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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8일 11시 5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빅터 프랭클은 37세때 아우슈비츠 등 네 곳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1942~1945(4)을 보냈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한 프랭클 박사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비극을 겪었다. 아내는 다른 수용소로 옮겨진 후 사망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남동생은 강제 노역 중에 사망했다. 유일한 생존자인 여동생은 종전 후 한참 뒤에야 만날 수 있었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추위와 굶주림, 잔혹함,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그는 어떻게 삶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는 말한다. “강제수용소에서는 모든 상황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이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와 방식을 선택하는 자유뿐이다.”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고통은 좌절된 욕망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랭클에 따르면 긴장과 갈등 없는 상태는 최선이 아니다. 오히려 긴장은 정신의 웰빙(well being)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다.” 인내하는 존재(homo patience)인 인간은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상승하는 과정에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좋은 조건을 가진 세상에서도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학력, 경력, 재산 등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회적 잣대, 기준들 때문이다. 의미를 찾는다 해도 쉽게 흔들려 뿌리 뽑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한 우리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메시지를 통해 오늘하루, 아니 잠깐이라도 위안을 얻고 나에게 주어진 조건보다는 남은 내 생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수용소에서 찾은 삶의 의미.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인 나는 찾을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시련과 고통이 없어서 될지 모르겠지만...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1984년 판에 부친 서문

 

8. “프랭클 박사님, 박사님의 책이 정말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런 성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우선 나는 우리 시대의 불행을 기록해 놓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 나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대단한 성과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제목 그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이것이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베스트 셀러가 된다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건 다른 기분일 것이다. 저자 역시 단지 성공을 위해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밝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기위해 이 책을 출간했을 것이다. 책을 출간하고자 하는 뚜렷한 이유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9. 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저자 앞에서 삶이 힘들다든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투정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어떠한 고통도 그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닐수 없으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자기의 아픔이나 고통이 다른 어떤 사람의 그것과 비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자기가 느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타인의 고통은 말그대로 타인의 고통일 뿐이다.

 

10. 나는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해 놓을 책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움을 넘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줄 것 같다. 나도 내 책을 통해 군대에 있는 젊은이에게 힘들지만 그 기간동안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차원에서 쓰고 싶다.

 

10.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 얘기하건대 언젠가는!-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말인데 보통의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서 힘든 부분이다. 그동안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공하고 싶다고 외쳤다. 지금 이 순간 성공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삶에 충실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마 저자가 얘기하듯이 성공과 행복이 내게 올 것이다.

 

11. 비극 속에서의 낙관으로 붙였다. ....인간 존재의 그 모든 비극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제목은 우리의 비극적인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샘솟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붙여진 것이다.

비극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삶을 포기하거나, 받아들이거나, 희망을 보거나 여러 가지 반응을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봐야 한다. 낙관을 가져야 한다.

 

옮긴이 서문

 

14. 지옥보다 더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따뜻하면서 유머러스한 말 한마디와 빵 한조각을 나누어 주는 고귀한 인간의 혼을 지켜본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있는 공포와 싸우면서도 어떤 절망에도 희망이, 어떤 존재에도 거룩한 의미가 있다는 걸 설파한다.

내가 배고파하면서 남에게 빵을 주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유머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이 유머는 고귀한, 높은 이성과 감성을 지닌 인간만이 할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힘들겠지만 유머스러운 사람이 되자. 대신 우스운 사람은 되지 말자.

 

14. 그는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성자처럼 버티어 나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환해온 산증인이다. 지난 1997, 92세의 삶을 마칠때까지 그의 영혼은 호수처럼 맑았다고 후학들은 전하고 있다.

그는 아마 행복하게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삶을 품위있게 사는게 얼마나 힘든일 인데.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는 아마 죽어서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희망을 전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의 책을 통해 죽음은 또다른 탄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14. 강제수용소에서의 그의 경험은 이제는 개인의 경험이 아닌 인류의 경험이 되어버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수용소에서의 책이 그렇게 많다는데 왜 이 책만 유독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들 잘 알 것이다.

 

추천의 글

 

15. 프랭클 박사는 크고 작은 고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가끔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실존적 분석’,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살아야 되는 하나의 이유만 있다면 살아갈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16. 잔인한 죽음의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그 자신의 발가벗은 실존과 만나게 된다. 아버지, 어머니, 형제 그리고 아내가 모두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았거나 가스실로 보내졌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추위와 굶주림, 잔혹함, 시시각각 다가오는 몰살의 공포에 떨면서 그는 어떻게 삶이라는 것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대단한 사람이다. 혼자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잔혹함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가졌을까. 그가 말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17. 프로이트는 고통을 주는 혼란의 원인을 서로 모순되는 무의식적 동기에서 비롯된 불안에서 찾았다. 그 중에서 nooge-nic neuroses와 같은 몇 가지는 그 원인이 환자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 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성적인 욕구불만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에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nooge-nic neuroses : 무변원성 신경증은 "실존적 좌절"에서 유래된 신경증의 한 형태를 가리키는 요법의 용어. 이 용어는 로고요법의 창시자인 Viktor Frankl 박사가 만들었다. Noogenic은 사람의 정신적 또는 정신적 차원을 나타내다.

 

18. 이것이 단지 참혹한 강제수용소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어떤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가 있기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고, 지금도 읽히는 이유 아니겠나.

 

18. 그는 인간이 우스꽝스럽게 헐벗은 자신의 생명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았다. 프랭클은 이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무감각의 복잡한 흐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제일 먼저 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냉정하고 초연한 궁금증을 갖는 것에서 구원을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곧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남아 있는 삶을 지키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가까이에서 자기를 지켜보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종교에 의지하거나 농담을 하는 것으로, 나무나 황혼같이 마음을 치유해 주는 아름다운 자연을 단지 한번 바라보는 것으로, 그들은 굶주림과 수모, 공포 그리고 불의에 대한 깊은 분노의 감정들을 삭인다.

 

19.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는 없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을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에게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부모도,아내도 죽어버린 상황에서 그를 버티게 한건 무엇이었을까?

 

19. “‘’(why)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가 한 말이다. 삶의 명료한 목적에 대해 얘기한다.

 

19. 강제수용소에서는 모든 상황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이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자유뿐이다. 과거 스토아 학파는 물론 현대의 실존주의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이 기본적인 자유가 프랭클 박사의 이야기에서는 아주 생생한 의미를 갖는다.

강제수용소를 군대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오늘날 가장 유사한 형태가 아닐까. 그런 상실의 시간을 통해서 나는 성장할 수 있고, 저자처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적절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20. 그 중에 적어도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준 사람들도 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환자들이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어떻게 하면 환자들에게 상황이 아무리 참담해도 무언가를 위해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깨우쳐줄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련과 고난에 많이 좌초된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그 어려운 시기만 잘 지내면 되는데 그걸 넘기기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안타까운 일이다.

