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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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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7일 11시 5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서울대 의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시작하였다. 그 뒤 스위스 취리히에 가서 1966년에 융연구소를 수료하여 융학파 분석가 자격을 취득하고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이 되었다. 독일 및 스위스 등 각지 정신병원에서 수련 및 근무하였으며, 귀국 후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신경정신과장 등을 지냈다.

그 밖에 미국 하와이 동서센터 '문화와 정신건강연구계획' 초빙 연구원,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정신의학과 종교 강좌' 석좌교수를 지냈다. 1997년 서울대 정년퇴임 후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분석심리학의 전문수련기관인 한국융연구원(http://www.jung.re.kr)을 설립 운영 중이다.

 

융과 마찬가지로 그는 정신 치료에 있어 다음을 강조한다. "한국인의 정신질환 치료는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바탕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정신의학은 물론 신화.민속.인류학 등 인문사회과학에 접목한 국내 분석심리학계의 태두 (泰斗) . 융의 분석심리학은 사람의 무의식 세계가 의식화 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실현을 가능케 하는 학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학문인데 반해 융의 정신분석은 환자와 건강한 사람이 모두 해당되는 것이 특징이다.

 

무의식의 표상화는 그 상징인 꿈을 해석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설명한 교수는 "이 상징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신화, 민담, 종교, 비교종교학, 인류학 등 광범위한 공부를 해야한다" 고 말한다.

 

저자는 "정신질환은 '대화' 를 통한 사람의 심리와 여러 사회적 요인을 경시해서는 완치가 어렵다" 고 강조한다.

 

약물치료는 당장 효과는 빠르지만 장기간 써야 되며 습관성이 있으므로 약을 안쓰고 고칠 수 있는 치료법을 먼저 시도해 봐야 한다는 것. 정신분석 교육을 국내에선 극소수의 의료인만 받고 있어 정신분석치료를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너무 적다는게 노 () 교수의 안타까움. 실제로 국내 분석심리학 자격증 소유자는 저자를 포함해 5명 정도. 그래서 그는 정년퇴임 후 '분석심리학 연구소' 를 설립,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등을 대상으로 실질적인 임상교육을 실시했다.

 

인간 심성의 끝없는 심연 앞에서 겸허하게 자기를 성찰하며... 누구의 마음속에나 갈등과 고통을 이겨내게 할 수 있는 대극 합일의 원동력, 전체 인격을 실현할 수 있는 핵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자는 진실로 융을 아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 책 <그림자><분석심리학 탐구>시리즈 중 1권에 해당된다. 2권은 <아니마와 아니무스>, 3권은 <자기와 자기실현>이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23. 지나간 세계대전과 당시의 세계정세에 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융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나타난 불안과 공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모르겠으나 인류의 심리학적 자세에 장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단언하였다.

 

23. 그 이유에 대해 왜냐하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심리학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좀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한 위험은 인간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큰 위험인데도 우리는 너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모릅니다. 아는 게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모든 재앙의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몰라야 하지 않을까. 만약 인간을 정말로 다 알게 된다면 좋은 일들만 있을까. 범죄, 전쟁 예방은 확실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23. 의식심리학이 확대되고 현실적인 심리학적 전략이 개발 보급되었다. 이념을 위한 투쟁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보다 실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24. 광야의 예언자나 영웅, 개척자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는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를 신봉하는 대중집단의 시대가 열렸다.

 

25. 모든 재앙의 근원이 인간에게 있다고 한 융은 사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그 재앙의 원인뿐만 아니라 이른바 구원의 근원도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동양의 전통 속에서 오래 전부터 있었온 것이었다. 그림자의 인식은 인간이 전체정신을 실현하는 자기 실현의 첫걸음이다.

 

25. 그림자가 세계와 우리의 사회현실과 전통문화에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러한 사회적 현상의 근원이 각 개인의 마음의 심층, 무의식에 있음을 제시하고자 했다.

 

25. 무의식은 모든 정신현상과 문화현상에 표현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 자기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것을 의식화해 가는 작업이다.

 

1장 마음의 세계와 그림자

 

1. 마음의 세계

 

아는 마음과 모르는 마음

 

29.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나도 모르는 내 마음” “나도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을 한탄하고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 속은 모른다고 실토한다. 이로써 우리는 나와 남이 모두 가지고 있으나 평소에 모르고 지내는 속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시적이나마 시인하는 것이다.

 

30. 어떤 사람에게는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 그러나 동양인들은 대체로 마음과 마음이 말없이도 통한다는 이심전심의 비언어적 소통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건 아닐까. 사랑을 하면 사랑한다고 얘기해야지 가지고 있고 그걸 내 마음은 이러니 당연히 알아달라는 말은 이제는 좀 동의하기 어렵다.

 

무의식의 발견

 

30. 모르는 마음의 존재와 작용은 일찍이 동서의 사상사와 문예사에서 발견되었고 불교의 유식(唯識)사상처럼 체계적인 고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그것을 자연과학의 대상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지크문트 프로이트였다.

* 유식사상 : 마음 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마음에 의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사상.

 

31. 프로이트로 하여금 무의식의 심리학을 정립하도록 도와 준 것은 1900년 당시 프로이트가 브로이에르와 함께 연구한 히스테리 환자들이었다. 정신적인 해리상태에서 환자들은 알고 있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마음의 단편들을 내보였고 자기도 몰랐던 마음을 기억에 떠올려 이를 표현하면 병이 깨끗이 낫는다는 사실을 연구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31. 융이 초기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크게 공감한 것도 그의 학설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데 있었다.

융은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체험을 중요시했다. 그렇지만 교회가 부서지는 것을 체험으로 봐야 할까. 이처럼 눈 앞에서 증명이 되는 것을 체험으로 보지 않나.

 

31. 경험심리학은 경험이라는 주체의 인격의 특성, 그의 관점과 태도, 경험의 폭과 깊이에 따라 각기 다른 가설에 도달할 수 있는 만큼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 특히 이들의 무의식에 관한 견해는 자연히 차이를 나타낼 수 밖에 없었다.

 

프로이트와 융의 무의식관

 

31. 프로이트가 처음 환자들 가운데서 발견한 무의식의 내용은 현실의 도덕규범과 맞지 않아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억압된 여러 가지 충동이었다. 특히 억압된 성적 욕구와 유아적 충동, 여기에 더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감독 기능을 하는 부분이 무의식 속에서 발견되었다. 프로이트는 처음에는 억압된 성적 욕구를 무의식의 주된 특성으로 여겼으나 뒷날에는 삶의 본능’ ‘죽음의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의 욕구와 파괴적 욕구의 양면이 무의식의 충동을 이룬다고 보았다.

프로이트가 성적인 부분을 끝까지 고수하지는 않았구나. 융의 자서전을 볼때는 오로지 성적욕구에만 집착한 것으로 보였는데.

 

32. 프로이트는 또한 무의식은 사람이 태어나 의식이 생긴 뒤 거기서 떨어져나간 내용으로 이루어지며 무의식 속에 신화적이고 고태적인 요소가 엿보이기는 하나 그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남은 낡은 흔적에 불과하며 그 자체가 큰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32. 융은.... 무의식에는 억압된 성적 충동뿐 아니라 그밖의 여러 가지 다른 충동과 심리적 요소가 있고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억압된 충동뿐 아니라 단순히 잊어버린 것들이나 자극이 약해 의식까지 미치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태어난 이후 개인이 살아오면서 이루어진 무의식의 층을 융은 개인적 무의식이라 하였다.

 

32. 융은 더 나아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개인의 특수한 생활사에서 나온 무의식의 층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져 있는 인간 고유의 원초적인,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무의식의 심층으로 이것을 융은 집단적 무의식이라 하였다.

 

33. 융의 이와 같은 가설은 환자뿐 아니라 많은 건강한 사람의 꿈과 원시종족의 심성, 신화와 종교, 서양사상과 인도, 중국 등 동양의 사상을 비교하여 고찰한 결과이다. 개인생활의 경험자료뿐 아니라 인류의 태곳적부터 끝없이 반복되어 경험되는 일정한 인간적 체험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무의식은 수많은 신화적 상징으로 표현되고 경험되며 모든 의식된 마음에 활력을 주고 그 기능을 조절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통일된 전체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33. 한마디로 무의식은 충동의 창고, 의식에서 쓸어낸 쓰레기장이거나 병적인 유아기 욕구로 가득찬 웅덩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성숙케 하는 창조의 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33. 이렇듯 프로이트와 융은 경험론자로서 다같이 살아 있는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내용과 작용에 대하여 상당히 큰 견해 차이를 보였다. 특히 융의 무의식관은 자율성을 가진 창조적 조정능력을 지닌 것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34.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신분석은 무의식적 충동을 다루는 이드(id) 심리학에서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으로 이어지면서 차츰 무의식의 존재나 그 기능과 상징성에 관한 관심이 약해지고 자아의식과 대인관계에 더 무게를 싣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자아의 여러 기능에 관한 지식을 확대하고 의식심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이런 경향은 경우에 따라서는 무의식의 살아있는 작용을 간과함으로써 심층심리의 귀중한 발견을 소홀히 하게 될 소지를 안고 있다.

