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정승훈
  • 조회 수 140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7년 11월 26일 00시 10분 등록

그림자(113째주)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이부영(1932~ )

서울대학교 의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시작하였다. 1977년 정년퇴임했다.

 

저가가 정신과에 입문하게 된 배경은 인터뷰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중학교 다닐 때는 문예평론을 하려 했다. 전쟁 나고 혼란통이 되니 주변에서 만류를 했다. 두 번째는 타협해서 건축을 하려했는데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의과대 시험을 쳤다. 별 재미를 못 느끼며 의과대학을 다녔고 밤낮으로 소설만 읽으며 딴짓을 했다. 정신과 실습을 나갔는데 황량해서 이건 지옥이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가 싫다고 마구 날뛰고 도망가면 누르고는 뭘 이마에 대로 그런 후에 EST(경련)를 일으키는 것을 봤다. 이건 절대로 안 한다고 생각했다. 다 선량한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때 눈으로는 뭐가 좀 이상해보였다. 안과를 하며 글을 쓸까 하다가 정신과의 황양함에 결정을 하였다. ‘이 황무지를 내가 개척하자!’ 그때 선배들에겐 미안하지만 분명 황무지였다.”

 

“1959년엔 인턴 들어갈 때 전공을 정해서 스트레이트 인턴이라 불렀다. 정신치료를 배우고 싶었는데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고 책을 보고 혼자 해보려 했지만 도저히 안 디겠다 싶었다. 유학의 꿈이 보편화 되어있던 시대였다. 주로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Mental Mechanism 등을 열심히 배웠으나 내가 기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넌 이것에 불과하다는 식의 이론으로 느껴졌다.“

처음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배우며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접하게 된 계기도 이야기 한다. ‘우연처럼다가왔다고 느낀 저자, 나 역시 배움의 기회는 항상 우연처럼 왔기에 낯설지 않다.

 

어느 날, 타임지에서 실존분석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 ‘이것이야말로 공부할 만한 분야다.’ 인간이 기계가 아니고 자유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란느 이야기에 희망을 가졌다. 식민지 교육을 받아 일본어를 알아서 독일어에서 번역된 책을 읽었고 유럽에 가서 이걸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루드비히 빈스방거의 정신분열증이라는 좋은 책이 있다. ‘와 멋있다라고 생각했다. ‘환자를 이렇게도 정의할 수가 있구나!’ ‘정신분열병의 현존재분석적 해석이란 증서를 썼는데 모르는 것을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정신치료를 할 생각으로 분석심리학은 석사 논문을 쓰며 참고했다. 너무 복잡하고 꿈을 왜 이렇게 해석하는지 몰랐는데 당연히 처음 읽고 이해하진 못했다. ’심리학과 종교를 어떻게 바로 이해할 수 있겠나?’ 당시엔 그냥 인용만 하면서 프로이트보다 뭔가 넓긴한데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스위스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고 융 연구소에서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융 연구소에 갔을 땐 융이 돌아가신지 몇 달이 지난 뒤였다고 한다. 문교부에서 지체하는 바람에 몇 달이 늦어졌는데 밥이라도 사서 일찍 갔으면 악수라도 하지 않았겠나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는 저자의 인터뷰는 영상을 보며 아쉬움을 본다.

프로이트에서 채워지지 못한 것들을 융을 만나면서 해결했을 것 같다. 자신의 생각과 같았던 것들을 보며 얼마나 반가웠을까.

 

1966년 스위스 추리히 융 연구소를 수료, 융학파 분석가 자격을 취득하고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이 되었다. 독일 및 스위스 등 각지 정신병원에서 수련 및 근무하였으며, 귀국 후 서울대학교 의대 신경정신과 주임교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장을 지냈다. 그 밖에도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1977년 서울대학교에서 정년 퇴임 후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분석심리학 전문수련기관인 한국융연구원을 설립 현재 운영 중이다.

 

한국 융학파의 태두로서 한국에 분석심리학의 씨앗을 뿌리고 분석심리학이 하나의 분과 학문이자 정통한 정신치료술의 하나로 인식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1차적으로는 당연히 환자의 치료에 있겠으나, 학문적 성취가 깊어짐에 따라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 나타나는 다양한 상징 체계를 해석하고 그를 통해 한국인의 집단무의식 세계를 해명하는 일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동안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단행본 중에서는 분석심리학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심층을 밝혀보려는 의도를 가진 '분석심리학 3부작'이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외 한국의 민담을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을 탐구한 한국 민담의 심층분석도 주목할 만한 책이다.

 

현재 제대로 된 융 선집을 출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있는데, 번역에 충실을 기하기 위해 해마다 한권씩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작업이 완성되는 날 한국인도 비로소 융의 세계를 좀 더 직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분쉬의학상을 비롯하여 국내외 많은 상을 받았으며, 융 기본 저작집(9, 솔 출판사)을 비롯한 여러 책을 번역하였으며, 분석심리학에 관련한 다수의 책을 저술하였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좀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한 위험은 인간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큰 위험인데도 우리는 너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모릅니다. 아는 게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모든 재앙의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23)

융이 이런 말도 했구나. 인간이 유일한 위험이라는 융의 생각에 동감이다.

모든 재앙의 근원이 인간에게 있다고 한 융은 사실 인간의 마음속에서 그 재앙의 근원뿐 아니라 이른바 구원의 근원도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동양의 전통 속에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이었다. ‘그림자의 인식은 인간이 전체정신을 실현하는 자기실현의 첫걸음이다. (25)

융도 그렇고 철학자들도 그렇고 동양에서 답을 구한 사람들이 꽤 많다. 어쩜 동양은 근원적인 생각들이 깔려있어 받아들이기도 쉬운 것 같다.

 

1장 마음의 세계와 그림자

1. 마음의 세계

아는 마음과 모르는 마음

우리는 나와 남이 모두 가지고 있으나 평소에 모르고 지내는 속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이나마 시인하는 것이다. (30)

 

무의식의 발견

외향화된 서양 근대문명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모르고 있는 마음의 세계에 주목한 것이 유럽의 정신의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들은 일찍이 시인과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그 모르는 마음의 존재를 그들의 작품과 사상에서 암시하여온 낭만주의 사조의 흐름을 이어받은 과학자들이다. (30)

유럽 과학자들이 이런 사조의 영향을 받았구나.

