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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8일 15시 02분 등록
1. 프롤로그

근 두달만에 다시 쓰는 북 리뷰이다. 연구원 생활이 거의 끝나는 순간에 파견 근무했던 조직이 폐지되었고 진로문제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다. 변화의 순간이 멋있다고 해도, 그것이 자기 아닌 타인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을 때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정치적인 권력이라는 큰 기반이 흔들리면서 변화를 강요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구원 생활 내내 자리 잡고 있던 변화라는 단어였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중략)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이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 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160p)


변화의 중심에 있는 내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긴 미로를 탈출하는 힘을 주었고, 나만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내가 해야할 일을 찾게 되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역사 추리소설이다. 연구원 기간 동안 소설을 읽어보지 못하였다. 처음 읽는 역사소설은 훈민정음에 대한 위대한 창조를 넘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세종의 애민정신과 과학을 사랑하는 군주로서의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부록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를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훈민정음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살아 숨 쉬는 뜨거움이 있었다. 또한 서울 파견기간 내내 경복궁을 맴돌면서 살았다. 근정전에서부터 향원정에 이르기 까지 보았던 하나 하나의 전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어느 장소에 서있던 내가 서있는 자리를 스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복궁은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이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가 살았던 짧은 기간보다 더 오래 살아온 역사가 바로 가슴속에 있엇다.

세종대왕이 환생하시어 당신이 만든 한글을 지금 쓰는 우리들 세대를 어떻게 볼까? 과연 우리는 세종이 가졌던 그 애민정신과 자주성, 그리고 역사에 대한 의의를 잘 알고 있을까? 수많은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고,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한문과의 격차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나오는 세종의 말이 허구일지라도 그 허구를 믿는다.
후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의 백성들이 나의 뜻을 알아주지 않음 또한 서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일은 지금 나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염려하는 것일 뿐. (276)


2. 작가에 대하여

저자 이정명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2006년 한글 창제를 둘러싼 집현전 학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뿌리 깊은 나무>로 한국형 팩션의 새로운 장을 열며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2006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아침독서운동본부 추천도서로 선정되며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에서 뉴웨이브 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소설 <바람의 화원>은 1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한층 견고해진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화단을 이끈 두 명의 천재 화가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속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그려낸다. 작품으로 <천년 후에>(1999), <해바라기(2001), <마지막 소풍>(2002) 등이 있다.

3. 가슴을 치는 구절

<열상진원 - 첫 번째 죽음>

(28) 집현전, 이 풍요로운 시대를 설계하는 현자들이 모인 곳. 다다를 수 없는 곳을 꿈꾸는 사람들의 집, 그들은 밤새워 강론하고, 힘써 독서하고, 생을 걸고 토론했다. 높이 솟구친 추녀 끝이 날개처럼 펼쳐진 그 집을 채윤은 못내 동경했다.

(33) 무엇이 지식이며 무엇이 잡설인가?
설(說-)로써 설을 돋우고, 논(論)으로써 논을 지탱하는 것, 한 줄의 문구가 낳은 각주와 해석의 미로를 헤매며 또 다른 미로를 만드는 것, 한 자의 글에 사로잡혀 죽은 관념의 무덤을 헤치는 것. 그것이 곧 식자라 하는 사대부의 경학이었다. 그들은 말과 글로 높은 벽을 치고 그 안에 안거했다.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한 관념의 담벼락은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독극물인양 피하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65) 채윤은 이 나라 최고 권부의 실력자라 할 권신 사대부들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새로 들어선 명(明)에 화친하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사사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도 알아듣지 못할 중국 말투를 흉내 내었다.

(주자소 - 두 번째 죽음)

(91) 정인지가 젊은 실용파 학사들의 학문적 주춧돌이라면 장영실은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는 젊은 학사들에게 실용적인 격물의 지식을 끊임없이 전해준 대 스승이었다.

