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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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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8일 06시 10분 등록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37주차 (12/11~12/17)

티올(윤정욱)

 

1. 작가 분석

 

# 저자의 생애 (그는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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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랑클(Viktor Emil Frankl, 1905~1997)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 의과대학에서 정신과를 전공했고 특히 우울증과 자살에 관심이 많았다. 초기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평소 호기심이 많던 프랑클은 용감하게 프로이트에게 자기 생각을 편지로 보냈고, 프로이트도 상냥하게 답장을 줘서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17세 때 학교 숙제로 쓴 논문이 그가 19세 되던 해인 1924년에 《정신분석 국제 저널(The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에 발표된 적도 있었다.

 

1937년 정신과 전문의가 된 빅터 프랑클은 3만 명의 자살위험성이 있는 여성들을 관리·치료했고, 이후 자신의 클리닉을 개업했다. 정력적으로 자기 영역을 만들어가기 시작할 때,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해 버렸다. 이때부터 유대인 의사들은 순수 독일민족아리안 족의 치료를 금지당했고, 이후에는 유대인만 치료할 수 있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했다. 우생학적 관점을 앞세워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희생될 위험에 처한 수많은 유대인 환자들을 자신의 의학적 소견으로 구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에도 1942 9월 결국 그는 아내, 부모와 함께 테레지엔슈타트의 유대인 거주지게토로 강제 이송되어 일반의로 근무했다. 이곳에서도 그는 열정적으로 자살 방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람들이 강제 수용된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나도록 강연해 나갔다. 늙은 아버지의 사망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프랑클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하루 한 컵의 물이 배급되면 반만 마시고 나머지로 세수와 면도를 했다.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환경이었지만 그는 면도를 거르지 않았고, 덕분에 건강해 보일 수 있어서 가스실로 가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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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르케나우 수용소 입구에서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www.auschwitz.org>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2년 후 그와 그의 아내는 1944 10 19일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옮겨졌고, 여기서는 의사가 아닌 일반 수용소 수감자로 강제 노역을 했다. 1945 3월에야 튀르크하임의 수용소로 옮겨져서 1945 4 27일 전쟁이 끝나 해방될 때까지 의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 틸리는 베르겐-벨센 수용소로 옮겨져 그곳에서 사망하고 말았고, 어머니 엘사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동생 월터는 강제 노역 중에 사망했다. 유일한 생존자인 여동생 스텔라는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해 살았다. 프랑클은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날 때까지 각기 다른 수용소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견뎌나가야만 했다.

 

그 책을 내고 난 후 1946 2월 빈의 폴리클리닉 병원의 신경과 과장으로 취임했는데 그곳에서 엘리를 만나 사귀었고 1947 7월 첫 아내의 공식적 사망 통고를 받은 후 7 18일 두 사람은 결혼했다. 이후 그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그의 경험과 책에 대해 강연했지만 빈 대학에서는 정식 교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경험을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독특한 정신치료의 한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현재 약 31개국에 로고테라피 훈련 및 치료 연구소와 전문 도서관이 있다.

 

이후 그는 심장 문제로 수술을 받고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1997 9 22 93세에 사망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1991년 미국 의회도서관과이 달의 책 클럽(Book of the Month Club)’에 의해 미국에서 나온 10권의 영향력 있는 책 중 1권으로 선정되었다. 1997년 그가 사망했을 때, 이 책은 24개 언어로 1억 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되었다.

 

 

# 로고테라피의 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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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클은 수용소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로고테라피 이론을 세운 책을 출간했다. 독일어판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기] (왼쪽), 영어판 [인간의 의미 탐구] (오른쪽)

 

그 생각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면서 프랑클은 자신의 수용소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불과 9일 만에 초고를 완성한 이 책의 독일어판 제목은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기(Die Psychotherapie in der Praxis)]였고, 영어판 제목은 [인간의 의미 탐구(Man's search for meaning)]였다(한국에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출간). 이 책은 이후 그가 쓴 31종의 저서 중 가장 널리 알려졌고,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반복해서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것은, 즉 고결한 사람이 되느냐, 인간의 존엄을 잃고 짐승 같이 되느냐는 것은 그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유, 즉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삶의 길을 선택할 정신의 자유만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그 자유를 잃게 되면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홀로코스트 경험 같은 끔찍한 시련도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실현할 중요한 가치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여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그의 이념의 핵심이기도 하다.

