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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5일 08시 4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30년간의 기자생활을 은퇴한 뒤 저자는, 다른 동료들처럼 ‘TV와 쇼파가 있는 안락한 여가를 누리는 대신 그가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온 길을 걷는다. 30년을 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은퇴하기도 쉽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저자의 생활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물론 저자는 90년대 후반에 은퇴를 했다. 그 당시는 가능한 시대이다). 우리 주위의 은퇴한 사람들을 보면 보통 그동안 못했던 취미생활을 하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온다든지 뭐 이런 일들로 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일반적인 사람들의 가는 길 대신 젊은이들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것도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위험한 길을 걸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걷는 일 자체가 그에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수차례의 도보여행도 있었고, 기자로서 세계 여러나라를 발로 뛰어다니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쇠이유(Seuil, 문턱)’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비행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걷기를 통해 사회복귀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실크로드를 걷는 일은, 그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는 자신의 여행에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삶 자체를 부단한 떠남과 행군의 연속으로 인식하는 그에게, 걷는 일은 곧 자기 자신과 직면하고 스스로를 발견하는 탐색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수도 없이 질문했던, 그리고 그 자신도 걷는 동안 늘 자문했던 질문, “왜 걷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을 것이다. 마라톤을 하든 걷든 그것이 무엇을 일깨워준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이것을 해 본 사람은 안다. 큰 의미를 찾기가 어려움을. ()를 닦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도를 닦기 위해 종교인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정진과 수행을 한다. 그러나 도라는 것이 그런 수행을 통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수행을 한다. 방법이 따로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저자역시 계속해서 걷는다. 그 걸음을 통해서 그는 자기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대화하고, 생각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한 순간에 돈오(頓悟)와 같이 큰 깨달음이 온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나 역시 나는 누구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때론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수동적으로 나에게 알려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그 답을 찾는다면 이 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의 방법인 걷기를 알려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대신 전한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한국의 독자에게

 

5. 빌렘 반 뢰이즈부르크(몽골 제국 여행기에서 한국인과의 만남을 최초로 언급한 13세기 프랑스 신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야를 가로막는 사막과 산들 너머에서, 과연 어떤 남자와 여자들과 마주치게 될 것인가?

나이를 떠나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좋고, 현지인들도 여행자들에게만큼은 관대하다. 그래서 여행은 새로운 인연을 주는 것 같다.

 

5. 다시 태어나고 있는 오래된 실크로드는 무역로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들의 길인 것이다. 그 실크로드가 역사적 흔적을 넘어, 책이라는 마법을 통해 오늘날 한국까지 이르게 된 것에 기쁜 마음을 표한다.

 

편집자의 글

 

6. 더 난처한 것은 이론상의 자유로움이다. 즉 낯선 곳을 처음 여행하는 저자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할 때 흔히 방심하게 된다. 그리고는 주제의 흥미로움이 자신의 시선과 펜의 날카로운 긴장을 풀어준다고 믿는다. 그 결과, 미지의 것들을 밝혀주는 글이 아니라, 무엇을 다뤘건 간에 우리의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이른바 다른 곳의 이야기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여행 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외국도 다르지 않구나. 언제나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자기 책이 독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편집자의 눈에는 그저그런 글이 되고 만다. 그 간극을 좁힐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8. 우리는 저자와 약속한대로 어떠한 사진도 싣지 않았다. 오직 길만이 중요할 뿐이며,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은 길이란 게 걷는 사람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그가 세계에-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부여하는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시선이 물질화된 것임을 알고 있다. 이를 인식하는데에는 말만으로 충분하다.

그의 책이 단순한 여행책과는 비교되는 이유일수 있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 역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글. 사진으로 인해 초점이 바뀌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8. 위험을 무릅쓰려는 그는 사실 자신이 가려는 곳을 모르고 있었다.

안다면 갈 수 있을까? 모르니까 용감해지고 갈수 있는 것이다.

 

8. 은토한 기자이며 부인을 먼저 떠나보재고 혼자인 그는 더 이상 선택을 미룰 수 없는 교차로 앞에 서 있다고 여겼다. 어떤 결정은 내일로 미루면 이미 너무 늦은 것이 된다.

 

9. 외로움은-때론-힘이 되는 법이다. 무엇보다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준 것은 외로운 사람 또한 용감해 보이는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며, 결국 누군가가 손짓하기를 숨어서 지켜보는, 그리고 거기에 의당 답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상황은 이러했다.

 

9. 바스노르망디 주 망슈에서 화강암 채굴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여섯 살에 학업을 중단한 이후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고-토목 인부, 부두 노동자, 식당 종업원, 외판원, 체육 교사-거의 서른이 다 되어서야 바칼로레아를 통과했다.

이런 식의 성공스토리가 너무 좋다.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공부는 이런 것이 아닐까. 그냥 의무적으로 하는 공부와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9. 독학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책은 정말 매력적인 산물이다. 때론 독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지만 그 기회를 못 살리는 사람들이 있을 뿐

 

10. 무엇보다 지중해가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냈다면 그 지중해 또한 원래 더 오래된 원천과 연결돼 있다는 것, 즉 서양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동양에 진 빚을 인식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람이었다.

오늘날 서양사람들은 동양사람들을, 동양사람들은 또 다른 동양사람들을 비하하거나 한단계 낮게 본다. 반대로 동양사람들은 막연하게 서양을 동경한다. 사실 동서양은 누가 우수하거나 열등하거나 그런 것이 아닌데 산업과 자본주의가 이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10. 은퇴와 더불어 그에게 온 것은 고독이었지만, 또한 길 그가 소리 내지 않고 언제나 접해왔던 이었다. 어쩌면 그 길이 그를 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길이 그에게 삶의 의미

 

10. 거의 미친 듯이 운동 특히 달리기와 걷기-에 몰두했다. 그리고 결국 건강을 되찾았다. 이후에도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스무 번이 넘는 마라톤과 수차례에 걸친 100킬로미터 행군. ‘실크로드 행군참여.....그러나 무척이나 바삐 뛰어다녀야 했던 직업을 마감하면서, 그는 느린 리듬을 되찾고 싶었다. 그리하여 2년 전에 발동을 거는 차원에서 산티아고데콤프스텔라까지 235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배낭을 메고 도보여행를 했다.

얼마나 가고 싶은 산티아고인가. 그러나 나는 갈수 있을까.

 

11. 비행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자는 목적으로 쇠이유라는 단체를 설립한 것이다. 그 방법은 바로 걷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최소한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걸어서 도착해야 했다. 아이들을 착한 사람으로 바뀌게 할 만한 일이었다.

비행청소년들도 역시 사람이다. 그들과 진실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소통한다면 바뀔수 있는 것이다. 2000킬로를 걸을 때 그들이 무엇을 할수 있겠나. 얘기하는 것 밖에는 없다. 소통하는 것 밖에는. 저자는 그 점에서는 머리가 좋은 것 같다.

 

11. 왜 이렇게 매번 더 멀리 가려고 고집하는지에 대해서는.....그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이 여전히 그 대답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이것은 애초에 답이 없음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자 함이 아닐까.

 

11. 어떤 힘이 스스로를 이끄는지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는 이 미친조급증을 발견하고 그 자신도 놀라워했다.

 

12. 그의 글 속에 담긴 일종의 천진함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여행 자체가 바로 그런 천진함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토록 먼 길의 흔적을 더듬어가려면 기존에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가볍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최소한 우리 모두에게는 떠남이 운명이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모든 걸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

 

13. 타인의 문은 필요한 경우 언제나 열려 있으리라는 최소한의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의 순례자는 거의 돈 한 푼 없이 길을 떠났으며(만약 돈이 있었다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었다), 숙소를 발견했을 때에만(그조차도 늘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 곳에서 잠을 잤고, 사진 속 주인공이 될 기회가 전혀 없었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등 정말 소박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그 대가를 지불했다.

