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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6일 11시 46분 등록

연암의 이승일기

 

극락이 이다지도 지루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이 곳으로 오면서 구차한 육체야 벗어 던졌지만 나의 영혼은 여전히 새로운 곳을 찾아 떠돌고 있다. 나의 기질이 느긋한 극락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옥황상제가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법령을 맹그노니 자유로운 영혼은 가끔 지상으로 내려가도 좋다고 하였다. 단 비슷한 기질의 영혼을 품은 인간과 함께 해야만 다른 시간대를 여행할 수 있다 한다. 이런 연유로 18세기 조선인 나 박지원은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내려가 김리아라는 사람과 함께 시간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나의 이승 여행기를 적어볼까 하노라.

 

이승에 도착하니 연호는 2017,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었다. 1805년에 이 땅을 떠났으니 212년만의 방문이다. 고작 200여 년이거늘 세상은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의 오묘한 부분을 글로 다시 옮길 수 없으니, 정말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친구들과 곧잘 만나던 백탑 근처(지금은 파고다 공원이라 불리운다)에서 리아씨를 만나기로 했다. 내가 연행을 떠났던 44세의 모습으로 그녀는 나타났다.

 

박지원 선생님이시죠? 반갑습니다. 열하일기 읽고서 선생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나도 무척 반갑소. 필담을 하지 않아도 되어 매우 편하오만 잘 모르는 말이 나오거든 언제든 질문하겠소.”

 

, 저처럼 선생님도 질문이 많으실 거예요. 우리는 비슷한 성격유형을 가지고 있거든요. MBTI라는 성격유형도구가 있는데 제가 좀 알려드릴까요? 저는 선생님을 이걸로 파악해 보고 싶어서요.”

 

! 엠 거시기는 무엇인가? 기록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알려주게.”

 

내가 살던 시절에는 사상체질로 사람을 나누었다면, 그녀가 알려준 성격유형은 16개라 한다.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붓을 들어 자세한 설명을 청하였다. 그녀에 의하면 나는 16가지 유형 중 ENFP(스파크) 유형으로 보인다고 한다. 아래는 나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다.

 

에너지 방향 = 외향적인 E (Extraversion)

선생님은 1737년에 태어나 1805년에 이승에서 68년간 여행하셨군요. 선생님은 외부세계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에너지를 사용하시는 편이라 에너지 방향은 E(외향)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당시 조선 선비들은 죽을 때까지 조국 강토를 떠나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멀리 열하까지 가셨어요. 저도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승덕’(‘열하의 현재 지명이예요)을 가봤는데 북경에서 내린 후 다시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갔어야 했어요. 비행기 타고 또 차 타고 들어가려니 번거로운 감이 있었는데 선생님 당시에는 말을 타고 강을 건너며 조선에서 열하까지 가는 과정이 고되고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겠어요. 그럼에도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으로 신나게 여행하시는 마음이 읽혀서 저도 재미있었어요.

 

인식기능= 직관E (iNtution)

인식기능은 N(직관)으로 생각됩니다. 사물이나 사건 이면의 의미나 관계, 가능성을 더 잘 인식하시는 거 같더군요. 길 위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오감의 놀라움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면의 작동원리까지 꿰뚫고 파악하시더라구요. 게다가 여행 중 마주치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조차 도를 깨우치셨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자는 귀나 눈에 얽매이지 않고,귀나 눈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 할수록 더욱 병이 되는 법이라구요.

 

판단기능= 감정 F (Feeling)

판단기능은 F(감정)라고 생각됩니다. T(사고)F(감정)의 경계에 있는 거 같긴 한데 선생님의 시대를 감안하면 F가 더 작동한다고 봐도 되겠어요. 논리적, 분석적 근거보다는 개인적, 사회적 가치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죠. 선생님은 어떤 틀에 갖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넘어 자유롭게 사고하고 판단하셨어요. 보통 사람들에게 로 씌어지는 태생적 한계를 선생님은 벗어날 수 있었죠. 그렇기에 명문가에서 태어났음에도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이 천시하던 무관, 장사치들과도 잘 어울리셨구요. 당시의 대세였던 북벌론에 찬동하지 않고 벗들과 함께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북학론을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생활양식= 인식 P (Perceiving)

생활양식은 P(인식)라고 할 수 있겠어요. 외부 세계에 대해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게 접근하죠. 선생님은 사회적 주류에서 이탈하여 자유롭고 유목민적인 삶을 살았죠. 아드님(박종채)에게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이라는 글자를 써주며 천하의 모든 일이 이 여덟 자로부터 잘못된다고 하셨다면서요? 늘 하던 일이라고 여겨 만사를 그대로 따라 하고, 마음 편한 것만 찾아 매사를 임시변통으로 처리하는인순고식 구차미봉의 태도가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라는 지적에서 선생님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어요.

 

*

 

요약하자면 선생님은 ENFP(스파크형) 유형이라 할 수 있어요. 저도 ENFP 유형이라 선생님의 삶과 글을 유심히 살펴 봤어요. 선생님에게 삶이란 가능성으로 가득 찬 창의적인 모험이죠. 당시의 연행 자체가 지금 김병만의 정글 탐험 못지 않은 굉장한 모험이었잖아요. 항상 새로운 관점을 갖고 사물과 상황을 바라보고자 하죠. 기존에 하던 일을 다시 하게 되면 이전에 하던 방식대로 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선생님 특유의 연암체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오오!! 맞네, 맞아. 하지만 정조는 나의 문체를 싫어했지.”

 

어떤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조직이나 존재하는 걸요. 그 와중에도 선생님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독창성이 사람들에게는 매력으로, 그러나 조직에게는 불편함과 위험으로 느껴지는 거죠. 선생님은 영감과 직관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고 역시 자유로워 양반전, 허생전과 같은 풍자와 해학, 통찰이 가득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거예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가장 동기부여가 잘되고 사회나 가정의 전통, 관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시죠. 그러니 조선사회에 변혁을 꾀하겠다는 동기에서는 그렇게 고생을 하며 야밤에 강도 건너고 언어장벽이 있으면 필담을 해서라도 소통을 꾀하신 반면, 과거 시험을 치를 때에는 능력이 분명 있으면서도 소나무 그림을 휘갈기고 나오는 돌발행동을 보이시는 거죠.”

 

거 참 묘할세. 나의 행동이 모두 설명되는군. 자네가 보기에 나의 대인관계는 어떠한 거 같은가?”

 

선생님 대인관계가 좋았다고는 하는데 저랑 비슷한 유형이라면 모든 사람과 좋지는 않을 것 같다고 짐작했어요. 저도 기본적으로는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호불호가 강하거든요.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답답해서 쳐다보지도 말을 주고 받지도 않아요. 주로 사고가 경직되어 꽉 막혀 있고 답답한 사람을 싫어하더라고요. 그게 그 사람 탓도 아닌데 말이죠. 저랑 비슷한 성향이라면 선생님도 접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냥 좋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그녀의 말은 맞았다. 나의 대인관계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들녀석 종채는 과정록에서  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버지는 사람을 대하여 담소할 적에 언제나 격의 없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자리 중에 있어 말 중간에 끼어들기라도 하면 기분이 상해 비록 하루 종일 그 사람과 마주하고 앉았더라도 한마디 말씀도 나누지 않으셨다.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그러한 태도를 단점으로 여겼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랬다.