경험심리학은 경험하는 주체의 인격의 특성, 그의 관점과 태도, 경험의 폭과 깊이에 따라 각기 다른 가설에 도달할 수 있는 만큼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 특히 이들의 무의식에 관한 견해는 자연히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31)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관

융은 더 나아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2)

융 자서전에서 융과 프로이트가 서로 달랐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융의 무의식관은 무의식이 자율성을 가진 창조적 조정능력을 지니 것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33)

더욱이 자율성과 창조성을 인정하고 무의식이 의식의 자아와는 다른 완전한 객체정신이라는 학설을 제창한 것은 융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융의 분석심리학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 (34)

 

마음의 구조와 기능

의식과 무의식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특성과 기능에 따라 의식계에서는 ’(Ich, ego)를 볼 수 있고 무의식계에는 그림자’ ‘아니마’(Anima) 또는 아니무스’(Animus) ‘자기’(self)라 부르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 (34)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의식이 내일의 무의식이 될 수 있고 혹은 무의식이 의식의 내용으로 바뀔 수 있다. (37)

무의식은 자아의식이 외곬으로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의식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의 이미지를 활발히 보내서 그것을 보상한다. (39)

보통 꿈으로 나타나는 건가 보다. 그럼 난 왜 계속 학교에 가는 꿈을 꾸는 걸까. 배움에 대한 욕구가 아직도 채워지지 않았나.

자기인식의 작업을 소홀히 하면 할수록 무의식의 보상작용의 강도가 높아지고 무의식의 과보상은 결국 의식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거나 교란시켜 노이로제의 증상이나 생리적 이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40)

그림자는 본래 의식에 가까운 개인적인 무의식의 내용이다. 그래서 그림자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될 때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나와 같은 성의 대상에 투사되며 거기서 그는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본다. (41)

아니마는 독일어의 제엘레(Seele, 심령)에서, 아니무스는 가이스트(Geist, 심혼)에서 빌려온 라틴어 용어이다. 제엘레니 가이스트니 하는 말이 가리키듯 그것은 우리 마음 속의 혼과 같은 것이다. (43)

현실적으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내적 인격의 표현은 남성에서는 주로 기분(mood)으로, 여성에서는 의견(opinion)으로 나타난다. (44)

 

심리학적 유형

심리학적 유형설은 융의 초기학설에 속한다. 이는 융 자신과 프로이트와의 관계, 프로이트 학설에 일찍부터 반대하여 그를 떠난 아들러와 프로이트와의 관계 등, 인간관계에서의 갈등과 견해차이가 왜 일어나는가 하는 회의를 계기로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의 의식. 무의식의 관찰을 통한 융 자신의 체험내용을 살피고 인류의 정신사에 반영된 유형과 이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를 거울삼아 만든 가설이다. (48)

MBTI를 말하는 건가보다. 이런 과정 중에 생겨난 것이었구나.

모든 정신기능을 가능한 한 골고루 발전시킨다는 것은 전체정신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열등기능의 의식화 그것이 중요하다. (51)

나는 외형적 감정(EN)이 우세한 기능이다.

 

2. 마음의 세계에서 차지하는 그림자의 자리

물론 자기실현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고 해서 그림자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다시는 그림자의 의식화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한 그림자는 만들어지게 마련이고 그림자문제는 계속된다. (53)

겉보기에는 열등한 그림자 속에 또한 창조와 성숙의 씨앗이 있다는 점을 융은 강조하고 있다. (53)

열등기능은 우월기능의 그림자라고 할 만한 것이다. (54)

우열의 개념은 이젠 어디서나 없어지지 않았나. 그저 다를 뿐.

 

2장 그림자의 원시적 관념과 분석심리학적 개념

1. 살아 있는 그림자 원시심성과 민속에 표현된 그림자

원시인에게 살아 있는 그림자

어떻게 보면 원시종족은 우리가 오늘날 무의식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듯하다. (57)

흔히 그(야만인)는 그의 그림자나 영상을 그의 영혼이라고 보거나 어쨌든 자신의 살아 있는 부분으로 간주했으며 그런 만큼 그것은 그에게 위험의 근원이기도 했다. (58)

 

그림자의 주술

그림자는 주술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예를 들면 그림자 주인의 성격에 어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 죽은 자, 장모, 전쟁터에서 돌아온 오렴된 전사, 애도하는 자 등의 그림자는 매우 위험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60)

장모는 왜? 여자라서?

사람뿐 아니라 나무의 그림자도 종류에 따라 좋고 나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물건의 그림자도 좋고 나쁜 마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61)

참 그림자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있었구나. 그저 빛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일 뿐인데…….

 

그림자 없는 존재

귀신들은 신체가 없으므로 오직 그림자만 볼 수 있다는 것도 널리 퍼져 있는 생각인데 다른 한편 귀령의 세계에 속하는 존재는 그림자가 없다는 관념도 많이 발견된다. (63)

 

생명의 정수로서의 그림자

생명의 정수로서의 이 그림자 속에 있다는 믿음은 호주 타스마니아 섬,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등지에 퍼져 있다. (64)

이렇게 광범위하다면 전 세계라고 봐야겠다.

 

한자어권의 그림자 용법

영은 어떤 형체의 그림자뿐 아니라 거울이나 물에 비친 영상, 초상, 가상, 허깨비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66)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그림자와의 분리, 또는 소실은 죽음을 말한다는 생각은 분석심리학의 그림자 개념과 비슷한 데가 있다. (68)

동양의 민간에서 말하는 그림자 없는 존재란 오랜 수련 끝에 해탈하여 투명해진 사람, 그림자를 남김없이 의식화한 사람이며 그림자를 억압하여 완벽한 도덕군자처럼 행동하는, 그림자로부터 분열된 자아상과는 다른 것이다. (70)

그림자 없는 존재가 해탈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처음 알았다.

 

2. 그림자의 분석심리학적 개념

그림자의 정의

그림자는 자아콤플렉스의 어두운, 아직 살지 못한, 억압된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단지 부분적으로 타당할 뿐이다. (71)

무의식을 보는 첫 단계의 시작에서 그림자란 내가 직접 모르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신화학적인 이름일 따름이다. (72)

융은 여러 곳에서 그림자는 일차적으로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서 무의식의 의식화에서 비교적 쉽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러나 원형으로서의 그림자는 꿰뚫어보기가 어렵다는 말을 함으로써 그림자 개념이 개인적 무의식뿐 아니라 집단적 무의식에도 적용됨을 명시하였다. (72)

융의 집단 무의식의 개념은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각 시대별, 나라별 집단 무의식이 작용한다.

