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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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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1일 20시 19분 등록

< 저자 토드 부크홀츠에 관하여 >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버크넬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 하버드 로스쿨로 진학하여 1986년에 법무박사(J.D.) 학위를 우수한 성적으로 취득하였다.

하버드 로스쿨 재학 시절 학부생들에게 경제학 개론 과목을 조교(teaching fellow)로써 가르쳤는데 이 때 학생들이 직접 뽑은 명강의에 수여되는 앨린 영(Allyn Young Prize)을 받았다.

그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1987년에 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G7그룹 대표, 수석경제학자 타이거펀트 경영이사미국 백악관 경제정책 자문위원 및 조지 H.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의 경제담당 비서관을 지냈고 세계적인 헤지 펀드 타이거(Tiger)의 회장(directing manager)를 역임했다.

ABC 뉴스, PBS, CBNC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제논평을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를 통해서도 글을 쓰고 있으며, PBS, NPR, Fox, CNBC 등의 방송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원제: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유쾌한 경제학, 마켓쇼크, 러쉬!-우리는 왜 도전과 경쟁을 즐기는가등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홈페이지 http://www.toddbuchholz.com

 

11

18세기에 근대 경제학의 발판을 마련한 에덤 스미스는 당시의 통념을 거부하면서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는 것은 해로우며 국민은 사적인 구매자들과 판매자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경쟁을 통해 최선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머리말

21세기의 새로운 경제적 도전에 맞서기 위한 핵심 아이디어

 

24 러시아의 경제 붕괴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법제도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자유시장은 말 그대로 자유방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시장 행위자들이 따라야 하는 일정한 규칙을 필요로 한다.

27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공황시기에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 때 소비자를 벌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30

이스라엘은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일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신은 그들에게 기름 한 방울 주지 않았다. 군부 독재자들이 자금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 대다수 경제는 뒤처져 있다.

31

경제 사상의 역사는 종종 배고픈 사람들, 누추한 사람들, 그리고 재빠른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1. 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35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엘프리드 마셜은 경제학을 빈틈없이 치밀한 과학과 사람에 대한 헌신이 한데 어우러져야 하는 전문 분야로 간주했다. 경제학과 현실 세계를 잇는 가장 강력한 연결 고리는 정치다.

45

조르주 뒤비 -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쫓고 쫒기는 싸움을 벌였다. 많은 사람들이 인육을 먹기 위해 동료의 목을 잘랐다. 늑대처럼.

 

2. 경제학의 창시자 에덤 스미스의 재림

 

49 인간은 갈망하는 동물이다.

사람들은 점차 종교 교리보다는 합리적 이성에 근거해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 프랜시스 베이컨과 지동설을 주창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입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교회의 원위에서 자유로운 과학자들이 등장했다.

50

자연이라고 하는 책의 언어는 수학이라고 주장한 갈릴레오는 성서의 도움 없이 수학과 실험만으로 물체의 낙하 운동 즉 자유낙하법칙을 증명했다.

독일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는 뉴턴이 신을 솜씨가 서툰 시계공으로 묘사함으로써 신에 대해 씻을 수 없는 불경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51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명저 인성론

54

부란 금과 은의 양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근면 성실에 비례한다.

55

에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쓰기 전에 이미 도덕감정론이라는 인간의 윤리적 행동을 다룬 책을 출간해 명성을 얻었다.

56

보통 사람들은 태양이 행성들의 중심에 놓여 있듯이 자기 자신을 모든 사고와 행동의 중심에 놓고 있다. 홉스는 인간의 삶은 정부가 출현할 때까지는 고독하고 가엽고 역하고 잔인하며 짧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정심과 기본 정성 대해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저술 전반에서 인간의 이런 감정을 탐구하고 분석했다.

57

프로이트의 초자아라는 개념은 스미스가 설명한 공평한 관찰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알아낸 것은 상인들의 동기는 어떤 경우에서건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59

그는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 데이비드 흄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저는 무료한 시간이나 달랠 생각으로 책을 한 권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미스는 그곳에서 볼테르, 벤자민 프랭클린을 만났다.

63

국부론은 괜찮은 책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책이다. 스미스는 세상을 한 눈에 내려다보면서 무려 900페이지에 걸쳐 세상사에 대한 특히 경제에 대한 사실, 분석, 예언, 우화 등 자신의 위력을 뿜어냈다. 국부론은 철학, 정치학, 상업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64

국부론은 경제학자들에게는 하나의 독립선언문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미스에게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경제학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66

그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길을 가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고, 서로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목표를 증진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뚜렷한 상징이 된다.

84

중앙 계획 경제 체체에서는 정치권력이 경제적 지위를 결정한다. 왕과 군주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

86

스미스는 세상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기를 원했고 정계 및 재계의 유력 인사들을 열심히 만나면서 자신의 이론을 설득하려고 했다.