 

현대의 성격유형이나 내가 살던 시절의 분류나 크게 다를 것 없다. 나는 타고난 기질이 매우 강건하여 늘 쉽게 타협하지 못하였다. 나를 종유(從遊)하였던 김기순은 연암은 순수한 양기(陽氣)를 타고나서 반 푼의 음기(陰氣)도 섞여 있지 않다. 그래서 지나치게 고상하여 매양 부드럽고 억누르는 공력이 모자라고, 지나치게 강하여 항상 원만한 면이 부족하니 태양인이다.’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나 역시 나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내 타고난 기질의 병이니, 바로잡고자 한 지 오래되었지만 끝내 고칠 수 없었다. 일생 동안 이런저런 험한 꼴을 겪은 것도 모두 그러한 기질 탓이었다. 비판과 풍자로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우울증을 앓았다.  하지만 나의 기질과 문장력의 강점에 집중하여 변화하는 시대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바를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이승에서 만난 리아씨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스스로의 강점과 기질에 맞는 주제와 문체 스타일을 찾아 그녀가 살고 있는 시대에 유익이 되는 멋진 책 한 권을 내보라는 것이다.

 

저자서문

 

17 글을 써서 교훈을 남기되, 신명의 경지를 통하고 사물의 자연법칙을 꿰뚫은 것으로는, 주역과 춘추보다 나은 것이 없다. 주역은 미묘하고 춘추는 드러낸다. 미묘란 주로 진리를 말하는 방법인데, 그것이 나아가면 말이나 글에서 실제가 아닌 뜻을 의탁하는 寓言이 된다. 드러냄이란 주로 사건을 기록하는 글쓰기 수법인데, 그것이 변하면 정사에 실리지 않는 외전이 된다. 책을 짓는 데는 이러한 두 갈래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오늘 날에는 어떨까? 이성에 기대는 글과 감성에 기대는 글 정도로 나눌 수 있나? 균형감각을 위해서라면 공저를 하면 돼. 유형선 선배에게 물어보니 그 분은 이성적이고 부인은 감성적이라 보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론이나 구조적인 것에 약하고, 남편은 그런 부분은 강하다. 책을 짓는 두 갈래의 방법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는 제 3의 길을 찾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시초를 뽑아서 괘를 벌이면, 그 참된 상이 곧 나타나고 길함과 흉함, 회인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은 왜 그럴까. 미묘한 것으로부터 드러나는 경지로 지향하기 때문이니, 우언을 쓰는 사람이 이러한 방법을 쓴 것이다.

 

우언이라 하더라도 미묘함과 드러냄이 쉴 새 없이 변하여, 사람으로는 그 원인을 측량할 수 없으므로 이를 궤변이라고 했다.

 

그런데 연암씨가 지었다는 열하일기는 무슨 글일까? 저 요동 들판을 건너서 유관으로 들어가 황금대 옛터에 거닐고, 밀운성에서 고북구를 나와 난수와 백단의 북녘을 마음껏 구경하였는데 참으로 그런 땅이 있었으며, 또 그 나라의 뛰어난 학자, 시인들과 함께 교제하였는데 참으로 그런 인물이 있었다.

참으로 그런 땅이 있었으며 참으로 그런 인물이 있었다. 이 말 좋다.

 

19 우언을 겸해서 이치를 이야기하게 되었으니

그래! 이런 거 말이다. 우언을 겸해서 이치를 이야기 하는 것.

 

풍속이나 관습이 治亂에 관계되고, 성곽이나 건물, 농경과 목축,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 일체의 이용후생 방법이 모두 그 가운데 들어 있어야만, 비로서 글을 써서 교훈을 남기려는 뜻에 맞을 것이다.

나도 유익이 되는 책을 내고 싶다. 실용서적이라기보다는 자기만족에만 그치는 책을 쓰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도강록(6/24-7/9 압록강에서 요양까지 15일동안의 기록)

25 당서를 살펴보면, “고려의 馬訾水는 말갈의 백산에서 나오는데, 그 물빛이 마치 오리 머리같이 푸르기 때문에 압록강이라고 불렀다.”하였으니, 백산은 바로 장백산을 말한다.

! 압록강의 뜻이 그랬구나.

 

황여고에는 천하에 큰 물이 셋 있으니, 황하와 장강(양자강)과 압록강이다.”하였고, 양산묵담에는 회수 이북의 물줄기는 북조(북쪽 가지)라고 하는데,모든 물이 황하로 모여들어 (하라고 불렀지) 강이라 이름 붙인 곳이 없다.다만 북쪽 고려에 있는 강만 압록강이라 부른다.”하였다.

 

27 중국 가는 것을 평생의 壯遊라고 하여 툭하면 꼭 한 번 구경해야지.”하며 평소에 벼르던 것도 이제는 둘째가 되었다. “오늘은 강을 건너야지.”하며 떠드는 것도 결코 좋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유는 장쾌한 유람이라는 뜻이란다.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日東(일동=일본)으로의 장쾌한 유람이라는 뜻.

 

27 안장에 주머니 한 쌍을 달았는데, 왼쪽에는 벼루를 넣고,오른쪽에는 거울과 붓 두 자루, 먹 한 장,조그만 공책 네 권, 그리고 이정록 한 권을 넣었다. 행장이 이같이 단출하니, 아무리 엄하게 짐을 뒤진다고 해도 걱정할 게 없었다.

그 시절의 노트북을 챙긴 셈이다. 이정록(里程錄)은 무슨 책인가, 먼 곳을 떠나면서까지 챙긴 책이 뭔가 했더니 책이 아니라 여행일정표(Itinerary)란다.

 

30 茶啖床은 초라했는데, 그나마 들어오자마자 곧 물려 냈다. 강 건너기에 바빠, 젓가락을 드는 이가 없었다.

차담상은 손님 대접으로 음식을 차려 내는 교자상이란다. 여행 중에 받는 상이니 일종의 기내식 느낌이었을까.

 

33 사신들의 행차가 있을 때마다 미리 가산에 알려서, 득룡이 귀찮아서 따라가지 않을까 봐, 가족을 가둬 놓고 그가 달아나는 것을 막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중국어 통역을 얼마나 잘했는지 알 수 있다.

어디나 이렇게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있다. 필살기를 갖추고 있었던 셈. 얼마나 잘했길래 가족까지 가둬놓고서. 그런데 설마 대가 없이 부려 먹었나?

 

35 내가 일찍이 우리나라 서울의 도봉산이나 삼각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금강산은 일만 이천 봉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기이하고 높고 웅장하고 깊지 않은 곳이 없어서, 짐승이 끄는 듯, 새가 나는 듯, 신선이 공중에 오르는 듯, 부처가 도사리고 앉은 듯, 음랭하고 그윽한 모습이 마치 귀신 굴속에 들어간 것 같기 때문이다.

