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정승훈
  • 조회 수 130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7년 12월 16일 15시 13분 등록

죽음의 수용소에서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빅터 프랭클 VIKTOR E. FRANKL(1905~1997)

 

빅터 프랭클은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이며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19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다카우와 다른 강제수용소가 있는 아우슈비츠에서 보냈다.

1924년 국제심리분석학회의 잡지에 글을 발표한 이후, 27권의 그의 저서는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 19개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그는 하버드, 서든 메더디스트, 스탠포드 및 듀쿼슨 대학교의 초청교수로 강의했으며, 로욜라 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전 세계의 대학교에 초청되어 강의했으며, 미국에서만 52개의 강의를 맡아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심리의학협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오스트리아 과학학술원의 명예회원이다.

 

1945년 이전의 삶

프랭클은 비엔나에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심리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찍 나타났다. 체육관의 최종 시험(마투라)을 위해 그는 철학적 사고의 심리학에 관한 논문을 썼다. 1923년 체육관을 졸업한 후 비엔나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한 후 나중에 우울증과 자살에 관한 주제에 집중하여 신경학 및 정신 의학을 전공했다. 그의 초기 발달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와의 접촉에 영향을 받았지만, 나중에 그는 그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

 

의사, 치료사

1924년에는 오스트리아 전역의 고등학생들을 위한 사회 민주주의 운동인 Sozialistische Mittelschüler Österreich의 회장이 되었다.

 

1928년에서 1930년 사이에 의대생이었지만 그는 고등학생을 무료로 카운슬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제공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Charlotte Bühler와 같은 심리학자들의 참여가 포함되어 있었고 학생들이 성적표를 받았을 때 학생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1931년에 한 명의 비엔나 학생도 자살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그를 베를린으로 초대 한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의 관심을 끌었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프랭클은 비엔나의 Steinhof Psychiatric Hospital에서 신경학 및 정신 의학을 전공했다. Selbstmörderpavillon 또는 "자살 파빌리온"을 담당했다. 그는 자살 성향의 여성 3만 명을 치료했다. 1937년에, 그는 비서가 있는 Alser Strasse 32/12에 신경학과 정신 의학에 있는 독립적인 개인 연구실을 설치했다.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탈취한 후 그는 유대인의 정체성 때문에 아리아인 환자를 치료하지 못했다. 1940년 그는 로스차일드 병원에서 신경과를 시작했다. 이 병원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입원한 유일한 비엔나 병원이었다. 그의 의학적 견해로 몇몇 환자들은 나치 안락사 프로그램을 통해 안락사를 당하지 않았다. 194112월 그는 Tilly Grosser와 결혼했다.

 

죄수, 치료사

1942925일 프랭클, 그의 아내와 그의 부모는 나치 테레시엔 슈타트 게토로 강제 추방되었다. 프랭클은 클리닉에서 일반 개업의의 일원으로 일했다. 정신 의학 분야의 기술이 알려지자, 그는 블록 B IV의 정신과 치료 병동에 배정되어 "정신 건강"또는 정신 건강 서비스의 캠프 서비스를 수립했다. 그는 충격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새 이주자들을 돕기 위한 부대를 조직했다. 나중에 그는 레지나 조나스(Regina Jonas)의 도움을 받아 자살 시계를 설치했다.

1943729, 프랭클은 테레지엔슈타트(Theresienstadt)의 과학 사회를 위한 폐쇄 행사를 조직했으며 레오 베크(Leo Baeck)의 도움을 받아 "수면과 수면 장애", "몸과 마음", "영혼","등산 심리","내 건강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의학사","정신 요법의 존재 문제""사회 심리 치료법" 그의 아버지 GabrielTheresienstadt에서 폐부종과 폐렴으로 사망했다.

19441019일 프랭클과 그의 아내 틸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는 1025Dachau와 제휴한 캠프인 Kaufering으로 옮겨 5개월 동안 노예 노동자로 일했다. 19453, 그는 Dachau에 소속된 Türkheim이라는 휴전 캠프로 옮겨졌고 1945427일까지 미군에 의해 해방되었을 때까지 의사로서 일했다.