 

34. 오늘날 심층심리학파의 학자 가운데 진정으로 무의식의 존재와 그 작용을 진지하게 살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욱이 자율성과 창조성을 인정하고 무의식이 의식의 자아와는 다른 완전한 객체정신이라는 학설을 제창한 것은 융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융의 분석심리학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

프로이트와 융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결국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는 없었나 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하나 이들 둘의 영향은 상당했는데 그리고 제자들이 많았을텐데 오늘날에는 인기가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마음의 구조와 기능

 

34.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 즉 의식과 모르고 있는 마음, 즉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무의식은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으로 구분될 수 있다.

 

34. 의식계에서는 ’(ego)를 볼 수 있고 무의식계에는 그림자’ ‘아니마또는 아니무스’ ‘자기’(self)라 부르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


자아(ego)와 의식

 

35. 자아 또는 는 의식의 중심에서 의식된 마음을 통솔하고 또한 무의식의 마음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의식의 특수한 콤플렉스이다. 그래서 자아 콤플렉스라고도 한다. 내가 아는 모든 것,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 나의 생각, 나의 지각, 나의 느낌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의식, 또는 자아의식이라 한다. 의식의 내용은 모두 나와 연관되고 나는 나의 의식의 영역을 넓히기도 하고 좁히기도 하며 무의식의 작용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도 한다.

 

36. 나는 우리가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는 중요한 창구인 동시에 내면화세계와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36. 태어날 때 우리는 무의식상태에 있다. 무의식에서 가 탄생한다. 무의식 속에 나의 싹이 있고 그것은 아이가 자라면서 싹트고 성장한다. 그러므로 나는 극히 미약한 지각상태에서 고도의 의식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수준이 있다.

 

36. 자라면서 나는 사회생활 속에서 취해야 할 일반적인 행동규범을 배운다.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 일정한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자아의식을 강화하고 그 영역을 넓히며, 이로써 의식과 무의식세계의 대립과 긴장이 일어나게 된다.

 

36. 집단사회의 행동규범 또는 역할을 분석심리학에서 페르조나’(Persona :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할 때 쓰던 가면)라 부른다. 그것은 집단정신에서 빌려온 판단과 행동의 틀이다. 집단이 개체에 요구하는 도리, 본분, 역할, 사회적 의무에 해당하는 것, 그 집단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할 여러 유형이다. 페르조나를 배우고 여러 종류의 페르조나를 번갈아 쓰면서 사회 속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페르조나는 어떤 일정 사회집단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나 지폐와 같은 것으로 그 집단 밖에 서는 인정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인간의 보편적, 원초적 행동유형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페르조나 없이는 이 세상에서는 살수 없다. 또라이 취급을 받는다. 몇몇 또라이는 인정이라도 받지, 대다수의 또라이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말그대로 또라이다. 페르조나의 수는 적절해야 한다. 넘치지 않은 술잔의 미덕처럼

 

37.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의식이 내일의 무의식이 될 수 있고 혹은 무의식이 의식의 내용으로 바뀔 수 있다. 나는 의식의 중심, 나를 둘러싼 의식계의 둘레에 망막한 바다와 같은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 그러므로 자아의식은 바다 속의 섬과 같다. 바다 같은 무의식은 자아의식이 그 속에 있는 보배들을 발견하고 이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처녀지와 같다. 자아의식은 무의식계의 내용들을 의식화함으로써 그 영역을 넓혀 나간다.

 

무의식의 내용과 의식화 과정

 

37.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의식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고 시시각각 의식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는 마음의 세계는 모두 무의식이다.

 

37. 무의식의 상당부분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의식의 내용에 동화시킬 수 있다.

 

37. 무의식의 적극적인 성찰의 한 방법은 분석가에게 가서 자기의 무의식을 살펴보는 과정인 분석작업이다. 종교적 수행은 어떤 면에서는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한 인격의 창조적 변화에 기여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일상적인 자아의식을 초월하는 신성한 힘’, 누미노제의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38. 사람은 종교적 수행이나 무의식의 분석작업을 하지 않아도 무의식을 깨달아 나갈 수 있다. 그것은 무의식 자체가 그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그 자체의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서 의식을 자극하여 무의식을 깨닫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결코 범상한 생각이 아니다.

나의 의식을 변화시킨 무의식은 무엇일까? 내 성향과 맞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버틴 힘은 무엇이고 결국 끝에 와서 나를 나가게 한 것은 무의식의 자기인가 의식의 세계에 있는 자아인가.

 

38. 인격의 변환과 성숙은 오직 자아의식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자아의식의 역할은 무의식의 의식화에 절대적이다. 그러나 무의식은 자아가 무의식을 경시하고 그것과의 대면을 피할 때, 자아로 하여금 그것을 보지 않을 수 없도록 자극함으로써 무의식의 경향을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자아에게 준다.

 

38.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가 무수히 겪고 지나가야 하는 시련, 고통, 갈등, 절망, 상실의 아픔이 자기성찰의 귀중한 기회이며 성숙에의 의미 있는 고통이듯이 우리는 언제나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창조적 자극의 영향 아래 있고 때로는 그것이 고통스런 체험, 심지어 신체적, 정신적 병고의 시련으로 표현된다. 자아가 그 고통의 의미를 알아차리느냐 모르고 지나가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자아의 문제이다.

 

38. 무의식의 창조적 작용은 융의 심리학적 용어로는 자율성(autonomy)와 보상작용(compensation)으로 표현된다. 마치 자율신경계가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응하여 신체기능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신체생리를 조절하는 것과 같다.

 

39. 무의식은 자아의식이 외곬으로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의식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의 이미지를 활발히 보내서 그것을 보상한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남자의 꿈속에서 그로 하여금 매우 비합리한 행동을 하게 하거나 평소와는 달리 열렬한 사랑을 나누게 만든다. 혹은 지나치게 소심한 사람의 꿈에서 깃발을 들고 데모행진의 선두를 달리는 영웅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욕구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식의 일방성을 깨우치고 의식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무의식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나는 거의 꿈을 꾸지 않는데 와이프는 꿈을 너무 많이 꾼다. 나도 실제로는 꿈을 꾸겠지만 다만 기억을 못하는 것이지만 이제는 내가 꾼 꿈에 대해 개꿈이라 그냥 넘기지 말고 한번 해석을 해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꿈이 기억났는데 은심선배가 나왔다. 어떤 시 같은 것을 낭독하고 있었다. “너는 나에게 사랑은 셈이라...” 이런 문장까지 기억났다. 분명 더 많은 문장이 생각났는데 이제는 이것밖에 기억안난다. 이것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을까? 문체가 딱딱한 나에게 문체는 이런 것이야를 알려주려는 의도인가.

 

그림자

 

40. ‘그림자는 의식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무의식의 내용이다.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심리적 내용들이다.

 

41.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그것은 나,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다시 말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이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자아와는 대조되는,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아의식이 한쪽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림자는 그만큼 반대편 극단을 나타낸다.

 

41. 그림자는 본래 의식에 가까운 개인적인 무의식의 내용이다. 그래서 그림자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될 때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나와 같은 성()의 대상에 투사되며 거기서 그는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본다.

 

42. 우리의 무의식에는 의식과 무의식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원형이 있다. 이것을 자기원형이라 하는데 이 또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42. 원형적 그림자는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서의 의 그림자에 비해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화적인 상()을 띠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원형적 그림자상이 외계로 투사되면 그 대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강한 증오감, 혐오감, 공포감등을 느끼게 된다. ‘마귀’ ‘사탄이라 부르는 것들이 자기원형의 그림자 상이 될 수 있다.

 

42.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서의 그림자는 의식화해서 의식에 동화하면 의식의 시야가 넓어지고 그림자의 부정적인 작용은 건설적인 기능으로 바뀐다. 그러나 집단적 무의식의 그림자는 그대로 의식에 동화할 수 없다. 그것이 지닌 강렬한 에너지는 감정적 충격의 형태로 의식에 작용하여 의식의 기능을 지배해 버리기 때문이다.

