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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8일 23시 22분 등록

일연 - 어두운 동굴 속에 빛의 노래를 흘려주다

 

스님 안녕하세요? 마침 오늘이 스님 태어나신 날이네요. 811년 전 오늘 태어나셨어요. 스님을 뵈려고 혹시나 하고 향불 피워봤는데 이렇게 연기 속에서 소환되어 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일연: 내 생일을 기억해줘서 고맙군. 맞네, 나는 1206 7 25일에 태어났어. 13세기의 시작이었지. 1206년이 어떤 해인지 아나? 징기스칸이 몽골을 통일하던 해가 1206년일세. 그 말발굽 소리와 함께 나의 울음소리가 터졌다는 것은 어떤 운명의 장난일지. 나는 평생 그 말발굽 소리와 함께 살아야 했다네. 어디 몽골군의 말발굽 소리 뿐인가, 고려 무신들의 칼 소리도 쟁쟁하게 울렸지. 고려는 1170년 정중부의 난으로 무신정권이 시작되었고 내가 태어난 1206년은 최충헌 집권 10년 째가 되는 해였거든. 무인정권의 시대가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칼을 든 무인들이 칼로 정권을 잡고 서로 정권을 차지하려 상대방을 가차없이 죽이는 살벌한 사회였어. 그런 시대에 나 일연이 태어났다네.

 

난세에 영웅 난다더니, 스님을 두고 이른 말이네요. 태어나실 때 이야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일연: 태몽이 좀 남달랐다고 하더군. 태양이 어머니의 배를 내리쬐더래. 그 꿈을 하루도 아니고 3일 연속으로 꾸셨다고 하지. 밝은 해를 봤다고 해서 내 이름은 견명(見明)이었어. 그런 태몽과 함께 태어난 나인지라 부모님은 나에 대한 기대가 크셨던 같아.

 

9살 때 절에 들어가서 공부하신 이유가 있어요? 아직 어릴 때인데요.

일연: 그 때는 무신의 난으로 문인학자들이 많이 죽었었어. 그나마 목숨 부지한 사람들은 절로 도망가곤 했지. 그러니 자녀교육을 시키려면 부득이하게 절로 가야 했던 거야. 기가 막힌 시절이었지. 게다가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컸는데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공부할 여건은 못되었지만 내가 워낙 총명하니까 마을 사람들이 아깝게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 분들의 안타까움으로 절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어느 스님의 손을 잡고 그렇게 어머니 곁을 떠나 절로 들어간 거지. 내가 외모가 괜찮았던 모양이야. 잘생긴 콧마루에 방정한 모습이었다고(豊準方口)고 하더군. 걸음은 소처럼 여유롭고 눈은 범의 눈초리를 했다(牛步虎視)고 묘사되어 있어. 태몽도 남다르고 잘생긴 9살 아들을 보낼 때의 어머니 마음이 어땠겠나. 어머니는 그렇게 나를 전남 광주 무량사로 보내고 경북 경산에 머물며 96세가 될 때까지 나를 그리며 살았지.

 

역마살이 좀 있으신가봐요.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그리고 청소년기에는 강원도로 가신 거죠?

일연: 내가 14세가 되던 해 무인정권을 잡고 있던 최충헌이라는 자가 죽었어. 그 때 제대로 출가를 결심했지. 왜 살아야 하는가, 내가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 요새는 중 2병이다 뭐다 하지만 나 때엔 청소년 시기의 예민함은 미래를 위해 쓰였어. 9살 때의 무량사 행은 취학을 위한 것이었다면 14세 때 강원도로 간 까닭은 본격적인 출가를 위함이었지.  

 

강원도에서는 어떠셨어요?

일연: 현명대신 일연이라는 법명을 사용하게 되었지. 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출가했어. 그리고 1227년 그러니까 내 나이 22세 때 승과에 응시해서 장원으로 급제하게 돼. 아 그러고 보니 나처럼 살겠다고 호를 여연(如然)이라고 한 고운기라는 사람도 그 나이 무렵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을 했다지 아마? 공부에 관한 한 나는 어려울 게 없었어. 배우면 그만인 것을. 그런데 고종 22년 그러니까 31세 때 몽골의 3차 침입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고 그 때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를 했지.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전국을 다니며 설법을 펼친 것도 이때야. 나의 역마살은 이런 일을 하라고 내어주신 건가 싶었지. 가련한 백성들이 나의 설법이나마 듣고 마음의 불안을 씻을 수 있어 감사한 일이었어. 몽고로 인해 고려가 40여 년간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지 자네는 상상을 못할 거야.

 

21세기에도 스님들의 말씀이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있어요.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우리의 마음도 전란으로 피폐해진 당시처럼 많이 피폐해졌거든요. 법륜스님이라는 분도 역마살 대단하시더라구요. 전국이 뭐예요, 세계를 돌며 말씀을 전해요. 일연 스님도 그렇게 당시의 고려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셨군요. 괜시리 눈물이 나네요.

일연: 법륜스님은 좋은 세상 만났네. 나도 미국이니 유럽이니 가고 싶은데 말이지. 어쨌든 나는 그래도 왕에게 인정을 받았지. 인정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나한테 너무 의존을 해서 골치 아플 정도였으니까. 고종은 나의 애국심을 치하한다고 선사의 칭호를 내려주셨어. 이어 1259 54세에는 대선사라는 칭호를 내려주셨지. 고려 24대 원종 2년에는 왕명을 받아 서울 선월사의 주지가 되었어. 당시 왕은 내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할 정도로 나한테 많이 의존을 하셨어. 내부적으로는 무신정권, 외부적으로는 여몽항쟁, 요샛말로 헬고려였지.

