 음식을 건지는 것이 아니라 가판대에서 헌 책을 잡다니. 배고파서 걸을 수가 없는데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읽다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인 상황이지 않나. 옮긴이를 보니 이시형. 1934년 생이다. 1950년 전쟁 당시 17. 아마 이 장면은 1953년 그의 나이 20세가 되었을 때 즈음이었을까. 이시형 샘은 화병을 세계정신의학용어로 만든 분이라 한다. 그림자의 이부영 샘은 1932년 생. 

 

8 연단에서 떨리는 환자에게 더 떨려보라는 그의 역설기법은 나의 대인공포 클리닉에서 사용하는 핵심 치료기법이다.

 

9 얇은 책 한 권이 한 인간에게 오랜 세월 이렇게 큰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다.이 책은 그만큼 진실하고 설득력이 있다. 이론이 아닌 극한의 상황을 겪어낸 그의 체험담이기 때문이다.

이론이 아닌 체험담. 체험담에서 이끌어진 살아 있는 이론. 여기에 이 책의 미덕이 있다.

 

10 그는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성자처럼 버티어 나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환해온 산증인이다.

성자까지는 힘들더라도 삶의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다면.

 

강제수용소에서의 그의 경험은 이제는 개인의 경험이 아닌 인류의 경험이 되어 버렸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이 책의 감동은 여전히 남아 있다.

 

추천의 글

 

12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 또 어떤 사람은 재능이 아까워서라고 한다.

스스로 재능이 아까와서 자살 안한다고 말할 정도의 재능은 무얼까. 축복이네. 러셀은 자서전에서 우울감에 자살을 하려다가도 수학이 너무 재미있어서 못했다고 하더라. 공자도 하늘이 생명을 좀 더 허락해준다면 주역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하고.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쓰다 보면 내가 가진 것, 나에게 소중한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겠다.

 

1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25 그는 절대로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인형이건 장난감이건 이름을 지어준다.그렇게 이름을 짓고 부르다 보면 없던 영혼도 생길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거꾸로 이름을 박탈하고 숫자로만 대하는 경우는 영혼 없는 물체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26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 남게 마련이다.

여러 질환으로 시달리는 환자의 경우는 어떨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지만 긴 병 자체를 겪으며 살아가는 환자들의 마음 상태는 어떨까. 병을 앓을 때에는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수용소에 갇힌 것과도 같다. 환자의 마음 수련은 어떠해야 할 지 생각해봐야겠다. 나에게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고.

 

27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30 왜냐하면 이 전쟁은 우리에게 신경과민 상태와 강제수용소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35 “아우슈비츠야.저기 팻말이 있어.”

그 팻말을 본 사람과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얼어 붙었을까. 지금 들어도 소름 끼치는 이름인데.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아우슈비츠!가스실,화장터,대학살.그 모든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이름,아우슈비츠!기차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불쌍한 우리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구해내고 싶다는 듯이……

 

38 전쟁기간 중 마지막 몇 년 동안 아마도 아우슈비츠가 유럽에서 가장 희한한 곳이었을 것이다.수용소의 대형창고는 물론 나치대원들의 수중에도 금,,백금,다이아몬드와 같은 값비싼 보석들이 흘러넘쳤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게.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반짝거리는 보물창고였겠다. 한 쪽에는 금이빨까지 빼앗긴 헐벗은 사람들이, 한쪽에는 번쩍이는 귀중품들이 산을 이루고 있는 모습.

 

43 그 화장터의 문에는 유럽 여러 나라 말로 목욕탕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화장터로 들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비누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비누 한 조각씩 나눠주기로 한 것은 비록 저항을 막기 위한 미끼였다고는 해도 심리를 잘 파악했다는 점에서 디테일에 강한 누군가의 아이디어였을 텐데. 그런 세심함이 그런 잔악함에 활용되다니. 여러 나라 말로 목욕탕이라 썼다는 것도 그렇고.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요새 엔간한 제품 설명서가 여러 나라 언어로 되어 있고 광고 역시 하나의 광고를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걸 보며 이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조종같다는 생각이 든다.