 

42. 우리가 우리의 마음 속에 전율할 만한 파괴적 충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무의식의 원형적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는 면역력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마, 아니무스

 

43. 일반적으로 그림자가 의식화되면 그 다음 단계로 아니마, 아니무스를 인식하게 되고 이것이 인식되면 자기, 즉 마음의 전체를 실현하는 마무리 단계로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43. 아니마, 아니무스란 무엇인가? 아니마는 독일어의 제엘레(Seele, 심령)에서, 아니무스는 가이스트(Geist, 심혼)에서 빌려온 라틴어 용어이다. 제엘레니 가이스트니 하는 말이 가리키듯 그것은 우리 마음속의 혼과 같은 것이다.

 

43. 혼이나 넋, 또는 심령이란 모두 자아의식을 초월하는 성질의 표현이며 의 통제를 받기보다는 고도의 자율성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와 같은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그와 같은 독자적 인격이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내적인격이라 불러 집단사회에 적응하는 가운데 형성된 외적인격인 페르조나에 대응하는 무의식적 인격이라고 보았다.

 

43. 남성의 무의식의 내적 인격은 여성적 속성을, 여성의 무의식의 내적 인격은 남성적 속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여성적, 남성적 속성이란 집단사회의 전통적 여성과, 남성관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남성이 여성에 관해 체험한 모든 것의 침전, 여성이 남성에 관해 체험한 모든 것의 침전으로 우리의 꿈, 신화, 민담에 상징을 통해 인지된다. 반드시 여신과 영웅신, 선녀와 같은 인격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새, 사슴, 바람츠럼 비인격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수도 있고 심지어 물질, 이념에 투사되기도 한다.

 

44. 원초적 여성성은 여러 가지 다양한 성질을 나타내지만 남성들이 남성의 페로조나 때문에 소홀히 하기 쉬운 감성(pathos)와 예감능력으로 표현될 수 있다. 원초적 남성성은 여성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생각하는 힘(logos)과 지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내적 인격의 표현은 남성에서 주로 기분(mood)으로, 여성에게는 의견(opinion)으로 나타난다.

 

44. 우리는 아니마, 아니무스의 부정적 작용을 목격하게 되는데 남성에는 남자다운 남자의 변덕스러운 기분과 짜증 섞인 잔소리, 여성에는 융통성 없는, 따지는 버럿으로 표현된다.

 

44. 아니마, 아니무스는 원형이지만 무의식의 원형 중에 특수한 원형이어서 자아의식을 무의식의 심층, ‘자기에게로 인도하는 인도자, 또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니마, 아니무스의 인식을 통한 인격의 통합과 분화는 자기실현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자기(Self, Selbst)

 

45. ‘자기란 자기실현의 종착점이자 시발점이다. 자기란 전체정신,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통합된 전체정신이다. 그것은 인격성숙의 목표이며 이상이다. 그것은 의식의 중심인 ’(자아)를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크기의 전체정신 그 자체, 혹은 그 전체정신의 중심이며 핵이다. 우리가 자아실현이라 하지 않고 자기실현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체정신의 중심핵이라는 뜻에서 자기를 말할 때 우리는 특별히 이것을 자기원형이라 한다.

사실 자아실현은 많이 들어봤고 자기실현은 융 책을 읽으면서 접했다. 자아실현도 어려운 상황에 자기실현까지 가능하겠나 싶다.

 

45. 많은 원형 중 가장 핵심적인 것,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로운 통합을 위해 조정하고 질서 지우는 우리 정신의 내적인 방향타이며 나침반이며 고등종교에서 최고의 신, 최고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의 상징, 마치 태양계의 많은 혹성의 배열을 결정하며 운행을 조정하는 알 수 없는 궁극의 원리 같은 것-그것이 자기원형이다. 한마디로 융은 인간무의식 속세서 하느님과 같은 신상을 발견한 것이다. 하느님이 하늘 위의 빛나는 왕좌에 계시고 안 계시고는 심리학의 한계를 넘는 형이상학의 물음이니 심리학자가 여기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인간들이 신이라 부르는 대상에 해당되는 것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45. 융이 확인한 것은 무의식에서 발견되는 신의 상이었다.

 

46. ‘모든 사람이 부처다라고 말하는 대승불교의 여래장사상과 진여의 관념은 분석심리학의 자기원형과 일치되는 것이다.

*여래장(如來藏) : 중생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여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르는 말.

본래부터 중생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처가 될 가능성.

중생의 마음 속에 저절로 갈무리되어 있는 부처님의 청정한 씨앗.

중생이 모두 갖추고 있으나 번뇌에 가려져 있는 부처님의 성품.

모태(母胎)의 태아(胎兒)처럼, 중생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부처의 성품.

 

*진여(眞如) : 범어 tathata. 우주 만유에 보편(普遍)한 상주불변하는 본체.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있는 그대로의 본성, 상태. 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진리의 세계 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우주 그 자체.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대승불교 이상개념(理想槪念)의 하나로서,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뜻과 변천하지 않는 여상(如常)이라는 뜻을 합친 것으로, 사람의 일반적 사상개념으로는 미칠 수 없는 진

실한 경계

 

46. 음양이 합쳐 도()를 이룬다는 것은 밝고 어두운 심리적 대극의 합일로서 전체정신에 도달한다는 융의 대극합일, 즉 자기실현의 상징과 일치한다.

 

46. “우리는 원형 그 자체를 모른다. 그것은 인식 불가능한 것이다.” 융은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원형 그 자체를 인지할 수 없다. 우리가 인지할수 있는 것은 자기원형의 상(이미지)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상으로 인간의 꿈, 환상, 신화. 민담, 종교적 표상 속에 나타난다. 그리스도상, 붓다상 등 인격적인 신의 상에서, 금강석, 장미 등 꽃, 기하학적 구성, 혹은 원과 사각으로 에워싸인 중심이 강조된 만다라상 속에서 자기원형은 표현된다. 그것은 흩어진 마음을 합쳐주므로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47. 원형이란 지리적, 인종적 차이, 문화, 시대사조의 차이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인간행태의 원초적 조건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은 단어에 대한 정의만 내리지 말고 풍부한 사례를 들어주면 얼마나 좋나.

 

47.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을 통하여 그림자와 아니마, 아니무스를 의식화하고 자리를 실현한다고 해서 무의식의 세계가 낱낱이 밝혀지고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은 궁극적으로 무의식적이다. 자아기 전일(全一)의 경지인 자기의 경지에 근접할 수는 있으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언제나 자아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곳에는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실현을 통해서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끝없는 무의식 앞에서 자아가 취해야 할 겸허한 마음의 자세를 암시하는 융의 이와 같은 견해는 선불교에서 해탈의 선언과는 다소 그 모습을 달리한다.

 

47. 자기원형과 동일시함으로써 야기되는 자아의 팽창은 결코 자기실현의 진정한 증거가 아니라는 융학파의 자각은 단지 도가 통했다는 느낌. 해탈의 감정만으로는 진정한 득도나 해탈이라 할 수 없다는 대승불교의 자각과 같은 것이다.

 

심리학적 유형

 

48. 심리학적 유형설은....인간관계에서 갈등과 견해차이가 왜 일어나는가 하는 회의를 계기로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의 의식, 무의식의 관찰을 통한 융 자신의 체험내용을 살피고 인류의 정신사에 반영된 유형과 이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를 거울삼아 만든 가설이다.

 

48. 선천적으로 사람은 삶을 살아가는 데 두 가지 서로 다른 일반적 태도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를 내향적 태도, 외향적 태도라하고 이 둘 중 어디에 더 많이 의지하며 사느냐에 따라 각각 내향, 외향형이라 이름한다. 또한 사람의 정신에는 사고, 감정, 직관, 감각의 네 가지 기능이 있다. 이를 판단기능에 관여하는 사고, 감정기능을 한 묶음으로 하는 합리적 기능과 직관, 감각을 한 묶음으로 하는 비합리적 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애니어그램과 유사하다. 나는 외향형, 감정형이다.

 

49. 그러나 유형론을 무의식의 열등기능과의 관계에서 살펴보고 열등기능을 발전시키는 작업은 자기실현에 매우 유익하다.

