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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01시 14분 등록

(나에게 이 책은)


배낭여행 좀 했다 싶은 주인들이 만든 카페나 레스토랑에 언제나 있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실크로드 관련된 여행기는 많고 걸어서 하는 여행, 자전거로 하는 여행 등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서 그닥 내 관심을 끌던 책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자꾸만 내 눈 앞에 등장하는 책이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몇 페이지 뒤적이곤 했지만 건조한 느낌의 글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책이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결국은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작가로서의 문장력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의 도전과 체험이 주는 그 진짜배기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배우자를 잃고 은퇴를 하고 나이 60대를 바라보는 바로 그 시기, ‘사랑과 일 그리고 젊음이 부재하는 시기에 이러한 도전을 한 그의 이야기는 중년이라고 벌써부터 주저 앉으려고 하는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앉은뱅이도 일으킨 예수의 기적처럼 이 책은 나를 일으키고 걷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나는 내년에 걸을 것이고, 시를 읽을 것이다. 이 책 덕이다.

 

저자 - 베르나르 올리비에

 

60대에 4년간 12천 키로미터를 걸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75세가 되어 또 걸었다. 아내를 잃고 시작한 걷기 여행. 그러나 또 다른 사랑, 28세 연하인 베네딕트 플라테가 그의 인생에 찾아 왔고 201375세가 된 그는 이번에는 둘이 함께 걸었다’. 그들이 낸 책의 기사로 저자소개를 대신한다.

2013년 일흔 다섯의 할아버지가 다시 길을 나섰다.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3,000㎞에 이르는 길을 2013, 2014년 두 해에 걸쳐 걸었다. 노인의 이름은 베르나르 올리비에. 2003 3권짜리나는 걷는다를 내놔 도보여행 붐을 불러일으켰고 국내에도 올레길, 둘레길 등 각종 길들을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프랑스의 전직 기자다.

 

2013년 여행엔 동행이 붙었다. 베네딕트 플라테.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나 28살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인연을 맺은 이 연극인은종범이 아니라 사실상주범이다. 올리비에를 충동질해서 길을 나서게 한 이가 플라테였다. “처음으로 센 강변을 걸었을 때 우리가 정확히 같은 보폭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당신의 손을 살그머니 잡았답니다. 바로 그 순간, 바로 당신이야 말로 내가 기다리던 남자라는 걸 알았죠.” 플라테의 고백이다.

 

끼리끼리 만났다. 플라테는 강인한 여성이다. 커피와 카푸치노를 주문하면 종업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하트가 그려진 카푸치노를 플라테 앞에다 가져다 놓는다. 정작 플라테는 커피를 집어 들었다. 미식가임에도 거친 식사를 받아들였고, 샤워나 기름 낀 손 때에 대해서도 별 말 없었다. 가끔 딸로 오해를 받아도유머감각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을 대했다. 도보여행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을 때마다 사람들은 여자가 더 힘들어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지만, 볼 일을 볼 때 남자보다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으슥한 곳을 더 열심히 찾아야 하는 것 외엔 딱히, 더 힘든 점은 없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걷고 또 걸어, 마침내 동서양을 횡단하는 실크로드 대탐험을 완수했다. 올리비에라고 해서 차디찬 겨울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북극곰 대회 같은 데 참석하는노익장 과시 할아버지가 아니다. “심혈관계 질병과 신장결석, 전립선 질환 초기 증상, 나날이 감퇴하는 기억력, 그리고 평발에 시달리기도 하며 얼마 전에는경동맥에 협착증이 발생했다는 진단을 받기도 한, 그저 그런 할아버지다. 아무리 플라테의 충동질이 있었다 해도, 그 나이에 그런 조건이면 걷는 도중 중간에 잠시 앉아 쉬다 제 풀에 스르륵 잠들 듯 죽어도 별 이상이 없을 상황이다. 스스로도떠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죽음을 향해 조금 더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올리비에의 핑계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염소자리라는 것. 그냥, , , 계속해서 앞으로 가는 습성을 점지 받았다. 우리말로 하자면 역마살이다. 다른 하나는 이거다. “왜 떠나는가?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 왜 안 떠나는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될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댄단 말인가?”

 

전작나는 걷는다세 권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4년 동안 실크로드 12,000㎞를 걸어서 2002년 중국 시안에 마침내 도착한 기록이다. 이 책은 올리비에에게세계 최초 실크로드 도보답사기라는 명예를 안겼다. 이 세 권을 번역해서 내놓은 효형출판사 관계자는도보여행에 관심 있는 이들의 꾸준한 호응으로 지금까지 7만부 이상 나갔고, 지금도 주문이 들어오는 스테디셀러 중의 스테디셀러라고 말했다.

 

나는 걷는다 끝은 실크로드의 완성, 즉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구간을 추가함으로써 동서양의 양 끝, 15,000㎞ 구간 완주를 마침내 완성시킨 기록이다. 그래서 책 제목에딱 한 단어가 더 붙었다.

 

출발지를 리옹으로 정한 것은, 그래 실크로드니까 그렇다. 19세기 견직물 시장의 본고장이 리옹이었다. 리옹에서 나폴레옹의 진격로를 따라 이탈리아 북부를 횡단한 뒤 슬로베니아로 진입한다. 그래서 이 책은 사실상 유럽의 화약고라는 발칸반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이 8,000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그래서 나치 이후 첫 인종청소에 대한 전범재판을 열게 만든스레브레니차 학살이 일어난 지역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슨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어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를 믿기 때문에 죽기도했던, “유럽에 끌려가기는 하지만 유럽의 규칙은 거의 받아들이지 않, “위험한 열정의 땅말이다. 구체적 내용은 읽어보길.