 

 

# 수용소에서의 빅터 프랭클 #

 

“3 30일에는 전쟁이 끝날 거야.”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4년 아침에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F가 함께 갇혀 있던 수감자들에게 말했다.

 

누가 그래?”
꿈에서 하느님의 예언을 들었어.”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F는 기나긴 전쟁이 이제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뉴스에서 들리는 전황은 F의 굳은 믿음과 달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간이 흘러 3월 말이 가까워왔고 F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3 29일이 되자 F는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30일에는 의식을 잃었고, 31일 사망했다. 사인은 발진티푸스였다. 물론 병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사실상 전쟁이 끝나 수용소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안 그가희망의 상실로 삶의 끈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유대인이었던 그 역시 1942년부터 수용소에서 수용되어 있는 신세였지만, 그의 죽음을 무심히 넘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검토해 보니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었다. 많은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다가 참담한 현실에 직면해 용기를 잃고 덮쳐오는 절망감을 느끼면서 신체의 저항력을 잃고 일거에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 의사는왜 살아야 하는지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지만, 그걸 놓치고 나면 바로 무너져버리고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잃어버린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수용소에서 풀려나와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수용소에서 프랑클은 그 동안 연구해 온 심리학 이론과 정신의학적 개념을 집대성한 원고를 옷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지만, 그 옷을 잃어버리면서 원고도 함께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망연자실한 프랑클은 완전히 제로에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자기가 직접 보고 들었던 것들, 경험했던 것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책을 쓰려고 생각한 것이다. 만일 그 원고를 갖고 있었다면 그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겠지만, 몽땅 잃어버린 덕분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는 F의 사례가 생생히 떠올랐다. 그러면서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반드시 살아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아남느냐 죽느냐는 당사자의 내적인 힘, 즉 이 끔찍한 경험을 개인의 성장에 이용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된다는 프랑클의 생각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고 그가 세운 이론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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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수용소에 갇혀있다가 해방된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

<출처: United State Holocaust Memorial Museum>

 

한편으로 그 생각은 그가 끝내 살아남을 수 있게 한 힘이었다. 2년 반 동안 네 군데의 수용소로 옮겨졌지만무슨 일이 있어도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마음이 그를 살렸던 것이다. 부모와 아내, 남동생을 모두 잃는 비극 속에서도 그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그는 아내와 이송된 수용소가 갈리는 바람에 아내가 사망한 것도 처음에는 몰랐다. 그러다가 1945 8월 전쟁이 끝난 후 빈으로 돌아와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아내가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고, 몇 주일 동안 큰 슬픔에 잠겨 있었다. 비록 목숨을 건져서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자신이 더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우울증과 자살을 치료하던 프랑클 본인이 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살아남은 그의 친구들은 그가 죽을까 봐 크게 걱정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서서히 우울의 깊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면서, “어떤 큰일을 겪는 다는 것, 그것이 무엇이고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이건 간에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다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하기 시작했다.

 

 

# 로고테라피의 실천 #

 

빅터 프랑클은 로고테라피 이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면의 본질에 삶의 가치를 두고 자신에게 한 발짝 타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어라. 그대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스스로이다.

 

프랑클은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 상황마다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약 없이 언제 가스실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미리 희망의 끈을 자르고 죽어버릴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가스실에 끌려가더라도 당당히 기도하며 인간의 긍지를 가진 채 들어갈 수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에서어떻게살아야 좋은 삶인지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삶에게왜 살아야 하지라고 질문하기보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내 삶에게답을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올바른 행동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고 현실적인 방법이 나올 수 있다.