금강산을 귀신 굴 속같다고 표현하다니! 도봉산과 삼각산은 박지원 이후 이런 찬사 못 들어봤을 듯.

 

36 우리 서울은 참으로 억만 년을 누릴, 용이 서리고 범이 걸터앉은 형세이다. 그 신령스럽고 밝은 형세야말로 평범한 산의 모습과는 마땅히 다르다. 봉황산 형세의 기이하고 뾰족하고 높고 빼어난 점은 비록 도봉산이나 삼각산보다 뛰어나긴 하지만, 빛깔은 한양의 모든 산보다 못하다.

도봉산이랑 삼각산 계속 등장. 그런데 황산이건 화산이건 중국의 산은 멋스러운 맛이 없긴 하다. 기이하고 뾰족하긴 하지만 나무가 없는 산도 많고 하여 빛깔은 우리 나라 산들이 좋은 듯. 

 

39 “쇤네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 두 곳을 구경할 때는 제 두 손으로 눈알을 꽉 잡고 있겠습니다.그러면 어느 놈이 빼어 갈 수 있겠습니까?”

장복이는 이렇게 열하일기에 남아 영원히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박지원의 한심해 하는 모습과 함께 웃음이 나온다.

 

지난번에 내 친구 홍덕보가 규모가 크면서도, 心法은 세밀하다.”고 충고하더니 과연 그러했다.중국의 동쪽 변두리인 책문도 이러한데 북경으로 갈수록 더욱 발전될 것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한풀 꺾였다.여기서 그만 발길을 돌릴까 하는 순간 온몸이 화끈거렸고 나는 깊이 반성하였다.

일본은 디테일에 강하다면, 중국은 스케일만 큰 게 아니라 디테일에도 강하다. 깔 게 없으니 위축되었을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45 때마침 봉황성을 새로 쌓는데, 어떤 사람이 이 성이 바로 안시성이다.”하였다. 고구려의 방언에 큰 새를 안시라고 하였다. 지금도 우리 시골말에 봉황을 황새라 하고, 뱀을 배암이라 한다. 그러니 수나라나 당나라 때에 이 나라의 말을 좇아 봉황성을 안시성으로, 사성을 백암성으로 고쳤다.”는 전설이 자못 그러한 것 같기도 하다.

큰 새가 안시였구나. 봉황성과 안시성.

 

46 그러나 당서와 사마광의 통감에는 이런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이는 아마도 그들이 중국의 부끄러움을 감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 본토에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실을 단 한마디도 감히 쓰지 못했으니, 그 사실이 믿을 만하건 아니건 간에 다 빠뜨리고 말았다.

 

47 더구나 요동에도 또 다른 평양이 있었다.”고 한다면 해괴한 말이라고 나무랄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요동이 본시 조선 땅이며, 숙신, , 맥 등 동이의 여러 나라가 모두 위만조선에 예속되었던 것을 알지 못한다. 또 오라, 영고탑, 후춘 등의 땅이 본래 고구려의 옛 땅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리하여 조선의 강토는 전쟁도 없이 저절로 줄어들었다.

 

52 굴뚝에 틈이 생기면, 약간의 바람에도 아궁이의 불이 꺼진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온돌은 항상 불을 내뿜고 방이 골고루 데워지지 않으니, 그 잘못이 모두 굴뚝에 있다.

아까는 벽돌에게 공덕이 있다 하였는데 이번에는 굴뚝에게 잘못이 있다 한다. 이런 표현이 사물을 살아 있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이 가난해도 글 읽기를 좋아해 겨울이 되면 수백 명의 형제 코끝에는 항상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니,이 방법을 배워 가서 삼동의 고생을 덜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온돌 제도에 여섯 가지 흠이 있으나 아무도 이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네. 내가 한번 설명할 테니, 자네는 떠들지 말고 조용히 들어 보게.

입 닥치고 들어라. 표현이 재미있다.

 

54 갑군이 제 스스로 도이노음이라 한 것은 더욱 놀랄 일이다. 우리나라 말로 오랑캐를 되놈이라고 하니, ‘는 바로 도이의 줄임말이요, 노음은 낮고 천한 이를 가리키는 말이요, 이오란 높은 어른에게 여쭈는 말이다. 갑군이 오랫동안 사신을 맞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리말을 배웠는데, 자기를 가리키는 란 말이 귀에 익었기 때문에 도이노음이오.”하고 말한 것이다. 한바탕 승강이에 잠을 못 자고, 이어 벼룩 때문에 시달렸다.정사 역시 잠을 잊고 촛불을 켠 채 날을 지새웠다.

승강이: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로 실랑이랑 비슷한 말.

 

,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 만 하구나.

이 사람 가만 보면 특이하다. 남들과의 반응점이 달라. 금강산보다 도봉산과 삼각산이 낫다고 한 것도 그렇고. 탁 트인 요동벌판 보며 울음터라 하는 것도 그렇다. 칠정에 대한 접근이 다른 거다.

 

61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 버릴 때에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으니,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라오. / 인생의 보통 감정은 오히려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고,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되 슬픔에다 울음을 배치했으니, 이로 인해 상을 당했을 때 억지로 에고’, ‘어이따위의 소리를 부르짖는 거라오.

 

저 갓난 아기에게 물어보시오. 그가 처음 날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일까.

그러게. 아이가 울 때 마냥 슬퍼서 우는 건 아니지. 아기의 울음을 슬픔이라는 감정과 연결 지을 수는 없다. 얼마 전 지인의 아이가 태변을 먹어 태어났을 때 울지를 않았다. 지금도 병원에 있는데 매우 걱정이 된다. 그 걱정이 꿈에서 나타나 엊그제 꿈 속에서 아기가 시원하게 울어 제끼는 꿈을 꿨다. 막혔던 것이 팍 터지는 엄청 시원한 울음소리였고 그 울음소리에 꿈 속에서 우리 모두 기뻐 울었다.

 

68 앉아서 수호전을 읽는 자가 있었는데 여러 사람이 빙 둘러앉아서 듣고 있었다. 그가 머리를 흔들며 코를 벌름거리는 꼴이, 눈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읽는 부분을 보니 바로 화소와관사의 문단인데, 외는 것은 뜻밖에 서상기였다. 까막눈이건만 익숙하게 외워서 입이 매끄럽게 내려갔다. 꼭 우리나라 네거리에서 국문소설 임장군전을 외는 것 같았다. 읽는 자가 잠깐 멈추자,두 사람은 비파를,한 사람은 징을 울렸다.

이 장면 재미있다.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 현지 이집트 소년과 오해가 있었고 당시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편지를 썼다. 그 소년은 영어를 굉장히 잘했고. 그런데 그 편지를 들고 오더니 나한테 읽어달란다. 자기 까막눈이라고. 길거리에 앉아서 내가 쓴 편지를 읽어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데 그 때의 장면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란 동서고금 모두 같은 것 같다. 아래는 서상기의 주인공 앵앵의 대사이다. 잠시 감상. 이러한 이야기들을 시장바닥에 옹기 종기 모여 들었을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것도 까막눈이 수호전을 펼쳐 놓고 읽는 서상기. 뭔가 정감 가득하다.