 

20. 유럽의 실존주의자들과는 달리 프랭클 박사는 비관론자도 아니고 반종교주의자도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그는 곳곳에 만연한 고통과 악의 세력을 몸소 경험한 사람으로서 곤경을 이겨내고 자신을 이끌어줄 진리를 찾아내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 놀랍도록 희망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나도 무한긍정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움은 있지만 해결되리라 생각했고 정말 해결이 되더라.

 

20. 인간 문제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 초점을 둔 한 사람의 극적인 경험담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가치는 물론 철학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정신의학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유익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1장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카포, 우리 안의 또 다른 지배자

 

26. 감시하는 병사들보다도, 나치대원들보다도 카포들이 수감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악질적인 경우가 많았다.

* Kapo : 유대인 경찰로 불리기도 한다. '카포'는 아우슈비츠에 온 유대인 수용자 중에서 선정, 악질적으로 유대인을 괴롭힐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을 선정해서 그들을 선동했다. 그들은 독일군으로부터 특혜를 받는 대신 같은 유대인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선량한 카포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카포는 독일군보다도 훨씬 잔인하게 수용자들을 짓밟았습니다.

독일군에게 카포는 단지 유대인을 짓밟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카포가 쓸모가 없어졌다 싶으면 그들은 바로 화장터로 끌려갔다. 말그대로 소모품에 불과했다. 우리의 일제 앞잡이와 똑같다.

 

* 인간은 인종에 상관없이 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의 인간이 나온다. 그들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더 나은 선택을 해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

 

27. 그것은 일용할 양식과 목숨 그 자체를 위한 투쟁이자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다.

 

27. 그 해당자를 가리는 과정이 곧 개별적인 수감자들 사이에, 혹은 수감자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싸움의 도화선이 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희생자 명단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친구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한 사람을 구하려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이다. 타인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모든 것을 합리화 시켜줄수 있다.

 

28. 수감자들에게는 모두 번호가 있었고, 그들은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어떤 느낌일까? 유격훈련할때의 37번 올빼미와는 차원이 다를거 같다. 자기의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그냥 번호가 나를 말해주는.

 

28. 그들에게는(수감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없고 또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한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아니면 이제 곧 끌려갈 친구의 목숨을 구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를 대신할 다른 사람, 즉 다른 번호를 수송자 명단에 집어 넣는다.

이럴때는 이름대신 번호가 더 낳을 것이다. 대신할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죄의식을 심어주니까.우리가 예수가 아닌 이상에야 어떻게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구할 생각을 할 수 있겠나.

 

29.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유약하고 착한 사람은 말그대로 제일 먼저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카포들, 독한놈들, 나쁜놈들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친일파처럼.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29. 강제수용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글은 그 동안 수없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비록 실제 일어난 일이더라도 그것이 한 개인의 체험과 관련된 경우에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전개될 글에서 내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런 체험의 명확한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29. 수용소 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을 위해 나는 그들의 체험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수용소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 그래서 아직도 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극소수 사람들이 당했던 일에 대해 말해 주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런 노력들이 필요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그 분들은 해방이 되고 나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뿐이다.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가족들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눈총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30. “우리는 우리가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리고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우리가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군대를 안 가본 사람이 군대를 모르듯이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니 그저 타인의 경험일뿐이다. 그리고 책일 때 잠시뿐이다.

 

30. 자기 자신이 수감자로 갇혀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이 과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책들은 객관성이 아마 생명일 것이다.

 

30. 그의 판단이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의 평가가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일을 할 때에는 그 어떤 개인적인 편견도 버려야 하는데, 바로 이점이 이런 종류의 책이 지니고 있는 어려움이다.

 

31. 내 신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용기를 가져야 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장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31. 1차 세계대전 이후 연구가 시작되어 우리에게 철조망병증후군으로 널리 알려진 수형생활의 정신의학에 일정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덕분에 우리는 집단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 of Masses)에 대한 이해의 폭을 훨씬 넓힐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우리에게 신경과민 상태와 강제수용소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정신의학에 도움이 되다니. 불필요한 필요성이다.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31. 나는 수용소에서 마지막 몇 주를 제외하고는 정신의학자 노릇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의사 노릇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용소 내에서 신경증 환자는 극도로 많았을 것인데 그들에게 의사역할을 해주고 싶었을텐데

 

32. 여하튼 그때 나는 신나게도 무려 담배 열두개비를 바꿀수 있는 구폰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담배를 수프 열두 그릇과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고, 수프 열 두그릇이면 한동안 굶주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담배는 참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 비참한 수용소 내에서도 담배가 통용되었다니. 그리고 수용소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도 주어지다니 독일인은 참 머리가 좋은 것 같다. 적당한 당근이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약간의 희망거리를 제공해주는 것.

 

32. 그 밖의 사람들은 담배를 피울 수 없었는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잃었거나 아니면 자기에게 남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저 즐기려는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경우였다. 따라서 어느 날 동료가 자기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가 자신을 지탱해나갈 힘을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일단 그 믿음을 잃고나면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다시 생기기는 힘들었다.

 

도살장 아우슈비츠에 수용되다

 

33.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에, 두 번째 단계는 틀에 박힌 수용소의 일과에 적응했을 무렵,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이다.

 

33. 첫 번째 단계의 특징적인 징후는 충격이다.

 

35. 본래 낙천적인 성격(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는 감정의 평온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을 가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신수가 훤하군. 괜찮은 사람들처럼 보여. 심지어는 웃고 있잖아. 누가 알아. 내가 저 사람들처럼 혜택받는 처지에 있게 될지.’

이런 희망들마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아갈수 있나. 군대는 2년이니까 버틸수 있는 것이다.

 

집행유예 망상

 

36. 정신의학에 보면 소위 집행유예 망상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시험치고 난후 꼭 100점이 나일거라는 생각역시 마찬가지 망상이다.

 

36. 1,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200명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는 가축우리 같은 건물에 구겨 넣어졌다.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37. 그들은 이렇게 해서 번돈의 대부분을 슈냅스라는 술을 사는 데 썼다. ‘즐거운 저녁 한때를 위해 필요한 슈냅스를 사는 데 몇 천 마르크의 돈이 필요했는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술로 자기 자신을 마취시키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누가 비난을 하겠는가?

술과 담배. 참 아이러니 하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이것들을 찾는다. 이거라도 없으면 남자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었을지도. 적절한 자유를 준 독일인.

 

37. 그런데 수용소 안에 있는 사람 중에는 나치대원으로부터 거의 무제한으로 술을 공급받는 사람들오 있었다. 가스실이나 화장터에 배치된 사람들이었다. .... 강요된 사형집행인의 역할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고, 대신 자기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37. 하지만 나와 함께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언젠가는 자기에게 집행유예가 내려질 것이며, 만사가 풀릴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희망이 없다면 하루도 버티기 힘든 환경이다.

 

38. 장교가 가까워지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똑바로 세웠다. 빵 봉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얼마나 많은 선배장교들로부터 이와 유사한 상황들이 많았나. 배가 너무 고파 반찬으로 나온 김을 주머니 속에 넣고 온 일도 있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39. 나는 그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민첩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는 내가 오른쪽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내 어깨를 돌렸다. 그래서 나는 오른쪽으로 가게 되었다.

