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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6일 11시 5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칼 구스타프 융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심리학, 정신분석학의 큰 줄기를 만든 학자이다. 프로이트의 수제자라 불릴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결국엔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을 창시해냈다. 콤플렉스 심리학 혹은 분석심리학의 선구자이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자서전 전반부를 읽어보니 결국은 그를 이끌어 낸 것은 두개의 꿈이 아닐까 한다. 하나는 남근상으로 대표되는 3살 때의 꿈이었고 열 살이 지난 다음에 꾸었던 하느님과 하느님의 똥덩어리가 화려한 교회를 무너뜨리는 꿈과 같은 계시일 것이다. 이것에 대해 그냥 그저 그런 것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꿈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과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으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실제로 살면서 수많은 꿈을 꾸고 있다. 꿈을 잘 꾸지 않는 나도 이따끔씩 꿈을 꾸곤 하는데 그냥 개꿈이려니 하고 넘어가버리기 일쑤다. 결국 이러한 꿈은 어떤 알수 없는 존재, 그것이 하느님일수도 있고 나의 조상일수도 있고 저 먼 미래의 나일수도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일 수도 잇는 것이다. 꿈에 대한, 정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눈뜨게 해준 융에게 감사하며 그에 대해 알아보자.

 

융은 인간의 영혼(정신)이란 각각 대극, 대립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요소들은 대립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다는 이야기이다. 건전한 정신이란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의 영혼이라는 말. 또한 집단무의식, 콤플렉스,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와 아니무스 등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융의 학문적 성과가 심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바탕이 없는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잘못된 인식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한동안 큰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해악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심리학에서 그를 비판하는 이유를 보면 알수 있다. 그의 이론은 실험연구보다는 임상적 발견과 역사적, 신화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고, 신비주의와 종교에 관해서 너무 많은 것을 논의 하고 있으며, 습득된 인격(원형과 같은)및 목적론과 같은 낡은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의 생각을 제시하는 방식이 이해하기 힘들고 모호하고, 혼돈을 일으키고, 무질서 하다고 한다.

 

신경증 환자가 그 나름의 법칙을 갖고 있다는 통찰을 입증하기 위해, 융 자신이 치료경험이나 심리학에서 관계없는 신화, 종교, 연금술, 신비주의 등 여러 분야를 끌고 와서 이론을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의 여지를 보인다는 주장이 있다. 신비주의에 탐닉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사생활이 다소 문란하고, 약물에도 손을 댔던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었을 수도 있다.

 

융은 동양사상에 대응하는 서구사상의 원류로 연금술을 재발견하였다. 연금술을 물질의 변화가 아닌 영혼의 연성으로 해석하였으며, 상징들이 가진 의미를 추적하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상징들에 대한 해석은 꿈이나 환자에게서 채집할 수 있는 인간 무의식에서 나타는 상징들과 연결되어 사례 해석의 뒷받침이 되었다.

 

중년 이후 자신을 위한 집을 스스로 짓기 시작했다. 조금씩 지어가며 마음가는 대로 덧붙이고 하는 공사여서 깔끔하지는 않으나 완결은 지은 듯 하다. 내부는 스스로 그린 상징으로 장식되어 있다하며 레드북과 마찬가지로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이 집에 관한 일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인 1Q84에서 언급되어 있는데 집의 입구에 '차가워도 차갑지 않아도 신은 여기에 있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글귀의 영문 번역은 'Cold or Not, God is Present'인데 카를 융의 집에 새겨져 있는 실제 문구는 'Called or Uncalled, God is present'(실제 문구는 라틴어 Vocatus atqua non vocatus deus aderit.)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로 번역되며 영어 번역의 발음이 비슷할 뿐 뜻은 상이하다.

 

말년에는 언동이 지리멸렬해진 탓에 정신분열증을 앓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이 있는데 검증된 바는 없기 때문에 그대로 믿을 만한 사항은 아니다. 83세 당시 특집으로 기획된 BBC 인터뷰에 정정한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있다. 인터뷰 내용은 결코 정신분열증인 사람이 말할 수 없는 통찰력 있는 내용이다.

 

그의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은 현대 철학이나 (문화)인류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의 무의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쓰인 것은 아니며, 같은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신화, 설화, 상징 등의 내포된 의미를 분석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는 질베르 뒤랑의 저작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조지프 캠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등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융의 영향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융의 학설 자체는 재검증을 거쳐서 현재는 원형 그대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현대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심리학과는 차이가 많다는 것. 프로이트의 이론도 현대엔 문제점이 많이 발견되어 대부분이 사장되었는데, 그래도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서양철학사에도 중요하게 이름을 남긴 프로이트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어서 융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나온다. 개론서에선 융에 관한 내용이 한 줄 정도 나오는 것도 길게 나오는 편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융의 저작들은 프로이트의 저작들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아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다. 프로이트의 저작이 정신의학분야에 문외한인 사람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끔 쓰여진 데다 문체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지만, 융의 저작들은 정신의학은 물론 종교, 신화 등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독일 철학서들만큼이나 문체가 난삽하기로 악명이 높다. 현재 한국 융 연구원에서 융의 저작들이 일부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융의 어록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 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제기된 악의 문제에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철저한 자기인식, 자신의 전체를 가능한 한 최대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가 얼마나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를 가차 없이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전자를 사실로, 후자를 착각이라고 간주하기 않도록 조심해야할 것이다. 가능성으로서 두 가지가 다 진실이다.

 

여성의 특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을 이루어내는 여성들은 그런 것이 여성의 본성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큰 예외에 속한다. 사물에의 사랑은 남성의 특권이다. 그러나 인간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그 본성 속에 융합하고 있으므로, 남성이 여성성을, 여성이 남성성을 살아낼 수 있다. 반대되는 성의 삶을 산다면, 자신의 성이 뒷전에 물러나서 본래적인 것이 덜 실현될 수 있다. 남성은 남성으로서, 여성은 여성으로서 살아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인생이 현재를 넘어서 무제한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그들은 이성적으로 살며 마음 편하게 잘 지내게 된다. 사람은 수 백 년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긴 시간을 소비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질없이 분망한가? 노인이 죽음의 신화를 가져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이성은 그에게 다만 그가 가는 어두운 도랑 이외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는 그에게 다른 상을,

 

새로운 길은 가정假定도 없이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자주 불경스럽게도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놓이게 된다. 도덕이란 더 나아지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 도덕을 변화시키려 할 때마다 기존 도덕에 비추어볼 때 부도덕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깊은 곳이 없다면, 높은 곳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빛이란 무엇일까? 악이 맞서 있지 않으면, 선은 자랄 수 없다. “네가 짓지 않은 어떤 죄도 사함을 받을 수 없으리라라고 카르포크라테스는 말했다.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의미심장한 말이고,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이에게는 훌륭한 기회를 주는 말이다. 그러나 보다 의식된, 그래서 보다 완전한 인간 안에 함께 살기 원하는 하위적인 것은 단순한 쾌락이 그를 설득하여 탐닉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최근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뭐 중요해. 그냥 태어난 것이니까 사는 것이고 그렇게 고민해봐야 답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1년동안 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물음표이기도 하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물론 부모님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자서전 문학의 백미

 

7. 내가 가장 읽고 싶었던 카를 융 자서전 <기억, , 사상>19권이나 되는 전집에도 실려 있지 않았다. 자서전은 학문적인 저작이 아니므로 융의 요청에 의해 전집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8. 10개월 동안 거의 매일 밤을 꼬박 새며 번역작업을 해야 했다. 이제는 밤을 새고 새벽 6시쯤 잠을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그를 이런 길을 걷게 했을까. 그리고 이런 길을 마무리 할 수 있는 힘은 또 어디서 나왔을까.

 

8. 이 책은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줄기차게 대담을 한 결과로 엮어진 자서전이다.

여비서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생각해본다. 거장 융과 자그만치 5년동안 대담을 한다. 그 뒤에 그년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분명 최상의 삶이든 최악의 삶이든 둘 중에 하나를 살았을 것이다.

 

8.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8. 융은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자서전 출간을 거부했으나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동의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누가 자기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나. 자기를 포장하기 위한 과장은 물론 거짓과 조작까지 더해질 수밖에 없다.

 

9. 융은 80세가 넘은 나이에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 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9.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그와 같이 자기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를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9.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4세 무렵에 꾼 꿈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대목은 그저 놀라운 뿐이다.

나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어제 일도 잘 기억못하는데 하물며 4세 때 기억은.....특별한 재능이 있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9. 이 책은 한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인상 깊게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의 존재를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한 저서라고 할 만하다.

 

10. 카를 융은 일생 동안 종교적인 주제에 매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섣불리 신에게 접근했다가는 어떤 위험스런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 법이다. 그렇게 위험스럽긴 하지만 신은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위대한 위험인 것이다.

 

10. 기자가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수백만의 시청자들은 융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융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신을 압니다.“

역시 대가다운 대답이다. 신을 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나는 이와 같은 형성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과학적인 문제로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삶만이 무의식의 실현인가. 나는 어떤가. 무의식이 나를 이끄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명확하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대략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다. 어쩌면 무의식이 지금의 나를 이끈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일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학창시절까지 책을 가까이 해 본적이 거의 없다. 시골출신들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부모님도 역시 생계가 우선이다 보니 책을 읽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었고 나에게 공부를 하라는 말은 했지만 책을 읽어라는 말은 들어본적 없다. 그런 내가 이상하게 도서관에만 들어가면 마치 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자기합리화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책과 하는 시간이 즐겁다.

 

11.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한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과학은 평균 개념들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 개념들은 각 개인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주관적인 다양성을 제대로 다루기엔 너무나 일반적이다.