 

46 하지만 결혼반지나 메달 혹은 호신품 같은 것을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되느냐고 묻는 순진한 사람도 있었다.이 말을 듣는 순간 일을 도와주기 위해 와 있던 고참 수감자가 웃었다.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압수당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황을 알고 있는 지금,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의 순진함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우리 인생이랑 다를 바가 뭘까. 어차피 유한한 삶 뭘 그렇게 안간힘을 다해 쥐고 살 필요가 있는가.

 

49 그 동안의 삶과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물건 중 과연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는 이런 물건이 하나라도 있을까. 그간의 삶과 현재의 나를 연결시켜주는 물건. 영화를 보면 당시 유태인 예술가들은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를 내어 주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 하던데. 화가에게는 붓이, 작가에게는 펜이 그런 물건이었을 것이다. 나의 정체성 또는 나의 지금까지의 삶을 드러내는 물건은 무엇일까. 딱히 없다는 것이 참. 찰나의 예술이라는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는 영혼이 분리되지 않는 한 몸이 그 물건이 되겠다.

 

51 이것은 주변환경으로부터 자기 마음을 어느 정도 분리시켜 어떤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데,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마음가짐을 가꾸었다. 우리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소외효과. 낯설게 하기.

 

59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유용성으로 판단되는 시대.

 

68 만약 그때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나의 감정결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일을 기억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왜냐하면 당시 그 일이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불러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74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76 나는 그의 성격을 진단하고, 그에게 정신요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어릴 적 간첩들은 손금을 볼 줄 안다고 들었던 거 같다. 손금을 보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쉽다고. 진위여부와 상관 없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은 의미 있겠다.

 

77 하지만 내 도움을 받고 있는 그 카포가 가슴에 나에게 쏟아내고 싶은 말을 품고 있는 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그의 옆자리가 나에게 보장되어 있었기때문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비슷한 캐릭터의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에게 수수께끼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의사였다.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기대한 역할을 한 건 아니었지만.

 

81 그와 같은 긴장상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할 필요성과 결합되어 수감자들의 정신세계를 원시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린다.밖에서 정신분석을 배운 적이 있는 동료 수감자들은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퇴행현상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데,이것은 정신세계가 원시적인 수준으로 퇴보하는 것을 말한다.

 

86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경험했던 영혼을 파괴시키는 정신적 갈등과 의지력의 충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95 몇 시간동안 나는 마음 속으로 글을 썼다.아우슈비츠 소독실에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나는 작은 종이 조각에 요점이 되는 단어들을 속기로 적었다.

신영복 선생님과 류시민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화가 이중섭은 담배 속지에 그림을 그려서 은지화라는 장르를 만들기도 했으니. 예술혼과 정신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허약한가. 그나마 정신적으로 천박하진 않음을 위안 삼아야 하나.

 

95 그러다가 그 다음 10분 동안 (이 시간이 지나면 영매가 영혼을 불러내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고 모임이 끝난다)종이 위로 천천히 연필을 움직이더니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패자에게 슬픔이라는 라틴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닌가.서기가 라틴어를 배운 적이 없다는 것과 패자에게 슬픔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단지 기억이 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는 아마 살면서 한번쯤은 그런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말이 우리가 석방되기 전,전쟁이 끝나기 불과 몇 달 전인 바로 그 시점에 그의 영혼에 작용을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융의 자서전도 그랬고 영혼과 꿈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신비란. 조짐과 징조.

 

99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너무나 사치이듯.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가둬두기엔 너무나 크고 숭고한 의미를 갖고 있는 거 같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102 사랑은 영적인 존재,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104 어느 날 저녁이었다.죽도록 피곤한 몸으로 막사 바닥에 앉아서 수프 그릇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동료 한 사람이 달려왔다.그리고는 점호장으로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서 우리는 서쪽에 빛나고 있는 구름과,짙은 청색에서 핏빛으로 끊임없이 색과 모양이 변하는 구름으로 살아 숨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진흙 바닥에 패인 웅덩이에 비친 하늘의 빛나는 풍경이 잿빛으로 지어진 우리의 초라한 임시 막사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해가 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그의 눈과 마음, 그 좋은 걸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달려가 알려주는 마음. 인간이 만든 폐허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존재함을 보여준 자연. 비극 속의 드라마다.