이건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오른쪽을 선택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

 

무너진 환상, 그리고 충격

 

42. “빌어먹을 놈!” 그 순간 나는 진실의 실체를 보았다. 그리고 심리적 반응의 제1단계를 특징짓는 감정, 즉 충격을 경험했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 전부를 박탈당했던 것이었다.

얼마나 소중한 연구자료이길래 이랬을까. 그리고 좌절되었을 때 박탈당했을 때, 그에게는 충격 그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42. “앞으로 2분간 여유를 주겠다. .... 2분동안 입고 있는 옷을 모조리 벗어서 가지고 있던 물건과 함께 자기 자리에 내려 놓도록, 신발과 머리띠, 멜빵과 탈장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벗도록 한다. 자 시작

앞으로 00분간 시간을 준다는 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선착순은 정말 내개 너무 힘들었다.

 

43. 심지어는 털 한 오라기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그 동안의 삶과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물건 중 과연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안경과 벨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벨트는 나중에 빵 한조각과 바꾸어 먹고 말았다.

 

44. 이런 일을 당하면서 우리가 그때까지 갖고 있던 환상이 하나둘씩 차례로 무너졌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섬뜩한 농담기가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우스꽝스럽게 벌거벗겨진 자신의 몸뚱이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은 몰론이고 서로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그야말로 안간힘을 썼다. 어쨌든 샤워기에서 정말로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냉담한 궁금중

 

45. 이런 종류의 이상한 유머 외에 우리를 사로잡는 또 다른 감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궁금증이었다. 그 전에도 나는 어떤 낯선 상황에서 제일 먼저 궁금증이 고개를 드는 것을 경험하는 적이 있다. ...언젠가 등반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울 때,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제일 고개를 든 것이 바로 궁금증이었던 것이다. 이 위기에서 내가 살아날 수 있을까? 아니면 두개골이 박살이 날까? 부상을 당한다면 어떤 부상일까? 이런 것이었다.

 

45. 이런 냉담한 궁금증이 심지어 아우슈비츠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이것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기 마음을 어느 정도 분리시켜 어떤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데,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마음가짐을 가꾸었다. 우리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결말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46.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었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이것 혹은 저것이 있으면 살수 없다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46. 각층(길이 6.5피트에 폭이 8피트인 곳)에 무려 9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바닥이 위에서 함께 잤다. 9명에게 배당된 담요는 두 장 뿐이었다.

6.5피트면 198cm이고 8피트이면 244cm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잠이 밀려 왔다. 그리고 그 잠은 비록 몇 시간 동안이지만 우리에게 고통을 잊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47. 수용소에서는 우리는 이를 닦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잇몸이 그 어느 때보다 건강했다. 셔츠 한 벌을 가지고 반년 동안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입었다.

 

47.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무서운 말이다. 그러나 나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위대한 능력 중에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지만 절대 자살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48.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과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나에게도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하면서 겪는 고통이 자살을 생각하게 했다.

 

48. 나는 개인적인 신념을 가지고 수용소에 도착한 날 밤에 앞으로 절대로 철조망에 몸을 던지는짓은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수용소에서 자살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계산을 하고, 모든 기회를 감안해 보아도 보통 수감자들이 살아나갈 가능성이 아주 희박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것 뻔한데 자살까지 해서 뭐하나 이런 것인가. 그래도 자살은 의미있어야 하지 않을까. 집단에서 자살의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수 있겠다.

 

48.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 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가스실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

 

죽음에의 선발을 두려워하지 말라

 

49.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이런 일이 있었을 때에도 나는 그저 조용히 웃기만 했다.

 

50.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50. 자네들은 회교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불쌍하고, 비실비실거리고, 병들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고된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회교도라고 한다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51. “자네들 가운데 다음번 선별을 두려워할 사람은 바로 저 사람뿐이야. 그러니 모두들 안심들 하게.” 그 말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누구라도 당시 나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나와 똑같이 웃었을 것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뻔한데 하루 빨리 죽는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없으니 그런것인가. 나는 웃지는 못할 것 같다.

 

혐오감

 

51. 레싱이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52. 그 다음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을 말한다.

 

52. 이런 감정들과 별도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을 약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엇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너무나 간절해서 그리워하는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 정도가 된다.

이런 말이 이해된다고 감히 못하겠다. 너무 간절해서 완전히 소진시킨다. 지금 상황에 항상 감사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52.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온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감, 심지어 그저 생긴 모양에서도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무감각

 

54. 심리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선 그 사람은 그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54. 소년의 발가락은 이미 동상에 걸려 있었는데 의사가 집게로 시커멓게 썩은 상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정말로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몇 주가 지나면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주검과 수프

 

55. 한 사람이 방금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죽음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는데, 그때마다 매번 그랬다...... 그중에서 한 사람이 죽은 살마이 먹다 남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감자을 낚아채 갔다. 그 다음 사람은 시신이 신고 있는 나무 신발이 자기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는지 신발을 바꾸어 갔다. 세 번째 사람도 죽은 사람의 외투를 가지고 앞에 사람이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진짜 구두끈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다반사가 되어버린 죽음은 이렇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가온다.

 

56.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방금 전에 밖으로 옮겨진 시체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만약 그때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나의 감정결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일을 기억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 일이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불러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57. 인간이 더 이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를 의미하는 무감각은 수용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징후이다. 수감자들은 마침내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진다.

 

57. 이런 경우(억울하게 구타를 당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이것은 어른들이나 벌을 받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데-정작 참기 힘든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다.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다.

군대에서 많이 느껴봤다. 정말 내가 한일이 아닌데 그냥 내가 한일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말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57. 정말로 이상한 것은 흔적도 남지 않은 단 한 방의 구타가 어떤 상황에서는 그보다 심한 흔적을 남긴 구타보다 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다....... 욕을 하는 대신 그는 장난하듯이 돌멩이 한 개를 집어 나에게 던졌다. 그 행동이 나에게는 맹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가축들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자기와는 닮은 점이 전혀 없어서 벌을 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향해 하는 행동같이 느껴졌다.

 

57. 구타를 당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주는 모멸감이었다..... 나를 때린 그 감시병은 불과 몇 분 전에 우리를 향해 멸시하는 투로 너희 같은 돼지들에게는 동지애가 전혀 없다고 욕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구타 자체 행위보다는 말 자체가 구타를 하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가 더 힘들게 한다. 사랑하니까 이러는 것이다라는 것처럼

 

무감각한 죄수도 분노할 때가 있다

 

60. “.....돈을 벌기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진료소에서 일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말을 해버린 뒤였다.....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60. 바로 그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카포에게서 받았던 작은 혜택들

 

61. 나에게 다행스러운 일 중의 하나는 우리 작업반의 카포가 내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성격을 진단하고, 그에게 정신요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나에게 고마워했으며, 그 때문에 나는 그로부터 작은 혜택을 받을수 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이럴때는 또 중요하네. 의사니까 이런 대접을 받았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

 

62. 그 카포가 가슴에 나에게 쏟아내고 싶은 말을 품고 있는 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 그의 옆자리가 나에게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63. 친애하는 카포 각하의 주치의로 임명된 나는 앞줄에 서서 일정한 속도로 행진을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 그는 국자를 수프통 밑바닥까지 집어 넣어 콩알 몇 개를 내 수프에 넣어 주곤 했다.