 

그런 헬고려에서 굳이 삼국의 이야기를 쓰게 되신 이유가 있어요? 왜 삼국유사를 쓰셨어요?

일연: 72세 때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읽고서 아쉬움과 한숨이 함께 나오더군. 물론 김부식 선생의 업적도 대단해. 하지만 괴력난신(괴이하고 신비한 이야기)은 역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루지 않는다는 그의 의견에 나는 반대야. 신비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이고 그 나라가 신성한 국가임을 나타내는 거란 말이지. 그래서 내 인생 마지막 결심을 하게 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설화나 민속 민담을 모아서 삼국유사를 짓기로 했지. 유사(遺事), 그러니까 말 그대로 김부식이 놓치고 흘리고 떨궈낸 것들을 주워담아 모으기로 한 거야. 우리 역사의 근원을 단군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것을 첫 머리에 떡하니 올린 까닭이 여기 있어. 신비한 이야기는 역사서에 들어갈 내용으로 부족함이 있겠지만 우리는 신성한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일깨우는데 큰 효과가 있지. 비록 헬고려가 무신의 칼과 몽고군의 말발굽에 짓밟히더라도 우리의 마음과 자긍심은 건드릴 수가 없지. 헬고려가 되었건 헬조선이 되었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새기는 것, 그것이 고난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의 저력인 거야. 자네 살고 있는 시대가 비록 어렵다 할지언정 다시금 나의 삼국유사를 읽으며 그 안에서 희망과 빛을 찾길 바라네. 지금에서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태양이 내 어머니의 배를 비춘 까닭은 어두운 동굴 속에 있는 우리 민족들에게 빛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었나 싶네.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스님이 비춰 주신 빛을 따라 쑥과 마늘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오겠습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민족의 일원이 되겠습니다. 깨달음 주신 스님께 감사하며 부족한 실력이지만 스님을 찬()하며 저자연구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나라 안 칼소리 나라 밖 말발굽 소리

백성 마음 전쟁터 되나

그대의 혀 끝에서 흐르는 소리

백성 마음 어루만지네.

붓 끝에서 흐르는 민족의 노래

어두운 동굴 속 한 줄기 빛이 되어 흐르네.

그대 어미 둥근 배에 내리쬐었던 태양빛이 이러했던가.

 

내 마음 속 책갈피

 

386 불교를 받아들여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가 나라의 흥망성쇠와 곧바로 연결된다는 생각이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비록 뒤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면서도 그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운 신라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나라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불교의 전래 경위만이 아니라 일연이 가진 역사 의식의 일단을 읽게 된다.

주어진 재능의 씨앗을 뒤늦게 발견하더라도 그것을 화려하게 꽃 피울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서 40대에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한들 그리 늦은 것은 아니다.

 

389 그것이 고구려 사회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쪽으로 발전해 나갔을망정, 멸망의 빌미가 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록 일연은 불교적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고려는 왜 망한 걸까?

 

391 ()이라고 하는, <삼국유사>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시들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처음이 먼 길을 걸어 또는 세찬 바다를 헤치고 이 땅에 이른 순례자들을 위해 바치는 헌시다.

()은 간체자 중국어로 赞(zan, )인데 페이스북의 좋아요처럼 쓰인다. 삼국유사의 처음이 단군신화로 열렸다면 후반부는 찬의 등장으로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니 이거야말로 용두백미라 하겠다(물론 의 한자가 엄연히 다르지만 넘어가자, 어차피 지어낸 말). 헌시로서의 찬, 좋아요 또는 아이들 말로 하트뿅뿅날리는 찬. 좋다. 읽으며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시, 헌사. 글이 선물이 되는 것.

 

392 다만 불교가 처음 전래된 이 경이로운 사건을 두고, 정작 승려인 일연 자신은 <삼국사기>의 기록만 옮겨다 놓기가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여기서 찬을 생각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삼국사기가 전해 주는 역사적 사실 이상의 것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이상의 것이란 물론 상상이다. 그러기에 시의 형식을 택했다.

 

393 어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정적 표현이다.

 

394 물론 상상이다. 이 같은 시적 상상은 그 선연한 형상력의 도움을 받아 우리를 사실 이상의 사실 어디로 데려가고 있다.

사실 이상의 사실, 현실 이상의 미래, 시적 상상은 우리를 그러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 데려다 준다는 것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시는 미래를 끌어 올 수 있는, 미래에 다가갈 수 있는 예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주목하자. 시의 힘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394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사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시가 주는 상상력 이상의 사실은 백제의 마라난타에게도 이어진다.

백제의 마라난타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 것.

 

396 종교를 처음 전할 때 의술이 따라다닌 것은 동서의 고금을 두고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398 그 대목 다음에 일연은, 고구려와 백제에서 이것이 불교의 처음이다라고 썼던 자리에, 불교도 없어져 버렸다고 비통히 마감하고 있다.

담담하게 쓴 표현에서 오히려 비통함이 꾹꾹 눌려진 느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떨리는 입술같은 표현이다.

 

398 신라 불교는 처음부터 순교자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교의 전통은 면면하다. 이로부터 뒷날 100여 년이 흐른 다음, 법흥왕이 불교를 세우자 했을 때도 이차돈의 순교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가? 불교의 큰 나무, 신라의 인고는 만만치 않았다.

 

407 오늘 우리는 사실을 따지는 것이 중요할까, 사실이 무엇이건 거기 실린 순교한 자의 마음을 고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까?

사실을 따지는 것이 중요할까,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까. 최근 읽은 책들이 형태를 달리해서 꾸준히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411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413 법왕이 늘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절에 들어가자 했으며,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다, 이 멋진 왕의 또 다른 일면을 부연해 적은 일연의 심중을 헤아리면서 말이다.