프랭클의 어머니 Elsa와 형제 WalterAuschwitz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내는 베르겐 - 벨센(Bergen-Belsen )으로 옮겨왔고, 거기서 그녀는 죽었다. 프랭클의 직계 가족 중 유일하게 홀로 코스트 생존자는 오스트리아에서 호주로 이민 온 여동생 스텔라다.

 

1945년 이후의 삶

3년 동안 수용소에서 해방된 프랭클은 비엔나로 돌아와 심리 치료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을 개발하고 강의했다. 프랭클은 사람들이 주로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프랭클은 그의 세계적 명성의 책 Trotzdem Ja Zum Leben Sagen :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예라고 말하기 : 심리학자는 집중 캠프를 경험한다")를 썼다. (1959 제목 : "죽음 - 캠프에서 실재론으로"). 이 책에서 그는 정신과 의사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정규 수용소의 수감자의 삶을 묘사했다 .

 

이 수용소에서 고난을 겪은 후, 프랭클은 가장 어리석은,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상황에서조차 인생은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고통조차도 의미가 있다는 그의 특질에 관한 결론을 입증했다. 이 결론은 프랑크가 제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묘사한 그의 로그요법과 실존적 분석을 위한 강력한 기반으로 작용했다. 그는 "빛을 주는 것은 불타는 것을 견뎌야한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된다.

 

극심한 고통의 한가운데 의미를 찾는 프랭클의 생각의 예는 나찌 강제 수용소의 가혹한 조건에서 일한 그의 경험에서 발견된다.

프랭클의 강제 수용소 경험은 그의 독창적인 출판물에 반영된 바와 같이 치료적 접근과 철학적 전망을 형성했다.

 

그는 종종 강제 수용소의 좁은 경계선 내에서조차도 두 가지 종족의 인종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적절한 종족과 비천후 종족. 이것들은 모든 계급, 민족, 그리고 집단에서 발견되었다. "그런 조건 하에서, 누가 자기 자신을 마시기 위해 그들을 비난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가스실과 화장터에 고용된 사람들이었고 언젠가 그들이 집행자의 강제적인 역할을 떠나 피해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946년에, 그는 신경학의 비엔나 Polyclinic를 운영하기 위하여 임명되었다. 그는 1971년까지 거기에 남아 있었다. 1947년에 그는 두 번째 부인 Eleonore Katharina Schwindt와 결혼했다. 그녀는 카톨릭이었고, 부부는 서로의 종교적 배경을 존중하고, 교회와 회당에 다녔으며, 크리스마스와 하누카를 축하했다. 그들은 한 명의 딸, 가브리엘 (Gabriele)을 낳았고, 그 딸은 어린이 심리학자가 되었다.

 

1948년 프랭클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에서. 그의 논문 - 무의식적 인 신은 심리학과 종교의 관계를 조사한 것이다.

 

1955년 비엔나 대학교에서 신경학 및 정신 의학 교수 학위 를 받았으며 객원 교수로 하버드 대학교(1961), 달라스 남부 감리교 대학(1966), 피츠버그 Duquesne University(1972)에서 거주했다. 그는 전세계에서 세미나를 하고 가르치고 명예박사 학위를 29회 받았다. 프랭클은 40권의 언어로 번역된 39권의 책을 출판했다.

미국 정신과 학회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Frankl에게 1985Oskar Pfister Award를 수여하여 종교 및 정신 의학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프랭클은 199792일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그의 아내 Eleonore, 그의 딸 Dr. Gabriele Frankl-Vesely, 그의 손자인 KatharinaAlexander, 그리고 그의 증손녀 인 Anna Viktoria가 있다.