 

64. 우리가 일반 노동자들이 하루에 빵 10온스반(300g)과 묽은 수프 14분의 3만 먹고는 살 수 없다는 것, 일반 노동자들은 우리가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지 않는다는 것, 다른 수용소로 보내졌거나 혹은 방금 가스실로 보내닌 가족에 관한 소식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일반 노동자는 매일매일 시시각각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위협을 받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하면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64. 언젠가는 한 마음씨 좋은 감독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는다는 말이 있다. 감독에게 이런 말을 할수 있는 여유가 생겼네. 세상 어디에도 분명 착한 사람 몇 명은 있다.

 

수감자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꿈

 

64. 두 번째 단계의 주된 징후인 무감각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불확실하면 오로지 한 가지 과제에 모든 노력과 감정이 모아지게 한다.

 

65. 그와 같은 긴장상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할 필요성과 결합되어 수감자들의 정신세계를 원시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린다......이것은 정신세계가 원시적인 수준으로 퇴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그들의 소원과 욕망은 꿈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65.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빵과 케이크와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이었다. .... 하지만 꿈을 꾼 사람들은 꿈에서 깬 다음 수용소 생활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꿈 속의 환상과 현실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이런 기분이 무언지는 알겠다. 처한 환경은 달랐지만 훈련소 시절, 정말 너무 배고팠다. 먹는 양까지 줄여야 했던 지옥주에는 먹는 것에 너무 민감해졌다. 자기전 동기들과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극한 환경에 처하면 동물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66. 그 순간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나쁜 꿈일지라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용소의 현실만큼이나 끔찍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끔찍한 곳으로 그를 다시 불러들이려고 했다니.....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은 없을텐데 꿈조차 행복하고 좋은 꿈이 아니라 나쁜 꿈이라니.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 깨우면 깬 다음의 현실이 더 악몽같은데.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 욕구

 

66. 사람들의 정신이 온통 먹고 싶다는 본능에 집중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군대 훈련소 시절 절반 이상은 배불리 먹고 싶은 생각이었다.

 

66. 나는 이렇게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간신히 우리 몸이 적은 양의 음식과 낮은 칼로리에 적응하게 되었는데, 맛있는 음식에 대해 그렇게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해서 내장기관에 자극을 주면 나쁜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던 것이다. 먹는 이야기는 당장은 마음의 위안을 줄지 몰라도 생리적으로는 위험을 수반한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 위안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사람이 시작하면 거기에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정말 이야기가 끝나면 더 비참해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다.

 

67. 마지막 남아 있던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몸이 해골에 가죽과 넝마를 씌워 놓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그러자 저항력이 없어졌다. 같은 막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우리는 모두 다음에는 누가 죽을 것인지, 그리고 자기 자신은 언제 죽을 것인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68. 여기 있는 이 몸뚱이. 이제 정말로 송장이 되었구나. 나는 무엇일까? 나는 인간 살덩이를 모아 놓은 거대한 무리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68.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경험했던 영혼을 파괴시키는 정신적 갈등과 의지력의 충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한번 나오는 빵을 바로 다 먹어치우느냐, 조금씩 떼어서 먹느냐 이런 단순한 문제. 난 바로 다 먹어버리는 쪽이다. 그러나 한참 뒤에 동기가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서 먹을 때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69. 수용소 생활의 스물네 시간 중 가장 끔찍한 시간은 바로 기상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싫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과 강제로 일어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이었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도 하루, 이틀이었다.

 

70. 어느 날 아침에는 평소 꽤 용감하고 의연한 것으로 알려진 한 친구가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을 보았다. 신발이 그가 신기에는 너무 작아 할 수 없이 맨발로 눈 위를 걸어 작업장까지 가야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가 슬퍼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나는 다른 신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작은 빵 조각을 꺼내서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누가 이 상황을 가지고 욕할수 있겠나? 자기 신발을 이 소년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른이니까 소년을 챙겨야 도덕적 의무감은 없다. 내 몸, 내 신발, 내 것이 더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70. 남자들만 있는 다른 집단 예를 들어 군대와는 대조적으로 수용소에서는 성도착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꿈에서도 섹스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꿈에서는 평소에 풀지 못했던 욕구나 불분명한 감정이 정확하게 나타나는 법인데도 말이다.

성적욕구가 얼마나 강한 것인데. 이런 조건에서는 그런 욕망을 가질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메마른 정서

 

71.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시적인 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나. 삶을 바라보는데 가장 무서운 태도 아닐까.

 

71.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다른 사람의 머리 위로 창살을 통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태어난 고장을 볼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삶보다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72. 그들은 무례한 태도로 나를 비웃으며 내 간청을 묵살했다.

여기서 살았다고? 그렇다면 실컷 보았겠네

얼마나 분노가 느껴질까. 대단한 것도 아닌데. 결국 극한에 몰린 인간 군상의 모습이 아닐까.

 

수용소안에서의 정치와 종교

 

72. 수용소에는 대체로 문화적 동면현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두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을 바로 정치 및 종교였다.

 

73.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소문이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에 실망을 안겨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보다 더 분통 터지는 사람들은 도저히 못 말리는 낙관주의자들이었다.

왜 낙관주의가 문제일까. 무한 낙관주의가 너무 이상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될텐데.

 

74. 몇 시간 동안 나는 마음 속으로 글을 썼다. 아우슈비츠 소독실에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되살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작은 종이 조각에 요점이 되는 단어들을 속기로 적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해야 하는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75. 그런데 바로 이 말이 우리가 석방되기 전, 전쟁이 끝나기 불과 몇 달 전인 바로 그 시점에 그의 영혼에 작용을 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 어떤 운명같은 것들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눈 뜨고 직시해야 한다. 알게 모르게 나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으니까.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75.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그런 사람들은 흔히 예민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77.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78.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생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얼마나 행복한 지금을 살고 있는지 나는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79. 그것은 그때서 내가 깨달은 것이었는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79.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80. 나와 그녀가 나누는 정신적 대화 역시 아주 생생하고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사랑은 죽음 만큼이나 강한 것이라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80. 이렇게 내면세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80.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81.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곤 했다.

나는 해군이 된 것에 가장 가슴 뿌듯할 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싶어하던 바다를 매일매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다는 나의 고향이다. 이젠 맘껏 볼수 없어서 서글프지만 바다 대신 다른 것을 매일 볼수 있어서 행복하다.

 

82.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사람은 꼭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 처해야만 그동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소한 것에 감사한다.

 

82. 곧 닥쳐올 절망적인 죽음에 대해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이 사방을 뒤덮고 있는 음울한 빛을 뚫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절망적이고 의미없는 세계를 뛰어넘는 것을 느꼈으며,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어디선가 그렇다라고 하는 활기찬 대답 소리를 들었다.