갑자기 아이네이아스가 생각이 나네. 나의 신화를 창조할 때 내가 선택한 아이네이아스는 과연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할까. 그냥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인지 과제를 하기 위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어떤 내 안의 무의식에 의해 선택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12. 자서전을 만드는 데 어려운 점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적절하게 비교할 만한 것들도 없다.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 그런 것 아닌가. 오직 성인만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나머지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12. 인간은 자신을 무엇과도 비교해 볼 수 없다.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2. 어떤 동물이나 식물 또는 돌에도 대비해 볼 수 없다. 오직 신화적 존재만이 인간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결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13. 사실 인간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한 생애의 이야기는 어떤 지점. 즉 그 사람이 기억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13.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내가 젊은 의대생이었을 때 이러한 사실을 이미 깊이 느꼈는데, 내가 그 시기 이전에 파멸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보통 이런 사람은 미치거나 천재거나 두가지 중에 하나일건데 융은 잘 풀렸던 경우같다.

 

13.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동안만 버틴다.

 

13. 생명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온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13. 나의 생애에서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무상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적 체험들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나의 꿈과 환상들이 포함된다.

 

14. 다른 기억들, 즉 여행과 사람들 그리고 주변 상황에 관한 기억들을 내적 사건들 앞에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14. 내 생애의 외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거기는 항상 충만하고 풍성하여 다른 모든 것은 그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의 생애는 외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빈약한 편이다.

 

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 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23. 나의 기억은 두 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 이러한 것들은 모호한 바다에 떠다니는 기억의 섬들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 이어져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2~3살 때 일이 진정으로 기억난다는 말인가.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나의 2~3살은 잡히는게 전혀 없다. 그저 할머니와 부모님이 얘기해준 그 이야기가 그려질뿐이다.

 

23. 아마도 내 생애에서 최초라고 할 만한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 기억은 자못 흐릿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다. 나는 나무그늘 아래 유모차에 누워 있다.

 

25.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물이 없이는 아무도 존재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정말 그는 노년에 호수 근처에 집을 지었다. 이 당시부터 이런 마음이 생겼다니

 

26. 1878년 나의 병은 아마 부모의 일시적인 별거와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부모의 환경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다.

 

26. 그 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나중에는 인생 초기의 이러한 인상들이 수정되었다. 나는 친구를 믿었다가 그들로 인해 실망하기도 했지만, 여성들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에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나 보다. 보통 또래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더 의지하지 아버지에게는 잘 의지하지 않는데

 

27. 이런 소녀의 유형이 나중에 내 아니마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27. 그 젊은 아가씨는 나중에 나의 장모가 되었다. 그녀는 내 아버지를 존경했다. 스물한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나의 외적기억들이다. 다음 것들은 훨씬 강력하고 정말 압도적인 것들인데, 그 일부만이 흐릿하게 기억날 뿐이다.

 

28. 이러한 일들(난간 아래 미끄러졌지만 하녀가 나를 붙잡아 준 이야기)은 무의식적인 자살충동이나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숙명적인 저항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너무 확대해석한 사항 아닌가. 넘어지고 하녀가 붙잡아 준건데 자살충동이라니 숙명적인 저항이라니! 너무 오버인거 같다.

 

28. 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을 때 그 기도문은 나에게 다소 안도감을 주었으므로 나는 즐겨 기도를 올렸다.

어릴 때 이런 기도들은 큰 주문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30. 이러한 불길한 유추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주 예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크고 다정하고 자비로운 새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검은 프록코트와 높은 모자에 광택나는 검정구두를 신고 검은 상자를 나르는 음울한 사람들과 연관되었다. 반복되는 이런 생각들은 내 의식의 첫 외상(Trauma)으로 이어졌다.

 

31. 며칠 동안이나 소름끼치는 공포가 내 수족을 꼼짝 못하게 하여, 나는 집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나중에 다시 길에서 놀이를 시작했을 때도 숲 가장자리는 여전히 꺼림칙한 경계의 대상이 있다. 물론 그후에 나는 그 검은 형상이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가톨릭 신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왜 사제들의 복장 옷이 검은 색일까? 더 따뜻한 옷이였으면 사람들이 다가가기기 쉬웠을 텐데

 

31.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이를테면 일생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33. 오랜 후에야 비로소 그 기이한 형상이 일종의 남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남근상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나는 어머니가 저것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야!”라고 했을 때 저것에 강조점을 두었는지,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는 것에 강조점을 두었는지는 정말 알 수 없었다. 전자의 경우라면 예수제수이트가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남근상이 잡아먹는다는 의미가 되고, 후자의 경우라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근상으로 표현되고, 음울한 주 예수와 예수회 수도사 그리고 남근상은 모두 동일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단순한 하나의 꿈을 이렇듯 해석해버린다. 그리고 꿈에서 나오는 대화에서 어떤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해석또한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34. 아무튼 그 꿈 속의 남근상은 보통은 언급되지 않는 지하의 신으로 여겨진다. ... ‘주 예수는 나에게 결코 온전한 실체가 될 수 없었으며,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전폭적으로 사랑할만 한 대상도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예수의 대역인 그 지하의 신이 자꾸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무시무시한 계시였다.

 

35. 나에게 주 예수는 어쩐지 일종의 죽음의 신처럼 여겨졌는데, 예수가 밤의 유령을 물려쳐주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었으나, 그 자신은 십자가에 못박혀 피투성이 시체가 되었기 때문에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늘 찬양을 받는 그의 사랑과 자비에 대해 나는 남몰래 의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장례식을 연상케 하는 검은 프록코트와 광택나는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주로 사랑하는 주 예수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어 종교를 가지기엔 너무 힘이 들었다. 사관학교 초장기때야 3개 종교 중 맛있는 것을 가장 많이 주는 종교를 매주 갔지만 1차적 욕구가 충족되었을때는 진정 내가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3개의 종교를 다 다녀봤지만 결정을 못했고 그래도 가장 편안해 보이는 카톨릭을 정하고 3개월간의 교육을 다녔다가 교육 막판에 뛰쳐나왔다. 공부 중에 항상 ?’라는 말이 튀어나왔는데 수녀님은 머리로 이해하면 안된다 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말도 안되는을 되되면서 돌아가지 못했다. 졸업 전에 다시 다녔다. 그때는 그 분에 대해 의심하지 말자라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교육을 받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그런 강제적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지금은 자유인으로 남아있다. 나야 나이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융은 어린나이에 벌써부터 이런 마음을 가졌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35. 여러 해 후에 견신례를 받을 때까지 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긍정적인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모태신앙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보통의 어린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부모의 손에 이끌려 그 종교가 정해져버린다. 나는 이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자유를 줘야 하고 충분히 숙고한 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35.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 대한 불안은 잘 생각해보면 모든 어린아기 느낄 법하다. 하지만 그런 불안이 그 체험의 본질은 결코 아니었다. 그 본질은 나의 어린 뇌리를 고통스럽게 파고든 인식, 저것은 예수회 수도사다!“라는 인식이었다. 그러므로 그 꿈에서도 본질적인 것은 기묘한 상징적 치장과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는 놀랄만한 해석이었다.

 

37. 누가 나의 내부에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누구의 정신이 이런 체험을 고안해냈을까? 얼마나 빼어난 통찰이 여기에 작용한 것일까?

 

37. 그때 무엇이 내 안에서 말을 한 것일까? 누가 뛰어난 문제제기를 표현하는 발언을 한 것일까? 누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함께 섞어, 나의 후반기 생애를 격렬하기 그지없는 폭풍으로 채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제공했단 말인가?

 

37. 이러한 유년시절의 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 이를테면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서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었다.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40. 한순간 내가 경이로운 형상들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압도된 나머지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알몸은 애나 어른이나 그냥 봐도 아름답고 황홀경에 빠지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종의 본성인 셈이 아닐까.

 

41. 여러 해 동안 나는 가톨릭 성당으로 들어갈 적마다 피와 넘어짐과 예수회 수도사들에 대한 은밀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이 카톨릭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기운이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늘 그런 것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다. 어쩌다가 가톨릭 신부가 가까이 있기라도 하면 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42. 그런 시간이면 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나의 그 원초적 계시와 이 책이 연관되어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결코 누설해서는 안되는 비밀이었다.

나라면 어머니한테 쪼르르 달려가 이런 꿈을 꾸었어요 했을텐데

 

43. 여덟 살때에서 열한살까지는 늘 전쟁그림,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포격을 가하고 해전을 벌이는 그림들을 그렸다.

 

44. 이런 꿈들은 사춘기의 생리적 준비단계에서 비롯되는 것들이었지만, 나는 이미 일곱 살 무렵에 그 전조를 경험한 셈이었다. ...... 이 경우 심인성 동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신적인 분위기가 질식할 지경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45. 그것은 그들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집에 있을 때와는 달라졌다. 나는 그들과 장난도 치고 집에서는 결코 생각도 못했던 그런 일을 스스로 꾸미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논 것이 아니라 꾸미기도했다는 표현에서 어쩌면 경악스럽기 까지 하다. 어린 것이!

 

45.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의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의 내적 안정이 위협을 받았다.

 

46. 친구들과 불놀이를 했다. 그런데 그 불을 돌보는 일은 나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오직 나의 불만이 살아 있는 불이었고 확실히 신성한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좋아한 놀이였다.

 

46.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은 그때마다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누가 누구인지 골똘히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이건 거의 노자 수준의 사고인데 정말 이런 생각을 했는지 의아스럽다. 일곱 살에 돌과 나를 일체화시키는 경험을 하다니.