<살아 한 이불, 죽어 한 무덤이기를>

너랑 나랑, 너무 너무 다정했지. 정이 넘쳐, 불처럼 뜨거웠지.
진흙 한 덩이 쥐어다가, 너 하나를 빚고, 나 하나를 빚었기 때문이지
.
이제 우리 둘을 함께 부숴 물에다 반죽하였다가
,
다시 너 하나를 빚고, 다시 나 하나를 빚으리
.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도록
.
살아서 너와 한 이불, 죽어서는 한 무덤이기를.-관도승(
菅道昇), 「아농사()

땅에 글자를 써서 문답하자, 한 사람이 서경이 있는지 물었다.또 한 사람은, 안회가 지은 책과 자하가 지은 악경이 있는지 물었다. 모두 내가 처음 듣는 책이었으므로 없다고 대답하였다.

참 멋스럽지 아니한가? 필담으로 책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성경잡지(7/10 병술~7/14 경인, 5일동안의 기록, 십리하부터 소흑산까지 모두 327리의 여정)

 

75 )요양/강의 북쪽을 양, 남쪽을 음이라고 한다. 요양은 요하 북쪽에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한양도 한강의 북쪽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한양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북을 양으로 남을 음이라 했구나. 요양, 한양이 그런 뜻이었구나.

 

77 사람을 만난다 한들 쫓겨나기밖에 더하겠습니까?

광록 대사도 멋지네. 만나봤자 쫓겨나기밖에 더하겠나.

 

80 한참 뒤에 큰 소리로 치라고 호통하자, 사령이 손에 들었던 곤장을 던지고 죄인 앞으로 달려가서 손바닥으로 따귀를 네다섯 번 때리고, 다시 예전 자리로 돌아가 곤장을 들고 섰다. 다스리는 법이 아무리 간단하다지만, 따귀 때리는 형벌은 옛날부터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게 이게 무슨 일이래? 지난 춘추전국 시대의 잔혹한 형벌을 접하다 따귀 때리는 형벌이라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곤장은 그냥 장식으로?

 

일신수필(7/15~7/23 신광녕부터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인 산해관에 이르기까지 병참지 562리를 달리는 9일동안의 기록)

 

88 비록 육농기나 이광지 같은 학문이 있고, 위회, 왕완, 왕사징 같은 문장이 있으며, 고염무나 주이존같은 박학자가 있더라도, 한 번 머리를 깎으면 되놈이지요. 되놈이면 곧 짐승이니, 우리가 그들 짐승에게 무엇을 볼 게 있단 말입니까?

 

89 임진왜란 때에 신종황제가 천하의 군사를 이끌고 우리를 구원하니, 우리나라 사람의 이마에서 발뒤꿈치까지 머리털 하나도 은혜가 아닌 게 없었다.

이건 마치 6.25 전쟁 시 미국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같은 건가. 당시의 상황은 순망치한(脣亡齒寒)과 가도입명(假道入明)아래에서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단지 명나라의 호의만으로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고, 오직 전략적 계산 하에서 도와줬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지 않나.

순망치한[脣亡齒寒]가도입명[假道入明

[출처]임진왜란당시명나라가조선을도와준이유 (StarCraft 임진왜란카페) |작성자이단심문관

 

그러다가 마침내 마지막 황제가 자살하고 명나라가 망하자, 백성이 머리를 깎아서 모두 되놈이 되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는 숭정제 의종을 말하는데, 자살 당시 34세였다고 한다. 형이 바로 목공황제인데 공부를 못하고 목공일을 좋아해서 목공이란다.

 

그러나 존주사상은 주나라를 높이는 데에만 국한하여야 한다.

 

90 청나라 왕실이 이적이긴 하지만, 중국 문화가 자기에게 이로워서 길이 누리기에 넉넉함을 알았다. 그래서 마치 자기가 본래부터 지녔던 것처럼 이를 빼앗아 차지하고 있다.

 

96 그래서 관 ,, , , , , , 광과 같이 먼 곳에도 큰 장사꾼이나 온 가족을 이끌고 부임하러 가는 벼슬아치의 수레바퀴가 서로 이어져 마치 자기 집 뜰 앞을 거니는 것이나 다름없다.우렁차게 삐걱거리는 수레바퀴 소리가 대낮에도 늘 우레 치는 것처럼 끊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국의 재산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한곳에 쌓이지 않고 골고루 유통되는 것이 모두 수레를 사용할 때 생기는 이익이다.

논어사기열전을 읽으며 춘추전국시대를 영화로 만든다면 길바닥에 수레 자국이 수없이 지나가는 장면을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봐도 그랬는데 박지원은 이를 직접 봤으니 더욱 수레의 필요성을 생각했을 터이다. 기동성의 확보.

 

97 그런데도 이곳에서 천한 물건이 저곳에서는 귀할뿐더러 그 이름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된 까닭이다. 이는 멀리 보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방이 겨우 몇 천 리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백성의 살림살이가 이다지 가난한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레를 맡았던 벼슬 이름은 외웠지만 수레를 만드는 기술이 어떠하며 움직이는 방법이 어떠한지는 도무지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갓 글만 읽을 뿐이었으니, 참된 학문에 무슨 유익이 있으랴.

내가 교육에 관한 한 어떤 통찰력을 느낀 계기는 중학생 때였나 멋진 신세계를 읽고서였다. 그저 암기하고 정보를 입력할 뿐이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못하는 광경을 보고 충격 받았다.

 

98 이러한 수레는 모두 서양의 가기도나 강희황제가 지은 경직도에 그림이 실려 있고, 글로 된 설명은 천공개물이나 농정전서에 실려 있다. 뜻 있는 이가 잘 연구하여 그 제도를 본받는다면 극에 달한 우리나라 백성의 가난병도 얼마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가 보았던 불 끄는 수레의 제도를 대략 적어서, 우리나라에 돌아가 이를 전하고자 한다.
이게 참다운 유학인데. 예전의 유학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배운 것을 한국에 와서 써먹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었는데.

 

길 위에 수차 세대가 있어서 방금 돌아가려는 것을 내가 잠깐 멈춰 세우고 먼저 그 이름을 물었더니, 수총차라고 하였다.

거기 잠깐 멈춰보슈라며 손짓했을 박지원을 생각해보라.

 

간능스럽게

幹能스럽게, 재간 있게 능청스러운 데가 있다는 뜻. 한자어였네.

 

102 승려와 도사들이 각기 구색을 갖춰 불경과 주문을 외우며 뒤를 따른다. 중국의 모든 일이 간편함을 위주로 하여 하나도 헛됨이 없는데, 이 상여만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본받을 것이 못 된다.