 

107 바로 그 순간 새 한마리가 날아와 내가 파놓은 흙더미 위에 앉았다.그리고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이 역시 자연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위안하는 자연.

 

108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고 촌극을 하는데 그 중에는 수용소의 현실을 풍자한 것도 있었다.그 모든 것은 현실을 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며,실제로 그것이 현실을 잊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순신이 항복한 왜인들에게 마당놀이를 허했다고 한 일기가 생각난다. 그 때엔 왜인들도 참 어지간하다. 그 와중에 마당놀이가 하고 싶을까 했는데…(저녁에 항복해 온 왜인들이 광대놀이를 벌였다. 장수가 된 사람으로서 가만이 앉아 보고 있을 일은 아니었지만, 귀순한 왜인들이 간절히 마당놀이를 하고 싶다 하기에 금하지 않았다).

 

111 바이올린이 흐느끼는 소리에 나도 덩달아 흐느꼈다.바로 그 날은 어떤 사람이 24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었다.그 사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다른 편 막사에 누워 있다.어쩌면 겨우 몇 백 야드 혹은 몇 천 야드에 불과한 거리에 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절대로 갈 수 없는 그 곳에 있는 사람.그 사람은 바로 내 아내였다.

!이건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빅터 프랭클의 아내는 수용소에 갈 필요도 없는데 남편을 따라 간 거였다는데. 수용소에서의 바이올린 소리, 젊은 아내의 생일.

 

113 유머는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114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삶의 기술로서의 유머 감각 그리고 낯설게 하기.

 

1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했다.이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또 아우슈비츠는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123 죄수들이 침상 위에 빽빽하게 누워서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방문객을 바라보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 어떤 사진인지 알 거 같다.

 

125 나는 이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들려주었고 그때서야 그는 내가 그 사진을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전혀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게. 알고 보면 형편이 그나마 나은 사람들이었던 것일 수도.

 

155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단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일반적인 수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다.

 

163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 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164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를 제공한다.

고통과 시련의 의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무엇을 구원하기 위함인가.그간 강점, 재능, 달란트 등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면 그림자,고통,시련, 십자가 등에서 삶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나의 십자가는 뭘까.

 

165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그리고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

 

168 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169 무엇이 내적 소유를 이룰 수 있으며 또 이루어야만 하는 것일까?

 

178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듯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182 인간의 정신상태 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올 해 내가 자주 아팠는데 정신적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이번 기회에 멘탈이 강해지는 해로 거듭나면 좋겠다.

 

185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니체가 말했다.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딜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4년 전에 읽었던가.췌장암을 앓고 있는 환자분이 계셨다.며느리는 집을 나갔고 아들은 택시 운전사라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다.너무 예쁘고 기특한 어린 손녀와 함께 치료를 받으러 오셨었다.다른 걸 다 떠나서 그 어린 손녀가 눈에 밟혀서 이 할머니가 꼭 나으셔야 하는데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지금도 눈물이 난다.그 때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게 되었고 바로 이 구절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말에 밑줄을 긋고 할머니께 손녀를 생각하며 꼭 이겨내시라 했었다.하지만병마는 정신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니.결국 그 분은 돌아가셨다. 사실 이 책을 이번에 다시 읽으며 그 때의 상황이 자꾸 생각나 마음이 좋지 않다.

 

191 이런 경우,두 사람에게는 인생이 그들로부터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으며,미래에는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192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그는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나의 과업은 무엇일까.책임감을 느낄, 완성해야 할 나의 인생 과업은 무엇일까.

 

198 하지만 나는 미래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 아니었다.그 미래에 드리워져 있는장막에 대해서도 얘기했다.또한 나는 과거에 대해서도 얘기했다.과거에 있었던 그 모든 즐거운 일들과, 그 빛이 현재의 어둠 속에서도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지를.이때 나는 또 시를 인용했다.내 스스로 설교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대의 경험,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201 내 말은 효과가 있었다.불이 다시 들어와 주위가 밝아지자 누추한 몰골을 한 동료들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나에게 다가와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 역시 정말 감동적인,영화의 한 장면 같은 컷이다.