89 스미스는 정부가 승인하는 독점 사업들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91

저는 많은 경우에 호기심과 직관에 따라 행동했는데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컴퓨터가 컴퓨터 업계의 리더로 등장하기까지 30년넘게 미국 법무부는 독점 기업 IBM을 흔들어 댔다.

97

1930년대 일어난 대공황도 사실은 각 나라가 서로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 스미스는 신랄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보복 조치가 기대했던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여부는 입법가의 재량보다는 속칭 정치가라 불리는 교활하고 간사한 동물의 잔재주에 달려있다. 미국은 자국의 특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보호 정책을 펴고 있는 국가다.

98

스미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무역을 저해하는 보호 정책이 부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분명히 했다. 그는 정부의 역할은 첫째 국방, 둘째 법치를 통한 사회 질서 유지, 셋째 도로, 수로, 교량, 교육체도 같은 공공시설 및 자원의 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주의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01

국부론 출간 이후 에덤 스미스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또 관세청장을 지냈다. 자유무역을 주창한 경제학자답게 관세 정책에 관대했던 그는 국부 증진에 많은 기여를 했다.

 

3 암울한 예언가, 멜서스

 

106 멜서스는 인구 과잉으로 인해 인류의 미래는 기쁨과 환희로 넘쳐나기 보다는 사회적 소요와 붕괴를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11

지구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팽창하지만 식량 공급은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117

인생은 미래가 어떻든 하나의 축복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는 꼭 필요 이상으로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류가 동정과 미덕을 보여줄 것이라 바라면서 맬서스의 덫을 놓은 것은 맬서스 자신이 아니라 신이다.-맬서스의 설교

118

하층 계급에게 빈민구제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 의욕을 곰취시켜 자체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빈민 또는 빈곤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119

후일 케인스가 주장한 것처럼 맬서스가 인구 성장에 대해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 것은 사실 그의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인류애 때문이다.

120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구 자료와 관계 법률을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빈민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17,8세기에 내려진 칙령들이 오스트리아와 바바리아에서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것을 알아내기도 했다.

122

멜서스의 인구론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지식인들의 개정판이 나오자 개떼같이 몰려들어 그와 그의 책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더구나 멜서스가 개정판에서 본명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은 손쉽게 공격 대상을 찾을 수 있었다.

128

멜서스의 오류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절대, 두 번 다시, 정확하지도 않고 신뢰도 가지 않는 과거의 자료를 토대로 논거를 삼지 말라는 것이다.

129

로마클럽, 녹색혁명, 자주 환경세의 도입(136), 손수레 자본주의(144),

143

샐러드 그릇이란 서로 문화적 통합성을 이루기보다는 각각의 인종 집단이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동화되길 거부하는 모습을 뜻한다.

145

경제학자들이 미국에 대해 희망을 품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즉 수백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앞으로 20년 뒤에 은퇴할 경우, 이들을 부양하기위해 미국은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이다.

 

4 자유무역의 화신, 데이비드 리카도

 

152 이 책에서 다루는 위대한 경제학자들 가운데 특이하게도 데이비드 리카도만 대학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어떤 학자보다도 뛰어난 실력으로 경제 이론에 파고들었다. 그런데 주식 투자를 통해 수백만 파운드를 벌어들였다.

153

투자하는 곳마다 성공을 거둔 그는 20대 중반에 독립해 주식, 채권, 그리고 부동산 투자등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154

흥미로운 것은 이때가 리카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제학을 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국부론)

155

리카도는 통화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신문 기사 및 소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경제학 작가로 데뷔했다. 이민자의 아들로 가방끈마저 짧았던 리카도는 곧 영국 신사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었다. 주식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었고 사교계의 총아로 많은 이의 선망을 받았다.

156

기업가들은 지역 상공회의소 석상에서는 자유 경쟁 원칙을 즐겨 외치지만 막상 의회에 출석하면 정치가들의 귀에 대고 각종 특혜를 요청하기 일쑤다.

160

리카도는 사람이든 국가든 가장 적은 것을 포기하도록 하는 분야를 전문화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각자의 비교우위다. 그리고 서로 포기해야 하는 것 즉 산초에게는 물고기 돈키호테에게는 움막이 각자 기회비용이다.

162

그들은 보호 무역 정책은 거의 항상 경제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특정 계급이나 집단에게만 이득이 될 뿐이라는 리카도의 견해에 동의했다.

169

리카도의 분석이 우리 시대에 가장 크게 시사하는 것은 부유한 국가들이 채택하는 보호무역주의가 저개발 국가들에게는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81

지대라고 하는 지주들의 부당한 수입에 격분한 조지는 노동자들이 부를 생산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그들은 아무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지대만 날름 거둬간다며 나무랐다.

193

지성, 품성, 인격의 소유자였던 리카도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한적한 시록별장에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세계를 여행하며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를 연구하고 그리고 추상적이고 난해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해결책을 도출해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면서 그는 책, 신문, 의회 연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다.

194

독일의 경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에게 온갖 찬사를 늘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에 대해 자국의 원예 시장은 철저히 개방하지 않고 있다.