(집현전 - 세 번째 죽음)

(167) “ 그것이 이치를 근거로 유추하고 증명해가는 산학의 세계다. 가능한 한 많은 단서를 확보할 것, 그리고 그것들을 적절한 방식으로 배열할 것, 이때 단서는 어떤 해석도 관념도 개입되지 않은 지극히 단순하고 단순한 사실 그대로여야 한다. 관념이 끼어들고 선입관에 오염된 단서는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혼란만 가져올 뿐이다. 수집된 단서들을 배열하였다면 거기에 상수를 대입하면 된다.”:

(169) 조선은 중국 변방의 초라한 조공국일 뿐이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서도 가장 먼저 할 일이 명나라의 황제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저들의 사신이 아무리 무례하고 완악하다 하여도 정성을 다해 대접을 해야 하고, 저들의 요구가 아무리 힘에 부친다 하여도 거절할 수가 없다.

(182) 대청마루를 뛰쳐나와 축대 아래 선 팽년 또한 송구스런 표정이었다. 농 삼아 핀잔을 주었지만 누추하게 꿰매 입은 팽년의 옷을 보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의 참 선비요. 집현전의 학사이다. 육신의 배고픔을 잊기 위해 영혼을 정련하는 서책을 파먹고, 비가 새는 누옥에서도 백 년, 천 년 후의 영화로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말고삐를 받아줄 종자 하나 없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은 젊은이,

(185)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함. 불의한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 하나의 나라가 스스로 서는 일이 아무리 지난하다 해도, 그 강토의 백성을 온전히 구제하는 것이 어렵다 해도, 역사의 수레를 되돌리려는 자들의 모략이 간악하다 해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중략) 격물로 융성해지고 백성들은 윤택해지는 세상, 대국에 예속되지 않고 스스로 존엄한 나라를 그들은 또 얼마나 기다려왔는가?

(210) 군왕이 되기를 꿈꾸지 않았고, 군왕이 될 운명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의 부름이 있어 그 부름을 내치지 못하고 보위에 오른 지 20년. 조정에는 의로운 신하들이 넘치고 집현전에는 슬기로운 인재들이 모였다. 천한 신분이나 귀한 가문의 사대부나 그 재주를 아꼈으며 단점이 있으나 모자람이 있으나 그 빼어난 능력을 키우려 했다. 백성의 윤택함과 나라의 부강에 천한 자와 귀한 자가 따로 있지 않음이었다. 악한 자의 뛰어난 재주를 골라 쓰는 것이 선한 자의 무능을 모른 척 하는 것보다 나음이었다.

(232) 제도를 세우고 문물을 개혁하는 것은 한지에 먹이 스며 퍼지듯 해야 하거니 기름을 뱉어내는 물처럼 해서야 어찌 되겠느냐? 내가 백성의 뜻을 미처 살피지 못하였음이니라.

<경회루 - 네 번째 죽음>

(266) 사관은 곧 기록하는 자이니 이날의 모든 정황을 글로 남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곧 실록으로 남을 것이다. 백 년이 지나고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역사로 남을 실록. 사관이 기록하는 바에 따라 역사는 전해질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만리였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하권 - 비서고 - 비밀의 표식>

(16)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자와 들리지 않은 것을 들으려는 자는 필시 세상의 표적이 된다. 너는 저 그림의 보이는 것만 보고 느껴지는 대로 감탄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20) “경회루란 어찌하여 경회입니까?” “기뻐하여 모인다 하여 경회라 하나, 뜻이 통하는 바른 사람이 모여야 경회라 할 수 있으리. 어진 왕과 슬기로운 신하가 덕으로써 만남이 아니겠느냐?”

(33) 세자의 섭정은 정학의 법도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것이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고 군왕과 신하의 법도가 무너질 것이었다. 정학은 왜곡되고 반상은 뒤집어 질 것이다. 대국의 사상은 버려지고 소악한 향악이 득세할 것이었다. 바른 도리를 탐구하는 선비와, 평생을 학문에 정진하는 유생들과 인간의 윤리를 지키려는 향교는 말살될 것이다. 그것이 어찌 제대로 된 나라인가? 그것은 혼돈이고, 불안이고, 아비규환일 뿐이다. 신성한 집현전의 주춧돌을 지켜야 할 대제학이 어찌 불 보듯 뻔 한 아비규환을 어찌 두고 볼 수만 있단 말인가? 최만리는 결정을 해야 했다.