 

빅터 프랑클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인류의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 경험을 그저 개인적인 비극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년 간의 수용소 생활 중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 안에서 로고테라피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인간의 자유의지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중요성, 그리고 삶의 의미 추구를, 자신의 생존 경험 속에서 삶의 정수처럼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온 이론이자 치료법이었기에 학계와 대중은 그의 책과 로고테라피 이론을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빈에서 태어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 제3의 빈 심리학파의 하나로 여겨지는데, 그 태생은 훨씬 극적인 면이 있다. 천재적인 학자가 환자 몇십 명을 진료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문턱에서 몇 년간을 버티면서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겪은 찰나의 감정과 사고의 엑기스가 바로 로고테라피의 씨앗이 된 것이다. 프랑클의 삶 자체가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삶의 의미를 찾는 것그 의미를 삶에게 들려주는 실천을 몸소 해낸 것이다. 이러한 언행일치가 바로 그의 이론을 빛나게 하며 후학들의 귀감이 되는 핵심적 부분이다.

 

 

II.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1984년 판에 부친 서문>

 

(10) 평소에 나는 유럽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에게 거듭해서 이렇게 타이르곤 한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1)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제목은 우리의 비극적인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샘솟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붙여진 것이다.

 

 

<추천의 글>

 

(15)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실존적 분석’,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è이라는 조각을 우리는 눈 앞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때로는 붉은 색이었다가 또 어느새 검은 색이었다가 이내 눈 부시도록 투명한 빛깔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의미)를 알아 차리기 어려운 것도 너무 눈 앞에 두고 보아서가 아닐까. 그러다 우리는 아주 특별한 계기를 마주하게 되거나 혹은 나이가 지긋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의 지난 삶들이 우리가 어릴 적 예배당 안에서 보았던 유리 천장처럼 형형색색의 찬란한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7) 프랭클은 신경질환을 여러 형태로 분류한 다음, 그 중에서 몇 가지는 그 원인이 환자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중략)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 즉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1 :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26) 감시하는 병사들보다도, 나치대원들보다도 카포들이 수감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악질적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카포들은 수감자 중에서 뽑았다. 수감자 중에서 이런 일을 하기에 적합한 성격을 가졌다고 인정이 되면 카포로 뽑혔고, 기대했던 대로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즉시 쫓겨났다.

 

è 친일파.

 

(29)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격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 친구까지도 팔아 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33)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이며, 두 번째 단계는 틀에 박힌 수용소의 일과에 적응했을 무렵,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이다.

 

(36) 정신의학에 보면 소위 집행유예 망상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37) 그런데 그 때 나는 용감하게도 빵 봉지를 외투 속에 감추는 용기를 발휘했다.

 

è 프랭클 박사는 처음 수용소로 오면 검열을 받을 때 외투 속에 빵 봉지 하나를 감쳐 둔다. 빵 봉지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조금 과장되어 말하자면 나는 이 빵 봉지 하나에 저자가 주창하는 로고 테라피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주도적으로 찾고자 하는 삶의 의미.

 

흔히 우리 인간들은 역경을 마주하게 되면 그것이 가진 힘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게 된다. 그 역경이 크기가 크면 클수록 상대적으로 개인의 힘으로 대응 할 수 있는 부분은 반비례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처음 프랭클 박사가 수용소에 도착했을 당시, 독일군 장교의 검지 손가락 하나에 이 천명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수용소에 갓 도착한 수감자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이 수용소 생활이라는 것도 없이 바로 죽었다. 열 명 가운데 남은 한 사람인 수감자들의 상황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 다시 죽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모든 감정과 희망을 배제한 채 무기력함 속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 온 첫 날부터 상상할 수 없는 용기를 낸다. 바로 빵 봉지를 몸에 감춘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 한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수용소의 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세상 가장 밑 바닥의 환경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조차도 스스로에 찾은 자신만의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어떠한 역경도 극복할 수 있다고 프랭클 박사는 몸소 보여준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깨어있으면서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프랭클 박사의 노력이 이 빵 봉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39) 그날 저녁에야 우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선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첫 번째 판결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퍼센트는 죽음 행을 선고 받았다. 판결은 채 몇 시간도 못 되어 집행되었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은 역에서 곧바로 화장터로 직행했다.