 

5 경제학계의 풍운아, 존 스튜어트 밀

 

196 존 스튜어트 밀의 생애는 다른 무엇보다 사상의 힘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

197

에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멜서스 모두 자연의 법칙을 발견해 경제학계의 아이작 뉴턴이 되고 싶어 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도덕 세계의 뉴턴, 즉 도덕과학자가 되고자 했다.

199

그는 나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었다고 고백했는데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201

벤담은 쾌락과 고통의 양을 계량화 할 수 있는 행복 계산법이라는 방법을 고안했다. 모든 경험은 강도, 지속도, 확실성, 근접성에 따라 측정할 수 있다.

그는 사후 자신의 시신을 런던대학교에 기증했는데 대학 당국의 주요 회의가 있을 때 마다 그의 시신이 회의장에 모셔졌었다. 벤담은 도덕 분야에서 과학적 엄밀성을 추구했던 존 스튜어트 밀의 열망을 충족시켰고 그에게 사회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204

아이러니한 것은 그 누구보다 쾌락을 주창했던 이들이 실은 오스트리아 프라하 출신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만큼 우울했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벤담의 급진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원리와 언론의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로부터 진리가 나온다고 외쳤다.

210

여하튼, 밀의 집안은 잠깐 들러 따뜻한 닭고기 수프 한 그릇 마음 편히 먹고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213

내가 그녀의 이런 지적 재능보다 더 높이 사는 것은 정말 고귀하고 균형 잡힌 그녀의 도덕적 성품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마음씨 따뜻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214

위대한 작품과 행동은 우리 정신을 고양시켜 비할 데 없는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불만에 찬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플라톤 철학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명예, 위엄, 자기 계발 같은 요소를 받아들여 공리주의를 발전시켰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공교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국가를 다스리는 것은 곧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1776년에서 1976년까지 200년동안 경제학의 권좌에 올라 그것을 계승 발전시킨 저서들은 손꼽아 봐야 5권밖에 되지 않는다.

215

에덤 스미스의 <국부론>,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원리>, 앨프리드 마셜의 <경제학 원리>,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이 그것이다.

밀이 경제학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는 정치경제원리는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서 그가 겪었던 지적 고뇌의 산물이었다.

216

인간과 사회 현상을 주로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연역적이지도 엄밀하지도 않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항상 일관되게 예측 가능한 대로 행동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21

사회 개혁가였던 밀은 규범적인 성향이 강했다. 밀이 대단한 것은 실증적인 것과 규범적인 것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것, 즉 규범적인 목표를 실증적인 분석과 적절하게 연결시켰다는데 있다.

225

밀은 부자들에게 소득세 감면 혜택을 줬던 반면 상속세에 대해서는 다소 엄격했다. 그는 여러 철학 및 경제학 저술들에서 결과의 균등 보다는 기회의 균등을 강조했다.

상속 재산은 상속받는 자가 직접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공공선을 위해 제한을 받아야 한다고 썼다.

226

기회의 균등을 저해할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밀의 의심의 눈초리는 상속세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벤담의 공리주의와 낭만주의의 피가 동시에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의 사치와 방탕을 참지 못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고지식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

227

밀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구제를 받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노동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안을 놓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235

밀의 공리주의와 플라톤의 이상주의, 즉 밀이 플라톤 철학의 미덕을 받아들여 공리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상기하자. 밀은 인류가 노동이나 부 자체보다는 위엄, 고결함, 정의에 더 관심을 기울일 날이 오기를 고대했다.

-나는 성공을 위한 투쟁이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 즉 기존의 사회적 삶을 형성하고 있는 서로의 뒤꿈치를 짓밟고 뭉개고 밀치고 그리고 유린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 산업발전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하나의 징후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밀은 선진국들은 경제 성장보다는 분배 정의 또는 최소한의 윤리 도덕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36

나는 사회주의 교리가운데 경쟁 폐지라고 하는 가장 두드러지고 강렬한 주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쟁이 없는 곳에 독점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시종일관 인권의 중요성을 외쳤던 밀은 여성과 빈민들의 참정권을 옹호했고 미국 내전 당시 북군을 지지했다. 밀은 영국학계에서 중세 시절 아리스토텔레스가 누렸던 것에 필적하는 권위를 누렸다.

237

밀은 전쟁에 나가 싸운 적도 없고, 언성을 높여 화를 낸 적도 없으며, 누구한테 도전장을 내민 적도 없었지만 그의 삶은 오로지 투쟁 그 자체였다. 그는 위선자들, 엘리트주의자들, 합리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다.

생전에 무엇보다 밀을 고무시켰던 것은 기사도였다. 그가 가장 용맹스럽게 맞서 싸운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아버지의 그늘과 세상의 허울이었다. 그리고 그는 끝내 승리했다.

 

6 비운의 혁명가이자 경제학계의 이단아, 카를 마르크스

 

240

마르크스는 훌륭한 자본가로 성장하지도, 훌륭한 소비자도 못 되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빚더미에 허덕였다. 강한 어조와 선동적인 문체로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견했다.

