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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7일 11시 54분 등록

저자 연구

이부영(李符永: 1932.03.25 ~ )

한국 융 연구원 원장. 한국 분석심리학계의 선구자로 불린다.

서울대 의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거친 후 스위스에 가서 융 연구소를 수료하여 융학파의 분석가 자격을 얻었다. 1977년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로 일했고 정신과 주임교수, 서울대학병원 신경정신과 과장, 뉴욕대학의료원 대우 교수,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석좌 교수 등을 역임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한국분석심리학회, 동아시아 문화정신의학회 등 여러 학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분석심리학의 전문수련기관인 한국 융연구원을 설립해서 원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분석심리학>, <한국민담의 심층분석>, <한국사상의 원천>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 <현대의 신화>, <C. G. Jung의 회상, , 그리고 사상>, <현대의 신화>,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 등이 있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머리말

23 “~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한 위험은 인간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큰 위험인데도 우리는 너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모릅니다. 아는 게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모든 재앙의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동의한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더 크게 동의하게 되었다. 최근의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인간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적다.

 

제1장     마음의 세계와 그림자

1.     마음의 세계

아는 마음과 모르는 마음

30 어떤 사람에게는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는 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외향적인 서양인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사랑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말하지 않은 감정, 말하지 않은 마음은 주목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되풀이해서 아이 러브 유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대체로 마음과 마음이 말없이도 통한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비언어적 소통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말 뒤에 숨은 뜻을 생각하고 말없는 깊은 마음을 존중해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이나 남의 속마음을 항상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레짐작으로 잘못 판단하고 오래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서양인 뿐이 아닐텐데동양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겉으로 표현하고 말을 해야 알지 않나?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공감 능력이 떨어지거나 눈치가 없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 안해도 알거라고 생각해서 얼마나 많이 오해하고 쓸데 없이 맘 상하고 싸웠던가. 제 맘대로 해석해서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무의식의 발견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관

31 프로이트가 처음 환자들 가운데서 발견한 무의식의 내용은 현실의 도덕규범과 맞지 않아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억압된 여러 가지 충동이었다. 특히 억압된 성적 욕구와 유아적 충동, 여기에 더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감독 기능을 하는 부분이 무의식 속에서 발견되었다. 프로이트는 처음에는 억압된 성적 욕구를 무의식의 주된 특성으로 여겼으나 뒷날에는 삶의 본능’ ‘죽음의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의 욕구와 파괴적 욕구의 양면이 무의식의 충동을 이룬다고 보았다.

 

33 융의 무의식관은 무의식이 자율성을 가진 창조적 조정능력을 지닌 것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다. 또한 인간의 원초적 행동유형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고 보는 집단적 무의식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의식의 뿌리를 이루며 정신생활의 원천이라고 보는 만큼, 진화의 흔적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생각과는 크게 다르다.

융이 말한 무의식의 자율성이 이거였다. 이렇게 해석을 보니까 훨씬 잘 이해된다.

 

마음의 구조와 기능

36 우리는 태어나면서 곧바로 나를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갓난아이에게도 나와 비슷한 지각과 반응과 표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인식의 주체라기 보다 무의식적 형태 속에 가려진 잠재력의 한 표현이다. 태어날 때 우리는 무의식상태에 있다. 무의식에서 가 탄생한다. 무의식 속에 나의 싹이 있고 그것은 아이가 자라면서 싹트고 성장한다. 그러므로 나에는 극히 미약한 지각상태에서 고도의 의식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수준이 있다.

자라면서 나는 사회생활 속에서 취해야 할 일반적인 행동규범을 배운다.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 일정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자아의식을 강화하고 그 영역을 넓히며, 이로써 의식과 무의식계의 대립과 긴장이 일어나게 된다.

 

36 집단사회의 행동규범 또는 역할을 분석심리학에서 페르조나’(Persona: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할 때 쓰던 가면)라 부른다. 그것은 집단정신에서 빌려온 판단과 행동의 틀이다. 집단이 개체에 요구하는 도리, 본분, 역할, 사회적 의무에 해당하는 것, 그 집단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할 여러 유형이다. ‘페르조나를 배우고 여러 종류의 페르조나를 번갈아 쓰면서 사회 속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페르조나는 어떤 일정 사회집단에만 통용되는 화폐나 지페와 같은 것으로 그 집단 밖에서는 인정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인간의 보편적, 원초적 행동유형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페르조나가 이런 거였구나. 나는 지금까지 반대의 의미로 알고 있었다. 페르소나를 가장 많이 접한 건 영화배우와 감독의 관계에서이다. 그동안은 배우가 연기를 하는 캐릭터가 감독의 자아일 경우, 그 자아를 페르소나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도 있지만 잘못 표현한 기자들도 많은 것 같은데

 

38 그러나 사람은 물론 그러한 종교적 수행이나 무의식의 분석작업을 하지 않아도 무의식을 깨달아 나갈 수 있다. 그것은 무의식 자체가 그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그 자체의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서 의식을 자극하여 무의식을 깨닫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결코 범상한 생각이 아니다. ~

그러나 무의식은 자아가 무의식을 경시하고 그것과의 대면을 피할 때, 자아로 하여금 그것을 보지 않을 수 없도록 자극함으로써 무의식의 경향을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자아에게 준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가 무수히 겪고 지나가야 하는 시련, 고통, 갈등, 절망, 상실의 아픔이 자기성찰의 귀중한 기회이며 성숙에의 의미 있는 고통이듯이 우리는 언제나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창조적 자극의 영향 아래 있고 때로는 그것이 고통스런 체험, 심지어 신체적, 정신적 병고의 시련으로 표현된다. 자아가 그 고통의 의미를 알아차리느냐 모르고 지나가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자아의 문제이다.

 

39 무의식은 자아의식이 외곬으로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의식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의 이미지를 활발히 보내서 그것을 보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이성적인 남자의 꿈속에서 그로 하여금 매우 비합리한 행동을 하게 하거나 평소와는 달리 열렬한 사랑을 나누게 만든다. 혹은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의 꿈에서 깃발을 들고 데모행진의 선두를 달리는 영웅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욕구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식의 일방성을 깨우치고 의식이 소홀히 하고 잇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무의식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41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그것은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아의식이 한쪽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림자는 그만큼 반대편 극단을 나타낸다.

그림자는 본래 의식에 가까운 개인적인 무의식의 내용이다. 그래서 그림자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될 때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나와 같은 성()의 대상에 투사되며 거기서 그는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본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L, 최모씨, S 언니, 이름모를 아줌마 등등. 많다.