이 지역에 대한 올리비에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오랜 정교 문화 덕에 금과 은으로 요란하게 치장한 교회는 호화찬란하다. 그 앞에서 신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성호를 계속해서 그린다. 올리비에는 신자들이 믿는 건금과 성호같다고 이죽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덕에놀랍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들이 색다른 화음을 이루어 전통적이면서도 세련된 다성음악을 노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올리비에 글의 가장 큰 장점은 역사와 사람에 대한 얘기를 풍부하게 담아내면서도, 허세를 떨어대거나 무슨 도인이라도 된 양 내면의 깊이에 몰입해 들어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걸었노라, 보았노라, 썼노라, 그 뿐이다. 이런 가볍고 쿨한 발걸음이라니.

그래서인지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소한 것들의 즐거움과 고마움이다. 프랑스의 도보여행자라 하니 주머니에 금덩이라도 넣어 다니는 것처럼 염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몇 십㎞씩 걷는 바람에 온 몸이 너덜해진 이들에게,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서도 손짓 발짓 섞어가며 물이나 커피 한 잔이라도 내주고, 한 번 웃어주는 것 자체가 고맙다. 12,000㎞를 걸으면서 15,000명의 친구를 만들었다는 올리비에는 이번 여행에서 또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을까.

고령화 사회가 닥쳐오면서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 웰다잉에 대한 얘기들이 풍성하다. ‘나는 걷는다 끝’, 이처럼 간결한 말이, 아니 행동이 또 있을까.

(한국일보 2017210일 조성래 기자)

 

내 마음 속 책갈피

 

5 나 스스로를 유럽에서 아시아의 동쪽 끝까지 연결하는 가늘지만 질긴 실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나는 어떤 실, 어떤 연결고리가 될까? 나는 내 책을 통해 독자를 어떤 영역으로 이끌려고 하는걸까.

 

6 우리가 이 책의 출판에 서둘러 그리고 원칙을 거스르면서까지 뛰어든 것은, 저자가 이 책에 별 애착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이 과잉의욕을 내려 놓으라고 하더니

 

7 그러자 이 미래의 저자는 사과를 했다.

미래의 저자라는 말 좋다. ^^

 

8 이 모험은 비록 당사자가 처음엔 애써 감추려 했지만 정말 먼 길을, 그리고 삶 전체의 여정을 펼치는 것이기도 하다. 존재 자체가 일종의 행군 아니던가.

이번 주에 알아보려는 괘는 <뇌풍항괘>이다. 우레와 바람을 상징하는 괘가 위아래로 있는데 그게 항상성을 언급하는 항()괘라는 것이 의아한 가운데 재미 있었다. 끝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우레와 바람, 그 팽팽한 긴장이 유지해주는 한결같음. ‘존재 자체가 일종의 행군이라는 말도 이 맥락에서 새겨볼 수 있겠다.

 

10 즉 서양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동양에 진 빚을 인식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람이었다.

나는 어떤 빛을 지고 있을까. 누구에게. 언제.

 

14 내 목표는 순조롭게 여정을 마치고 4년 후 시안에 도착했을 때 내가 조금은 시인 또는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4년 후의 시안à 시공간을 언급하고, 시인 또는 작가à 그 시공간에서 되어 있는 존재를 언급하고 있다. 나도 미래에 내가 처할 시공간과 그 안에서의 신분을 그려봐야겠다. 화가나 작가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투자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하고 있으니 나는 아주 이상주의자는 아닌갑다.

 

24 내 나이 예순하나, 노년에 가까운 중년이다. / 25년 간이나 여행과 탐험을 함께 계획했던 아내는 10년 전 삶을 마감하여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시작했다.

나도 이런 때가 오겠지. 물론 누가 먼저 세상을 뜰 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부터 25년이라고 하면 70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어찌 보면 많지 않은데. 여행과 탐험 중에 남편을 만나긴 했지만 너무 금방 주저앉은 건 아닌지.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도전보다는 휴양 컨셉에 가까운 여행을 많이 했다. 내년은 탐험이 가미된 여행을 함께할 것이다.

 

25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이 말 너무 좋다. 머나먼 초원.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 느낌이 다른 태양빛. 나는 내년에 서쪽 몽골에서 말을 달릴 것이다. 망설이고 있는 중에 이 책이 나를 부추기고 말았다. 책임지시길.

 

26 인생의 세 번째 시기에 나는 느림과 침묵에 굶주려 있다.

나는 뭐 굶주릴 거 없이 결혼 후엔 비교적 느림과 침묵 속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어느 순간부터 자제한 것 같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7 실크로드만큼 영감을 주고 열정적이며 역사적인 길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실크로드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인다.

 

그 첫 여정이 될 1999년에는 이스탄불에서 테헤란까지 가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7세기 훨씬 전에 열여섯의 앳된 젊은이였던 마르코 폴로(1254년경 – 1324)가 세상의 끝을 향해 출발했던 그 도시에 있게 될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그렇게 어릴 때 움직였는지 몰랐네. 시간은 달라도 공간은 공유한다는 것, 그 공간에서의 체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경이롭다.

 

28 한 젊은 처녀가 머리에 황금 잔을 이고 카스피 해를 건너 한반도까지 덕이 있었든 운이 좋았든 간에 아무 두려움 없이 지났다고도 하지 않은가?

 

29 이 도시를 관통한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일이다.

 

1271, 두 형제는 다시 장도에 올랐다. 이번에는 니콜로의 아들(마르코 폴로)도 동행했는데, 그는 어머니를 여읜,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다. 처음엔 바다를 건너, 그 다음엔 말을 타고, 거대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32 죽음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NATO의 함선에서 쏘아올린 미사일이 세르비아에 떨어진 것이다.

 

세계의 절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머지 반을 여행할 것을 꿈꾸었다.

 

33 고대 중국의 황실이 있던 도시 시안은 약 15년 전 누군가 우물을 파다가 묻혀진 군대를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병마총 발견이 이렇게 최근이었나? 검색해보니 1974년 발견된 거였구나.

 

오늘날엔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사회활동이 예순 살에 마감됨에 따라 새로운 모험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바로 이마에 주름이 지고 머리가 허연 사람들이다.