241

살아생전 마르크스는 어떤 명성도 추종자도 없었다. 평생 마르크스는 상대를 가지지 않고 신랄한 비판과 모욕적인 언사를 스스럼없이 퍼부었다. 그 중 유대인에 대한 비판은 가장 악의적이었다.

-이런 사람에게서 무슨 제대로 된 사상이 나왔겠는가

242

본 대학교 시절, 그가 직면했던 가장 큰 투쟁은 자신의 주벽과 낭비벽이었다. 결국 그는 이 투쟁에서 패배했고 아버지는 아들 덕분에 항상 호주머니를 털어야 했다.

빚쟁이에 꾀죄죄했다, 무어인이라는 별명, 영락없는 거지로 보였음, 헤겔파, 엄마 장례식조차도 안 갔음, 스스로 신을 자처하는 무신론자들의 무리, 프러시아 정부는 반역자로 봄, 프랑스의 추방령,

251

헤겔의 변증법적 관점에서 오직 불변적인 것은 변화 그 자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불변적인 것이다.

258

그는 자본주의가 인간이 봉건제의 열악한 물질적 상황과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260

1850년대 마르크스는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과 서고의 경제학 서적들을 뒤지면서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의 가족은 그가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추상적으로 분석하는 사이에 실제로 주린 배를 움켜잡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261

마르크스는 자신의 곤경을 부르주아지 탓으로 돌렸고

262

마르크스는 좀처럼 자기 자신을 탓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식의 죽음에 대해 그는 분명히 자신을 탓해야 했다. 그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살림에 대해서는 유아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집안의 하녀를 임신시키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마르크스는 책임을 회피했다. 그는 예니에게 엥겔스가 아버지라고 거짓말을 했다.

--아오~~~

264

자본론은 1500권이 넘는 참고문헌에 2500페이지에 달하는 인용문을 담고 있는 방대한 저술이다. 이에 미국 태생의 작가 잭 케루악은 이건 저술도 아냐 그냥 남의 글을 타이핑해 놓은 거지

274

소외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의 현대 사회 비판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되었다.

275

공산주의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온갖 추측과 논의가 무성했지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278

마르크스는 자신의 노동가치설에서 상상력과 기업가 정신을 간과했다. 비유형적인 요소가 성공적인 기업들과 나라들을 그렇지 않은 기업들과 나라들과 구분하는 기준이다.

280

역사가 그의 예측을 빗겨 나가려고 하자 사후에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저술을 토대로 하나의 사이비 종교를 창시했다. 마르크스 주의가 처음에는 무신론적 과학에서 시작했지만 20세기에 들어 그것은 빛을 선택적으로 투과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닮아가더니 좀처럼 과오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프루동- 품위 있고 진실한 논쟁을 합시다.

케인스 말하기를 저는 그것이 현재 갖는 경제학적 가치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287

그러나 그들이 (공산주의자들) 지금까지 이겼다는 승전보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291

불행하게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허황된 열망은 선량한 사람들을 매혹시켜 마르크스주의의 목음을 내건 사악한 독재 정권들이 등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92

오늘 날 많은 사람들에게 마르크스가 상기시키는 것은 경제 변화는 상당한 고충을 수반한다는 것, 권력은 언제든 압제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피착취 계급이 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경고는 오히려 공산주의 국가들에 더 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마르크스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여러 기만과 잔혹한 행위

 

7. 앨프리드 마셜의 한계적 사고

 

300

마셜의 케임브리지의 동료 시지윅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념은 없었지만 기독교 윤리와 이상을 인정하면서 기독교적 덕목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케인스에 따르면 시지윅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인생의 반을 보냈고 나머지 반은 그가 틀렸기를 바라면서 보냈다고 한다. 마셜은 시지윅처럼 고통스러운 내적 갈등은 겪지 않았지만 성격은 그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고결하고 윤리적인 측면이 있었다.

301

마셜은 자신을 성직자의 길로 이끌어 줄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그에게 경제학을 공부하라고 촉구하는 가난한 자들의 외침을 들었다.

신학은 영적 완성을, 법학은 정의를, 의학은 육체의 건강을 목표로 했다. 마셜은 여기에 네 번째 학문을 추가하고자 했는데 인류의 물질적 복지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학이 그것이었다.

비록 많은 경제학자들이 서로의 업적과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싸웠지만 마셜은 업적이나 명예를 탐하기보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인간의 조건을 향상시키는데 전념했다.

앨프리드 마셜은 평생을 두고 경제학을 역사나 도덕 과학의 한분과가 아니라 별개의 독립된 학문으로 구축하기 위해 싸웠다.

