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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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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3일 22시 52분 등록

나는 걷는다 1. 아나톨리아 횡단 (123째주)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베르나르 올리비에(1938~ )

 

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체육교사, 웨이터 등 손대지 않은 일이 없다. 1964년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대학 입시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이어 CFJ(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 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를 졸업했다. 30여 년간 <파리 마치> <르마탱> <르피가로> 등 유수한 프랑스 신문과 잡지사에서 활동한 그는 호기심 많은 정치부 기자였으며 잘 알려진 사회­경제면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다. 관심사를 취재하고 사람을 만나 글을 쓰는데 돈까지 주니, 그보다 잘 맞는 직업이 없었다.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베르나르 올리비에 또한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특히 역사 분야를 탐독했는데, 독서를 통해 서양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동양에 진 빚을 인식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퇴 후 1998년 우울증이 찾아왔다. 퇴직과 동시에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별한 아내도 잊기 힘들었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파리를 떠나자는 결심을 한 뒤 산티아고로 떠났다. 파리에서부터 시작된 3개월간의 여정. 3주 만에 걷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1999, 그는 바다에 병을 던지듯 실크로드에 자신을 던졌다.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4년에 걸쳐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갔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간을 정해 단 1킬로미터도 빼먹지 않고 걸어서 실크로드를 여행한 것이다.

 

걷기는 중독과 같았다. 걷기 전에는 하루 담배 두 갑을 피우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던 그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순례길의 끝이 보이자 바로 다음 행선지를 계획했다. 실크로드를 택한 건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세계화의 발상지였다. 알렉산더와 중국 군대가 그 길을 통해 세계 정복을 시작했다. 화약·나침반은 물론이고 문화와 사상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 종이가 전파된 길이다. 아직도 실크로드는 내게 많은 영감을 준다.” 과거 상인들은 길 일부를 걸었을 뿐이다. 마르코 폴로는 말을 이용했다. 걸어서 전 구간을 완주한 건 그가 유일하다.

 

터키,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 총 7개 나라를 잇는 방대한 길. 그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 자식 앞으로 유서를 남겼다. 실종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바지 주머니에 수첩을 넣고 틈틈이 메모했고 그걸 편지로도 부쳤다. 그렇게 쓴 <나는 걷는다>는 프랑스에서 40만 부가 팔렸고 9개 나라에서 번역됐다. 수익금으로 쇠유(seuil:프랑스어로 문턱이라는 뜻)를 설립하기도 했다. 걷기를 통해 탈선 청소년에게 사회복귀의 길을 유도하는 단체다. 불평하던 아이들이 2000를 걸은 뒤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런 삶은 은퇴와 동시에 시작됐다. 그는 노인이 사회에서 은퇴당했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의 취향이 노인을 사회로부터 소외시켰다는 것. 중국에 가보니 어른이 공경을 받았다. 소외와 공경 두 가지 모두 거북했다. 노인이라는 딱지는 마찬가지였다. 각자가 자신의 계획에 따라 삶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전부다. 은퇴자를 위한 학교도 계획하고 있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한국의 독자에게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 광활한 길을 조금씩 여행하는 동안, 나의 작업은 또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유럽에서 아시아의 동쪽 끝까지 연결하는 가늘지만 질긴 실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5)

 

편집자의 글 ;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여행

우리가 이 책의 출판에 서둘러 그리고 원칙을 거스르면서까지 뛰어든 것은, 저자가 이 책에 별 애착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6)

저자들이 자신의 책에 대해 자부심이 오히려 별 것 아니라는 건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앞서 언급한 근래의 여행신봉자 무리들에서 벗어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소개하는, 그리고 처음 우리와 만났을 때 기획 단계에 있던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방식이 그러했다. (6)

~ 신선함. 여행신봉자라고 하니 12월 오프수업 때 홍승완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한국도 출판물의 많은 비중이 여행과 관련된 책이라고 했다. 하긴 일상이 아닌 특별한 경험인 여행이다 보니 쓸거리가 많다고 여길 것이다.

우리는 그의 계획을 흥미롭게 생각했지만, 우리 출판사엔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우리는 이미 완성됐거나 거의 완성 단계에 있는 원고만을 출판하기 때문이다. (7)

그는 혼자 떠날 것이며, 어떤 출판사(말하자면 까다롭고 불친절하기까지 한 어떤 독자)가 자신의 기록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7)

또한 우리는 저자와 약속한 대로 어떠한 사진도 싣지 않았다. (8)

저자는 글을 통해서만 자신이 걸어갔던 것을 상상하길 바랬나보다. 하지만 독자는 이미지가 있어야 더 생생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저자는 직접 본 것이니 기억에 있겠지만. 그래서 나중에 [실크로드 여행 스케치]라는 책을 냈다고 했다. 3권에 해당하는 그림이라 1권의 그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의 (장성한) 자식들은 그를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한번 결심한 일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고집 센 사람이 바로 자신들의 아버지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외로움은 때론 힘이 되는 법이다. (9)

열여덟 살에 결핵에 걸린 이후, 그는 그 병으로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당시 그의 친구 한 명이 실제로 죽었다) 거의 미친 듯이 운동 특히 달리기와 걷기 에 몰두했다. 그리고 결국 건강을 되찾았다. 이후에도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스무 번이 넘는 마라톤(뉴욕 마라톤을 포함해서)과 수차례에 걸친 100킬로미터 행군, ‘실크로드 행군’(카스에서 베이징까지) 참여…….(10)

평소에 기초 체력이 되는 사람이었네. 그러니 걸어서 실크로드를 횡단하려고 했구나.

또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도보여행을 돕기도 했다. 비행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자는 목적으로 쇠이유라는 단체를 설립한 것이다. (11)

내가 참여하려는 한국형 쇠이유 ‘23프로그램이다. 내년엔 꼭 참여할 거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즉 최소한 우리 모두에게는 떠남이 운명이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모든 걸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 (12)

우리의 순례자는 거의 돈 한 푼 없이 길을 떠났으며(만약 돈이 있었다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었다), 숙소를 발견했을 때에만(그조차도 늘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잠을 잤고, 사진 속 주인공이 될 기회가 전혀 없었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등 정말 소박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그 대가를 지불했다. (13)

이번 여행에서 나의 불행은 내가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나는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글을 써왔다. 그런데 도보여행자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비워내야 한다.” (14)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어쩜 저자가 걸었던 길이 그저 산책길이 아니었기에 예측할 수 없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서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신발은 더 이상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았다. 고맙게도 적당한 속도로 닳아가고 있었다.” (15)

길 끝의 마을들

나는 오랫동안 복도에 나와 있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4)

시끄러운 여행객과는 다른 여행이니 마음이 다를 거다.

그동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수도 없이 되풀이해서 설명을 했다. 내 나이 예순하나, 노년에 가까운 중년이다. (24)

저자는 나와 30년 차이가 난다. 61세면 우리 나이로 환갑이다. 보통 환갑에 보도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은 없다.

침착하게, 체념하듯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거나 소파에 않아 TV를 보면서 노년의 덜미에 붙잡히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 내게 그런 세월은 해당하지 않는다.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25)

내가 61세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앞으로 10년 후쯤이다. 나는 여전히 뭔가를 할 거다. 분명 길이 길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다른 모습일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을 거다.

규격화된 문명과 온실 속 문화에는 이제 싫증이 난다. (26)

여행의 끝이 다가오면서, 갈리시아의 유칼립투스 숲 향기에 취한 나는 기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세계의 길들을 찾아다닐 것을 다짐했다. (26)

실크로드를 걷기 전에 다른 도보여행이 있었구나.