<아미산 - 다섯 번째 희생자>

(51) 조정문신들은 돌아가며 금난전권을 주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주상의 뜻은 확고했다. 상업이 특정한 자에게만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재화와 물자는 애초에 임자 없는 것이니 가장 싼값에 가장 좋은 물건을 파는 자가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시전상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공무에 값을 쳐서 지불하도록 했다. 시전상인의 특혜를 빼앗은 것이었다.

(130) 지금까지 학문하는 자들은 글자를 익히고 그 글자의 뜻을 해독하는데 평생을 바쳤지만 지금부터는 그 글자를 실은 정보를 익히는데 골몰하게 될 것이다. 순지와 같은 천문학자는 하늘 천자와 글월 문자를 몰라도 천문의 이치를 통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격물의 시대다.

(132) 이 나라는 지금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있다. 그것은 새 것과 옛 것의 대결이며, 우리의 것과 중화의 것의 대결이고, 격물을 중시하는 실용과 사장을 목숨처럼 받드는 경학의 대립이다. 겉으로 새로운 왕조가 세워졌지만 조정과 유림에는 이미 완강한 기득권 세력이 자리 잡았다. 태조께서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풍찬노숙하실 때 그 뒤를 따르던 젊고 뜻있는 자들은 개국 후 공을 나누기에 급급했고 일신의 영달을 꾀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이제 새 조정의 권신으로 새 국시인 유학의 거두로 앞자리를 차지했다.

(134) 훈민정음 해례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은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나날의 쓰기에 편리하도록 함에 있나니라.

하늘과 땅의 이치는 한 음양과 오행일 따름이니, 곤과, 복 - 괘의 이름- 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임과 고요함의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무리들이 음양을 버리고 어찌 살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가 다 음양의 이치가 있으되, 돌아보건대 사람이 살피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정음-한글-의 만듦은 처음부터 슬기로써 이룩하고 힘으로써 찾음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를 따라 그 이치를 다할 따름이니,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거늘, 어찌 하늘과 땅과 귀신으로 더불어 그 쓰임을 같지 않으리오.

천지자연에 소리가 있다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어야 한다. (중략) 우리 동방은 예약과 문장이 중국에 견줄 만하나 다만 언어가 중국과 같지 않다. 글 배우는 이는 그 뜻의 깨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법을 다스리는 이는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긴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스물 여덟자를 창제하시고, 간약하게 예의를 들어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새서 만들되 글자모양은 고전을 본떴고, 소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음을 칠조에 맞고, 삼재의 뜻과 이기의 묘가 다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스물여덟자로도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고도 요긴하고, 정하고도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심리하면 그 실정을 알 수 있다. 바람소리, 학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도 모두 이 글자로 적을 수 있다. 자세히 글자에 대한 해석을 해서 열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분부하시니, 이에 신 집현전 응교 최항, 부교리 박팽년, 신숙주, 수찬 성삼문, 돈녕부 주부 강희안, 집현전 부수찬 이개, 이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여려 해와 예를 지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이도 스스로 깨우치도록 바란다. 정통 11년 9월 상한, 자현대부·예조판서·집현전대제학·지춘추판사·세자우빈객, 신 정인지는 두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쓴다.

(141) 글만 익히면 세상천지가 학문하는 자들로 넘쳐날 것이다. 종놈들은 시종학을 한다고 나설 것이고 장사치들은 상학을 한다고 할 것이며, 갖바치들은 피혁학을 한다고 나설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지렁이 농군이 송사에서 이치를 따질 것이고, 세상의 모든 자들이 자기 이익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문하는 사대부들 갈 곳이 어디 있겠느냐?

<향원정-비밀의 글자>

(151)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니라 삶과 나란히 있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견딜만 했다. 불안과 두려움은 고단한 삶을 밀고 나가는 힘이기도 했다. 채윤은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끊임없이 죽음으로부터 도망하고자 하였다. 날선 검 하나를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것은 죽어도 좋다는, 빨리 죽고 싶다는 어이없는 욕망 때문이었다. 동지들이 죽음의 칼날 아래서 죽음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채윤은 적의 칼날을 행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쓰러진 것은 채윤이 아니라 적들이었다. 죽음이 궁극적으로 삶을 구축하는 모순이었다.