 

유산

프랭클의 로그요법과 실존적 분석은 실존주의를 구성하는 광범위한 범주 중 세 번째로 유명한 비엔나 정신 치료 학교로 간주 된다. Irvin Yalom , 프랭클은 "치료에 대한 실존적 접근에 대한 연구에 그의 경력을 바친 사람은 분명히 의미의 부족이 가장 중요한 실존적 스트레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일요일 신경증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용어는 일주일이 끝나면 일부 사람들의 공허에 대한 인식으로 인한 불안의 형태가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공허함과 모호한 불만을 호소한다. 이것은 실존적 진공이나 의미 없는 느낌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일반적인 현상이며 지루함, 무관심 및 공허의 주관적인 상태를 특징으로 한다. 사람은 냉소적인 느낌을 가지며 방향이 없으며 삶의 대부분의 활동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의 삶에서 의미 없는 사람들은 침략, 우울증 및 중독에 노출된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는 한 때 미국 동해안의 자유의 여신상 이 서해안의 책임의 여신상에 의해 보완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자유는 마지막 단어가 아니다. 자유는 이야기의 일부이며 진실의 절반이다. 자유는 긍정적 인면이 책임감이 있는 전체 현상의 부정적 측면이다. 사실, 자유는 책임의 관점에서 살지 않는 한 단순한 자의적 태도로 변질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해안의 자유의 여신상이 서해안의 책임의 여신상으로 보완 될 것을 권고한다.

 

번역가 이시형(1934~ )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촌장.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독창적인 인생론은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이 각종 TV 프로그램과 지면에 소개되었으며, 국민건강, 자기계발, 자녀교육, 공부법 등 다양한 주제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폭넓은 공감을 사고 있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서울의대(외래)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니까 한국을 워낙 몰랐어요. 미국에는 화병 환자들이 없어요. 표현하는 문화니까 화가 쌓이지 않죠. 근데 한국에서는 표현을 못하고 쌓아놓는 겁니다. 그때만 해도 고부간 갈등이 심했어요. 시어머니는 구박하고 아무 말도 못하는 며느리들이 피해자였습니다. 남편들도 죽을 지경이죠. 누구 편을 들겠어요? 이런 일은 다른 나라에는 없어요. 그래서 화병이라는 용어를 학회에서 발표했죠. 울화병이란 건, 폭발하기도 하고 누굴 만나면 넋두리가 많은 증상입니다.”

이시형 [李時炯] - 병원 없는 사회를 꿈꾸는 국민 의사’ (우리 시대의 멘토)

 

특히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펼쳐온 것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 이후 5년 주기로 배짱’ ‘여성·청소년’ ‘세계화’ ‘건강등의 화두를 던져 대한민국 핫이슈로 만들어왔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세로토닌하라!』『배짱으로 삽시다』『우뇌가 희망이다』『이시형처럼 살아라』『여든 소년 이 되다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서』『죽음의 수용소에서등이 있다.

 

대한민국 대표 파워시니어이시형 박사의 도전은 계속되어 2007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건강한 생활습관과 생활환경을 전파하는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2010년 현재 삼각산 인수봉 아래 병원 없는 마을을 건립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나이에 대한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이 같은 활동에 대해 이시형 박사는 이것이 바로 평생 공부하고 도전하는 새로운 라이프사이클이며, 그 결과 파워시니어로서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시형 박사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줄 알았더라면 인생설계를 분명 달리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젊은 시니어들은 본인과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기를, 평생 자기계발 프로젝트를 통해 다가오는 초고령화사회에서 당당한 파워시니어로 살아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인다.

 

원칙주의자들이 살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깁니다. 정의롭게 살고 원칙대로 사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서 내 삶을 바친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어요? 젊은이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젊을 때는 많이 모아야 하지만 또 베풀어야 해요. 우리가 아직도 베푸는 문화가 인색하지만 젊은이들은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이시형 [李時炯] - 병원 없는 사회를 꿈꾸는 국민 의사’ (우리 시대의 멘토)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1984년 판에 부친 서문

프랭클 박사님. 박사님의 책이 정말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런 성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우선 나는 우리 시대의 불행을 기록해 놓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 나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대단한 성과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목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이것이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8)

절박한 문제여서도 있겠지만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직접 알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처음보지만 이 책에 대한 명성은 이미 들었었다. 이 책을 베스트로 꼽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익명으로 내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실제로 이 책의 독일어 초판본의 표지에는 내 이름이 없다. (9)