 

47. 내가 심취했던 유년시절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나는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와, 계속 굴러가며 점점 더 멀어져가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잃지 않기 위해 그 장소에서 억지로 문을 돌려야만 했다.

보통 아이이면 즐거움이 먼저이지 미래니 장래니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데 이 또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47.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유년시절의 영원성이 번개와도 같이 내게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영원성이 의미하는 바는 곧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분명해졌다. 나 자신과의 불화와 거대한 세계 속에서의 불확실성은 나로 하여금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어떤 조치를 하게 했다.

그 조치는 길이 6센티미터의 까만 잉크로 색칠한 남자인형과 라인강에서 주운 검은 돌을 자물쇠가 달릴 필통에 넣어두는 것이다.

 

48. 이 모든 것은 나도 알지 못하는 하나의 큰 비밀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도 그 필통을 다락방에서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나의 비밀을 발견하여 망가뜨릴 수 없었다. 나는 안정감을 갖게 되었고 나 자신과의 불화로 인한 괴로운 감정은 사라졌다. 온갖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다시 말해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거나 나의 예민한 감정이 상했을 때, 혹은 아버지의 흥분하기 쉬운 성격이나 어머니의 병약함으로 내가 침울해졌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싸서 침대에 뉘어놓은 남자 인형과 곱게 칠해진 매끄러운 그의 돌을 생각했다.

융만의 안식처와 어쩌면 그러한 상징이 그에게는 주 예수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49.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0. 어떻게 해서 그런가 자문해보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와 같이 비밀을 소유한다는 것은 당시 나의 성격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것을 내 이른 소년시절의 본질적인 요소, 즉 내게는 가장 뜻깊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제수이트 역시 말해서는 안 되는 신비로운 영역에 속했다. 돌과 함께 있었던 그 작은 나무인형은 아직 무의식적이며 유치하긴 하나 그 비밀을 형상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50. 나는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비밀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지 나에게 설명해주고 가르쳐줄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항상 바랐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 속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 무렵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돌 들에 대한 흥미가 부쩍 생겼다. 나는 항상 무언가 신비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50. “땅 밑에 있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하는 질문이 항상 따라붙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아주 신비로운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야.’

 

51. 이러한 회상을 함으로써,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했던 것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유의미했다는 것.

 

52. 그때 비로소 무의식이 그 작품에 이름을 부여해주었다. 그것은 아트마빅투생명의 숨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것은 유년시절의 저 유사 성적인 대상이 한층 발전한 것으로, 이제는 생명의 숨결’, 창조적인 충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은 사실 외투에 싸여 키스타속에 감추어져 있는 일종의 카비르로 여겨진다. 키스타에는 생명력을 저장해두는 물품, 즉 길쭉하고 검은 돌이 갖추어져 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그 일이 나중에 아프리카 원주민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해진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 키스타 : 이탈리아 발음으로는 치스타.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 널리 쓰여진 화장도구나 일용품을 수납해 두는 용기(容器)의 하나.

모든 행동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원형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신경발작증을 일으키다

 

55. 나는 놀라움과 은밀하고 지독한 부러움을 안은 채 그들이 방학하는 동안 알프스, 그러니까 취리히 근처 저 불타오르는 눈덮인 산들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바다에 갔다온 이야기도 들었는데, 나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치 그들이 또 다른 세계, 즉 붉게 타오르는 눈덮인 산들의 다다를 수 없는 영광으로부터, 그리고 너무 멀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바다로부터 온 존재들인 양 나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목사요 나는 그보다 더 가난한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가난은 좋은 것은 아니다. 많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굳이 사람들이 가난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가난을 안다는 것은 일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56. 나는 나의 부모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걱정과 염려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연민을 느꼈으나,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로 연민이 생기지 않았다. 나로서는 어머니가 좀더 강해 보였다. ..... 이러한 갈등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나는 좋든 싫든 부모님을 판정해야 하는 상위의 중재재판관 역할을 했다. 그것이 나에게 일종의 자만심을 야기했다. 그 자만심은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자존심을 부추기기도 하고 동시에 약화시키기도 했다.

 

57. 어머니가 누이동생 아기를 안고 있는 그 모습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노인처럼 붉고 쭈글쭈글한 얼굴에 눈을 감고 있었다. 아마도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눈을 뜨지 못하는 듯했다. 등에는 길고 붉은 금발이 두세 가닥 나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라고 가리켰다. 원숭이가 되려는가? 나는 충격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저런 모습이란 말인가?

신비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괴물같은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누이동생에 대한 애정이 아직까지 책속에 보이지 않는다.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면 엄청 이뻐했을 텐데 말이다.

 

57. 나는 어머니가 내가 알아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또다시 행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누이동생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막연한 의혹을 나에게 남겼다. 그 의혹은 나로 하여금 날카로운 호기심을 가지고 예인하게 관찰을 하도록 했다. 그후 어머니가 보여준 수상쩍은 반응은 무언가 유감스러운 일이 누이동생의 출생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입증해주었다. 이 사건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열두 살에 경험한 일을 첨예화하는데 이바지했다.

 

58. 나 자신이 기품있고 가치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방문하려는 집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그런 생각은 현저히 바뀌었다. 그 집 사람들의 위세와 힘이 주는 인상으로 내 마음은 어두워지고 말았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와는 너무 차이가 나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집은 왜 이렇지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나의 경우에는 순간이었다. 그들도 그냥 나의 부자친구였다.

 

59. 나는 주 예수또는 검은 예복을 입은 제수이트, 프록코트에 높은 모자를 쓰고 무덤가에 서 있는 남자들, 무덤을 닮은 초원의 구멍, 남근상이 있는 지하사원 들이 필통 속의 내 남자 인형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소년 시절에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기억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생각해보면, 나는 영혼의 돌나 자신이기도 했던 그 돌과의 연관성은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59. 주예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차츰 불가능해지기는 했지만, 열한 살때부터 신의 관면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순이 어없는 듯이 여겨졌으므로 어쨌든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신은 나의 불신감으로 어수선해지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항상 신은 내가 그를 믿든 안믿든, 어려울때만 찾는 신이지만 항상 열려있는 마음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60. 신은 예수보다 훨씬 독특한 존재로서,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에 관한 사람들의 상상은 그 어떤 것도 정확하지 않았다. 사실 신은 아주 힘센 노인과 같은 그런 존재였으나 무척 흡족하게도 너희는 어떤 형상이나 어떤 닯은 것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비밀이 아닌 주예수를 대하듯이 신과 그렇게 친밀해질 수는 없었다.

 

63.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나를 둘러싼 광대한 세계 앞에서 느끼는 왜소감은 내 마음에 의욕상실뿐만 아니라 일종의 은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것들이 학교를 극도로 싫어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는 재능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미술시간을 면제받기도 했다. 이것은 시간을 얻게 되어 환영할 만한 일이긴 했지만, 나에게 미술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또 하나의 새로운 패배를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 재능이 근본적으로 나 자신의 기분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64. 얻어맞는 순간, 번개같이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너는 더 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 그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몫이었다.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고, 몇 시간이고 공상에 잠길수도 있었으며, 어디든 물가와 숲 속에서 가만히 있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다.

 

64. 무엇보다 나는 신비로운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세계에는 나무들, , , , 짐승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 등이 속해 있었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65.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과의 충돌이었다. ,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아버지와 친구의 대화에서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전 재산을 써버렸다는 얘기와 융이 혼자 자립할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품은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생각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돌아왔다.

 

66. 그렇게 15분가량 지나서 두 번째 발작이 일어났다. 이것도 첫 번째 발작과 마찬가지로 지나갔다. “, 이제 정말로 너는 공부해야만 해!”나는 꾹 참아냈다. 한 시간 후에 세 번째 발작이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발작을 이겨냈다고 느낄 때까지 한 시간을 더 공부했다.

결국 자기가 자기 병을 고친 셈이니 이때부터 의사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66. 그날부터 나는 문법책과 연습장을 가지고 매일 공부했다. 몇 주 후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학교에서도 더 이상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66.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 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융 자신만 아는 사실이었다. 어떤 아이는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 자신을 가둘수도 있을 것이다.

 

67. 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동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증스러운 탈영병이었다니.

 

67.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너는 누구냐?

 

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 벽 같은 것이 나의 등뒤에 있었고, 그 벽너머에는 아직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순간 나에게 내가 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69.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나의 내부에 권위자가 자리잡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권위감정과, 보물이 나에게 불어넣었던 가치감정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그때 벌써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69. 나는 그가 금지한 바로 그 일을 저질렀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의 꾸지람이 지당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뚱뚱하고 무식한 멍청이가 감히 나를 모욕했다는 사실로 인해 분노에 사로잡혔다. 이 나는 단지 성장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물이며, 권위자요, 직위와 위엄을 갖춘 사람이며, 나이 든 남자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현실과는 그토록 대비가 되었으므로 나는 곧바로 나 자신의 분노를 억제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그러면 너는 누구냐? 너는 마치 자기가 대단하다고 내세우는 악동처럼 반응하고 있구나! 게다가 너는 그 사람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는 열두 살에 불과한 학생이지만, 그는 한 집안의 가장인 데다 집 두채와 멋진 말도 여러 필 가지고 있는 세력가요 부자이지 않은가.’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돌이켜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이중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나. 나 역시 무력한 현실에서의 나와 그에 대비한 전지전응한 나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게 이런 뜻을 가진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71.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서 무언가를 훔쳐간 것처럼, 혹은 속임을 당하여 나의 사랑하는 과거를 빼앗겨버린 듯 메스꺼운 느낌이 들었다. 마차는 그 시대의 유물이었다. 그때 무엇이 나의 내부에서 일어났는지, 무엇이 나에게 그토록 강한 인상을 주었는지 표현할 수가 없다. 동경이라고 해야 할지, 향수라고 해야 할지, 재인식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 저거였어! 그래 저거였어!’라고 말이다.