 

실체로서의 그림자 그림자를 잃은 사람들

우리는 우리 그림자의 측면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문명된 사회에는 그림자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 그림자를 제거해 버린 사람들이 많다. (75)

융의 그림자 개념은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이원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고 고정된 죽은 개념도 아니며, 불변의 심리적 조건도 아닐뿐더러 움직이고 변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실체이다. (77)

 

그림자에 대한 인식

그림자에 관해서도 융은 언제나 그림자의 개념과 함께 그 의식화, 그 인식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78)

우리는 계속 우리가 이것이라는 것, 우리가 저것이라는 것, 또는 그밖의 다른 것임을 발견하고 때로는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을 한다. 이것은 바로 언제나 거기에 아직 무의식적인 우리 인격의 한 부분이 있다는 것, 그것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우리는 미완성이라는 것, 우리는 자라고 변화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79)

그럼 올 한 해 내가 이것이라고, 저것이라고 발견한 것들이 모두 그림자 속에 있던 것들을 발견한 것일까.

억압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분명치 않다. 어떤 사람은 단지 겁쟁이어서 그렇게 하고, 다른 사람은 인습적인 도덕규범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은 남의 평판 때문에 억압한다. (80)

모두 작용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인습적인 도덕규범과 사회적 체면을 중시한다.

 

상대악 또는 절대악으로서의 그림자

융은 [아이온]에서도 겉보기에 낮고 열등한 성격을 띠는 그림자가 사실은 창조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81)

의식에서 억압되어 이루어진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서의 그림자는 이른바 크게 해롭지 않고 의식화하여 분화된 태도로 변화할 수 있는 상대악이다. 그러나 절대악이라 부를 만한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적 그림자는 다른 원형과 마찬가지로 의식이 그것을 수용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만큼 엄청난 파괴력과 무자비함과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81)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적 그림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림자는 자신의 인격의 부정적 측면이므로 쉽게 남에게 투사되어 자신 속에는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되므로 투사를 거두는 데 상당한 저항을 보이는 것이다. (82)

그림자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개인적 무의식에 억압된, 앞으로 의식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열등한 인격의 한 측면이다. (85)

 

3장 그림자의 투사현상 그림자는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가

1. 그림자의 투사현상

그림자의 이미지

만일 당신의 친구 중 한 사람이 당신의 결점을 비난할 때 마음속에 심한 분노가 끓어오른 것을 느낀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당신 그림자의 일부를 발견할 것이다. (89)

맞다. 나의 결점을 들어도 화가 나거나 기분 나쁘지 않다. 그저 인정하면 된다. 그럼 나의 그림자가 아닌 것일까.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버럭 화부터 내는 것은 우리 무의식의 아픈 곳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며 아픈 곳이란 곧 격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무의식의 콤플렉스인 것이다. (90)

그림자를 보고 그림자를 의식화하려면 무의식의 표현인 꿈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 (90)

나쁜 것은 남에게만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괴로운 마음을 피하려는 자기방어의 수단으로서 뿐 아니라 자기의 무의식적인 마음의 일부를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목적으로도 투사현상이 일어난다. (91)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투사가 얼마나 많을까. 그걸 의식하는 과정이 그래서 중요한가보다.

어떤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공연히’ ‘알 수 없는거북한 느낌, 불편한 감정, 혐오감, 경멸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분명 그곳에는 무의식의 투사가 일어나고 있고 대개 그 내용은 자아의 그림자에 해당한다. (92)

그럼 그 불편한 사람의 모습을 잘 봐야 나의 그림자를 인식할 수 있겠다.

 

투사현상의 특징

투사가 일어났을 때 자아는 그 대상에 대하여 초연해질 수도 무관심할 수도 없다. 이것이 투사현상의 특징이다. (93)

 

그림자의 투사와 거룩한 분노

거룩한 분노는 오직 개인적인 그림자의 투사를 거두고 자기자신의 전체정신과 일치된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94)

거룩한 분노는 남의 죄를 단죄하기 전에 자기의 잘못을 먼저 반성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95)

내 책의 주제인 학교폭력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그래서 거룩한 분노가 아니다. 성인으로, 사회의 기성세대로서 본보기가 되지 못하고 제도적으로 안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잘못에 대한 반성이 없이 단죄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를 송두리째 파괴한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문화인 처단도 그림자의 집단투사를 바탕으로 빚어진 사건이다. (95)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그림자의 문제

사람들 사이의 오해는 항상 무의식적 투사에서 비롯된다. (96)

그림자란 대개 모든 면에서 열등한 성격측면이므로 도덕적으로 열등한 경향을 띠고 있다. (97)

청소년문제를 다를 때 부모들의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97)

그럼 결국 부모의 의식과 무의식이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괴테 작 [파우스트]에서 철학자 파우스트의 잔시중을 들면서 스승의 말을 하나하나 암기하고 있는 와그너는 그러한 그림자의 하나이다. (99)

항상 개인보다 사회 또는 국가를 생각하는 이들 외향형의 사람들도 무의식의 그림자의 영향을 받아 때로는 본래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유치하고 완고하며 독선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가 있다. (104)

외향형의 사람들이 이런 특징이 있구나. 나의 책임테마와 외향형이 만나니 사회에 대해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구나.

특히 비합리적 기능을 합리적 기능과 똑같이 중요한 것으로 본 융의 심리학적 유형설은 현대교육이 잃어버린 매우 중요한 측면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6)

이 책에서 설명하는 유형설은 그동안 알고 있던 MBTI와는 전혀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외향적 감정형은 쾌활하며 남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환경에서 누구나 느낄 만한 보편적인 감정가치에 입각하여 표현한다. (108)

내가 외향적 감정형이다. 설명을 보니 맞는 것 같다.

판단과 행동을 결정할 마지막 근거는 역시 감정에 있다. (109)

감각형 중 특히 외향적 감각형은 행사의 프로그램을 명확하게 만들고 회의진행도 매우 매끄럽게 한다. 발표 때도 시청각기구를 적당히 이용하고 시간도 정확히 잘 맞추고 설명도 요령 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111)

이런 것이 외향적 감각형에 해당되다니.