302

그는 경제학자들끼리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경제학자들이 정략적으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이성과 진리의 수호자임을 자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06

마셜의 인생과 사상은 일요일 오후 나무 그늘 밑에 축 늘어져 누워있는 늙은 사냥개만큼이나 평온했다. 밀의 머릿속에서는 아폴로의 힘과 디오니소스의 힘이 항상 요란하게 맞부딪혔고, 마르크스의 머릿속에서는 혁명의 꿈이 한시도 쉬지 않고 요동쳤다면 마셜의 머릿속은 알프스 산맥처럼 흔들림 없이 한결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상에 빠져 현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고 경제 현실 분석에 있어서 다른 누구보다 엄격하고, 신중하고, 또 사려 깊었다.

308

마셜은 점진주의적인 신조를 가지고 인생을 살았다. 특히 그는 매사에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309

마셜은 생전에 제 8판이 나오는 것까지 지켜보았고 현대 미시경제학 교과서들은 아직까지도 이 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마셜은 진부한 도덕적 설교를 버리지 못했다. 또 자신의 현학을 뽐내기보다는 독자들의 이해를 최우선으로 했던 것이다.

마셜에게 데이비드 리카도는 영원한 우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수학자처럼 사고하면서도 절대 애매한 기호나 자신만 알 수 있는 비밀 공식에는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330

마셜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반박했다.

340

마셜이 빈민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했지만 사회주의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었다. 오히려 그는 사회주의를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인내심 강한 경제학도라면 삶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을 갑작스럽고 폭력적으로 재 조직화하려는 계획이 이로움보다는 오히려 더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341

그는 제자들에게 간청하듯이 경제학을 인간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갈고 연마하라고 부탁했다.

342

그는 유연한 황금 같은 마음과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투명한 정신을 조화시켜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냈다.

 

8 자신이 친 제도의 그물에 걸려든 베블런과 갤브레이스

 

350

그의 첫 저술인 유한계급론은 강의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학생들을 귀찮게 괴롭히고 면박을 주는 그에게 남다른 문장 구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푸하하하하

353

베불런에 따르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냥 앉아서 부와 재산을 늘리는 사람이 사회에서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렇게 해서 유한계급이 태어났다.

아무런 수고 없이 부와 명예를 획득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이자 존재의 고귀함이다.

356

제조업자들은 부러움과 동료 압력이 소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357

베불런에게 나쁜 사람은 경영자들이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은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는 경영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앞세워 선악대결을 그린다.

373

어떤 것을 하나 선택한다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 그리고 실존적 고뇌를 수반한다.

374

베블런은 현대 문화와 자본주의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었는데 겔브레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항상 태도가 불분명하고 모호하다는 점까지도 닮았다.

397

역사적으로 전쟁 포로에 대한 취급은 포로를 죽이거나 살려두는 데에 따르는 비용 또는 이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건강한 시장 경제는 일정 정도 약속을 존중하고 신성시할 것을 요구한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사회는 경제적 붕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도덕, 유행, 철학등도 모두 경제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398

베블런과 겔브레이스는 경제학의 정의 또는 범위를 확장했고, 동료들이 더 넓은 사회 현상에 눈을 뜨도록 촉구했다. 경제학은 엘프리드 마셜이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학문이 아니다.

 

9 경제학계의 구세주, 케인스

 

400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학교일 것이다. 가운을 걸친 연구원들과 학생들은 헨리8, 엘리자베스1, 뉴턴, 다윈, 워즈워스 등 동문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16세기에 지어진 홀에서 식사를 한다.

지금까지 존 메이너드 케인스만큼 케임브리지의 문화, 재미, 공공에 대한 의무와 책임정신을 한 몸에 구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 더 똑똑하고 매력적인 사람도 없었다. 첨언하면 케인스는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만큼 똑똑했다.

403

케인스는 부모의 도덕적 지적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자신의 삶을 추구했다.

그의 친구인 제임스 스티븐경의 몸에 밴 철저한 청교도적 삶과 행동거지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제임스는 담배를 한 번 입에 물었다가 그것이 엄청난 쾌감과 만족을 준다는 것을 알고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았을 정도로 철저한 금욕주의자였다.

404

케인스는 학내에서 사도들이라 불리는 엄선된 학생들만으로 이뤄진 비밀 모임에 가입해 회원으로 활동했다. 보통 사도들은 철학, 미학, 자기 자신들. 세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특별히 미학적으로 호감이 가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주제들을 두고 토론했던 것은 아니다.

405

토론 모임인 케임브리지 유니언 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던 케인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숙한 토론 기술과 화술로 각종 세미나와 국가 간 정상회담에서 동료들, 경쟁자들, 정치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406

케인스는 아마추어 예술가로서도 동분서주 했다.

408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12년에서 1945년까지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꼼꼼한 편집과 빼어난 유머 감각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

418

소비자가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일수록 자본가들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투자를 늘릴 수 있다. 마셜 류의 논리에 따르면 변동 금리는 투자와 저축을 하나로 묶는다. 소비자는 저축의 공급자이고 자본가는 저축의 소비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31

케인스주의자들의 자문을 받은 정치가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뿌리치고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경기 순환과 싸우기 시작했다.