 

72. 그런데 그 늙은 의사의 조각상은, 내가 이상하게도 나 자신의 것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인식했던 그 조임쇠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나는 저건 내가 신었던 신발이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그 확신으로 나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그래, 저건 내 구두야!”나는 내 발에서 그 신발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이상야릇한 느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어찌하여 내가 18세기에 속하는가? 그 무렵 나는 종종 1886년을 1786년이라고 쓰곤 했다. 그런 일은 항상 설명하기 힘든 향수가 동반되면서 일어났다.

 

72. 그때까지 얻은 별개의 인상들이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완성되었다. , 나는 두 시대에 살고 있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결과에 혼란을 느끼고 깊이 숙고하게 되었다.

 

72. 나는 어떻든 지금은 작은 학생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의 처벌을 받아 마땅하고 그의 나이에 맞게 예절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실 들이었다. 나의 다른 측면은 의미가 없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 측면이 부모님이나 친척들로부터 들은 조부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측하기도 했으나, 그것 역시 사실과 달랐다.

 

73. 수학과 미술 수업의 패배에서 세 번째 패배가 보태졌다. 그것은 체조였는데, 나는 처음부터 그 과목이 싫었다..... 나는 무언가를 배우려고 학교에 간 것이지, 쓸모없고 의미없는 곡예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 사고의 후유중증으로 나는 신체와 관련된 것에 대해 일종의 소심증이 생겼다.

 

73. 나는 항상 무엇이 내게 닥치는지, 그리고 내가 신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알고 싶어했다. 아마도 이것은 수개월 동안 나를 버렸던 어머니와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74. 나는 그 광경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이렇게 생각했다. ‘세계는 아름답고 교회도 아름답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푸른 하늘 저 너머 황금보좌에 앉아 있다. 그리고......’ ..... ‘더이상 생각을 하지 말자. 무언가 무서운 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결코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왜 안 되는가? 왜냐하면 너는 가장 무서운 죄를 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인가? 살인? 아니다. 그것일 수 없다. 가장 무서운 죄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이며 그것은 용서를 받을 수 없다. 이 죄를 짓는 자는 저주를 받아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만일 부모가 그토록 아끼는 외아들이 영원히 저주받은 운명이 된다면 부모에게는 몹시 비통한 일이다. 나는 부모가 그런 일을 당하도록 할 수 없다. 나는 어찌해서든지 더 이상 그것에 관해 생각해서는 안된다!’

 

75. 만일 어머니에게 내가 혼란스러운 진정한 이유를 고백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 그 착한 어머니는 내가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고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려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나는 고백할 생각을 포기하고, 될 수 있는 한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있으려고 했다.

 

76. 누가 나로 하여금 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어떤 것을 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는가? 왜 내가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를 찬양하고 이 측량할 수 없는 선물에 대해 그분에게 감사하고 있는데, 나는 왜 상상도 할수 없을 만큼 사악한 어떤 일을 생각해야만 하는다. 나는 정말이지 그것이 무엇인지 말 모른다.

 

77. 아담과 이브는 최초의 인간들로서 부모가 없었다. 하느님에 의해 직접 그의 의도대로, 그들이 그러했던 모습 그대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하느님이 창조한 대로 존재해야만 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이 다르게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느님의 완전한 피조물이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오로지 완전한 것만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이 원치 않는 일을 행함으로써 최초의 죄를 범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하느님이 그들 안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지을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은 뱀이라는 존재로 인해 분명해졌다. 아담과 이브를 말로 꾀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이 그들보다 먼저 뱀을 창조했다. 전지한 하느님은 인류 최초의 부모가 죄를 범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모든 것을 마련해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지어야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였다.’ 이와 같은 생각이 나를 지독한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하느님 자신이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78. 하느님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이러한 곤경으로 밀어넣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방치했다. 나는 하느님이 의도한 대로, 스스로 혼자서 출구를 찾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78.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도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전통적인 도덕에 의하면 죄는 피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바로 그렇게 해왔으나 이제는 그런식으로 계속 나갈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78.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갈 수는 없었다. 하느님의 의지가 무엇이며 하느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전에는 복종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하느님이야말로 이런 절망적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힌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악마가 나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순간도 해보지 않았다. 악마는 그 무렵 내 정신세계에서 별로 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어쨌든 악마는 하느님에 비해 힘이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79. 내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를 의식하게 된 대략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통일성과 위대함, 그리고 초인성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여,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십대 초반에 의문을 품고 포기했던 일을 고작 열 살 조금 넘은 나이에 이렇게까지 생각한다.

 

80. 분명히 하느님도 내가 용기를 내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하느님은 나에게 은총과 계시를 내려주실 것이다.

80. 나는 내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느님은 세상 저 위 높은 곳에서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부터 거대한 똥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채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대성당의 벽들을 모조리 부수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히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정말 절묘한 계시가 아닐수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똥덩어리. 단박에 하느님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수단이다.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다음에 융에게 닥칠 갈등이 예상된다.

 

81. 내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는 체험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의지로, 아버지는 아주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깊은 신앙심을 내세워 그 의지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그렇게 지내왔고 그렇게 많은 신도들 앞에 목회를 했는데 이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게 과연 쉬울까.

 

81. 그러나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융처럼 이런 식의 하느님이라면 나도 한번 종교를 가져볼만한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저자들이(물론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하나같이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런 것 아닐까.

 

81. 하느님은 또한 아담과 이브를 그러한 방법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그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느님은 그들이 복종하는가를 알기 위해 그렇게 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종교적 전통으로는 내가 거부하고 싶은 것도 나에게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은총을 가져다준 것은 복종이었다. 그 체험 이후 나는 하느님의 은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느님에게 맡겨졌다는 것과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의미한 일에 나 자신을 넘겨주는 셈이 된다.

 

82. 어머니가 한번은 나에게 너는 언제나 착한 아이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착한 아이라고? 그것은 일종의 새로운 소식이었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타락하고 열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83. 나는 뭔가 나쁜 것, 뭔가 악하고 음울한 것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동시에 어떤 영예와도 같았다. 나는 사실 무엇에 관하여 말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말하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자주 느꼈다..... 나는 파문되었거나 선택되었다는 느낌, 저주받았거나 축복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83. 나의 청년시절 전체는 그 비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비밀로 인하여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졌다. 오늘날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그 비밀을 이야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이미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낀다. 그러나 그런 충동은 언제나 충동으로 끝나야 한다. 나의 경우도 그렇고 영화를 봐도 그렇고 융을 봐도 그렇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터뜨리면 항상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선의로 얘기했고 상대는 이해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아니었다. 하물며 이런 비밀을 털어놓으면 융은 어쩌면 자신이 조발성치매에 고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84. 어머니의 가족에는 여섯 명의 목사가 있고 아버지의 형제도 목사다. 얼마나 많은 종교적인 대화와 신학적인 토론, 설교 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걸 적마다 나는 이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래,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비밀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거지? 그것은 은총의 비밀이기도 하다. 당신들은 그 비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당신들은 내가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기 위해 심지어 나쁜 일을 하고 저주받을 일을 생각하기를 하느님이 원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84. 나는 아버지의 서재를 샅샅이 뒤져 하느님, 삼위일체, 영혼, 의식 들에 관한 책이면 무엇이든 읽어나갔다. 그 책들을 모조리 탐독했으나 그것으로 현명해지지는 않았다. 나는 또다시 이 사람들도 모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당연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의심이나 의구심을 가지지 않고 항상 옳은 것이라 가정한 상태에서 글을 쓰는데 답이 있을 리가 있겠나.

 

85.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자연과 사원

 

86. 아버지가 하는 말들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은 전혀 믿지 못하거나 소문만으로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할때처럼 진부하고 공허하게 들렸다.

 

86. 그후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와 수많은 토론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로 하여금 기적을 일으키는 은총에 대해 뭔가를 알게 하여 양심의 갈등 속에 있는 그를 돕고자 하는 은밀한 희망을 항상 품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면 모든 것은 최상으로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우리의 토론은 늘 만족스럽지 못하게 끝나버렸다. .... “,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말로는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고는 체념한 듯 몸을 돌렸다.

융조차도 아버지는 어쩔수 없는 존재인 듯 싶다. 그렇게 아들들은 아버지와 대화가 어렵다.

 

87. 나는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그후 나는 학급에서 2등에 머물렀는데 그것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했다.

전략전 선택. 굳이 1등을 해서 욕을 먹고 시샘을 받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나은 듯

 

88. 선생들은 대부분 나를 어리석고 교활한 아이로 여겼다. 학교에서 무슨 나쁜일이라도 생기면 우선 나에게 혐의를 두어싿.... 그때 나는 몇몇 학우가 나에 대해 적대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8. 하지만 그 후로 나는 편해졌다. 더 이상 아무도 나에게 감히 대들려고 하지 않았다.

괴롭히는 친구들을 혼쭐을 내주는 것이다. 이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내가 학폭에 대한 예방법 중 가장 통쾌하게 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폭력을 당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일단 학교에 얘기해라. 그러면 사실여부가 따져질 것이다. 그러나 해결은 잘 되지 않는다. 어떤 식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진 후에 그 친구들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괴롭힐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업시간에 제일 많이 괴롭히는 아이를 뒤에서 의자로 한번 내리치는 것이다. 죽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대신에 치밀하게 그 간의 기록을 정리하고 증거자료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당방위로 될 수 있고 다음부터는 어떤 친구도 보복이 두려워 괴롭히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보인다. 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89. 물론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 결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보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는 부모의 아들로서 학교를 다니고 다른 많은 아이보다 그렇게 썩 영리하거나 주의깊지도 않으며 근면하거나 단정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한 아이였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하나는 다 자란 어른으로 정말 늙고 의심이 많아 사람을 믿지 않고 인간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었다. 그대신 그는 자연과는 친밀하게 지냈다.