 

50. 융의 유형론의 묘미는 그것으로 어떤 인간을 어떤 유형에 명확하게 분류하는 것에 있지 않고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의식의 전제와 무의식의 투사현상을 성찰하고 정신의 내면세계를 살펴나가는 그 모색의 과정에 있다. 유형설은 그런 의미에서 원형적 가설, 즉 아직 불확실한 것의 최선의 표현이고 또한 그것으로서 남아 있을 때 우리의 자기실현에 도움을 준다. 심리학적 유형에 관한 검사도구를 이용하여 연구할 수도 있고 이를 자기인식의 참고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50. 우세한 의식의 태도나 기능은 그 반대극의 무의식의 태도나 기능에 의해 보상된다. 내향형의 사람이 지나치게 내향적 태도에 집착하면 무의식에는 의식에서 배제된 외향적 경향이 억압되어 의식과는 상반된 경향을 띠게 되고 그러한 의식의 일방성이 지속되고 외향적 경향의 억압이 계속되어 활동하지 못하면 무의식의 외향적 경향은 미분화된 열등한 상태에 있게 된다.

 

51. 무의식의 열등기능은 의식에 대한 보상작용을 일으켜 의식을 자극하여 의식의 일방성을 제지한다. 혹은 그것은 외계로 투사된다. 그 보상작용의 정도가 적절한 경우에는 열등기능이 의식계로 떠올라 활성화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균형있는 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다.

 

51. 열등기능이 외계로 투사되면 그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내향형은 외향형더러 속에 든 것 없이 겉치레만 좋아한다고 흉보고, 외향형은 내향형을 고집불통의 독선가, 비현실적인 이상론자라고 비난하게 된다.

 

51. 그러나 열등기능을 찾아서 그것을 살리고 발전시키면 그것은 이미 열등기능임을 그친다. 그리고 모든 정신기능을 가능한 한 골고루 발전시킨다는 것은 전체정신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열등기능의 의식화-그것이 중요하다.

한가지에만 집중해도 모자란 것이 인생이거늘 여기에서는 전체 정신을 살리라고 하니 이게 가능할까 싶다. 감정, 직관. 사고, 감각의 균형 발전이라.

 

51. 자기실현이 상당히 진행되면 각 유형간의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 이를테면 내향성을 존중하는 외향형이, 또는 외향성을 발휘할 줄 아는 내향형이 된다.

 

2절 마음의 세계에서 차지하는 그림자의 거리

 

52. 그림자는 일차적으로 개인적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 자아 콤플렉스의 무의식면의 여러 가지 열등한 성격경향이다.

 

52. 그림자는 의식에 가까이 있으면서 자아가 모르고 있는 무의식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우리가 무의식을 의식화하면서,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지고 있으나 모르고 있는 인격부분을 깨달아가면서 성숙해 가는 과정, 즉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무의식의 요소이다. 그것은 성숙한 다음에 이른 첫 관문에 버티고 있는 수문장이다.

 

52. 우리는 그 험악한, 비굴한 또는 야비한 자신의 그림자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여 도망칠 수도 있다. .... 용기를 가지고 그림자를 대면하고 이를 통과하고 지나가야 비로소 자기실현의 다음 과제인 아니마, 아니무스를 의식화할 수 있는 조건이 다소라도 생길 수 있다.

 

53. 물론 자기실현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고 해서 그림자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다시는 그림자의 의식화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한 그림자는 만들어지게 마련이고 그림자문제는 계속된다. 다만 그림자는 인식하기가 비교적 쉽고 자기인식의 첫걸음이기 때문에 무의식의 다른 내용에 앞서 그림자문제부터 다루게 되는 것이다.

 

53. 무의식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곳에 어두운 그림자-파괴적, 부정적 열등성-만 있는 것이 아니고 창조적 능력, 즉 빛의 원천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신의 전체성이란 빛과 그림자의 융합으로 이루어진다. 겉보기에는 열등한 그림자 속에 또한 창조와 성숙의 씨앗이 있다는 점을 융은 강조하고 있다.

 

53. 대부분의 그림자는 상대악적 위치에 있어 그것이 의식화하여 의식에 동화할 때 그것은 분화하여 창조적 기능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자를 의식화해 나가노라면 우리 정신의 어둡고 밝은 면을 모두 다루게 될 것이다.

 

53. 그림자의 인식 또는 의식화는 아니마, 아니무스를 바르게 인식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보통 아니마, 아니무스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어둠으로 아니마, 아니무스를 명확하게 볼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54. 그림자는 또한 심리학적 유형설의 열등기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열등기능은 우월기능의 그림자라고 할 만한 것이다. 열등기능은 의식화로써 분화 발달시킬수 있다. 그런데 열등기능을 방치해 두면 그것은 고태적인 양태를 보이고 그림자 원형층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림자는 바다 표면 가까이 뜬 해초와 같으나 일단 끄집어 내기 시작하면 정신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보배, 또는 비밀을 건드리게 된다.

 

2장 그림자의 원시적 개념과 분석심리학적 개념

 

1절 살아있는 그림자 원시심성과 민속에 표현된 그림자

 

원시인에게 살아 있는 그림자

 

57. 분석심리학에서 그림자 이미지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무시할 수 없고 의식화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그림자로서 그것은 원시종족의 그림자관과 맥을 같이 한다. 어떻게 보면 원시종족은 우리가 오늘날 무의식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듯하다.

 

59. 그림자는 사람이나 짐승의 살아 있는 부분이며 그들의 생명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 그림자가 줄어들면 고독과 근심 때문에 그림자 주인의 생기 있는 에너지가 감소할 징조라고 본다. 그림자의 상실은 물론 죽음을 의미한다.

 

그림자의 주술

 

60. 그림자 주인의 성격에 어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60. 여성, 특히 장모의 그림자, 상중의 여인, 월경중인 여인의 그림자는 특히 해롭다.

여성차별은 그림자에서도 반영된다. 어쩌면 성차별은 원시시대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미묘체로서의 그림자

 

62. 많은 아프리카 종족은 그림자들 사람들이나 사물의 제2의 성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죽음에 연계된 존재로 본다.

 

생명 정수로서의 그림자

 

65. 그림자는 살아 있으며 그것으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겱코 그림자로부터 떠나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와 같은 여러나라의 그림자에 대한 믿음은 분석심리학에서 보는 그림자의 개념과 매우 유사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그림자와 떨어져 있다는 것은 무의식과의 분리를 의미하고 그림자를 통해 보배를 찾는다는가 병을 고친다는 관념(상당히 드물기는 하나)은 그림자가 해로운 영향뿐 아니라 매우 긍정적인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림자의 인식을 통하여 보다 깊은 무의식의 을 발굴할 수 잇는 기회를 마련한 분석심리학의 설명과 유사하다.

 

한자어권(,, )의 그림자 용법

 

68. 우리 나라 말에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그림자를 감추다’ ‘그림자도 없다고 할 때의 그림자란 그 실체의 최소한의 존재 근거를 말하는 듯하다.

 

69. 무엇보다 그림자의 상실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은 심리학적인 무의식의 그림자가 정신적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분석심리학의 관념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69. 자기실현의 과정이 성취된다 하더라도 무의식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언급하였듯이 전체정신이 자기(Selbst)는 항상 자아(Ich)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껏 힘들게 자기실현을 했다고 했는데 또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기껏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고 정복했는데 이 산이 아니고 저 산이라는....

 

70. 동양의 민간에서 말하는 그림자 없는 존재란 오랜 수련 끝에 해탈하여 투명해진 사람, 그림자를 남김없이 의식화한 사람이며 그림자를 억압하여 완벽한 도덕군자처럼 행동하는, 그림자로부터 분열된 자아상과는 다른 것이다.

 

70. 그림자를 덮어놓고 백안시하거나 경시하여 그 위험성이나 위력을 애써 외면하는 현대 문명사회의 사람들에 비해서 원시종족이나 민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적인 지각과 생각들이 인간심성과 인간의 삶의 본질을 얼마나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지를 알 수 있다.

 

2절 그림자의 분석심리학적 개념

 

그림자의 정의

 

72. 시작단계에서의 그림자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우리가 모르는 마음을 말한다. 대체로 우리가 계속 살펴나가면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개인적이고 부분적으로든 집단적인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 우리가 그림자를 만날 때는 실제로 무엇이 개인적이고 무엇이 집단적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측면의 요소가 섞여서 뭉쳐진 상태에 있다.

 

실체로서의 그림자 그림자를 잃은 사람들

 

75. 우리가 자아의 그림자세계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 그림자의 측면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문명된 사회에는 그림자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 그림자를 제거해 버린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오직 이차원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제3의 차원을 잃어버렸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신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 몸은 자아의 이런 그림자의 인격화이다.