 

413 이런 상황을 적고 있는 조가 보장왕이 노자를 섬기고 보덕이 암자를 옮기다이다. / 414 이에 신통스런 힘으로 거처를 날려 남쪽 완산주의 고대산으로 옮겨 가 살았다.

세상에! 중이 절을 떠난 게 아니라 절을 옮겼어. 절을 떠난 것도 아니고 환경을 바꾼 것도 아니고 그냥 절을 옮겼어! 이런 생각은 못해봤네.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417 돌들이 무어라 외치는지 들어 볼 만도 하다. /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등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근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너의 등을 덮여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

멋지다. 돌에게서 소근거림을 듣다니. 너의 등을 덮여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라니! 원수를 갚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다이런 류의 소리만 익숙한 터에.

 

424 아육왕이라면 기원전 4세기경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를 이끌던 아쇼카왕을 이른다. / 425 찬드라굽타는 기왕 주어진 군대를 가지고 정권을 잡고 마우리아 왕조를 세운다.

내가 진짜 학창시절 이후 아쇼카왕이란 말을 간만에 마주치고 있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왕조도 마찬가지다.

425 신하는 부처님의 예언서라 불리는 <잡아함경>의 한 대목을 들려 준다.

잡아함경이 예언서라고? 어떤 류의 예언인지 나중에 알아볼 것.

 

428 그 가운데 한 가지가 사자나 황소 또는 코끼리의 모습을 새긴 기둥을 세우는 일이었다. ‘아쇼카의 기념주라 불리는 이 유명한 조각기둥은 불교 미술의 출발이라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428 불교미술학자들은 불상의 출현을 서기 1세기경의 쿠샨 왕조 때로 보고 있다. 석가모니 열반 후 500여 년이나 지났을 무렵이다. 이 왕조는 중국의 돈황에서 출발한 월지족이 서북인도의 간다라 지방에 진출, 그리스 원정군의 식민지로 있던 박트리아 왕조를 멸망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 그러기에 그들은 본디 가지고 있던 동방의 문화에 그리스로부터 전해진 서방의 문화를 붙여 무척 세련된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 곳은 아쇼카왕 때 벌써 불교가 전해졌고, 그리스 조형 예술의 기술도 들어와 있었다. 거기서 불상은 탄생했다. / 대승은 대중을 상대로 전도해야 하므로,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신앙의 대상을 만들어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429 이 때라면 바로 굽타 왕조다. 이 왕조 동안에 인도에서는 배에다 불상을 실어 바다에 띄어 보내는 행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배에다 불상을 실어 바다에 보내는 건 스케일이 큰 거 같고, 혹시 강에다 꽃을 실어 보내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비슷한 의식이라 할 수 있을까? ‘뿌자라고 하나?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잎 위에 꽃과 촛불을 두어 어두운 밤 강에 띄어 보내면 그 모습이 또 경건하고 아름답더라. 인도 가고 싶다.

 

430 그러나 산천이 매우 험하고, 사람들의 성품이 촌스러워 사악한 미신을 많이 믿고 있으니, 하늘의 화를 받을지 모르겠다.

이거 원문은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 성품이 촌스럽다는 게 어떤 걸 이야기 하는건지? 중국어에서 촌스럽다는 인데 흙처럼 질박하고 투박한 촌스러움이었다는 걸까? 촌스러운 성품. 뭔가 낯선 표현.

 

434 신기를 가진 이에게는 20년 후의 일도 먼저 보였던 것일까?

예술혼을 가진 사람과 예지력은 간혹 함께 가는 거 같기도 하다. 시이모가 화가이신데 영이 밝다.

 

435 싸움이나 싸움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워지는 꿈, 그것은 일연이 구층탑을 보며꾼 것이다.

영토를 넓히는 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하는 꿈, 그런 의미에서의 개척정신이나 승리가 아니라 천지가 평화로워지는 꿈, 그런 야망을 이루려는 이들의 위대한 개척과 순례정신. 동양의 이런 저력이란!

 

440 깨달음의 길에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나는 지금 길 위에 있다. 길을 걷는 중에 방해하는 세력도 만날 것이고 유혹하는 세력도 만날 것이고 조력자도 만날 것이다. 다시금 초심을 일깨우게 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으로서의 무언가를 만나기도 할 것이다. 오늘 변경연 1기 선배를 만났다. 어찌 보면 정말 우연한 만남이었다. 2014년부터 같은 시공간에서 여러 차례의 만남이 있었을 터인데 오늘에야 의미 있는 만남과 대화를 했다. 7월이면 느슨해진다고 하는데 다시금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기부여가 확실히 된 만남이었다. 그러고 보니 인도 음식점에서 인도 음식을 먹었네.

 

451 ()이란 승려들이 쓰는 글을 총칭하는 말

 

452 그렇게 태백산맥을 한 번 넘어서면 폐에 가득한 먼지가 깨끗이 씻어나가는 듯하다.

 

452 깃털을 눈에 대니 사람이 짐승으로 보이더라.

 

454 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自然과 如來. 그렇게 오는 것, 내가 그리는 미래가 저절로 그렇게 오길. 나는 그저 거기에 몸과 마음을 맡기되,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기다릴 뿐이다.

 

455 팔만대장경을 시디-롬으로 만들어 대장경 연구의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한 종림 스님이 자주 들르는 곳이라 한다.

팔만대장경과 시디-롬의 어울림과 이어짐이라니.