 

89. 자연은 나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에 의해 하느님의 자기표현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하지 않은 것처럼 하느님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하느님의 형상이 단지 인간하고만 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높은 산, , 호수, ...그리고 동물들이 인간들보다도 하느님의 속성을 훨씬 명료하게 보여주고 잇는 듯이 보였다. 인간들은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걸치고 비열함과 어리석음, 허영심, 위선과 혐오스러운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90. 그러한 세계옆에는 또 다른 영역이 있었다. 그 영역은 사원과 같아서 그 속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나 변화되었다. 그는 우주 전체의 광경에 압도되어 자기 자신을 잊을 정도로 다만 놀라고 경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그 다른 인물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하느님을 숨어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알고 있을뿐만 아니라 동시에 초개인적인 비밀로 알고 있었다. 여기서는 인간을 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마치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과 똑같이 창조의 과정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았다.

 

90. 내가 혼자 있는 순간이면 곧바로 이러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이며 참다운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존재, 즉 제2의 인격의 방해받지 않는 평온과 고독을 추구했다.

 

91. 나의 전생애에 걸친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내적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 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91. 교회는 점점 나에게 괴로운 장소가 되었다..... 거기선 나는 아무도, 심지어 목사까지도 그 비밀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체험을 통해, 은총은 오직 하느님의 의지를 철저히 실현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92. 나로서는 그 반대로 하느님의 의는 그 어떤 것보다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느님의 의지는 매일매일 탐색해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92. 나는 점점 더 회의를 느끼게 되었으며, 아버지와 다른 목사들의 설교가 나에게는 곤혹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별생각없이 온갖 모순, 예를 들면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여 당연히 인간의 역사를 미리 내다본다는 식의 모순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느님은 인간들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그렇게 창조했음에도 불가하고 죄를 짓지 말도록 금하고, 심지어 지옥불길의 영원한 저주로 벌을 주기까지 한다.

 

92. 악마는 오랫동안 내 생각 속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느님은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하느님’,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 들에 관하여 아버지가 감정에 북받쳐 설교하면서 찬양하고 권유할 때 나의 회의와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다. 다음과 같음 의심이 마음속에 일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인 나를 이삭처럼 인간제물로 삼아 칼로 찌를 수 있을까? 아니면 불공정한 법정에 내맡겨 예수처럼 십자에 못박히도록 할수 있을까?

 

93. 사람들은 하느님의 의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만일 사람들이 하느님의 의지를 안다면, 이 중심과제를 정말 하느님을 몹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경외심을 가지고 다루었을 것이다.

 

94.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언급되었지만,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유대적이라 여겨졌고, 오래전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관한 기독교 복음에 자리를 내주었다.

 

두 인격의 어머니

 

95. “도대체 누가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인가? 누가 남근상을 성소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전시할 정도로 무례한 짓을 한단 말인가? 하느님이 이토록 추악하게 자신의 교회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나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한 자는 누구인가?”나는 그와 같이 말하고 그렇게 행동한 존재는 하느님 아니면 악마일 거라는 사실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95. 이러한 것들은 내 생애의 결정적인 체험이었다.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96. 처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내 생애에서 그것을 실현해야만 될 것처럼 여겨졌다. 나로서는 결코 증명할 수 없었던 어떤 내적 확신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는 것을 내가 행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확신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었다.

 

97. 그녀는(어머니)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견해를 가졌으나, 그녀의 무의식적인 인격이 갑자기 돌출하곤 했다. 그 인격은 예상 외로 강력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어둡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나는 어머니 역시 두 개의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하나는 악의없고 인간적이었음, 거기에 반해 또 하나는 으스스했다.

 

98. “교양있고 예의바른 저 말쑥한 아이들을 보려무나. 하지만 너는 사람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버릇없는 아이야.” ....... 한참 후에 물론이지. 새끼들을 그 따위로 키워서는 정말 안 되지!”

1의 인격은 다른 어머니들하고 똑같고 2의 인격은 전혀 다른 어머니.

 

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신기가 있나. 처음 만난 사람의 인생사를 지어내서 얘기했는데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도둑이라고 지명한 청년이 진짜 도둑이었다니.

 

104. 이제 삼위일체교리를 공부할 차례구나. 하지만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하자. 사실 나도 이 대목은 잘 모른다. 나는 한편 아버지의 정직성에 감탄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깊이 실망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삼위일체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목사가 삼위일체를 모르는가. 하긴 진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105. 우리들이 성찬식 빵을 그의 몸인 양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몸이라는 것은 원래는 살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포도주를 마셔야만했는데 그것은 원래는 피였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예수와 한 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로서는 너무나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분명히 그 배후에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07. 나는 교제라든가 연합이니 합일이니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누구와 일체를 이룬단 말인가? 예수와? 그러나 그는 1860년전에 죽은 한 남자였다. 왜 인간은 그와 일체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하느님의 아들로 불렸으니, 그는 그리스의 영웅들처럼 반신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와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리켜 기독교라고 불렀으나, 내가 하느님을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 모든 것은 하느님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내가 종교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하지 못했던 내용을 속시원하게 얘기해주네. ! 마음에 든다.

 

108. 나는 그 의식에(성찬식) 다시는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그것은 종교가 아니었고 거기에는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았다. 교회는 내가 더 이상 가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나에게는 그곳이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있는 곳이었다.

 

109.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맡겨두면서 한 번도 강압하지 않았던 나의 사랑하는 관대한 아버지를, 하느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데 필요한 저 회의와 신성모독에 빠지도록 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어머니가 대단하신 분이다. 아들이 이런 생각을 존중해주고 목사아들이라는 굴레로 강요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할수 있도록 해주는 건 쉽지 않다.

 

110.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떨어졌다. 그것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

 

악의 기원

 

111. 비더만은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견해가 나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종교란 하느님이 나와 함께 이루는 그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것은 하느님 편에서의 행위로 나는 다만 거기에 맡겨져 있을 뿐이었다. 하느님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종교는 인간의 편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과 같이 거의 알지 못하는 그 어떤 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단 말인가?

 

112. 나는 나 자신의 자아와 유사하게 하느님을 상상하는 것에 대해 자못 심하게 반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직접적인 신성모독은 아닐지라도 지나친 오만이라고 여겨졌다.

 

113. 나에게는 자아라는 요소로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 즉 제 1의 인격과 제 2의 인격이 있었다. .... 자아는 또한 온갖 자기기만과 오해, 기분, 감정, 열정 그리고 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자아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훨씬 많이 겪었다. 자아는 유치하고 허영심이 강하며, 이기적이며 고집이 세며, 애정결핍이며, 탐욕스럽고 공정하지 못하며, 민감하고 게으르며, 무책임하며 그 외 나쁜 것들 투성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자아는 덕과 재능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덕과 재능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면 시샘하면서도 경탄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본질을 이런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다느 말인가?

논리또한 명쾌하다.

 

115. 나 자신은 하느님이 인간이나 짐슴이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잔인한 만족감을 느낀다고는 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느님이 대극의 세계를 창조하여 하나가 다른 것을 잡아먹도록 하고 인생이 죽음으로 향한 탄생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나의 제 1의 의문이었다. 왜 하느님은 착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고 나쁜 인간에게는 행복과돈을 주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융의 대답만으로도 부족하기는 하다. 결국 어쩔수 없고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잖아.

 

116. 하느님이 자연세계를 어느 정도까지 그의 선함으로 채웠늦지는 나에게 분명하지 않았고 그 사실이 지극히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하느님이 지선이라면, 그가 창조한 세계와 피조물이 왜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패하고 비참하단 말인가? 분명 악마에게 침투당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악마 역시 하느님의 피조물이었다.....나는 다시 교리책을 열어 고통과 불완전함과 악의 근거에 대한 화급한 물음의 답을 찾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116.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이 갑자기 밑도끝도 없이 너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한번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또한 알수 없는 계시로 봐야 하는가. 나도 파우스트를 다행이 읽었다. 같이 얘기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도 이런 부모가 되면 좋겠다. 아들, 딸을 보고 너는 무엇을 읽어야 한다고 말해줄수 있는 부모.

 

116. 그 책은 내 마음에 기적의 향유처럼 흘러들어왔다.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여기에 악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완전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방해하는 힘을 가진 적대자와 피로 계약을 맺기까지 한 자가 있구나

 

117. 나는 파우스트의 행동방식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나로서는 파우스트가 그렇게 한쪽으로만 치우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좀더 현명하고 또한 더욱 도덕적이어야만 했다. 자신의 영혼을 그토록 경박하게 도박에 거는 것이 나로서는 유치하게 보였다. 파우스트는 분명히 허풍쟁이였다!

 

117. 나는 이 희곡의 무게와 의미가 주로 메피스토펠레스 쪽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파우스트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어도 그에게 애석할 것이 없었다. ..... 나 같으면 그에게 뭔가 연옥의 불길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 그는 손해나는 장사를 한 셈이다.

 

117. 내가 보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메피스토펠레스 쪽에 있었다. 그의 모습은 나에게 달라붙어 떠나지 않았다.