내가 싫어했던 그들의 모습이 사실은 나의 부족한 모습열등한 성격일지도 모른다니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44 내적 인격, 아니마, 아니무스는 우리가 그 존재를 인식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면 다른 모든 무의식의 내용처럼 미숙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아니마, 아니무스의 부정적 작용을 목격하게 되는데 남성에서는 남자다운 남자의 변덕스러운 기분과 짜증 섞인 잔소리로, 여성에서는 융통성 없는, 따지는 버릇으로 표현된다.

 

45 많은 원형 중 가장 핵심적인 것,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로운 통합을 위해 스스로 조정하고 질서 지우는 우리 정신의 내적인 방향타(方向舵)이며, 나침반이며 고등종교에서 최고의 신, 최고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의 상징, 마치 태양계의 많은 혹성의 배열을 결정하며 운행을 조정하는 알 수 없는 궁극의 원리 같은 것 그것이 자기 원형이다. 한마디로 융은 인간무의식 속에서 하느님과 같은 신상(神像)을 발견한 것이다. 하느님이 하늘 위의 빛나는 왕좌에 계시고 안 계시고는 심리학의 한계를 넘는 형이상학의 물음이니 심리학자가 여기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인간들이 신이라 부르는 대상에 해당되는 것이 발견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47 원형이란 지리적, 인종적 차이, 문화, 시대사조의 차이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인간행태의 원초적 조건이다. 그러므로 자기원형이란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 그 사람의 마음을 통일하여 숨은 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도록 하는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 캠벨, 에니어그램, 구본형, 이부영, 신화….. 결국 이렇게 다 연결이 되는 구나.

 

47 무의식은 궁극적으로 무의식적이다. 자아가 전일(全一)의 경지인 자기의 경지에 근접할 수는 있으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언제나 자아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곳에는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실현을 통해서 완전한 인간(volkommener Mensch)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vollstandiger Mensch)이 되는 것이다. 끝없는 무의식 앞에서 자아가 취해야 할 겸허한 마음의 자세를 암시하는 융의 이와 같은 견해는 선불교에서의 해탈의 선언과는 다소 그 모습을 달리한다.

 

심리학적 유형

50 융의 유형론의 묘미는 그것으로 어떤 인간을 어떤 유형에 명확하게 분류하는 것에 있지 않고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의식의 전제와 무의식의 투사현상을 성찰하고 정신의 내면세계를 살펴나가는 그 모색의 과정에 있다. ~ 심리학적 유형에 관한 검사도구를 이용하여 연구할 수도 잇고 이를 자기인식의 참고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사결과로 그 사람의 진정한 개성을 알 수는 없을뿐더러 안다고 자만하는 것은 자기실현에 도움이 안 된다.

 

51 무의식의 열등기능은 의식에 대한 보상작용을 일으켜 의식을 자극하여 의식의 일방성을 제지한다. 혹은 그것은 외계로 투사된다. 그 보상작용의 정도가 적절한 경우에는 열등기능이 의식계로 떠올라 활성화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균형 있는 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잇다. 열등기능이 외계로 투사되면 그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향형은 외향형더러 속에 든 것 없이 겉치레만 좋아한다고 흉보고, 회향형은 내향형을 고집불통의 독선가, 비현실적인 이상론자라고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열등기능을 찾아서 그것을 살리고 발전시키면 그것은 이미 열등기능임을 그친다. 그리고 모든 정신기능을 가능한 한 골고루 발전시킨다는 것은 전체정신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열등기능의 의식화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자기실현이 상당히 진행되면 각 유형간의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 이를테면 내향성을 존중하는 외향형이, 또는 외향성을 발휘할 줄 아는 내향형이 된다.

융의 책에서 무의식 부분을 읽을 때, 왜 무의식을 찾아서 의식화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갔었는데,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융을 다시 읽어야 하는 건가? 헛 읽었던 것 같다.

 

2.     마음의 세계에서 차지하는 그림자의 자리

52 그림자는 의식에 가까이 있으면서 자아가 모르고 있는 무의식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우리가 무의식을 의식화하면서,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으나 모르고 있는 인격부분을 깨달아가면서 성숙해 가는 과정, 즉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무의식의 요소이다. 그것은 성숙한 마음에 이른 첫 관문에 버티고 있는 수문장이다.

우리는 그 험악한, 비굴한, 또는 야비한 자신의 그림자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여 도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자기실현의 길로 들어설 수 없다. 용기를 가지고 그림자를 대면하고 이를 통과하고 지나가야 비로소 자기실현의 다음 과제인 아니마, 아니무스를 아니무스를 의식화할 수 있는 조건이 다소라도 생길 수 있다.

모르고 살아도 된다면 그냥 모른 채로 살고 싶다. 나야말로 나의 그림자 안의 험악하고 비굴하고 야비한 내 모습을 보고 기겁하여 도망칠 것 같다.

 

53 살아 있는 한 그림자는 만들어지게 마련이고 그림자문제는 계속된다. 다만 그림자는 인식하기가 비교적 쉽고 자기인식의 첫걸음이기 때문에 무의식의 다른 내용에 앞서 그림자문제부터 다루게 되는 것이다.

 

53 정신의 전체성이란 빛과 그림자의 융합으로 이루어진다. 겉보기에는 열등한 그림자 속에 또한 창조와 성숙의 씨앗이 있다는 점을 융은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그림자는 상대악적(相對惡的) 위치에 있어 그것이 의식화하여 의식에 동화할 때 그것은 분화하여 창조적 기능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자를 의식화해 나가노라면 우리 정신의 어둡고 밝은 면을 모두 다루게 될 것이다.

 

54 그림자는 바다 표면 가까이 뜬 해초와 같으나 일단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정신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보배, 또는 비밀을 건드리게 된다.

 

제2장     그림자의 원시적 관념과 분석심리학적 개념

1.     살아 있는 그림자 원시심성과 민속에 표현된 그림자

원시인에게 살아 있는 그림자

57 분석심리학에서 그림자 이미지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무시할 수 없고 의식화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그림자로서 그것은 원시 종족의 그림자관과 맥을 같이 한다. 어떻게 보면 원시종족은 우리가 오늘날 무의식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듯하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정령관(아니미즘)에 따라 다른 구체적인 언어로 인지한 것이다. ~

흔히 그(야만인)는 그의 그림자나 영상을 그의 영혼이라고 보거나 어쨌든 자신의 살아 있는 부분으로 간주했으며 그런 만큼 그것은 그에게 위험의 근원이기도 했다.