 

455 더욱이 절은 성소이면서도 낯익은 우리 건축의 한 틀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이라, 특히 조그만 암자에 들렀을 경우, 마치 고향 마을의 옛집에 찾아온 듯한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455 산과 물과 절이 어울린 전체의 풍광이 특히 인상에 남았노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455 절은 그 익숙함의 풍경에서 그 자체로 안식의 공간을 우리에게 주는 듯하다.

 

456 마음이 찾아갈 정처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定處, 某處, 難處. 정처 없이 떠돌더라도 마음이 찾아갈 정처가 어딘가에 있다면 그 방황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와 모처에서 만나 미래를 도모함도 멋진 일이되, 실현의 와중에 뜻이 맞지 않으면 난처할 터이다. 일단 생각나는대로 써봤는데 어떤 생각 흐름의 실마리가 나올 어휘들이다. 정처, 모처, 난처. 그리고 빠진다 삼천포로. 그것이 시.

 

458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도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상처를 내는 감정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줄 수 있는 치유의 장소.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성소만이 아니라 치유의 장소 역시 가지고 있어야겠다. 시인에게는 절이 그러한 장소라는데 나는 어디일까? 최근에는 동네 뒷산이 그러한 장소이긴 하다.

 

459 어머니는 노래를 지어 아이와 함께 간절히 불렀다.

나도 노래를 지어 부르고 그림을 그려 그리자. 나의 계획을 어떤 도구를 써서 체계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려라. 구본형 소장은 그 그림을 10대 풍광이라 이름 지은 것이렸다.

 

462 믿거나 말거나 하자면 황당한 이야기일지언정, 그 속에 숨은 절절함마저 앗아가지 못한다.

따지면서 읽으면 한도 없다.

 

466 시주나 걷자고 나온 이야기는 결코 아닐 것이다.

시주나 걷자고 나온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469 개인사의 그늘에 놓일 책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삼국유사>는 때로 일연의 생애와 견주었을 때 보다 맑게 이해되기도 한다. / 일연과 그 어머니의 대역들이다.

 

471 그들을 살린 어떤 메커니즘이 중요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그런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473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부득의 도움으로 남은 목욕물에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 보살이 된다.

 

475 기름진 밭에 풍년이 들어 무척 남는다 해도, 옷과 밥이 생각하는 대로 이르러 저절로 배부르고 따스함만 같지 못할 것이요.

 

475 그것은 마음이 저절로 시켜서 된 것이지 억지가 끼여들 수 없다.

 

476 3년쯤 세월이 흘렀다. 3년이라면 수행에 꽤 진전이 있을 기간이다. 군대 3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 때서야 총 쏠줄 알 만하니까 제대하더라고 말한다. 우리는 중학교 3년을, 고등학교도 3년을 다닌다. 3년이라는 시간은 묘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운기 시인 역시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인생이 흘렀기에 특히나 3년이라는 시간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

 

478 수행자의 초심을 흔들지 않으려는 박박의 태도도 뜻이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부득의 태도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479 스님의 염불소리/ 여인네의 숨소리뿐 무언가 답답하면서도 아름다운 대비이다.

480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시험삼아 두 사람을 방문했던 것이다.

來人不善, 다가오는 자는 선하지 않다.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 그러나 여기에서의 뚜렷한 목적은 불순한 목적이 아닌 것을.

 

481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

 

481 바라건대 옛날의 약속을 잊지만 말아주시게. 부디 함께 가야지? /  옛날의 약속이란 함께 성불하자는 것이었다.

 

484 이기심은 독선만 키울 뿐이요 자비심이란 찾을 수 없게 한다. / 계율이 인간보다 앞서는, 그래서 매정하게 보이기만 하는 도의 낮은 차원

 

487 사람들의 노는 모습이랑 시대마다 모습을 달리하겠으며, 모처럼 시간을 낸 바에야 이왕지사 신나게 놀 일이지만, 언제부터 우리들의 여가가 이렇게 막무가내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구본형 소장도 홍도를 여행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쓴 거 같다. 나도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다. 막무가내가 된 여가. 노는 것도 경쟁에 과시가 끼어든다면 곤란하다. 광란의 도가니, 노는 것도 전쟁. 이런 여가문화의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488 낙산사에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 모양이다. 무슨 힘일까? 비밀의 열쇠는 다름 아닌 에 있다고 본다. / 그러나 절 주변에 쌓은 담은 고집쟁이의 그것이 아니다. 속된 것으로부터 지키는 어떤 성스러움의 의지라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담, 장벽은 그 안의 것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다. 어울리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성소를 지키기 위한 담을 때로는 짓고 때로는 허무는 것이 중요할 거 같다. 다만 그 리듬이 아름다워야겠지.

 

492 마땅히 승려가 가야 할 길, 그러면서도 세속의 인연이 주는 모진 시련, 허망한 세상을 저버릴 수 없다면 그나마 뜻 있게 살아가는 방법

 

495 치밀하고 정성스런 만남

이러한 만남을 준비한 적이 언제였던가. 치밀하면서 정성스러운 만남.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을 때 그 동선에 우연을 가장하며 마주치려고 했던 노력. 지금은 이렇게 치밀하고 정성스러운 만남을 준비한 적이 있는가. 지금의 만남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가.

 

495 의상과 달리 조금은 조급하고 매사에 덤벙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같다. 공자의 자로, 삼국유사의 원효.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나 같은 사람 있었고 철학이야기에서도 비슷한 사람 있었는데 그 캐릭터들 정리 좀 한번 해보자. 그 와중에 어떤 패턴과 윤곽이 보일 것이다.