433

그의 저술 가운데 일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한 표현으로 가득한 것들도 있다. 케인스의 동료들도 그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자주 지적했다. 그는 여러 경제 정책에 문어발처럼 관여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먹물을 퍼부어댔기 때문이다. 저는 입력되는 정보가 바뀌면 결론도 바꿉니다. 그러나 변덕스러움은 엉성하거나 변변치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437

정부의 경제 정책을 조언하고 자문하는 일로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낸 그는 정신의 힘을 굳게 믿었다.

438

케인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가 유순해지면서 성품 또한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점이다. 그는 인류가 경제학적으로 진화하기 위해 이기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창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고 번쩍이는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들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인간은 종종 목표달성보다는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이것이 아마 아마추어 예술 애호가였던 케인스, 즉 예술품 수집가, 투자자, 후원자, 큐레이터였던 케인스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10. 케인스에 반기를 든 통화주의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

 

442

케인즈주의자들은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예산을 지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상황에 따라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능숙하게 다루는 정부는 경제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통화주의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케인스의 모델을 비판했다.

443

정부는 대개 훌륭한 운전사가 되지 못한다. 경제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는 재정 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444

오늘 날 케인스주의자들과 통화주의자들의 승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승부다.

외팔이 경제학자도 문제겠지만 페달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453

쉽게 돈을 얻은 자 쉽게 망한다.

458

성격으로보나 지적 능력으로 보나 밀턴 프리드먼 외에 케인스와 케인스주의에 대한 통화주의의 반 혁명을 이끌 적임자는 없었다. 철저한 논리와 주장으로 학계의 적들을 매섭게 몰아붙였던 희대의 논객 밀턴 프리드먼은 종래의 통념에 절대 아랑곳하지 않았다.

460

프리드먼은 두려움 없는 논객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전문 자격 직종이란 좋게 말해 전문 인력의 양성을 의미하지만 반대로 보면 그런 자격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배격하는 일종의 진입 장벽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미국인들은 전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의 손을 거쳐 지나간다.

이 때 그는 이론적 모델은 항상 현실과 결부된 경험적 검증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실질적인 검증 없는 이론적 통계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474

통화주의와 케인스주의의 이런 엇갈린 운명을 잘 설명해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교수님 이것은 15년 전에 저희에게 냈던 문제와 똑같은데요! 아니 상관없네. 문제는 같지만 답은 매년 바뀌거든.

475

정부가 어떤 경제 정책을 시행할 경우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사전에 예측하는 일이다. 레이건 행정부처럼 인플레이션 하나를 잡기 위해 무작정 통화 정책을 펴는 일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478

화폐의 유통속도는 수수께끼의 신비 속에 감춰져 있는 불가사의가 되었다.

케인스 사후 경제학계는 지적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됐다.

481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에서는 세금을 인상했지만 재직 기간 8년 가는데 7년 동안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미국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에 소득세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지속적으로 촉구했다는 사실이 있다. 이렇게 정치가들 사이에서는 세금을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세금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항상 우리 곁을 철썩 같이 따라다닌다.

482

롤링 스톤즈는 세금을 내지 않을 목적에서 모국 공연은 포기했다. 믹 재거는 이런 결정에 떳떳했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결정이 전적으로 경제적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483

그가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일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학과 아무 관련이 없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이 있었다.

484

1957년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나오는 고집불통의 배심원처럼 프리드먼은 지원 병제에 대해 그리고 자유를 위해 만장일치 표결을 이끌어냈다.

 

11 정치는 곧 비즈니스라고 외친 공공선택학파의 창시자, 제임스 뷰캐넌

 

486

왜 정부는 만성적인 예산 적자에 시달리는가? 왜 특수 이익 집단들이 번성하는가? 왜 매번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오는 공약과 달리 정부 부서들은 축소되지 않고 계속 비대해져만 가는가?

487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정치를 좋은 정책을 제안하고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성가시고 이해불가능하며 비경제적인 존재 정도로 여긴다. 때로는 불필요한 존재로 간주하기도 한다.

488

케네디 행정부와 존슨 행정부 시절, 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경제학자들이 워싱턴 정가에 들락거릴 때 뷰캐넌은 버지니아대학교 뒷동산에 올라 그들의 아이디어를 곱씹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489 나는 항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위대한 하층민이라고 생각한다. (뷰캐넌)

사업가들이 이윤극대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정치적 사업가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권력과 능력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500

정부 관료들은 아마 뇌물을 제외하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인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변수들, 예를 들어 봉급, 수당, 권력, 위선, 퇴직 연금 등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관료들은 어떻게 이것들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각종 예산을 늘리고, 부서의 크기를 늘리면 된다. 이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납세자들의 지갑에서 나온다. 돈 즉 배당되는 예산이 더 크다는 것은 관료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의미한다.

간혹 관료들은 정치 지도자가 은퇴하거나 선거에서 패하거나 죽기를 바라면서 그가 내린 조치들을 실행하는 것을 눈치 보며 거부하거나 방해하거나 미룰 수도 있다.