자신을 밝히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을 책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

내가 처음 칼럼을 쓸 때는 그저 한 번쯤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는 걸 알았다. 물론 프랭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경험일 수 있으나 뭐든 주관적인 것이니…….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10)

 

옮긴이 서문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는 앉은 채로 읽어내려갔다. 전율과 감동으로 몸서리치며 번쩍 정신이 든다. ‘, 그래도 거기보다는 여기가 낫지 않은가.’ 널브러져 앉은 내 꼴이 부끄러워서 벌떡 일어났다. (12)

전쟁이 끝나고 배고픔으로 힘겨워하면서도 가판대의 책을 읽다니, 역자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구나.

연단에서 떨리는 환자에게 더 떨려보라는 그의 역설기법은 나의 대인공포 클리닉에서 사용하는 핵심 치료기법이다. (13)

 

추천의 글

이렇게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실존적 분석’,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15)

프랭클 박사의 말은 진실로 심오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가 꾸며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16)

실화가 가진 힘은 책과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감동이 남다르다. 이건 나이와 상관없다. 아이들도 실제 있었던 일이 소재인 책을 더 좋아한다.

프로이트가 성적인 욕구불만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에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7)

그는 인간이 우스꽝스럽게 헐벗은 자신의 생명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았다. (18)

갑자기 무경계에서 이야기한 육체와의 경계를 없애는 단계가 생각난다. 외부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겪게 된 경우일 테지만 같은 단계이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19)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19)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이며, 두 번째 단계는 틀에 박힌 수용소의 일과에 적응했을 무렵,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이다.

첫 번째 단계의 특징적인 징후는 충격이다.(33)

인생수업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5단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 다르겠구나. 자유라는 게 없고, 선택이라는 게 없으니까.

빌어먹을 놈!”

그 순간 나는 진실의 실체를 보았다. 그리고 심리적 반응의 제 1단계를 특징짓는 감정, 즉 충격을 경험했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전부를 박탈당했던 것이다.(42)

샤워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우리가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는 이제 벌거벗은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심지어는 털 한 오라기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43)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47)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48)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성적인 것이다.(51)

한국 사회가 이런 상태가 아닌가 싶다. 외부에서 보면 너무도 비정상인데 안에 속해있는 우리는 모른 체 정상인걸로 알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 다음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52)

인간이 더 이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를 의미하는 무감각은 수용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징후이다.(57)

무감각 해야만 그 상태를 견딜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주는 모멸감이었다.(58)

고문을 받았던 사람들이 고문장면을 기억하는 것이 힘든 건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인 모멸감이라고 한다.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그 기억이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그런 재현 장면조차 보지 못한다고 한다. 구타가 단순 구타가 아니다.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60)

막사에서 작업장까지 먼 길을 행진해가는 동안 나는 그의 연애 이야기와 결혼생활의 불화에 얽힌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의 성격을 진단하고, 그에게 정신요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나에게 고마워했으며, 그 때문에 나는 그로부터 작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61)

전쟁 중에도, 그것도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평소 일반적인 고민을 하고 있고, 더 고통스런 사람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사람에게 정신요법의 조언을 해준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그랬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의사로서 본능적인 행동이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책에 나와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두 번째 단계의 주된 징후인 무감각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불확실하면 오로지 한 가지 과제에 모든 노력과 감정이 모아지게 된다. 즉 내 자신의 생명과 친구의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과제이다. (64)

그와 같은 긴장상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할 필요성과 결합되어 수감자들의 정신세계를 원시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런 그들의 소원과 욕망은 꿈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65)

꿈이란 참 묘하다. 아마 꿈으로 해소를 하기에 미치지 않는 것일까.