 

496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497 세상에 사는 보통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같은 경지에 오르기도 어렵고, 그럴 계기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497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의 주인공에 늘 원효를 배치하는 일연의 일관된 기술을 염두에 둔다면,

 

498 무릎을 칠 일, 거기서 애석해 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분위기, 원효는 그렇게 인간답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 그러다 발굴 당시 진전이라 새겨진 와편이 발견되어 이 곳이 진전사의 터임은 확증되었다.

 

499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의가 때를 기다리며 깊은 산골로 숨은 곳이 바로 진전사다.

 

499 처녀가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신약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501 가슴을 치는 깨달음

가슴을 치는 깨달음뒷통수를 맞는 배신감사이. 내 인생은 어디에 더 가까운가. 가슴을 좀 더 치고 남의 뒷통수는 때리지 말자.

 

501 여자가 홀로 키우는 아들의 전신을 범일은 벌써 12년도 더 전에 만났으며, 그것으로 정취보살의 친견이 예약되었다고 보아 무방할까?

미래가 현재에 이미 심어진 것. 그것은 꿈 또는 시로 온다. 그나마 시가 현실과 의식세계에서 만나는 미래라 하겠다. 나 요새 이 주제에 꽂혔다. 未來.

 

502 현실과 신이가 하나된 만남 / 그러나 여기서 본문의 기술 목적을 넘어 이 기록을 대하고 적는 일연의 또 다른 의중을 헤아려 본다.

시를 읽는 시간. 그 만남이 이뤄지는 시간.

 

504 한단지몽

 

505 이판승/ 사판승

어머! 이판사판이 여기서 나온겐가? 이판승이 될 것이냐, 사판승이 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러한 심적갈등에서 이판사판? 사바사바도 그렇고 야단법석도 그렇고 어찌 보면 불교언어가 우리 일상언어에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로 예전에는 불교가 일상에 내린 뿌리가 많았던 거구나. 마치 곤충화석을 품고 있는 호박 같은 언어이다.

 

507 뭇 새가 함께 주리기보다 차라리 외짝 난새가 마주볼 거울을 가지는 게 낫겠지요. / 조신은 조목조목 올바른 말을 하는 부인 앞에서 기뻐했다, 일연은 적고 있다.

 

508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 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513 자신이 독자적으로 수집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513 무릇 2천 년을 바라보는 오랜 역사에다, 거기 누벼진 사연이 많기도 많아, 불교야말로 이성으로만 받아들이는 어떤 형식으로서가 아닌 우리들 심성 깊숙이 내린 튼튼한 뿌리.

 

519 윤회하는 세상에서 서로 구제해 나가자는 약속을 하였다.

 

521 그런 그가 생경한 외국 이론으로 무장하여 어려운 말로 떠들지 않고 이 땅의 토착 신앙과 만나고 있다. / 일연은, 이미 13세기에, 이 땅에 뿌리내린 불교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인식한 이였다고 보아 무방하리라.

 

522 거기에는 일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지킬 수 있는 범위의 불교의 계율이 잘 스며들어 있다.

일상에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주어져야 해. 일상에서 유리되니 자본주의 하 소비의 미덕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게 미덕인가? 미더덕인가.

 

522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속 깊은 배려다.

 

526 동해 용의 아들이라는 처용이 헌강왕을 따라와 경주에서 산 것이 880년경, 그로부터 50여 년 뒤 서해 용의 아들도 들어왔다. 동서의 바다에 사는 용들은 한결같이 이 나라를 지키자고 애쓰는 존재들이다. 든든하지 않은가?

 

527 산사의 새벽과 함께 오는 개명의 순간을 만끽한 바 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원광과 보양과 학일과 일연으로 이어지는, 이 절을 세우고 지킨 이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531 우리 근대 문학의 개척자라고 불러야 할 이광수는 1942년 봄부터 장편 소설 <원효대사>를 매일신보에 연재했다. 남의 전쟁터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몰아세우던 춘원이 친일의 극점에 다다랐을 때의 일이다. / 원효에게 파계라면 이광수에게는 변절이 있다. /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533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 준 사람이다.

 

534 원효는 부처님이 세상의 인연을 다한 곳에서 세상의 인연을 시작한 셈이다.

 

535 하늘 괴는 기둥을 만들리라는 두 번째 줄에서 우리는 그가 지닌 속뜻을 짐작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원효의 품격을 지켜 주자는 사람들의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전설은 대체적으로 주인공과 전승자 사이에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품위와 아름다움이다. 전설은 주인공과 전승자의 합작품이라는 말 좋다. 보통 말을 옮기면서 변질되고 왜곡되기 쉽고, 감추고자 하는 걸 오히려 소문 내려 하는데. 원효의 품격을 지켜주는 배려라.

 

535 나라의 이익으로 명분을 세운다. 그만한 여유와 융통성이 신라를 신라이게 했던 것은 아닐까?

 

537 노래를 지어 세상에 유행시키다. / 무애의 원효 /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 / 누구나 가까이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538 농사꾼에다 하급 기술자, 나아가 저 짐승들에게까지 부처님의 이름이 퍼졌다는 이 놀라운 광경, 그것은 원효가 만들어 낸 절묘한 전파 방법 덕이었다. / 모두의 승려

원효가 참 매력적인 사람이네.

 

545 원효와 관련된 여러 명칭에 방언의 기록이 자주 눈에 뜨이는 것은 원효 자신이 거기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의 아들 설총에게 자연스레 전승되었을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저자를 연구함에 있어서 나는 가능한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형제의 틀 안에서 그 개인을 보려고 한다. 재능과 기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원효의 방언과 설총의 이두.

 

548 오직 그들을 추억하는 시인만이 서 있을 뿐이다.

 

556 내 지난 밤의 꿈이 그대가 와서 내게 맡겨질 징조였구나.