오히려 없이 사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가진자는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열면 잃어버리고 빼앗긴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13. 만약 문화가 모든 걸 잊었을 때 남는 어떤 것이라면, 나는 아마 내가 아는 한 가장 문화적인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번에는 기록을 하기로, 그리고 그것을 두 단계로 나누어 편집을 하기로 결심했다.

 

14. “이번 여행에서 나의 불행은 내가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나는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글을 써왔다. 그런데 도보여행자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비워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내 책이 이런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측량사, 수학자, 회계사 같은 과거의 내 모습을 끌고 다녔을 테니까. 내가 멀리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아마도 그런 내 모습들을 지워버리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내 목표는 순조롭게 여정을 마치고 4년 후 시안에 도착했을 때 내가 조금은 시인 또는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는 전혀 확신할 수가 없다.

진정한 자기자신을 찾고 자기다워지는 변화를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걷는 것이든 연구원 과정이든 일정기간동안의 자기탐색은 필요하다.

 

15. 오디세우스처럼 행복하게, 그가 머릿속에서 자신의 모든 여정을 재구성할 어느 날, 스스로를 되찾기 위한 이야기라고.

 

1. 길 끝의 마을들

 

23. 그들 중 둘은 뒤늦은 신혼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그들에겐 서른다섯 해가 지나는 동안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항상 사람들은 얘기한다. 나를 비롯해. 시간이 없었다고. 그러나 어느날 돌아보면 시간이 정말 없었던 것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었다고.

 

24. 나는 오랫동안 복도에 나와 있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이미 여정에, 나를 그토록 꿈꾸게 했던 그 길에 접어들고 있다.

 

24. 내가 떠나는 걸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그 친구들은 몇 번이고 이렇게 물었으리라. ‘왜 굳이 이 여행을 하려는 거지?’

 

24.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정신 멀쩡한 사람이 고향에 은퇴해서 모란이나 애지중지하는 대신 3000킬로미터를 걷겠다고 등에 가방하나 메고 소문난 위험지역으로 떠난다는 건 사실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 눈에는 해괴한 일일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하는 일도 사람들은 왜?라고 하는데

 

24. 칠흑 같은 밤과 마주한 이 순간,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전형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거창한 출발에는 근심이 뒤따르는 법이라는.

 

24. 내 나이 예순하나, 노년에 가까운 중년이다.

나이는 숫자일뿐이라 얘기하지만 60이라는 숫자가 다가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는 극복했지만.

 

24. 25년간이나 여행과 탐험을 함께 계획했던 아내는 10년 전 삶을 마감하여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이미 함께 있을 때조차 각각 혼자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같은 탐험을 꿈꾸었다는 자체가 아름답다.

 

25. 아이들과 나, 우리는 모두 삶의 대양 앞에 서 있다. 아이들은 현재로선 거대한 물만을 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건너가야 할 저 건너편을 보고 있다.

 

25. 행복했던 어린 시절과 때로 힘겨웠던 젊은 시절 그리고 부러울 것 없던 성인으로서의 삶. 나는 아주 풍요로운 두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왜 그것이 이제 중단돼야 하나?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침착하게, 체념하듯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거나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노년의 덜미에 붙잡히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 내게 그런 세월은 해당되지 않는다.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한때는 이런 삶을 꿈꾸었다. 열심히 일하고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고 은퇴하여 유유자적하게 사는 것. 그러나 늦은 나이지만 너무 늦이 않게 깨달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5. 게다가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 바쁘게 뛰어다녔다.... 내 자리를 확실히 지켜야 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직위에 합당한 노력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스꽝스러운 필요성 때문에 항상 군중의 물결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 끝없이 움직이고 더 빨리 뛰어다녀야 했다. 사회는 아직도 이런 터무니 없는 질주에 채찍질을 하고 있다.

항상 그 깨달음이 너무 늦음에 후회를 하지만 평생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늦음에도 이런 깨달음에 감사해야 한다.

 

25. 소란스러움과 긴박함에 대한 광기가 이러할진대, 이제 누가 자신의 기계에서 내려와 이방인에게 인사할 시간을 가져보려 할 것인가? 인생의 세 번째 시기에 나는 느림과 침묵에 굶주려 있다.

그 시기에는 기계에서 이젠 내려가야 할 시기라고 말해주는 예의라도 있었지. 지금은 그냥 등 떠밀어 버리는 시기가 되었다.

 

26. 몽상으로 가득한 안개 낀 평원 앞에 잠시 멈추는 것, 풀밭에 앉아 코로 바람을 마시며, 빵과 치즈 한 조각을 먹는 것. 걷는 일이야말로 이런 것들을 하기에 더없이 적합하지 않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동방법인 걷기는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규격화된 문명과 온실 속 문화에는 이제 싫증이 난다. 내 박물관은 길들과 거기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고, 마을의 광장이며, 모르는 사람들과 식탁에 마주 앉아 마시는 수프인 것이다.

자전거, 자동차, 기차 이 모든 것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걷기가 힘든 시기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난 다행이 걷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다.

 

26.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길 중의 하나인 산티아고데콤프스텔라 길을 걸었다. 2300킬로미터를, 당나귀처럼 등에 가방 하나 메고서,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한 멋진 길이었다.

이 길을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것은 분명 무슨 이유가 있으니 그런 것이다. 나도 이 길을 가고 싶은데 언제 갈수 있을지 모르겠다. 와이프가 이해해줬다면 나는 변경연을 하지 않고 아마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내 후배는 걷지는 않았지만 대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택했다. 그의 결정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대신 나는 이렇게 책으로 갈증을 달래고 있다.

 

26. 76일 동안 나는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걸 지켜보았던 풍경과 하나가 되었으며....... 비록 믿음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기쁨에 넘쳐 돌아왔으며, 아득한 옛날부터 그 길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과 좀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 말이 정답일 것이다. 막상 그 길을 걷는다고 해서 무엇을 발견하거나 자신이 대단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냥 걸었다는 그 자체에 기쁨과 만족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27. 나는 기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세계의 길들을 찾아다닐 것을 다짐했다. 그런 점에서 실크로드만큼 영감을 주고 열정적이며 역사적인 길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저자는 몇 살일까? 99년에 61살이니 17년 현재 90살 정도이다. 지금은 어디를 걷고 있을까?

 

27. 걸어서, 서두르지 않고. 하지만 친구들과 내 원래의 생활에서 영원히 단절되기를 바라진 않았기에.

 

27. 이제 나는 침묵과 꿈의 오솔길로 접어든다.

 

28. 베네치아의 부흥은 실크로드 덕분이었다. 비잔틴 제국이 막을 내리면서 13세기 초 베네치아 공화국의 황금시대가 시작된다. 이곳 상인들의 부를 추구하는 의지에는 한계가 없었다. 새로운 시장을 정복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그들에게 신비에 싸인 중국과 향료, 견직물, 종이, 보석 등에 눈독 들인 서양 사이의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것이었다.

 

32. 다른 여행자들처럼 루이와 에리크도 여행 중 겪었던 고비와 재난 그리고 도처에서 일어난 사고들을 제일 먼저 기억해냈던 것이다. 마치 여행이 곤경과 고통으로만 점철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 여행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내 여행은 정말 멋진 것이었다. 그 증거로 난 세 번이나 죽을 뻔했으니까.”

이런 여행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것은 왜일까? 살아 돌아왔으니까.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을텐데

 

33. 그 역시 여행광이었으며, 멈추는 걸 원치 않았다.....혼자서 지중해를 건너 대서양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고향인 브르타뉴까지 가려는, 좀 비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친구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여행은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를 쓰고 여행을 가려고 하는 것일까. 더 많은 것을 보고 자랑하기 위해, 휴식을 위해? 갔다오면 지치기만 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더 힘들어지는데도.