그러게. 배낭여행이 20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인생은 예순부터임을 알리는 모험가들.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파타야에서 본 젊은 태국여성과 함께 커피 마시고 술 마시며 외로움을 달래던 백인 할아버지들을 마냥 주책이라고 할 건 아니었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나름대로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니까. 

 

40 베네치아에서 겪었던 유일한 위험은 카푸치노 값을 바가지 쓴 일 뿐이었는데.

 

41 이스탄불은 인구 1300만의 초대형 도시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다. 하지만 정치의 중심은 수도인 앙카라다. 그래도 이스탄불이 여전히 터키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인 것만은 분명하다.

 

42 이스탄불, 더 정확히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옛 이름. 로마제국 시대에 수도였음. 15세기에 이스탄불로 개칭됨)이 실크로드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잔티움(이스탄불의 고대 이름.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건설됨)은 안타키아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대상들의 이동로를 이루던 지중해의 모든 도시들을 정치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43 출발이 임박한 지금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며, 다른 화제들로 대화를 이끄는 친구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런 은은하고 은근한 배려. 배려 있는 인간관계가 고차원적인 거 같다.

 

75 가게 주인은 오랫동안 머리를 긁으며 생각하더니, 마침내 자신 있게 말했다. 해결책이 없다고.

 

77 여행자를 자기 집에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것은 이슬람 교도의 의무였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에게 환대손님인 여행자에게 모든 권리를 갖게 한다는 의미였다. 너의 집이 그의 집이며, 너의 음식을 그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집트를 여행할 때였나. ‘베두윈을 만났을 때 이런 환대를 겪었다. 

 

80 붕대로 옹색하게 칭칭 감아놓았던 발가락들이 마치 예쁘게 늘어선 미라 인형처럼 된 것이다.

 

84 결국 터키의 표지판들은 뚫린 구멍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는 데만 쓸모가 있을 뿐이다.

 

85 이 모든 어려움을 나름대로 철학을 갖고 버텨냈다.

 

모든 실수는 곧바로 혹은 이튿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혼자 하는 도보여행에서는 그 대가가 정직하다. 하지만 여행이 아닌 인생 역시 그 모양새와 속도만 달리할 뿐, 결국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86 그것은 불안한 가운데 쭈뼛거리며 다가가는, 나와 정말 비슷하지만 또 매우 다른 이 인간 형제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여인은 이곳 여인들이 1000년 전부터 입었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고 긴 치마, 머리털과 목을 가리는 숄과 스카프.

의복에 남아 있는 역사. 우리도 불과 100년 전엔 한복이 일상의 옷이었지.

 

87 그을린 얼굴은 가게보다도 밭에서 일을 했기 때문인 듯 했고, 굽은 등은 가게의 계산대를 오랫동안 지켜서 얻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문이 열린 틈을 타서 암탉들이 겁도 없이 꼬꼬댁거리며 서로 밀치고 들어와 이미 쥐들이 구멍을 내놓은 자루에서 떨어진 낟알들을 쪼아먹기 시작했다.

가축들과 함께 하는 공간. 집의 내부와 외부의 무경계. 옛날 시골 외할머니 댁엔 마당엔 닭들이 외양간엔 소들이 있었는데. 토끼도 있었고. 뒷마당엔 텃밭이 있었다. 그렇게 동식물과 아이들이 함께 뒹굴었다. 정서적으로는 참 풍요로웠지. 생각해보니 방 안에선 쥐들의 질주소리도 곧잘 듣곤 했다.

 

88 모스타파는 천천히 주의 깊게 그 쪽지를 읽더니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가리켰다.

이 장면 상상하니 너무 푸근하고 웃긴다. 이런 인심들이 지금은 다 어디 갔을까.

 

89 이따금 상점의 천장 위로 쥐들이 질주하곤 했지만, 나말고는 아무도 그 요란한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천장 위 쥐들의 질주. 잊고 있었던 그 옛적의 층간소음.

 

그가 장사하는 걸 본 것은 내가 머무는 동안 유일하게 그때뿐이었다.

 

90 그의 미소, 그의 시선, 목소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 등 나는 모스타파의 모든 것이 좋았다. 이런 장점들이 보기 드물게 조화를 이룬 사람이었다.

 

네 소년은 아무 말도 없이 내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소파로 주춤주춤 가더니, 마치 발레의 한 동작처럼 호흡을 맞추어 동시에 앉았다. 그들의 호기심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91 모스타파가 층계 밑에서 뒤늦게 모여든 사람들을 한 무리씩 올려보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렇다고 그걸 즐긴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파키스탄에 갔을 때 이런 대접을 받았다. 거리에는 여자가 하나도 없고 요리를 하는 사람도 옷을 만드는 사람도 모두가 남자였다. 연예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일반인이 체험할 수 있는 파키스탄 여행. 그 모든 에피소드를 떠올리자니 웃음이 난다. 파키스탄으로 떠나기 전 그렇게 겁을 먹었는데 정말 완전 생각지 못한 세상이 펼쳐졌다.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 여기선 아무도 노크를 하고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크가 뭐야. 갑자기 중국 시골 화장실이 생각난다. 노크를 할 필요가 없는 화장실 문의 부재. 사적인 공간, 프라이버시라는 개념도 어찌 보면 자연적인 것은 아니었던 걸까.

 

92 그가 자신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주었다.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세시 반쯤, 잠도 없는 수탉 한 마리가 벌써 울어댔다. 두 시간 후면 사제가 확성기로 기도시간을 알릴 것이다. 다음엔 새들이 울어댈 차례다. 터키인들의 표준 시간대에서는 해가 일찍 뜨기 때문이다. 다섯시 십오분이면 동이 튼다. 이러한 전원 교향악에, 먹을 풀을 달라고 아우성치며 양 떼들도 합세한다. 그 소리가 어찌나 시끄러운지 암소 떼들을 깨우고, 그 녀석들은 또 참지 못하고 여섯시 반부터 울어댄다. 결국 이 시간이면 나도 일어나게 된다.