 

558 아마도 저 세상에서 인연을 맺어 이 세상에서 같은 길을 가는 것이리니, 이런 업보를 만나 함께 크나큰 말씀에 몸을 씻었지요.

 

562 통일을 이룬 조국에 당당히 귀국할 꿈에 부풀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564 나머지 찬술한 것들은 없지만,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한 것이다.

이거 설마 일연이 한 말은 아니지? 스님이 고기 한 점 이야기 하니 이상하쟎아.

 

564 원주의 비마라사는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혹 치악산의 구룡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구룡사 종종 가곤 했는데. 강원도와 경주를 그렇게 다녀도 절에서 특별히 어떤 감흥을 느끼진 못했는데 이번 책을 읽고 여러 절 다녀 보면 마음이 남다를 거 같다.

 

565 선묘는 수려한 의상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 뜨거운 정을 품는다. 그러나 의상의 마음은 철석같다. 끝내 선묘는 의상의 불심으로 감동되고, 불법에 귀의하기로 한다.

예전에 알고 지내는 동생이 어떤 스님을 좋아해서 한동안 마음 힘들어 했었다. 그 스님 나름 유명한 분이었는데 이름을 잊었다. 혜민 스님은 아니었던 거 같고 그 정도의 유명세였는데, 20여 년 전. 스님과 게이 중 잘생기고 재주 많고 매력적인 사람들 보면 좀 화가…???

 

568 무성한 꽃들 고국에 심었으니 / 종남산과 태백산 똑 같은 봄이로다.

중국과 한국에 퍼진 화엄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살집 풍부한 시적 표현의 속 안에는 나름 논리와 팩트라는 뼈가 있음에 놀랍다. 삼국유사 읽으니 시라는 것에 관심이 더 생겼다.

 

571 우리가 자본주의적 욕심에 벼려져서 모질다면 그들은 원초적 자연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려는 데서 생긴 모짐이다. /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

 

572 돈황석굴의 깊은 곳에 묻혔다가 세상의 빛을 다시 본 것이 겨우 100여 년 전, 그것으로 신라 출신이라는 사실말고는 고향이며 죽은 곳도 알 길 없지만, 719년 열다섯 살의 나이에 중국에 들어가 5년 동안 수학한 다음 결행한 4년간의 인도 여행을 어렴풋이 전해준다.

 

577 구구탁은 산스크리트어의 닭이고, 예설라는 중요하다는 Visala 또는 귀중하다는 issala의 음역이 아닌가 한다.

꼬꼬댁이 구구탁으로 의성어처럼 된 것인가? 너무 비슷하쟎아.

 

577 자신을 잊고 불법에 따르는 이들의 위대했던 개척 정신을 추모해 마지않고 있다.

이들의 개척정신과 제국주의와 함께 나아간 기독교의 개척정신은 너무 다르네. 기독교까지 싸잡아 이야기 하는 게 불편하다면 제국주의의 개척정신만 들자. 동영과 서양의 개척정신이 이리 다르다.

 

604 어쩌면 그 동기 하나로 깨달음은 단박에 오기 때문이다.

 

606 신라 출신의 대표적인 입축승려 혜초는 바로 선무외의 제자다.

인도전문여행사 혜초여행사에 그 이름이 길이 남았습니다.

 

607 다른 역사 사료뿐만 아니라 일연의 생애를 기록한 비문에도 이 책의 이름은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삼국유사가 왜 비문에조차 올라가지 않았을까?

 

620 그런데 이 때 집중적으로 탄압을 받은 쪽이 밀교나 점찰법회 같은 것이었다. 이른바 사람들을 미혹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되었던 것이다. 일연도 이 같은 부류로 나눠지고, 그에 따라 일연에 대한 관심이나 사적이 인멸되지 않았나 추측하는 것이다.

자고로 백성을 통제하려는 자는 백성들의 마음이 뺏기는 대상을 두려워 하여 백성을 미혹한다는 죄목으로 없애고자 한다.

 

621 스님이 보고 불쌍히 여겨 끌어안고 오랫동안 있었더니 숨을 쉬었다. 이에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벌거벗은 채 제 절로 달려갔다.

 

623 구차한 설명을 붙일 것도 없다. 원체 감동스러운 모습은 우리에게 바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623 애장왕 때라면 9세기가 막 시작할 무렵이다. 저물어 가는 나라의 분위기가 여기저기 감지되고, 정치적으로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때였다. 그런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625 현세에 복락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그것을 내세에까지 가져가고 싶은 마음의 소산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사실 정토 신앙은 번성기의 유복한 사람들에게 퍼지게 마련이다.

 

632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과 현실의 삶에 고단하게 매인 사람은 마지막의 자리가 서로 멀다.

 

633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유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동네 도로이면 간단한데 고속도로에서는 길 한번 잘못 들면 낭패이다. 잘나가는 인생이 실패와 좌절을 만났을 때 돌이키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렸다. 유턴으로 표현되는 인생의 패자부활전. 우리는 프로그래밍 된 기계가 아니라서 실수로 가득한 삶은 어차피 예정되어 있다. 이럴 때 어떤 이정표 같은 조력자가 나타나 유턴할 수 있게 해준다면 감사한 일. 실수가 아니라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이 좌충우돌 인생길을 살아가는 묘미가 될 것이고 길 위에서 만나는 조력자의 의미는 그래서 더욱 클 것이니 지나치지 말지어다. 그런 진인은 도적처럼 슬며시 온다네.

 

637 출산하고 기진맥진해 있는 어미 호랑이를 위해 제 목을 자르고 피를 흘려 주어 살려냈다.