 

35. ‘오늘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이 모습인 나는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나? 그것이 내가 바라던 모습인가? 나는 내 노선을 고수했는가, 반대로 꿈을 저버렸는가? 길을 가는 동안 어떤 타협을 했으며, 어떤 의무를 포기했는가? 퇴장하기 전에 어떤 돌을 어떤 벽위에 올려놓을 것인가?’

 

35.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 있다. 그래서 잘 짜여진 사고와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35. 걷는 것은 행동이고 도약이며 움직임이다. 부지불식 간 변하는 풍경,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런 바람, 구덩이투성이인 길, 가볍게 흔들리는 밀밭, 자줏빛 체리, 잘려나간 건초 또는 꽃이 핀 미모사의 냄새, 이런 것들에서 끝없이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정신이 분산되기도 하며 계속되는 행군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36. 생각은 이미지와 감각과 향기를 빨아들여 모아서 따로 추려놓았다가, 후에 보금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것들을 분류하고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36. 어쩌면 길을 가는 동안 그 대답을 찾을 수도 있을 질문들, 이 길의 끝에 이르면, 나를 서너달 동안 홀로 미지의 세계로 떠나보낸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게 될까? 왜 걷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이정표가 있고 유명하며 또 안전한 길들이 알프스에서 내고향 노르망디에 이르기까지 즐비한데도 내가 왜 미지의 길에서 헤매려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공연히 혼자 별나게 잃어버린 젊음을 뒤늦게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많은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왜 이렇게 걷고 있을까하는 그런 생각들

 

36. 머리는 잠시 거짓말을 할 수가 있지만, 몸은 숨기기 어려운 법이니까.

 

36. 고독이 도피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기에 더욱 절실한 질문이다. 고독이 칠판이라면, 난 그 위에다 계속 써나가야 할 것이다.

 

37. 수많은 위험-, 사고, 폭력-이 내 앞에 도사리고 있음을 안다. 여럿이 함께 간다면 서로 기대고 돕고 격려해주고 돌볼수 있다. 실수를 하거나 약해지는 순간도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혼자 걷는 길에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일이 드물다.

혼자 가야할 때와 같이 가야할 때가 있는 것이다.

 

37. 나는 밀려드는 막연한 불안감에 저항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2. 나무꾼 철학자

 

44. 피에르 로티(프랑스의 소설가, 해군 장교)는 도시가 저렇듯 현대화되는 현상을 아마도 못마땅해 할 것이다.

장교이면서 소설가라니. 너무 멋진 모습이다.

 

45. 터키 현대화의 상징인 이 다리를 쿠르드족이 폭파할까봐 우려해서다. 그래서 다리 양 끝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47. 자동차와 트럭에 위협당하다 보니 경치를 음미할 여유가 거의 없었다.

자동차가 없는 길을 걸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없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곳 또한 많다.

 

48. 배낭 무게는 총 15킬로그램이 됐다.

완전군장이 20KG이니 거의 거기에 육박한다. 61세에 15킬로그램은 무리가 되는 무게이긴 하다

 

53. 첫 날은 32킬로미터를 걸었다.

와우~ 대단한 체력이다.

 

56. 걷는 즐거움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 처음에 인간의 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되도록 부드럽게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57. 걷는 것은 조화로움을 만들고 또 자리 잡게 한다.

 

57. 옷을 아무렇게나 입으면 예의에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이 나라에서 내 모습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을 것이고.

 

67. 자리에 누운 후 바로 곯아떨어졌다. 걷는 것의 미덕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다.

불면증 환자가 걷기를 하면 좋을 것 같다.

 

71. “나는 산림관리인 생활이 좋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겨울에는 독서에 전념할 수가 있으니까말이오. 그래서 1월부터 3월까지 실컷 책을 읽고, 저녁 무렵 찻집에 가서 친구들에게 <미학><논리학>을 읽는 행복을 일깨워주기도 하지요.”

멋진 인생관념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74. 눈을 들어보니 거북 한 마리가 비탈길 위쪽에서 둥그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친구여. 미리 말해두지만, 난 너와 경주하지는 않을거야.

 

3. 터키식 환대

 

77. 여행자를 자기 집에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것은 이슬람 교도의 의무였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에게 환대손님인 여행자에게 모든 권리를 갖게 한다는 의미였다. 너의 집이 그의 집이며, 너의 음식을 그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자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가장 나쁜 죄였다.

이런 식으로 보면 이슬람교 역시 하나이 종교임에는 틀림없다. 테러와 너무 관련짓는 것 역시 뭘 모르는 선입견이다.

 

81.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묵게 해줬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99년에 사진은 그리 귀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곳은 그랬나 보다. 생활 수준을 볼수 있는 부분이다.

 

83. 한 시간 반 쯤 걸으니 고통이 조금씩 사라졌다. 내 몸이 엄청난 양의 엔드로핀을 만들어 고통을 없애준 모양이다.

하이러너와 같이 고통에 익숙해지면 고통이 즐거움으로 변해버린다.

 

85. 이제 햇빛과 비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고, 걷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 도보여행의 모든 결과는 정직하다. 몸 전체를 던지는 일이다. 내 몸을, 내 기억과 약과 옷, 식량, 침낭을 짊어질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모든 실수는 곧바로 혹은 이튿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혼자 걷는 이상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91.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존재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부재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슬프다.

 

93. 71년을 사는 동안 각각 거리가 40킬로미터 남짓 되는 두 번의 여행만을 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먹고 살기 바쁜 것이고, 하나는 여유가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못느끼는 경우

 

97. 여든여섯 살 된 노인과 차를 마시게 됐는데, 그는 여러 가지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백 살이 넘은 어머니가 최근 돌아가신 것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었지만, 나이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

100세를 넘으신 건 천수를 누린 것인데. 애틋한 자식의 모습이 그려진다.

 

98. 터키에서는 군대의 인기가 엄청나다. 군복무를 마치는 것은 명예로 간주된다. 따라서 서른 살이 지나도록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남자는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우리나라 군대가 터키의 반만 되었으면. 인기를 얻고자 하는 욕심까지는 없다. 그저 비난만 안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군 내부에서의 자정도 필요하지만.

 

101. 어린 시절 이후 손으로 풀을 베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낫을 들고 다니곤 했는데. 이젠 벌초도 기계로 한다.

 

104. 고맙다니, 뭐가? 이것이 바로 터키 정신이었다.

 

4. 의구심

 

109. 무엇이 나를 이렇듯 자꾸 더 멀리 가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지닌 상식과 신중함은 분명 멈추라 말하고 있었다. .... 조금만 더, 좀더 멀리, 내 안에 억누를 수 없는 원초적인 충동이라도 있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110. 나를 걷고 또 걷게 만드는 이 격렬한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해보려고 그리고 기록을 깨보겠다는 어쭙잖은 허영일까? 아니면 오만? 의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61세의 나이에 이런 욕망이 있다는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부정하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자하는 강렬한 욕망이 아닐까.

 

110. 마라톤은 몇몇 챔피언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자기자신과의 승부이다.

 

110. 마라토너에게 어느 날엔가 그를 훌쩍 추월할 수 있는 적수라고는 단 한 명뿐이다. 바로 자기자신.

 

110. 하지만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욕구가 걷고 또 걷는 행위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 떠미는 이 통제되지 않는 충동은 내가 애써 숨기려 하는 어떤 두려움과 뒤섞여 있다. 끝까지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수전노가 동전을 긁어모으듯 1킬로미터라도 더 모아두는 것이다. 한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는 한 그리고 배낭을 짊어질 힘이 남아 있는 한, 목표에 이르길 갈망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111. 사실 내게 시간 제약이 있는 것도, 매일매일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는 것도, 또 최소한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좀 진정하자, 진정하자,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타일렀다.