내일 아침이면, 나는 7세기 훨씬 전에 열여섯의 앳된 젊은이였던 마르코 폴로가 세상의 끝을 향해 출발했던 그 도시에 있게 될 것이다. (27)

베네치아의 부흥은 실크로드 덕분이었다. 비잔틴 제국의 막을 내리던 13세기 초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황금시대가 시작된다. ... 여기에 6세기 히우 실크로드라 불리게 될 동양으로 가는 통로가 활짝 열렸다. (28)

이 도시를 관통한다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일이다. (29)

마르코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베네치아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이의 이름을 기리기 위한 골목길도 광장도 표지판 하나도 없었다. (30)

그러게. 보통 관광을 위해서라도 뭔가 만들어놨을 법한데.

다른 여행자들처럼 루이와 에리크도 여행 중 겪었던 고비와 재난 그리고 도처에서 일어난 사고들을 제일 먼저 기억해냈던 것이다. 마치 여행이 곤경과 고통으로만 점철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32)

이건 여행자들의 공통점 아닐까. 너무 좋았다는 얘기보다 힘들었던 것들을 이야기해야 그럴싸해 보이니까 말이다.

고대 중국의 황실이 있던 도시 시안은 지금부터 약 15년 전 누군가 우물을 파다가 묻혀진 군대를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33)

대부분의 유적지가 이렇다. 농사짓던 농부에 의해, 주차장 건립을 위해 땅을 파다가 발견된다.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 있다. 그래서 잘 짜여진 사고와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35)

나를 기다리는 고독, 나는 과연 그 심연과 맞서 싸워 그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을까? (36)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이번 모험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37)

엄청난 각오를 하고 시작했구나. 하긴 쉬운 여정은 아니니까.

술이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마셔야 더 맛이 나는 법이다. (38)

보행자들에게 치명적으로 위험한 터키의 운전자들, 도둑들, 매복해 있는 PKK(쿠르드 노동자당) 소속의 무장대원들, 터키 동부의 무시무시한 목양견 캉갈 등. 이러한 위험요소들을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나는 즉시 반대 방향으로 떠나는 삼순호를 잡아타야 할 판이었다. (39)

그래도 이스탄불이 여전히 터키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인 것만은 분명하다. (41)

영사관 직원이 말한 주의사항이 생각났다.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특히 혼자 다니는 관광객을 노리는 젊은이를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41)

외국여행에서 도둑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은 그런 점에선 안전한 여행지일 것이다.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길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42)

2. 나무꾼 철학자

다리를 걸어서 건널 수 없기 때문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걸어서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보 횡단을 금지한 것은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다리 난간 위로 기어 올라가서 보스포루스 해안에 몸을 던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터키 현대화의 상징인 이 다리를 쿠르드족이 폭파할까봐 우려해서다. 그래서 다리 양 끝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45)

이런 모습이 저자는 낯설겠다. 우린 군인의 모습이 너무 익숙하다.

운전자가 왕이고, 잘못한 쪽은 언제나 보행자이므로 여기에서 이런 일은 당연한 것이다. 어쨌거나 길이 보행자를 위한 장소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46)

상하이 갔을 때 인도를 차가 지나가며 사람들에게 비키라고 클락션을 울리더라. 참 황당했었다.

푯말에는 사진 촬영 금지라고 써 있었다. 전쟁을 상징하는 이런 모습을 앞으로 수도 없이 보게 되리라. (47)

우린 너무 무뎌져있다. 철책도, 군인도, 이런 금지들도. 아마 우리에겐 이것이 집단무의식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 교수를 하는 것보다 여기서 접시를 닦는 것이 훨씬 벌이가 낫다고도 했다. (49)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인 중에도 이런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본국에서 직업은 엘리트인.

1300만에 이르는 이스탄불 지방의 인구 밀집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그 주동자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51)

어디를 가나 돈을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

터키의 마을에는 숙박업소가 하나도 없었다. 큰 중심도시를 따라서, 그것도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에 몇몇 숙박업소들이 자동차 여행자들을 위해 있을 뿐이었다. (52)

커피 한 잔에 40만 리라나 되는 이 나라에서는 두 자리 수의 인플레이션이 만들어내는 이런 터무니없는 수치에 빨리 적응되기 마련이다. 1000만 리라라는 액수도 160프랑스 프랑에 해당하는 저렴한 가격일 뿐이다. (53)

터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홍차를 마신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잠 자는 시간까지 찻주전자는 늘 데워진다. (54)

그런 나라들이 의외로 많다. 한국은 그러고 보면 대표적인 전통차가 뭔지 모르겠다. 요즘은 다들 커피에 빠져있으니 차를 마시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드물게는 남루한 보행자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에 분개한 나머지, 위압적인 손짓으로 도로 위로 올라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동차를 길 옆으로 비켜주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고 말이다. (55)

두 시간 정도 걷자 근육이 충분히 풀어져서 아픔은 사라졌지만, 마찰이 많은 허벅지와 엉덩이는 불에 덴 듯했다. 아직도 불필요한 지방이 너무 많은 모양이다. ... 몸무게 몇 킬로그램이 줄면 몇 킬로미터를 더 걸을 수 있을 테고, 다리는 저절로 단단해질 것이다. (56)

그렇구나. 이 정도로 걸어보지 않아서.

걷는 즐거움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 (56)

옷을 아무렇게나 입으면 예의에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이 나라에서 내 모습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을 것이고, 손에 든 지팡이 때문에 그런 느낌은 더욱 배가됐을 것이다. (57)

그들은 빈 좌석을 가리키며 내게 앉으라고 권했다. 자기들도 쾨무를루크에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웃음을 떠뜨리며 그들의 초대를 거절했다. “난 걸어갑니다!” (61)

차를 두고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이런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보행자는 멀지 않다’, ‘바로 옆이다’, ‘십 분 걸린다는 표현을 제대로 해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게 자동차로 갈 때를 기준으로 한다. ‘십 분10 내지 12킬로미터, 즉 걷는 것으로 따지면 두 시간에 해당한다. (63)

이슬람교 종교의식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던 나는 여자들이 기도할 때 남자들과 같은 층에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놀랐다. (66)

나는 삼림관리인 생활이 좋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겨울에는 독서에 전념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오. 그래서 1월부터 3월까지 실컷 책을 읽고, 저녁 무렵 찻집에 가서 친구들에게 미학논리학을 읽는 행복을 일깨워주기도 하지요.” (71)

난 이런 사람이 철학자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저 책만 읽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작은 개울을 걸어서 건너던 중 포풀러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찬 음료나 한잔 같이 하자고 권했다. 그들은 느긋하게 삶의 멋진 순간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시간을 즐겼다. (73)

3. 터키식 환대

여행자를 자기 집에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것은 이슬람 교도의 의무였다. 독실한 이슬람 교도에게 환대손님인 여행자에게 모든 권리를 갖게 한다는 의미였다. (77)

솜씨 좋은 약사는 알코올과 요오드팅크 그리고 습포를 주었다. 그는 내가 돈을 지불하려 하자 거절했으며, 오늘 밤 목적지 마을까지 가는 약도를 상세하게 그려주는 등 세심한 배려와 친절을 잊지 않았다. (80)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풀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이젠 옛이야기지만. 발이 저렇게 곪으면서도 걸었다는 게, 어떤 의지로 그랬는지... 출판사에 처음 이야기했던 게 이럴 걸 알고 그랬을까.

