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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09시 25분 등록

다산문선

정약용 저,
민족문화추진회 편, 솔


1. 저자에 대하여




사부를 닮은 다산, 다산을 닮은 사부

곧고 섬세하며 풍류를 아는 선비이자, 엄하고 부드러운 아버지.
책을 읽으며 사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얇은 책 한권으로 단정지을 순 없지만, 두 분은 많이 닮았다. 사부님은 이것을 아실까? 초아선생님이 호를 지어 주셨나? 아호 마저도 ‘산(山)씨리즈’로 닮았다. 일산(日山)과 다산(茶山). 긴 시간차 공격으로 무찔러 들어오는 두 선비에게 필이 꽂혀 집중 조명해보았다.

곧은 선비로서
“형체가 있는 것은 파괴되기 쉽지만 형체가 없는 것은 없애기가 어려운 것이다. 자기가 자기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형체로 사용하는 것이요, 제 재물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리면 해지고 파괴되느니 수 밖에 없지만 형체 없는 정신적 환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지는 낭패를 당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도둑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다. 불에 타버릴 걱정도 없고, 소나 말이 운반해야 할 수고로움도 없이 자기가 죽은 뒤까지 지니고 가서 천년토록 꽃다운 명성을 전할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있겠느냐? 재물은 더욱 단단히 잡으려 하면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것이니 재화야말로 미꾸라지 같은 것이다.”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훈’, 정약용

“풍요로움은 쌓아두고 즐길 때 몇몇 사람들의 물질적 독점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누고 베풀게 되면 사회적 공유물이 된다. 이때 어느 누구도 그로 부터 그의 재산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죽어서도 그는 위대한 부자로 남게된다. 마더 테레사처럼 풍요로운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
세상이 시들해 보이는 이유는 세상이 시들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관심과 정열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늘 거기에 그렇게 눈부시게 서있다” - ‘돈을 버는 가장 올바른 방법’, 사부님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로서
“나는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대략 알게 되었다. 책을 그냥 읽기만 하면 하루에 천백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한 글자를 볼 때마다 그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자세히 연구해서 그 근본을 터득하고 따라서 그 글의 전체를 완전히 알 수 있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을 때에 아울러서 수백 가지의 책을 널리 찾아보게 될 것이요, 따라서 본서의 의리에 대해서 분명히 꿰뚫을 수 있으니, 이 점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깨달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야(aletheia)’의 어원은 ‘촛불을 끈다’라는 뜻이다….이성의 작은 촛불을 끄지 않고서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 없다. 가까운 작은 산이 큰 먼산을 가리고 있듯이 작은 지식은 늘 큰 지혜를 가리고 있다… 학습은 지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획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버리고 늘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사부님

풍류를 아는 시인으로서
“무릇 천하 만물의 아름다움을 모두 따져보아도 하늘에 있는 물건의 아름다움만은 못하다. 그러나 해는 너무 뜨겁고, 별은 너무 희미하며 구름과 안개는 너무 쉽게 없어지니, 마음을 기쁘게 하는 점에서는 모두가 달만 못하다.” – 득월당기(得月當記), 정약용

“얼마전 사량도에 가서 나는 한 풍경을 보았다. 보름이 될랑말랑한 달빛 아래, 작은 배 위에선 여럿이 어울려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중년의 사내였다.
"나는 달이 좋아."
그는 누워서 달을 보기도 하고, 앉아서 보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보기도 했다.
"나는 사람이 좋아."
와~~신나게 소리지르며 박수치기도 했다. 달빛아래서 스스로 취해버렸다. 그의 취한 모습에 다른 이들도 더불어 취해버렸다. 그의 풍류는 '맑음' 상대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즐기고 있었다. 그 마음이 다른 마음과 같이 노니기에 그 자리는 즐거울 수 밖에 없다.” – 김귀자 연구원, 사량도에서 사부를 보며

엄하지만 자상한 아버지로서
“여러 일가 중에 며칠째 밥을 짓지 못하는 자가 있을 때 너희는 곡식을 주어 구제하였느냐? …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이 먼저 나에게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들의 오만한 근성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유념해서 평소 일을 없을 때에 공손하고 화목하며 근신하고 충성하여 여러 집안의 환심을 사도록 힘써야 할 것이요, 절대로 마음 속에 보답을 바라는 근성을 남겨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나는 일찍이 이렇게 이렇게 해주었는데 저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을 한번 하면 그 동안 쌓아놓은 공덕이 하루 아침에 바람에 날리는 재가 되어 날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 두 아들에게 부침, 정약용

“네가 받은 것을 모두 쓰도록해라. 자신의 모자람을 탓하지 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넘친다. 하늘에 감사해라. 강점을 찾아내 치열하게 계발해라. 자신의 재능을 낭비한 사람이 되지 마라. 가장 가난한 사람은 타고난 기질과 재능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먼저 자신에게 투자해라. 다른 사람을 위해 애쓰다 쉽게 지치지 마라. 사람의 일은 늘 마음을 다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좋은 것이다. 그만한 즐거움과 보람은 없다. 아름다운 관계를 맺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라. 많은 꿈벗들을 돕고 그들의 마음과 도움을 얻어라.” 딸 혜언의 10대 풍광에 comment, 사부님

친구이자 스승으로서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란 임금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임금에게 신임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침 저녁으로 가까이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지 않으며..” – ‘학연에게 보여주는 가훈’, 정약용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야 말로 가장 스승을 욕보이게 하는 제자이다.”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사부님

"그러니 너희들은 이 점을 알아서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노력은 조금 늦추더라도 먼저 올바른 몸가짐의 공부에 힘써 육중한 산처럼 우뚝 솟은 모습으로 고요히 앉아 있는 자세를 익혀야 한다.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데도 먼저 기상을 점검하여 자기 본령을 세울 줄 안 다음에 점차로 저술에 마음을 기울여야만이 한마디 말, 한 구절의 글이 모두 남들이 아끼고 애호하는 바가 될 것이다. 만약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경시하여 땅에 버려진 흙같이 한다면 이는 정말 끝나버리는 일일 뿐이다."