 

113. 실크로도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걷는 즐거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신비로움.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믿지 않았고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나의 동기는 돈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더라도 돈이 없고 여유가 없는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117. 정말 거대하고 현기증 나고 비인간적인 곳이었다.

 

119. 미국에서는 기차가 승리를 거두었다. 터키의 지질구조를 감안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따. 층계 같은 땅 위를 기차가 달리기는 어렵지 않은가!

 

120. 볼루에 이르는 길 꼭대기에 자리한 호텔에서 자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은 트럭과 버스들로 난리법석을 이루는, 게다가 손님을 불러모으려고 스피커로 고함을 지르는, 지옥의 입구 같았다. .... 결국 더 가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122. 나는 늘 반복되는 질문들에 기꺼이 대답했다. 기어를 바꿔놓고 브레이크나 엑셀러레이어를 밟는 것만이 유일한 육체활동인 이 운전사들이 일개 보행자를 마치 화성인 보듯 신기해하는게 무척 재미있었다.... 차로 이동할수 있는데 무엇을 하러 걷는단 말이가?

 

123. 걷는다는 것은 자유며 교류다. 그런데 철과 소음의 감옥인 자동차는 선택이 불가능한 혼잡스러운 장소인 것이다.

 

126. 온갖 더러움으로 뒤덮인 이 방에서 쉽게 잠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126. “내가 끝까지 갈 수 있을까?‘확신이 서지 않았다. 발톱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낙관적인 생각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걸을 때는 고독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내 안에 쌓여가는 영상들, 자신과 나는 대화반으로 충분했다.

 

127. 언어의 감옥이라는 이 넘지 못할 장벽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견디기 힘들 것이다.

제일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아닐까. 바디랭귀지를 통한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131. 자신의 호의가 묵살되자 그는 아주 불쾌한 표정이었고 나도 울적해졌다. 그러나 자유로위지기란 얼마나 여러운가!

 

135. 13일 전부터 계속된 강행군에 몸의 근육들이 적응을 한 것 같았다. 짐도 덜 무겁게 느껴졌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135. 예순하나의 나이, 삼순호에 타고 있을 때는 걱정도 많았지만 육체의 젊음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내 신체기관을 내가 뛰어든 모험에 적응시키는 것, 이 첫 싸움에서 나는 승리한 모양이다. 나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취기 같은 것을 느꼈다.

 

135. 나는 신들과 친숙해졌다. 그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상황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로 완벽한 고독, 이는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조건이다. 비밀과 경계심이 너무도 많아 일부러 거리를 두는 신들은 단체 여행자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올림포스 신전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혼자인 것만으론 부족하다. 장소를 잘 택해야 하는 것이다. 대도시의 방에 혼자 있는 것은 고독이라 할 수 없다. 제단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무한한 공간을 골라야 한다. 나는 산을 좋아하지만, 바다에서도 똑같은 광대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수평선 외엔 아무것도 시선을 가리는 것이 없을 때 혹은 시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꼭대기를 향할 때, 니르바나(열반)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이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 다른 것들 못지 않게 중요한 마지막 조건은 육체와 정신사이의 완벽한 조화. 걷는 동안 매일매일 계속된 훈련으로 적응되고 매끄러워진 근육들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는 때가 있다. 이는 땀이 줄어들고 또 유연해진 관절들이 우발적인 사고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바로 이때 신비스러운 연금술이 작용하여 몸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정신, 그 순수한 정신은 광야와 초원 혹은 산꼭대기 위로 날아올라 모래바다 속의 모래알이 되는 그때, 우리를 가두고 있던 일상이라는 감옥의 창살이 순식간에 부서져버린다. 그제야 비로소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신을 만나기 위한 세 가지 조건. 완벽한 고독 장소 육체와 정신의 조화

 

136. 순례자와 같은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다. 감동이 흘러넘쳐 마음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길가의 조약돌 하나가 이 예민한 균형을 깨버렸고, 무엇보다 괭이에 기대고 있던 한 농부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로 와서 말과 몸짓으로 인사를 한 탓에 나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138. 타인의 배려가 때로는 피곤한 일이다.

 

139. 이미 오래 전에 고장 난 것으로 보이는 냉장고 진열장과 네댓 개의 더러운 테이블만이 이 찻집을 이루는 가구의 전부였다.

 

140. 오로지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프랑스 채널을 찾으려고 애썼다. 마침내 프랑스 채널을 찾아냈다. 흡족했는지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사라졌다.

 

5. 맹견 캉갈

 

141. 처음 몇 킬로미터를 걷고 나자 몸이 날아오를 듯 가벼워졌다. 배낭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로지 여행자의 순수한 정신만으로 어려움이 없이 전진했다. 이따금 야생적이고 평범한 주위 풍경의 아름다움을 접하면서 현실로 돌아왔다.

 

142. 나는 걸으면서 선 채로 꿈을 꾸었다. 철학자 미셸 세르는 수동성은 야만적인 것의 다른 형태라고 했다. 이러한 일상의 노력, 멀고 먼 목표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러나 강렬한 부추김 그리고 유익한 땀방울을 통해 나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어린 시절과 두려움과 고정관념의 사슬에서 해방된다. 나는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 있는 것이다. 걸으면서 몽상하기란 쉽지만, 걸으면서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42. 이렇듯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매 순간, 걷는 이는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에 이끌려 명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로 되돌아오게 된다.

 

142. 걷는다는 것은 꿈꾸는 자에게 더욱 관대하다. 심사숙고할 때와 달리 몽상은 일단 끊겼다가도 별 어려움 없이 다시 그 맥을 이어갈 수 있다.

 

143. 여행 중에 가끔은 지기(知己)에게 몇 마디 적어서 보내기도 한다. 오랫동안 얼굴도 못 보고 살다가 세상의 다른 쪽 끝에서 온 카드를 받은 친구는 아마 놀랄 것이다.

최고의 선물 아닐까.

 

145. 새벽 다섯시,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을 깨지만 않았더라면 조용한 밤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체르케슈에는 열두 개의 사원과 그 수만큼의 사제들이 있었다.

5. 이슬람 교도는 새벽형 인간이겠다.

 

145. 저 위 천국에 있는 알라도 귀를 막고 있으리라. 알라와 나, 우리 둘은 한시라도 기도가 빨리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146. 나는 폐허를 좋아한다. 꿈을 꾸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곳을 이루던 벽이며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진 기둥들을 내 마음대로 건설할 수도 있다. 좀더 가까이서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가벼운 식사를 하기로 했다.

 

147. 바로 캉갈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개들은 터키인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외국인에게 파는 것도 금지돼 있다. 힘 좋고 공격적인 캉갈의 임무는 양 떼를 지키는 것이며

 

153. 캉갈과 부딪친 이후 희한하게도 예전과는 달리 긴장이 풀어진 느낌이었다. 내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zen, )한 상태인 것이다.

 

154. 그들은 침대에 앉아 손님들을 맞고 선물도 받는다. 할례가 이루어지는 동안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음으로써 용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154. 그대로 직역하면 신께서 원하신 이 경이로움을 보라는 뜻이다. 내 장딴지가 신께서 원하신 경이로움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매우 유쾌했다.

 

156. 앞으로도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이다. 이따금 터키 여인들과 얘기할 수는 있지만 신체 접촉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을.

지금은 이래도 언젠가는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변한 이후에는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다면 억울하지 않을까.

 

159. 1200킬로미터에서 1300킬로미터를 한달 반 안에 주파해야 하는 셈이다.... 이런 복잡한 계산이 나를 사로잡기도 하고 또 동시에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설의 실크로드를 따라 걷겠다는 달콤하고도 자유로운 광기가 이제 강요되고 고통을 주는 것으로 변해버린 걸까?