열등기능은 우월기능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없다. 열등기능을 살리려면 우월기능을 잠시 억제해야 한다. 사고는 감정에, 감정은 사고에, 직관은 감각에 감각은 직관에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는 열등기능을 아주 없애버리기 보다 전체정신을 어느 정도 실현하여 완전한 인격이 아닌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이다. (115)

 

정치적. 시대적 사건 속의 그림자상

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존재였다. 대중매체는 그것을 만들어 제공하고 사람들을 흥분시키며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를 조장하기도 한다. (116)

또 이러한 투사는 자신의 잘못을 보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치유의 효과마저 있다. (116)

아하~ 이래서 사람들이 비난을 하는 구나.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보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기가 성찰한 인간의 약한 마음을 근거로 부패방지를 위한 각종 법률적 조치를 만들 것이며 부패할 수도, 부패할 필요도 없도록 사회적 조건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한 조건은 실천하기에 알맞은 조건이어서 실현성 또한 매우 높을 것이다. (117)

부패방지가 아니라 학교폭력 방지라는 단어를 넣어도 말이 된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모두 약한 존재가 된다. 건전한 윤리적 책임감을 가진 사람도 집단 속에 파묻히면 책임감이 느슨해지며 결국 다른 사람처럼 타락한 폭도’ ‘무자비한 망나니가 될 수 있다. 집단 속에서 집단적 무의식의 파괴적 세계에 전염되는 것이다. (120)

독일의 경우에는 복종을 강조하는 사회교육의 결과 빚어진 독일인 특유의 집단적 성향이 그 토대가 되었다. (122)

e 지식채널 영상에 독일교육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온다.

그들은 스스로 권력을 탐하였듯이 질서를 탐하였다. 그밖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 그는 인간이 가진 온갖 열등성의 가장 놀랄 만한 인격화였다. (125)

모든 독일인이 히틀러 속에서 자신의 그림자, 자신에게 처한 최악의 위험을 보아야 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125)

대학원시절에 유대인에 관한 연구를 해볼까 했었다. 유대인들을 보며 궁금한 점들이 많았었다.

마녀는 높은 정신적 경건성과 도덕적 금욕주의를 표방하던 중세의 신앙 깊은 사람들의 무의식에서 의식의 일방성을 보상하기를 기다려온 본능적 충동의 표현이었다. (127)

하긴 이전의 카톨릭은 너무도 금욕적이다 못해 자학적이다. 근검절약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본성과는 반대된 것이기에 투사는 더욱 극명했을 것이다.

그림자의 강력한 투사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변환의 바로 직전에 일어날 수 있다. (129)

사람이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싸우고 죽은 숫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것보다 많을 것이라고 융은 말한 적이 있다. (131)

서방에서 볼 때 소련은 세계를 붉게 물들이려 하는 의 괴수인 반면 서방은 의 수호자였다. 그러나 소련 동맹국측에서 보면 미국은 타락한 자본주의자, 세계지배의 흑심을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자였다. (132)

낯선 것은 배척의 대상이 되지만 그 마음 뒤에는 전염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 내부의 일본인 그림자, ‘왜놈그림자를 인식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동화하여 의식의 면화를 일으키면서도 자아의식은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모르는 장님과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집단적 그림자는 인식과 의식적인 통합이 필요한 것이다. (136)

객관적으로 보아도 스위스에 접경한 중남부 독일인은 외향적이고 독일어권 스위스인은 무척 내향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자기의 열등한 내향성과 열등한 외향성을 투사하고 있는 것 같다. (137)

민족적 기질로만 생각했지 유형을 투사한 것으로는 보지 못했다.

이렇게 열등기능이 의식에 떠오를 즈음 사람들은 자기의 열등한 면을 보기를 꺼리고 그것을 상대방에 투사해서 상대방이 가진 장점을 깎아내리려 한다. (138)

시기 질투라고 하는 거 아닌가.

낮은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은 인간의 열등한 인격부분의 특성을 이룬다. (139)

동양인은 말이 분명치 않고, 얼굴에 표정이 없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속을 모를 사람이라고 혐오하는 서구인이 교양인 중에도 아직 있는 것을 보면 황색인종의 그림자를 가진 백인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139)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정적 감정이다. 우리도 동남아시아인, 흑인에 대해 부정적 감정이 있다. 정욱이 다문화에 관한 책을 쓰려면 이것도 다루어야 할 거다.

지역감정이라는 용어와 그 부정적 의미로 해서 지역감정의 해결은 어렵다. ... 왜냐하면 지역공동체는 인간들의 확대가족과 같은 것이고 확대가족은 상호유대와 화목을 지향하기 때문에 지역정서를 만들게 마련인 것이다. (140)

문제는 지역정서가 문화의 향유를 중심으로 발전하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지에 의해 오용되어 다른 지역문화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조장한 데 있다. (142)

인간은 아마도 어딘가에 검은 양을 두지 않고는 못 배기는 동물인 듯하다는 것이다. (142)

그림자의 투사는 흔희 우리가 가진 성격의 일부와 일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림자의 투사는 편견에 찬 것이지만 그로부터 우리는 우리 마음 속 진실의 일부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143)

 

2. 꿈에 나타난 그림자의 현상

융의 꿈의 사례 중에서

꿈은 의식의 일방성을 지양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합쳐진 전체성에 가까운 자세를 갖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145)

 

한국인 피분석자의 꿈에 나타난 그림자상

정치지도자의 등장은 청년들의 무의식에 잠재된 권력 콤플렉스에의 집착과 관계가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148)

한국인의 그림자상으로 과거에 가장 흔하게 나타났고 현재도 더러 나타나고 있는 집단적 그림자상은 무엇보다도 북한군 또는 북한이라는 지역이다. (149)

한번도 북한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없는데…….

주복할 것은 정치선동의 목적으로 역대 군사정부가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를 조장해온 데 대한 반작용으로 북한에 대한 순진한 감상적 호감이 일어나는 경향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50)

투사에 입각한 비판은 비난과 비방이나, 혹은 지나친 영합과 개인적 편애의 독소를 품고 있다. 올바른 비판이란 자기성찰을 토대로 한 현실인식에 바탕에 둔 것이다. (151)

나 역시 점검해야 하는 부분이다. 과연 가해자의 부모로 겪은 걸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융은 심리적 상처를 입은 충격적인 사건은 반복적으로 꿈에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였다. (151)

일정한 꿈의 유형에 대한 지금까지의 설명을 규격화해서 비슷한 꿈의 내용을 해석하는 데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151)

그렇다. 시중에 꿈 해석에 관한 책을 봐도 내 꿈과는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결론은 자신의 경험과 상황 등에 비추어 본인이 찾아야 한다는 거네.

활 쏘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도의 전일성을 표현한다. 양극의 팽팽한 긴장과 조정을 통하여 목표인 중앙을 관통하는 것을 지향하는 활 쏘기는 정신적 대극의 긴장을 거쳐 마음의 중심에 이르는 자기실현의 목표를 표현할 때 매우 알맞은 상징이 될 수 있다. (159)

활 쏘기가 이런 의미를 가지는 줄 몰랐다. 예전에 비교문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상징사전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다. 모든 상징은 의미하는 바가 있다. 쉽지 않다.