부처가 전생에 이러했다고 하는데..이건 좀 오지랖이다 싶다. 이런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진 걸 중국인지 인도인지에서 봤던 거 같다.

 

640 남녀가 모두 모여 흥륜사의 법당과 탑을 돌며 복을 비는 모임이 탑돌이다. / 음력 2월 보름이라면 바야흐로 천지에 봄이 무르익어 갈 무렵이다.

중국의 네이버, 바이두(百度)가 생각난다. ‘바이두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사장이 아래 시를 좋아해서였다고 하고 시 안의 구절(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낸)이 검색기능과 맞아 떨어지기도 해서라는 것을 보고 시를 볼 줄 아는 사업가의 네이밍 감각에 감탄했지. 아래는 송나라 시절 元夕(정월 대보름 저녁)’이라는 시 중 일부이다.

 

众里寻他千百度,,

군중 속에서 그를 몇 백 번, 몇 천 번 찾다가

蓦然回首

문득 고개를 돌리니

那人却在灯火阑珊处

불빛이 환한 곳에 그가 서 있더라.

 

정월 대보름 저녁, 언급했듯이 바야흐로 천지에 봄이 무르익어 갈 무렵. 달빛과 전등이 주는 분위기와 함께 없던 애정도 생길 로맨틱한 분위기가 정월대보름 탑돌이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에서는 호랑이 여인을 만난 이야기가 중국에서는 저런 시가 태어나는 배경이 되었던 것. 어두운 가운데 여러 번 두리번 거리며 그 사람을 찾는 모습과 탑을 돌고 돌며 마주치는 남녀의 눈빛을 상상해보자. 유럽에서는 춤을 추며 빙빙 돌며 썸을, 동양에서는 탑을 돌며 썸을. 어쨌든 좋을 때다.

 

645 참 다행스럽게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제가 저를 소개해도 될는지요?

멋지네. 제가 저를 소개할까요?

 

647 술자리의 글짓기 수작(酬酌)으로

수작의 한자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술을 주고 받는다는 수작. 술을 주고 받으며 말을 주고 받고, 그렇게 말이 많아지면 쓸데없는 말이 오고 갈 수도. 그리하여 수작 부리게 되는 것. 그런데 말을 주고 받는 것만이 아니라 글을 주고 받는 것이라. 술 자리의 글짓기 수작. 멋있네.

 

648 그런데 주인 또한 돈을 싸들고 와서 꼬여내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지어 자신의 마음을 곡진히 드러내는 신도징의 태도에 끌려 허락하게 된다는 대목도, 일연은 생략하고 있다.

 

656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 도적같이 찾아온다.

 

658 가진 것이라고는 손재주 하나 밖인 어떤 서민까지. 아마도 그 서민은, 남산에 널린 주인 없는 바위에다 자신의 불심을 새긴 마애불을 하나 남긴 것으로, 살아 보람 있는 일 하나 했다고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소박한 불상이 마음을 끄는 것은 나 또한 그 비슷한 서민이기 때문이겠지만.

가진 거라곤 손재주 뿐이면 좋겠다. 이중섭은 종이를 구할 수 없어 담배 싸는 은박포장지에 철필로 그림을 그려 은지화라는 장르(?)를 만들었지 않나. 그저 채이는 돌이자 바위로만 보일 사람들 사이에 예술을 보는 눈과 손이 있는 사람은 돌에서 보석을 세공한다. 부럽다.

 

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흐릿한 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나머지는 불상을 보러 온 사람이 완성시키라는 조각가의 배려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행간을 읽어야 하는 글, 시가 특히 그러하다. 책은 독자의 읽음으로 저작이 완성된다. 제대로 읽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읽기는 또 하나의 쓰기이다.

 

667 삼국유사를 완성한 시점은 국사의 자리에서 물러 나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로 보인다. 13세기의 후반, 고려 사회는 이미 저물어 가고 있었다. 저물어 가는 사회

뜨는 사회, 저물어 가는 사회, 개인도 뜰 때가 있고 저물 때가 있다. 인생이 저물 때 펜을 들어야 할까.

 

668 그러나 그것은 먼 신라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일연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였다.

 

670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성인이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 과학의 시대. 몸도 너무 약해지면 약도 소용없는 약도 들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된다. 영혼도 마찬가지. 과학의 시대에 영혼은 어디에서 쉴 수 있을까.  

 

671 산지가람과 평지가람의 공존에서 산지가람 일변도로, 이것은 불교가 사회의 전면에 있느냐 배경으로 밀리느냐를 설명하는 좋은 예다.

절은 산지가람이겠거니 했는데 그것도 시대에 따라 달랐던 것이구나. 조계사로 한상균이 피신했던 것이 생각난다. 일종의 치외법권으로서의 절. 외딴 산 속이 아닌 도심 속 절 또는 교회가 사회를 위해 영혼의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곳이 되면 좋으련만.

 

672 승려라면 누구나 피세은거 하지 않느냐는 생각은 불교의 역할이 변한 오늘날의 관념이다. /  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의 세월이다.

 

682 일연은 아직 젊은 시절부터, 자기가 머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메모해 두었던 듯 하다. 이것이 삼국유사 찬술의 재료가 되었는데, 여기서 그 결정적인 증거를 보게 된다.

일연의 글쓰기

 

701 효도가 끝나고 나면 / 세상의 인연을 모질게 끊고 출가의 길로 나서려는 이들의 번뇌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703 남의 집 문 앞에서 걸식을 해도 좋다는 각오, 그것이 진정을 진정이게 했다.