사실 저자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있는데 왜 이렇게 하루하루 날짜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물론 비자문제도 있겠지만 그런 조급함이 길을 걸으면서 자기자신을 대면하는데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닐까.

 

160. 숙소가 있던 도시들은 낙타가 하루이동할 거리 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로 하루에 500에서 1000킬로미터를 갈 수 있게 되자 대상을 위한 시설은 존립 근거가 없어지고 말았다. 결국 인적이 끊기고 쓸모없게 된 대상 숙소들은 폐허가 되었다.

이런 대상숙소들은 터키 정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줘서 관리해야 하는데 먹고사는게 먼저인지라.

 

164. 열두시간을 잔 셈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166. 대상 숙소의 보존에 각별한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화가 나는 일이었다.

산티아고길처럼 이 실크로도도 해당되는 각나라가 서로 연합하여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보존하면 좋을텐데 저자처럼 안타까운 면이다.

 

167. 터키의 경제 위기와 두 자리 수의 인플레이션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엄청난 비용이 그 주된 원인이었다. 익히 알려진 악순환이지만, 쿠르도와의 갈등으로 군인은 일반인의 두 배나 되는 봉급을 받는다.

 

168. 군인의 이미지가 긍정적이라 하더라도 군 복무에 2년 이상을 바쳐야 한다는 것은 젊은 지성인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지 못한다.

그렇긴 하지. 다를 모병제의 문제점을 알지만

 

171. 베흐체트는 학교라고는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낡은 신문에서 글자들을 해석하며 혼자 읽는걸 배웠다. 그는 독서광이었다. 그에겐 내가 이스탄불을 떠난 후 어느 마을의 어느 집에서도 결코 본적이 없던 서가가 있었다. 그가 즐겨 읽는 책은 <돈키호테>였다.

농부이지만 열정이 대단하다. 글을 읽는 농부라.

 

172. 하루건 이틀이건 일주일이건 당신이 머물고만 싶다면 내 집은 당신 것이라오.

 

175.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시끄럽고 협소한 이 열악함이 나를 맥빠지게 했다.

 

175. 여행하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받을 뿐이다.

나도 나가고 싶다고

 

6장 왔노라, 보았노라

 

177. 이곳에도 샤워실은 없었고 복도에 있는 화장실은 역겨움이 거의 완벽에 달했다.

각오는 했겠지만 이런 환경에서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186. 터키 어디에서나 그렇듯 사원은 종교적인 곳만이 아니다. 그곳은 또한 삶의 장소인 것이다.

 

189. 걷는 것은 기쁨이며 부드러운 마약과도 같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 여행을 마친 후에 거의 예외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혼자 걷는 것을 선호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여정에서 친구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도 순례자나 대상들이 나보다 유리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 저녁이 되면, 그들은 도보여행자들과 자신들의 신앙, 피로 그리고 갖자 발견한 것들을 서로 나누곤 했을 것이고.

 

196. 폭풍이 불어 지붕이 날아간 거름 웅덩이 위에 엉덩이를 대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일을 했다.

정말 멋진 화장실인가 보다.

 

197. 할머니들은 내가 나타낼 때만 코와 입을 가렸다.

 

198. 자기 마을의 모든 역사를 요약하면서 왜곡되거나 잃어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200. 카이사르는 상원이 요구한 대로 전쟁 역사상 가장 짧고 가장 유명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판 위에 문자를 새긴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간 전쟁에 대해, 그는 다만 이렇게 언급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7. 1000킬로미터

 

206. 내 존재가 그들을 놀라게 하는 건 어쩔수 없다. 그러나 내 맨다리가 그들에게 충격이라면 내가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209. 그들은 자신들의 단조로운 삶에 예기치 못했던 관광객이 출현하자 기뻐하는 듯했다.

 

214. 가장 힘겨운 것은 첫걸음이다. 게다가 언제 부터인가 마을들도 다 비슷비슷해지고, 평원에 또 평원이 이어지고,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흥미도 무뎌지고, 심지어는 더 이상 캉갈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보라.

슬럼프이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별다른 방법은 없더라. 그냥 하던일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215. “손님은 많은가요?”라고 묻자 그들은 무심한 미소를 지으며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들의 아름다운 낙관주의는 나를 더없이 즐겁게 했다. 이 장면을 마음속에 잘 간직했다가 세상의 번잡함으로 인해 평정을 잃으려 할 때마다 꺼내보리라.

 

216. 세계의 모든 어린아이들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런 노래들을 목청껏 부르며 열정을 표현하곤 한다. 전적인 믿음과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 목청, 이런 식으로 이미 어린 나이 때부터 꼬마 투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17. 이곳 사람들은 근심을 일상처럼 지니고 산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애쓸 필요는 없었다. 고독한 여행자는 원래 짐 속에 두려움을 갖고 다니는 법이니까. 그것은 숲속 혹은 한밤의 침묵에 스며들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질 때마다 고개를 들기도 한다. 등에 배낭을 메고 혼자 걷는다는 것은 위험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몸을 내맡김을 의미한다. 자전거 여행처럼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리고 자동차 여행처럼 몸을 피할 수 있는 기능성도 전혀 없다. 지금까지는 두려움이란 놈이 배낭 안에서 부끄러운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그리고 만남 하나하나가 축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녀석이 은밀하게 몸을 일으켜 내게로 왔다.

 

218. 솔직히 말해 나는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이중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직업적인 호기심은 차라리 그들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쪽으로 기운다.

 

218. 그와 동시에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폭력에 대해 가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겨냥하고 쏘고, 결국 자연 속으로 사라져가는 저격수들, 불필요한 가책 따윈 마음에 담지 않는 테러리스트들, 마음어귀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이런 두려움이 현실화되었다. 어쩌면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는, 도둑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걱정거리를 애써 몰아낸다. 도둑을 맞게 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큰 일은 아니리라.

테러리스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면 달라질까. 자폭테러 후에 그들의 부모가 겪는 고통이 얼마인지 안다면 그런 일을 할수 있을까. 그런 명령을 하고 세뇌시키는 놈들이 문제이다.

 

220. 여권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래서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외여행에서 제일 신경쓰는 것 중에 하나인데.

 

221. 아침에 내가 전날 얘기한 대상 숙소를 보고 싶다고 하자, 그것이 정확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것이 궁금하나 이 마을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사람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228. 그들의 두려움은 항구적인 것이며, 그들은 그것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몸짓마저 지배한다. ..... 두려움이 호기심보다 더 컸던 모양이다. .... 나는 두려움만이 지배하는 지방에 들어선 것이다.

서로 상호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간적으로 될 수 없다.

 

231.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보니 열한시 반이다. 나는 혼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펄쩍 뛰어올라 이 황량한 길 위에서 미친 듯이 웃음을 떠뜨린다. 배낭의 무게가 허용하는 한 가장 멀리, 나는 용솟음친다. 이제 막 1000킬로키터를 주파했다.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씩 이루어가는 재미가 남다를 것이다.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선물

 

8. 헌병들

 

238. 무스타파의 작은 트럭에 오르면서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이스탄불에서 내가 했던 결심은 터키의 수도에서 중국의 옛 수도까지 단 1킬로미터도 빼놓지 않고 걷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호받는 노인네 신세가 되어 차에 타고 있다니. 안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치자. 짐을 털린다면 그건 이 여행의 종말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최악의 상태을 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내 자존심은 상처 받았다.

저자의 성격을 한순간에 파악할수 있는 부분이다. 완벽하고, 고집스럽고, 계획성 있는 저자.

 

241. “도대체 돈말고는 다른 관심거리가 없습니까?” “그건 우리가 너무나,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라오......”