홍루몽에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상여 뒤로 승려와 도사들이 따르는 장면하며 그 이후의 모든 과정들이 화려하고 세세한데 화려함을 떠나 낭비가 지나쳐 글로 읽으면서도 입이 딱 벌어졌는데 그걸 직접 봤다면 이게 뭔 돈지*이라고 했을 법도 하다.

 

관내정사

 

107 여관에 돌아와 불을 밝히고 다시 훑어보니,정군이 베낀 부분에는 잘못된 곳이 수없이 많을뿐더러, 빠뜨린 글자와 글귀가 있어서 전혀 문맥이 맞지 않았다.그래서 대략 내 뜻으로 고치고 보충하여 글 한 편을 만들었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참 교묘한 장치이다.

 

113 )먹바늘: ‘경을 친다는 말이 있는데, 바늘에 먹을 찍어 얼굴에 죄명을 새기는 묵형이다.

어머 경을 칠 놈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어?

 

115 그러나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는 어찌 더 춘추시대 같은 적이 있었겠느냐? 춘추시대에 은덕 세운다는 싸움이 열입곱 번이요, 원수 갚는다는 싸움이 서른 번이었다.그들의 피가 천 리에 흘렀고,엎어진 시체가 백 만이나 되었다.

학교 다닐 때 춘추전국시대라 하면 그냥 영웅, 난세 뭐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사기열전을 읽어보니 진짜 이럴 수는 없는 시대.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도 그러했고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생명경시풍조가 심한 것 같다.

 

117 아침에 밭을 갈러 온 농부가 물었다.

밭을 갈러 온 농부는 대지의 왕룽 같은 사람이었겠지.

 

120 하물며 구구하게 저 의관 제도의 하찮은 부분이나 고집해서 무엇하겠는가.

 

혹정필담

 

125 윤공이 가끔 졸며 머리로 병풍을 들이받곤 하였다.

아 웃겨. 이걸 또 먹물에 찍어 굳이 붓을 놀려 상황을 설명하는 박지원도 못 말려.

 

밥을 먹으며 필담을 나누는 사이에 종이 수십 장을 썼다.

밥 냄새에 묵향이 담겼겠다. 종이 수십 장이라니. 대단하다.

 

127 )우리나라를 부를 때는 고려라고 하여 마치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을 말할 때 한이니 당이니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나를 부를 적에 가끔 공자라고 하였다.

 

128 저도 평소에 남 몰래 발명한 것이 없지 않으나, 역시 남을 만나서 발표하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온 천지의 여러분이 크게 놀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무엇이 탯덩이처럼 가슴속에 뭉쳐 있고 오래도록 소화되지 않아, 겨울이나 여름이 되면 더욱 괴로워집니다. 선생도 이런 증세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129 지정이 곧 시를 읊었다.

 

130 도라면탕(한약)

 

133 물건이 오래 묵으면 정기가 어리는 법입니다.

큰 애가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밥도 먹여 주고 애정을 쏟는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인형이 진짜로 살아날 것 같다나.

 

지정이 옆에서 읽다가 웃으며, “월중 세계에서 이 지구의 빛을 바라본다면이라는 구절에 동그라미를 쳤다. “지구는 곧 감공보주(보배스런 큰 구슬)”라는 구절에도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143 다만 불교에는 비유가 많아서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다가, 겨우 깨달아 봤자 결국은 환이라는 글자 한 자만 남는 게 결점이지요.

 

바둑 이란 옆에서 구경하는 것이 직접 두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훈수 놓기 쉬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동기들 글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훈수를 놓게 되는데, 이게 소외효과때문일까? 거리감을 두고 보니 객관적으로 상황이 파악되는 것이다. 내가 나의 글을 읽을 때에도 훈수를 두듯 거리를 두고 봐야겠다.

 

이것은 내가 역사를 읽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구한 대목입니다.

 

145 바둑을 두는 자가 잘 판단하지 못할 때에 어찌 구경꾼의 훈수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타인의 피드백, 코멘트의 중요성. 다만 지적질인 경우 상호 간의 관계에 따라 수용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146 다만 그의 품성이 초조하고 분주하여, 가만히 앉아서 요,순의 도를 의논하는 것보다도 몸소 자신이 임금이 되어 시험하고 실천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148 이야말로 만세의 공론이었습니다. 선배들이 지금까지도 애석히 여기고 있습니다.

 

박 선생은 지금까지 저술한 책이 몇 권이나 있습니까? 아름다운 시집을 중국에 가져오신 것이 있습니까?

질문의 품격 보소.

 

좌중이 맑은 기운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선생이 만일……: 미처 글씨를 쓰기 전에 기풍액이 들어와서 나에게 황제가 하사한 담배통을 보이므로, 자리를 피하고 일어섰다.

이게 대화였으면 이렇게 끊기지 않을 건데. 이런 끊김조차 현장감이 느껴져서 좋다.

 

149 혹정은 묻고 대답하는 데 민첩하여, 종이를 잡으면 어느새 수천 자를 써 내려 종횡으로 떠벌렸다.

종횡으로 떠벌렸다는 표현 자체의 입체감.

 

150 그러나 백두의 궁한 처지라 초목으로 돌아가려 한다니 정말 슬픈 일이다.

 

중국은 문자로 바로 말을 삼고 있으므로 경, , , 집이 모두 입 속에서 흘러 나는 성어였다. 기억력이 남과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억지로 시문을 지을 때는 벌써 그 처음의 뜻을 잃어버리고 글과 말이 판이하게 다른 물건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환희기

 

153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우리 나라 그림에도 보면 말을 타고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가는 선비의 모습이 있다.

 

당시에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 자들은 그 술법이 서역에서 나왔으므로 구마라십이나 불도징,달마 같은 외국 스님이 요술을 더욱 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 땅이 커서 넉넉하고 끝이 없어 이런 것도 길러 내므로, 정치에 병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156 우리 일행인 역부가 눈을 모아 자세히 보다가 마음속으로 노해서, 분한 얼굴로 주머니를 털어 돈을 냈다.

 

산장잡기

 

170 중관을 나와서 만리장성 아래 말을 세우고, 그 높이를 헤아려 보니 열댓 길이나 되었다. 곧 붓과 벼를 꺼내고 술을 부어 먹을 간 뒤에,성벽을 어루만지면서 글을 썼다.

으아!! 진짜 부럽다. 만리장성 아래 말을 세우고,붓과 벼루를 꺼내 술을 부어 먹을 갈고, 성벽을 어루만지며 글을 썼대! 박지원은 정말 원 없이 살았어, 원없이!

 

171 긴 바람 소리가 숙연해서 숲과 골짜기도 울었다. 짐승 같은 언덕과 귀신 같은 바위가 창을 세우고 방패를 벌여 놓은 것 같았다. 큰물이 산 틈에서 쏟아져 흐르는 소리가 마치 군사가 싸우는 소리나 말이 뛰고 북을 치는 소리와도 같았다. 하늘 밖에서 학이 우는 소리가 대여섯 번 들렸다.맑고 긴 소리가 마치 피리 소리 같아, 어떤 사람은 이 소리를 거위 소리라고도 하였다.