 

83.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Et lu\x in tenebris lucent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강제수용소 안에서의 예술

 

83. 어쨌든 자기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잊기 위해 오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고, 촌극을 하는데, 그 중에는 수용소의 현실을 풍자한 것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은 현실을 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실제로 그것이 현실을 잊는데 도움이 되었다.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인가. 그 각박한 수용소 안에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활동을 막을수는 없다.

 

86. 곧이어 바이올린이 흐느끼듯 토해내는 애끓는 탱고 선율이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바이올린이 흐느끼는 소리에 나도 덩달아 흐느꼈다. 바로 그 날은 어떤 사람이 24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었다.....어쩌면 겨우 몇 백 야드 혹은 몇 천 야드에 불과한 거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로 갈 수 없는 그곳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내 아내였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읽기만 했는데도 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유머

 

86. 예술뿐만 아니라 유머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더 놀랄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것 중에 하나이다. 유머를 아는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87.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건축공사장에서 일을 할 때, 실제로 나는 옆에서 일하는 친구를 대상으로 유머 감각을 개발시키는 훈련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에게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자고 했다.

 

88.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스러하게 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88.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가 아무리 큰 공간에 들어가더라도 공기 전체에 영향을 미치듯이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90. 오랜 여행의 긴장도 풀지 못한 채 우리들은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아침 늦게까지 꽁꽁 언 채로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또 아우슈비츠는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91. 그런 상황에서 사이렌 소리가 가져다 주는 안도감이 어떤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한 라운드가 끝나는 종소리를 듣고, 마지막 순간에 넉 아웃될 위기를 모면한 권투선수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이해가 된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단체기합 속에서 수업시작, 식사 시작 종소리는 천국의 종소리였다.

 

92.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쇼펜하우어가 시련으로부터 자유라고 했던-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93.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자기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해서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정말로 정직하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확신이 서지 않는 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적 행복을 느꼈던 환자 생활

 

94. 그때 내가 얼마나 그 친구에게 미안했는지 그리고 또 그 순간 그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고, 병에 걸려 병동에서 졸 수 있다는 사실이 또 얼마나 기뻤는지! 그곳에서 보낸 이틀이, 그리고 그 이후에 주어진 또 다른 이틀이 내 생명을 보존하는 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비슷한 경험을 진짜 많이 했다. 군대에서 아플서 따뜻한 병실에 누워 있을 때 차가운 겨울바다에서 고생하고 있는 동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너무 좋다는 상반된 생각.

 

95. 나는 내가 작업반에 들어갈 경우 짧은 시간안에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의사로서 내 동료들을 돕다가 죽는 것이 그 전처럼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보다 확실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이것인 단순한 계산이지 희생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군중 속으로

 

96.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가치를 위협하고, 또 그것을 의혹 속으로 내던져버린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계,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 이런 세계에서 개인의 자아는 끝내 그 가치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96. 만약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 싸우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97. 양떼인 우리들은 오로지 두 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하면 저 무서운 개들을 피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글자 그대로 군중 속에 자기 자신을 파묻으려고 애를 썼다.

 

나 혼자만의 공간

 

98. 잘 알다시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강요된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기를,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정말 그렇지 않나. 때론 혼자가 싫을 때도 있지만 아주 가끔은 철저히 혼자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98. 그냥 앉아서 꽃이 만발한 초록빛의 산등성이를 바라보거나 철조망의 마름모꼴 그물눈 안에 들어가 있는 먼 바바리아의 푸른 언덕을 바라보았다. 나는 간절하게 꿈을 꾸었다. 그러면 내 마음은 북쪽에서 북서쪽, 나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었다.

 

99. 옆에 있는 시체, 이가 득실거리는 그 시체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감시병이 지나가는 발소리만이 나를 꿈에서 깨울 수 있었다.

 

번호로만 취급되는 사람들

 

100. 오로지 죄수번호를 가지고 있을 때만 그 사람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글자 그대로 번호가 되었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번호의 생명은 철저히 무시된다. 그 번호의 이면에 있는 것, 즉 그의 삶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 된다.

이름에 대해 그렇게 의미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단지 번호로만 존재한다는 것과 그래도 고유의 내 이름이 있다는 것은 차이가 크다는 생각을 해본다.

 

102. 수용소에 살아남은 사람들, 여전히 일할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야만 했다. 그들은 절대로 감상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전적으로 감시병들의 기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들 자신을 환경이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운명의 장난

 

102.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나는 내 자신을 위한 하나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자 그 후 내 동료들도 모두 이 규칙에 따랐다. 나는 대체로 모든 종류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을 하는 편이다.

 

105. 내가 매일같이 매시간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 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을 사랑했다는 것. 세 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짧은 결혼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자기가 죽는다고 생각하고 남긴 말이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 대해 얘기한다.

 

테헤란에서의 죽음

 

105.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결국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운명을 가르는 결정

 

107.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것은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했고, 대신 운명이 자기에게 정해진 길을 가도록 했다.

 

107. 때로는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때도 운명이 자기 대신 결정을 내려 주기를 원했다. 이렇게 어떤 일의 실행을 회피하는 태도는 수감자가 수용소에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110. 내가 친구에게 함께 탈출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나를 엄습했던 그 불편했던 감정이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갑자기 운명을 내 자신으로 손으로 잡겠다고 결심했다.... 결연한 태도로 환자 곁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마자 그 불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

 

112. 오랜 시간을 긴장과 흥분 속에서 보낸 후, 동료의 주검 앞에서 올리는 평화를 갈구하는 우리의 기도는 그 동안 인간의 목소리로 올렸던 그 어떤 기도보다 뜨거웠다.

 

엇갈린 운명

 

114. 그로부터 여러 주가 지난 후, 우리는 이 마지막 순간에도 운명의 신이 우리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는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것이 특히 생사와 관련된 문제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운명의 장난이 아니겠나. 아니면 그가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알고 수용했기 때문에 신이 주는 운명일수도 있다.

 

무감각의 원인

 

115. 굶주림과 수면부족이 무감각 상태로 그들을 이끌었으며, 수감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조함이 이런 무감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니코틴과 카페인 부족도 이런 무감각과 초조함의 원인이 되었다. 물질적인 요인 외에 정신적인 요인도 있었는데, 그것은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단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일반적인 수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계층이 하락했다는 것을 느꼈다.

 

117. 그러나 내가 보낸 시간 중에서 가장 목가적이었던 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헛소리를 하거나 잠을 자고 있는 한밤중이었다.

 

118. 다른 사람이 무감각한 것을 보면, 특히 그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보면 ㆍㆍㆍㆍ특히 그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보면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

 

119. 인간은 철저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는 어떤가? 어떤 주어진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에 아무런 정신적 자유도 없단 말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이론, 즉 인간은 여러 조건과 환경적인 요인-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성격으로 이루어진-이 만들어낸 하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일까? 인간은 이런 여러 요소들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제수용소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수감자들이 보인 반응이 인간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는 이론을 입증해 줄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 직면한 인간에게는 자기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단 말인가?

 

120.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있다는 것이다.