 

58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림자가 없거나 아주 희미한 그림자를 가진 사람은 곧 죽는다고 생각한다. ~

말라야의 다도해 사람들은 그림자가 무덤, 나무, 기타 혼이 살고 있는 대상에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것들이 그림자를 흡수해서 그림자의 임자를 죽음으로 이끈다고 믿기 때문이다. ~ 고대 아라비아에서는 하이에나가 사람의 그림자를 밟으면 사람의 말하고 움직이는 힘을 빼앗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이렇게 그림자는 사람이나 짐승의 살아있는 부분이며 그들의 생명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전설 같은 무서운 이야기들도 많고 이런 전설이나 괴담을 바탕으로 한 공포 영화도 많다. 어느 특정 지역의 전설인 줄 알았는데, 세계의 많은 지역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집단 무의식의 하나라고 하지만 신기하다.

 

59 적도(赤道)에 가까운 과거 홀란드령이더너 암보이나(Amboyna) 섬과 율리에이스(Uliase) 섬에서는 한낮에 그림자가 없어지거나 매우 짧은데 이곳 사람들은 대낮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혼의 그림자를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말레이반도에서도 대낮에 죽은 자를 묻는 것을 금한다. 이 시각에는 그림자가 작아져서 사람들이 단명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

서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은 네 개의 영혼을 가지는데 그 중 하나가 그림자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그림자의 영혼을 잃지 않으려면 대낮에는 그늘에 있어야 한다. 영혼은 해가 진 뒤에는 쉬고 아침에는 새로운 힘을 가지고 나온다.

적도에 가까운 열대 지역에서 한 낮에 밖에 나가면 너무 더워서 열사병에 걸릴까봐 못 나가게 하려고 이런 말을 지어내서 퍼뜨린걸까? 창조적이긴 하다.

 

그림자의 주술

60 그림자에 접촉하면 해를 입을 수 잇다는 것도 원시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생각이다. 슈스왑(Shuswap) 인디언은 상()을 당한 사람의 그림자가 다른 사람 몸에 던져지면 그 사람이 병을 앓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그림자에게 징벌을 가함으로써 속죄를 하게 하는 그림자배상(Schattenbube)도 성행하였고 그림자가 밟힌 사람은 제외되는 아이들의 그림자놀이가 남부 독일에 남아 있었다.

나도 어렸을 적에 그림자 밟기 놀이 했던 것 같은데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겠지.

 

61 터키 사람들에게는 그대의 그림자가 결코 적어지지 말고 결코 그대로부터 떠나지 말지어다라는 인사말이 있는가 하면 그대는 이제부터 어떤 그림자도 던져서는 안 된다는 저주의 말도 있다.

 

미묘체로서의 그림자

62 북부 캐나다의 인디언들은 죽을 때 그림자와 영혼이 나누어지고 둘다 신체를 떠난다고 믿는다. ~

남부 아메리카 인디언은 대부분 그림자’ ‘영혼’ ‘초상(肖像)’을 하나의 말로 표현한다. 중앙아시아 야쿠트족(Yakut)은 그림자를 인간 세계의 영혼의 하나로 본다. 그림자는 존중되며 아이들을 그림자와 놀지 못하게 한다. 퉁구스족(Tungus)은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밟는 것을 피한다. 영혼을 악마에게 판 사람은 그 또는 그녀의 그림자를 잃는다.

 

그림자 없는 존재

63 성인(聖人)은 그림자를 던지는 법이 없다. ~ 빛이 든 성소(聖所)는 빛의 기원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빛 밑에 놓인 것만은 그림자를 던진다. 죽은 자는 그림자가 없다는 믿음이 있는가 하면 죽은 자는 오직 그림자로서만 관측된다는 믿음이 고대 그리스뿐 아니라 유대, 중국, 헝가리, 미국의 원주민에게서 발견된다.

 

64 중국문헌에서 발견되는 그림자의 결여란 세 가지 방식으로 설명된다. 몸의 정화(淨化)가 이루어져 투명해진 탓이거나 신체적 존재의 한계를 벗어난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불사(不死)의 선인(仙人)의 경우이다.

혹은 태양이 중천에 높이 떴을 때 신체가 바로 그 밑에 있듯이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황제의 위치이다. 왕도(王道)가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건목(乾木), 세계의 축 아래에는 그림자도 없고 메아리도 없다. 이러한 중심적 위치, 일식(일식)과 대낮의 위치는 영혼이 아무런 그림자도 던지지 않는 때, 마귀 이블리스(Iblis)가 그림자를 던지지 않는 때, 즉 내적인 평화의 순간이다. 그것은 이스마엘의 비교(秘敎)가 목표로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몸의 정화가 이루어져 투명해져서 그림자가 없게 된다는 말은 처음 본다. 그동안은 귀신이 그림자가 없다는 말만 알고 있었다. 공포 영화에서 귀신임을 알리는 상징으로 많이 등장한다.

 

생명의 정수로서의 그림자

65 그림자는 살아 있으며 그것으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결코 그림자로부터 떠나 있으면 안된다는 것 이와 같은 여러 나라의 그림자에 대한 믿음은 분석심리학에서 보는 그림자의 개념과 매우 유사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그림자와 떨어져 있다는 것은 무의식과의 분리를 의미하고 그림자를 통해 보배를 찾는다든가 병을 고친다는 관념(상당히 드물기는 하나)은 그림자가 해로운 영항뿐 아니라 매우 긍정적인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림자의 인식을 통하여 보다 깊은 무의식의 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분석심리학의 설명과 유사하다.

 

한자어권(, , )의 그림자() 용법

67 일본어의 가게’(かげ, )라는 말에는 빛, 그늘, 모습, 다른 사람의 은혜라는 뜻이 있다. 본래는 츠키가게’(かげ, 달그림자), ‘히가게’(かげ, 해그림자) 등으로 빛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이라는 설은 중국, 한국에 모두 공통되는 듯하다. 그리하여 빛에 늘 따라다니는 모습을 그림자라는 말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모습을 가게라 하는 것도 혼이 머무는 곳으로서의 형상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68 우리 나라에서도 그림자는 영혼, 또는 제2의 자아로 간주되어온 듯하다. 이곳에도 사람은 그림자가 있으나 도깨비는 그림자가 없다는 믿음이 있다. 살아 있는 그림자에 관한 믿음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나 민속놀이 중 그림자 밟기에서 술래에게 그림자를 밟히면 진다고 하는 데서 나타난다. 우리 나라 말에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그림자를 감추다’ ‘그림자도 없다고 할 때의 그림자라나 그 실체의 최소한의 존재 근거를 말하는 듯하다.

그렇네. 우리 나라에도 그림자를 밟는 놀이가 있었네.