 

204 인간의 자애심은 모든 집단,심지어는 우리가 정말 벌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6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혹은 악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말하자면 순전히 한 부류의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수용소 감시병 중에도 가끔씩은 좋은 사람이 끼어 있을 수도 있다.

 

강제수용소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층은 아주 심오한 곳까지 이르러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수용소라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209 지난 몇 년간,우리가 얼마나 많이 꿈에게 사기를 당해왔던가!자유의 날이 와서,석방되고,집으로 돌아가고,친구와 인사를 나누고,아내를 포옹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는 꿈,그런 꿈을 꾸었다.오히려 너무 자주 꾼 경향이 있었다.

36년 일제 식민 치하를 생각해도 그렇다. 1919년 태극기를 부여 잡고 골목골목 쏟아져 나와 만세를 불렀을 때만 해도 그 후로도 26년이나 지나야 조국의 해방을 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211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2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224하지만 정신분석과 비교해 볼 때,로고테라피가 덜 회고적이고, 자기 성찰을 덜 요구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로고테라피가 맞는 거 같다. 기존 심리학 관련 책들을 보면 무조건 어린 시절에서 현재의 문제 뿌리를 캐내려고 하는 것이 나한테는 거부감이 들었다. 거부감이 들면 그게 바로 저항이야라고 하는 것도 짜증났고. 딸이라서 내가 태어난 후 며칠을 할머니는 내가 있는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 들었다. 그래도 그게 나한테 별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별로 서운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 기억에도 없는 할머니인데. 심지어 우리 큰 애는 내가 조리원 나올 때 데리고 올 생각도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지 몰라. 그런데 기존의 정신분석으로는 그런 거 하나 하나 끄집어 내 너무 의미 부여를 한달까. 최소한 나는 그랬다. 뭔가 미래지향적인 것이 없을까 했는데 로고테라피는 미래에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아!이거다! 싶더만.  

 

그러나 실제로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그렇게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225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235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는 니체의 말에는 이런 예지가 담겨져 있다.

 

236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237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항상성이 아닌 정신적 역동성.그를 위한 긴장.대극에서 오는 긴장.그 대극이라 함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239 여기에 덧붙여서 근래에 들어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는데,그것은 그동안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전통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그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244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이 점에 있어서는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245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246 “인생을 두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이 시각도 참신하다.YOLO니 뭐니 하며 하나 뿐인 인생에 방점을 찍는 경우와 지금 생이 두 번째라고 생각하는 경우와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진다.

 

249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3번과 관련하여 시련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치사하고 짜증나는 상황을 겪고 있는데 그 상황을 풀려는 노력, 해당 인간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그냥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살다 보니 풀리지 않는 문제와 인간관계가 있는데 그걸 애써 풀려고 하는 것도 부질 없더라. 곧 이것도 지나갈 것.

 

250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잠재력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253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나는 바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259 그런 사람들 중에는 옛날 같으면 정신과 의사 대신 목사와 신부, 랍비를 찾아갔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그런데 지금은 성직자에게 가지 않고, 의사를 찾아와서는 이렇게 묻는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65 “아빠. 왜 우리는 선하신하나님이라고 하지요?”

아이들의 놀라운 질문.나도 어릴 적 하나님을 왜 선하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러면 지옥을 왜 만들어. 우리를 사랑한다며.

 

266 “하지만 아빠.이걸 잊지 마세요.처음에 홍역에 걸리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예요.”

병주고 약주고의 끝판왕.

 

266 하지만 그 랍비는 정통 유대교도로서 자기가 죽은 후에 자기를 위해 카디쉬(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를 올려줄 자식이 없다는 절망적인 시각으로 자기 고통을 평가했다.

 

268 ‘너희가 흘린 눈물을 내가 다 알고 있노라고 시편(시편 568)에도 쓰여 있지 않습니까?

 

280 불면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결국 어떻게든 잠을 자야겠다는 과도한 의욕을 갖게 하는데,이것이 그 반대로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283 자기 연민이든 멸시든 간에 환자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치료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데에 있다.