 

è 끔찍하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3) 샤워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우리가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는 이제 벌거벗은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45) 이것은 (냉담한 궁금증)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기 마음을 어느 정도 분리시켜 어떤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데,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마음가짐을 가꾸었다.

 

(48)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50)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è 수용소라는 인간이 처한 가장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한다. 수용소 밖의 우리의 생활 터전에서도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보다 중요한 것이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것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56) 당시 나는 막사 맞은 편에 있었다. 바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창문 옆에서 얼어 붙은 손으로 뜨거운 수프가 담긴 그릇을 들고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 밖을 보게 되었다. 방금 전에 밖으로 옮겨진 시체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è 수용소 안의 생활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절규하는 듯 외치는 것 보다 이렇게 감정을 빼고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 더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아무도 저자를 비난 할 수 없다. 만약에 나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 같이 남은 스프를 맛있게 먹었을 테니까. 죽은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기 보다 왜 오늘은 자신의 스프에 콩이 두 개 밖에 없는지 아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콩이 두 개라도 있음에 감사하며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그 스프를 먹었을 테니까.

 

(57) 인간이 더 이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를 의미하는 무감각은 수용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징후이다.

 

(60)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65)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빵과 케이크와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이었다. 이런 단순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꿈 속에서나마 소원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68) 시시때때로 의식을 파고드는 먹는 것과 좋아하는 요리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앞에서 얘기했을 것이다.

 

(71)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시적인 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è 살아야 한다. 삶의 의미도, 저자가 말하는 로고테라피도 모두 그 다음이다.

 

(77)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78)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79)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è 군대에서 행군을 했을 때의 일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유격이라는 큰 훈련이 있었고, 아주 고됐던 유격 훈련의 마지막은 바로 야간 행군이었다. 훈련 장소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해 다음 날 아침까지 꼬박 12시간 가까이를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걸어야 하는 훈련이다. 수용소 생활과 절대 비교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육체적 고통의 한계를 느꼈던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곧 불이 날 듯 아픈 발 바닥의 고통 보다 참기 힘든 것은 바로 졸음이었다. 실제로 졸면서 걷다가 옆 도랑에 빠지는 부대원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시간을 걷고 십 분을 쉬는 반복 속에 처음에는 부대원들끼리 격려나 농담도 주고 받지만 나중에는 다들 묵묵히 걷기만 한다. 바로 그 때 요긴했던 방법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전역을 하면 먹고 싶은 음식들을 세어 보거나, 일부터 백까지 숫자를 센 뒤 이 것을 열 번 반복하는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효과적인 것은 당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내가 걷고 있다는 상황을 잊고 다른 것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잠시나마 육체적 고통을 잊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82)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어디선가 그렇다라고 하는 활기찬 대답 소리를 들었다.

 

(88) “밑바닥에서 퍼주세요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89) 우리는 아우슈비츠와는 달리 굴뚝이 없는 그 수용소로 가능한 한 빨리 뛰어 들어갔다. 그 후 몇 시간 동안을 아주 힘들게 보내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웃으면서 연신 농담을 주고 받았다.

 

(91) 우리는 아주 작은 은총에도 고마워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를 잡는 시간을 준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92) 우리와 같은 수감자 출신인 요리사 F는 커다란 국냄비를 앞에 놓고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내미는 그릇에 수프를 퍼넣어 주고 있었다. 그는 수프를 퍼주면서 그릇을 내민 사람을 쳐다 보지 않는 유일한 요리사였다.

 

è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같은 고향 출신, 같은 대학 출신 등 자신을 연결 해주는 타인과의 연결고리에 집착하는 것은 특히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와의 연결 고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나중에 나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겠다는 욕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히 더더욱 내가 호의를 베푼 사람을 또는 내가 호의를 받은 사람들과 다시 마주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에게 의지를 하며 암묵적인 동맹의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아주 개방적인 공간에서 산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오늘 내가 의도적으로 베푼 호의를 상대에게 다시 돌려 받을 가능성이 아주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연결 고리 ()에 집착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초원에서 무리 지어 생활하는 것은 사자가 아니라 하이에나이기 때문이다.