한 시간 반쯤 걸으니 고통이 조금씩 사라졌다. 내 몸이 엄청난 양의 엔도르핀을 만들어 고통을 없애준 모양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의 달라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83)

초반 며칠 동안은 신체기관이 지나치게 혹사당한 근육들을 강화시키지만, 과로가 심각해지면 다시 출발하는 일이 힘들어진다. 게다가 마찰이 많은 부분 , 허벅지, 엉덩이, 배낭과 접촉되는 부위들 은 과열되기 쉽다. 이런 고통은 열흘 정도 지나면 사라질 표피적인 것이다. (85)

열흘이 고비라는 얘기네. 계절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다. 하긴 4년이 걸린 여행이니 모든 계절을 겪었겠구나.

도보여행의 모든 결과는 정직하다. 몸 전체를 던지는 일이다. (85)

그래서 비행청소년들이 걷기만 했는데도 변화를 경험하는 건가보다. 쇠이유는 100일 걷기인데 23일은 일주일이다. 비슷한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 든다. 직접 경험해보면 알겠지.

모스타바는 청소보다는 장사에 더 신경을 쓰는 모양이었고, 장사보다는 수다에 더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87)

[실크로드 여행 스케치]에 보니 두 명의 모스타바의 얼굴이 있다. 산림관리원 중 한 명과 가게 주인. 그냥 이 책만 봤을 땐 전혀 몰랐다.

모스타파가 층계 밑에서 뒤늦게 모여든 사람들을 한 무리씩 올려보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렇다고 그걸 즐긴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91)

존재만으로 기쁨이라. 정말 자존감 업 되겠다.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세시 반쯤, 잠도 없는 수탉 한 마리가 벌써 울어댔다. 두 시간 후면 사제가 확성기로 기도시간을 알릴 것이다. 다음엔 새들이 울어댈 차례다. 터키인들의 표준 시간대에서는 해가 일찍 뜨기 때문이다. 다섯시 십오분이면 동이 튼다. (92)

제대로 잘 수가 없겠다. 예전에 닭 키우는 집에서 잤는데 정말 새벽에 울어대는 데 어떻게든 못 울 게하고 싶었다.

우리는 길을 건넜다. 기계를 다루는 직공들은 아이들이었다. 열 살에서 열두 살 정도였다. 나는 그의 산업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교육자처럼 말했다. “난 저 애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답니다.” 나는 방문을 중단하고 다시 배낭을 멨다. 그 기업가(교육자)가 체스를 두자고 한사코 권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거절했다. (95)

교사였던 사람이 참 개념 없다. 저자도 엔간하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내게 호의를 베풀지만, 일개 관광객에 불과한 이곳에서는 나를 등쳐먹을 뿐이다 (96)

어느 나라든 시골 사람들은 순박하다.

사원이나 종교와 관련된 건축물을 제외하고는,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훌륭한 역사를 증언하는 건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 (98)

한국과는 반대네.

터키에서는 군대의 인기가 엄청나다. 군복무를 마치는 것은 명예로 간주된다. 따라서 서른 살이 지나도록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남자는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98)

내가 수상한 사람이라는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다. 전쟁 중인 이 나라에서는 시민이나 군인이나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긴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이 서로 의심한다. (100)

나는 이 예쁜 장면을 몰래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생각을 바꾸어 그들에게 카메라를 흔들며 한 장 찍겠다는 표시를 했다. 미소를 짓고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여인은 거절했다. 사진을 못 찍게 되어 유감이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 아름다운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기억이 사진보다 더 강렬한 모양이다. (101)

사진을 찍었어도 처음 본 자연스런 모습은 아니었을 거다. 오히려 먼저 찍고 물어본 게 나았을 거다.

고마워요, 베르나르 아저씨.” 고맙다니, 뭐가? 이것이 바로 터키의 정신이었다. (104)

안탈리아의 조금 앞쪽에 위치한 한 도시에서 이방인을 접대하는 문제를 놓고 두 무리의 터키인들이 언월도를 들고 대치했는데, 여행자와 그 일행을 맞이하는 영광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일 기세였다고 한다. (105)

 

4. 의구심

신발 가죽이 조금이라도 부드러워지라고 나는 되도록 이면 물가로 걸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발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이유는 신발의 이음새가 엉망으로 바느질되어 있기 때문이다. 걸을 때마다 신발에 접힌 주름이 마치 단두대처럼 밥톱을 조금씩 자르고 있었다. (109)

글만을 보며 상상해도 엄청 고통스럽게 느껴지는데 당사자는 얼마나 아팠을까. 좀 좋은 신발을 신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조금만 더, 좀더 멀리, 내 안에 억누를 수 없는 원초적인 충동이라도 있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109)

그러게. 뭐가 이리 조급하게 했을까 싶다. 난 분명 숲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에서 밤을 보낼 줄 알았다.

끝까지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수전노가 동전을 긁어모으듯 1킬로미터라도 더 모아두는 것이다. (110)

나는 내 관심사를 밝히려고 애썼다. 실크로드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걷는 즐거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신비로움.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믿지 않았고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113)

타슈한이라는 곳이 있었다. ‘은 도시의 대상 숙소를, ‘타슈는 돌을 의미한다. (121)

그들의 시선 속엔 내 체력에 대한 경탄과 약간의 빈정거림 그리고 놀라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122)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에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외국 사람이 걸어서 강원도 해안 국도를 걷는 걸 봤다면 어떤 반응일까? 위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아니면 전혀 관심도 두지 않을까? 궁금하다.

걷는다는 것은 자유며 교류다. 그런데 철과 소음의 감옥인 자동차는 선택이 불가능한 혼잡스러운 장소인 것이다. (123)

아랍인이 최초로 여행과 문학을 연결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24)

이렇듯 머릿속이 온통 과거의 행적들로 가득 차다 보니, 정작 나의 길에 대해서는 무심한 채 있었다. (125)

언어에서 오는 소외감이 더해졌다. 내가 과소평가했던 적이었다. (126)

하긴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가 없었을 거다. 12월 오프수업 때 육아를 하고 있다던 승완 선배가 어른과의 대화가 너무 좋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많은 운전자들이 나에 대해 서로들 얘기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내가 나타나면 모두들 몰려들어 그 믿기 어려운 소문 한 친구가 이스탄불에서 테헤란까지 걸어서 간다더라 의 진상을 확인하고자 했다. (130)

통로와 계단의 나무는 모진 풍파에 닳아서 호박색으로 변해 있었다. (132)

돌이켜 생각해보면, 13일 전부터 계속된 강행군에 몸의 근육들이 적응을 한 것 같았다. ... 이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몸이 공중에 뜨는 듯했다. 마침내 조행자의 열반에 들어선 것이다. (135)

13일째 강행군을, 그 나이에 발에 염증을 버티면서 하다니... 저자도 대단하다.

작년에 콤포스텔라를 방문했을 때 스페인의 고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신들과 친숙해졌다. ... 첫째로 완벽한 고독, 이는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조건이다. ... 제단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무한한 공간을 골라야 한다. 나는 산을 좋아하지만, 바다에서도 똑같은 광대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 다른 것들 못지않게 중요한 마지막 조건은 육체와 정신 사이의 완벽한 조화다. (135)

그럼 혼자, 광활한 공간에서, 훈련된 걷기를 통해 몸이 떠오르는 느낌을 가질 때, 신들과 친숙해진다는 거다. 난 남은 생에서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 같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 데도 가격이 표시돼 있지 않다. 손님을 맞으면서, 계산대에서 또는 손님이 나갈 때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다. (137)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았고 또 걸을 만큼 충분히 기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타인의 배려가 때로는 피곤한 일이다. (138)

타인의 배려가 그 타인이 원하는 배려인지부터 알아보고 베풀어야 하는데, 자기 기준으로 하는 배려는 배려가 아닌 베푸는 사람의 자기만족이다.