“승오야, 늘 건강에 유의하고, 피곤하고 힘들면 쉬도록 해라. 조급해 하지 말고, 긴 길을 간다 생각하거라. 자기를 편하게 쉬게하는 것도 중요한 경영이다. 너는 역량이 크고 심지가 굳으니 크게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때를 위해 늘 절제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고 꾸준하거라. 특히 몸에 무리가 가는 일정은 삼가도록 해라.
아침은 먹고 다니느냐 ? 언젠가 토즈의 김윤환이 자기는 저녁 때 집에 들어 갈 때 큰 토미토를 사서 아침에 늘 토마토를 여러개 갈아 먹는다고 하던데, 그 말을 듣고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도 앞으로 힘껏 달려가는 미혼의 젊은이다. 토마토가 좋으면 그렇게 해 보아라. 아내가 챙겨주지 못하면, 스스로 챙겨라. 자금은 젊어서 괜찮다 여겨도 사람은 몇십년 전부터 스스로 공을 들여 자신을 키워내야 한다. 건강도 그 중의 하나니 늘 마음에 두고 네 몸에게 잘해 두도록 해라. 편지를 쓰는 동안 네가 보고 싶구나. 좋은 하루 되거라.” – 2007. 6. 8. 사부님

따뜻한 조언가로서
“병이 위독한 사람은 병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병이 들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병이 심한 것이 아니다. 미친 사람은 미친 것을 그 스스로 알지 못하고, 미쳤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진짜 미친 것이 아니다. 간사함, 음탕함, 게으름에 빠진 사람은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잘못을 고칠 수 있다.” – 취몽재기(醉夢齋記),

“네가 스스로 가끔 까칠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알고있으면 고칠 수 있다. 인식하고 조심하면 된다. 너무 마음쓰지 말아라.” – 2007년 스승의날 뒷풀이장에서 옹박에게, 사부님


다산의 일생

<출생> 다산 정약용은 1762년(조선 후기) 한강변 마현마을에서 태어났다. 정씨 집안은 8대 연속 홍문관 학사를 배출한 적이 있는 집안이었고, 외가는 학문과 예술의 집안이었다. 형제들은 학문적 재주가 있어 실학과 서학(천주교)에 일찍 눈을 떴으나 꽉 막힌 시대와 당쟁에 희생되고 말았다.

<성장기> 다산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다.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정조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의 글을 접하고서 학문의 뜻을 굳게 했다. 처음으로 천주교를 접하기도 했다.


<다산이 설계한 수원화성과 거중기>

<벼슬시절> 다산은 28세에 대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이 시작됐다. 학문과 행정에서 정조의 신임을 얻으며 측근으로 활동했다. 규장각 초계문신으로서의 활동, 수원화성의 설계, 암행어사로서의 활약, 곡산부사 임기 중 지방행정관으로서의 치적 등으로 장차 정조가 중용할 것이 예상됐다. 그러나 정적들은 다산의 성장과 그에 대한 정조의 총애에 위기감을 느끼며 천주교를 빌미로 그를 제거하고자 했다.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 18년의 유배생활 중 10년간 안식처가 되었던 곳. 이곳에서 목민심서를 집필했다.>

<유배시절> 다산은 정조가 죽자 정적들에 의해 사지에 내몰린다. 겨우 목숨을 건져 18년간의 긴 유배생활에 들어갔다. 다산은 자신의 운명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학문적 업적으로 승화시켰다. 경학과 경세학 등 여러 방면의 학문연구에 힘써서 5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그의 저술은 당시 조선사회의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여 나라를 새롭게 하고 민(民)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만년시절> 18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18년을 살았다. 자신의 저술을 수정하고 보완했다. 자찬묘지명을 지어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훗날 인정해주길 기대했다.

<참조 : 다산연구회 http://www.edasan.org)
-> 써포터즈 한희주님이 연구위원으로 계십니다.>

주요 저서

다산은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답게 정치•경제•역리•지리•문학•철학•의학•교육학•군사학•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다산의 저술은 1922년에 문집에 넣기 위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한 자찬묘지명의 집중본(集中本)을 기준으로 할 때 육경사서의 연구서인 경학(經學)집 232권과 일표이서를 포함한 경세학서(經世學書) 138권에 시문집과 기타 저술을 포함한 문집 260권을 합하여 총 492권이다.
이 저술들은 대체로 6경4서 • 1표2서 • 시문잡저 등 3부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현세에 잘 알려진 책은 1표2서에 해당하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48권이 있다. 현재의 법도로 인민을 다스리고자 한 것이니 율기•봉공•애민을 3기(紀)로 삼았고 거기에다가 이•호•예•병•형•공을 6전(典)으로 삼았으며 진황(賑荒)을 끝으로 하였다. 부정행위를 적발하여 목민관을 깨우치게 함으로써 그 혜택이 백성들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경세유표(經世遺表)》 48권이 있으나 미완본이다. 관제•군현제도•전제(田制)•부역•공시(貢市)•창저(倉儲)•군제•과제•해세(海稅)•마정(馬政)•선법(船法) 등 국가경영을 위한 제도론으로서 현실적 실용여부는 불구하고 기강의 대경대법을 서술하여 구방(舊邦)을 유신하고자 하였다.