, 이 글도 너무 좋다. 강원도에 있는 집에서는 층간소음이 아닌 동물소음으로 잠을 못이룬다. 왼쪽 집에 있는 닭, 오른쪽 집에 있는 개. 아래 우사에서 들리는 소울음. 닭소리는 진짜 시끄럽다. 자연의 소리인 것이다. 부탄에서 들었던 야밤의 개소리들. 더 정확히는 마을 개들의 기싸움. 그런 소음들은 어찌 보면 그만큼 자연과 가깝다는 뜻. 도시는 도시의 소음들로 요란하다.

 

93 71년을 사는 동안 각각 거리가 40킬로미터 남짓 되는 두 번의 여행만을 한 것이다.

 

94 나는 내 하룻동안의 친구가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몇 분 동안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평생지기도 중요하지만 이런 순간, 찰나의 우정과 사랑도 인생에서는 의미가 있다. 더 유지되었다면 실망과 배신이 전개될 인간관계일지라도 때로는 아름다운 오해와 착각도 의미 있다.

 

그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더니 사방에 소식을 퍼뜨렸다.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테라스로 쏟아져나와 나를 둘러쌌다. 빗발치듯 퍼부어대는 질문들.

 

95 아다파자리라고도 불리는 사카리아에서는 대도시가 보장해주는 익명성을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

 

96 시골 마을 사람들은 내게 호의를 베풀지만, 일개 관광객에 불과한 이곳에서는 나를 등쳐 먹을 뿐이다.

이방인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호구가 될 위험도 함께 갖고 있는 것. 여행 중 경계를 풀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인도 사람들.

 

97 나는 이제 그들이 할 질문을 외우고 있었으며, 대답 또한 별 어려움 없이 술술 나왔다.

 

잠시 후 나는 여든여섯 살 된 노인과 차를 마시게 됐는데, 그는 여러 가지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백 살이 넘은 어머니가 최근 돌아가신 것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나이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

얼마 전 60대 환자분께 김장은 어떻게 하셨냐고 하니 엄마가 줬어라고 하셔서 놀랐다. 60대 어르신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온 것이 신기하면서도 놀라왔다. 90대인 친정엄마는 아직도 고추장과 김치를 담아 그 분께 보내신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가 100세에 돌아가셨는데도 슬퍼하셨다. 부모는 아무리 연세가 지긋해도 기대고 싶은 존재이고, 아무리 오래 살고 돌아가셔도 슬프고 그리운 존재.

 

1928년에 마지막 건물이 파괴됐으며, 그 자리엔 은행이 뽐내듯 들어섰다.

중국의 상하이, 일본의 북해도가 생각난다.

 

100 엄마는 딸의 긴 머리털 사이에서 이를 잡고 있었다.

 

101 이런 목가적이고 평온한 두 장면은 나를 먼 과거의 정지된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했고, 덕분에 힘이 좀 나는 것 같았다.

 

105 그들은 여행자들을 접대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유명한 6세기 전의 한 종파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여행자들에게 그들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식사를 대접하거나 여행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그들만큼 신속한 이들은 이 지상에 또 없다.” 이븐 바투타는 또 말하길, 안탈리아의 조금 앞쪽에 위치한 한 도시에서 이방인을 접대하는 문제를 놓고 두 무리의 터키인들이 언월도를 들고 대치했는데, 여행자와 그 일행을 맞이하는 영광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일 기세였다고 한다. 결국 중재자가 나타나 제비뽑기를 하여 여행자들이 두 지역에 각각 나흘씩 묻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다.

 

비록 이런 전통이 이젠 지켜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스탄불을 떠난 이후 내가 여러 마을에서 받은 대접은 그 전설 같은 이야기와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106 그러자 두 사람 모두 자신 있게 각각 다른 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또 동시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107 내겐 이 음악이 동양적이라기보다는 두 운명이 서로 어우러지는 날의 모든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편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아무 걱정 없던 젊은 시절에서 이제 고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삶으로 접어드는 진지한 순간이다. 하지만 또한 기쁨의 시간이기도 하다. 두 마음이 합쳐지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주역의 31번째 괘는 택산함괘로 남녀상열지사를 말하고, 32번째 괘는 뇌풍항괘로 부부 간의 도를 말하고 있다. 기쁨으로 가득찬 연애시절에서 고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부로서의 삶. 이걸 좀 잘 풀어보고 싶은데 아직은 내공 부족이다.

 

110 하지만 20여 년 전 도보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이 느낌만큼은 잘 알고 있다.

 

주자는 자신의 머리와 장 속에서 고갈된 에너지를 찾는다. 바로 이러한 뇌의 회전과 장의 회전이 결합되어 이를 악물고 뛰어감으로써 그는 소중한 몇 초를 벌 수 있는 것이다.

길게 보면 인생도 마찬가지. 나의 현재 일상습관은 하루라도 버는 것인가, 하루를 버리는 것인가.  

 

그리고 행복은 바로 거기, 그가 단축한 몇 초 안에 숨어 있다. 마라토너에게 어느 날엔가 그를 훌쩍 추월할 수 있는 적수라고는 단 한 명 뿐이다. 바로 자기 자신.

 

하지만 나를 앞으로 떠미는 이 통제되지 않는 충동은 내가 애써 숨기려 하는 어떤 두려움과 뒤섞여 있다.

 

111 이 나라의 비자만료 기간 전에 이란 국경까지 도달하는 것. 지금으로선 파리에서 세운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 중에 남편이 했던 말. 비자의 미덕. 비자만료라는 데드라인이 없으면 목표 없는 여행길에서 마냥 늘어지기도 하더라.

 

113 물론 아니다! 나는 내 관심사를 밝히려고 애썼다. 실크로드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걷는 즐거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신비로움.

 

114 맛있는 냄새에 잠을 깼다.

, 이렇게 깰 수 있는 기상이라면 참 낭만적인 거 같다. 알람 소리에 깨는 것이 아니라 새소리에 깨거나, 파도 소리에 깨거나, 햇살 때문에 깨거나. 맛있는 냄새 때문에 잠을 깰 수 있는 경험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한번 해줄까?