남편이 작년에 운남성 갔을 때 호도협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정말 호랑이가 포효하는 소리더라.

 

172 우리나라 선비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조국 강토를 떠나지 못했지만, 근세에 오직 노가재 김창업과 내 친구 담헌 홍대용만이 중원의 한 모퉁이를 밟았다.

 

173 올해 내 나이 마흔넷이 되었건만, 무서움을 타는 성질은 어릴 때나 마찬가지다.

박지원이 연행할 때 지금의 내 나이였다는 것이 왜 그렇게 반가운지.

 

다만 붓이 가늘고 먹이 말라서 글자를 서까래만큼 크게 쓰지 못하고, 또 만리장성의 옛일을 시로 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 동네 사람들이 다투어 술 한병으로 위로하며 열하의 여정을 물을 테니,이 기록을 내보여서 머리를 모아 한 번 읽고 책상을 치면서 기이하다고 떠들어 보리라.

 

174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나와, 돌에 부딪쳐 싸우며 흘렀다. 놀란 물너울과 성난 물결, 그리고 애원하는 듯한 여울들이 내달아 들이치고 휘말려 곤두박질쳤다. 울며 으르렁거리며, 부르짖으며 고함치며, 언제라도 만리장성을 쳐부술 기세였다.

 

어떤 사람은 이곳이 옛날 전쟁터였기에 강물이 그렇게 운다고 한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강물 소리를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다.

 

175 알맞은 불길 위에서 찻물이 끓는 듯한 소리는 흥취 있게 들린다. 거문고가 궁조와 우조로 울려 나오는 듯한 소리는 슬프게 들린다. 종이 바른 창문에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는 의아스럽게 들린다. 모든 소리를 똑바로 들은 것은 아니다.다만 내 가슴속에 지닌 뜻이 있어서, 이에 따라 귀가 받아들여 그런 소리로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176 낮에는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은 위험함을 보는 데만 쏠린다. 벌벌 떨면서 도리어 눈 가진 것을 걱정해야 할 판에 무엇이 들리겠는가.지금은 밤중에 강물을 건너기 때문에,눈으로 위험한 상황을 보지 못한다. 위험한 생각이 오로지 귀로만 쏠려, 귀가 벌벌 떨면서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자는 귀나 눈에 얽매이지 않고, 귀나 눈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할수록 더욱 병이 되는 법이다.

오감보다 이면의 의미를 더 잘 인식하는 성격유형

 

말에서 한 번 떨어지면 강물 속이다. 그렇게 되면 강물로 땅을 삼고 강물로 옷을 삼으며,강물로 몸을 삼고 강물로 성정을 삼으리라.이처럼 한 번 떨어질 것을 마음속으로 각오했더니,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 동안 조금도 걱정이 없었다. 마치 자리에 앉거나 누우며 활동하는 것 같았다.

 

소리와 빛은 사람의 바깥에 있는 사물이다. 그런데 사람의 바깥에 있는 사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제대로 보거나 듣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인생을 살아 나가려면 강물보다 더 험하고 위태로운 곳이 있지 않던가?보고 듣는 것들이 자주 병통이 되지 않던가? 나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즉시 내가 살던 산속으로 가서 다시 그 시냇물 소리를 들어보면서 시험하겠다. 그래서 교묘하게 처신하며 스스로 그 총명함을 믿는 자들에게 경고하리라.

 

179 그래서 주역에는 천조초매라고 했는데, 초매란 빛깔이 검고 흙비가 낀 듯한 상태를 말한다.비유하자면 동틀 무렵에 사람과 물건을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와도 같은 것이다.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에서 황혼을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어에서 황혼()誰そ彼(타소카레: 게 뉘신 지?)가 변형되어 생긴 말이라고 한다. 어두운 저녁에 사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저게 누구지(誰、彼)’하는 말에서 나왔다고. 나는 이런 명확하지 않은, 경계가 불분명한, 시적인 표현이 좋다.

 

181 코끼리를 눈으로 보면서도 이처럼 이치를 알 수가 없다. 하물며 코끼리보다 만 배나 더 큰 천하의 사물에 대해서는 어떠하랴. 성인이 주역을 지을 때에 코끼리 상자를 따서 지은 까닭도 코끼리 같은 형상으로 만물이 변하는 이치를 궁구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던가.

 

구외이문

 

187 건륭 무진년(1748)에 황제가 장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데, 헤엄치던 자가 갑자기 허리가 끊어져 물 위로 떠올랐다.

어휴 그 사람은 뭔 날벼락이래. 죽어서까지 그래야 하나.

 

황제가 친히 관왕묘와 소열제 유비의 소상 앞에 나아가 조조의 시신을 무릎 꿇리고 목을 잘랐다.이는 천고 신인의 분통을 씻어 준 통쾌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조조가 자신의 무덤이 도굴당할까 봐 거짓 무덤을 70개나 만든 사실을 통쾌하게 깨쳐 준 일이기도 하다.

 

190 고린내/여의 음은 이요, 동은 토우떵의 절음이다.

 

191 그 뒤에 공은 94세까지 살았는데, 벼슬아치들의 제삿날이 되면 언제나 손수 과일을 따서 부조하였다.

뭔가 통쾌한 장면이네.

 

192 저 늙은이는 손자가 다섯이고,증손자가 둘이나 됩니다.그런데도 날마다 몸소 와서 강의를 듣고는,돌아가서 여러 손자에게 다시 가르친답니다.이토록 부지런하답니다.

 

중국의 예의가 빛난다는 말은 예전에도 들었지만,변방의 풍속까지도 이처럼 순박하니 더욱 볼만한 일이다.

예전에는 이랬구나. 어쩌다 지금의 중국이 되었을까.

 

삼가 동학이며 동갑의 아우인 호에게 부탁하여, 조선에서 오신 박공자에게 청심환 한두 개를 전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삼가 변변찮은 폐백을 갖추어 대금으로 삼으오니, 물건은 하찮으나 정은 깊고 의리는 온 세계에 무거울 것입니다.”

 

옥갑야화

 

197 북경은 옛날에 풍속이 순박해서 역관들이 말하면 아주 많은 돈이라도 쉽게 빌려주었는데, 요즘은 모두 속이기를 능사로 삼으니, 이는 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었다.

 

200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석이 병부에 있으므로 힘써 구원병을 보내자고 주장했다. 석이 평소에 조선 사람을 의롭게 여겼기 때문이다.

 

204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는 물질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리기 전에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야.

나도 물질 없어도 부끄러운 빛 없는데. 많다고 얼굴빛이 윤택해지는 것도 아니고.

 

209 재물 때문에 얼굴빛이 윤택해지는 것은 그대들이나 하는 일이지. 만 냥이 어찌 도를 살찌게 하겠는가?내가 한때의 굶주림을 참지 못해 글 읽기를 마치지 못했으니, 그대에게 빌린 만 냥이 부끄러울 뿐일세.

 

213 나는 아직까지 그 다음이라는 말을 배우지 못했다네.