 

5. 맹견 캉갈

걷는다는 것은 꿈꾸는 자에게 더욱 관대하다. 심사숙고할 때와 달리 몽상은 일단 끊겼다가도 별 어려움 없이 다시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다. (142)

수도자와 대상들만 이 길을 독점했던 것은 아니다. 무시무시한 군대들 또한 이곳에서 갑작스럽고도 격렬하게 전투를 벌였다. 도시들이 대부분 방어하기 좋은 계곡 사이에 자리를 잡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44)

첨탑 위에서 떨어진 소리가 옆 첨탑의 소리들과 부딪쳐 튀어오르고 방 안으로 온통 뒤섞여 들어온다. 저 위 천국에 있는 알라도 귀를 막고 있으리라. 알라와 나, 우리 둘은 한시라도 기도가 빨리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145)

재미있는 상상이다. 알라가 자신과 같이 느낀다고 생각하다니.

이 무시무시한 개들은 터키인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외국인에게 파는 것도 금지돼 있다. (147)

글을 봐도 짐작이 되지 않아 찾아봤다. 정말 크긴 엄청 크다.

양들을 피해라. 캉갈은 늘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사람들이 경고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적도 없었는데, 캉갈의 색깔이 지옥처럼 검은색일 거라고 생각하며 방심하고 있었다. (150)

프랑스에서건 터키에서건, 사람들이 수도 없이 얘기했던 위험들 중의 하나를 극복한 것에 만족스러워하며 나는 아주 유쾌한 기분이었다. (152)

유쾌한 기분까지 드나? ... 나름 뿌듯하긴 할 것 같다. 어려움을 겪었으니.

나는 잠시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앞으로도 기억해두어야 할 일이다. 이따금 터키 여인들과 얘기할 수는 있지만 신체 접촉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을. (156)

나는 트럭에 타는 것도 거절할 정도로 느림보인 반면에 또 역설적이게도 몹시 급하기도 했다. (159)

도보여행이기에 전 과정을 걸으려고 하는 것은 이해한다.

이런 복잡한 계산이 나를 사로잡기도 하고 또 동시에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설의 실크로드를 따라 걷겠다는 달콤하고도 자유로운 광기가 이제 강요되고 고통을 주는 것으로 변해버린 걸까? (159)

그러게. 내가 보기에도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면서 걷는 건 원래 의도와도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그 여자는 내게 검은 미소를 보내주었다. 이가 몽창 빠진 입은 마치 지옥의 심연처럼 새카맸다. (161)

검은 미소라고 해서 이가 검은 줄 알았다. 보건이 발달되지 않아서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할 거다.

아침 일곱시에 눈을 뜨긴 했지만, 너무도 피곤했던 나머지 여덟시에 다시 자리에 누웠고 정오가 되었을 때에야 일어났다. 열두 시간을 잔 셈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164)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구나. 삼십년 동안 12시간을 잔 적이 없었다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시간을 표시하는 장식들의 가치는 글씨의 머리 부분이 글자판의 안쪽으로 향했는지 바깥쪽으로 향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 시계는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166)

그러니까 어느 쪽으로 향한 게 가치 있다는 건지. 그리고 향해있다는 게 어떻게 있는 걸 말하는지 모르겠다.

헤어질 때 에멜이 포옹을 해주었다. 내 수염에 어린 아가씨의 얼굴이 스친 것은 여행을 통틀어 그때가 유일했다. (168)

베흐체트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 마을에서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던 것이다. ... 베흐체트는 학교라고는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낡은 신문에서 글자들을 해석하며 혼자 읽는 걸 배웠다. 그는 독서광이었다. (171)

이 정도 되면 충분히 즐길 만하다.

 

6. 왔노라, 보았노라

각 끄트머리에는 희고 검은 돌들을 번갈아 사용해서 만든 아치형의 문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의 꼭대기에 시멘트로 된 시계탑을 설치해 건축적으로 거의 범죄에 가까운 짓을 하지만 않았던들 정말 아름다운 느낌을 주었으리라. 이 건물은 470년 된 것으로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50년 전에 바로 이 끔찍한 회색 물건이 그것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178)

옛 건물은 그저 허물어진 그대로 두거나, 보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라면 기존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그 당시 공법과 재료로 보강해야 한다. 가장 흉물스런 모습이 시멘트로 덧댄 거더라. 저자도 그런 마음에 이렇게 썼을 것이다. 우리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는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했다. 조금도 변하지 않고 되풀이되는 질문들이었다. (179)

이후로도 계속 그랬을 텐데... 컨디션이 좋을 땐 일일이 대답해주지만 아닐 때도 있을 거고 그럴 바엔 글로 써서 걸고 다니는 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진정 아름다웠던 돌로 지어진 대상 숙소가 메르지폰의 사원 옆에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 숙소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이슬람 사원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러나 오늘날 사원은 완벽한 상태인데 대상 숙소는 폐허가 된 것이다. 둘 다 1666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180)

저자는 대상 숙소가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을 몹시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대상들이 없으니 대상 숙소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원은 계속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곳이니 유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상 숙소를 호텔처럼 관광객을 위한 곳으로 사용하려면 지금에 맞게 개조를 해야 할 거다. 그 비용은 어디서 마련하며, 과연 유지할 만큼 이용객이 있을까 싶다. 그러니 지금의 상태가 됐을 거다.

박물관장인 지층고고학자 아흐메트 이위제는 최근 발굴한 로마 길로 인해 무척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대상들의 전통은 그의 연구분야가 아니어서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무지했다. (185)

아무리 자기 연구분야가 아니어도 이럴 수 있을까. 하긴 대상들의 전통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오직 그것들만이 나의 진정한 관심거리였는데 말이다. 아마도 당시엔 그런 건물들이 너무 많아서 별로 특별할 게 없었거나, 건축가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리 흥미로운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어쨌거나 대상 숙소에 대해 또다시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나의 실망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187)

이 정도의 관심이었다면 프랑스에 있을 때 더 많은 조사를 했을 것 같은데…….

내게 진정 어려운 일은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육체적으로 아주 충만한 상태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188)

걷기도 중독이 되나 보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188)

하루 30킬로미터 범위 내에서라면, 걷는 것은 기쁨이며 부드러운 마약과도 같다. (189)

그래서 쇠이유 걷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나보다.

외즈누르 차도르를 하고 있지 않았다 는 이곳이 종교학교여서 차도르를 하는 것이지, 공립학교에서는 모든 종류의 종교적 표시가 금지된다고 말했다. (191)

내가 다가가자 일상이 정지된 듯 남자들과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았으며 할머니들은 스카프로 입과 코를 가렸다. (194)

장면이 상상이 된다. 저자가 도시가 아닌 시골길로 다녔기 때문에 더 이런 반응이었을 것 같다. 하긴 지금의 시국이면 도보여행은 엄두도 못 낼 거다.

그게 아니라, 아들 넷에 딸 다섯이란 말이요.” 딸은 자식으로 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딸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195)

카이사르는 상원이 요구한 대로 전쟁 역사상 가장 짧고 가장 유명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판 위에 문자를 새긴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간 전쟁에 대해, 그는 다만 이렇게 언급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200)

그 유명한 말이 유래가 됐던 곳이었구나.

오래된 농기계가 흥미를 끌었으므로 나는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런 농기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온 것이다. (201)

이렇게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넣었으면 책을 보는 사람이 훨씬 좋았을 텐데…….