 

120.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120.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121. 수면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롸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것인가를 선택할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그래도 인간이 대단히 환경의존적인 존재이면서도 한편으로 위대한 존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피커 드러커가 했던 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이 떠오른다.

 

121.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121.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그들은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시련의 의미

 

122.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122.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인생수업 책과 같이 우리 인간은 크고 작은 상실과 시련,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 시련들이 나를 더 성장시켰고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122.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한다.

 

123.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123.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지고한 도덕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감자 중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즐기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그리고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

 

126. 수감자의 내면적 자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심리적, 육체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감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정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127.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127. 수용소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의 불확실성은 결말이 났지만, 이번에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를 잇는다. 이런 형태의 삶이 끝날 것인지 말 것인지. 끝난다면 과연 언제 끝날 것인지 미리 예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127.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128.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실직 1년차. 자발적 실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쫓아 가고 있지만 심히 불안하다.

 

129. 삶이 날아간 것 같은 이런 느낌은........갇혀 있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과 갇혀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 그 요인이다.

하긴 군 생활도 2년이라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래도 나름 희망을 가지고 복무한다.

 

129.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수감자들이 공포로 가득 찬 현재를 덜 사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나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서 현재를 박탈하는 행위에는 어떤 일정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아마도 나이든 사람이 젊은이나 자식들에게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일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삶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

 

130.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130. 수용소의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군대에 있는 기간을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할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으면 좋겠다.

 

131. 강제수용소에서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군대에서 2년이란 기간은 정말 무언가를 성취할수 있는 좋은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낭비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얻어갈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직접 보아왔다. 이 책이 아마 내 책에 많은 도움이 될거 같다. 비록 군대가 죽음의 수용소는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131. 인간의 특성으로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때때로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아무리 내가 현실에서는 비참하지만 미래에는 나아질거라는 희망이 없으면 살아갈수가 없을 것이다. 너무 낙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합리적인 낙관은 필요하다.

 

133.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을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르르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 연구대상이 되었다.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미래의 작가가 되어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도 멋진 시도이다. 자기전에 한번쯤 상상해보면 좋을 것 같다.

 

133.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133.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134.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그냥 그렇게 누워 있으려고만 한다.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도 더 이상 간섭받지 않고.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134. 제가 무얼 물어보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의사 양반? 나를 위해서 말이요. 저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가 해방될 것인지, 우리의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135. 인간의 정신상태-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런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135. 1944년 성탄절로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 현상이다. 무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정말 현실에 기초한 합리적인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설사 그것이 안되더라도 다음 낙관을 기대할 수 있는.

 

살아야 할 이유

 

137.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딜 수 있다.”

 

137. 수감자들을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목표-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슬프도다!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138.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138.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139.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140. 시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백하게 밝혀지면서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을 하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낙관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으로 그것이 주는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40. 릴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 속에 이런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140. 그렇다고 눈물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았다.

 

자살 방지를 위한 노력

 

141. 수용소에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금하는 엄한 규칙이 있었다.

 

141. 그 동기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내세우는 것, 즉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두 사람에게는 인생이 그들로부터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142.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어떤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자신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해 절대 죽을수 없다.

 

집단 정신치료의 경험

 

142. 말로 하는 치료보다는 오히려 올바른 모범을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공정하고 용기있는 행동으로 보아 수용소 편이 아닌 것이 분명한 한 고참 관리인은 자기 담당구역 사람들에게 지대한 도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무수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행동을 통해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대개는 말보다 훨씬 효과적인 법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말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어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의 폭이 넓어졌을 경우이다.

 

143. 죄를 진 사람이 누군지 불지 않으면 수용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루 동안 굶기겠다고 했다. 2,500명의 사람들은 물론 굶는 쪽을 선택했다. 하루 종일 꼬박 굶어야 했던 그날 저녁, 우리는 막사에 누워있었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불이 나가버렸다. 기분이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굶는 쪽을 택한 이 사람들이 대단하다. 군대에는 흔히 겪는 일 중에 하나이다. 범인이 나올때까지 단체 기합을 준다. 그러면 보통 자진해서 범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설령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가 범인인질 알고 있다. 그로 인해 시간낭비, 체력낭비 등 손해본건 이루 말할수 없다. 그를 증오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사람들의 행동. 정말 대단하다.

 

144. 그는 그 죽음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44. 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정신의학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교를 하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동료들을 상대로 정신과적 치료를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춥고, 배고프고, 짜증스럽고, 피곤했다. 하지만 나는 노력해야 했다.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이런 기회를 활용해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절실한 때였기 때문이다.

 

145. 지금까지 시련을 겪어오면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은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이것은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공정하게 얘기해서 미래가 가망 없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작은지에 대해서도 모두 생각을 같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잃거나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그들에게 들려 주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한 시간 후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며칠 안에 전쟁 상황이 엄청난 반전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없지만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적어도 각 개인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기회가, 그것도 아주 갑자기 찾아오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146.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147. 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내 동료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를 갖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147. 우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에 과감하게 직면하자고 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되고, 우리들의 가망없는 싸움이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은 우리가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이겨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고.

 

147. 나는 우리의 희생에 대해서 얘기했다. 희생은 어떤 경우에나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희생은 그 특성상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물질적인 성공이 중요한 세계에서는 틀림없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질 희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희생에는 의미가 있었다.

 

148. 실제로 가망이 없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들의 삶이 갖고 있는 충만한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이 말을 했다. 내 말은 효과가 있었다. 불이 다시 들어와 주위가 밝아지자 누추한 몰골을 한 동료들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나에게 다가와서 감사하다고 했다.

정말 많은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인간적인 말 한마디 그들도 오랜만에 들었을 것이고 그야말로 정신치료였을 것이다.

 

수용소의 여러 가지 인간 군상

 

151. 수용소에서 그렇게 나쁜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감자들을 친절하게 대했던 감시병이나 감독은 대단한 인간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같은 동료 수감자를 괴롭힌 사람의 비열함은 정말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152. 착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악한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152.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군대생활의 이점 중 하나는 바로 인간군상에 대한 경험이다. 이런 인간도 있고 저런 인간도 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동시에 그래도 인간이 이렇구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해방의 체험

 

153. 정신적 흥분 상태에 이어 전체적인 긴장이완 상태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미친 듯이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153. 자유인의 눈으로 그 전까지 미쳐 보지 못했던 수용소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53.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154.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155. 육체는 마음보다는 거부감이 적은 법이다. 육체는 처음부터 새롭게 얻은 이 자유를 잘 활용했다. 드디어 우리 육체가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동안, 며칠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한밤중에도 우리는 먹었다. 한 사람이 먹어치우는 음식의 양이 심히 놀라웠다.

생도 훈련 마지막 주에 빵을 원없이 먹여주는 빵파티가 있었다. 정말 미친 듯이 먹었고 내 평생 그렇게 많은 빵을 먹은 적이 없었다. 실제로 선배 중에는 위에 빵꾸가 날 정도로 먹은 적도 있었단다. 이런 마음 무엇인지 안다.

 

155.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에게 말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것을.