 

75. 그림자는 낡은 방식들, 낡은 인격, 안일한 것들, 인격의 열등한 부분, 부정적 측면이며 감추어진, 바람직하지 않은 성질의 총화, 잘 발전되지 못한 기능들이며, 강렬한 저항에 의해서 억압되고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물론 융은 그림자가 예외적으로 긍정적이고 새로운 이미지로 타나날 수도 있음을 시인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의 꿈속에 나타나는 그림자의 모습이나 투사에 의해서 자기 밖에서 보는 그림자의 대부분은 자아의식의 눈으로는 부정적이며 열등한 성격을 띤다. 그림자가 무의식에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란 대개 그 사람의 자아가 지나치게 자기의 인격을 낮추어 보는 경우뿐이다.

 

76. 다른 한편으로 그림자는 무의식의 다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며 그 열등한인격 속에는 의식생활의 법과 규칙을 따르지 않으려 온갖 불순종이 들어 있다고 융은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속의 그러한 경향을 비판적으로 시인하고 실현시킬 수 있을 때 그림자의 의식과의 통합이 이루어지며, 그런 작업은 곧 불순종과 분노를 유도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립성을 갖게 한다. 그것 없이는 개성화를 생각할 수 없다. 만약 윤리가 의미를 가지려면 유감스럽게도 다르게 하고 싶을수 있음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76. 사람이 빛을 향하면 향할수록 뒤의 그림자는 커진다. 혹은 사람이 의식의 빛에는 눈을 돌리면 돌릴수록 등 뒤에서 그림자를 느낀다. 그림자라는 용어는 고대의 관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77. 우리가 세계에서 보는 것은 전체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단지 표면일 뿐이다. 우리는 세계의 실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말로, 칸트가 () 그 자체라고 한 것을 보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의 다른 반을 필요로 한다. 즉 그림자의 세계, 사물의 안쪽을 말이다.

 

77. 융의 그림자 개념은 성악설이나 성선설이니 하는 이원적 개념과는 거리가 멀고 고정된 죽은 개념도 아니며, 불변의 심리적 조건도 아닐뿐더러 움직이고 변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실체이다. 그림자는 열등하게 보이고 또 그렇게 나타나지만 개인적 무의식의 그림자는 의식화로써 분화 발달되고 창조적으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며, 원형적 그림자인 경우 비록 그것이 불변의 충격적인 인간속성을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인식은 인간본성의 전체성을 인식하는데 필수적이다.

 

그림자에 대한 인식

 

78. ‘열등한 인격 부분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적절하지 않고 잘못 다루어질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서 그림자라는 용어는 내용상 결정할 만한 아무 것도 가정하고 있지 않다.

 

80.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안다. 그러나 무엇이 될 것인지는 모른다.

 

상대악 또는 절대악으로서의 그림자

 

80. 그림자는 대개 단지 낮은 것, 저급한 것, 미개한 것, 적응이 안된 것, 다루기 힘든 것일 뿐 절대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원시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적 실존을 어느 정도 활성화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81. 우리는 무의식적인 인간, 그림자가 도덕적으로 비난할 만한 경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련의 좋은 성질, 즉 정상적인 본능, 창조적 충동 등도 나타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81. 의식에서 억압되어 이루어진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서의 그림자는 이른바 크게 해롭지 않고 의식화하여 분화된 태도로 변화할 수 있는 상대악이다. 그러나 절대악이라 부를 만한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적 그림자는 다른 원형과 마찬가지로 의식이 그것을 수용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만큼 엄청난 파괴력과 무자비함과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81. 언제나 개인적, 사회적 재앙은 우리 안에 무서운 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일에 달려 있지 않고 그것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그 성질과 그 실체를 용감하게 직면하는 것 그럴 때 인간은 세계를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82.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은 보통의 정도를 넘어서는 도덕적 능력을 의미한다.

 

82. 그림자를 형성하는 어둡고 열등한 성격의 경향을 자세히 살펴보면 통제할 수 없는 자율성과 강박적인 집착성, 격정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82. “누구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고, 개인의 의식된 삶 속에 실체화 되어 있는 정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림자는 더욱 검고 더욱 진해진다고 하였다.

 

83. 그림자의 문제는 결국 정신의 전체성과 결부된다. 그림자는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정신생활의 살아 있는 조건이다. 그것이 있음으로써 사람은 사람다워진다. 삼차원의 존재가 된다. 그림자는 강력한 저항 아래 억압되어 있고 억압된 것이 의식됨으로써 전체 정신적 대극의 긴장이 형성되는데 그것 없이는 어떠한 발전도 가능하지 않다.

 

85. 왜냐하면 대극 없이는 아무런 현실성도 없기 때문이다.

음이 있으니 양이 있는 것이고 양이 있으니 음이 있는 것. 여자가 있으니 남자가 있고 남자가 있으니 여자가 있다. 투쟁, 갈등 없는 것은 비현실적.

 

3장 그림자의 투사현상 그림자는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가

 

1절 그림자의 투사현상

 

그림자의 이미지

 

89. 만일 당신의 친구 한 사람이 당신의 결점을 비난할 때 마음속에 심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당신 그림자의 일부를 발견할 것이다.

 

90.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버럭 화부터 내는 것은 우리 무의식의 아픈 곳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며, ‘아픈 곳이란 곧 격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무의식의 콤플렉스인 것이다.

 

90. 사소한 계기에 순간적으로 무의식의 그림자가 통제할 겨를도 없이 먼저 튀어나온 것이다.

 

90. 그림자를 보고 그림자를 의식화하려면 무의식의 표현인 꿈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

결국 분석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자가 분석이 안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만큼 어렵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91. 전문가에 의한 무의식의 분석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무의식의 그림자를 밖으로 투사하였을 때 그 투사대상을 향한 자기의 감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무의식적인 것은 무엇이든 투사될 수 있다.

 

92. ‘왠지 모르게 공연히싫은 사람, ‘이유 없이내 비위를 거슬리는 동료, 선배, 후배가 있을 수 있다. “그 친구는 주는 것 없이 미워” “사람이 덜 되었어” “건방져” “간사해” “여우 같애” “게을러” “싸이코야” “싸이코패스(정신병질자)!” “더럽고 치사하고 추잡해” “돈만 아는 노랭이” “엉큼하고 능구렁이 색한 같애” “점잖은 위선자” “이중인격자” “거짓말쟁이” “한마디로 속물이지!” “사람이 너누 꼬장꼬장해” “까탈스러워” - 이렇게 감정 섞인 말투로 남을 비평할 때는 그림자의 투사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자는 보통 부정적이고 열등한 성격의 이미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투사된 인물에게 향하는 감정은 늘 좋지 않은 성질을 띤다.

이건 완전 대공감되는 부분이다. 그럼 내가 보는 이런 사람들이 결국 나의 이러한 열등적인 감정의 발로라니.

 

투사현상의 특징

 

93. 투사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강력한 감정반응을 일으키고 자아가 그 대상에 집착하게 만든다. 투사가 일어났을 때 자아는 그 대상에 대하여 초연해질 수도 무관심할 수도 없다.

 

93. 그러나 사실 그 자신은 겉으로는 점잖으나 매우 독선적이고 돈에 더러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신문보도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마음속의 그림자를 건드렸고 그것은 인식되기 전에 즉시 다른 대상에게 투사된 것이다.

 

94. 인간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향해 짖듯이 남의 잘못과 나태함과 위선은 질타하면서도 자기 마음 속에 든 도둑심리는 보지 않는다.

 

그림자의 투사와 거룩한 분노

 

95. 비슷한 집단적 단죄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뒤에 언급될 여러 크고 작은 사회사건을 만들어냈다.

 

95. 이것을 고치려면 비난하고 욕하고 헐뜯는 대상에 투사된 우리 마음의 반쪽 그림자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우리 자신으로 되돌려 받는 개개인의 의식화 작업이 필요하다.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그림자의 문제

 

96. 그림자의 투사는 상호간의 불신과 반목, 증오와 갈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 아들은 아버지를 실제 이상으로 무서워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필요 이상으로 거북하게 느끼거나 어려워하고 시누이 올케 사이에서도 서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 우리는 그림자의 투사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동반자로서의 그림자의 짝

 

97. 도덕적으로 완벽하여 이성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하고 모든 면에서 금욕적 생활을 지향하는 어머니의 무의식에 억압된 자유로운 사랑에의 욕구, 육체적, 감각적 쾌락, 물질적 탐욕, 사치하고 싶은 마음 등 여러 특징을 가진, 그런 그녀의 그림자는 우연처럼 딸에 의해 계승되어 실천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잘 숨겨진 그림자는 무의식간에 의식표면에 노출하여 딸이 그것을 눈치채고 실행에 옮니는 수도 있고 이심전심으로 무의식간에 딸에게 전달될 수도 있꼬 이를 발견한 어머니가 딸의 방종한행동을 비난함으로써 더욱 그런 행동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딸의 부도덕한행동을 고치기 전에 어머니의 부도덕한그림자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97. 자타가 공인하는 성직자의 망나니 아들도 이와 같은 그림자의 무의식적 배열 또는 옮김의 결과일 수 있다.