3. 정신병리현상과 그림자

왜 이런 정신적 해리현상이 일어나는가. 대개 의식에서 억압된 콤플렉스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무의식의 여러 콤플렉스가 의식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165)

억압된 것은 결국 올라오게 되어 있는데, 그땐 억압이 많이 될수록 크게 올라온다.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자아로 페르조나가 극단적으로 동일시되면 될수록 자아의식과 무의식의 교류는 단절된다. 그리되면 의식의 해리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166)

사회집단이 요구하는 규격화된 태도와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자기의 내면세계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내버려두게 된다. (166)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런 면이 있었다. 변경연 과정을 하며 나를 들여다보면서 알게 됐다. 그래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그림자 없는 사람, 그림자 없는 가정

이들 그림자 없는 사람은 위선자이거나 이중인격자, 또는 각종 노이로제를 일으킬 조건 아래 있는 사람이다. ...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노이로제가 되지는 않는다. 자기에게 그림자 따위는 없다고 자처할 때, 그림자가 자기 속에 있는데 보지 않으려 할 때 그것이 노이로제의 온상이 된다. (167)

그림자 그 자체는 살아 있는 인간에게 인간다움이나 인간의 실체성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림자를 인식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168)

그림자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자신이 인식하느냐와 못하느냐의 차이는 크다.

 

우월기능을 가진 그림자와 그 정신증상

그림자는 승화하는 것이 아니고 표현을 통해서 통합할 수 있는 것이다. (170)

 

그림자의 원형과 정신병

환자의 자아가 원형층의 강력한 콤플렉스에 의하여 분열되어 있어 바깥 현실과 꿈의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신화적 체험을 제대로 소화시킬 만한 자아의 통합능력에 장애가 있는 것이다. (171)

 

정신요법과 그림자 투사

이와 같이 평범치 않은, 신과 같은 혹은 악마와 같은 상을 치료자에게 투사하여 이에 반응하는 현상을 원형적 전이라고 부른다. (176)

치료자 쪽에서도 환자에 대해서 거꾸로 이유 없이 좋고 싫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 감정의 뿌리에 치료자 자신이 과거에 겪은 부모와 이에 비길 만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체험한 감정체험이 있을 때 이를 환자에 대한 역전이라 부른다. (176)

내담자에게 역전이가 생겨 개인적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문제시한다. 윤리적 문제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결혼까지 한 사람이 있다.

역전이가 있더라도 치료자는 환자에게 투사하지 않도록 훈련되어 있어서 곧 이를 발견하고 처리할 수 있지만 환자의 경우는 쉽지 않다. (177)

 

4장 분석과 그림자의 인식과정

1. 그림자 인식의 어려움

그림자는 그저 통상적으로 교육될 수 없습니다. 결혼 생활에서조차 부부간에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그림자를 서로 멀리 떼어놓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가리켜 인격의 통합이라고 말합니다.” (182)

그림자의 인식과 의식화가 그림자의 투사를 삼가고 자신의 그림자를 용인하는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림자의 의식화에는 저 찬장 속의 해골을 내놓고 진지하게 그 처리를 고민하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183)

왜 그냥 인식해서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되나. 그렇게 되기도 힘든데…….

억제하면 억제할수록 커지는 동물은 민담의 보편적인 주제이다. (187)

물론 앞에서도 말한 대로 고통스러운 체험은 어떤 사람에게는 커다란 깨우침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190)

 

2. 그림자의 의식화 과정

자아의식이 싫어하는 성향이 자기 마음 속에 있다는 지적은 대개 저항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건 다른 뜻일 게다 하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193)

나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항이 생기는 감정에 대해 더 들여다봐야 한다.

그림자의 인식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고 자기 마음 속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인한다고 해도 아직 그림자의 의식화가 완수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도 자기가 남을 비난하는 성격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이것만 해도 큰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비난의 화살이 이제는 밖에서 안으로 와야 할 차례이고 최소한 그는 남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무디게 함으로써 그림자의 부질없는 상호투사를 종식시키는 데 첫 번째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193)

기억하자.

그림자가 개인의 의식된 삶에 실체화되는 정도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의 그림자는 더욱 검고 더욱 진하며, 열등성이 의식화되면 그것을 교정할 기회가 생긴다.” (195)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자신 속에 있는 것의 성질을 수용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196)

나는 뭐가 있을까. 잘난 척하는 것,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 이런 것이 결국 나에게도 있는 성질이라는 것이겠지.

분석심리학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노이로제에 걸린 많은 환자, 또는 그러한 고통 속에 있는 환자 아닌 환자들이 분리된 인격을 통합하고 하나의 전체정신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림자의 의도적 표현을 권장하는 것이다. (197)

사람에 따라서는 그림자와 완전히 동화되어 일부러 못된 행동만 골라서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행태를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8)

못된 행동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그림자와 완전 동화되면 그럴 수 있는 거구나.

대상에 대한 그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부감은 항상 대상을 잘 모를 때, 대상에 자기의 무의식적 내용이 투사되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201)

어쨌든 거부감이 드는 사람은 나의 그림자건 열등한 면이건 건드리는 것이다.

밝은 것을 상상한다고 밝아지지 않는다. 어둠을 의식화함으로써 밝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쾌하고 그래서 인기가 없다. (211)

 

5장 그림자의 문화적 대응양식

1. 민속문화 속의 그림자와 그 표현

여러 가지 그림자 의례

인간집단은 집단행동을 통하여 집단적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이를 다른 집단에 투사하여 서로 반목하고 서로 비난하며 싸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림자를 사회표면으로 끌어내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경험하게 하는 문화적 장치를 가지고 있다. (215)

호남에서 욕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된 것은 그림자의 문화적 표현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220)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계속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왕따현상과 관련한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인간사회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인간끼리의 이합집산, 반목과 패거리지음의 일반적인 현상마저 대중매체나 전문가들의 개념해석에 의하여 왕따라는 이름의 특수현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새로운 현대판 그림자 의례를 정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221)

 

무속에서 본 그림자의 상징과 그 처리

우리 나라의 민간신앙으로 한국문화 기층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무속은 원시적 주술종교로서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 개념에 비유할 만한 관념을 보여주고 또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고안해냈다. (222)