 

69 무엇보다 그림자의 상실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은 심리학적인 무의식의 그림자가 정신적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분석심리학의 관념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 심리학적 의미의 그림자 없는 사람은 사실 분석심리학에서는 무의식으로부터 분열된 사람, 인간으로서 살아있는 실체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69 그림자의 의식화 작업을 통하여 인간은 신과 같이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원만성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자기의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는 나머지 그것을 누르고 마치 그것이 없는 듯이 선의 얼굴로 행동하여, 그래서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격체처럼 행동하여 그림자 없는 사람임을 자처하거나 지향한다면 그는 결국 자기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신경증적 해리상태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원시적 관념에서의 죽음이란 생명력의 상실, 생명으로부터의 유리에 비길 수 있는 것이다.

 

70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고 하면서 동시에 그림자()로서 표현하는, 얼핏 보아 모순되는 두 가지 관념은 귀신의 그림자가 사람이나 물체의 그림자와 달리 투명에 가까운 것, 혹은 그림자 같이 희미하고 미묘한 것이라는 관념으로 통일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그러한 해탈자, 신격(神格)의 그림자는 미묘체(subtle body)이며 그것은 곧 영혼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양의 민간에서 말하는 그림자 없는 존재란 오랜 수련 끝에 해탈하여 투명해진 사람, 그림자를 남김없이 의식화한 사람이며 그림자를 억압하여 완벽한 도덕군자처럼 행동하는, 그림자로부터 분열된 자아상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해탈하여 도를 깨달은 사람과 귀신을 통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인가?

 

2.     그림자의 분석심리학적 개념

그림자의 정의

72 융은 여러 곳에서 그림자는 일차적으로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서 무의식의 의식화에서 비교적 쉽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러나 원형으로서의 그림자는 꿰뚫어보기가 어렵다는 말을 함으로써 그림자 개념이 개인적 무의식뿐 아니라 집단적 무의식에도 적용됨을 명시하였다.

 

74 그곳에서 자아는 약간 어둡다. 우리는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수수께끼이다.

내배엽성 정신의 측면에는 의식기능의 주관적 요소들이 있는데 이들은 우리가 낯선 사물을 대할 때 항상 끼어들어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또는 부정확하고 부당하게 보도록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주관적인 부적절한 반응을 그림자 속에 버려둔 채 자기 자신은 늘 완벽하고 친절하고 성실하고 솔직하며, 단지 너무 의욕적일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실체로서의 그림자 그림자를 잃은 사람들

75 그림자는 낡은 방식들(old ways), 낡은 인격(old personality), 안일한 것들(easygoing things), 인격의 열등한 부분, 부정적 측면이며 감추어진, 바람직하지 않은 성질의 총화, 잘 발전되지 못한 기능들이며, 강렬한 저항에 의해서 억압되고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76 다른 한편으로 그림자는 무의식의 다르게 하고 싶은 마음’(Anderswollen)이며 그 열등한인격 속에는 의식 생활의 법과 규칙을 따르지 않으려는 온갖 불순종’(不順從)이 들어 있다고 융은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속의 그러한 경향을 비판적으로 시인하고 실현시킬 수 있을 때 그림자의 의식과의 통합이 이루어지며, 그런 작업은 곧 불순종과 분노를 유도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립성을 갖게 한다. 그것 없이는 개성화(Individuation)를 생각할 수 없다.

 

76 사람이 빛을 향하면 향할수록 뒤의 그림자는 커진다. 혹은 사람이 의식의 빛에 눈을 돌리면 돌릴수록 등뒤에서 그림자를 느낀다. 그림자라는 용어는 고대의 관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얼마전 나의 사주를 봐주신 분이 큰 이라며, 그만큼 그늘도 크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하셨는데,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78 그림자는 열등하게 보이고 또 그렇게 나타나지만 개인적 무의식의 그림자는 의식화로써 분화 발달되고 창조적으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며, 원형적 그림자인 경우 비록 그것이 불변의 충격적인 인간속성을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인식은 인간본성의 전체성을 인식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림자에 대한 인식

79 우리 속에 있는 미래의 인격은 아직 보이지 않으나 우리는 그 미래의 인격 주변을 맴돌고 미래의 존재를 보게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은 물론 자아의 어두운 측면에 속한다고 융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안다. 그러나 무엇이 될 것인지는 모른다.”

우리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아는 출발의 첫 단계에 그림자가 있다.

왠지 사주팔자 등 점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다면 점을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게 낫겠다.

 

80 억압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분명치 않다. 어떤 사람은 단지 겁쟁이어서 그렇게 하고, 다른 사람은 인습적인 도덕규범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은 남의 평판 때문에 억압한다.

 

상대악 또는 절대악으로서의 그림자

80 그림자는 대개 단지 낮은 것, 저급한 것, 미개한 것, 적응이 안 된 것, 다루기 힘든 것일 뿐 절대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원시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적 실존을 어느 정도 활성화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81 언제나 개인적, 사회적 재앙은 우리 안에 무서운 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일에 달려 있지 않고 그것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않느냐에 달여 있다. 그 성질과 그 실체를 용감하게 직면하는 것 그럴 때 인간은 세계를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은 보통의 정도를 넘어서는 도덕적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 알고 싶지 않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용감하게 직면하고 싶지 않은 나. 보통의 정도를 넘어서는 도덕적 능력이 없다는 의미인가 보다.

 

83 그림자는 인격의 살아 있는 한 부분이며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 함께 살고자 한다. 우리는 그것을 내쫓을 수도 없고 순진하게 궤변을 농할 수도 없다. 이 문제는 비길 데 없이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인간을 그 구도 위로 불러낼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사람에게 그의 절망과 무능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84 의식은 어느 정도 위에 있고 그림자는 밑에 있으며 높은 것은 언제나 깊은 곳을 향하고 열은 냉()으로 향한다. 이와 같이 모든 의식은 정체, 삭막함, 혹은 목질화(木質化)라는 단죄를 받음이 없이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한 채 그의 무의식적인 대극을 찾아 나선다. 오직 대극에서 삶의 불이 타오른다.

 

84 빛과 그림자는 경험적 자기에서 역설적인 통일체(paradox Einheit)를 이루고 있다.

자기는 그림자가 있음으로써 하나가 된다. 음과 양이 합쳐 도()를 이루는 것과 같다.

 

85 그림자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개인적 무의식에 억압된, 앞으로 의식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열등한 인격의 한 측면이다. 그러나 그 가장 밑바닥 단계는 동물의 충동성과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

 

제3장     그림자의 투사현상 그림자는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가

1.     그림자의 투사현상

그림자의 이미지

89 그림자는 무의식의 이미지이다. 자아는 자신이 어떤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자아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그늘에 속하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자아의식으로서는 걸코 있을 수 없는 성격,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바로 그 성격이다. ~

만일 당신의 친구 중 한 사람이 당신의 결점을 비난할 때 마음 속에 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당신 그림자의 일부를 발견할 것이다.”