 

118. 드디어 나는 악과 그 세계 장악력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괴테는 나에게 예언자라 할 만했다. 그러나 그가 메피스토펠레스를 단순한 놀이나 요술로 순식간에 해치워버린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118. 그 책을 읽고 나는 파우스트가 일종의 철학자였으며, 철학에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으로부터 진리를 위한 개방성을 분명히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철학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었으나, 새로운 희망이 내 안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해 숙고하고 나에게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철학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19. 크루그는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없으며 신이라는 관념의 선재성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후자의 행위로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잠재적으로는 인간 안에 본래부터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의 정신적 능력은 그토록 숭고한 관념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어느 일정한 수준까지는 이미 발달되어 있음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설명은 나를 무척 놀라게 했다. 이 철학자들은 뭐가 잘못된 것인가? 나는 자문해보았다. 그들은 단지 소문으로만 하느님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 신학자들은 하느님에 대해 모순된 말을 하고는 있지만 적어도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신하고 있었다.

 

119. 그렇다면 크루그는 왜 그 사실을(신의 존재에 대해 충분히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인가? 왜 그는 사람이 하느님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내며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일정한 수준으로 발달해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정말로 생각하는 것처럼 행하는 것인가?

 

120. 하느님의 존재는 우리의 증명 여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느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나에게 가능한 한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사실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120. 어떻게 하느님이 나에게는 자명한 것이 되었을까? 하느님의 존재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과도 같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이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일종의 관념이며 자기들이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임의적인 가설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 무렵 나는 하느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불현 듯 깨닫게 되었다. 대성당과 관련된 저 경악스러운 일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이와 반대로 그것은 나에게 밀려온 것이었고, 그것을 생각하도록 나는 아주 잔혹하게 강요당했다. 하지만 그런 후에 형언할 수 없는 은총을 받았다.

하지만 융의 경험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 아닌가. 기독교, 카톨릭 신자들이 융의 경험에 대해 누가 동의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마음으로는 이해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실체가 있어야 되는데 그저 꿈으로만 이야기한다는 것은 설득이 부족하다. 솔직히 그런 꿈은 교회에 대한 불신이 쌓고 쌓여서 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일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121. 나는 하느님의 어두운 행위에 관한 어떤 의견이나 설명을 발견하지 못해 무척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하느님의 어두운 행위는 특별히 철학적 관심을 기울이고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121. 악마가 본래부터 악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명백한 모순, 즉 이원론에 빠져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악마도 원래는 선한 것으로 창조되었으나 그의 오만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다고 가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은 그것이 설명하려고 하는 악이 이미 자만심이라는 악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 지적을 읽고 대단히 흡족했다. 그밖에 악의 기원은 설명되지도 않고 설명할수도 없는것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그 말은 그도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숙고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악과 그 기원에 관한 항목은 둘 다 시원하게 밝혀주는 것이 없었다.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123. 독서는 재미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편안하게 기분전환이 되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제 2의 인격이 야기한 그 작업은 나를 점점 더 침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문제의 영역에서 나는 단지 굳게 잠긴 문들만 만났고, 어떤 문이 우연히 열렸다 해도 나는 결국 실망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딴 사람들은 정말 모두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나는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124. 내가 미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빛과 어둠은 비록 중압감을 주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이해될 수 있는 사실들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25. 나에게 여러 면에서 강요된 단 한번의 사건으로 인한 저주받을 고독에서 어찌해서든지 빠져나오고 싶었다.

확실한 답이 있다면 얼마나 명쾌할까. 그러나 나는 세상 모든 것의 존재가 입증된다면 얼마나 허망할까를 생각해본다.

 

126.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너는 이런 작문을 지금까지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을 거야. 그래. 어디서 베꼈지?

참 황당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융은 꼭 분노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선생님도 그의 작문실력을 인정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이런 작문 수업이 없을까. 미국이나 스위스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필요한 수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아직 그대로이니.

 

127. 나를 격분시킨 것은 그들이 나를 사기꾼으로 추정하여 나를 도덕적으로 망하게 했다는 점이었다.

 

129. 사람들도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인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고 땅바닥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나무를 올려다보기도 했다. 동물처럼 무리를 이루고 짝을 짓고 서로 싸웠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있는 우주 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 있는 영원 속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130. 동물들은 사랑스럽고 충직하며 변덕스럽지 않고 믿을 만하였으나, 인간들은 나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믿을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130. ‘신의 세계가 지상에 나타난 것은 일종의 직접적인 메시지에 의해 식물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마치 자기를 관찰하는 자가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창조자의 어깨 너머로, 그가 어떻게 장난감이나 장식품을 만들고 있는가 사람들이 바라본 것과도 같았다. 이에 비해 인간과 정상적인동물들은 자립한 신의 분신들이었다.

 

131.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숲을 갈 때 기분이 상쾌하고 뭔가 치유되는 듯한 느낌도 이런 기저가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131. 고딕양식의 대성당들을 알게 됐을 때 거기서는 우주의 무한함, 의미와 무의미의 혼돈, 주관없는 의도성과 기계적인 법칙의 혼란 들이 돌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돌은 존재의 끝없는 신비, 영혼의 진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 점에서 나는 돌과 나자신이 서로 유사하다고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 그 양쪽에 다 신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돌과 일체가 되는 감정. 어떤 큰 돌이나 바위, 산을 봤을때는 모를까 손에 쥘수 있는 그런 돌멩이를 봤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낄수 있을까.

 

132. 열여섯 살에서 열아홉 살 사이에 내 딜레마의 구름이 서서히 걷혀갔다. 침울한 기분도 나아지고 제1의 인격도 점점 더 명료하게 나타났다. 나는 학교와 도시생활에 정신을 빼앗겼고, 증가된 나의 지식은 예감으로 가득한 영감의 세계를 차츰 침투해 들어가 억압했다.

 

132. 나는 철학사에 관한 작은 입문서를 읽었고, 그로 인해 이미 사색되었던 모든 사상에 대한 일종의 개관을 얻게 되었다. 만족스럽게도 나는 나의 많은 영감이 그 사상들과 역사적인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때 철학을 배운적이 있던가 싶다. 이제야 철학의 맛을 알아가고 있는데 일찍 알았더라면 더 좋았지 않을까. 모든 교육이 아쉽다.

 

133. 스콜라 철학, 성토마스 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맏아들이지도 않고 진정으로 알고 있지도 않은 것을 논리의 곡예로써 억지로 꾸미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체험이 문제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133. 헤겔은 난해하고 거만한 문체로 나를 겁먹게 해서 나는 노골적인 불신감으로 그를 대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언어구조 속에서 갇혀 그 감옥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몸짓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철학자들을 이렇게 단정할수 있는 건 정말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냥 부럽네.

 

133. 나의 탐구가 가져다 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 그런데 여기에 비로소 세계가 어쩐지 가장 좋은 것만을 기초로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철학자가 나왔다. 그는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창조의 섭리나 피조물의 조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134. 그 대신 인류역사의 고통스러운 과정과 자연의 잔인성에는 일종의 결함, 즉 세계창조의지의 맹목성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134. 내가 인간들과 엮은 경험도 인간 본래의 선함과 도덕성에 대한 신뢰와는 전혀 다른 면들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나 자신이 동물과 이를테면 정도의 차이만 날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134. 나는 쇼펜하우어의 음울한 세계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으나 그의 문제해결 방법까지는 찬성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의지라는 말이 사실은 신과 창조주를 뜻한다는 것과, 그가 이를 맹목적이라고 일컫는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을 요구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34. 하지만 그런 만큼 더 많이 다음과 같은 그의 생각에는 실망했다. , 맹목적 의지를 역전시키기 위해서은 오직 지성이 그 의지에게 자신의 관념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의 의지는 맹목적인데 도대체 어떻게 그 의지가 지성의 관념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비록 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지성의 관념은 신의 의지가 바라는 바를 그대로 보여줄 텐데 무슨 이유로 이를 통해 그 의지가 역전되도록 움직여질 것인가? 그리고 지성이란 무엇이던가? 지성은 인간 마음의 기능으로, 마치 한 아이가 태양의 눈이 멀기를 기대하면서 태양을 향해 들고 있는 지극히 작은 거울 한 조각과도 같다.

 

135. <순수이성 비판>은 몹시 골머리를 앓으며 읽었다. 그런데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체계에서 근본적인 결함을 발견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순수한 본체, 사물 그 자체를 인격화하고 그 성질을 규정하여 형이상학적인 진술을 하는 심각한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칸트의 인식론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그 인식론은 어쩌면 쇼펜하우어의 염세적인 세계상보다 더욱 큰 깨달음을 나에게 주었다.

 

135. 이러한 철학적 발전은 열일곱 살부터 의학공부를 하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내가 수줍고 소심하고 의심 많고 창백하고 마르고 병약한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왕성한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리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았겠지. 십대 후반에 쇼펜하우어와 칸트라. 그리고 그것을 철저하게 연구해서 결함까지 밝혀낼 정도라니 그의 능력은 얼마인가. 새삼 부럽네. 40대에 겨우 <철학 이야기>를 읽었고 겨우 맛뵈기만 봤는데.

 

136. 또한 나는 확실히 붙임성이 있고 속이 트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씬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나 가난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 융에 대한 가난에 대한 얘기를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136.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곧 알아차리고 후회하게 되었다. 나는 서먹함과 조소뿐만 아니라 적의에 찬 배척과 마주쳤다. 어떤 사람들이 나를 허풍쟁이요 사기꾼으로 보는 것을 알고 나는 몹시 놀라고 불쾌했다.

이걸 봐서는 융도 보통 사람이다. 높은 감정과 이성을 지닌 사람은 주위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거늘 인간적인 융을 만나게 된다. 하긴 10대 시절이니 당연히 그럴수 있다고 본다.