《흠흠신서(欽欽新書)》 30권이 있다. 인명에 관한 옥사를 다스리는 책이 적었기 때문에 경사(經史)에 근본하였거나 공안(公案)에 증거가 있는 것들을 모아 옥리들로 하여금 참고하게 함으로써 원한의 소지를 없애도록 하였다.


다산 정약용 소개 동영상

동영상 자료는 지난 2002년 12월부터 2003년 1월까지 EBS에서 방영한 다산 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의 다산 특강 내용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edasan.org/menu3/main.php?mode=content2 를 참조하세요.





2.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14) 병이 위독한 사람은 병든 것을 그 스스로는 알지 못하고, 병이 들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병이 심한 것이 아니다. 미친 사람은 미친 것을 그 스스로 알지 못하고, 미쳤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진짜 미친 것이 아니다. 간사함, 음탕함, 게으름에 빠진 사람은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잘못을 고칠 수 있다.

(19) 어렸을 때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고, 곤궁했을 때 지내던 곳을 입신 출세하여 찾아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며, 홀로 외롭게 지나가던 땅을 좋은 손님들과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이끌고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22) 무릇 사물 중에서 아름다운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물건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그것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욱 많게 되며, 그것을 얻기도 더욱 힘들게 된다. 비옥한 전담과 높은 집, 길다란 인끈과 포근한 갖옷, 아리따운 여자와 좋은 말 같은 것은 평생토록 얻으려고 애쓰지만, 어떤 사람은 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얻지 못한다. 그것을 얻을 때는 마치 사나운 새와 짐승이 먹이를 움켜잡고서 사방을 둘러보는 것과 같으며, 그것을 얻지 못할 때는 마치 궁한 귀신이 슬피 울부짖는 것과 같으니 또한 가련하지 않은가.

(23) 무릇 천하 만물의 아름다움을 모두 따져보아도 하늘에 있는 물건의 아름다움만은 못하다. 그러나 해는 너무 뜨겁고, 별은 너무 희미하며 구름과 안개는 너무 쉽게 없어지니, 마음을 기쁘게 하는 점에서는 모두가 달만 못하다.

(24) 자기가 하고 싶지는 않으나 부득이 해야 하는 것은 그만둘 수 없는 일이요, 자기는 하고 싶으나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만둘 수 있는 일이다. 그만둘 수 없는 일은 항상 그 일을 하고는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그만둔다.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할 수 있으나,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또한 때로는 그만둔다. 진실로 이와 같이 된다면 천하게 도무지 일이 없을 것이다.

(25)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고 하였으니 아, 이 두 마디 말은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 하므로 매우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사방의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한 때문에 매우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

(28) 옛 사람이 산을 바라보기만 하여 그 흥취의 반쯤은 남겨놓은 것을 미인을 반쯤 본 것에 비유하여, “얼굴은 아름다웠으나 그 자태는 기억할 수가 없다”고 한 것은 매우 훌륭한 비유다.

(34) 돌아와 생각하니 나는 비버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는 홀로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 살면서 거처를 옮기지 않으며, 갑자기 맹수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더구나 호랑이를 타일러 보냈으니, 마음속에 도술을 간직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52) 도가에서는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 갖는 것을 신선이 되는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조신선은 욕심이 많으면서도 오히려 이처럼 늙지 않았으니, 혹 말세가 되어 신선도 시속을 면할 수 없어서인가?

(55) “네가 한 번 죽음으로써 나는 세 가지를 잃었다. 아들을 잃고 친구를 잃고 스승을 잃었다.”

(61)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행하는 일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로써 근본을 삼아야 하나, 이 점에 자기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비록 학식이 뛰어나고 문장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이는 바로 흙 담에다 색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몸을 이미 엄정하게 닦았다면 그 벗을 사귀는 것도 자연히 단정한 사람일 것이다. 서로를 알아주는 지기는 서로 모이게 되는 것이므로 결코 특별한 힘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62) 사람을 알아보려면 먼저 가정에서의 행실을 살펴야 한다. 만약 그의 옳지 못한 점을 발견하면 즉시 자신에게 비춰보아, 자기에게도 그러한 잘못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러지 않도록 힘차게 공부를 해야 한다.