 

115 걷는 동안 나는 중부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러시아의 영향권 내에 있는 지역이 지닌 독특한 성격을 생각해보았다.

 

142 오직 내 정신만이 초원 위를 날고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선 채로 꿈을 꾸었다.

 

이러한 일상의 노력, 멀고 먼 목표를 향한 나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어린 시절과 두려움과 고정관념의 사슬에서 해방된다. 나는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 있는 것이다. 걸으면서 몽상하기란 쉽지만, 걸으면서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43 그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조절해나갈 수 있었기에 모든 것이 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러한 기수들 덕분에 몽골의 황제들은 중국의 바다에서 서유럽 경계까지 이르는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수시로 보고를 받았다.

 

144 양무리를 지키면서 나에게 손짓을 하는 저 목동들도, 기억할 수도 없는 먼 옛날부터 외로운 여행자들 혹은 대상의 긴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봐온 그들의 조상들과 똑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인간의 기질은 천 년을 두고 흘러 역마살이 있는 사람이 지나는 길 위에서 만나는 정착민들은 각각의 조상의 천 년 전 만남을 되풀이하고 있을 수도.

 

145 저 위 천국에 있는 알라도 귀를 막고 있으리라. 알라와 나, 우리 둘은 한시라도 기도가 빨리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146 나는 폐허를 좋아한다. 꿈을 꾸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곳을 이루던 벽이며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진 기둥들을 내 마음대로 건설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여행을 잘하더라. 몽골에는 딱히 유적지가 없는데 폐허 같은 그 광활함 속에서 몽골에서 벌어진 전투를 실감나게 묘사하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그래서 여행기에 그림이나 사진이 없는 게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책이 그렇다.

 

152 이러한 정숙한 행위는 전통이 좀 더 뿌리를 내린 동쪽으로 갈수록 더욱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도 장옷이나 방갓 썼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아름다움을 유혹하는 존재로 보고 엄한 거 덮어 씌우는 사고는 참.

 

153 그곳엔 나를 감동시킬 만한 소박하지만 행복한 분위기가 넘치고 있었다.

 

내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zen)한 상태인 것이다.

 

156 내가 가고자 하는 실크로드가 트럭들의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길임을, 그리고 이 마을을 지난 후로는 여인들의 길이기도 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

 

기능적이고 실제적이고 자연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도 않는 이런 길들은 아무런 몽상도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157 진정 환상적인 것이란, 깨어난 후에도 가장 오래 남기 때문이리라. 그 어떤 신이 아나톨리아의 한 외딴 길에서 절대 있을 법하지 않은 이런 장면이 일어나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한 노인이, 시선은 허공을 향한 채로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알 수 없는 달걀들을 파리에서 온 보행자에게 마치 선물하듯 건네는 광경을!

 

아마도 지나간 과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인 듯하다.

 

158 이런 모든 과거의 영상이 담겨진 상자처럼 말이다. 결국 이 상자 속에는 자연이 현존한다.

 

159 이런 복잡한 계산이 나를 사로잡기도 하고 또 동시에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설의 실크로드를 따라 걷겠다는 달콤하고도 자유로운 광기가 이제 강요되고 고통을 주는 것으로 변해버린 걸까?

 

160 유럽과 프랑스에서도 20세기로 접어든 이후 대도시들은 작은 마을들을 희생시킴으로써 발전해왔다.

 

161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그 여자는 내게 검은 미소를 보내주었다. 이가 몽창 빠진 입은 마치 지옥의 심연처럼 새카맸다.

 

163 동화처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인간이 만든 것들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고나 할까. 이스탄불 이후로 내가 본 가장 예쁜 도시였다.

 

나는 마치 젊은 처녀가 첫 데이트에 나가는 듯한 기분으로 인터넷 카페를 찾아나섰다.

 

164 열두 시간을 잔 셈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워낙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나는 44년을 사는동안 12시간 이상 잔 적 부지기수로 많은데. 30년 간 한번도 없었다니.

 

165 그러니까 이 시계는 15세기 초에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이던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더욱이 아랍 문자가 아니라 라틴 문자로 돼 있다는 게 이런 가정을 좀 더 뒷받침해준다.

 

166 대상 숙소의 보존에 각별한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화가 나는 일이었다.

 

168 군인의 이미지가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군복무에 2년 이상을 바쳐야 한다는 것은 젊은 지성인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지 못한다.

 

이곳에서는 우리 네 사람 모두 마치 무언가 서로 채워줄 것이 있는 것처럼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헤어질 때 에멜이 포옹을 해주었다. 내 수염에 어린 아가씨의 얼굴이 스친 것은 여행을 통틀어 그 때가 유일했다.

 

169 그런 보상보다는 차라리 알라가 이토록 헐벗은 자신의 피조물들을 더 잘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전에 만났던 두 눈이 먼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두 사람이 동료가 되어 서로 의지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171 일년 전, 친구의 영국인 친구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흔일곱의 그는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그 영국인은 오지 않았지만 그는 공부를 계속했다.

 

173 ‘영국식으로몰래 가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부엌에서 불쑥 나타났다.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아침식사가 준비됐으며 빈속으로는 절대로 길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 이 장면도 너무 웃기고 훈훈하다. 몰래 가려는 손님과 부엌에서 불쑥 나와 길을 가로 막는 주인. 원래 인간은 이런 인간미를 품고 있었을 터인데. 어쩌다 이렇게 각박해졌을까.

 

그의 아내는 발코니에서 큰 손짓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 이 세상에 아직도 그 노인처럼 진귀한 사람이 존재함을 확인한다는 건 얼마나 힘이 솟는 일인가.

 

174 그가 지금부터 4세기 전에 방문했던 열다섯 개의 아치가 있는 낡은 다리는 통행이 금지된 채 아직도 있었다.

 

175 “여행하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받을 뿐이다.”

 

177 카밀 제이레크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차로 돌아가더니 이번엔 선전용 선물들을 한아름 가져와서 펼쳐 보였다.