초록의 앨비언(영국을 말함. 잉글랜드의 옛 이름)에서 일 안 하고 사는 것. 나는 그가 일찌감치 바람둥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을 축하했다. 불쾌했는지, 그는 핸들을 돌려 가버렸다. (204)

어떻게 이야기했기에 불쾌했을까. 아마 저자의 마음이 읽혔나보다. 농담으로 돈 많은 과부 꼬셔서 뭐 어쩌구 하긴 하지만 진짜 돈 많은 영국 여자 꼬셔서 결혼할 계획을 세우다니 천진한 거 아닌가.

 

7. 1000킬로미터

이제부터는 긴 바지 차림으로만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물론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혹은 그들의 집에 묵으며 일상의 삶을 가까이서 공유해야 하는 한, 나는 그들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 (206)

그들은 안 더운가? 하긴 한국도 한복이 반팔이 없었으니.

놀라운 것은 대상 숙소에 대해 그토록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이곳 주민들이 그 건물을 그냥 방치해두로 있다는 사실이다. 철학자이기도 한 그 교수들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모든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인샬라(알라의 뜻이라면)”. (208)

집에도 영혼이 있는 법이다. (212)

집도 사람이 살아서 기운을 넣어야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금방 무너지는 것을 보면 맞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을들도 다 비슷비슷해지고, 평원에 또 평원이 이어지고,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흥분도 무뎌지고, 심지어는 더 이상 캉갈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214)

책을 읽는 나도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 저자도 마찬가지일 거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들도 똑같다. 계속 반복되니 좀 지겹다.

세계의 모든 어린아이들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런 노래들을 목청껏 부르며 열정을 표현하곤 한다. 전적인 믿음과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 복종, 이런 식으로 이미 어린 나이 때부터 꼬마 투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16)

우리도 새마을노래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부르며 컸다. 모든 한국 사람은 통일을 소원하는 것처럼. 하지만 북한은 적이다라고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야생 미모사가 향기를 뿌려 수천 마리의 벌들이 축제라고 벌이듯 윙윙거리며 모여들었다. (216)

섬유 유연제로 사용하던 미모사 향이네. 직접 그 향기를 맡으면 어떨까. 가을 여행으로 간 공주에서 국화꽃(구절초)에 작은 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었다.

등에 배낭을 메고 혼자 걷는다는 것은 위험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몸을 내맡김을 의미한다. 자전거 여행처럼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리고 자동차 여행처럼 몸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다. (218)

그래도 결론은 내릴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마을의 책임자에게만 도움을 요청하리라. 정치적인 우두머리가 보호막이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19)

여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래서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른 신분증이 전혀 없기에 여권을 잃어버린다는 건 곧 재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20)

외국 여행에선 당연하지만 특히 전산이나 행정처리가 쉽지 않은 나라에선 더 그렇다.

아마도 터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임에 틀림없는 이 임시 욕조는 그만큼 나를 더 기쁘게 했고, 비록 잠시지만 이렇듯 신들과 가까운 곳에서 여유를 부리는 게 금지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24)

, 일명 선녀탕이네. 노천탕.

옛날 집들이 모두 그렇듯이 욕실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다만 화장실 안에 세면대가 있을 뿐이었다. (225)

그녀의 미모에 거의 넋이 나간 나는 터키어를 더듬거리다가 끝내는 프랑스어로 끝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고 말았다. 한마디로 나는 아름다움에 감탄해 그걸 겉으로 드러낸 것이다. (225)

얼마나 예뻤으면 말을 더듬을 정도일까. 보고 싶다.

오는 길에 만난 몇 안 되는 자동차와 트랙터들 중 나를 태워주려고 멈춘 차는 한 대도 없었다. 두려움이 호기심보다 더 컸던 모양이다. (228)

걷거나 말을 타고 메카까지 갔던 사람들의 위세는, 예전에 온 마을을 뒤덮을 정도로 아주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곳 주민들은 아무 망설임 없이 그 영웅의 이름을 따 마을 이름을 다시 붙였던 것이다. (230)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하는 종교인들이 늘고 있더라. 그곳을 가야만 마치 뭔가 얻는 것처럼 구는 모습이 난 오히려 거슬리던데…….

 

8. 헌병들

터키에서는 한 사람이 사망하면 부인이 그 재산의 41, 자식들이 4분의 3을 물려받는다고 했다. 내가 프랑스의 나폴레옹 법전(민법전)에서는 자식들이 모든 걸 물려받고 부인에게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는다고 얘기하자, 그들이 깜짝 놀랐다. (233)

나도 놀랍다. 부인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다니. 나폴레옹 법전(민법전)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분명한 사실은 내가 그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내게 차를 대접했다. (237)

참을성을 갖고 느긋하게 있기만 하면 내 소식이 마을 전체에 퍼지게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기다렸다. (238)

거지들의 왕이 자신의 궁전에서 두 원로를 거느리고 식사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나는 한쪽 눈으로 배낭을 감시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242)

아무리 가난한 동네라도 손님에겐 대접을 한다. 저자가 여행에 들어간 비용은 많지 않았겠다. 대부분 마을의 집에서 자고 먹고 도보로 여행을 했으니.

만약 내가 그에게 지도를 넘겨준다면, 이 방을 한 바퀴 도는 것은 물론 아예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보물지도가 손에 들어오면 돌려주는 법이 없으니까. 이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아무리 오류투성이라고 해도 이 지도 없이 지낼 수는 없다. (245)

실크로드 지도를 보물지도로 알고 있다니, 너무 가난한 마을이라 터무니없는 것을 진실인 걸로 믿나보다.

그가 여권을 오랜 시간 살펴본 후 세 번째 남자에게 건네주려는 순간 그리고 서른 개의 손들이 여권을 잡으려고 서로 다투는 순간, 나는 그 무리 속으로 문자 그대로 몸을 던져서 여권을 빼앗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그들이 침묵 속에서 나를 노려보는 가운데 나는 주머니를 꼼꼼하게 다시 닫았다.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들에게 화가 났으며, 이 어이없는 소동을 빨리 집어치우고 싶었다. (247)

아니 남의 여권을 왜 이리 궁금해 하는지 모르겠네. 여행자에게 여권이 얼마나 중요한데…….

서로 질문하고 웃고 고함 지르고.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을 본 적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249)

어떤 편이 더 나을 것인가? 사방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찾아다니는 군인들 손에 떨어지는 것, 아니면 실크로드의 보물이라는 황당한 발상에 혈안이 돼 보물지도를 빼앗기 위해서라면 나를 능히 죽일 수도 있는 마을 사람들 손에 떨어지는 것? (256)

내가 정말 위험한 문서들을 갖고 있었다면 배낭 속이 아니라 몸에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내 몸은 수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66)

위험한 문서가 아니라 무기라도 몸에 지니고 있었겠지.

 

9. 대상 숙소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되도록 시간을 끌었다. 약자들의 무기는 이렇게 늑장을 부리며 버티는 것이다. (267)

소극적 반항인가.

내가 터키를 가로질러 도보여행을 하는 것 자체가 영사관 사람들에게는 잠재적인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271)

하긴 1명의 전혀 다른 관광객이 아닌 도보여행객을 신경써야 하는 건 성가신 일이다.

대상 숙소안에서는 확실히 안전했지만, 외부의 위협이 커지면 터키의 고관인 파샤가 창기병 10여 명을 고용해서 일정한 곳까지 여행자들과 동행시키기도 했다. 실크로드는 지역 영주들의 주수입원이었기 때문에 대상들이 이동경로를 바꾸지 않도록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했던 것이다. 값진 물건을 운반하는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높은 관세를 놓칠 수야 없는 일 아닌가. (274)

저자는 옛날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대상숙소를 찾아 현재의 조건은 무시한 채 있지도 않는 것들을 찾는 느낌이다.