(63)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란 임금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임금에게 신임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64) 지위가 낮은 벼슬에 있을 때는 온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공무에 힘을 서야 하고 언관言官의 지위에 있을 때는 모름지기 날마다 격언과 곧은 의론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과실을 비판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혹 사악한 관리를 공격하여 제거하되 모름지기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해야 하며,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은 탐욕스럽고 비루하며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것만을 지적해야지, 의리에만 치우쳐서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이면 편을 들고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이면 공격해서 함정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70) 대체로 저술하는 법은 우선 경적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고 그 다음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학문이어야 하며, 국경을 지키고 성을 쌓는 기구의 제도로 외침을 막아낼 수 있는 분야의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들로 구차하게 한때의 괴상한 웃음이나 자아내게 하는 책이라든지, 진부하고 새롭지 못한 이야기나 지루하고 쓸데없는 논의와 같은 것들은 다만 종이와 먹만 허비할 뿐이니, 좋은 과일나무를 심고 좋은 채소를 가꾸어 생전의 살 도리나 넉넉하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72) 무릇 시에는 정신과 기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쓸쓸하고 산만하기만 하여 겴ㄱ과 단속의 묘미가 없는 시는 그 사람의 빈궁과 영달은 고사하고 수명도 길지 못하니, 이 점은 내가 여러 차례 시험한 것들이다.

(74) 저쪽에서 돌을 던지면 이쪽에서 옥돌로 보답하고, 저쪽에서 칼을 가지고 나오면 이쪽에서는 단술로 대접해주지 않는다면, 서로 눈을 흘겨보며 성내고 다투다가 죽이기까지 하는 등 결국 집안을 망치고야 말 것이다.

(76) 대체로 부귀한 집안의 자식들은 재난이 화급한데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반면, 몰락하여 버림받은 집의 가족들은 태평한 세상인데도 언제나 걱정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늘진 벼랑이나 깊숙한 골짜기에 살다 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모두가 버림받고 벼슬길이 막혀 원망하고 지내는 부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듣는 것이라고는 모두가 사정에 어둡고 허탄하고 편벽되고 너절하고 더러운 이야기뿐이니 이것이 바로 영원히 가버리고 돌아보지 않게 되는 이유이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그리하여 아들이나 손자의 세대에 가서는 과거에도 마음을 두고 경제에도 정신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버리는 사람은 천한 무지렁이로 끝나고 말 뿐이다.

(77) 군자가 책을 지어 세상에 전하려는 것은 오직 한 사람이 알아주기만 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나의 책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나이가 많으면 너희들은 아버지로 섬기고 너희와 엇비슷한 나이라면 너희들이 형제로 맺는 것도 좋을 것이다.

(79) 너희들은 이 점을 알아서 학문이 깊이 연구하는 노력은 조금 늦추더라도 먼저 올바른 몸가짐의 공부에 힘써 육중한 산처럼 우뚝 솟은 모습으로 고요히 앉아 있는 자세를 익혀야 한다. ... 한 구절의 글이 모두 남들이 아끼고 애호하는 바가 될 것이다. 만약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경시하여 땅에 버려진 흙같이 한다면 이는 정말 끝나버리는 일일 뿐이다.

(80) 형체가 있는 것은 파괴되기 쉽지만 형체가 없는 것은 없애기가 어려운 것이다. 자기가 자기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형체로 사용하는 것이요, 제 재물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리면 해지고 파괴되느니 수 밖에 없지만 형체 없는 정신적 환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지는 낭패를 당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도둑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다. 불에 타버릴 걱정도 없고, 소나 말이 운반해야 할 수고로움도 없이 자기가 죽은 뒤까지 지니고 가서 천년토록 꽃다운 명성을 전할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있겠느냐? 재물은 더욱 단단히 잡으려 하면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것이니 재화야말로 미꾸라지 같은 것이다.

(82) “우주宇宙 사이의 일이란 바로 자기 분수 안의 일이요, 자기 분수 안의 일은 바로 우주 사이의 일이다.” 대장부라면 하루라도 이러한 생각이 없어서는 안된다. 우리 인간의 본분이란 역시 그냥 허둥지둥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 무릇 하늘에 부끄럽고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전혀 범하지 않으며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가 생기는 것이다. 만일 포목 몇 자, 동전 몇 닢 때문에 잠깐이라도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호연지기가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람이 되느냐 귀신이 되느냐 하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극히 주의하도록 하라. 다음으로는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가 모두 완전하더라도 구멍 하나가 새면 이는 바로 깨진 옹기 그릇일 뿐이요, 백 마디가 모두 신뢰할 만하더라도 한마디의 거짓이 있다면 이건 바로 도깨비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너희들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83) 나는 논밭과 동산을 너희에게 남겨줄 수 있을 만한 벼슬은 하지 않았다만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이 있어서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에 이제 너희들에게 주노니 너희는 소홀히 여기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동안 필요한 것에 쓴다 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근’이란 무얼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때까지 미루지 말며, 갠 날에 해야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 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할 바가 있고 어린이는 다니면서 받들어 행할 바가 있으니, 젊은이는 힘든 일을 맡고 아픈 사람은 지키는 일을 하며, 아낙네는 밤 사경이 되기 전엔 잠자리에 들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집안의 상하 남녀가 한 사람도 놀고먹는 식구가 없게 하고 한 순간도 한가한 시간이 없도록 하는 것을 ‘근’이라고 한다. ‘검’이란 무엇인가? 의복은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을 취할 뿐이니, 가는 베로 만든 옷은 해지지만 하면 볼품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거친 베로 만든 옷은 비록 해진다 해도 볼품없진 않다.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모름지기 이후에도 계속하여 입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가는 베로 만들어 해지고 말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고운 베를 버리고 거친 베로 만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음식이란 생명만 연장하면 도니다. 모든 맛있는 횟감이나 생선도 입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모든 맛있는 횟감이나 생선도 입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리므로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전에 사람들은 더럽다고 침을 뱉는 것이다.