 

183 나는 쌍둥이들의 사진도 찍었는데, 마치 흑옥처럼 검고 까치처럼 떠들어대는 지저분한 코흘리개 남자아이와 여아아이였다.

 

186 유목민이었던 터키인들은 집에서 살 때도 마치 텐트 안에서 살듯이 했다. 방 하나에서 접대와 식사, 잠자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텐트 생활이 아닌가.

나도 작은 집이 좋고 텐트가 좋다. 역마살이 있고 공간의 이동에 대한 욕망이 강할수록 거주하는 공간은 작은 곳을 원한다. 20여 년 전이었지만 몽골 울란바토르에 갔을 때 도시의 집인데 마당에 겔이 있는 것을 의아했던 적이 있다. 현지인 말로는 도시로 올라온 몽골인들 중 부모 세대는 마당에 겔을 짓고 생활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187 상인과 관련된 건축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188 1919612, 아직 무스타파 케말로 불리던 아타튀르크는 아마시아에 친구들을 소집해 얼마 후 창설될 터키 공화국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뜨거워진 신발 바닥이 재촉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걸어야 했다.

 

내게 진정 어려운 일은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었다.

 

특히 순례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하루 평균 3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단련이 되면 육체의 개념 자체가 무화되곤 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는 건가. 몸과 영혼의 무경계. 이 책을 읽으니 나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2달에 1 1 2일 나 홀로 걷는 여행을 해봐야겠다.

 

걷기의 지적인 측면

 

189 그러나 하루 30킬로미터 범위 내에서라면, 걷는 것은 기쁨이며 부드러운 마약과도 같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나를 계속 유혹한다. 걷기의 세계로.

 

191 길을 굽어보는 산허리에 누군가 크고 흰 돌로 ne mutlu Tuekum diyene라고 써놓았다.

산악지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풍경인 거 같다. 파키스탄에서도 부탄에서도 하얀 돌로 산허리에 써놓은 글을 보았다.

 

194 내가 다가가자 일상이 정지된 듯 남자들과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으며 할머니들은 스카프로 입과 코를 가렸다.

 

199 나와 마찬가지로 수도 아마시아로부터 행군해온 파르나케스는 내 왼편에, 그리고 전날 이윈뤼에서 진영을 정비한 카이사르는 남쪽에서 와서 내 오른편에 자리를 잡는다.

저자의 상상력. 생생한 과거소환능력이 부럽다. 이런 능력이 있어야 홀로 하는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아야 한다. 어쩌면 볼거리, 먹을거리를 찾아 가는 여행은 공허한 것일 수도 있겠다.

 

200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간 전쟁에 대해, 그는 다만 이렇게 언급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이 공간에서 나온 말이었구나.

 

202 이 집에는 세상이 힘들게만 느껴져서 절망할 때도 위안을 줄 수 있는 소박한 행복과 아름다운 모습들이 가득했다.

 

203 험난한 계곡 언저리에서 벚나무 위에 앉아 있던 두 남자가 나를 불렀다. 그들과 함께 나는 버찌를 잔뜩 먹었다.

한량들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벚나무 위에 앉아 버찌 먹는 모습 vs 출근길에 샌드위치를 또는 편의점의 삼각김밥을 먹는 모습.

 

204 그는 기사를 쓰려고 나를 인터뷰 했고, 지역 TV 방송에 내보낼 요량으로 촬영까지 했다. 입장이 바뀐 셈이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제껏 질문만 해왔는데 답변을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점심으로 싸온 게 있어요. 이리 와요, 나눠 먹읍시다.”

이게 마지막 문장을 장식했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207 그랬더니 모든 그림이 아주 뚜렷하게 사람의 윤곽을 나타내고 있었다.

 

209 집에 가서 셔츠 두 벌을 가져오게 십 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떠남에 셔츠 두 벌과 10분만이 필요한 이 무모한 젊음을 응원하고 싶다. - 결국 못떠났지만. 

 

211 13세기 이후 지면이 약 500미터 높아졌는데, 이는 수차례 지진이 발생해 이웃의 언덕들과 이어진 충적토 지층이 밀려 내려간 결과였다. 도시의 하층토에 풍요로운 볼거리들이 숨겨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212 마치 불도저에 꿋꿋하게 대항하려는 듯 서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오래된 시를 읽을 때처럼 감동적이었으며, 반항적이고 연대적이고 고집스러운 정신만이 오직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도 영혼이 있는 법이다.

오늘 남편이랑 드라이브 할 겸 2동탄을 갔다. 정말이지 아파트만 멋없게 들어선 도시. 호숫가의 자작나무를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아파트만 있을까 싶었다.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신도시들이 영혼이 없는 집들로 들어서고 있다. 영혼이 있는 집, 그런 집들이 옹기 종기 있는 마을. 이제 그런 풍경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216 이 장면을 마음 속에 잘 간직했다가 세상의 번잡함으로 인해 평정을 잃으려 할 때마다 꺼내보리라.

이런 부적 같은 장면을 마음 속 창고에 잘 보관하고 있어야겠다. 이런 장면의 저축.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줘야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들 때 힘이 되는 장면들의 저축.

 

217 이곳 사람들은 근심을 일상처럼 지니고 산다.

 

219 카라반사리에서 만났던 총을 든 남자나 시계를 요구했던 두 남자는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모든 일에는 징조와 조짐이 있다.

 

집단적인 강박관념일까, 아니면 실재하는 위험일까?

 

223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풀 위에 배를 깔고 누웠다. 어린 시절을 되찾은 듯한 기쁨과 함께 마치 대지가 포근하게 나를 감싸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26 계산상으로는 이 역사적인 사건이 이루어지는 것은 열한시경일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시간까지.

 

231 이제 막 1000킬로미터를 주파했다.

상상이 안간다. 60대 노인이! 반성하자.

 

236 흑해 연안에서 온 그들은 석 달 동안 일해서 일년 벌이를 충당해야 했다. 그래서 꿀벌처럼 쉬지도 않고 저렇게 일을 하는 것이다.