이 새로운 상황 때문에 나는 알리하지와 수셰리 사이에 있는 총 세 곳의 숙박지를 놓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아쉬워할 필요가 있을까? 무스타파 카트자르가 경고한 대로 나는 끝도 없이 군대의 검문을 받았거나, 더 나쁘게는 PKK 저격수들의 표적이 됐을지도 모른다. (278)

피치 못할 사정으로 버스를 타게 된 것이지만, 처음부터 좀 융통성 있게 차편을 이용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한다.

태양도 죽음도 뚫어지게 바라볼 수는 없다” (278)

내가 늘 놀라는 부분은 통신수단의 토대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은 이 나라에서 도대체 어떤 신비로운 방법으로 연락을 취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휴가 중이라던 남자가 어떻게 새서 그 열쇠를 가져올 수 있으며, 또 내가 이미 도시를 떠났는데 이 낯선 남자는 어떻게 나를 찾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동양의 신비가 바로 여기에 있다. (282)

내게 정보를 준 두 사람은 둘 다 옳았다. 지금은 이곳에 호텔이 없지만 곧 생길 예정이었다.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도 시장은 내가 거기서 잘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다. 시가 주관해서 건설하는 이 호텔은 주말께나 문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니 나는 돈도 지불하지 않고 개통식을 하는 셈이었다. (288)

시장이 저자를 본 적이 있었고 저자를 범상치 않다고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시장의 성격이 포용적이고 관대하기 때문일 것이고. 여행에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이렇게 다른 상황을 만든다. 하긴 여행만 그런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리퍼예 호텔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결한 호텔 중의 하나였다. 샤워기는 없고 세면대만 있었는데, 때로 찌들어 원래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바로 발로 쏟아졌다. 배수관이 없어서였다. 화장실은 오줌으로 질척거렸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289)

앞에서도 이와 비슷한 호텔을 이야기했었다.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도, 그걸 호텔이라 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저자는 이 환경에 대해 어떠한 감정적 표현이 없다. 독자가 판단하고 느끼라는 걸까.

이스탄불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말하자 그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마치 의식을 거행하듯 나와 악수를 했으며, 존경의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내가 수프 값을 지불하려고 하자 식당 주인은 사양했으며, 어떤 운전사는 자기가 한 접시 더 사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290)

거의 터키를 횡단했으니 그럴만하다.

아침에 반대편으로 가는 트럭 한 대를 세워서 이르판을 만났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실크로드의 단 1킬로미터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소심함이 거의 정신병이나 편집증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으리라는 것,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292)

본인도 알고 있구나. 그동안 내가 느꼈던 편집증적인 모습이 있는 거 맞네.

저녁 무렵 나는 티그리스 강, 나일 강과 더불어 고대 문명의 발생지인 유프라테스 강(터키에서는 피라트 강이라고 함)을 건넜다. 나는 돌 밑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오랫동안 머물렀다. (295)

저자는 너무 설명이 없다. 유프라테스 강은 어땠는지, 거기서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나의 성공은 처음엔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내가 흥분제를 복용한다고 믿게 된 순간부터 모든 건 정상적인 일이 돼버렸다. (296)

 

10. 여인들

나는 노새처럼 미련한 건지는 모르지만 걸어서 갈 것이다. 남들이 아무리 내 길을 방해해도 그리고 포기하도록 종용해도 꼭 내 계획을 이루고 싶다. (302)

아마 방해를 하니 더 오기가 생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

뒤쪽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배경이 기가 막혔다. 나는 당연히 이 장면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고, 그래서 마차를 전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미처 베일로 얼굴을 가리지 못한 여인이 버럭 화를 냈고, 내 앞까지 와서는 침을 뱉었다. 여인의 초상은 그 여인의 것이고 내가 그걸 훔친 것은 사실이었다. (303)

마마 하툰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은 수수께끼 중의 수수께끼라 할 수 있다. 그녀는암살됐을까? 아니면 조카들이 그녀가 죽을 때까지 감금했던 것일까? 훗날을 대비해 자기 손으로 예쁘게 만들어놓은 건물에 매장된 것일까?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304)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았으므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었지만, 하루 한 번의 식사만으로도 충분했다. (305)

배가 너무 부르면 걷는 데 방해가 되긴 하겠지만 하루에 한 끼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 이것도 익숙해지면 괜찮겠지.

이레네는 8세기에 근 20년 동안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 동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아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요구하자, 이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아들의 눈을 도려내어 장님으로 만드는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며 자신의 통치를 5년간 연장했다. (306)

대단한 여인이다. 권력의 욕심으로 아들을 불구로 만들다니…….

여성이 스스로 정치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카데르라는 단체가 창설됐다. 이들이 내린 명백한 결론은 바로 이런 것이다. 정치적인 삶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308)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집에서 여자아이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걸 결정하는 사람은 가장인 아버지다. 법보다 관습이 더 가깝다. 우리의 어머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딸들을 교육시켰다. 이 차이는 큰 변화를 만들었다.

어떤 목표가 막 달성될 찰나에 이르면, 나는 거기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내겐 언제나 그 다음이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이다. (315)

~ 이건 난데. 이게 아마 강점 테마에서 성취에 해당하는 걸 거다.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에르주룸의 사진관을 샅샅이 뒤진 결과 내 카메라 모델에 맞는 필름을 다섯 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321)

우체국 직원이 필름을 시중에 팔았다는 거겠지. 찾아서 되돌려 받은 건가, 아님 다시 구입했다는 건가. 내 성격상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심장 박동은 쉴 때 분당 56회였고 이동 중에는 80에서 90이었으니 상태가 아주 좋았다. (321)

저자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엄청 꼼꼼하다.

초대는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어조는 공격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완강했다. 그는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할 수 없이 다시 길을 내려가는 동안 그는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팔을 붙잡았다. (329)

적극적인 성격의 사람들이다. 한국이었으면 아무리 궁금했어도 이렇게 잡아끌진 않았을 거다. 책에서 저자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건 성격일수도 있지만 혹여 그 나라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까 염려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죽음이, 그것도 어이없는 죽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 후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실 어이없지 않은 죽음은 또 어디 있겠는가? (331)

다시 한 번 깨달은 사실이지만, 현실은 언제라도 우리를 헤매게 만들어서 우리가 그것을 좌우한다고 믿는 게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를 알게 만든다. (334)

그럼. 인생은 항상 예기치 못한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11. 그리고 도둑들

다른 사람들은 세파에 시달려 얼굴이 쭈글쭈글하고 바싹 마른 반면, 그는 살이 좀 찐 편이었다. 그의 신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의 사제였다. (341)

내 친구 양봉가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다고 약속했소. 거기에 들렀다가 다시 올 테니 그때 함께 떠납시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지만 내 속임수에 걸려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배낭을 들고 도망쳤다. (346)

만약 이런 생각이 나지 않았으면 어떤 봉변을 당했을지 알 수 없다. 행운이 따라야 한다더니 맞는 말이다.

내가 순진하게 나의 수호천사만 믿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고집한다면 언젠가는 수호천사도 나를 버릴 것이다. (348)

그러니까 내 말이~ 위험하다는데도 굳이 가고.