폰 프란츠는 더 나아가 만약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꿈, 당신 자신의 존재 안에 잇는 내부의 심판관이 당신을 비난한다면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반문한다. 그때야말로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깨달을 수 잇는 순간이며 이때부터 그림자를 의식화해 나가는 고통스럽고 지루한 작업이 진행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90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버럭 화부터 내는 것은 우리 무의식의 아픈 곳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며 아픈 곳이란 곧 격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무의식의 콤플렉스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반응을 일으킨다. 다만 무엇에 의해서 마음 속의 어떤 부분이 자극을 받느냐가 다를 뿐이다.

 

90 그림자의 이미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밖의 모든 무의식의 내용과 함께 일차적으로 꿈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의식에서는 배제되었고 의식의 입장에서 자기 속에는 있을 리 없다고 부정하는 태만, 불성실, 비겁, 탐욕, 책략 등 온갖 열등한 성격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보고 그림자를 의식화하려면 무의식의 표현인 꿈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

 

92 ‘왠지 모르게 공연히싫은 사람, ‘이유 없이내 비위를 거슬리는 동료, 선배 후배가 있을 수 있다. “그 친구는 주는 것 없이 미워”, “사람이 덜 되었어”, ~ “한마디로 속물이지!” ~ 이렇게 감정이 섞인 말투로 남을 비평할 때는 그림자의 투사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자는 보통 부정적이고 열등한 성격의 이미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투사된 인물에게 향하는 감정은 늘 좋지 않은 성질을 띤다.

 

투사현상의 특징

93 투사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강력한 감정반응을 일으키고 자아가 그 대상에 집착하게 만든다. 투사가 일어났을 때 자아는 그 대상에 대하여 초연해질 수도 무관심할 수도 없다. ~ 투사는 무위식적으로 일어나므로 자신은 그것이 투사된 자기의 마음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를 잘 아는 사람 눈에는 그가 비난하고 싫어하는 성격의 경향이 바로 그 사람 성격의 일부라는 것이 보인다. ~

이렇게 다른 사람 속에 잇는 열등한 인격의 측면은 자신의 그림자의 투사로써 상대방이 실제로 가진 약간의 성격상의 열등성을 훨씬 과장하여 그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그런데 그 나쁜 사람의 상당부분은 사실 그 사람의 무의식에 자기도 모르게 도사리고 있던 자기 마음 속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향해 짖듯이 남의 잘못과 나태함과위선은 질타하면서도 자기 마음 속에 든 도둑 심리는 보지 않는다.

 

그림자의 투사와 거룩한 분노

95 거룩한 분노는 남의 죄를 단죄하기 전에 자기의 잘못을 먼저 반성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만이 이 여인을 치라.” ~ 내가 보기에는 그 말을 듣고 물러선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래도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이 세기말적 광분의 시대, 가치전도의 시대에 누가 그런 말에 자신의 죄를 생각하고 물러나겠는가. 아마 내부의 회의를 보지 않기 위해 한층 더 목소리를 높여 저 여자를 죽여라!” 하고 외칠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그림자의 문제

96 사람들 사이의 오해는 항상 무의식적 투사에서 비롯된다. 가족 중에 온 가족이 미워하는 구박둥이이며 미운 오리새끼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족성원의 그림자의 투사에서 비롯된다. 이 경우에는 그림자의 개인적인 투사라기보다 집단적인 투사의 결과이다.

 

98 우리의 그림자는 그와 같은 의 어두운 반려자, ‘의 검은 대리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하여 그것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언젠가 그림자의 열등한 성격은 를 사로잡고 내가 규탄하는 오물을 스스로 뒤집어쓰게 된다. 아니면 분열된 그림자가 가까운 사람을 통해 연출됨으로써 곤혹을 치르게 된다.

 

100 사고형의 사람은 공사구분을 잘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의 법칙을 잘 구사하며 살아가는 장점이 있으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어린 관계를 형성하거나 깊이 공감하는 마음이 부족할 수 있다.

 

104 그러나 항상 개인보다 사회 또는 국가를 생각하는 이들 외향형의 사람들도 무의식의 그림자의 영향을 받아 때로는 본래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유치하고완고하며 독선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가 있다. 대개 이런 사람은 남에게는 더없이 잘해 주나 집에 오면 폭군이 되는 경향이 있다. 무의식의 열등한 내향적 경향이 과보상을 일으킨 증거이다.

 

105 열등기능은 때로 우월기능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보상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향형은 외향형보다도 더 대담하게 외부세계에 도전하고 객관성을 강조하고 외향형은 내향형 이상으로 내면의 정신세계에 집착하여 거의 신비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모두 열등기능을 의식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106 오늘 우리 나라의 교육풍토는 사고력의 발달에 치중하는 나머지 정서의 중요성이나 비합리적 정신의 중요성을 인정받을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112 외향적 직관형은 다른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가능성, 그것도 외부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직감이 있다. 이 상품이 장차 크게 팔리게 될 것이라든가, 이 무명의 화가가 장차 큰 ㅎ ㅘ가로 성장할 것이라든가 그 가능성을 보는 눈이 있다.

 

114 인간은 어떤 유형에 속하기 이전에 전체정신을 갖고 있는 개성적 존재이다. 유형론은 그 전체정신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보조적 관점이다. 유형설을 자세히 보면 전체정신에 이르는 길이 보인다. 가령 내향형이라 하지만 외향적 태도가 무의식에 있어 그것을 의식화함으로써 전체에 접근해야 하고, 합리적 유형이라고 해서 비합리적 기능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고 무의식에 비합리적 기능이 대극을 이루어 의식을 보상하고, 비합리적 유형에서는 또한 합리적 기능이 무의식에 있으면서 의식의 기능에 포함되고자 작용하고 있다.

 

115 열등기능은 우월기능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없다. 열등기능을 살리려면 우월기능을 잠시 억제해야 한다. 사고는 감정에, 감정은 사고에, 직관은 감각에 감각을 직관에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는 열등기능을 아주 없애버리기 보다 전체정신을 어느 정도 실현하여 완전한 인격이 아닌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이다.

 

정치적, 시대적 사건 속의 그림자상

116 오늘날 은 대중매체에게 없어서는 안될 보도자료일 뿐 아니라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또한 없어서는 안될 먹이의 하나가 되었다. ‘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존재였다.