석 달 동안 일해서 1년 먹고 사는 꿈을 안고 나도 꿀에 덤볐지.

 

238 참을성을 갖고 느긋하게 있기만 하면 내 소식이 마을 전체에 퍼지게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245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오해와 억측이 점점 쌓여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252 그들이 유다 역할을 하는 건 좋지만, 난 그들에게 배신의 대가를 제공하고 싶지는 않았다.

 

264 사실 푸른 눈은 내게 시장하지 않은지 정중하게 물으려던 것이었는데(are you hungry?), 그만 “are you angry?”라고 발음해 버린 것이다.

엄청 웃었다. 작년인가. 여행지에서 좀 짜증나는 일을 겪었다. 담당자한테 화를 냈는데 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마지막에 “because I am very angry!!!”라고 한다는 걸 “because I am very hungry!!!!” 라고 아주 화난 말투로 내뱉은 것이다. 말한 나도 너무 웃기고 들은 사람도 황당해서 엄청 웃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주 배고프단 말이야!!”라고 했으니 이게 무슨. 내가 그 때 배고픈 게 맞긴 했다. 여하튼 저자는 hungry angry를 잘못 알아들은 거고, 나는 잘못 말한 거고. 덕분에 저자는 살풀이를 했으니 그것으로 되었지 뭐. 나도 예전 에피소드 생각나서 간만에 남편하고 이 이야기 하며 웃었다.

 

266 아침에 1000킬로미터대를 주파한 것, 트랙터 삼인조에게 강도를 당할 뻔 한 것, 알리하지에서 체포된 것, 정말 다양한 감정을 체험한 하루였다.

 

301 그리고 그는 마치 어린아이의 손처럼 퉁퉁한 자신의 두 손목을 교차시켰다.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 건 이제 나의 몫이었다.

 

302 남들이 아무리 내 길을 방해해도 그리고 포기하도록 종용해도 꼭 내 계획을 이루고 싶다.

대단한 근성이다.

 

304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이 마치 재앙처럼 받아들여지던 이 남성 우월주의의 나라에서 마마 하툰은 1191년 아버지 이제틴 살투크 2세의 공국을 물려받았다.

 

또한 찬란하면서도 독창적이라 할 수 있는 마마 하툰의 능도 빼놓을 수 없다.

 

306 마마 하툰 외에도 이 땅의 역사를 장식한 여성들은 또 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동로마 제국 때다. 이레네, 헬레나, 테오도라……이들은 각각 자신의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들이다.

 

이레네(752-803)8세기에 근 20년 동안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 동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아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요구하자, 이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아들의 눈을 도려내어 장님으로 만드는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며 자신의 통치를 5년간 연장했다.

 

307 이 세 여인은 사실 기독교인이었다. 마마 하툰의 성공은, 그녀가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났던 만큼 더욱 위대한 것이다.

 

308 터키인들은 1934년부터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확실히 그해에 뽑힌 의원들 중 5%가 여자였다. 하지만 개혁의 시행자였던 아타튀르크가 4년 뒤 세상을 떠나자 여성의 지위는 계속 퇴보했다. 오늘날에는 550명의 의원들 가운데 여성은 열세 명에 불과하다.

 

반면 남성은 찻집에 앉아 세상을 뒤바꿀 듯 잡담을 하거나 사원에서 자기들의 구원을 위해 애쓴다.

이집트의 길거리 카페에 많은 남자들이 앉아 차를 마시거나 물담배를 피는 걸 보면서 참 한가하다는 생각을 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니 낮에 차나 물담배를 피는 건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밤에 술 마시는 것보다 더 나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311 그 일로 나는 터키인들이 내세우는 환대라는 덕목에 대해서도 상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312 나는 십오 분 정도 차가운 빗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나중엔 우박으로 변하기까지 했다.

 

314 나를 포함해 스무 명 정도가 들어간 욕조의 물은 아타튀르크 시대 이후 한 번도 갈지 않은 듯한 색깔이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청결보다는 즐거움이 먼저였다.

청결보다는 즐거움이 우선인 아이들. 정말 아이처럼 살아야 해. 그래서 지금 우리 아이들하고 노는 게 나에게도 의미 있다

 

317 일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밤을 새며 노닥거리기에 더 집중하는 듯 했다.

 

서아시아를 여행하고 나면,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에서 장사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대화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손님이 상점에 들어올 때 상인이 기대하는 것은 실제적인 이익도 이익이지만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기쁨이다.

 

이는 서양사회가 지극히 신성하고 솔직함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엔 투명성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다분히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 행위들이다.

정찰제. 흥정으로 인한 시간낭비, 에너지 소모를 막자는 건데 그렇게 대화와 교류는 사라지고 거래만 남았다.

 

이렇듯 인간 대 인간으로 부딪힘으로써 서로 마음을 열게 되고, 진심 혹은 거짓이 눈에서 눈으로 표현된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의 장사가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320 20세기 초에 중동 문제가 제기되고 유럽이 노쇠한 이슬람 국가를 조각조각 나누어가지려 했을 때, 아타튀르크가 이끈 군대가 이 나라 사람들에게 영혼과 자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던 것은 사실이다.

 

321 모든 것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몸 상태는 거의 완벽한 수준이었다.

 

심장 박동은 쉴 때 분당 56회였고 이동 중에는 80에서 90이었으니 상태가 아주 좋았다.

그간 심장 박동 체크할 생각 못하다가 올 해 처음 박동의 중요성을 알게 됨. 몸 관리 잘하자. 저자처럼 나이 들어서도 재미있고 의미있게 살려면, 쉽게 말해서 잘 놀려면 몸이 건강해야 한다.

 

몸이 회복되는 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육상선수나 마찬가지의 신체 수준이 됐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맺은 진한 관계들, 특히 신세를 지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가족들은 어휘나 문장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정말 중요한 건 바로 그런 점이 아니던가.