이 무슨 불운이란 말인가! 내가 거쳐온 곳 중 가장 관심을 갖고 있던 지역이 바로 쿠르드였다. 그런데 마치 할 일 없는 관광객처럼 개성도 국적도 없는 이 길을 이렇게 가야만 하다니. (349)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들은 진귀한 물건이 가득 담긴 봇짐을 진 낙타들의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아왔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긴 하지만 내 등에도 짐이 있는 건 사실이다. 보물에 대한 그들의 상상은 거기서 비롯한 것이리라……. (350)

자전거 위에서 텐트 속에서 그들이 보는 것은 그 지방의 일부, 결국 풍경뿐이다. 같은 언어를 쓰며 텐트 속에서 잠을 자는 그들은 도둑에 대한 걱정은 나보다 덜하겠지만, 마을 사람들과는 거의 교류하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을 발견하고, 나는 몸소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직면한다. (352)

글쎄, 각자 추구하는 것이 다르니 다른 방법으로, 경로로 여행하는 것이다. 이 글귀엔 저자 스스로 자신의 여행에 더 가치를 두는 것 같다.

내가 비정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정이 있었다. 엘레스키르트의 길은 어제 저녁에 승용차로 그리고 오늘 아침에 트럭으로 두 번이나 지나가서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지역을 걸어서 그리고 내 눈높이에서 발견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가보니, 실제로 느낌이 많이 달랐다. 더 크고 더 훌륭하고 더 인상 깊었다. (356)

자꾸 변명을 하는 것 같다. 차라리 이제 그만 얘기했으면 좋겠다.

걱정거리는 또 있었다. 터키에서와 달리, 나는 이란 은행과는 아무런 거래를 할 수 없다. 그러니 많은 액수의 돈을 직접 지니고 다녀야 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일인지라, 나는 스스로를 사정없이 질책했다. (361)

몇 차례나 경험한 사실이지만, 이 엉터리 물건이 지도라는 걸 본 적이 없는 촌사람들을 끄는 뭔가 신비한 마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겐 그저 실용가치만 있을 뿐이지만 그들에겐 안성맞춤인 책과도 같았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도 주위의 도시와 마을들 그림을 보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69)

이게 주민들과 소통인가. 일부러 위험을 자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정말이지, 이곳 도우테페 마을 여자들은 터키에서는 도시 여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남자가 멀리 있을 때 여자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374)

12. 고원의 고독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음울한 생각으로 마음이 동요돼서 나는 의욕 상실과 분노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길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376)

처음 출발하고 두 달이 넘은 시간이다. 어쩜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든 것이 신기하다. 비슷비슷한 마을에 열악한 시설에, 위험까지 겪었으니 이런 맘이 드는 건 당연하다. 아마 출판사에 글을 보내지 않았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수도 있다.

조금 더 가니 병영이 나왔다. 그걸 보니, 탱크를 사는 데 쓰는 돈을 쿠르드족 어린이들을 위한 농업학교를 짓는 데 들인다면 그 아이들이 아버지의 엽총보다는 연필을 드는 편을 택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377)

1999년의 상황이었으니 18년이 지난 지금은 좀 다르지 않을까.

어째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런 나라를 택했을까? 무사히 도착할 가망이 점점 희박해진다면 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쨌든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378)

하지만 콤포스텔라라는 목표는 당신뿐만 아니라 내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니까요.” (380)

그렇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일거리인 수다에 몰두해 있었다. (384)

여기서나 다른 곳에서나 나는 귀빈들에게나 베풀어지는 호의로 가득한 접대를 받았다. 곧 떠날 이 터키에서,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중의 하나인 미사피르(손님)’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이다. (386)

위험에서 벗어나 호의적인 대접을 받으니 그동안 만났던 우호적인 사람들이 생각나나 보다.

이 두 민족은 자신들의 조상들처럼 유목민의 흔적을 문화 안에 보존하고 있었다. 실제로 모든 집이 천막과 유사했다. 우선 방 하나가 응접실, 식당 그리고 침실을 겸한다. 나머지 방들은 부수적이다. (389)

교회 목사님이 예수 탄생과 관련된 설교를 하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유목민은 방 하나에서 먹고 자며 그 옛날엔 가축도 같이 살았다고, 그래서 온기도 얻었고 예수가 마구간의 말구유라고 한 건 지금의 마구간과는 다른 것이라고 했다.

서양문화의 영향이 과거의 관습을 변형시킨 것은 오직 대도시와 교육을 받은 가정에서뿐이다. (390)

이란인들은 정치적인 관심사가 무엇이든 간에 외국인들이 달러를 가져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국경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391)

물은 때가 너무 많아 더러워져서 내가 터키식 목욕탕에서 자주 보았던 그런 갈색을 띠고 있었다. 물은 매우 뜨거웠다. 십 분 후 사람들이 우리에게 나가라고 했다. 욕조는 하나뿐이고 여자들이 들어갈 차례였기 때문이다. (393)

씻으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 더러워질 것 같다. 아무리 치료의 힘이 있다고 해도. 게다가 하나의 욕조에 물도 바꾸지 않고 계속 사람을 넣다니…….

중세에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신성한 산을 보며 성호를 긋곤 했다. 꼭대기가 해발 5300미터에 이르는 이 오래된 화산은 바로 노아의 방주가 그 중턱에서 닻을 내렸다는 유서 깊은 전설을 지닌 곳이다. (395)

~ 그래서 신성한 산이구나.

장교는 내가 이스탄불에서 온 것을 알고 많이 웃었다. 그는 괴상한 옷차림을 한 나를 볼 때부터 나를 괴짜로 생각했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여겼다. (397)

 

13. 큰 고통의 산

병으로 엉망이 된 몸 때문에 기진맥진한 채, 게다가 사흘간 굶은 탓으로 나는 다시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일어서는 것조차 모험이었다. (407)

응급약을 가져가지 않았나?

그들은 이 나라를 횡단하고 구경하고 사진을 찍지만, 국경을 넘지는 않았다. 나는 고상한 기품을 지닌, 똑똑한 체하고 나야말로 진짜 여행자라는 것을 뽐내는 사람이다! (408)

저자도 본인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구나.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충격을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 지금 건강 상태로는 기껏해야 2주에서 3주 뒤에나 떠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410)

그동안 무리하게 걸어온 것이 허사가 되는 순간이다. 얼마나 허탈할까.

“.......당신 이스탄불에는 오잘란 재판이 열리는 걸 보러 가고, 에르주름에는 그의 사형 선고 때문에 가고, 이란에는 학생 시위를 보러 갔군요. 은퇴한 사람에게 그건 너무 과하지 않은가요. 대체 언제쯤 시사 문제 쫓아다니는 걸 그만두려는지?” (412)

문제의 중심을 따라다닌 꼴이다. 언제가 여름휴가를 진해로 갔다. 마침 태풍이 와서 장소를 부산으로 옮겼다. 그 경로가 태풍의 경로였다.

대안이 없다. 이질이 악화되면서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는 현재 이란에 군대의 심한 제재를 받는 학생시위가 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어차피 여행을 계속하기도 힘든 마당에 아쉬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414)

이곳은 너무 지나치게 더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역겨움이 혹시라도 오늘 내 모험이 끝나게 된다는 참을 수 없는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416)

그럴 수도 있겠다.

1920, 이미 황폐해진 이 지역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서 직경 69미터, 깊이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틈을 만들었다. 이것은 크기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다. 이곳에도 역시 군대의 번거로운 개입으로 방문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416)

운전사가 도중에 다른 승객을 태우지 않고 나를 요새까지 데려다 주고, 거기서 나를 기다리다가 호텔까지 도로 데려다 주면 되었다. 앉을 수가 없었던 나는 뒷좌석에 드러누웠고 우리는 이렇게 출발했다. (417)

아무리 봐도 저자는 한 고집한다. 몸 상태가 그 정도이면 그냥 있기도 힘든데 어딜 가다니, 아무리 꼭 보고 싶은 곳이었고 가까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도착하는 순간 나는 택시 밖으로 뛰쳐나가 성채를 굽어보고 있는 식당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418)

역시나~ [실크로드 여행 스케치]에 성채의 그림이 있다. 멋있다고 생각하며 그림만 보고 책의 끝부분이니 별 것 없을 거라 여기고 책꽂이에 꽂았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다시 꺼내 살펴보았다.