그 순간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나쁜 꿈일지라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용소의 현실만큼이나 끔찍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66)

악몽보다 더 끔찍한 현실이라니...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우리 중에서 정신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도 맛있는 음식을 다시 먹게 될 그날을 그리고 있었다. 단지 맛있는 음식 그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가 되면 먹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던 인간 이하의 상황이 마침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68)

영양실조가 수감들의 정신을 먹는 것에만 집중시키는 현상만 초래했던 것은 아니다. 수감자들에게 성욕이 없었던 원인도 아마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70)

수용소에서는 대체로 문화적 동면현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정치와 종교였다.(72)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소문이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에 실망을 안겨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보다 더 분통터지는 사람들은 도저히 못 말리는 낙관주의자들이었다. (73)

낙관주의자들이 왜 분통터지는 지에 대해 부연설명이 없지만 아마도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옆에서 지켜보기에 그랬지 않았나 싶다.

수용소에서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영적인 생활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75)

그래서 단식기도를 하나? 몸의 욕구에서 벗어나 정신이 맑아지는 것일까?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라 이 또한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자나 종교인들을 삶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77)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78)

마지막으로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구나.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서야 내가 깨달은 것이었는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79)

이렇게 내면세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80)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가. 그래서 난 어떤 현상 하나만을 보고 극단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니라고 말한다. 교사 중에 한 사람은 지금처럼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사회에는 분명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단지 책을 읽지 않는다고 그렇게 큰 문제가 될까. 아니라고 본다. 책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감동도 받을 수 있다. 오히려 책으로만 배운 사람이 더 바보가 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우슈비츠에서 바바리아 수용소로 이송되는 도중에 호송열차의 작은 창살 너머로 석양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잘츠부르크산 정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얼굴을 보았다면 그것이 절대로 삶과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믿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곤 했다.(81)

인간이란 놀라운 존재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나타난다. 생존의 본능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반응 정해진 답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극악의 모습도 있지만 인간으로써의 존엄을 지키려는 것 또한 놀라운 점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수용소 안에서 행해지는 예술 행위는 어떤 종류의 예술행위든 어느 정도 기괴한 측면을 띠고 있었다. 수용소에서 예술과 관련된 행위에 사람들이 깊은 감동을 받는 것은 음울한 현실과 예술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남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85)

심지어 예술이라니...

외부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예술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뿐만 아니라 유머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더 놀랄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86)

이 책은 내 예상을 모두 빗겨나갔다. 강제수용소에 유머가 있었다니... 하긴 부모님 초상을 치루면서도 먹기도 하고 잠도 자고 간간히 웃기도 하니까.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88)

우리는 아우슈비츠와는 달리 굴뚝이 없는 그 수용소로 가능한 빨리 뛰어 들어갔다. 그 후 몇 시간 동안을 아주 힘들게 보내야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웃으면서 연신 농담을 주고 받았다. (89)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 쇼펜하우어가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던 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92)

비교를 통한 상대적인 행복이라. 문명사회에선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을 더 느끼게 되는데…….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계,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처음에 그를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다가 육체의 마지막 한 점까지 이용하도록 계획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 이런 세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끝내 그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96)

잘 알다시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강요된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기를,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개인적인 공간, 혼자 있는 고독을 열망했다. (98)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보면 주인공이 병원에 나와 그 전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먹을 것들)을 앞에 놓고 너무 좋다.”며 울먹이는 장면이 있다. 우린 결코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이다. 천재지변으로 강당 같은 곳에 공동생활을 할 때도 이런 느낌일 것 같다. 그래서 일본에선 간이 칸막이로 개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장치를 했다고 하더라.

당시 우리에게는 아무런 문서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자기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였다. 환자의 소송을 맡은 사람들이 갖는 관심은 환자의 유일한 소유물, 즉 끔찍한 해골 위에 씌워 놓은 넝마 옷뿐이었다. (101)

그는 자기가 수용소의 보안원으로 시체 더미에서 없어진 인육 조각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를 나에게 말해 주었다. 요리 중인 냄비 안에서 찾아내 압수했다는 것이다. 기아에 시달린 나모지 드디어 수용소 안에서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발생했던 모양이다. 내가 때맞추어 그 수용소를 잘 떠난 셈이다. (106)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이 쓴 책 [전쟁의 슬픔]을 보면 전쟁 중에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위안부 이야기에도 전쟁에서 패전하고 후퇴하며 일본군이 인육을 먹는 것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쟁은 사람을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게 만든다.