(95) 도량의 근본은 용서함에 있다. 용서만 할 수 있다면 좀도둑과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라 할지라도 아무 말 없이 보아 넘길 수 있을 것인데 하물며 그 밖의 일이야 말할 게 있겠느냐?

(97) 아침에 햇빛을 먼저 받는 곳은 저녁때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피는 꽃은 그 시듦도 빠르다는 진리인 것이다. 운명은 돌고 돌아 한 시각도 멈추지 않는 것이니 이 세상에 뜻이 있는 사람은 한 때의 재해 때문에 마침내 청운의 뜻까지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는 기상을 지니고서 천지가 눈 안에 들고 우주가 손바닥 안에 있듯이 생각하고 있어야 옳다.
(98)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싶은 행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 만한 것이 없다. 이 두 구절의 말을 평생 동안 몸에 지니고 왼다면 위로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집안을 보존할 수 있다.

(99) 편지 한 장을 쓸 때마다 모름지기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기원하기를 “이 편지가 사거리의 번화가에 떨어져 있어 원수진 사람이 열어보더라도 나에게 죄가 없을 것인가?”라고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뒤까지 세상에 퍼지고 전해져 허다한 식별력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도 나에게 비난이 없을 것인가?”라고 한 뒤에 봉함해야 하니, 이것이 군자가 행동을 삼가는 태도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글씨를 빨리 썼으므로 이 계율을 많이 범하였다. 중년에는 화란이 두려워 점차로 이 법도를 지켰더니 매우 유익하였다. 너희들은 이 점에 명심하라.

(112) 책을 가려 뽑는 방법은 나의 학문이 먼저 주관이 있어 확립된 뒤에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저울이 마음속에 있어서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는 것이다.

(113) 언제나 책 한권을 읽을 때엔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이면 뽑아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러게 한다면 비록 1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의 공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114) 너는 지금 폐족인데 만일 그 폐족의 처지를 잘 대처해서 본래의 가문보다 더 완전하고 좋게 한다면, 또한 기특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느냐?

(115) 그 폐족의 처지를 잘 대처한다 함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그것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 뿐이다. 이 독서야말로 인간의 제일가는 깨끗한 일로서, 호사스런 부호가의 자제는 그 맛을 알 수 없고 또한 궁벽한 시골의 수재들도 그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다. 오직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가 있고 중년에 재난을 만나 너희들 처지와 같은 자라야 비로소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저들이 독서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뜻도 모르고 그냥 읽기만 k는 것은 독서라고 일컬을 수 없기 때문이다.

(117) 독서에는 반드시 먼저 근기根基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둔다면 반드시 먼저 근기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효孝와 제悌가 그것이다. 모름지기 먼저 효, 제를 힘서 근기를 세운다면 학문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학문이 몸에 배게 되면 독서는 따로이 그 층절層節을 논할 것이 없다.

(118) 너희들이 만일 독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는 나의 저서가 쓸모 없게 되는 것이요, 나의 저서가 쓸모 없게 되면 나는 할 일이 없게 되어, 장차 눈을 감고 마음을 쓰지 않아 흙으로 만들어놓은 우상이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나는 열흘도 못 되어 병이 날 것이요, 병이 나면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나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은 이것을 생각하여라.

(119) 다른 사람들이 천시하고 세상에서 비루하게 여기는 것도 슬픈데, 지금 너희들은 스스로 자신을 천시하고 비루하게 여기고 있으니, 이는 너희들 스스로가 비통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127)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하나는 시비의 기준이요, 또 하나는 이해의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종류의 큰 등급이 생기는 것이다. 옳은 것을 지켜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요,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켜서 해를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나쁜 것을 쫓아 이익을 얻은 것이며, 가장 낮은 등급은 나쁜 것을 쫓아서 해를 받는 것이다. 너는 지금 나로 하여금 필천에게 편지를 보내어 항복을 빌라하고, 또 강가와 이가에게 애걸하라고 하니, 이는 세 번째 등급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나 끝내는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니,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느냐.

(131)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반드시 한 점의 양심이 있기 때문이니, 한 점의 양심이 있어야 인간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137) 백방으로 생각해서 집에 있으면서도 학습할 가망이 있거든 네 아우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서 동생과 교대하고 이곳으로 오도록 할 것이며, 만일 사정상 전혀 가망이 없거든 내년 봄 날씨가 따뜻해진 뒤에 모든 일을 제쳐놓고 이리로 내려와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여라. 첫째 이유는 날로 마음씨가 나빠지고 행동이 비루해져가니, 이곳에 와서 교육을 받아야 하겠고, 둘째는 안목이 좁아지고 지기가 상실되어가니, 이곳에 와서 교육을 받아야 하겠고, 셋째는 경학이 조잡해지고 식견이 텅 비어가니, 이곳에 와서 교육을 받아야 하겠다. 소소한 사정은 족히 돌아볼 것이 못 된다.