돈이란게 이렇게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261. 나는 이 나라와 관계된 사건들과 생각을 기록할 때조차 오잘란의 이름도 그리고 그의 당 PKK의 이니셜도 써놓은 적이 없었다. 나만 아는 암호를 개발했기 때문이다......게다가 그동안 적어놓은 것들은 도시에 머물때마다 프랑스로 보냈기 때문에 관련된 일들의 대부분은 이미 파리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을 터였다. 이란과 관련된 책자들과 때가 되면 꺼내보려고 따로 분류해뒀던 것들(, 지도 등등)도 그에게는 요주의 대상이었다. 마구 뒤지는 그의 행위에 나는 극도로 화가 났다. 마치 나를 발가벗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에겐 별 가치가 없어보일지 몰라도 내 여행에는 너무나 소중한 물건들이 사무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졌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 모든 걸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그토록 노력했지만 이건 너무한다 싶어서 지금까지 내가 심문을 당하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9. 대상 숙소

 

270. 그들의 설명은(영사관) 대략 이러했다. 위험한 지역들이 있다는 것, 내가 굳이 그런 곳에 모습을 드러낸게 잘못이라는 것, 헌병들은 그들 마음대로 한다는 것, 따라서 그들과 얘기해봤자 소용없다는 것, 결론적으로 내가 체포되고 수색까지 받게 된 절차에 대해 영사관이 국가를 대표해서 항의할 명분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계속 여행하기를 고집하는 이상 나는 또다시 검문받고 체포되고, 심지어는 헌병들 마음대로 하루건 일주일이건 혹은 그 이상이건 감금할 수도 있었다.

 

272. ‘푸른눈과 무스타파 카트자르가 오늘날 터키의 두 얼굴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그들을 나무랄수는 없다.

 

278. 태양도 죽음도 뚫어지게 바라볼 수는 없다.

 

279. 걷는다는 던 모든 접촉에 노출된 일이다. 따라서 호의도 악의도 모두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침대에서 죽기를 바랐다면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 같은 생각은 언제나 확고했다.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289. 리페예 호텔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결한 호텔 중의 하나였다. 샤워기는 없고 세면대만 있었는데, 때로 찌들어 원래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 화장실은 오줌으로 질척거렸다.

정말 최악일 것같다. 그냥 이 묘사만으로 충분하다. 왜 이런 곳이 호텔로 남아 있을까.

 

291. 그날 62킬로미터를 걸었고 해발 2200미터나 되는 고개를 넘은 것이다.

와우~~ 이건 정말 믿기지 않는다. 61세의 고령이 62킬로미터라니. 인간의 한계는 없는 것인가.

 

292. 아침에 반대편으로 가는 트럭 한 대를 세워서 아르판을 만났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실크로드의 단 1킬로미터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소심함이 거의 정신병이나 편집증에 가까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으리라는 것,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비록 발은 전날의 강행군으로 끔찍할 정도로 멀게만 느껴지는 에르진잔까지 18킬로미터 거리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누가 그 1킬로미터를 걸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건만 자신이 받아들일수 없는거다. 미련하지만 이제는 이런 길을 가고 싶다.

 

292. 에르진잔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이미지를 지닌 도시다. 1939년의 대지진으로 인구의 3분의 135천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 1992년에 다시 지진이 나서 600명이 죽었다. 그럼에도 땅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다시 오층짜리 건물들을 지었다. 그들은 다음에 올 천재지변을 태평스럽게 그지없는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터키만이 문제가 아니지 않나. 일본도 그렇고 내가 있는 경주, 포항은 어떤가. 지진이 일어났음에도 우리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아마 자기가 살던 곳, 고향이란 것. 그런 것 아닐까.

 

293. 나는 여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게으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들은 이 더위를 어떻게 견딜수가 있는 걸까?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이나라 여인들은 대부분 옷으로 몸을 감싼다. 그들의 교리는 우선 옷의 길이에 그리고 옷을 입는 방식에 엄격하게 적용된다. 가장 관용적인 교파에서는 차도르만 착용하도록 한다. 긴 옷이야 그렇다 쳐도, 이런 날씨에 외투라니! 이는 종교적 열정의 가장 초보단계일 뿐이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치 북한의 주민들 같이 자신들의 존재를 모른채 살아간다. 언젠가는 바뀔 것이다. 우리나라 여인들이 지금처럼 바뀐 것과 같이

 

293. 이슬람 전통주의자들의 요구는 좀더 까다롭다. 차르샤프라고 부르는 검고 넉넉한 천을 눈과 손만 보이도록 뒤집어써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더욱 극단적인 종파에서는 여인들에게 투박한 밤색 커버로 완전히 몸을 가리고 그림자만 보면서 길을 가도록 한다. 게다가 손도 양털 장갑으로 가려야 한다. 전부 드러내기를 원하는 우리의 습관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상상력을 다해 모든 것을 추측해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10. 여인들

 

302. 나는 노새처럼 미련한 건지는 모르지만 걸어서 갈 것이다. 남들이 아무리 내 길을 방해해도 그리고 포기하도록 종용해도 꼭 내 계획을 이루고 싶다.

 

303. 나는 당연히 이 장면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고, 그래서 마차를 전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미처 베일로 얼굴을 가리지 못한 여인이 버럭 화를 냈고, 내 앞까지 와서는 침을 뱉었다. 여인의 초상은 그 여인의 것이고 내가 그걸 훔친 것은 사실이었다.

 

305. 마마 하툰이 이끌었던 여성 혁명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지만, 그 성과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남성 우월주의자가 지배하던 중세에 여성의 명령을 받는다는 사실을 군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 나라의 모든 종교와 문화는 부인과 딸들을 억누르고 있다. 경제성장이 아직 미흡한 탓에 여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남성의 경제력에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교육도 문화도 그들을 거부한다.

 

306. 마마 하툰 외에도 이 땅의 역사를 장식한 여성들은 또 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동로마 제국 때다. 이레네, 헬레네, 테오도라..... 이들은 자신의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들이다.

 

306. 이레네는 .... 자신의 아들을 대신해 동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아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요구하자, 이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아들의 눈을 도려내어 장님으로 만드는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며 자신의 통치를 5년간 연장했다.

5년을 위해 아들의 눈을. 권력의 맛이 이렇게 좋은 것이다.

 

307. 왕비가 된 테오도라는 나무랄 데 없었으며 한 술 더 떠 남편에게 권력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기까지 했다. 도시를 피로 물들인 격렬한 반란이 일어나 그가 도망가려할 때 테오도라는 대충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자줏 빛 옷(왕의 상징)을 입은 이상, 그걸 수의로 삼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그들은 결국 남아서 반란을 진압했으며, 침대에서 죽음을 맞았다.

 

307. 시골 마을에서 터키 여인들의 운명을 접할 때마다 나는 늘 반감을 느꼈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한번 뿐인 인생 자기 원하는 대로 하지도 못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면서 살아야 하니.

 

308. 이 나라에서 여성은 이등 시민이며, 심지어 이등 인간으로 간주된다고 얘기하면 터키인들은 흥분할 것이다.

너무 사실적인 묘사이네. 터키인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감정이 들까?

 

309. 제대로 된 휴식 한번 취하지 못한 채 나흘 동안 340킬로미터를 걸어온 것이다. 오늘도 나는 40킬로미터를 주파해야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며칠 쉬거나 계획한 구간을 단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걷도록, 계속 걷도록 부추기는 이 알 수 없는 힘이 문제였다. 물론 나는 그래야만 하는 훌륭한 이유들을 매일 찾아내곤 한다. 아침부터 나는 마치 마구간 냄새를 맡은 말과 같았다.