그로부터 여러 주가 지난 후, 우리는 이 마지막 순간에도 운명의 신이 우리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는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것이 특히 생사와 관련된 문제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114)

[인생수업]에서 태어나고 죽는 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님을 말했다.

그날 밤 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었던 우리 친구들은 트럭에 실려 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막사 안에 갇힌 채로 불에 타 죽었다. (115)

주인공이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운명을 거스르지 않아 신의 뜻대로 살아남은 것인가. 알 수 없으나 독자입장에선 천운이라 여겨진다. 이 책을 쓰고 이 사실을 알리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대부분의 수감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단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다. (116)

수감자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구타장면을 목격해왔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충동이 커진다. 나 자신의 경우만 보더라도 배고프고 피곤한 상태에서 화가 나면 저절로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때가 많았다. (117)

폭력을 당한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무감각한 것을 보면, 특히 그 때문에 위험한 상황(예를 들어 검열이 임박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보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118)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지니고 있던 전형적인 심리적 특징에 관한 문제를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소개하고, 정신병리학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은 인간은 철저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119)

이 단락처럼 앞의 단락을 읽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용이 그 다음에 바로 나온다. [루시퍼 이펙트]가 생각난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있다는 것이다. (120)

난 평소에 항상 말해왔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처럼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그 사회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이나 사고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양한 경험과 사람을 통해, 다양한 것들을 통해 사고한다. 그리고 커서도 읽을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120)

예전에 인터뷰했던 청년이 생각난다. 대기업에 들어가고 나름 잘 취직한 친구들을 보면 직장생활에 기대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다른 것들을 위한 수단, 돈벌이로만 여기며 참고 지낸다고 한다. 그러면서 박봉의 월급을 받는 그 청년은 어차피 결국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될 거라며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게 돌아가지 않는 길로 여기더라.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120)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121)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122)

이 대목을 읽으면서 윤동주 시인과 시가 생각났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별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조국의 현실까지도 고민했던 시인. 어떻게 별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물론 그에게는 창조적인 삶과 향락적인 삶도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122)

[뜻으로 보는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씨가 말한 한국은 시련의 역사로 점철되어있는데 그랬기 때문에 지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가시처럼 고난의 역사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수용소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의 불확실성은 결말이 났지만, 이번에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를 잇는다. 이런 형태의 삶이 끝날 것인지 말 것인지, 끝난다면 과연 언제 끝날 것인지 미리 예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127)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129)

양가 부모님들이 생각난다. 몸도 아프고 미래에 대한 기대나 목표도 없으시니...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뭐해야할까를 생각하시는 것도 좋을 텐데. 어떻게 죽고 싶은지. 하긴 제3자의 입장이니 이런 말을 하지 막상 내가 그 처지에 놓이면 마찬가지일까.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130)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 병리적 상처를 정신요법이나 정신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131)

수용소와 같은 상황, 앞으로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내가 그걸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정말 무기력해질 것 같다. 아마 똑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를 거다.

내 친구의 죽음을 초래했던 결정적인 요인은 기대했던 해방의 날이 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절망했으며, 잠재해 있던 발진티푸스 균에 대항하던 그의 저항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살고자 하는 의지는 마비되었고, 그의 몸은 병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136)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이 마지막 잎이 떨어지지 않아 살았던 것과 반대인 것인가. 사실 마지막 잎새를 읽으며 말도 안 된다 했었는데 그렇지 않구나. 절박한 사람은 그럴 수 있구나.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이런 사람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137)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138)

그렇다. 누군가 쥐어주지 않는다. 본인이 찾아야 한다. 요즘 엄마를 보면 재미없다. 우울하다. 슬프다를 달고 지낸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그랬다.