(141) 우리 농이가 죽었다니 슬프고 슬프구나. 그의 인생이 가련하다. 나의 노쇠함이 더욱 심한데 이러한 비통을 만나니, 진실로 조금도 마음을 위로할 수가 없구나. 너희들 아래로 사내아이 셋과 계집아이 하나를 잃었는데 그 중 하나는 겨우 열흘이 좀 지나서 죽었기 때문에 그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형편이고, 나머지 세 아이는 모두 세살 때여서 한창 품에서 재롱을 피우다가 죽었다. 그러나 모두 나와 너희 어머니 손에서 죽었으니, 그 죽음은 운명이라고 여겨 이번처럼 가슴을 저미듯이 아프지는 않았었다. 내가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어 작별한 지가 무척 오래인데 죽었으니 다른 아이의 죽음보다 한층 더 슬프구나.

(144)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이 먼저 나에게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들의 오만한 근성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유념해서 평소 일이 없을 때에 공손하고 화목하며 근신하고 충성하여 여러 집안의 환심을 사도록 힘써야 할 것이요, 절대로 마음속에 보답을 바라는 근성을 남겨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저 사람이 마침 서로 방해되는 일이 있어서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절대로 입에 경솔한 말을 올려 “나는 일찍이 이렇게 이렇게 해주었는데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을 한번 하면 그 동안 쌓아놓은 공덕이 하루아침에 바람에 날리는 제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154) 주자가 말하기를 “온화하고 양순함은 집안을 다스리는 근본이요, 부지런하고 검소함은 집안일을 처리하는 근본이며, 독서는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근본이요, 도리를 따름은 집안을 보전하는 근본이다”했으니, 이것이 이른바 거가(居家)의 네 가지 근본이다.

(163) 시의 근본은 부자, 군신, 부부의 인륜에 있으니, 혹 그 즐거운 뜻을 널리 펼치기도 하고,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여라. 그 다음으로는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서 항상 힘이 없는 사람을 구제해주고 재물이 없는 사람을 구원해주고자 하여 배회하면서 차마 그들을 버려둘 수 없는 뜻을 둔 뒤에야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자기의 이해에만 관계되는 것일 뿐이라면 이는 시라 할 수 없는 것이다.

(165) 효도를 하는 사람치고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효도 하나만 제대로 하면 모든 선이 다 이르게 되는 것이다.

(169) 네가 닭을 기른다는 말을 들었는데 닭을 기르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품위 있고 저속하며 깨끗하고 더러운 등의 차이가 있다. 진실로 농서를 잘 읽어서 그 좋은 방법을 선택하여 시험해보되, 색깔과 종류로 구별해보기도 하고,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 사육 관리를 특별히 해서 남의 집 닭보다 더 살찌고 더 번식하게 하며, 또 간혹 시를 지어서 닭의 정경을 읊어 사물로써 사물을 보낼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책 읽는 사람이 양계하는 법이다. 만약 이익만 보고 의리를 알지 못하며 기를 줄만 알고 취미는 모르는 채 부지런히 힘쓰고 골몰하면서 이웃의 채소를 가꾸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다투기나 한다면, 이는 바로 서너 집 모여 사는 시골의 졸렬한 사람이나 하는 양계법이다. 너는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이미 양계를 하고 있다니 아무쪼록 여러 학자의 서적에서 양계에 관한 이론을 뽑아 계경을 만들어서 육우의 다경과 유득공의 연경과 같이 한다면, 이 또한 하나의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세속적인 일에서 맑은 운치를 간직하는 것은 항상 이런 방법으로 예를 삼도록 하여라.

(171) 나는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대략 알게 되었다. 책을 그냥 읽기만 하면 하루에 천백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한 글자를 볼 때마다 그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자세히 연구해서 그 근본을 터득하고 따라서 그 글의 전체를 완전히 알 수 있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을 때에 아울러서 수백 가지의 책을 널리 찾아보게 될 것이요, 따라서 본서의 의리에 대해서 분명히 꿰뚫을 수 있으니, 이 점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사기』의「자객열전」을 읽다가 “조도제를 지내고 길을 떠났다(旣祖就道)”라는 한 구절을 만나게 되었을 경우 ‘조(祖)’란 무엇입니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그러면 스승은 ”전별제(餞別祭)이다“라고 대답해줄 것이다. 또 ”꼭 ‘조’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하고 물어서 스승이 ”자세히 모르겠다“고 하거든 집으로 돌아와서 자서를 꺼내 ‘조’자의 본뜻을 살펴보고, 또 자서에 있는 증거를 토대로 하여 다른 책까지 들추어 그 전석을 고찰해서 그 뿌리를 캐고 세세한 뜻까지도 캐도록 하여라. 또『통전』이나 『통고』같은 서적에서 조상께 제사지내는 예절까지 자세히 참고해서 책을 만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을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네가 그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환하게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무리 큰 학자라 할지라도 조제에 관한 한 가지 일에서는 너와 겨를 수 없을 것이다. 어찌 크게 즐겁지 않겠느냐? 주자의 격물 공부도 이와 같은 것이다. 오늘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끝까지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에 대하여 끝까지 궁구한다는 것도 이와 같이 착수하는 것이다. 격이라는 것은 끝까지 연구하여 끝까지 도달한다는 뜻이니, 끝까지 연구해서 끝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172) 무릇 책의 내용을 뽑아서 쓰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서 만들 책의 규모와 항목을 세운 뒤에 뽑아야만 일관된 묘미가 있는 법이다. 만약 세워놓은 규모와 항목 이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책 하나를 따로 갖추어 놓고 얻는 대로 기록해야 확고한 힘을 얻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느냐.