 

116 이른바 사회지도층에 대한 반감과 불신, 재벌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 등에는 재산의 사회환원 없이 개인적 이익만을 챙기거나 공익을 위한 희생정신이 결여된 부패한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상대방의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는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가 개입하고 있다. 또 이러한 투사는 자신의 잘못을 보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치유의 효과마저 있다.

그러나 자기 내부의 그림자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지도층을 규탄하는 사람 또한 지도층의 위치에 올라갔을 때 자기들이 규탄한 바로 그러한 탐욕과 부정부패를 스스로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120 진정한 평화는 다른 말로 개개인이 자기 안에 잇는 그림자를 인식할 때, 원형의 매혹적이며 무시무시한 영향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자각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집단 속에서 모두 약한 존재가 된다. 건전한 윤리적 책임감을 가진 사람도 집안 속에 파묻히면 책임감이 느슨해지며 결국 다른 사람처럼 타락한 폭도’ ‘무자비한 망나니가 될 수 있다. 집단 속에서 집단적 무의식의 파괴적 세계에 전염되는 것이다.

 

121 사람이 어떤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여도 좋은 쓰레기 같은 존재로 보았다면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생사여탈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초인이나 신, 또는 악마인 것이다.

 

125 “진정한 민주주의는 인간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참작하여 그 자신의 국가 경계 안에서의 갈등의 필요성을 허용한, 고도로 심리적인 기구라고 융은 말한다. 개성의 존중, 개성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집단의 횡포가 활개를 친다. 그곳에서 그림자의 집단투사가 일어날 수 있다.

 

129 그림자의 강력한 투사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변환의 바로 직전에 일어날 수 있다 그림자가 더 이상 무의식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만큼 오래도록 무의식에 잠재해 잇다가 보상적인 힘을 축적하였을 때 그것은 의식을 자극하여 여러 가지 장해를 일으킨다. 의식의 질서와 안정이 무너질 위험을 예감한 자아는 질겁을 하고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낯선 충동을 막으려 한다. 그러한 방어가 실패했을 때 신경증적 증상이 나타나고 의식과 무의식의 분열의 정도가 너무 심하고 무의식의 보상작용이 너무도 강하게 의식을 엄습하여 의식이 이에 완전히 사로잡히거나 지리멸렬할 때 심한 정신병의 증후를 보인다.

 

131 스스로 확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더 길길이 날뛰고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앙, 하나의 주의에 매달린다. ~ 물론 모든 것은 정의의 이름, 순수의 이름으로 처단되므로 처단하는 자는 자기의 불안을 모른다. 투사는 곧 불안을 보지 않을 수 잇는 방어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137 상대방이 자기의 열등한 기능을 우월기능으로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무의식의 열등기능을 자극한다. 이렇게 열등기능이 의식에 떠오를 즈음 사람들은 자기의 열등한 면을 보기를 꺼리고 그것을 상대방에 투사해서 상대방이 가진 장점을 깎아내리려 한다.

 

142 또한 획일주의, 독재, 전체주의가 판을 치는 곳에서는 특히 검은 그림자가 한구석에 도사리게 된다. 독재자는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을 키우기조차 한다. 독재자는 적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집단성원을 단결시킬 수 있다. 5.18 광주대학살은 집단적 그림자의 투사를 이용한 독재권력집단의 명백한 만행이었다. 어떤 특정집단을 미운 오리새끼로 만들어 놓고 그 집단성원을 무조건 구박하거나 백안시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2.     꿈에 나타난 그림자의 현상

융의 꿈의 사례 중에서

147 그림자상이 반드시 역겹고 추잡하거나 고집스러운, 부정적 성격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정치적 지도자, 사회명사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융이 지적한 대로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을 만나거나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차를 나누기도 한다. 의식 상황에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 대 꿈에서는 그러한 식으로 과대관념을 표현한다. 그것은 흔히 조용한 내향형 인간들의 무의식에서 잠자는 권력 콤플렉스, 허영심, 명예욕과 같은 것이다.

 

한국인 피분석자의 꿈에 나타난 그림자상

151 그림자의 상이 꿈속에 어떠한 이미지로 나타나든, 어떤 이름을 가지고 나오고 그 이름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천하든, 실제로 겪은 마음의 충격과 관계가 있든 없든 모든 꿈의 의미를 해석하려면 꿈을 꾼 사람의 개인적인 연상을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의 의식상황을 알고, 꿈의 해석에 관한 충분한 수련을 받은 사람에 의해서 실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일정한 꿈의 유형에 대한 지금까지의 설명을 규격화해서 비슷한 꿈의 내용을 해석하는 데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3.     정신병리현상과 그림자

165 정신적 해리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정신이 흩어지는 것이다. ‘자아가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의식이 무의식과의 교류를 중단하고 따로따로 논다든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어느 순간 혹은 일정 시기에 정신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 사회규범에 맞지 않는 것을 모두 무의식에 억압해 버릴 경우, 그 정도가 지나치면 의식의 분리가 일어나기 쉽다.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자아와 페르조나가 극단적으로 동일시되면 될수록 자아의식과 무의식의 교류는 단절된다. 그리되면 의식의 해리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그림자 없는 사람, 그림자 없는 가정

167 이들 그림자 없는 사람은 위선자이거나 이중인격자, 또는 각종 노이로제를 일으킬 조건 아래 있는 사람이다. , 무의식적 그림자에서 단절되어 의식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누구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노이로제가 되지는 않는다. 자기에게 그림자 따위는 없다고 자처할 때, 그림자가 자기 속에 있는데 보지 않으려 할 때 그것이 노이로제의 온상이 된다.

 

168 ‘그림자 없는 사람은 자기의 그림자를 무의식간에 크게는 사회, 작게는 가족 중의 누군가에게 옮겨놓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옮기면 그 아이는 부모의 그림자가 되어 부모 대신에 가족 내에서 악역을 맡는 속죄양의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식되지 못한 부모의 그림자는 생물학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자식들에게 유전된다.

 

우월기능을 가진 그림자와 그 정신증상

그림자의 원형과 정신병

170 융은 1900년대 초에 당시 조발성치매라고 부르던 정신분열증환자의 횡설수설과 그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가 신화의 내용과 이리하고 보통 사람이 꾸는 꿈을 낮의 현실에서 경험하는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상들인데 그것은 우리가 가금 꿈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173 자아 밖에서 자아를 위협하고 자아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실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곧 어떤 알 수 없는 자아보다 큰 것으로 무의식의 그림자, 그것도 원형적 그림자일 가능성이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자아의식의 공동화(空洞化)와 자아, 환계(環界) 경계의 와해와 더불어 무의식의 원형적 세력의 상대적인 강화로서 자아의 자율성이 무의식의 세력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비극을 겪고 있다.