(173) 나라의 말을 나라의 글로 쓰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나 그것이 마음 같지 않다. 대국과 소국이 있으니 소국은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조선이 대국의 글을 버리고 글자를 만들어 쓴다면 대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만백성의 편리와 나은 삶살이를 꾀하여 만든 글 때문에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니 이 일은 집현전 현학들에게조차 함부로 발설하지 못한 은밀한 일이다.

(175) 말하되 쓸 줄 모르는 불편이나 쓰되 말하지 못하는 고통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한자와 담을 쌓은 무지렁이 백성들이나 말하는 것이 어려운 소이나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자의 고통을 덜어주지 않고 어찌 만백성의 군왕이라 감히 말하리.

(182) 매일 서안 앞에서 말로만 읊조리던 경학은 서체에 지나지 않았다. 하늘과 땅의 이치와 음양의 조화, 오행의 이론은 완벽한 글자로 구현되어 이 백성의 입에서 저 백성의 입으로 전해질 것이다. 지체 높은 사대부의 담장 안에서만 은밀하게 읊조려지던 오행과 음양의 이치는 저자거리와 방방곡곡의 골목에서 온 백성이 함께 누릴 것이다. 경학과 사장의 이치가 만백성에게 공유되는 새로운 세상, 모든 백성이 현학이 되고 원하는 자는 누구나 학문할 수 있는 꿈의 나라, 그 나라에서는 관념보다는 실용이, 이론보다는 실제가, 권위보다는 실력이, 신분보다는 능력이 우러름을 받을 것이다. 지식은 글을 통해 들불처럼 번지고 현학들이 쏟아져 나오고 삶에 이로운 기기들이 새롭게 나올 것이었다. 새나라는 관념이 아니라 격물이 지배하는 나라여야 했다. 그 뜻을 주상은 신묘한 글자에 담아냈다.

(강녕전)

(216) 늘 그래왔다. 선택이란 원래 더 좋은 것과 덜 좋은 것 가운데 더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일 터, 그러나 채윤에게는 늘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중에 덜 나쁜 것을 고르는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은 우울한 선택.

(221) 시대는 살아 숨 쉬었다. 시대는 생각하고 성장하며 완숙해졌다. 사람이 시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시대가 성장하는 데는 그 시대의 명을 좇는 자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거대한 시대의 전쟁에 맨몸으로 나선 자들이 그들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시대가 성장하고 발전하여 융성의 시대가 올지라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부름을 피하지 않고 맞선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살이 융성의 시대를 만드는 한줌 거름이 됨을 기꺼워할 것이었다.

(265) 첫째, 지성으로 섬기 켜서 따라온 대국의 문물을 버리고, 언문을 창제하심은 이상한 일이옵니다. 소리를 합하여 글자를 만드는 것은 옛것에 어긋나며 근거가 없는 일이옵니다. 혹시 언문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서 이를 그르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중국문화를 섬김에 있어 어찌 부끄럽지 않겠사옵니까?
둘째, 중국 이외의 문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서하, 몽골, 여진, 일본, 서버 등이 있으나, 모두 오랑캐가 아니옵니까? 새로 언문을 지어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가 되고자 하는 것은 마치 귀한 하안무의 향기를 버리고 쇠똥구리와 쇠똥을 취하는 것과 같사옵니다.
셋째, 어두가 거칠고 촌스러우나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어, 이두를 배우려면 한자를 알아야 하옵니다. 만일 언문을 제작한다며 모두 언문에 공을 들일 것이니 성현의 학문의 소홀하게 될 것이옵니다. 뒷사람들이 스물여덟 자 언문만으로 입신하기에 족하다면 무엇 때문에 고심하여 성리의 학문을 닦겠나이까
넷째, 언문으로 송사의 원통함을 구한다 하나 중국에서 언문일치가 행해지고 있지만, 소송에서 원통한 사건이 지극히 많사옵니다. 소송과 형벌의 공평함은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들의 잘잘못에 있으니 언문으로써 옥사를 공평하게 하려는 것이 옳지 않사옵니다.
다섯째, 어문은 풍속을 바꾸는 큰 일이미로 반드시 재상과 신하들과 논의함이 옳사옵니다. 그러데 이를 행하지 않고서 하급관리들을 시켜 갑자가 익히게 하고 급히 반포하려 함은 후세의 공의에 어긋나옵니다. 국가에 부득이한 일이 아닌데도 언문을 만드는 데 급급함은 옥체의 쇠약을 부채질하니 옳은 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여섯째, 동궁(세자)은 덕을 쌓았다 할지라도 계속 학문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하옵니다. 언문이 유익하다 해도 많은 학문의 보잘것없는 한 가지 일 뿐이니 만에 하나라도 치도에 이익 됨이 없사옵니다. 신등이 모두 보잘것 없는 재주로 조정에 봉직하고 있으니, 마음에 품은 바가 있으면 감히 침묵할 수 없어서 삼가 온 정성을 다하여 재고해주시기를 청하옵니다.