(172) 오늘 한가지 사물에 대해 끝까지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에 대하여 끝까지 궁구한다는 것도 이와 같이 착수하는 것이다. 격格이라는 것은 끝까지 연구하여 끝까지 도달한다는 뜻이니, 끝까지 연구해서 끝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173)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데 있는 것이다.

(185) 하늘이 짐승에게는 발톱을 주고 단단한 발굽을 주고 날카로운 이를 주고 독을 주어서, 각기 하고 싶은 것을 얻게 하고, 사람에게서 받게 되는 환난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는 슬기와 깊이 생각하는 것이 있음으로써 기예를 습득하여 스스로 자기의 생활을 영위하도록 한 것이다.

(196) 대체로 익히는 것이 오래됨으로써 성품이 날로 옮겨가게 되니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겉으로 나타나서 상이 이로 인하여 변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상이 변한 것을 보고는 또한 말하기를 “상이 이렇게 생겼기 때문에 익히는 것이 저와 같다”하니 아, 그것은 틀린 말이다.

(237) 무릇 간사한 짓은 오래 있는 데서 생기게 된다.

(244) “인의 실상은 어버이 섬기는 일이 바로 그것이고, 의의 실상은 형을 따르는 일이 바로 그것이고, 예의 실상은 그 두 가지를 절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고, 락의 실상은 그 두 가지를 즐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지의 실상은 그 두 가지를 알아 거기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47)왕정이 없어지면 백성들이 곤궁하게 마련이고, 백성이 곤궁하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나라가 가난해지면 조세를 부과하여 징수하는 것이 번거롭고, 조세를 부과하여 징수하는 것이 번거로우면 인심이 흩어지고, 인심이 흩어지면 타고난 운명도 가버린다. 그러므로 급히 서둘러야 할 것이 정이다.

(259) 신이 엎드려 생각건대, 나라의 큰 정사는 사람을 등용하는 일보다 앞선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재등용은 오직 3년 마다 실시하는 과거뿐인데 그 실상을 자세히 상고해보면 여기에서 뽑은 사람은 대부분은 폐기되어 이름이 문과 방목에 오르고도 기껏해야 낭관에 지나지 않으며, 저 묘당에서 관복을 입고 국정을 담당하는 우직으로 말하면 오직 별시와 반제에 급제하여 올라온 자라야 차지합니다. 이는 마치 아침, 저녁의 식사는 폐하고 오직 차와 과일만을 먹는 것과 같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맞지 않음이 이보다 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266-267) 신은 이른바, 서양 천주교에 대한 책을 일찍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책을 본 것이 어찌 바로 죄가 되겠습니까. 말을 야박하게 할 수 없어 책을 보았다고 했지, 진실로 책을 보고 말았다면 어찌 바로 죄가 되겠습니까. 대개 일찍이 마음 속으로 좋아하여 사모했고, 또 일찍이 이를 거론하여 남에게 자랑했습니다. 그 본원 심술은 일찍이 기름이 스며들고 물이 젖어 들며 뿌리를 내리고 가지가 얽히듯 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무릇 이미 한 번 이와 같이 되면, 이것은 맹자 문하의 묵자요, 정자 문화의 선파입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정도正道만 얻고 죽으면 그만이다." 하였는데, 신 또한 정도를 얻고 죽고자 하오니, 한마디 말로써 스스로를 밝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88) 아! 바람 타는 나무는 항상 고요히 있을 수 없거니와 어버이의 나이가 어찌 영원히 머물러 있으랴. 진실로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효자가 있다면 마땅히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289) 근세의 학자는 겨우 학문을 한다는 이름만 있으면 문득 스스로 거만하고 도도해진다. 곧 천리니 음양이니 하면서 담론을 펴고, 벽에다가 태극 팔괘와 하도 낙서 등을 그려 붙이고는 자칭 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여 찾는다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바야흐로 추위를 호소하고 굶주림을 참아야 하며, 병들어 죽게 되어도 태연히 보살피지 않은가 하면, 아예 버릇이 들어 노력하려 들지도 않는다. 곧 그가 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여 찾는 것이 부지런하고 진실해질수록 학문과는 더욱 멀어진다. 진실로 부모에 대하여 능히 효도라는 자라면 비록 학문을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반드시 학문을 했다고 말하겠다.

(291) 불효의 이유가 두 가지가 있으니 아내와 재물이 바로 그것이다. 아내와 재물은 본래 부모에게 효도를 하기 위한 것이다. 아내라는 것은 곧 그로 하여금 부모가 살아서는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게 하고 부모가 돌아가셔서는 제사를 받들게 하며 자손을 낳아 길러서 선조의 후사를 잇게 하는 것이요, 재물이란 것은 곧 부모의 의식을 만족시켜드리는 것이며 부모의 장례와 제사를 받드는 것인, 아내와 재물이 아니면 사람의 자식 된 자가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는가.