소외효과로서의 초월. 몰입과 초월을 적절히.

 

284 어떤 시대든 그 시대 나름의 집단적인 신경증이 있었고,어느 시대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치료법이 있었다.

 

286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하자면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289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감히 인간행동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기계나 자동장치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있다.

 

289 내가 동부 해안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보완이 되도록 서부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으아 대박!! 너무 웃긴다. 월든의 소로우 같은 시니컬한 유머감각.그러게 서부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할 건데. 그나저나 빅터 프랭클도 대극,보완에 대한 감이 있다.

 

291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운명과 팔자는 인생의 어떤 범위를 만들어준다.상한선과 하한선은 정해져 있으되 그 범위 안에서 어느만큼까지 갈 수 있느냐는 인간의 판단에 달려 있다.

 

292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기때문이다.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그 모든 것에서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하는 것’, 이 말은 독일어로 쓰인 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이다.

삶에 대해 긍정하는 것.

 

295 여기서 말하는 낙관이란 비극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잠재력이 1) 고통을 인간적인 성취와 실현으로 바꾸어 놓고 2) 죄로부터 자기 자신을 발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며 3) 일회적인 삶에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끌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305 삶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의 최종적인 의미 역시 임종의 순간에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최종적인 의미는 각각의 개별적인 상황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의미가 각 개인의 지식과 믿음에 최선의 상태로 실현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결정이 되는 아닐까?

 

307 반면에 의미에 대한 지각은 현실에 깔려 있는 가능성을 깨닫도록 만든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일이 행해져야 하는가를 깨닫게 한다는 말이다.

 

로고테라피는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프롬프터로서의 판단력을 갖고 있다. 그런 과제를 수행해나가기 위해서 판단력은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에 잣대를 갖다 대야 하고, 이 상황은 어떤 일련의 판단기준과 가치의 중요도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310 ‘비극 속에서의 낙관중에서 내가 가장 강력하게 동조하는 것은 라틴어로 소위 인간에 대한 논의라고 하는 것이다.

 

311 나는 내 목을 부러뜨렸지만, 내 목이 나를 부러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대학에서 처음으로 심리학 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나는 내 장애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내 능력을 더욱 향상시켜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시련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도달한 인간적인 성숙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장애라는 약점이 타인을 돕는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관점. 시련이 선사한 인간적인 성숙. 나는 멀었다.

 

312 하지만 만약 피할 수 있는 시련이라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시련을 견디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학에 불과하기때문이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통제불가능한 상황을 원망하지 말고 태도를 선택하라.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물론 더욱 좋은 일.

 

물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316 당신은 어떻게 아직도 책을 독일어로 쓸 수가 있지요? 그건 아돌프 히틀러가 쓰던 말 아닙니까?

꼭 이런 사람들 있지. 이런 걸 뭐라 하지?

 

317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한번밖에 없는 인생 vs 패자부활전으로서의 인생이라는 접근의 차이점.

 

318 사람들은 그루터기만 남은 일회성이라는 밭만 보고, 자기 인생의 수확물을 쌓아 놓은 과거라는 충만한 곡물창고를 간과하고 잃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 수확물 속에는 그가 해놓은 일,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용기와 품위를 가지고 견뎌냈던 시련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나이든 사람을 불쌍하게 여길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을 부러워해야 한다.

 

319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런 유용성은 그 사람이 사회에 이로운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를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요즘 사회의 특징이다.

 

실제로 이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가치는 무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차이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든다.

 

324 여러분은 우리가 굳이 성자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저 훌륭한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1부에서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이 체험에서 나온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이 2부에서 이어진다. 그가 겪은 과거의 비극에서 미래의 낙관을 제시하는 3부까지의 흐름이 좋다.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보이지 않는다.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당신은 나처럼 고통을 겪어보지 못했쟎아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무려 아우슈비츠를 겪은 사람이다. 처절한 체험과 그 체험에서 나온 살아 있는 이론이 이 책의 최고 미덕이자 장점이라 하겠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육성 수기를 몇 편 추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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