 

310. 유명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팬들에 대한 의무도 이고, 때론 그게 달콤하게 여겨지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싫은 일들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한마디로, 조심하지 않으면 거기에 완전히 예속돼버리는 것이다. 사랑받으려면 일단 건강 상태가 좋아야 한다. 게다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알리하지 주민들엑 받은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313. 예전에 대상들은 양털과 일반 털을 섞어 촘촘하게 짠 후 거기에 지방질을 바른 특수한 천으로 짐을 덮어씌웠다. 그렇게 하여 비단과 종이, 말린 과일 같은 귀중하고 습기에 약한 물품들이 무사히 운송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철저한 고증작업을 알수 있다. 이런게 고어텍스인가? 이 재료를 오늘날에 사용하면 방수옷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314. 스무 명 정도가 들어간 욕조의 물은 아타튀르크 시대 이후 한 번도 갈지 않은 듯한 색깔이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청결보다는 즐거움이 먼저였다.

아무리 즐거움이 먼저라지만 나는 그런 색깔을 보면 안할 것 같은데.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랬을까.

 

315. 에르주룸은 눈 앞에서 자꾸 달아나고 있었다. 비록 가장 짧은 거리였지만,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후 가장 어려운 단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 내가 가까이 간다고 생각할수록 더 멀어지면서 저 도시는 얄밉게도 즐거워하고 있는 듯 했다.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다. 30킬로미터를 지나면 많이 뛴 것 같은데 마치 제자리 걸음을 걷는 것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318. 오잘란 재판의 판결이 내려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형을 얻도받았다. 서쪽의 터키인들은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동쪽의 쿠르드인들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319. 향락과 노는 걸 좋아하는 후세인은 술을 금지하는 규율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믿음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320. “나는 두 가지를 믿는다. 나의 신과 나의 군대.” .... 아주 젊은 연령층만 빼놓고는 이 나라에서 군대가 지니는 이미지는 지극히 긍정적이다.

 

320. 군대에 대한 숭배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오스만 제국의 군사 전통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몽골지방의 끄트머리에서 건너온 유목민족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니고 있는 호전성 때문일까? 어쨌든 군대에 대한 존경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신과 국가와 군대, 많은 사람들에게 이 모두는 하나인 것이다.

여기서 군인은 정말 할만하네.

 

321. 한달반 동안 몸무게는 3킬로그램 빠졌다.

생각보다 많이 빠지지는 않았네. 나이살은 이렇게 안빠지나 보다.

 

321. 여행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은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언어 구사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보수집에 사실 가장 큰 단점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내가 맺은 진한 관계들, 특히 신세를 지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가족들은 어휘나 문장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정말 중요한 건 바로 그런 점이 아닌가.

영어를 잘하면 영어권 국가에서는 여행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처럼 똑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322. 이런 것들은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는 복수나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안타깝다.

 

331. 그것도 어이없는 죽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 후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실 어이없지 않은 죽음은 또 어디 있겠는가?

 

331. 내 신발이 굳은 땅과 다시 접촉하게 됐을 때 나는 너무나 기뻤다. 곧바로 다시 길을 떠나기엔 아직도 좀 전의 공포가 너무나 생생해서 나는 길에 주저앉아 십오 분 정도를 그냥 흘려보냈다.

 

334. 현실은 언제라도 우리를 헤매게 만들어서 우리가 그것을 좌우한다고 믿는게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를 알게 만든다.

 

11. 그리고 도둑들

 

350. 극단적인 경우 PKK가 나를 인질로 잡아 몸값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위험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신발을 빼앗기 위해 나를 죽이려는 미친 사람 때문에 생기는 위험을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350. 하지만 나도 그들처럼 온몸이 햇볕에 그을렸고 또 그들처럼 누더기를 입었다. 그들이 건초더미를 지고 힘겨워하듯 나도 내 짐의 무게에 매일 짓눌리고 있다.

 

350. 내가 대표하는 것은 유럽이라는 곳이 지닌 풍요, 즉 자동차와 보석과 맥도날드와 화려한 스타들이다. 숨길 것 하나 없는 내 배낭을 두고 그들은 수천가지의 보물을 상상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동차가 몇 대인지, 수입이 얼마인지를 물었고, 늘 그 값어치에 대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여행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므로.....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들은 진귀한 물건이 가득 담긴 봇짐을 진 낙타들의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아왔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긴 하지만 내 등에도 짐이 있는건 사실이다. 보물에 대한 그들의 상상은 거기서 비롯한 것이리라.

어쩔수 없는 부분이다.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비롯되는.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인이라면 동경의 대상이듯이 터키인들에게 그럴 것이다.

 

351.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나는 혼자 온 걸 후회했다. 피곤하기도 했고 전날 밤을 꼬박 새웠음에도 나는 아주 늦게야 잠이 들었고, 심란한 마음에 뒤척이다가 네 시간 만에 깨어났다.

 

352. 물론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그들도 멋진 여행을 하고 있으며,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거기까지다. 자전거 위에서 텐트 속에서 그들이 보는 것은 그 지방의 일부, 결국 풍경일뿐이다. 같은 언어를 쓰며 텐트 속에서 잠을 자는 그들은 도둑에 대한 걱정은 나보다 덜하겠지만, 마을 사람들과는 거의 교류하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을 발견하고, 나는 몸소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직면한다.

 

374.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남자가 멀리 있을 때 여자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그렇다.

 

12. 고원의 고독

 

377. 나는 온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다. 날씨도 내 기분 같았다..... 눈 앞에 전날 만난 말 탄 남자와 신을 끈트로 묶은 도둑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란 여행에 대한 근심까지 보태져서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모든 어려움을 부풀려 생각했다.

 

378. 무사히 도착할 가망이 점점 희박해진다면 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쨌든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나는 금전욕이라든가 경쟁심 때문에 이 모험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은퇴한 이후 편안한 삶은 보장되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나톨리아에서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게 돌을 던지거나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378.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던 일이지만, 험난한 길을 갈 때면 나를 탐색하고 나 자신과 겨루기 위해서 나를 잃어간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내가 떠나기 전에 친구 조제가 이번 여행이 자신과 벌이는 일 대 일 싸움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바로 지금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379. 그런데 걷는 것의 경이로움이 일상의 기적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근육에 열이 나고 담즙이 마르고 분노가 얼어붙으면서 말이다. 두 시간 동안 걸어가 아리 마을의 지붕 아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379. 조금 낙관적으로 본다면, 내 여행이 그다지 암울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세 번이나 강도를 만났지만 세 번 보두 무사히 빠져나올수 있었다.

 

379. 내가 이곳에 있는 것과 내가 목표한 곳에 도달할 가능성에 대하여 생기는 의문의 답으로, 콤프스텔라 길에 관해 모니카가 했던 대답을 상기한다. 모니크는 나와 반대로 종교 차원에서 순례길에 나선 여자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더 나은 명분을 갖고 있어요. 사도 야고보의 유골함을 만지는 것이 당신에게는 의미있는 목표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신자가 아닌 내게 콤프스텔라의 대성당은 아무 의미도 없다오.” 그러자 모니크가 대답했다. 하지만 콤프스텔라라는 목표는 당신뿐만 아니라 내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니까요.”

 

380. 길이라...... 내가 지금 따라가는 여정보다 더 근사하고 신비로운 길이 있을까? 세상 어디에서 내가 이처럼 2000년이 넘는 동안 나보다 먼저 아나톨리아의 이 거친 길을 같던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갔던 길을 내가 가고 있으며, 그들이 겪은 위험 역시 내가 겪는 위험이다.

 

381. 우정과 사랑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비밀스런 연금술의 결과이며, 꼭 오래 지내봐야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든 사람은 순례를 하면 변한다고들 한다. 나의 쿠르드와 터키인 친구들이여, 형제애로 맺어진 순례자들여, 나는 그대들에 대한 기억과 그대들의 작별인사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가련다.