경험뿐이 아니다. 우리가 그 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간직해 왔다는 것도 하나의 존재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가장 확실한 존재방식인지도 모른다. (146)

희생은 어떤 경우에나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의 희생은 그 특성상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물질적인 성공이 중요한 세계에서는 틀림없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질 희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희생에는 의미가 있었다. (147)

난 대통력이 탄핵되는 사태까지 간 한국의 상황을 세월호 아이들의 희생으로 가능 했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잘못된 것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을 들게 만든 것, 광장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만든 것 등 모든 것이 세월호와 시작되었다. 그들이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우리는 세상에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으며,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집단에 들어가 있다.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순전히 한 부류의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152)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드라마는 너무도 선과 악을 대비시킨다. 악한 사람은 처음부터 악하고 마지막까지도 악하다. 사실 그런 사람은 없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 반대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대신 좋은 일을 하는 곳에 가면 좋은 사람들이 많은 건 확실하다. 그래서 난 자원봉사지만 시민단체, ngo에서 활동하는 게 좋다. 청예단에서 자원봉사자를 처음 만났는데도 너무 잘 통한다. 처음 본 사람의 어색함이 없다.

이제 강제수용소에서의 정신의학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풀려난 사람들의 심리이다. (152)

정신적 흥분 상태에 이어 전체적인 긴장이완 상태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미친 듯이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153)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154)

이렇게 갇혀 있다가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이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154)

평상시에 우린 너무 기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비슷할 건가 보다.

육체는 마음보다는 거부감이 적은 법이다. 육체는 처음부터 새롭게 얻은 이 자유를 잘 활용했다. 드디어 우리 육체가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155)

그리고 이것이 그의 혀를 풀리게 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에게 말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것을. (155)

황호덕 선생님의 [벌레와 제국]이 생각난다. 감옥에서 말하는 않는 것, 배설하지 않는 것, 식미지 아래에서의 말이란 것 등...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런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 (158)

~ 장상준 선생님이 이런 상태인거구나. 장애를 입은 후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에게 잘 해줘야하고 본인은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158)

정신적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나게 되었을 때, 도덕적 결합을 보이는 현상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겪게 되는 비통함환멸이다. (159)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161)

 

2.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

로고테라피를 받는 동안 환자는 똑바로 앉아서 의사로부터 때로는 듣기 거북한 말을 들어야 합니다.”(166)

정신분석과 비교해 볼 때, 로고테라피가 덜 회고적이고, 자기성찰을 덜 요구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167)

그럼 환자가 덜 거부감이 들겠다.

실제로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167)

로고테라피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빈 제3정신의학파로 불리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167)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치료법인가 궁금하다. 엄마의 공황장애 때문에 정신과 진료 받으러 같이 갔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열심히 하고 나름 제안을 해서 (제사를 줄이는 건 어떠냐는) 덕분에 엄마는 제사를 줄일 수 있는 명분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거짓이 아닌 솔직한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것조차 하지 못하더라.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89퍼센트의 사람들이 인간에게는 살아야 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왔다. 그 중 61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기꺼이 그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어떤 것어떤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169)

실존적 좌절 역시 정신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는 그 동안 심인성 노이로제라고 했지만 로고테라피에서는 이것은 누제닉 노이로제라고 부른다. (170)

누제닉 노이로제는 욕구와 본능의 갈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 원인 중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171)

엄마도 실존적 존재의 의미가 없어서 저렇게 무기력할까? 자식들은 다 커서 이젠 더 이상 엄마가 관여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아빠를 보살피는 것에 자신의 존재 의미를 두었을까. 전에 없이 너무 충실한 척 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걸까. 여하튼 엄마는 나에게 영원한 숙제 같다.

갈등을 겪는다고 해서 다 신경질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고통도 역시 모두 다 병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그 고통이 실존적 좌절 때문에 생긴 경우에는 그것을 신경질환 증세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성취로 보아야 할 것이다. (173)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리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175)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176)

내가 배움을 계속하고 무언가 활동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 것 같다. 아들도 이제 머지않아 성인이 된다. 그러면 나의 역할은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다. 그때 가서 허전하고 할 일이 없나 찾으면 늦을 거다. 그래서 내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여러 역할을 하며 바쁘고 힘들었지만 잘한 일이다.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을 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그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된 곳에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179)

엄마의 뭔가 모으는, 버리지 못하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나보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181)

자아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내가 바라보는 자아, 남이 바라보는 자아, 남에게 보여지고 싶은 자아. 그리고 자존감을 키우는 것 중에 하나가 남을 도울 때 생긴다고 한다. 나의 자존감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더 커진 것이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182)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자기 초월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 혹은 그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183)

로고테라피의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184)

그럼 나는 삶의 의미를 잘 찾아서 살고 있는 거다.