 

98. 사회적으로 선한 사람이 악한 반려자를 거느리는 경우가 있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참모나 비서는 고약한 사람이라든가, 청렴결백한 가난한 학자와 유능한 투기꾼 마누라와 같은 결합을 우리는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 나의 반려자는 어떤 경우일까. 나와 성향이 너무 비슷한 사람인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오늘부터 그녀에 대해 캐봐야겠다.

 

98. 우리의 그림자는 그와 같은 의 어두운 반려자, ‘의 검은 대리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하여 그것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언젠가 그림의 열등한 성격은 를 사로잡고 내가 규탄하는 오물을 스스로 뒤집어쓰게 된다.

 

99. 나는 그렇게 명석한사람이 왜 저런 속물들과 가까이 하는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속물은 사실 나의 그림자였고, 나는 그 지적인 학자에게 또 하나의 그림자 이번에는 긍정적인 번득이는 지성인을 투사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99. 와그너는 개인적 그림자로서 내향적 사고기능을 주로 우세하게 써온 파우스트의 무의식의 열등한 감정과 열등한 외향적 사고를 대변한다.

 

열등기능과 그림자의 문제

 

100. 내향적인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남들의 마음을 살피는 데는 매우 서투르다. 사고형의 사람은 공사구분을 잘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의 법칙을 잘 구사하며 살아가는 장점이 있으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어린 관계를 형성하거나 깊이 공감하는 마음이 부족할 수 있다.

 

101. 이것이 오랫동안 의식화되지 못한 채 억압되어 있으면 온갖 신경증성 해리의 원인이 된다.

 

101.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한가를 놓고 싸울 때 열등기능의 상호투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101.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을 매우 존경하고 과대평가하면서도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거북하다. 외향형이 잘할수 있는 사교성을 부러워하고 용기와 적극적 행동이 가져다주믄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왠지 편안하지 않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외향형이 내향형과 달리 주체에 입각한 가치보다 객체중심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외향형은 외부적인 성과, 눈에 보이는 결과, 많은 사람의 평가를 중시하나 내향형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 내면에 충실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다수보다는 소수의 신념을 중히 여긴다.

외향적인 감정형의 나에게 외향의 결과는 좀 의외였으나 오랜 군 생활을 통하여 내향성이 외향성으로 전환된것으롯 생각된다. 어찌됐든 나는 늘 외향형 사람을 동경해왔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으로 스스로 생각했던 경향이 있다.

 

102. 내향형은 외향형에 겉치레, 전시효과만 노리는 속이 빈 사람이며 시류에 영합하고 지나치게 현실주의적이며 지조가 없는 기회주의자이며 잘난 척하고 설치고 돌아다닌다고 비난한다. 반면 외향형은 내향형더러 현실을 모르는 고집불통의 몽상가, 이상주의자, 저만 잘났다고 하고 저만 옳다고 우기는 교만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여 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한다.

 

103. 지나치게 내향적인 사람들은 꿈속에서 흔히 큰일을 한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거나 권력자들과 만찬을 함께 하거나 또 때로는 용감한 투사처럼 데모 군중의 앞장을 서기도 한다.

 

105. 합리적 유형에게 그러한 비합리적 행동은 자기의 무의식의 그림자에 해당하므로 잘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여 과소평가하기 쉽다.

 

106. 남을 비난하기 쉬우나 자기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것은 때로 충격적인 일이다. 그것은 자기가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억압해온 자기 마음 속의 열등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108. 감정형은 이성보다는 감정판단에 따라 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이 유형은 여성들에게 흔하다. 외향적 감정형은 주체보다 객체에 관심이 많고 내향적 감정형은 주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같은 감정형이라 할지라도 나타내는 행태가 매우 다르다. 외향적 감정형은 쾌활하며 남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환경에서 누구나 느낄 만한 보편적인 감정가치에 입각하여 표현한다.

내가 외향형 감정형이다. 그래서 내 안에 여성성이 강하구나. 남자들보다 여자들과 있는 편이 좀 편하다. 그래서 요즘 아주머니들과의 모임이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으나 이제는 자연스럽다.

 

109. 감정형은 모두 사고를 싫어한다. 어떤 주제를 놓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심각하게 분석하는 것은 이들의 무의식에 있는 열등기능에 속하기 때문이다.

 

109. 열등기능은 자아의식에게 부담을 주는 기능이고 자아는 열등기능이 차지하는 정신영역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것은 꼭 걸어가는 사람의 뒷다리를 잡아끄는 버릇이 있다. 또는 저는 다리와 같다. 그래서 자아로 하여금 그것을 붙잡고 극복해 보려는 오기를 갖게 하는데 그렇게 해서 어쨌든 열등기능은 어느 정도까지는 발전한다.

 

110. 사고형의 평가기준은 그 사람이 풍기는 느낌보다도 우선 그의 업적과 능력이 중요하다. 감정형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와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감정반응이다.

 

114. 인간은 어떤 유형에 속하기 이전에 전체정신을 가지고 있는 개성적 존재이다. 유형론은 그 전체정신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보조적 관점이다.

 

115. 열등기능은 우월기능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없다. 열등기능을 살리려면 우월기능을 잠시 억제해야 한다. 사고는 감정에, 감정은 사고에, 직관은 감각에 감각은 직관에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열등기능을 아주 없애버리기 보다 전체정신을 어느 정도 실현하여 완전한 인격이 아닌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이다.

 

정치적시대적 사건 속의 그림자 상

 

117. 그러나 정의를 부르짖고 부패를 처단한 516 군사정권 이래 네 개의 정권 중 어느 하나도 정권 말기에 스스로 엄청난 부패의 늪에 빠져 국민의 조소와 규탄을 받지 않은 정권이 없다. 왜 이런 모순이 생겨나는가. 사정이 집권층 마음속 그림자의 투사를 근거로 진행되고 민중들의 한풀이 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남을 지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이켜 보고 사정의 칼을 휘두르는 권력층이 자체의 부정부패를 항상 먼적 검색하는 자세를 가졌더라면 부정부패 척결의 방법론은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그만큼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118. 개개인의 마음 속의 부패심이 없어지지 않는 한 부패는 아무리 법적인 조치를 마련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학교, 군대에서의 폭력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봤자 개개인의 마음속에 타인을 대하는 자세와 폭력에 대한 무의식이 의식화되지 않는다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18.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반목, 세대간의 갈등, 각종 집단의 파벌싸움에는 늘 집단상호간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가 일어나고 있다.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란 어떤 집단 성원의 무의식에 같은 성질의 그림자가 형성되어 다른 집단에 투사되는 것을 가리킨다. ..... 그러한 그림자가 생기는 이유는 그 집단성원이 하나의 페르조나, 즉 집단의식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가족’ ‘우리는 동문’ ‘우리는 한마음, 한뜻’ ‘우리는 엘리트들의 모임등과 같은 슬로건 밑에 결속을 다짐할 때, 거기에 속하지 않은 집단과의 차별화가 일어나고 이것은 쉽게 배타적이 되거나 다른 집단으로부터 배타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살면서 너무나 많이 겪어왔던 부분이고 벗어날 수 없었고 때로는 거기에 심취하기도 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118. 정의를 위한 모임, 도덕을 위한 모임이 출발 당시의 좋은 뜻을 끝까지 펼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이들 집단이 너무 밝은 목표에 치중한 나머지 그 집단성원의 그림자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과 그림자의 집단투사

 

118. 인간집단이 서로 집단적으로 살육을 자행하는 전쟁의 심리는 인간의 원초적 폭력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인간이 아직 풀지 못한 혹은 풀기 위해 노력해온 사건이다. 전쟁은 흔히 합법화된 집단폭력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악의 원형, 그림자 원형의 엄청난 에너지가 도사리고 있고 이에 관련된 원형적 배열이 간여하고 있다. 그림자 원형은 적의 집단에 투사되고 그리되면 적은 인간이 아닌 일종의 괴물들로 보이고 죽여도 좋거나 죽여야 할 악한 존재로 보인다. 여기에 영웅신화가 사람들의 무의식에 배열되면 인간집단은 괴물을 죽이고 괴물에 붙잡혀 있는 여인을 구출하는 영웅 원형상과 동일시 한다. 그들은 여기서 자기행위의 의미를 나름대로 찾고자 한다.