원시적 주술종교를 대체할 만한 것이 없어서 그림자가 더 생겨났을까. 예절이라는 것이 결국 본능과는 대비되는 것이니 어쩜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무속은 특히 우리가 보통 잊으려 하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과거의 역사 속에 있었던 한과 고통을 죽은 자의 고통으로서 이승으로 불러옴으로써 이승의 사람과 저승의 혼을 만나게 한다. 잊혀져가는 한과 고통을 불러일으켜 다시금 살게 하는 혼과의 대화, ‘넋두리는 무의식 속에 억압된 그밖의 깊이 상처 입은 마음을 의식계로 환기시켜 재체험하는 현대의 분석적 정신요법과 비슷한 데가 있다. (225)

치료자원형을 나타내는 의신 역시 양면을 가지고 있다. 신화학자 케레니가 그리스 신화의 의신, 아스클레피우스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말한 대로 병을 치료하는 신은 또한 죽음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227)

무속이 가진 귀령관에 따라 이외 다른 것 때문이라는 사고방식이 있다. ‘은 늘 적의를 품고 있고 재앙의 원천이 된다. (228)

남 탓하는 것이 이렇게도 해석이 되는구나. 남 탓하는 걸 부정적으로만 봤는데…….

무엇보다도 무속은 마음에 관한 한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 투사는 마음의 안과 밖을 구분짓는 심층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인데 무속에서는 밖이 곧 안이고 안이 곧 밖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29)

문제는 어떤 학설, 어떤 치료술, 어떤 질병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한계성을 보지 못한 채 그 유일 절대성을 믿고 일체 그밖의 것을 배격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230)

어떤 의미에서 무속은 기독교계 광신집단의 마귀론처럼 짙은 그림자를 만들지는 않는다. 무당들은 때로는 상당히 융통성이 있고 현실적인 처방을 내리고 현대의학에 대해서도 안수기도의 치유능력을 신봉하는 기독교계 성직자보다 포용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보고된 적도 있다. (231)

무속이라는 그림자가 해소되면서 온 사회가 무속화하고 있다. 무속 그 자체는 한편으로는 순수한 전통문화를 지키는 문화재로, 전통예술로, 다른 한편으로는 선무당의 창궐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238)

 

2. 옛날 이야기 속의 그림자상과 그 문제의 해결

민족들의 문화배경이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나 발견되는 이야기의 핵은 비교신화학적 연구에서 추출되는 신화소와 같은 것이다. 분석심리학은 그것을 우리 마음 속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의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239)

그래서 융에서 출발하고 캠벨로 이어졌다. 세계에 똑같이 존재하는 신화와 옛이야기들이 있다. 콩쥐팥쥐, 신데렐라를 봐도 그렇다.

 

흥부와 놀부 등 선악의 짝에 관한 이야기

선은 끝까지 선하고 악은 끝까지 악하여 선을 괴롭힌다. 그리고 결국은 초월적인 힘에 의하여 악은 파멸하고 응징되며 선은 크게 보상을 받는다. 권선징악을 목적으로 하는 이야기라 그 결말은 간단하다. (240)

한국의 드라마들의 공통점이다. 악역은 끝까지 악하다. 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이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른데, 외국 드라마 판권을 사서 드라마하면 이 부분에서 불편하게 여긴다.

인생에서 우리는 많은 나쁜사람을 만난다.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주었다는 것, 그 핍박의 시련이 우리가 좀더 원숙한 사람이 되고, 좀더 강한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43)

그렇긴 하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으며 나를 돌아본다.

 

장수설화

우리의 장수설화는 모두 비극으로 끝난다. (244)

이야기에서 아들은 기존질서를 새롭게 할 안트로포스, 영웅원형의 상이었던 것이다. 의식의 면에서 보면 그것은 의식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의식의 그림자, 구원자로서의 가능성을 안은 그림자이다. (244)

아기장수 우투리 설화는 일제강점기엔 감춰진 옛이야기였다. 전국에 걸쳐 있었던 구전설화를 전승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진짜와 가짜

민간신앙은 문명사회가 하찮은 것이라고 버리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손톱, 발톱은 원시신앙에서 발끝과 손끝으로 흘러나온 정기를 담고 있는 것이라 본다. (246)

진짜가 자신의 것을 잘 챙겨야 하는데 열등하다고 버리면 가짜가 그것을 이용해 진짜와 맞서려고 한다는 것이다. (247)

 

그림자원형 이야기

그림자원형은 이야기 속에서 지상의 권력에 배치되는 지하계 왕국의 지배자, [지하국대적설화]에 나오는 도둑귀신, 또는 [지네장처설화]처럼 지상의 괴물로서 지역에 재앙을 일으키는 악으로 표현된다. (248)

악한 마음이 일 때는 그 마음과 직접 용감하게 대결해서 이기는 방법도 있지만 평소에 선한 마음을 키워서 악한 것을 이겨내는 방법도 있다. (251)

그래서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것인가 보다.

 

우리 민담에서의 악의 처리법

그림자원형은 우리가 말하는 악한 것’(the evil)의 문제와 당연히 결부된다. 왜냐하면 의식은 어떤 문화를 막론하고 선을 장려하기 때문에 악의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을 여러 모습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251)

사람은 선과 악이 같이 있다. 선을 장려하고 악을 억압하니 악이 그림자로 나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착하게 행동해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등의 이야기는 결국 선을 장려하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은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생길 것이고 그것이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사회성을 배워야하는 아이들에게 맘에 들지 않은 친구도 잘 지내보려고 노력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부모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어두운 그림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드라마에서 권선징악이 현실과는 다르다. 선이 오히려 손해 보는 세상이 판을 친다. 그렇기에 더욱 영화, 드라마에서 선이 승리하길 바라는 걸까. 현대의 드라마, 영화가 과거의 민담이다.

영웅에게는 항상 대자(對者)가 있어 영웅의 힘을 시험하듯이 또한 그러한 도전을 거치지 않고 영웅이 영웅다울 수 없다. (254)

영웅에게 고난은 필수다.

빛과 어둠이 서로 떨어져 있던 두 측면은 아니마를 통해서 만나게 된다. 자아의식이 무의식을 소홀히 하면 그림자가 아니마를 감싸버려서 아니마를 인식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 그림자를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그림자에 오염되어 분간하기 어려웠던 아니마가 드러나서 인식하기 쉬워진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 (255)

 

3. 그림자와 종교사상

모든 고등종교는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융은 각 고등종교가 최고의 것으로 지향하는 상징들, , 그리스도, 불성 속에서 자기원형의 상징을 발견하였다. 종교는 결코 프로이트가 본 것처럼 본질적으로 소아의 강박신경증 같은 것, 마르크스가 주장한 아편과 같은 것이 아니고 종교적 인류로서의 인간의 마음의 근원에서 생겨난 것이며 의식으로 하여금 자아를 넘는 커다란 신화적 원형층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기실현에 기여한다고 융은 보았다. (258)

6줄인데 단 2문장이다. 이런 글은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나 역시 이랬다. 중요한 내용인데 호흡이 너무 길다.