정신요법과 그림자 투사

177 투사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인간관계란 없다. 문제는 투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림자를 어떻게 인식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제4장     분석과 그림자의 인식과정

1.     그림자 인식의 어려움

182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림자를 표면에 내놓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그림자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친구를 시험해 보기를 원한다면 그와 함께 만취하도록 술을 마셔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한 마리의 짐승을 보게 될 것입니다.

 

188 인간 속에서 진정으로 창조적인 것은 언제나 당신이 가장 작게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온다. 아주 작은 것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에서 그러므로 그림자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2.     그림자의 의식화 과정

193 그림자의 통찰은 사람으로 하여금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데 필수적인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이러한 의식된 인정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205 그림자의 의식화에는 적당한 자아의식의 안정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림자가 원형적 요소를 내포할 경우, 우리는 그 존재에 경악하고 전율하고 조심할 뿐, 섣불리 대결한다든가 없애려 한다든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원형은 자아의식이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잇는 콤플렉스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자아가 여기에 휩쓸려 원형의 영향 아래 꼼짝없이 사로잡혀 지리멸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잠재성 정신병에 꿈의 해석을 삼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그림자에 대한 인정은 겸손의 바탕을 제공한다. 심지어 끝을 모르는 인간존재에 두려움을 갖게 한다.

 

211 밝음을 위한 밝음이 아니라 어둠을 통한 밝음이 진정한 밝음이다. ~

전체성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원만성이다. 그림자의 동화로써 인간은 어느 정도 실체성을 갖게 되고 그의 동물적 충동영역이나 원시적인, 혹은 고태적인 정신이 의식의 광추(빛의 원추)에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그것들은 허구와 환상의 도움으로 억압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인간은 그 자신이 바로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가 된다.

 

제5장     그림자의 문화적 대응양식

1.     민속문화 속의 그림자와 그 표현

여러 가지 그림자 의례

220 그림자 의례는 한 사람에게 집단적으로 그림자를 투사하여 속죄양을 만들고 이를 제물로 삼음으로써 집단성원이 자기의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는, 인격성숙면에서 보자면 매우 부정적인 기능을 가진 경우와 문화적으로 허용되고 예술적으로 승화된 형태에서 그림자놀이를 통해 각자의 그림자를 살려서 사회도덕 규범의식과 무의식적 충동 사이의 단절을 지양하는 풀이의 긍정적인 기능을 가진 경우가 있다.

 

무속에서 본 그림자의 상징과 그 처리

238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문화적 그림자가 필요할 만큼 생활신조가 확고하지 않았다. 무속의 반문화적 그림자로서의 카타르시스 기능도 필요치 않게 되었다. 다만 존재하는 것은 미.소 냉전의 영향 아래서 정치적인 그림자의 공방 뿐인 듯이 보였다.

그러나 전통적 유교의 가치체제는 무너지고 유교의 그림자로 있던 무속의 자기주장이 자유의 물결을 타고 활개치기 시작했다. 물질적 탐욕은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원리로, 성적 탐욕은 성개방풍조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상하의 위계질서는 무너지고 전통사회의 가치관이건 사농공상의 순서도 완전히 뒤바뀌거나 뒤죽박죽이 외면서 대중사회로 들어섰다.

무속이라는 그림자가 해소되면서 온 사회가 무속화하고 있다. 무속 그 자체는 한편으로는 순수한 전통문화를 지키는 문화재로, 전통예술로, 다른 한편으로는 선무당의 창궐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2.     옛날 이야기 속의 그림자상과 그 문제의 해결

239 민족들의 문화배경이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나 발견되는 이야기의 핵은 비교신화학적 연구에서 추출되는 신화소(mythologem)와 같은 것이다. 분석심리학은 그것을 우리 마음속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archetype)의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옛날 이야기에는 민족의 지혜, 특정 문화집단의 지혜뿐 아니라 인류 공통의 심성이나 원초적 갈등과 이에 대한 해결책이 들어 있다.

 

흥부와 놀부 등 선약의 짝에 관한 이야기

241 그런데 그림자와의 갈등은 대극 자체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극을 넘는 어떤 커다란 의지, 강력한 어떤 것에 의해서 해결된다. 자아에게는 오직 성실하게, 변함없이 악의 횡포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권장된다. <흥부와 놀부>에서는 악을 물리치는 오직 유일한 보편적인 법칙인 새의 부러진 다리를 보살피는 마음이 결정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장수설화

244 변혁의 가능성을 앞둔 불안이기는 하지만 부모로 대변되는 기존 가치수호의 보수주의와 소극주의의 소심한 의식은 창조의 가능성을 잘라버린다. 부모는 아들이 자는 동안 겨드랑이에 난 비늘을 잘라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아들의 죽음, 장수가 못된 한을 품은 채 매번 장자못에서 우는 말의 울음으로 남는다.

한국인의 소극주의, 현세순응, 기존질서의 고수주의는 결국 한국인의 마음 속에 못다한 삶의 한을 남기고 한의 슬픔을 반추하는 데서 끝나고 있다. 이야기에서 아들은 기존질서를 새롭게 할 안트로포스(Anthropos), 영웅원형의 상이었던 것이다. 의식의 면에서 보면 그것은 의식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의식의 그림자, 구원자로서의 가능성을 안은 그림자이다.

 

진짜와 가짜

246 자기가 자기의 모습을 보는 자가시(自家視) 현상(autoscopy)은 실제로 임상에서 목격되는 정신의 해리현상이다. 반드시 시경증적 해리뿐 아니라 신체적으로 피곤할 때도 일어날 수 있다. 원시인들은 죽음의 징조라고 두려워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자아가 여러 개로 쪼개져서 번갈아 여러 인격이 의식면에 나오는 이중인격, 다중인격도 인격장애현상이다.

 

그림자원형 이야기

251 <지하국대적설화>는 남성적이며 외향적인 영웅의 모습이다. 우리는 영웅상을 그러한 모습에서 본다. 그러나 사실 창이나 칼을 쓰지 않고도 가만히 앉아서 내면에의 집중을 통해 밖의 괴물을 제거하는 이야기는 서구의 민담에서도 발견된다. 악한 마음이 일 때는 그 마음과 직접 용감하게 대결해서 이기는 방법도 있지만 평소에 선한 마음을 키워서 악한 것을 이겨내는 방법도 잇다. 두꺼비를 기르는 마음은 전혀 목적의식이나 공리심이 없는 순수한 측은의 정을 살리는 태도이다.