(274) 날이 밝은대로 정음 스물여덟자를 반포할 것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그것으로 이 나라는 중국이 아닌 스스로의 혼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백성들이 배우고자 하면 어떤 일이든 배울수 있을 것이요, 익히고자 하면 무엇이든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백성들은 이 땅의 강역에서, 이 땅의 글로 이 땅의 혼을 마음껏 노래할 것이다.

(276) 후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의 백성들이 나의 뜻을 알아주지 않음 또한 서러워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일은 지금 나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염려하는 것일 뿐.

4. 내가 저자라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역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소설가로서의 치밀한 암시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구성이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의 축을 세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훈민정음 창제라는 역사적 사실과 개국 초 선과 명나라의 국제정세, 그리고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국내 정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세 가지 커다란 소재 밑에 채윤이라는 겸사복, 벙어리 궁녀 소이, 백정 가리온의 가상인물과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최만리 등이 등장을 한다. 장소적 배경으로는 경북궁을 배경으로 한다. 향원정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죽음을 조사하면서 커다란 미로속으로 들어가고 죽음과 연관된 다양한 사람들과 더 복잡한 미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설의 장점이 허구라는 사실이지만, 허구가 암시나 계획적인 조작없이 헛돌아 가는 것이 생긴다면 금새 탄로나 긴장감도 떨어진다. 계속하여 새로운 사건들과 그것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답을 보여주는 듯 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결국 마지막에는 채윤의 기지로 직제학 심종수의 계략이라는 것. 명나라를 등에 업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라려는 수작임이 드러나게 된다.

둘째로 저자가 책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하려는 의도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만약 훈민정음에 대한 홀소리, 닿소리를 설명한다고 하면 쉽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겸사복 채윤이 사건의 단서들로 찾아가면 깨달아 가는 음양오행의 원리, 그리고 발음의 원리, 세종의 애민정신을 추적하며 음미하는 맛이 있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조선이라는 큰 나라를 이해하고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의 첫책을 쓰면서 소재와 구성,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고민하고 있다. 소설과 내가 쓰고자 하는 형식은 달라도, 역사적 사실로 현재와 교감할 수 있는 발상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시 열심히 찾고 연구해야 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시대적인 소명에 대한 가슴을 치는 구절이 있었다. 책을 쓰는 답답한 마음, 과연 공무원이 공무원을 바라보는 정확한 관점과 좋은 책이 될 수 있을지 고심하는 나에게 많은 힘과 용기를 주었다.

시대는 살아 숨 쉬었다. 시대는 생각하고 성장하며 완숙해졌다. 사람이 시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시대가 성장하는 데는 그 시대의 명을 좇는 자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거대한 시대의 전쟁에 맨몸으로 나선 자들이 그들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시대가 성장하고 발전하여 융성의 시대가 올지라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부름을 피하지 않고 맞선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살이 융성의 시대를 만드는 한줌 거름이 됨을 기꺼워할 것이었다.(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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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8 20:19:41 *.36.210.11
<(276) 후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의 백성들이 나의 뜻을 알아주지 않음 또한 서러워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일은 지금 나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염려하는 것일 뿐.>

걱정과 서러움에 오래 지치면서 다만 의연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잃어버린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품은 오래 맺혀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이제라도 내 피와 살들로 가꾸어야 할 나만의 무엇을 애타게 찾고 그리며 살아 숨 쉬고자 함이리라.

시대가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는 삶을 받아들여 맨몸으로 살아가는 그대여, 지금처럼 차분히 성심껏 나아가는 그날들에 광명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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