 

137. , 내가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성의없는 태도로는 인생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거야. 인생이란 진지함과 성실성, 노동과 노력이 요구되는 법이야. D군의 작문을 보라구. 그건 너의 작문만큼 우수하지는 않지만 그 대신 정직하고 성실하며 근면해. 그것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이란 말이야.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융을 좌절케 하는 선생님들의 지적. 우리나라나 스위스나 해서는 안될 비교, 비난을 하고 있다. 그나저나 그의 작문내용을 보고 싶네.

 

137. 나는 이 사건으로 분노가 치밀었는데, 나에 대한 학우들의 의심이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 내가 사람들이 알 리가 없는 것들에 관해 자주 발언하거나 넌지시 의견을 말하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학교 과목에는 전혀 들어 있지않은 칸트나 쇼펜하우어, 또는 고생물학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첨 젠체했다는 것이었다.

너무 잘나도 문제다. 이런 애들을 많이 봐왔지. 적당히 잘난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이 기질이 있는 융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꼭 보면 정말 베스트프렌드가 있기 마련인데 혼자이네.

 

138. 무엇보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 안에서 두 세계로 나누어진 분리를 지양하려는 나의 노력이 저지되고 마비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를 보통의 일상적인 존재로부터 무한한 신의 세계로 밀어넣는 사건들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138.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139.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더욱 자주 물어왔다.

 

139. 자연과학에서는 역사적 초기단계를 지닌 구체적인 사실이 마음에 들었고, 종교학에서는 철학이 포함되어 있는 영적인 문제가 그러했다. 하지만 나로서 서운한 점은, 자연과학에서는 의미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고, 종교학에서는 경험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다.

 

141.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불쌍한 아버지가 내적인 의혹으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여 맹목적인 믿음만을 주장했다. 그는 그 믿음을 쟁취해야만 했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강요하려고 했다.

 

143. 아버지의 충고를 따르고자 한다면 신학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신학자만 아니라면 말이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성직자로서 걸어온 자기의 길에 확신이 있고 하느님에 대한 경험을 했다면 신학을 하라고 했을텐데 신학자만은 되지 말라고 한다. 얼마나 그 길에 후회가 깃들였으면 그럴까

 

144. 예컨대 아버지는 내가 왜 자주, 될 수 있는 한 교회에 나가지 않으려 하는지, 왜 더 이상 성찬식에 참석하지 않는지에 대해 나에게 답변을 요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교회와 거리를 두면 둘수록 더욱 마음이 편해졌다.

아들에게만은 평생 굴레를 씌어주기 싫었단게지. 융의 아버지는 원해서 목사가 된 것일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의사인데 목사가 된 것을 보면 본인의 선택인 것 같다.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146. 의사가 그 당시 쇠약해진 나의 건강상태와 변덕스러운 식욕을 고쳐보려고 엔틀레부흐에서 휴양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이런 처방도 한다니. 서양은 이런 부분에서 멋지다.

 

146. 내 아버지도 철학박사였지만 문헌학자요 언어학자였다.

 

147. 그러니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그 음료는 술이므로..... 나는 다양한 작은 술잔에 너무나 고무되어 예기치 않았던, 전혀 새로운 의식상태로 옮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는 더 이상 안과 밖이 따로 없고 나와 타인, 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조심스러움과 소심함도 없었다. 땅과 하늘, 세계와 그 안에서 기고 날고’, 돌고, 올라가고, 떨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

술을 알아야지 인생을 제대로 아는거지.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원하지 않지만 술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선물이다. 그걸 융이 안 것이다. 1, 2의 인격이 합쳐지기도 하고 제2의 인격이 주도가 되기도 한다.

 

148. 나는 생각했다. ‘굉장하구나. 단지 유감스럽게도 약간 도가 지나쳤을 뿐인데.’ 이 경험의 결과는 괴로운 편이었으나 그것은 아름다움과 감각에 대한 하나의 발견과 예감으로 남았다.

 

149. “너는 혼자서도 리기산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나는 여기 남아 있겠다. 두 사람 다 올라가려면 차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말야. 조심하고 어디서나 떨어지지 않도록 해라.” ..... 이제 나는 이 어마어마한 산에 와 있다! 나는 산과 나 둘 중에서 어느 편이 더 큰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점점 더 새로운 깊고 먼 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다가 마침내 나는 산꼭대기에 서게 되었다. 산소가 희박한 익숙지 않은 새로운 공기 속에,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조망 가운데 그렇게 서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세계다. 나의 세계, 고유한 세계요, 그 비밀이다. 이곳에는 선생도, 학교도, 해답 없는 문제도 없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도 있는 곳이다.’

동네 작은 산과 한라산의 차이일 것이다. 마치 신을 대면한 것과 같고 신들의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일 거이다.

 

150. 이 여행은 아버지가 일찍이 나에게 준 것들 중에서 가장 값지고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151. 클라우스 수도사의 아내와 자식들은 성자인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의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어떻게 사람이 성자와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에 성자는 은둔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151. 나는 이런 생각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 가족들은 한 집에 살고 나는 다른 곳, 집에서 약간 떨어진 막사에 사는 것 말이다. 나는 그 오두막에 수많은 책과 책상을 갖다놓고, 불을 피워 밤을 굽기도 하고..... 성스러운 운둔자로서 나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대신 나 자신만의 개인 예배처를 갖게 될 것이다.

 

152. 말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운명적인이상한 감정에 싸이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막 내 앞에 나타났는데도 마치 우리가 하나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걷고 있구나나는 그녀를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딘지 수줍음과 경탄이 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당황했으나 왠지 마음에 들었다.

 

153. 이 만남은 외견상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어서, 이 만남은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길가의 기념비처럼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154. 그 누가 성클라우스로부터 어여쁜 소녀에게로 이어지는 운명의 실을 발견할수 있단 말인가?

 

154. 대극(對極)의 충돌로부터 내 생애 처음으로 체계적인 환상이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158. 식물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오직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스러운 의미, 일종의 신의 뜻이었다.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159. 식물은 분명히 순진무구한 신성한 상태에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식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었다.


아름다운 시간들 - 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163. 나는 김나지움시절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대학에 진학해서 물론 자연과학을 공부할 것이고, 뭔가 참다운 지식을 얻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공연히 다짐을 하자마자 벌써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나는 역사나 철학이 적성에 맞는 것이 아닐까? 그러자 다시금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에 관한 것에 강하게 마음이 끌렸고 고고학자가 제일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바젤을 떠나서 유학할 수 있는 돈이 없었다. 또한 바젤에는 이런 분야를 가르칠 만한 선생도 없어 이 계획은 접고 말았다.

집이 가난하므로 어떻게 보면 적성보다는 가장 돈이 되는 전공을 선택했을텐데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무엇으로 해야할지 선택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부럽다.

 

164. 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모르고 있어.

 

164. 그 순간 나는 자연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사시대 뼈와 맞닥뜨리는 꿈을 꾸고 난 다음에 융의 해석

 

165. 이 두 개의 꿈이 나로 하여금 자연과학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 점에서는 나의 회의가 사라졌다. 이번 기회에 나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야 할 때가 왔으며 그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첫 번째 꿈은 무덤을 파 선사시대 동물의 뼈와 맞닥뜨리는 것이고 두 번째 꿈은 연못에 기묘하게 생긴 생물이 반쯤 잠긴채 누워 있는 것이었다.

 

165. 왜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독일어 선생이 근면성과 성실성의 표본이라고 치켜세웠던 공부벌레 D군도 신학공부를 하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165. 이와 같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내가 의학을 공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시처럼 떠올랐다.

정말 계시일까? 아니면 돈, 명예, 권위를 봤을 때 의사가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와 성공을 보장해주니 그런 계시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166.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내게 확고했으나 다만 어떻게 공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스스로 벌어야만 했으며, 돈이 없기 때문에 학문적인 행로를 준비하기 위해 외국 대학에 다닐수도 없었다.

 

166. 그리하여 내가 최종적으로 의학을 택했을 때도, 인생을 그런식의 타협으로 시작한다는것은 좋지 않다는 언짢은 감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취소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졌으므로 내 마음은 상당히 홀가분해졌다.

 

166. 이제 정말 괴로운 문제에 당면했는데, 그것은 어디서 대학공부에 필요한 돈을 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 아버지는 바젤대학에 장학금을 신청했으며 부끄럽게도 나는 그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내가 부끄럽게 여긴 이유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테면 모든 사람, 즉 유력한 분들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학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난이 아무리 큰 문제가 안된다고 얘기는 쉽게 하지만 남들이 나의 가난을 아는 건 자존심도 자존심이고 기분이 유쾌한 것은 아니다. 융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한다.

 

167. 나는 나 자신이 아버지와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느꼈다. 사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1의 인격의 눈으로 바라본 나라는 인간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보통 수준의 재능을 갖춘 청년으로, 허황된 야심과 세련되지 못한 거친 기질, 모호한 태도 들을 지니고 있었다. 즉시 천진난만할 정도로 흥분하는가 하면, 또 금방 변덕스럽게 유치한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깊은 내적 본질로는 세상에 등을 돌린 반계몽주의자였다. 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168. 2의 인격은 도저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투철한 생명력으로 태어나고 살고 죽고, 하나이면서 온갖 것이요 인간성의 전체상이었다. 2의 인격은 자기 자신으로서는 냉혹할 정도로 분명했으나 무능하고 의욕이 별로 없었다. .....2의 인격이 우세할 때는 제1의 인격은 제2의 인격에 묻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반대로 제1의 인격은 제2의 인격을 어두운 내적 영역으로 보았다.

 

169.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의 살아 있는 등가물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해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러한 통찰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적 안정감과 인류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다. 나는 더 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며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나 이를테면 잔인한 자연의 희롱물도 아니었다. 나의 대부요 보증인은 위대한 괴테 바로 그 자신이었다.