이 책을 읽으며 나도 파라가 돈인 건 알게 되었다. 구엘 차이!

 

331 죽음이, 그것도 어이없는 죽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 후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실 어이없지 않은 죽음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게, 어이 없지 않는 죽음은 없네. 모든 죽음은 어이 없고 모든 삶은 의미 있다?

 

334 다시 한 번 깨달은 사실이지만, 현실은 언제라도 우리를 헤매게 만들어서 우리가 그것을 좌우한다고 믿는게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를 알게 만든다.  

 

350 그들은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헛된 꿈을 꾸게 하고, 흔들리기 쉬운 사람들에게 거의 광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나도 그들처럼 온몸이 햇볕에 그을렸고 또 그들처럼 누더기를 입었다. 그들이 건초더미를 지고 힘겨워하듯 나도 내 짐의 무게에 매일 짓눌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내가 대표하는 것은 유럽이라는 곳이 지닌 풍요, 즉 자동차와 보석과 맥도널드와 화려한 스타들이다.

누구나 나름의 무게는 있지만..

 

378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이 세상에는 유럽, 미국, 알프스나 산악지대 등 걷는 것이 그야말로 행복인, 이곳만큼 아름다운 꿈의 고장들이 있다.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전설 같은 길들도 있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다른 장소들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후회 같은 것이 일었다. 잉카 유적을 따라가는 아메리카 횡단이나 산타페를 따라 신비한 서부를 향하는 아메리카 개척자들의 긴 여정같은 것들 말이다. 어째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런 나라를 택했을까? 무사히 도착할 가망이 점점 희박해진다면 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쨌든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나는 금전욕이라든가 경쟁심 때문에 이 모험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은퇴한 이후 편안한 삶은 보장되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나톨리아에서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게 돌을 던지거나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379 그런데 걷는 것의 경이로움이 일상의 기적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387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터키에서만큼 타인에게 자신의 집을 개방하면서 그토록 따듯하고 넓은 마음을 보여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손님을 맞는 사람의 자부심이 나머지 주민들과 공유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우리 문명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접대의 개념이 잊혀져가고 변질돼버렸다. 사람들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만을 초대한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투숙만을 전담하는 집, 즉 호텔이 있다. 이곳은 국제적인 대신 개성은 없다.

 

보답이나 혜택을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내 집의 문을 열어주는 것은 좋았던 시기 이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발견, 나눔 그리고 대화의 즐거움을 위해 식탁을 마련하는 일이 아직도 우리에게 가능한가?

 

394 “아무것도 안해요. 자동차를 수리해서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함께 놀죠.”

그는 일년 중 석 달만 일해서 일년간 먹을 빵을 얻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430 나는 실크로드 기행에 관한 계획을 끄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낙관주의(내가 조금만 분발하면 곧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을거야 등등)와 비관주의(너는 늙은 영감에 불과하고 이젠 단체여행이나 다녀야 할 거야 등등) 사이를 오가며, 나는 환자를 회복시키는 병원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불굴의 여행계획을 구상했다.

 

431 나는 내 체력을 과신했다. ? 노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아직도 젊은이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선 나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을까?

 

이 긴 여정, 이 고독한 여행 안에는 떠나는 삶과 다가오는 죽음이 있다. 삶에는 아직 쟁취할 승리가 남아 있다. 결국에 죽음이 이길 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432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이 여행을 준비하고 실현하는 것은 환상의 브레인 스토밍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433 풍부한 역사를 지닌 이 땅을 걷는 것이 나를 세계와 화해하게 해주었다.

 

436 나 이전에 걸어서 실크로드 전체를 다녀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르코 폴로 이래로……그러나 무용담이나 위업을 추구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내 지난 인생을 반추해볼 생각이다. 무척 오래 전부터 나는 자아를 탐구해왔는데 이 여행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나는 내가 변한 것이 없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불현듯 영원의 개념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사마르칸트. 내가 처음 독서를 한 이래로 나의 꿈을 키워온 그 도시의 이름만으로도 용기가 생긴다.

 

437 그리고 얼굴을 동쪽으로 향해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미지의 1만 킬로미터를 향하여.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목차는 아무래도 여정순이라 딱히 분석할 것은 없다. 여정에서 만난 주된 에피소드를 제목으로 잘 뽑은 거 같다.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딱히 없다. 그림과 사진이 없는 것이 더 마음에 든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음에도 저자는 사진 한 장 싣지 않았다. 온전히 저자의 글로 상상하며 읽을 수 있어 좋았다. , 굳이 언급한다면 여행 당시 터키의 정치적 상황이 따로 정리가 되었으면 좋았을 거 같다. (1999년에 쿠르드족 관련 이슈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오잘란 사건은 1999년 10대 사건이기도 했고)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인간으로서 극한의 고통을 겪은 사람 앞이라 감히 고통이니 시련이니 삶의 의미 등등에 대해 함부로 운운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60대의 은퇴한 중노년이 무려 12천키로미터를 걷는여정의 기록으로 이젠 체력이 달려서 안된다등의 핑계를 댈 수 없게 한다.


도전과 모험은 청년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는데 저자 앞에서 모든 편견을 초기화하고 있다. 나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1-2달에 한번 12일이라도 혼자만의 도보여행을 해야겠다는 욕망이 생겼다. 저자에게는 실크로드가 로망의 땅이듯이 나에게는 몽골이 그렇다. 망설이고 있던 서부몽골 여행에 거의 마음이 90% 기울여지고 있다. 내년 서부몽골에서 말을 타고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저자 탓이다. 충동질과 부추김 그리고 각성 이것이 이 책이 나에게 갖는 미덕이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3달 일하고 1년 먹고 사는 삶은 내가 막연하게 꿈꾸던 삶인데 이 책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2명 소개되었다. 9 to 5가 아닌 ‘3개월 worker’ 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이 세상에는 많을 것이다. 만약 내가 저자처럼 12km를 걸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들의 이야기도 함께 써보고 싶다. 다양한 형태의 노마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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