 

119. 전쟁도발자는 또한 인간이 살육과 자기희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한다는 심리를 잘 알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전쟁의 신, 승리의 신, 영웅의 신 등이 등장하는 신화를 내세워 국민의 집단적 무의식을 자극하여 적의 집단에 대한 그림자 원형의 투사를 촉진시킴으로써 적을 무찌르는 명분을 제시하고 집단적 광분을 부채질한다.

 

119. 전쟁에는 항상 자유와 정의를 위한 성전, 민족 해방을 위한 혁명, 세계인류의 구제를 위한 정벌이라는 표제가 붙는다. 전쟁은 인간의 근원적인 희생정신, 순교정신, 영웅정신이라는 원초적 조건과 밀접한 관계에서 발생하며 그림자 원형의 간여로 진행되는 집단행동이기 때문에 덮어놓고 평화를 호소하고, 화해를 원한다고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화는 오히려 전쟁을 낳는다고 융은 말한 일이 있다.

 

119. 평화는 승리와 패배가 그 의미를 잃을 때 오직 그때라야 가능하다. ‘나는 평화를 주기보다 칼을 주러 왔노라하고 우리의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겠는가?

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성경에 많은 말들이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은 말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될 때 종교에 대해 당혹스럽다.

 

119. 인간은 집단 속에서 모두 약한 존재가 된다. 건전한 윤리적 책임감을 가진 사람도 집단 속에 파묻히면 책임감이 느슨해지며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타락한 폭도’ ‘무자비한 망나니가 될 수 있다. 집단 속에서 집단적 무의식의 파괴적 세계에 전염되는 것이다.

특히 군대에서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에게 개개인은 없다. 오로지 집단, 국가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의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119.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의 가장 극명한 역사적 사례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배척과 학살이었다. 유대인에게 비난을 퍼부었던 나치와 이를 추종했던 독일인들은 유대인더러 작당한다” “자기네끼리 논다” “돈에 인색하다” “자기네 전통만 고수하고 남과 섞이지 않는다고 욕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어떠했던가. 그들이야말로 아리안족의 순수한 피를 지켜야 한다며 오만했고 스스로 우월감에 젖어서 자기네끼리 작당했으며 그들 자신 또한 매우 돈에 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자 하지 않고 이를 유대인에게 뒤집어씌웠다.

 

120. 나치의 유대인 증오와 학대는 일반적인 개인적 무의식의 그림자의 집단투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유대인은 마음대로 죽여도 좋은 버러지 같은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120. 집단적 무의식의 그림자 원형이 이 투사현상에 개입되고 있는 것이다. 원형은 신화적 상()이고 누구의 무의식에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투사되는 곳에서는 대상에 대한 강력한 감정반응이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120. 융은 독일인 환자들의 무의식에서 이상한 변화를 발견하였다. 환자들의 꿈이 폭력성, 잔인성, 원시성의 특성을 가진 신화적인 상징들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121. 무의식적, 원시적 세력이 급격하게 집단적으로 의식을 엄습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는 복종을 강조하는 사회교육의 결과 빚어진 독일인 특유의 집단적 성향이 그 토대가 되었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사회적 재난이 독일에서의 군집본능을 증가시켰으며 무의식의 충동을 해방시켰다. 이로 인해 온갖 도덕적 장벽이 무너진 독일은 마침내 서방국가 중 최초로 집단행동의 희생자가 된 것이라고 융은 말했다.

 

 

125. 그것을 의식화하고 그 그림자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할당된 숙명이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그처럼 단순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독일인에게 이해하기를 기대하겠는가? 세계는 이 진실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그 상태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126. 그러한 이미지가 나타내는 비인간적 형상과 기계주의적 기능은 아마도 현대인의 무의식에 잠들고 있는 기계그림자, 이미 의식의 상당부분을 잠식해 버린 인간소외, 자기소외의 그림자의 투사상이며 그러한 비인간화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129. 그리스도교적 유럽의 사회적, 정치적 통일체에 깊이 숨은 불안의 표현이었을 것이며 <마녀의 망치>는 기성질서가 불안정하게 되어간다고 우려할 만한 징후에 대한 반동이었다. 그 시대에 교회와 국가가 보인 일종의 피해마니아는 의심 없이 기성질서의 위기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었고 또한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적 세력과 새로운 정신적 이상이 일어나서 그동안 중세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사회제도의 중핵자체를 위협하겨로 한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다고 질보르그는 술회한다.

 

129. 의식의 질서와 안정이 무너질 위험을 예감한 자아는 질겁을 하고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낯선 충동을 막으려 한다.

 

131. “광신은 내적 의혹에 대한 발작이다서슬 퍼렇게 적을 규탄하는 것은 불안 때문이다. 스스로 확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더 길길이 날뛰고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앙, 하나의 주의에 매달린다.

 

131. 사람이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싸우고 죽은 숫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것보다 많을 것이라고 융은 말한 적이 있다. 그림자의 위험한 영향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않을 때 인간의 생명과 실존을 위협한다.

 

132.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건드리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존체제의 결속과 우위성을 강조하였다.

 

132. 공산주의는 그것이 표방하는 이념의 절대성과 합리지상주의, 평등주의, 유물주의와는 매우 모순되는 현상을 드러냈다. 마치 거대한 절대권력을 쥔 중세의 교회처럼 비합리적인 이념에의 광신을 초래했도 하늘의 천국 대신 지상의 천국을 약속했고 민중 대신에 그것을 다스리는 살아 있는 신, 카리스카적 지도자를 만들어냈다.

 

133. 신화와 종교와 모든 비합리성을 부정한 체제 속에서 새로운 신화가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한 것은 인류의 심성에서 종교적 심성과 비합리적인 세계를 인위적으로 말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134. 이념의 그림자는 정치권력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그림자의 투사로 분쟁을 격화하고 마침내는 인종청소의 끔찍한 살육으로 치닫는다.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사태도 그 한 예이다. 인간들이 무의식의 그림자원형에 사로잡히고 스스로 악마가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

 

135. 우리가 일본인을 왜놈이라고 할 때 일본인은 조센진이라 한다. 이 말에는 온갖 나쁜 짓은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깊이 함축되어 있다. 재일 한국인은 일본인의 조센진 그림자의 좋은 표적이 된다.

 

135. 그러나 조선인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의 의식에는 문명인, 세계 일등국의 자존심과 긍지, 한때 동양을 무력으로 지배했고,

한반도를 여러 해 점령한 지배자의 오만이 있고 더러운 것은 뚜껑을 덮어라는 일본 군국주의 시대 군인의 격언에 따라 의식 밑바닥에 눌려 있는 그들 자인의 미숙한 면이다.


136. 우리는 35년에 걸친 일본 식민지통치의 만행과 한민족 문화말살정책의 잘못을 누누이 기억 속에 환기시켜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 문화를 경시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다짐함으로써 일본인에 대한 집단적 그림자를 형성, 강화해 왔다. 그러나 표면상의 서슬 퍼런 분노와는 달리 실제로는 정식으로 수입되기 전에도 일본 대중문화에 전염되어 있었다. 건물과 간판의 디자인, 화장술, 대중가요, TV 드라마 편성, 절하는 법, 심지어는 다도(茶道), 나라의 법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닮아가고 있던 것이다.

낯선 것은 배척의 대상이 되지만 그 마음 뒤에는 전염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137.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기업의 지나치게 강압적인 처사가 곧잘 신문에 보도되거니와 여기에는 경제논리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그림자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백인들이 우리 동양인들을 보는 사고 그대로 같은 동양인이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동양인들을 얕보는 시각이 나 자신부터 있다. 겉으로는 드러내진 않지만 마음 속에는 그러한 부분이 많다.

 

137. 상대방이 자기의 열등한 기능을 우월기능으로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무의식의 열등기능을 자극한다. 이렇게 열등기능이 의식에 떠오를 즈음 사람들은 자기의 열등한 면을 보기를 꺼리고 그것을 상대방에 투사해서 상대방이 가진 장점을 깎아내리려 한다.