내 사전에 뭐뭐뭐는 없다와 같은 표현이네. 좋다. 나는 아직까지 뭐뭐뭐라는 말을 배우지 못했다네.

 

215 옛날 번오기는 자기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머리를 자르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무령왕은 자기 나라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오랑캐 옷을 입는 것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명나라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면서, 그까짓 상투 하나를 아낀단 말인가?

 

황도기략

 

227 크기가 같지 않은 것은 다음 틀을 취하여 곱절로 더 보태고, 8음씩 띄어 서로 합해서 다른 소리를 만들게 하니, 8괘가 변해 64괘가 되는 것과 같다네.

나 얼른 주역 공부하고 싶다. 자꾸 괘 이야기 나오니 반갑기도 하고 잘 모르겠기에 답답하기도 하고. 사상체질, 8, 64. 이런 숫자의 규칙성. 체질과 기질에 맞는 인생 처방전으로서의 괘. 마음날씨 예보로서의 괘. 남편은 의역동원을 다시 읽어보겠단다.

 

229 대서양은 대명회전에 실려 있지 않으므로, 참인지 거짓인지 알 길이 없다. 적당히 참작해서 의관을 내려 주어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라.북경에 몰래 숨어 있지 못하도록 하라.”하고는 황제에게 보고하지도 않았다.

 

알성퇴술

 

247 날씨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 관찰유근

마음 날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음 날씨의 길흉(맑게 갤 것인지, 비가 올 것인지)을 점쳐 도움이 되는 괘를 주는 것. 재앙이 닥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내일 비가 온다는 것을 알면 오늘 우산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마음 날씨의 변화조짐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을 관찰해야 할 것 이다. 마음의 관찰유근.

 

언젠가 홍대용과 함께 석치의 집을 찾아갔는데, 두 친구는 서로 황도와 적도, 남극과 북극 이야기를 하였다. 때로는 머리를 흔들다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나누는 이야기가 모두 까마득하여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자느라고 듣지 못했는데, 두 친구는 새벽까지 그대로 어두운 등잔을 마주 대하고 앉았다. 석치의 말 가운데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전라도 강진현 북쪽 끝에 나온 곳은 북극 몇 도인데, 회수가 황하에 들어오는 어구와 직선으로 되어 있으므로, 제주도의 귤이 바다를 건너 강진에만 오면 탱자가 된다.”

천재들의 대화. 공자왈, 맹자왈 하는 선비들의 대사가 아닌 황도, 적도, 북극, 남극, , 탱자 등의 어휘가 난무하는 그들의 대화를 상상해봐라. 이들의 대화를 재현해보면 지금의 알쓸신잡을 보는 느낌일 것이다. 누가 영화 안만드려나? 영화제목은 조선 파고다 클럽

 

250 비록 낙제한 시험지라도 채점이 친절하고 상세하여, 응시자가 낙제한 이유를 똑똑히 알도록 해주었다. 정성스럽고 간곡한 태도는 선생과 제자 사이에서 일깨우고 가르치는 태도 그대로이다. 이 답안지를 통해서 큰 나라 시험의 깊은 점을 보았으며, 과거에 응시하는 자가 유감없도록 충분히 갖춰 놓았음을 보았다.

아 이건 정말 세심하다. 시험을 통한 교육.

 

251 얼마 지난 뒤에 불을 다 껐는데,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였다. 흐트러진 물건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를 보아서도 중국의 법도가 엄격한 것을 알 수 있으니, 매사에 구차하지 않은 게 이와 같다고 한다.

정말 의외네. 중국이 당시엔 정말 이랬나.

 

앙엽기

 

255 문 틈을 지나가는 말

사기열전에 나오는 소제목이기도 한데 워낙 상용되던 말이었나보다.

 

256 ‘앙엽이란 옛사람이 감 잎사귀에 글자를 써서 항아리 속에 넣었다가 모아서 기록했다.’는 일을 본받아서 지은 이름이다.

감 잎사귀가 빳빳하지. 그러니 그 위에 글자를 썼나 보다. 담배 은박지에 꾹꾹 눌러 그림을 그렸던 화가 이중섭이 생각난다. 은지화(銀紙畵)라는 장르는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앙엽기라는 제목으로는 이덕무가 먼저 냈다는데, 박지원이 따라 한 겐가.

 

257 어린이로서 임금의 면목을 갖춘 이라면 틀림없이 송나라의 마지막 황제 병일 것이다.

어린 황제가 무슨 죄야.12792, 쿠빌라이원나라에 의해 황족이 다 바다에 빠져 죽는 비극적인 최후와 함께 남송은 멸망했단다.마지막 황제인 조병은 8살의 아이에 불과했는데 다시는 왕후장상의 씨앗으로 태어나지 않으리라 라는 비참한 유언을 남기고 스승 육수부와 함께 빠져 죽었다고 한다.정말 그런 유언을 남기고 죽은 건지,스승 육수부가 어린 황제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그냥 안고 바다로 뛰어든 것인지는 알 수 없겠으나.그런 배경과 함께 박지원이 묘사하는 홍인사의 족자 설명을 다시 읽어보면 마음이 짠하다.

 

267 1층에는 우리나라 김창업의 이름이 있고, 아래에는 내 친구 홍대용의 이름도 있는데,먹빛이 방금 쓴 것만 같았다.

얼마나 반가왔을까.

 

263 온갖 물건이 뜰에 가득 찼으며, 구슬과 보물이 이리저리 발길에 채이다시피 굴러다녀서 걷는 사람의 발길을 조심스럽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송구스럽게 했으며, 사람의 눈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264 그가 손수 돈을 꺼내어 그 옷을 사는 것을 보고 이덕무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한 선비가 비록 심부름 하는 하인 하나 없더라도, 자기 발로 장터에 나가 막 굴러먹는 장사치를 상대하여 물건 값이나 흥정하는 것을 아직 좀스럽고 더러운 짓으로 친다. 그러니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지금 돌아다니면서 본 흥정꾼은 모두 강소성 지방의 명사요, 특별한 거간꾼 말고 유람차 온 자는 대개 한림서길사 같은 사람이다.

도대체 우리 나라에서 장사치를 경멸하는 풍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돈 이야기 꺼내는 것이 민망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남을 대신 시켜 군색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손으로 유쾌하게 골라내는 것보다 못하기에 직접 장터에 나가서 흥정하는 것이다. 자기들 마음대로 물건을 선택하면서 오가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들의 소박하고 솔직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이래서 중국 사람은 저마다 물건을 감상할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누가 구매대행 해주는 걸 더 좋아하는데. 뭐 사는 거 귀찮고 힘들다. 흥정은 더욱 더 소질 없다.

 

265 아무리 궁벽하고 외진 시골이더라도, 사람이 몇 집만 살면 반드시 사치스러운 사당을 지어 놓았다. 제사를 지내는 데도 정성이 대단하여, 소 먹이는 아이와 곁두리 먹이는 지어미들까지 남보다 뒤떨어질까 봐 걱정하며 달려든다.