 

169. 나는 경탄하긴 했지만 <파우스트>의 최종적인 해결은 비판했다. 메피스토펠레서에 대한 장난스러운 과소평가가 내 마음을 상하게 했다. 파우스트의 비열한 불손, 무엇보다 필레몬과 바우키스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170. 나 자신의 인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170. 그때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1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과제는 그 빛을 지키고 그 투철한 생명력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170. 나는 제1의 인격으로서 공부, 돈벌기, 책임, 분규, 혼란, 과실, 복종, 패배 들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171. 과거는 무서울 정도로 바로 여기에 실재하며, 충분한 해답으로써 몸값을 치르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끌고 가버린다. 그 당시 나의 세계관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나는 나의 길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외부로, 제한된 세계 속으로, 삼차원의 어둠속으로 이끌려 가고 있음을 인식했다.

 

171. 나는 자문해보았다. “어디서 이런 꿈이 오는 것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꿈들은 당연히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수많은 인식비판을 익혔기 때문에 의혹이 거세게 일어났다.

 

171. 진정한 문제는 왜 이러한 과정이 일어났으며 왜 그것이 의식을 뚫고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 그러므로 어떤 것이 배후에서 비밀리에 작용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어떤 지적 존재, 아무튼 나보다는 지능이 높은 무언가가 말이다. 의식의 관점에서는 내적인 빛의 영역이 거대한 그림자라고 하는 천재적인 생각은 나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172. 이제 나는 이전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내가 내적 영역을 상기시키는 어떤 것을 넌지시 암시할 적마다 사람들 위에 드러워지던 그 의아함과 서먹함의 차가운 그림자를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172. 내가 제2의 인격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경우라도 내 앞에서 제 2의 인격을 부정한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 2의 인격이 꿈의 생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72. 나는 나 자신이 점점 제1의 인격과 동일화되는 것을 느꼇으며, 이러한 상황은 훨씬 더 포괄적인 제2의 인격의 단순한 일부임이 판명되었다.

 

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그런데 가족정신은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시대정신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는다. 시대정신 자체는 대개 무의식적이다. 이 가족정신이 전반적으로 동의를 표시할 경우 그것은 일종의 세계확실성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정시닝 많은 것과 대립하여 스스로 어긋나버리면 세계불확실감이 생겨난다.

 

174. 돌이켜보면 내 어린시절의 발달이 미래의 사건들을 얼마나 미리 잘 말해주고 있으며, 아버지의 종교적 좌절과 오늘날 세계상의 충격적인 계시에 대한 적응법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그러한 계시는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미 그 그림자를 던져온 것이었다.

 

174.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175. 서양 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인간에 깃들어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178. 내가 보기에 어떤 특별한 것이 아버지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했으며, 짐작컨대 그것은 아버지의 종교적 세계관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일련의 암시를 통해 그것이 종교적인 회의라는 것을 확신했다.

 

178. 나는 아버지가 이런 모든 기회를 잡아서 자신의 상태와 투쟁적으로 대결하지 않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비판적인 질문들이 아버지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래도 나는 건설적인 대화를여전히 기대했다.

 

179. 왜 그는 그런 싸움을 모든 피조물의 비밀스러운 창조자이며 세계의 고통에 대해 실제로 책임이 있는 단 한 분인 하느님과 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은 불가사의하고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는 저 꿈들 중 하나로 아버지에게 대답했을 것이 틀림없다. 하느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에게조차 그런 꿈을 보여주었으며 나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렇다. 하느님은 나에게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잠깐 볼수 있도록 허락하기까지 했다.

 

180. 신학은 아버지와 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나는 그것을 다시 한번 숙명적인 패배로 여겼지만 그렇다고 물론 고독감에 빠지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에 꼼짝없이 매여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외로웠고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 주변에는 구원의 말을 해줄 만큼 신뢰가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럴땐 와이프가 최고인데. 완전히 내편에서 많은 걸 같이 얘기할수 있는데. <파우스트>를 아는 여자인데 대화가 안될까.

 

181. 만일 그들이 그 빛을 보았다면 신학적인 종교를 가르칠 리 만무했다. 그 신학적 종교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신에 대한 체험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주지 않고 믿기를 요구했다.

 

181. 아버지는 이것을 온힘을 다해 시도하다가 좌초하고 말았다. 또한 아버지는 정신과의사들의 터무니 없는 유물론에 대해서도 자신을 방어하기가 힘들었다. 유물론 역시 신학과 마찬가지로 믿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다 인식론적 비판이나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181. 아버지는 정신의학자들이 뇌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 영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물질이 존재하고 공기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분명히 여기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의학공부를 하더라도 결코 유물론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여러 경고와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182. 내가 보기에 신앙의 가장 큰 죄는 경험을 앞지르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신학자들은 하느님이 어떤 사물들은 의도를 가지고 배치하고 다른 어떤 사물들은 그냥 방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정신의학자들은 물질에도 인간정신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183. 나는 아버지의 인생이 대학 졸업과 함께 결정적으로 정지되어버렸다는 사실을 홀연히 깨달았다. .. 그들은 눈을 내리깔고 대학을 떠나 속물의 땅으로 돌아갔도다. 오 저런, 저런, 저런, , 얼마나 변해버렸던가!

융의 아버지도 무언가에 이끌려 목사가 되었을 텐데 그 무엇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 무엇이 잘못되었다는걸 알게되어서 그랬을까. 그냥 포기하면 되는데 자존심, 죄책감등이 그를 내몰았을 것이다.

 

184. 세계는 나에게 그러하듯 아버지에게도 활짝 열려 있었다. 무한한 지식의 보물이 내 앞에도 놓여 있었다. 무한한 지식의 보물이 내 앞에처럼 아버지 앞에도 놓여 있었다. 그러한 아버지를 온통 기죽게 하고 우둔하게 만들고 쓰라리게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85.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지금 돌아가셨구나.” 그 말은 나에게 이런 의미로 들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너에게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나에게 몹시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낡은 시대의 한 조각이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것을 느꼈다.

종교적 자유를 주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비록 자유를 주었지만 아버지가 목사인데 교회에 대못을 박을수는 없지 않나.

 

187. 회고하건대 대학시절은 나에게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모든 것은 정신적으로 활기를 띠었고 또한 우정을 나누는 시기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대학은 무한한 자유를 누릴수 있는 시간이다.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청춘들이 안쓰러워 보인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191. 리츨의 신학은 그 당시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의 역사적인 견해와 무엇보다 철도열차비유(증기기관이 뒤에서 한 차량을 밀면 그 힘이 다른 차량들로 전달되어 기차가 움직이듯이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그러하다는 설명)는 나를 화나게 했다.

 

192. 나는 그리스도를 전면에 내세워 그를 하느님과 인간의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유일한 인물로 만드는 견해에 대해 동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리스도가 없으면 신도들이 누구를 믿나. 사람들은 원래 하느님보다 실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더 의지하지 않을까.

 

192. 신학적인 견해와 동떨어진 비정통적인 견해로 인해 내가 느꼈던 실망감은 차츰 나를 일종의 체념적인 무관심으로 이끌었으며, 이 문제는 경험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나의확신이 더욱 깊어졌다.

 

192.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서 나오는 말인데 그 모든 것은 적절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그 정원이란 자연과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3.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193. 아무튼 어느 시대나 세계 어느 곳이나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반복해서 보고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디서나 똑같은 종교적인 전제들이 있었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 영혼의 객관적인 형태와 관련 있음이 틀림없었다.

생긴 외형만 달랐지 전 세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유령, 귀신. 귀신의 존재는 안 믿는데 여기서 또 믿어야 하는 것인가

 

194. 심령술 문헌들은 모조리 독파했다..... 나는 한편으로 그들이 유령이나 책상이동 같은 일들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거짓이라고 확신있게 주장하는 것을 보고 놀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한 성격을 띤 것 같은 그들의 방어에 대해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194. 하지만 왜 유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195. 날씨나 지진을 미리 알아차리는 동물들도 있고, 어떤 사람의 죽음을 일러주는 꿈, 임종시에 멈춰버린 시계, 결정적인 순간에 부서진 컵 들도 있었다.

 

197.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198. 니체의 외견상 결함, 예를 들면 신사인 체거드름을 피우는 행동, 피아노를 치는 겉멋 든 태도, 과장된 문체 등 그 당시 바젤 시민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그의 기행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198. 나는 나 자신이 니체를 닮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을 느끼며 주춤했던 것이다..... 자신의 또하나의니체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199.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이 책은 괴테의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아주 강렬한 체험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이제 나의 제2의 인격은 차라투수트라였다.

 

199.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의심의 여지 없이 병적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제2의 인격도 병적이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공포감에 젖게 했다. .....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200. 칸트는 그 천재성에 힙입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제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 그리고 그는 줄타는 광대로서 자기 자신의 한도를 넘어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알지 못했고, 신들린 사람으로 주변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201. <파우스트>가 나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차라투스트라>는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201. 우리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202. 나는 이전보다 더 경험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을 좋지 않게 여겼다.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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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7 12:48:14 *.18.187.152

p. 45에 어린 것이!라는 평 재밌네요 ㅋ 융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셨네. 그러게요 할아버지는 의사였으니 목사가 된 것은 본인의 선택이었을 건데. '신끼'가 있는 마눌을 만나 괴로웠던 걸까요. 융의 어머니가 죽기 전 아버지가 융의 꿈에 나타나 결혼생활에 대한 상담을 했다는 대목을 읽고 너무 웃펐어요.


그나저나 기상씨에게서도 약간 신앙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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