507

이 법안은 도로를 금으로 도배하는 것이 아니라 금딱지를 단 의회 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경력마저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었다.

510

사회보장제도 및 의료보장제도는 정부 예산의 집행을 두고 특수 이익 집단들 사이에서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이 벌어지는 또 다른 흥미로운 분야다.

513

의료보장제도 역시 중대한 개혁이 필요한 분야로 사회보장제도보다 재원 마련에 있어서는 훨씬 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516

화폐 공급량을 늘린다는 것은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의 증가를 말하며 이것은 소비자들의 수중에 돈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520

케인스는 어떤 경우에도 자본주의의 파괴나 붕괴는 바라지 않았다. 그는 마르크스가 경제학에는 아무런 기여도 한 것 없이 정치를 혼란에만 빠뜨렸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제도에는 결함이 있고 그것은 정부의 개입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521

하이에크는 정치가 경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전체주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522

무어에 따르면 최고의 선은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의식의 상태를 말한다. 케인스는 무어의 새로운 윤리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아름다운 대상을 느끼고 인간적인 교제를 누리는 것이 전통적인 도덕 행위에 우선한다.

523

케인스는 그와 자신의 친구들이 마음가짐을 선하에 갖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을 전혀 별개로 여겼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시인했다. 그들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퀘이커 교도들을 연상시킨다.

526

관리인들은 누가 관리할 것인가? 다시 말해 케인스는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을 누가 관리할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생전에 케인스는 관료들이 정치적으로 편법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례를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공무원들이 낡은 신념을 고집하고 새롭고 매력적인 제안을 거부한 채 고지식하게 행동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527

케인스는 정부의 건설적인 조치를 위해서는 고위 관료들보다는 하급 공무원들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실행할 가치가 있는 일도 하급공무원들의 보조 및 선의지 없이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528

나는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 그리고 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터무니없는 우를 범하고 있다.

529

내가 정치인들과 가까이 지낼 거라고 생각하지 말게. 그들은 끔찍해 그들의 어리석음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네.

530

하이에크에 따르면 케인스는 음악의 대가가 자신의 악기를 다루듯 그는 자신이 여론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사소하지만 정말 어리석어 보이는 의사표현 즉 항상 뭔가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충동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크게 소리치기만 하면 내 호소가 그대로 먹혀들 수 있는 권위나 기준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마 이것은 기도의 효험을 믿었던 옛 사람들의 피가 내 몸에 흐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537

케인스가 정치가들에게 손가락질하며 불신을 표시했다고 해서 그의 경제학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12 합리적 기대와 불확실성이 동시에 지배하는 기상천외의 세계

 

541

새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전임자들을 깡그리 비웃으면서 정부의 개입이 경제에 이로움이나 해로움을 준다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정부의 개입은 마법사의 트릭과도 같아서 현실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 놓을 수 없다.

549

많은 주식 중개인들과 홍보 담당자들은 자기들의 예측 능력을 자랑하고 다닌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예측 능력을 믿은 이유나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556

실제로 다양한 투자 종목, 즉 서로 상관관계가 없는 종목이나 분야에 투자해야 높고 안전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560

그런데 불쌍하게도 노벨상 수상자 역시 겸손의 미덕은 배워야 한다. 누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그에게 무작정 내 돈을 대신 투자해달라며 믿고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568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은 경제 학계의 이단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합리적 기대이론가들에게 모욕감을 느낀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중 하나인 시아파 교도들처럼 합리적 기대이론가들은 어떤 질문에도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575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뭔가를 잃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고, 때로는 사소한 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577

행동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미래의 만족보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선호하며 그 결과 노후 대비라든가 자신들의 소비 성향에 대해 무감각한 경향을 띤다.

581

우리가 사는 세계에 기상천외의 일들이 많이 일어나긴 하지만 합리적 기대이론이 발을 들여놓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이론과 현실의 불일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3 먹구름, 그리고 한 줄기햇살

 

584

경제학은 냉철한 지성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의 진리다. 꼭 경제학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호언장담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무모한 경제학자들은 스스로 프로메테우스의 역할을 자처하며 독수리에게 자신의 간을 쪼이도록 하지만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영웅 심리가 아니라 겸손함이다.

586

위대한 경제학자는 예술가처럼 초연하면서도 청렴해야 하지만 때로는 정치가처럼 세속적이어야 한다. -케인스

587

좋은 경제 정책이란 철수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아 영희에게 주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590

호시절조차 부정적인 필치로 글을 써대는 언론은 경기 침체기에는 물 만난 고기처럼 더 날뛴다. 쇼펜하우어가 지적했던 것처럼 역사책은 띄엄띄엄 언급되는 평화로운 시기를 제외하면 거의 전쟁과 혁명 즉 피로 물들어 있다.

591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제작자였던 새무얼 골드윈은 어떤 예측도 특히 미래에 대해서는 절대 예측을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미래가 반드시 희망적일 것이라는 어떤 보장도 없지만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는 있다.