 

385. 나는 오잘란 사건에 대해 쿠르드인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가지 사항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PKK의 폭력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385. 반면에 모두들 예외 없이 오잘란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들의 대통령이에요.” 이것이 내가 가장 자주 들은 말이었다. 오잘란 사건은 끊임없이 터키 정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군대와 터키 시민들은 대부분 그의 죽음을 요구했다. 하지만 쿠르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을 오잘란과 동일시했다.

 

394. 그는 일년 중 석달 만 일해서 일년간 먹을 빵을 얻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396. 배와 머리 사이의 투쟁은 불균등한 것이었다. 괴로워하는 창자의 활동이 어떤 생각보다도 우위에 있다.

 

398. 터키의 오랜 적은 그리스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405. 나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약해진 자신을 비웃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나는 천하무적이었다. 발이 감염됐어도, 강행군과 창칼에도, 벼랑에서 추락할 뻔했을 때도 터키와 쿠르드와의 강도도, 군인들에게도 저항했다. 그런데 지금 내장을 갉아먹는 미생물들에게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공포를 잊게 해주는 것은 유머라고 했던가. 그러나 지금 내게는 함께할 동반자가 필요했다. 혼자서 형편없는 내 창자를 다시 붙들고 있는 기분은 우울힐 뿐이었다.

 

406.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약국은 50미터 거리에 있었다. 첫 번째 기적이었다. 그곳은 분명 아나톨리아를 통틀어 영어를 할 줄 아는 약사가 있는 유일한 약국일 것이다. 두 번째 기적은 그가 치료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 방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복용부터 약은 효과가 있었고, 설사가 줄어들었다. 그제야 좀 쉴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마침내 아라라트 산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13. 큰 고통의 산

 

421.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평소 고통을 잘 견디는 편이었다. 그러나 배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429. 늙어감에 따라 생기는 어려움은 대부분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 생긴다. 그리고 이런 신체의 증상들 중 무엇도 그 자체로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저하되는 시력, 잘 구부러지지 않는 무릎, 고질적인 신경통, 빠지고 세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 관절염....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최후의 거처로 인도하는 고통스러운 여정에 수시로 출몰하는 이러한 사소한 병들 말이다. 중단된 내 여행의 비망록에 나는 전투계획을 끄적거린다. “파리로 돌아가서 즉시 수술을 받는다. 두 달 후 다시 떠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첫눈과 추위가 찾아오기 전에 산을 떠나기 위해 915일 경에는 반드시 출발한다. 해발 2200미터에서는 눈이 일찍 오기 때문이다. 10월말이나 늦어도 115일에는 테헤란에 도착한다.”

 

431. 나는 내 체력을 과신했다. ? 노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아직도 젊은이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선 나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이유가 전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해도 그럴수 있다.

항상 남자들은 자기의 나이를 잊어 먹는다. 그러다가 한순간 깨닫는다.

 

431. 중국까지 가기 위한 에너지와 인내심은 아직 충분하다. 이 긴 여정, 이 고독한 여행 안에는 떠나는 삶과 다가오는 죽음이 있다. 삶에는 아직 쟁취할 승리가 남아 있다. 결국에 죽음이 이길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기다리면서 나는 죽음을 비웃어 준다. 그리고 나는 12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여행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432. “일흔 살이 되니 힘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힘을 이용해 내게 아주 중요한 몇 가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답니다. 올해는 콤프스텔라 길, 내년엔 몽블랑 등정, 이런 식으로 말이죠.”

 

432. 나는 중국까지 가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을의 작은 묘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페넬로프를 위해 나는 그곳에서 돌아올 것이다. 그 다음에 또 내가 할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이 여행을 준비하고 실현하는 것은 환상의 브레인 스토밍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터키에서 거쳐온 1700킬로미터를 통틀어 그리고 이 시의적절하지 않은 중단이 예상치 못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 여행은 여전히 경탄할 만한 일이다.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에르주름대학에 이르기까지 나는 친절한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만났으며 아직도 그들에게 매혹돼 있다. 풍부한 역사를 지닌 이 땅을 걷는 것이 나를 세계와 화해하게 해주었다.

 

433. 이들 모두는 신화와 현실 사이에 존재하며 내 발걸음과 생각 하나하나마다 나를 따라다녔다.

 

433. 나는 풍요로운 과거의 유산을 간직한 이 땅에 매료된 반면, 현재의 터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아타튀르크와 함께했던 혁명은 실패했고, 극심한 빈부격차와 도처에 존재하는 종교 문제 탓에 폐쇄된 사회가 되어 침잠해 있다.

 

433. 오늘날 터키는 이 나라가 위치한 동양과 이 나라가 소속하기를 원하는 서양 사이에 적절히 나뉘어 있다. 유럽에 대한 이끌림, 보수적 사회, 극단적 국수주의, 야만적인 군사 전통과 종교적 자폐 상태와 같은 무수한 모순 사이에서 사분오열돼 있다.

 

435. 오잘란을 처형하지 않은 것과 19998월에 끔찍한 지진이 이즈미트 지방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그리스와 화해 했던 일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이유가 된다.

 

435. 나는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우선 민감한 탓에 가난한 사람들이 무시하는 과거를 찾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유복한 서양인인 나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버리려 한다.

 

436. 이 여행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나는 내가 변한 것이 없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불현 듯 영원의 개념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무척 거창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게 펼쳐진 아나톨리아의 거대한 초원은 이러한 몽상에 적합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신성함을 가까이 하는 데 전념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있다. 내가 끊임없이 그래왔던 대로 원하는 것, 목표에 가까이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해본다면, 무한의문은 우리 앞에 더욱 빠르게 열리리라.

 

436. 이 모든 고독한 나날들이 지나고 나는 노력과 시련, 예외적인 일들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을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금욕주의자인 나는 내가 바라 마지 않았던 쾌락주의를 또다시 이겼다. 진정한 느림은 포기를 내포한다. 나는 나를 많이 포기하지 않았다. 떠나기 직전부터 나는 모든 것을 계획해놓았다. 진행단계, 멈출 곳, 찾아갈 곳 등등...... 이제 나는 도우바야지트와 사마르칸트 사이의 일정표를 짜지 않기로 결심했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분석)

여행관련 책의 목차는 정해져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느낀 다양한 감정을 분리해서 적는 방법,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에 관한 시선을 적는 방법 그리고 이 책처럼 일련의 여행일정에 따라 기술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의 실크로도를 걸어서 여행하는 방식이므로 어쩌면 이렇게 밖에 목차를 구성할 수 없을 것이고 가장 최적의 방법이다. 각 코스별로 순서있게 진행을 하되 거기에서 느낀 최고의 경험을 소제목으로 했다.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등 등)

 

편집자의 글에서와 같이 사진을 안 싣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오직 길만이 중요하고 걸어갔던 길이 전부임을 내세우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각각의 길에서 묘사한 사람들과 찍었던 풍광이 보고 싶다.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 등)

 

뻔하디 뻔한 여행 책이라 생각했지만 읽는 내내 내가 마치 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너무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하는 저자가 부럽고 부럽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은 여유롭고 좋은 풍경과 깨끗한 숙소 등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행해진다. 그러나 저자가 하는 여행 아니 이건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옛날 실크로드의 대상으로 중국 시안까지 가는 현대판 견문록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실크로드 길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생명을 위협을 느끼는 상황, 혹독한 신체의 고난 등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똑같이는 못하지만 경주에서 서울까지 아들과 같이 걸어 가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긴다.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저자의 눈으로-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저자는 여행 내내 글을 시간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를 잘 해 주었다. 어떻게 이런 기억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쓸수 있었을까? 아마도 배낭에 있는 노트가 답이겠지만 그렇게 힘든 일정 속에서 어떻게 기록들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 노트를 만약 잃어버리거나 도둑에게 빼앗겼다면 이런 책도 나올수 없을 것이다. 그런 보완책으로 인터넷 카페가 되는 곳에서는 초고를 보내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지만 그런 노하우를 별도로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여행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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