어떤 의미에서 시련은 그것의 의미 희생의 의미같은 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 있다. (187)

과연 이 모든 시련,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런 상황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지 않다면 궁극적으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할 의미가 없기 때문에. 탈출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우연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것은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기 때문에.” (190)

인간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로고테라피는 염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것이다. (198)

그러게. 우린 모두 처음이다. 모든 일에서. 그러기에 서툴고 그러기에 실수투성이다. 그러기에 또 살아볼만하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199)

그래. 나의 가해자 엄마의 경험이 부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아니지만 나에겐, 우리 가족에겐 의미 있는 시련이었다.

환자가 강박증과 맞서 싸우기를 중단하고 대신에 아주 반어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비웃어 주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증세가 점점 약해지면서 결국에는 없어지고 만다. (208)

치료의 핵심은 환자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에 있다. (209)

모든 병, 특히 마음의 병은 환자 자신의 의지와 마음먹기 달린 것이다.

현대의 집단적 신경증이라고 할 수 있는 실존적 공허는 허무주의가 개별적이고도 개인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허무주의는 존재가 아무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209)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인간 집단의 행동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통해서 얻은 사실뿐이고, 각 개인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채로 남아 있다. 어떤 예측이든 거기에는 그 사람이 처한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인간은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211)

물론이다. 이렇게 할 때 느끼는 감정은 행복이다. 그러기에 이를 반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기계나 자동장치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의 매커니즘이나 역동성에 대해 예측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정신을 넘어선 존재이다. (213)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 (215)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난 지혜로운 노인으로 늙고 싶다. 큰 소리내지 않고도 상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예전에 <품위있는 그녀>나 지금 <슬기로운 감빵생활>처럼 현명하면서도 주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

 

3. 비극 속에서의 난관

비극 속에서의 난관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로고 테라피에서 말하는 세 개의 비극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낙관적일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개의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1) 고통과 2) 죄와 그리고 3) 죽음을 말한다. (219)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21)

행복만큼 느낌적 느낌이 어디 있을까. 행복은 순간이다. 행복을 계속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어쩜 타인과 비교를 통해 우월할 때 상대적인 행복을 경험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교에서 오는 행복은 계속 우위에 서야만 하기 때문에 결국엔 불안할 뿐이다.

사람이 일단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 (222)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을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하고,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을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224)

무엇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을 성취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로고테라피 치료 상의 개념이 정말로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적인 경험의 세계를 희생시키면서 외적인 성취의 세계에만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230)

나도 이번 변경연 면접과정을 통해 느꼈다. 책을 쓰겠다는 것을 성취하지 않았지만 면접과 선배들의 경험을 들으면서 꼭 책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변경연 과정의 거의 끝에 와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값진 것이다. 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고, 삶이 여유로워지고 편해졌다. 이런 걸 어디서 배울 수 있고 찾을 수 있었을까.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목차는 따로 거론할 게 없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저자의 경험 외에 다른 유대인들이 경험한 내용을 사례로 더 추가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3. 이 책의 장점

유대인의 수용소 생활에 대한 경험을 기록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거기서 나아가 실존적 문제까지 접근한 내용이다. 이보다 더한 상황에 처할 일이 있을까 싶다. 그러기에 힘든 사람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는 책이다. 뒤에 이론적 내용이 없어도 충분히.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수용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게 일어난 일 등 더 많은 내용이 있을 것이다. 2부 이론도 좋지만 정신과의사로써가 아닌 유대인의 입장에서 경험 내용을 더 추가했을 것이다.

IP *.124.22.18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