일차적으로는 종파의 가치체계에 대한 인간집단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 예컨대 기독교나 유교 본래의 정신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의 공리적 목적, 권력욕, 신경증적 의존심을 채우는 데 맹목적으로 이용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기자신을 인식하지 않으려는 병적인 저항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259)

기독교와 그림자의 문제

현대인의 정신에서 산출되는 4위성은 직접 내적인 신뿐 아니라 또한 신과 인간의 동질성을 제시하고 있다. 도그마와는 반대로 여기에는 셋이 아니고 네 측면이 있다. 네 번째가 마귀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추론할 것이다. (260)

융다운 말이다. 기독교에선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본래 성서에는 형제로 되어 있는 부분을 마음 속에 있는 형제, 즉 그림자, 즉 자기자신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262)

~ 이렇게 생각하니 융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문명국가치고 하층계급이 의견의 충돌에서 오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지 않은 나라가 없다고 융은 말했다. 그런데 그 해결은 어떤 법적인 조치나 인공적인 개혁으로 되지 않으며 오직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해소된다고 하였다. (263)

맞는 말이다. 하지만 태도의 변화 전에 의식의 변화가 먼저다. 그런데 의식의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법적인 조치와 함께 진행해야 한다. 책으로, 강연으로 의식의 변화를 꾀하고 정책으로 제도적 방편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마귀가 구약성서 [욥기]에서는 신의 아들 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심지어 야훼의 신임자였으며 [요한계시록]에 예수의 그림자로 볼 수 있는 상이 있으나 사탄의 창조자인 반기독과 같은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는 융의 주장을 확인할 뿐이다. (264)

욥기와 요한계시록을 읽어 봐야겠다.

이러한 움직임이 11세기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믿음을 막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신이 아니라 마귀가 세계를 창조했다는 믿음이었다. (265)

이런 믿음이 유럽에서 있었다니 놀랍다.

이것은 14, 15세기의 이단 박멸운동을 통해 다소 진정되다가 종교개혁과 함께 사탄의 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265)

서구에선 기독교라는 종교가 워낙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모든 면에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보니 반대급부라고 할 수 있는 사탄도 역시 중요한 거다.

모든 선은 신으로부터, 모든 악은 인간으로부터. 마귀는 심리학에 매이게 되었다.“ (266)

위에서도 암시되어 있듯이 융은 마귀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심리학으로 환원한 것이 아니라 마귀의 형이상학이 흔들리게 된 배경이 인간들의 무의식적 요구에 있고 그것이 빚게 된 심리적인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 인간 심성, 특히 그림자의 개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마귀의 심리학적 측면, 우리 마음 안의 마귀라 일컬어지는 열등한 인격을 외면하지 말고 직면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267)

아마도 보다 강한 서양인의 감정발달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한 듯하다고 말하면서 그는 동양에서는 서양과 달리 신상의 그러한 양분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267)

맞는 말인 것 같다.

 

동양종교와 그림자의 인식

마음의 어두운 구석, 즉 무의식을 들여다보고자 하지 않는 자는 요가가 약속하는 목표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서구인이 요가수행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268)

얼마 전 모임에서 참가자 한명이 요가를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좋았다고 했지만 경험이 없는 나로선 잘 모르겠더라.

윤리적 딜레마가 우리를 우리의 그림자로부터 분리한다. 인도의 정신은 자연에서 자란다. 우리의 정신은 자연에 항거하고 있다.” (269)

나는 공자의 그림자, 혹은 논어에 나타난 유교문화의 그림자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 첫째는 여자와 소인이다.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 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271)

나도 논어를 읽으며 불편했던 내용이다. 다른 것은 그렇게 포용적이면서 유독 여자와 소인에 대해선 이렇게 대놓고 비난했다.

여자와 소인을 중국의 하녀나 머슴을 일컫는다고 하지만(하략)

~ 하녀와 머슴을 말하는 거였구나.

기독교가 지고선의 하나님으로부터 악의 원리인 마귀를 선의 결여로 무시하면서 떼어버리고 진지한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음으로써 여러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하여 인류가 엄청난 악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공자가 간과한, 혹은 무시한 비합리적인 세계와 악의 세계가 결코 선의 강조만으로 통제될 수 없음을 역사는 증명해 왔던 것이다. (273)

선을 지향하고 하나의 마음을 지향할 때 대극의 분열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 점을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집착하지 말기를 권장하고 언제나 전체를 보도록 강조한다. (274)

의식의 그림자에 휩싸여 있는 상태, 즉 무의식성을 말한다. 다른 말로 맹목성이다. (277)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자기실현의 잠재력이 그 마음의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278)

요즘 새롭게 시작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결코 범죄자를 옹호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어찌보면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하게 된 주인공이 교도소를 재집처럼 드나드는 청년의 어머님 수술비를 몰래 대주고 덕분에 살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은 감사하다는 말조차 할 줄 모르는 지경에 이른 자신을 눈물로 고백한다. 그 장면을 보며 사람은 누구나 자기실현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막 살아온 사람조차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있는 거다. 이건 누구나 같다. 지난주에 들은 비폭력 대화의 강사가 한 화해권고에서 양측 부모님들을 만나 항상 합의를 하게 했다면서 부모로서 자녀의 안전에 대한 욕구는 가해자, 피해자 모두 같다는 것으로 접근하면 된다고 했다. 내 책도 그렇게 접근할 것이다.

나는 내가 소유하고 행하고 체험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탈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 때, 그것을 하였을 때, 내가 전적으로 헌신하며 전적으로 참여하였을 때라야만 가능한 것이다.” (282)

융은 직접 체험한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독교도 말로만 듣고 무조건 믿으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우연히 경험함으로 종교도 믿게 되었던 사람이다.

자기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않기 위하여 항상 이 사람 저 사람 남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도와준다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현대인이 얼마나 많은가? 사회활동이 상식적으로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목적이 자기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실시된다면 위선이며 진실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다. (284)

이 구절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나 역시 혹시 이렇지 않은가 의문을 가져본다.