밤 열시경에 앰뷸런스가 왔다. 두 명의 운전기사와 한 명의 간호사는 피곤한 기색이었다. (419)

대단한 여행자보험이다. 그 먼 길을 한 명의 환자를 위해 오는구나.

나는 테헤란에 갈 때까지 자동차를 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더랬다. 그런데 지금 나는 수치심을 꾹 참고 아픈 배를 끌어안은 채 자동차에 타서 여태껏 왔던 길을 거슬러가고 있는 것이다. (420)

저자의 걸어서에 집착을 병적이라 여기면 봤는데, 사실 내가 변경연 과제를 열심히 하는 것과 같다. 2권은 중간에 정말 토 나올 것 같아 건너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중반이후부턴 한 페이지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지겹더라도 꼭 다 읽었다. 이번 책도 중간엔 지루하고 반복적이라 그만 읽고 싶은 걸 참아가며 읽었다. 이때 읽지 않으면 이 책들은 다시 읽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비참한 상황이 시작된 이래로 나는 집착과도 같은 한 가지 생각 도우바야지트에 내가 쓰러진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것 에 매달려 있었다. (423)

이럴 줄 알았다. 저자로는 당연한 거다.

나는 홀 안에 있는 괘종시계를 보았는데, 터키 전체를 횡단하는 데 스물세 시간이 걸렸다. 어떤 고통을 넘어서면 죽음도 두렵지 않음을 이제 나는 알게 됐다. (427)

두 달이 넘게 걸어서 간 길이었는데 차로는 스물세 시간, 하루도 안 걸린 거다.

낙관주의(내가 조금만 분발하면 곧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을 거야 등등)와 비관주의(너는 늙은 영감에 불과하고 이젠 단체여행이나 다녀야 할 거야 등등) 사이를 오가며, 나는 환자를 외복시키는 병원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불굴의 여행 계획을 구상했다. (430)

그렇다면 나는 거기에, 그 불우한 마을에 무엇을 찾으러 갔던 것일까? 나는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우선 민감한 탓에 가난한 사람들이 무시하는 과거를 찾으러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유복한 서양인인 나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버리려 한다. (435)

기질상 그리고 필요에 의해서도 활동적인 나는, 내가 걸어온 이 느린 길 위에서 고요와 몰입, 영혼의 평화를 찾아야만 한다. (435)

나 이전에 걸어서 실크로드 전체를 다녀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르코 폴로 이래로……. 그러나 무용담이나 위업을 추구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내 지난 인생을 천천히 반추해볼 생각이다. (436)

이제 저자가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공감한다.

몇 시간 후면 비행기가 나를 파리로 데려간다. 그러나 내 마음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쓰러진 바로 그곳, 도우바야지트의 길가에 머물러 있다. 몇 주일 후 혹은 만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프다면 몇 달 후 나는 다시 거기에 내 충실한 신발 자국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얼굴을 동쪽으로 향해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미지의 1만 킬로미터를 향하여. (437)

2권을 처음부분을 봤다. 2000년에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저자의 말대로 쓰러진 그곳에서.

 

옮긴이의 글 ; 떠나든 머물든 삶은 계속된다

올리비에가 다른 길보다도 실크로드에 매혹된 이유는, 그 길이 지닌 전설적인 역사와 의미 때문이었다. ... 그는 애초부터 자신의 여행에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삶 자체를 부단한 떠남과 행군의 연속으로 인식하는 그에게, 걷는 일은 곧 자기 자신과 직면하고 스스로를 발견하는 탐색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439)

이 책의 성격에 대한 원칙도 세워놓고 있었다. 낯선 곳의 사람들과 경치와 풍습들을 요란스럽고 화려하게 소개하는 일반적인 기행문이 아닌, 오직 자신의 여정과 느낌들만을 사진 한 장 없이 꼼꼼하게 담아낼 것. 그의 여행이 달팽이의 지루한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439)

책 수업을 하며 독자의 시각에서 어떨지, 출판사는 어떨지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했다. 누가 사겠냐는 것까지. 하지만 이 책을 보며 저자의 이런 자세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쓰고자 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

 

실크로드 정보 ; 터키 공화국

전체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터키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소수 언어집단은 쿠르드족과 아랍인들이다. 쿠르드어는 시골 및 동부와 남부의 이주민들이 사용한다(인구의 7퍼센트). 아랍어는 남동부 아나톨리아에서 쓰인다(1퍼센트). 투르크인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신봉하며, 수니파가 지배적이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도들은 소수로,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지에 거주한다. (444)

터키는 국민개병제를 취하고 있다. 20세 남자는 모두 병역의 의무를 지며 복무기간은 대학을 졸업한 장교는 15개월, 일반 사병은 18개월, 대졸 사병은 8개월이다. (445)

1999817일 터키의 인구 밀집 지역에 강진이 발생했다. ... 1112일 강력한 지진이 같은 지역의 일부에서 재차 발생해 700여 명이 사망했다. (446)

터키에 대한 정보를 앞쪽에 실었으면 나았을 것 같다. 사전 정보를 가지고 봤으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테니까...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저자의 실크로드 도보여행 코스다. 1권은 터키에서의 여행이다. ‘맹견 캉갈같은 대표적인 것들로 제목을 달았는데 내용은 그것보다 더 많다. 오히려 제목 옆에 지명을 같이 달아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실크로드 여행 스케치]에서 그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걸 넣어서 개정판을 내면 좋겠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넣으면 독자가 읽으며 훨씬 도움이 된다.

 

책의 종이 재질을 일부러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종이 자체가 두꺼워서 페이지 수에 비해 책이 두껍다.

 

계속 비슷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라 지루하다. 사진도 여행지도도 없이 그저 상상에 의해서만 읽어나가야 하니 더욱 그렇다. 저자가 원한 방식이라고 하지만 독자보다 저자에게 맞춘 출판이다. 100페이지가 넘었는데도 처음 시작과 별로 다른 걸 모르겠다. 발 상태, 걷는 길, 만나는 사람, 지도에 없는 길. 중간에 사진도 찍었던데 그걸 넣었으면 좋았겠다.

 

지도가 맞지 않아 고생했다고 했다. 저자가 이동한 경로를 각 장 앞에 넣으면 좋았겠다. 전체 지도는 그저 세계지도에 여정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만난 사람의 이름이 무스타파가 많이 나온다. 아마 그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런 것에 대해 조금 설명해줘도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찾아봤다. 캉갈도 그렇고 대상 숙소도 무스타파도. 독일의 한스와 한국의 영희처럼 흔한 이름이었다. 물론 저자는 너무 잘 알기 설명이 없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가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3. 이 책의 장점

기자였던 것이 걸림돌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랬기에 이 책의 내용이 나올 수 있었다. 일반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역사와 인생, 철학이 담겨있다.

 

저자는 여행 작가가 아니다. 그러기에 풍경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에 대한 것, 자신의 생각은 잘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감정에 대한 것은 많지 않아 나의 글을 보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알게 해준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실크로드를 도보로 갈 일은 없으니, 제주도 23각 멘토를 하며 일주일간을 사진과 걸었던 길에 대해 쓰는 것을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한국판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이 될 것이다. 계획은 201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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