 

(95) 나는 내가 작업반에 들어갈 경우, 짧은 시간 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의사로서 내 동료들을 돕다가 죽는 것이 그 전처럼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 보다 확실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97)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글자 그대로 군중 속에 자기 자신을 파묻으려고 애를 썼다.

 

è 감시병 간부의 손가락질 하나에도 멀쩡한 생명이 나가 떨어지는 환경에서 눈에 자주 띈다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오차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평균치에 속해있어야 한다. 회사 생활을 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를 선호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기 보다는 타인의 지시를 받거나 타인에게 업무를 미루는 것을 일상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사회라는 개방적인 공간이 그들에게는 폐쇄적인 수용소와 다름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98)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기를,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개인적인 공간, 혼자 있는 고독을 열망했다.

 

(120)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è 조각과 같이 파편으로 깨지고 흩어진 저마다의 인생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그림으로 완성된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향한 저마다의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

 

(120)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 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121)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121)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122)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한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122)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122)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를 제공한다.

 

è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분명히 있을 수 있다. 정신 분석을 위해 또는 심리 상담을 위해 혹은 내적 자기 탐구를 위해 자신이 힘들었던 기억, 시련을 겪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아무리 해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안도 하면 되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시련은 그것을 통해 운명을 다르게 해석하고, ‘자기의 삶에 보다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하였다. 시련이 없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의 깊이를 더할 기회가 없다는 것과 같다. 어떻게 본다면 시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본인에게는 시련의 상황일 수도 있는 것이다.

 

(13)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소의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è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지? 수용소 안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인생에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우리는 어쩌면 정신적 수용소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131) 강제 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133)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시피노자-

 

(136) 내가 이 경우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를 통해 관찰하고 도출해낸 결론은 후에 수용소 주치의로부터 들었던 말과도 일치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136)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138)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냐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è 저자의 생각과 로고 테라피의 핵심 문장.

 

(142)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146)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152) 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층은 아주 심오한 곳까지 이르러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 된 강제수용소라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156) 그 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 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158)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167)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167)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è 환부를 드러낸다거나 약을 통해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기초 체력을 키우고 환자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는 치료 요법. 그렇다면 다른 정신 치료 요법과 병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독으로 환자의 치료가 가능한지?

 

(175)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176)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III.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분석

 

# 2장과 3장이 포함 된 이유는? #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는 1장에 대한 내용이 전부 일 것이라 생각했다. 목차를 통해서 보았을 때, 1장에서는 저자가 실제로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일상이나 감정들에 대한 묘사가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목차에서 꼭지 글이 아주 많은 것을 보았다. 아마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그 날 그 날 있었던 글로 쓸 수 없고, 모든 글이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쓴 것이다 보니, 기억의 단편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독자의 눈으로) :

 

# 수용소에서의 경험은 어떻게 로고 테라피 개발로 까지? #

 

수용소에서 저자가 생생하게 느낀 경험과 그러한 경험이 어떻게 자신의 독창적인 로고 테라피라는 걸음으로 걸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좀 더 보충 되면 좋을 것 같다.

 

# 로고 테라피는 정말 이게 끝? #

다른 치료 요법과 병행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것 만으로 충분한지와 관련한 내용도 함께 수록 되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3) 이 책의 장점 (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등

 

# 짧은 기억의 단편 #

 

짧고 간결하다. 물론 그 안에 담긴 내용과 철학의 깊이는 절대로 간결하지 않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저자의 눈으로)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 전체 내용 포함하고 있는지? #

 

참고 도서에도 비슷한 주제로 저자가 쓴 다른 책들이 있다. 물론 이시형 교수가 번역 한 이 책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저자가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나 상황들이 이 책 본문에 모두 있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더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 함께 볼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

 

이 책과 함께 보면 좋을 만한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피어나는 독일 소년과 유태인 소년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일 나치 장군의 아들의 시점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일어나는 유태인 대학살을 그린 것으로 소설이 원작이다. 가해자인 나치 장군의 아홉 살짜리 아이의 눈을 통해 인간의 증오와 광기, 전쟁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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