큰 일을 하려는 자는 때로는 효도에 멈칫할 때가 있다. 그 효심을 사사로운 감정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멈춤의 이유이자 대상이 되는 부모가 자녀의 큰 뜻에 당신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얼른 길을 나서라며 때리는 채찍질. 그 모진 표현만큼의 간절함이 담겨있어 더욱 애잔하다. 남의 집 문 앞에서 걸식을 해도 좋으니 너는 내 생각 말고 떠나라는 대목에서 아들의 사형선고를 듣자 마자 쓴 안중근 의사 어머니의 편지가 오버랩 된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가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을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704 우리 고대 가요 중에 그 정형성을 최초로 획득했으며 지극히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한 이 시가 장르에 대해, 비록 편린으로나마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오직 삼국유사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향가 하나에 머물지 않고 10세기 이전의 시가에 대해서 그렇다. 책 한 권에 실린 단 14수가 천 년의 시가사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704 가장 늦게 받아들였지만 가장 훌륭히 소화해냈다. / 이것은 신라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급화된 문화로 옮겨 갔음을 말한다. 향가는 그 같은 특성을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706 논리적인 사실만 기록해도 되는 산문에서보다 정서적이며 주관적인 개성을 표현하는 시에서 더욱 그렇고, 일반 평민들까지 두루 즐길 노래에 가면 사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 같은 표기수단의 어려움이 우리 글로 짓는 우리의 시가를 갖게 하는 동기가 되었으리라.

시 같은 산문에 끌린다. 나의 정서와 주관적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와 글의 형태.

 

706 한문이 어렵다지만 배우면 그만이다. 아마도 신라인들은 그들의 고유 정서, 이것을 담아 낼 그릇으로서 우리만의 표기 수단을 필요로 했던 것 같고, 찬기파랑가, 제망매가, 원왕생가 같은 절창의 노래를 얻어냈다.

한문이 어렵다지만 배우면 그만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이런 패기를 가지자. 다만 거꾸로 고유 정서를 다른 그릇에 담아 보는 것은 어떨까? 뚝배기에 담은 스프, 냉면그릇에 담은 샐러드, 거기에서 개성과 창의성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주제로만 접근하자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거든. 그것이 내가 외국어로 책을 내고 싶은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정서의 퓨전요리.

 

707 이 자료가 없었다면 우리 시가의 한 시대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논의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니 아찔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종족 등 눈에 보이는 존재만이 아니라 시가의 한 시대라는 것도 보존되고 기억될 필요가 있다.

 

709 그들의 심신수련 가운데는 시를 짓는 일도 포함되었던 것 같다.

 

710 시는 현세의 문제 속에 있으면서, 현세에 안주하지 않는 초월성을 가진다. / 현세에서 박탈된 사람들이 시인이 된다. 그들은 그 박탈감 속에서 오히려 현세 이상의 어떤 것을 보고 노래하는 것이다.

변경연 과정을 통해 여러 책을 읽으며 팔자에도 없는 시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지어 보고 싶고 더 나아가 노래하고 싶어졌다. 시는 미래의 시제를 현재에 품을 여지가 있다. 시적허용이라는 보호막 아래 그것이 가능하다. 지금 여기서 부르는 미래의 노래. 그런데 반드시 현세의 박탈이 필요한가.

 

722 노래 한 곡에도 감동하는 도적들이나, 한 구비 너머 두 구비까지 내다보는 영재의 깨달음이나, 모두 놀라운 경지에 있다.

노래에 감동하는 도적이라니! 그 아름다운 영혼들은 다 어디 갔을까. 영혼의 하항평준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와 미래. 마음 중 뇌만 발달하고 있는 우리 종족. 측정되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까닭이다. 노래와 수치, 난 어떤 것에 동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의 순서는 삼국유사의 순서 그대로인 바, 이 책의 목차 역시 삼국유사의 목차대로 한 것엔 달리 덧붙일 말이 없다. ‘이 땅의 첫 나라라는 소제목과 함께 단군신화가 삼국유사에 실린 것의 가치, 그것도 순서 상 첫 머리에 실린 것이 주는 의미에 대한 소개와 설명은 특히 좋았다.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 이런 내용은 아쉬웠.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딱히 없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한달음에 읽었다. 자주 등장하는 멋진 사진과 아름다운 사진설명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때로는 일연과 함께, 때로는 고운기와 함께, 때로는 양진과 함께 하는 여행같았다. 책으로 함께 하는여행을 하는 느낌은 거의 처음 받아본 느낌이지 싶다.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일연처럼 살겠다는 의미를 담아 호가 如然인 시인 고운기. 그가 최대한 일연의 시선으로 일연의 마음으로 일연의 붓끝의 떨림까지 상상하며 삼국유사를 설명하였기에 그 정성과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다. 8백 여 년이 흘렀다고 하나 일연이 발 디뎠던 그 공간은 여전하다. 비록 때로는 세워진 탑과 절이 무너졌을 지언정 그 나마 찍어 당시의 일연이 바라봤던 것과 발 디뎠던 공간을 사진으로 현장감 있게 전달한 구성도 좋았다. 고운기와 양진의 발자국과 땀냄새가 페이지마다 흘러 넘친다. 감사한 책이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이 책을 읽고 일연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성 싶다. 일연의 발자취에 따른 여행지도가 실린 여행 가이드북을 부록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가 답사를 하며 만든 책이므로 그 과정 속에서 얻게 된 정보도 분명 있을 터이니 말이다. 한 쪽에는 해당 풍광에 따른 시가 있다면 싣고 하단에 공백을 두어 여행하는 이가 그 단상이나 시상을 쓸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여행 가이드북대로 발자취를 따라 단상과 시상을 적다 보면 여행을 마칠 때엔 하나의 묵상집 또는 나만의 시집이 되어 있는 그런 부록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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