 

우리 민담에서의 악의 처리법

252 그런데 우리 나라 옛날 이야기에서 제시한, 악에 대처하는 가장 특징적인 자세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소박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이다. 그것이 절망이든 공포든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이 도처에서 강조되어 있다. 또한 동물을 돕는 것이 악을 물리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마련한다는 점은 한국 옛 이야기에도 공통된 사실이다.

 

3.     그림자와 종교사상

기독교와 그림자의 문제

268 그림자는 비천한 지옥에 빠졌다. 그곳에서 그는 마귀의 할머니로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 감정가치의 발전 덕분에 밝고 선한 신성(神性)이 끝없이 고양되었다. 그러나 마귀로 묘사된 어둠은 인간에 국한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이런 특이한 발전의 원인은 기독교가 마니교의 이원주의에 너무도 놀라서 유일신교를 온 힘을 다하여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동양종교와 그림자의 인식

269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무의식의 추악함에 대해 끝없이 깊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유럽인들은 그래서 스스로 했어야 했던 일을 하지 않고 차라리 다른 사람더러 하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전체의 개선은 개인으로부터, 아니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병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신학자는 심지어 내게 자기를 들여다보는 작업 때문에 우울해진다고까지 말했다.

 

277 마음 속의 열등한 것, 미숙한 것은 통제와 억제, 혹은 승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살림으로써, 즉 움직이게 함으로써 발전. 분화시킬 수 잇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에서의 그림자의 의식화는 바로 무의식의 열등기능인 그림자를 의식이 받아들이고 의식에 동화시켜 나감으로써 그 바라던 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81 그들이 실제로 그 속에 들어갔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순진한 미국인의 자기인식 퇴폐적 그림자의 투사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상대적 그림자의 의식화 과정, 즉 그림자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살림으로써 열등한 인격을 분화 발달기킨다는 관점은 아무래도 신앙과 결부된 종교수행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287 “말이 아름다우면 곧 그 울림도 아름답고 말이 악하면 곧 그 울림도 악하다. 몸이 길면 곧 그 그림자도 길고 몸이 짧으면 곧 그 그림자도 짧다. 이름이란 것은 울림과 같은 것이요, 몸이란 것은 그림자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말을 삼가면 거기에 화합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그대의 행동을 삼가면 거기에 따르는 자가 있을 것이라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나간 것을 보고서는 들어올 것을 알고, 지나간 것을 살핌으로써 올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앞일을 먼저 알게 되는 이치인 것이다.”

 

289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며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분을 풀며 그 광채를 부드럽게 하여 티끌과 함께 섞여 잇을 수 있다면 그것을 심원, 신비한 동일이라 한다.

 

293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라 했다 .그것은 높은 것, 우수한 것, 좋은 것을 지향하는 내가 나의 의식에서 배제하여 생긴 것이다. 유치하며 세련되지 못한, 어리석은 또 하나의 인격부분이다. 그런데 노자의 도, 노자의 성인은 기꺼이 그 낮은 곳을 찾는다. 자기 실현이 되려면, 즉 전일의 경지, 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먼저 자신 속의 낮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모든 생물에 이로움을 주면서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즐겨 있다. 그런 까닭에 물은 도에 거의 가까운 것이다.”

물은 곧 살아서 작용하는 무의식의 상징이다. 무의식이 갖는 자기실현을 위한 초월적 기능은 정신적 해리, 고통과 갈등과 같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바로 그곳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을 개시한다.

 

맺음말

299 인류는 아득한 옛날부터 그림자에 관심을 가져왔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실체적 그림자로서, 나중에는 도덕적 열등성으로서 자기성찰의 대상으로 그러다가 근대에 들어와 한때 서구사회에서 인간이 초인의 환상으로 오만해지자 그림자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무시된 그림자는 그것을 무시한 사람들을 역습하여 지배함으로써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인간끼리의 살육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비극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301 동양 가운데서도 한국은 그림자의 최대 결투장이었다. 우리는 민족상잔의 전쟁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단지 생각을 달리한다고 해서 죽고 죽인 사람의 숫자가 수없이 많았다. 이곳은 양분된 동서진영의 그림자가 난무하던 곳 그런데 집단적 그림자문제는 현재도 해결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민족의 분열과 화해의 문제는 우리가 수행해야 할 최대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자면 밖에서 투사되어온 그림자를 각자의 마음에서 발견해야 하 것이다. 동시에 객체에 대한 정확한 현실인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객체를 모르면 모를수록 투사는 강해지고 편견은 망상으로 변하게 된다.

 

302 자유민주주의는 시끄러운 법이다. 링 위에서 권투하듯 일정한 룰 안에서 그림자가 표현될 수 잇고 개성이 숨쉴 수 있는 유일한 체제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첫째 공정한 언론이 살아 있어야 하고, 공정한 법이 운영되어야 하고, 개성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누가 하겠는가. 다름 아닌 사회 현장에 있는 하나하나의 개인이다. 이것은 오직 그 모든 개인의 의식개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그림자를 통찰하지 않으면 집단적 투사는 해결되지 않고 집단의 성숙은 기대할 수 없다.

 

303 그림자는 그 탐구의 첫걸음일 따름이다. 자기 마음을 깨우치고 자기자신의 전체를 실천하는 자기실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림자의 의식화가 진행되면서 무의식에는 의식화해야 할 또 하나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난다. 마치 어두운 구름이 걷히면서 태양이, 달이 모습을 드러내듯이 그것은 융이 아니마, 아니무스라 부른 우리 마음 속의 심혼(심혼)이다. 그림자의 의식화는 우리가 내적 인격이라 부르는 아니마, 아니무스의 의식화의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어렵고도 긴, 그러나 보람있는 도전과 시련의 길이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2.     보완이 필요한 점

: 중간 중간에 번역본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해외 학자의 연구를 기본으로 책을 쓰다 보니 그런 표현들이 다소 있었던 듯하다. 보다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으로 썼더라면 더 쉽게 이해가 됐을 것 같다.  

3.     이 책의 장점

융을 읽으면서 내가 도대체 뭘 읽고 있는건지,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었다. 동기들의 북리뷰를 읽으며서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들의 발췌록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 같아서였다. 어렵고 이해 안되는 정신분석, 심리학을 쉽게 정리해서, 나처럼 이 분야의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게 해석본처럼 만든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 피분석자의 사례, 한국의 민담 등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을 넣은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 좀 더 자연스러운 문체를 사용하겠다.

분석심리학의 탐구 전체 3부작 중의 1부인데, 이 책만 읽고는 사실 2부와 3부를 읽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내가 저자라면 2<아니마와 아니무스: 남성 속의 여성, 여성 속의 남성>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맺음말 부분에 이에 대한 소개를 좀 더 끌리고, 흥미있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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