국민소득이 노동 자본 천연자원 기술에 의존한다는 것을 상기하자. 근래에 이들 생산 요소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장기적으로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구나 노동조합도 이제는 조직의 존폐가 생산성 증대 여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높은 임금을 받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성공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아니다. 지금 나라 경제가 어려운 때  노동조합은 거리 투쟁을 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좀 했으면 한다. 

현재 미국의 노동조합은 경기 침체기에 감원보다는 임금 삭감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업의 운명에 동참하려고 한다. 노사간의 협력 관계가 강화될수록 경제는 더 크게 성장할 것이다.

594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자신의 주저에서 자본주의의 최대 위협은 이윤율 저하 같은 경제적 요소들이 아니라 정치적 요소들에 있다고 보았다

597

최근에는 인터넷이라고 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인해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국민을 어두운 나라에 가둬놓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북한은 예외이다.

598

지금의 세계는 200년 전 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는지는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21세기 도시의 삶은 정신 건강에 그다지 이로운 곳은 아니다. 현대 세계에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설 자리를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599

미래에 전 세계에 닥칠 일들을 암울한 필치로 그려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학자들은 이런 모든 가능성들을 연구해야 한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에서 볼 때 지금 두 발로 걷는 인류가 네 발로 걸었을 때보다 더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두 발로 걷고 있는 지금이 네 발로 걸었을 때보다 분명히 나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 우리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고자 애썼고 애쓰고 있는 경제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의 마음으로 신뢰를 보내도록 하자

 

옮긴이의 말

604

경제사상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을 끄집어내 말할 수 있다면 정부와 시장을 등에 업은 경제학자들 간의 끊임없는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니 경제는 곧 정치로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605

경제사상사란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인류의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자 성과이다.

 

< 내가 저자라면 >

 

이 책은 총 638페이지 중 본문 이외에 작은 글씨로 19페이지에 이르는 참고문헌, 12페이지에 이르는 찾아보기, 70권에 이르는 참고도서 소개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가 경제를 돕는다고 주장하는 중상주의들, 반대로 정부가 경제를 해친다고 주장하는 애덤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 정부가 경제를 돕는다는 케인스와 케인스주의자들, 정부가 경제를 도울 수도 있지만 또 해를 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통화주의자들, 정부의 개입이 경제에 이로움이나 해로움을 준다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새 고전파 경제학자들에 관한 이론은 물론, 경제학자들의 각종 사생활이나 성격, 생활태도도 들어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또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경제학자들의 친구 간 오고간 편지는 물론이요, 영화나 소설의 한 문장 등의 인용을 비롯해 풍부한 예를 들어 설명해서 딱딱하다고 생각했던 경제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런 돼지 같은! 무스의 결론이었다’ 212쪽의 말이 첫사랑이었지 이미 머리가 빠질 대로 빠져 이마가 훤히 드러났던 그에게는 늦깍이 사랑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의 첫 사랑 000은 유부녀였다. 그것도 세 명의 애까지 있는. 늦깍이 첫사랑이 유부녀였다니 낭만주의의 힘이 위대하기는 위대한가보다.’ 214쪽에 이 책은 그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독점 문제를 증명이라도 하듯 수십 년 동안 출판 시장을 독점했다’ ‘시베리아를 파라다이스로 개명한다고 해서 날씨가 좋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등의 재미있는 표현이 많아서 읽기가 지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275쪽에 이렇게 조리법 없이 요리되어 나온 지배 체제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정치적 짬뽕 또는 소시지나 다름없었다. 즉 그것은 중앙위원회의 여러 목표들을 한데 쑤셔 넣고 인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형태로 찍어 내는 값싼 방식이었다.’라는 문장에는 웃음까지 터졌다.

특히 헤겔의 머리가 구름 너머 저편에 있었다면 마르크스는 코를 땅에 박고 문지르고 싶어 했다.’는 표현이나 마르크스의 이론보다는 그의 비도덕적인 사생활 기록은 직설적 표현보다 더 마르크스나 그 사상에 대한 단점을 꼬집은 것 같다.

역자의 번역 솜씨도 수준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의 근대경제학자들이 신학과 철학에서 경제학을 시작했다. 이들의 고민은 철학적이었으며, 윤리적이었다.’는 문장은 저자의 경제학자로서의 철학적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300년 경제학 역사 속에 거장들의 이론을 때로는 조목조목 반박하면서도 마지막은 세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경제학자들이라며 자신의 경제학 선배들에 대한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경제학이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려고 한 의지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책이다.

설명을 돕기 위해 작은 글씨로 부연설명을 곳곳에 해 놓아 이해를 도왔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한적한 시골의 고지식한 여교사처럼 학생들에게 시시콜콜하게 도덕적 훈계를 남발하며' 쫀쫀하게 살아온 나는  경제학이 어렵고 거창하게만 생각된다.  

경제학은 모르지만 정성껏 잘 만들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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