 

138. 인종간의 갈등은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현상의 또 하나의 좋은 표본이 될 수 있다. .... 흑인은 피부색이 검은 만큼 곧잘 무서운 것, 알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된다. 그래서 온갖 무의식적인 그림자의 투사를 받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모르는 것’ ‘낯선 것앞에서는 공포감을 가지기 쉽고 그 속에 알 수 없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있지 않나 의심한다.

 

138. 단일 민족인 한국인만큼 다른 인종, 다른 나라 사람과 섞이지 않는 민족도 없다. 한국인의 의식에 오만과 자존심, 흑인 멸시의 감정이 없어던들 흑인과의 인종갈등이 그토록 첨예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38. 미국인의 분석에서 나는 흔히 그들 인격의 열등한 부분(이른바 그림자)이 흑인이나 인디언으로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우럽인 같으면 유럽인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부정적 인격의 대표격으로 묘사될 만한 내용인데 미국인에게서는 인디언이나 흑인으로 묘사된다는 말이다. 낮은 민족을 대표하는 사람은 인간의 열등한 인격부분의 특성을 이룬다.

우리나라 민족은 어떤 그림자로 표현될 수 있을까? 일본, 중국... 각 나라별 인종별로 그림자를 분석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39. 1930년대 강연차 미국에 들렀던 융은 당시 미국의 백인이 나타내는 특이한 몸짓이나 표정에서 흑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그들의 꿈을 살펴보니 미국인의 심성이 흑인 심성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미국인은 흑인을 노예로 부렸지만 흑인의 정신은 미국인의 의식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정복자가 피정복자의 정신에 의해 정복되는 사례는 역사상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140.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좀더 많이 만나고 토론하고 사귈 필요가 있다. 외국인을 무척 환대하지만 외국인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으려 하고 그런 면에서 철저하게 배타적인 한국인의 태도가 어느 정도로 개방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다가오는 세기에는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지금은 내 생각에는 상당히 개방되었고 내 주위에도 많다. 특히 다문화가 많다.

 

141. 지역감정은 오히려 지역정서를 발전시킴으로써 완화할 수 있다. 지역정서란 그 지역 사람들이 공감하고 소중히 여기는 독특한 문화관습에 따른 여러 양식의 정서반응들이며 그것은 지역의 개성을 살리고 문화의 색깔을 만들어 창조의 원천을 마련한다.

 

142. 전국 어디를 가나 똑같은 구조의 집, 똑같은 아파트, 똑같은 관광상품이 있던 지난날의 획일주의는 개성 있는 지방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아기자기해서 재미있고 지역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공동체의 협동과 발전에 도움을 준다.

 

142. 문제는 지역정서가 문화의 향유를 중심으로 발전하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 권력자에 의해 오용되어 다른 지역문화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조장한 데 있다. 이런 배타성은 자기 지역의 절대적 우월성, 이권유지를 위한 지역인의 야합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생기는 것이다. 지역문화에 대한 긍지를 가지면서도 다른 지역문화를 존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지역간의 악감정 때문에 서로를 반목하게 되었을까?

그래도 이젠 많이 변화되고 있다. 전라도에서 여당이 나왔었고 부산과 대구에서 야당이 나왔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142. 첫째는 확대가족으로서의 지역성원의 유대가 이권을 위한 야합으로 변질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둘째는 정치인이 지역정서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논공행상을 함으로써 지역성원의 지역공동체에 대한 의존심을 조장한 때문이다. 셋째는 인간은 아마도 어딘가에 검은 양을 두지 않고는 못 배기는 동물인 듯하다는 것이다.

 

143. 독재자는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을 키우기조차 한다. 독재자는 적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집단성원을 단결시킬 수 있다. 518 광주대학살은 집단적 그림자의 투사를 이용한 독재권력집단의 명백한 만행이었다. 어떤 특정집단을 미운 오리새끼로 만들어놓고 그 집단성원을 무조건 구박하거나 백안시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143. 이것을 해결하려면 상대방에 투사하고 있는 온갖 도덕적으로 취약한 이중성을 자기자신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해당집단성원은 스스로 노력해서 부정적인 그림자의 투사를 맏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투사를 조장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143. 개인이든 집단이든 권력과 이권에의 집착은 창조성의 결여에서 온다. 창조의 기쁨을 아는 자의 집단은 권력에 연연해하지 않는 법이다.

 

2절 꿈에 나타난 그림자의 현상

 

145. 무의식은 이렇게 해서 꿈을 꾼 사람이 자기를 더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145. 꿈은 의식의 일방성을 지양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합쳐진 전체성에 가까운 자세를 갖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147. 그녀의 역겨운 그림자가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한 것은 그녀로 하여금 그러한 측면을 인식하기를 요구했고 그것을 외면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재앙에 대한 경고였던 셈이다. .... 만약 우리가 무의식의 그림자를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고 외면한다면 그 그림자에 해당되는 외부현실의 인물을 끌어들이는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148. 다만 그림자가 표현되는 대상과 이름은 물론 그 나라 또는 그 시대의 사회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150. 중요한 것은 어느 체제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존중하고 각 개인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158. 그림자는 개인적 무의식을 넘어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원형상의 양면성 중 어두운 파괴적 측면이다. 즉 권력 충동, 지배욕과 같은 것이다.

 

160. 주관단계로 해석하면 자신을 구속하고 괴롭히는 히틀러와 같은 성격요소가 자기 마음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꿈이다.

 

3절 정신병리현상과 그림자

 

165. 신경증적 장애(노이로제)는 하나의 정신적 해리현상으로 통합된 인격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런 뜻에서 신경증적 장애의 고통은 의미있는 고통이다. 융은 이렇게 말했다.

 

166. 사회 집단이 요구하는 규격화된 태도와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자기의 내면세계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내버려두게 된다.

 

166. 인간의 무의식은 본래 정신의 해리를 해소하고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한 전체정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167. 그런데 이 장해는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나 정신의 전체를 통합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므로 자기실현의 목적을 가진, 의미 있는 고통이라 하는 것이며 치료란 결국 쪼개진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 사람이 본래 가지고 나온 정신의 전체정신(자기)을 실현시키는데 있다.

 

168. ‘그림자 없는 사람은 자기의 그림자를 무의식간에 크게는 사회, 작게는 가족중의 누군가에게 옮겨놓는다.

 

168. 그림자 그 자체는 살아 있는 인간에게 인간다움이나 인간의 실체성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림자를 인식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170.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너무 지나치게 인간의 어두운 면, ‘그림자 측면에 치중하고 있다고 그는 비판한다.

 

171. 환자의 자아가 원형층의 강력한 콤플렉스에 의하여 분열되어 있어 바깥 현실과 꿈의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신화적 체험을 제대로 소화시킬 만한 자아의 통합능력에 장애가 있는 것이다.

 

177. 투사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인간관계란 없다. 문제는 투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림자를 어떻게 의식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보완이 필요한점(독자의 눈으로-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등 등)

저자역시 정신과 의사이다. 융의 그림자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도 좋지만 융의 자서전처럼 내원했던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실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서양환자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정신세계를 들여다 볼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 등)

융의 자서전은 내가 읽기에는 좀 벅찬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그냥 막연하게 지나쳤던 부분과 마음속의 의문을 해소할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마음의 구조를 표현한 그림은 말이 필요없었다. 이래서 시각화가 중요함을 알았다.

 

융의 자서전은 나에게는 이론서 그자체였고 거기에 나오는 용어들조차 너무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한마디로 융의 분석심리학을 풀이를 한 해설서에 가까웠다. ‘자아’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 ‘자기실현’ ‘무의식’ ‘집단무의식등의 개념을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수 있는 수준으로 풀이해주었다.

 

개인의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을 전쟁, 마녀사냥, 종교, 특히 우리나라에 사례 지역감정, 민담등의 사례를 통해 해석하고 융의 이론을 접목시켜 주어 그저 그러한 것들이 서양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분야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 종교 등 그러한 것들에 대한 해석이 기존 이론과는 달리 분석심리학적으로 측면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들이 작금의 문제인 폭력, 왕따, 성폭행, 혐오, 각종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는 그 근원을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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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2:02:09 *.18.187.152

이번 북리뷰 한달음에 읽었네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주머니와의 자리가 편한 기상씨 ㅋ

페르조나에 대한 의견도 좋은데요!

페르조나 없이는 이 세상에서는 살수 없다. 또라이 취급을 받는다. 몇몇 또라이는 인정이라도 받지, 대다수의 또라이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말그대로 또라이다. 페르조나의 수는 적절해야 한다. 넘치지 않은 술잔의 미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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