 

156.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을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해방이후 나타난 현상들

 

157. 그렇게 심한 정신적 압작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받았던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은 우헤도 그전과 똑같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 이런 위험은 일종의 잠수병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157.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158.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비통과 환멸

 

159. 정신적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나게 되었을 때, 도덕적 결함을 보이는 현상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겪게 되는 비통함과 환멸이다.

 

159.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그저 어깨를 으쓱하거나 상투적인 인사치레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몰랐어요.” 그리고 우리도 똑같은 고통을 받았어요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저 사람들은 정말로 나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일까?”

타인의 고통이자. 정말 상상할수 없기 때문이다.

 

160. 몇 년동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고난의 절대적인 한계까지 가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60. 나는 삶이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고, ‘사람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지만 정작 자유를 얻은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어떤 사람은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슬프다! 수용소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용기를 주었던 그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여! 슬프다! 마침내 자유가 실현되었을 때, 모든 것이 자기가 꿈꾸어오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여!

 

161. 세상에 나가도 우리가 겪었던 시련을 보상해 줄 만한 속세의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당시 우리가 바라던 것은 행복이 아니었다. 행복을 바라면서 스스로 용기를 얻고, 우리가 겪는 시련과 희생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겪은 여전히 불행을 견딜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환멸 현상은 극복하기가 아주 어려운 것이며, 나 같은 정신과 의사도 도와 주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낙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161. 지금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그때를 돌아보며 자기가 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침내 해방의 날이 찾아와 그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꿈같이 여겨졌던 것처럼 수용소에서 겪었던 그 모든 시련들이 언젠가는 그저 하나의 악몽으로 생각될 날이 올 것이다.

 

161.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이세상에서 신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2장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167. 정신분석과 비교해 볼 때, 로고테라피가 덜 회고적이고, 자기 성찰을 덜 요구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167. ‘로고테라피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빈 제3정신의학파로 불리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내가 로고테라피를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이나, 아드리안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불리는 권력에의 추구와 대비시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168.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본능적인 욕구를 2차적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자신의 의지를 충족시킨다는 의의를 갖게 된다.

 

169. 인간은 그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이며,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수도 있는 존재이다.

 

169. 설문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6퍼센트의 학생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대답한 반면 78퍼센트의 학생들은 첫 번째 목표가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수치 믿을 만한가.

 

실존적 좌절

 

170.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도 좌절을 당할 수 있다. 이것을 로고테라피에서는 실존적 좌절이라고 한다. .... 다음의 세가지 의미 1) 존재 그 자체, 즉 인간 특유의 존재방식 2) 존재의 의미 그리고 3) 각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 즉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말한다.

 

171. 누제닉 노이로제(실존적 좌절에서 오는)는 병의 원인을 심리적인 것에 두지 않고 인간 실존의 정신론적 차원에 두고 있다.

 

누제닉 노이로제

 

171. 누제닉 노이로제는 욕구와 본능의 갈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 원인 중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172. 몇 번 상담을 해 본 결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직업에 의해 좌절되었으며, 사실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해서는 안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쉬운 문제를 꼭 정신분석을 통해 문제의 근본을 고쳐야 한다는 원칙에 의해 환자가 힘들었을 것이다.

 

172. 갈등을 겪는다고 해서 다 신경질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고통도 역시 모두 다 병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그 고통이 실존적 좌절 때문에 생긴 경우에는 그것을 신경질환 증세라기 보다는 인간적인 성취로 보아야 할 것이다.

 

173.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 주는 것을 그 과제로 삼고 있다.

 

173. 로고테라피가 환자에게 어떤 것을 다시 깨우쳐 주는 과정에서는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본능적 요소에만 국한하지 않고 그의 실존적 현실, 즉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취되어야 할 실존의 잠재적 의미까지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174. 로고테라피에서는 인간을 그저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쾌락을 얻거나 서로 갈등하고 있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를 절충시키거나 혹은 사회와 환경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주된 관심사가 어떤 의미를 성취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분석과 구별된다.

 

정신의 역동성

 

174.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로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75.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있었던 사람들은 수감자 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75.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175.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175. 나는 출판을 위해 집필 중이었던 원고를 압수당했다. 이 원고를 새로 쓰고 싶다는 나의 강렬한 열망이 가혹한 환경 속에서 나를 살아남도록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바리아 수용소에서 발진티푸스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중에 원고를 다시 쓸 때 도움이 되도록 나는 작은 종이조각에다 수없이 메모를 했다. 바바리아 강제수용소의 어두운 막사 안에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쓰는 이 작업이 내가 죽음의 위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76.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 역시 가장 좋을 때, 모든 것이 변화없이 일상처럼 잘 흘러갈 때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역시 마찬가지 아니겠나.

 

176.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 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176. 낡은 아치를 튼튼하게 할 때, 건축가는 오히려 아치에 얹히는 하중을 늘린다. 그래야만 아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이 서로 잘 밀착되기 때문이다.

 

실존적 공허

 

177.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때,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의 일면을 잃게 되었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그런 동물적 본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낙원에서나 얻을 수 있는 그런 안전함은 이제 영원히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 되었으며, 인간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177. 근래에 들어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 동안 자기 행동을 지탱해 주던 전통이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전통도 없다. 그 자신조차도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남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거나(동조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는 전통이 있는가 하면 보편타당한 전통은 유지되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그런 전통은 무엇일까.

 

177.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고민보다는 권태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확실하다.

 

178.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된 곳에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실존적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성적 탐닉에서 그 보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삶의 의미

 

180. 중요한 것은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181. 인간의 실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181.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잇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도니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수 있다.

 

존재의 본질

 

182.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두 번째 인생이다. 첫 번째 인생과는 다르게 살려고 하는데 자꾸 첫 번째 습관과 행동이 되살아나려고 한다. 항상 자각을 해야 하고 자극을 줘야 한다.

 

183.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자야 한다는 것이다.

 

184. 우리는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 써 그리고 3) 피할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완전히 독립적일수 있나. 나는 1,2,3번이 골고루 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것 아닌가.

 

사랑의 의미

 

184.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수 있게 된다.

 

185. 사랑은 섹스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근원적인 하나의 현상이다. 섹스는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섹스는 그 안에 사랑이 담기는 순간, 아니 사랑이 담겨 있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성화될 수도 있다.

 

시련의 의미

 

186.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188.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기학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피할수 있는 고통과 시련은 피해야 한다. 의미있는 시련만이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거 아닐까.

 

189. 나는 내 정신적 자식(원고)을 잃는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해야 했다. 이제 나에게는 아무것도, 어느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육신의 자식은 물론 정신의 자식도!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내 삶이 궁극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가 하는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190. 과연 이 모든 시련,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런 상황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지 않다면 궁극적으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할 의미가 없기 때문에, 탈출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우연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것은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기 때문에.

 

로고드라마

 

194.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인간이 삼라만상의 진화과정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세계를 초월하는 또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인간이 겪는 시련의 궁극적인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수 있는 그런 또 다른 차원의 세계 말입니다.