그림자는 빛과 함께 전체상 속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전체상인 도는 환한 빛이 아니라 부드러운 빛이다. (288)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전진하는 도는 후퇴하는 것 같고 평탄한 길은 기복이 있는 것 같고 최상의 덕은 골짜기처럼 빈 것 같고 썩 흰 것은 검은 것같이 보이고 큰 덕은 부족한 것 같고’ (289)

의식화과정은 무의식을 의식화하고자 하는 자아의 결단과 성실한 의도가 있을 때 촉진될 수 있다. (292)

물은 곧 살아서 작요하는 무의식의 상징이다. (293)

이런 걸보면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일맥상통한다. 도덕경의 물의 의미와도 같다.

어떠한 밝음도 강함도 경계하였던 노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음양합도의 위대한 과업을 완수하는 도는 결코 스스로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296)

학문이란 것을 없애버린다면 인간에게 근심은 없어질 것이다. (296)

나도 동의한다.

학문을 하면 할수록 도에서 멀어진다고 했다. 지적 분석과 논리적 설명은 전체성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이성과 합리주의는 정신 구조의 반을 차지할 뿐이다. (297)

생각이란 단순한 지적 작업은 아니다. 직관과 감각과 감정이 유리되지 않은 정신작용의 총집중일 수 있다. (298)

모든 형태의 외로움 뒤에 도의 드러내지 않는 지혜가 숨어 있음을. (298)

 

맺음말

그림자라는 말은 융이 시적. 문학적 언어로 무의식의 한 부분을 가리키기 위해 고른 말이다. 그러므로 개념상으로도 그것이 가리키는 부분은 때로는 좁고, 때로는 넓고 다양한 측면을 포괄한다. (299)

동양은 그림자와의 맞대결 없이 그림자를 뛰어넘는 지혜를 가르쳐 왔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그림자의 투사를 공허한 것으로 부정해버린 것이다. (300)

동양의 전통적 사고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하며 서양의 이름으로 들이닥친 자기내부의 그림자를 보는 사람만이 이 변화의 의미를 알고 이 변화를 창조적인 통합으로 이끌 수 있다. (300)

우리가 객체를 모르면 모를수록 투사는 강해지고 편견은 망상으로 변화게 된다. 우리가 상대방을 모르면 모를수록 부정적인 그림자뿐 아니라 긍정적이며 이상화된 그림자를 상대방에 투사하여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볼 수 없게 된다.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이나 지나치게 백안시하고 위험시하는 것이나 다같이 일방적이고 전체상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301)

맞다. 모르기 때문에 오해도 한다. 하지만 알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관심이다. 최소한의 관심이 있어야 알려고 하는데 그것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상대도 있다. 아마 다문화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이럴 거다. 어쩜 학교폭력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내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관심조차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그림자를 통찰하지 않으면 집단적 투사는 해결되지 않고 집단의 성숙은 기대할 수 없다. (302)

학교폭력을 집단적 그림자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일까. 책에 넣으면 비약이 되려나. 아마 누구나 인정할만한 근거로 접근해야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기말의 불안을 말하고 미래세계의 불확실성을 말한다. 그런 건 없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은 세계도 우주도 인류도 아니다. 자기의 마음이다. (302)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1장 마음의 세계와 그림자, 2장 그림자의 원시적 관념과 분석심리학적 개념, 3장 그림자의 투사현상, 4장 분석과 그림자의 인식과정, 5장 그림자의 문화적 대응양식

이론에서 출발해서 심제 사례를 보여주고, 사회적, 문화적 그림자에 대해 넓혀갔다. 목차의 순서는 잘 되었다. 옛이야기와 민담의 접근은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인지 깊이 있게 접근하지 못했고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와의 공통점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웠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3장에 유형설인 MBTI 내용이 나온다. MBTI를 모르면서 읽기에는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이다. MBTI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먼저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꿈에 관한 사례가 너무 많고 비슷한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 좀 삭제해도 좋겠다.

3. 이 책의 장점

융의 이론 자체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융의 이론을 한국에 적용해서 풀어냈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집단의식이나 한국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그림자의 개념을 쉽게 썼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융의 이론이고 꿈의 해석에 대해 많은 비중을 다루고 있는데, 상징에 대한 것을 따로 소개하겠다. 중간 중간 소는 어떤 의미이며, 활 쏘기는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상징을 소개하면 직접 다루지 않은 꿈이라도 나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옛이야기와 민담부분인 5장은 관심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저자의 글을 추천하겠다. 비교문학을 전공한 김환희 교수의 옛이야기에 관한 책이 있다.

 

연구논문이 아닌 대중서적이니 만큼 쉽고 흥미라는 요소도 필요하다. 내가 저자라면 그 부분에 좀더 고민하겠다.

IP *.124.22.18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32 #35 인생수업 (정승훈) [2] 정승훈 2017.12.10 1317
4831 #34 무경계(No Boundary):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_이수정 알로하 2017.12.04 1454
4830 #34. 무경계 - 경계인에서 자유인으로 file [2] ggumdream 2017.12.04 1423
4829 무경계 디오니송스 2017.12.04 1372
4828 (켄 윌버) 무경계 - 나는 우주 속에 퍼진 무지개다 file [3] 보따리아 2017.12.04 3004
4827 #34 무경계 (윤정욱) file [2] 윤정욱 2017.12.04 2596
4826 #34 무경계 (이정학) [1] 모닝 2017.12.03 1313
4825 #34 무경계 뚱냥이 2017.12.03 1300
4824 #34 무경계 (정승훈) 정승훈 2017.12.02 4653
4823 #33. 그림자 [1] ggumdream 2017.11.27 1298
4822 #33 그림자: 우리 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_이수정 알로하 2017.11.27 18042
4821 #33 그림자 디오니송스 2017.11.27 1376
4820 #33 그림자 뚱냥이 2017.11.27 1295
4819 (이부영) 그림자 - 황량한 사막만이 있을 뿐, 황량한 인생이란 없다 file 보따리아 2017.11.27 1547
4818 #33 그림자 - 내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이정학) 모닝 2017.11.27 1321
4817 #33 그림자 (윤정욱) 윤정욱 2017.11.26 1328
» #33 그림자 (정승훈) 정승훈 2017.11.26 1404
4815 #32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_이수정 [1] 알로하 2017.11.21 1535
4814 (존 브래드 쇼)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 부끄러운 아이에서 놀라운 아이로 file 보따리아 2017.11.21 1363
4813 #32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 디오니송스 2017.11.21 1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