중국은 지금은 저런 면이 오히려 없고, 한국이 그러한 편이었지.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이 쉽게 목숨을 끊는 걸 보고 도대체 어떤 종교관을 갖고 있는 걸까 했는데, 사당이니 제사니에 공을 들이는 걸 보면 저승과 영혼에 대한 개념이 오히려 강했던 건가.

 

266 이렇게 두 역적이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람은 천년 고적이라 하여 아직까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작품해설)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극복한 여행기

 

270 박지원은 도강록 서문에서 후삼경자라는 연호를 일부러 쓰면서 명나라 왕조가 망한 지 200년이 되도록 망한 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는 비현실성을 풍자했다. 청나라를 야만시 하는 풍조 속에서, 그는 노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명분론에서 벗어나 현실을 곧바로 보았던 것이다.

 

271 그러나 답안지는 끝내 제출하지 않고 나왔다. 구차스럽게 출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 이 심정 알아.ㅋ 구차하게 뭘 시험 점수에 연연해. 그래서 내신이 엉망이었다. 마음에 드는 과목만 공부함.

 

272 벼슬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라 평생소원이었던 중국 유람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그를 계기로 해서 천하의 명문장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좋다! 여행을 통하여 천하의 명문장을 써보고 싶다는 포부라.

 

272 유럽의 18세기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백과전서를 편찬하여 지식의 범주를 넓혀 가던 시대였다. 청나라도 강희,건륭 황제가 다스리던 전성기여서 중국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으며, 강희자전과 사고전서를 편찬하여 문화적으로도 오랑캐라는 인식을 벗어났다. 학술적으로는 고증학이 발전해, 우리나라 실학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집권층에서는 몇 차례 당파싸움 끝에 노론이 정권을 장악하여, 청나라에 복수하겠다는 북벌책을 집권의 명분으로 이용하였다. 조선 초기에 국가 이념으로 채택되었던 성리학은 공리공론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역사적인 사명이 다했던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어떤 이념이나 학문도 역사적인 사명의 유통기한이 있다.

 

273 스님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에까지 유학하였다.

대단한 모험가이자 여행가들이기도 한 거였어. 스님들. 오죽하면 혜초 스님은 혜초 여행사라는 이름을 통해 길이 기억되고 있다.

 

박지원은 처음부터 청나라가 여진족이 세운 오랑캐의 나라가 아니며, 그래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나라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오히려 앞서 간 문물을 배워 와야 할 나라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275 초기 소설들은 참된 삶의 가치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80 다만 유일신 천주를 내세운 신앙만은 용납하지 않았으니, 주자학을 신봉하던 조선 지식인의 한계라고나 할까.

그럼요! 그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화 보고서도 보통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었고, 보통 언어나 문자로는 형용할 수도 없었다.’고 한 판에 신앙까지 헤아릴 여력은 없었을 거 같다.

 

282 19세기 말의 유길준은 서양 문물의 세계를 한 바퀴 둘러본 뒤에 새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해 서유견문을 지어 고종에게 바쳤다. / 물론 유길준의 꿈도 제대로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박지원이 풍자와 해학의 이야기 투가 아니라 고문 투로 열하일기를 써서 정조에게 조선 후기의 병폐를 고칠 처방전으로 바칠 수는 없었을까. 박지원의 꿈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기에 독자들에게 이 책을 다시 권한다.

박지원 가문과 유길준 가문의 이야기 재미있더라. 박지원과 유길준의 고조할아버지와는 친구였다가 원수가 되었고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 역시 백세의 원수라며 과정록에 뒷끝작렬하는 글을 남긴다. 그러나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박지원의 천재성은 물려 받았으나 외모와 성품은 외탁을 했지 싶다. 험하게 생긴 할아버지와 달리 박규수는 송중기 풍의 인상을 갖고 있다) 49세 차이가 나는 유길준과 스승과 제자 사이의 연을 맺는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기질이 유전되며 세상을 바꿔보려고 한 유전자들.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유길준의 서유견문’. 앞선 이들은 이렇게 세상에 흔적을 남겼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기행문이니까 여정대로 글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박지원은 그렇게 FM으로만 쓸 위인이 아니다. 관내정사에 나오는 호질과 옥갑야화에 나오는 허생전은 액자구성이랄까, 진짜냐 허구냐의 경계가 모호한 가운데 은근슬쩍 소설이 삽입되었다. 호질의 경우 정군이 베낀 부분에 잘못된 곳도 많고 빠뜨린 곳도 많다며 자기 뜻대로 채워 넣었다는 그럴듯한 변명과 함께 소설이 전개된다. 허생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행문을 읽으며 두 편의 소설이 은근슬쩍 삽입된 것이다.‘들은 이야기라며 마음껏 풍자를 하는 장치가 교묘하다. 전체적인 구성은 평범하나 그 와중에 파격이 있다.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 이런 내용은 아쉬웠.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신영복의 강의, 공자의 논어, 일연의 삼국유사, 사마천의 사기 등을 읽으면서 그나마 역사적 배경지식이 쌓였으나 여전히 한국 역사와 중국 역사를 꿰고 있는 수준은 아니다. 저자도 중국인은 조선을 고려라 하고 조선인도 중국을 한나라니 당나라니 한다고 썼던데 내가 바로 그 수준이다. 엔간한 독자의 수준도 그렇지 않을까. 북리뷰를 하며 해당 배경을 검색하며 읽긴 했지만(분량이 적어서 가능했다)저자의 단상 중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잘 와 닿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주석으로 간단하게라도 설명이 되었으면 좋았겠다. ‘홍인사편의 경우 송나라의 마지막 황제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면 홍인사의 족자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마음의 울림이 더 컸을 것이다.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무협지를 읽는 것처럼 읽었다. 200여 년 전에 쓰여진 책이 지금도 팔딱팔딱 뛰는 이유는 저자의 유머감각과 생생한 재현력 덕일 것이다. 장복과 창대를 보며 한심해 하는 저자의 모습과 이야기 중에 병풍을 들이 받으며 조는 윤공의 묘사 등은 친근하기도 하거니와 내가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안겨 주었다. 시장바닥에서 까막눈이 수호전 들고서는 서상기 읊고 있는 장면 묘사도 너무 재미있었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아쉬움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정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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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 01:33:54 *.106.204.231

누구든 소환시키는 마법을 가지고 있군요. 자기 생각이 들어가는 저자연구가 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44세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셨네요. 성정까지 비슷한 듯. 열하일기 같은 살아있는 파닥거리는 글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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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 21:38:46 *.18.218.234

구사부가 저자연구를 북리뷰 포맷 안에 넣은 계기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하더라구요. 저자연구를 할수록 의미 있는 작업임을 깨달아요. 저자가 되는 빙의연습을 하고 있는데 좋은 훈련이 되는 듯. 


기상씨의 '고미숙이 본 연암', '정민이 본 연암'에 힌트를 얻어서 나도 이번에 '김훈이 본 이순신'을 해보려고 했는데 칼의 노래 이번 주 안엔 다 못읽을 듯 하여 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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