 

초의미

 

194. 초의미의 궁극적 의미는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실존철학자들이 가르친 대로 삶의 무의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터득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로고스는 논리보다 심오하다.

 

195. 하지만 아빠, 이걸 잊지 마세요. 처음에 홍역에 걸리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에요.

나도 이것이 아직도 의문이다. 선하신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행동을 하시는 것인지. 그런 시련을 통해 의미를 찾으라고. 그건 아니잖습니까?

 

삶의 일회성

 

197.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빼앗아가는 것은 고통만이 아니다. 죽음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정말로 무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잠재 가능성이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해왔다. 가능성은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바로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과거로 옮겨간다. 이렇게 과거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일회성을 탈피해 영원한 실체로 보존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속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고정된 상태로 보존된다.

과거를 이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 그저 쓸모없는 기억의 잡동사니가 아니다.

 

198. 삶이 일회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일회성이 우리의 책임 아래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198. 인간은 대개 그루터기밖에 남지 않은 일회성이라는 밭만 보고, 그 행동과 기쁨과 심지어는 고통까지도 구원해준 과거라는 곡창은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서는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으며, 그 어느 것도 사라질 수 없다. 과거에 그랬었다라는 것처럼 확실한 존재방식도 없을 것이다.

 

199.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젊은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에 대해 향수를 가질 이유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그가 젊은이들을 부러워하겠는가? 그 젊은이에게 놓여 있는 잠재 가능성 때문에?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있는 미래 때문에? 천만의 말씀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요즘 많이 느끼는 문제들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늙는다는 것 너무 싫다. 몸이 아프니까 더 싫다. 그래도 저자의 말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지 않겠나.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건 아니니까.

 

기법으로서의 로고테라피

 

202. 로고테라피에서 활용되는 역설의도라는 기법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다. 마음 속의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일을 생기게 하고 지나친 주의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불필요한 걱정, 두려움

 

205. 실제로 말을 더듬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말이 더듬어지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비록 치료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때 이미 그는 역설의도를 경험한 셈이다.

 

206. 역설의도는 수면장애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불면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결국 어떻게든 잠을 자야겠다는 과도한 의욕을 갖게 하는데, 이것이 그 반대로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환자에게 잠을 자려고 애쓰지 말고 반대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해보라고 권했다. 다시 말해 어떻게든 잠을 자야겠다는 지나친 집착은 잠을 자지 못할 것이라는 예기불안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잠을 자지 않겠다는 역설의도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을 한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우리 집사람에게 얘기해줘야겠다. 지난번 박지원 것을 해줬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208. 자기 연민이든 멸시든 간에 환자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치료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에 있다.

 

집단적 신경증

 

209.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가르침, 즉 인간은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의 결과물이거나 유전과 환경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이론은 태생적으로 위험을 안고 있다.

 

210.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경학과 정신의학 두 분야를 전공한 교수로서 나는 인간이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에 어느 정도까지 굴복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강제수용소를 네 곳이나 전전하다 살아 돌아온 사람으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하게 저항하고 맞서 싸울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 누구도 여기에 토를 달수 없을 것이다. 직접 경험했으므로.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210. 정신분석은 모든 문제를 성욕의 차원에서만 해석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나는 이 비판이 타당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정신분석에는 이보다 훨씬 잘못되고 위험천만한 가정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범결정론이다. 범결정론은 어떤 조건이든지 그 조건에 대해 자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인간관을 의미한다.

 

211. 인간은 조건 지워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최악의 경험을 한 경험자로서 정신의학자로서 인간에 대해 이런 말을 해주어서 고맙고 저자 자체가 증거자료이니 반박할수 없다. 인간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213. ‘슈타이호프의 도살자J 박사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감히 우리가 어떻게 감히 인간의 행동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213. 내가 동부해안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보완이 되도록 서부 해안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의학도의 신조

 

214. 인간에게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상황은 있을수 없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의학

 

215.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3장 비극속의 낙관

 

219. 세 개의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1) 고통과 2)죄와 그리고 3) 죽음을 말한다.

 

220. 여기서 말하는 낙관이란 비극에 직면했을 때 인간의 잠재력이 1) 고통을 인간적인 성취와 실현으로 바꾸어 놓고 2) 죄로부터 자기 자신을 발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며 3) 일회적인 삶에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끌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221.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24.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을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하고,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을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그것 자체가 병적인 문제가 아니라는점,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어떤 신경질환의 표시나 징후라는 점을 간과하거나 잊어서는 안된다.

 

226. 자살기도가 미수에 그친 사람들이 수없이 하는 얘기가 자실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한 사실이다. ....당시에도 자기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방법이 있었고,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있었으며, 삶에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비록 사정이 좋아질 확률이 천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229.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란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사람들의 삶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뿐이다.”

 

229. 로고테라피는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프롬프터로서의 판단력을 갖고 있다.

 

230.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듯이 사람이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데에는 세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일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두 번째는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통해서이다.

세 번째는 자기 힘으로 바꿀수 없는 운명에 철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무력한 희생양도 그 자신을 뛰어넘고, 그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 인간은 개인적인 비극을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233.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242.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성자)은 언제나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소수의 반열에 합류하려는 도전의지를 본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더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분석)

크게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비극속의 낙관 이렇게 3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장은 별도의 책으로 구성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수용소에 관한 경험담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정신의학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흐름에 있어 맞지 않아 보였다. 물론 2장 역시 수용소이야기가 많지만 나는 이 책이 수용소에서의 경험과 그런 경험으로 인해 저자가 느끼고 생각하고 고뇌한 점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이다.

 

보완이 필요한점(독자의 눈으로-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등 등)

 

동료들, 사랑하는 아내와의 기억들은 좋았다. 수용소에서 부모님, 남동생 등 가족도 같이 수용되었다. 나중에 여동생과 만나는 기적이 있었지만 이런 가족들에 대한 내용이 추가 되었으면 감동도 두배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2장의 로고테라피에 대한 내용은 별도의 책으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로고테라피가 3대 학파임도 알고 중요성도 알게되었지만 나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이 부분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용소에서 겪은 일련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로고테라피라는 방법을 이용하면 치료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같은 독자는 수용소에서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을 원하지 이런 이론적인 부분까지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 등)

 

죽음의 수용소라는 극한의 장소에서 최악의 최악의 상황까지 경험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았고

살아 돌아와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가슴 깊이 들어온다. 과연 누가 그의 앞에서 인생이 의미없다, 사는게 의미없다고 얘기할수 있겠나. 이론이 해박한 책도 좋지만 이렇게 구구절절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책은 감동 그 이상이다. 이런 책들이 나올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저자의 눈으로-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조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해주었으면 좋겠다. 4년을 보냈는데 수용소 생활의 내용이 너무 담백하다.(물론 많은 내용을 담는다고 해서 좋은건 아니지만)

나는 궁금한 점이 그렇다면 저자가 수용소에 기적적으로 살아서 돌아온 이유가 그가 얘기하는 삶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책에서 보이는 것은 잃어버린 원고,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하나의 이유는 명백히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이 그가 살아 돌아온 이유는 아닐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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