(294-295) 형제는 나와 더불어 부모와 같이하였으니 이 또한 나일 따름이다. 형은 먼저 태어난 나요, 아우는 뒤에 태어난 나다. 다만 얼굴 모양과 나이가 다를 뿐인데, 구태여 둘로 구분하여 서로 우애하지 않으니 이는 나로써 나를 소원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여기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하자. 한 가지는 울창하게 무성하고 다른 한 가지는 시들어 마를 경우, 사람들이 이를 보고 혀를 차며 애석히 여기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지금 두 형제 중 한쪽은 부귀와 호강을 누리고, 다른 한쪽은 가난과 고난을 겪고 있는데도 서로 돌보지 않으며 자기의 처자식만을 알고 사랑할 경우, 사람들이 그것을 볼 때 어찌 지각이 없는 초목의 경우와 같다고만 할 것인가. 아예 대면하지도 않고 혀를 차면서 죄받을 것이라고 가엾어할 것이다. 이 어찌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는 이런 대작 이외에 시문집 가운데 전하는 약간 편을 추려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생각을 접해보도록 하였다.”

책의 마지막에 밝힌 편집 의도가 눈에 띈다. 아. 이런 책이 아주 좋다. 이순신, 김구에 이어 다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아버지, 스승, 신하, 선비, 여행객등의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중 아들들에게 책 읽기에 대해 당부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글을 쓸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책의 ‘내가 저자라면’은 다산 선생님의 책읽기 노하우를 바탕으로 작성해 보았다. 아들들에게만 조용히 전수하는 그의 비법은 무엇일까?

다산 선생의 책읽기와 글쓰기

“책을 가려 뽑는 방법은, 나의 학문이 먼저 주관이 있어 확립된 뒤에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저울이 마음속에 있어서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책 한 권을 읽을 때엔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뽑아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1백권의 책이라도 열흘의 공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p.112

* 연구원을 하면서 ‘잘 고른 책 하나가 열 잡서 안부럽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진다. 학문에 보탬이 되지 않으면 눈을 붙이지 말라는 다산의 강한 어조가 그 믿음을 더욱 가슴에 스며들게 한다. 일전에 초아 선생님께서 “철학을 공부해라. 그래야 네 주관이 확립되고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을 가지게 될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의 나는 특별한 여과 없이 그냥 얻고 취하는 쪽을 택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좋지 않은 책읽기일테다. 10월의 연구원 주제가 ‘철학’임을 알고 있으므로 주의깊게 읽어야 할 것이다.

“독서에는 반드시 먼저 근기(根基)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고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둔다면 반드시 먼저 근기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효(孝), 제(悌)가 그것이다. 모림지기 먼저 효, 제를 힘써 근기를 세운다면 학문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학문이 몸에 배게 되면 독서는 따로이 그 충절은 논할 것이 없다.” – p. 117

* 부모를 섬기는 것과 형제와 잘 지내는 것이 학문과 독서의 근본이라니. 충격적이다. 다산문선을 읽으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효도와 형제와의 우애인데, 구절 구절 지날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이 내 생일인데 연구원 숙제 때문에 바쁜 아들 때문에 어머니께서 몸소 서울로 올라오셨다. 학문하겠다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저 안타깝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잘 하자, 승오야.

“나는 젊었을 때에 새해를 맞이 할 때마다 반드시 그 해의 공부와 과정을 미리 정하였는데,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책을 뽑아 적어야 하는가를 미리 정해 놓은 뒤에 실행하였다. 간혹 몇 달 뒤에 이르러 사고가 발생해서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선을 즐기고 앞으로 전진하려는 뜻만큼은 스스로 숨길 수 없었다.” – p. 149

* 가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해야 체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화두(話頭)를 분명히 해야한다. 그래야 그것을 끌어안는 방법들이 생각날 것이다. 2년간의 연구원 생활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1년은 화두를 찾는 과정이고, 나머지 1년은 화두를 실행하는 과정이다. 지금은 열린 마음으로 지평을 넓히고, 그 중 나를 강하ㅔ 끌어당기는 주제를 치열하게 찾을 때이다. 내년 2월의 수업이 끝나는 시점에서 내가 가지게 될 것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 나의 화두(책의 컨셉)과 나머지 1년의 독서와 작문 계획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대략 알게 되었다. 책을 그냥 읽기만 하면 하루에 천백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한 글자를 볼 때마다 그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자세히 연구해서 그 근본을 터득하고 따라서 그 글의 전체를 완전히 알 수 있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을 때에 아울러서 수백 가지의 책을 널리 찾아보게 될 것이요, 따라서 본서의 의리에 대해서 분명히 꿰뚫을 수 있으니, 이 점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사기』의「자객열전」을 읽다가 “조도제를 지내고 길을 떠났다(旣祖就道)”라는 한 구절을 만나게 되었을 경우 ‘조(祖)’란 무엇입니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그러면 스승은 ”전별제(餞別祭)이다“라고 대답해줄 것이다. 또 ”꼭 ‘조’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하고 물어서 스승이 ”자세히 모르겠다”고 하거든 집으로 돌아와서 자서를 꺼내 ‘조’자의 본뜻을 살펴보고, 또 자서에 있는 증거를 토대로 하여 다른 책까지 들추어 그 전석을 고찰해서 그 뿌리를 캐고 세세한 뜻까지도 캐도록 하여라. 또『통전』이나 『통고』같은 서적에서 조상께 제사지내는 예절까지 자세히 참고해서 책을 만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을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네가 그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환하게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무리 큰 학자라 할지라도 조제에 관한 한 가지 일에서는 너와 겨를 수 없을 것이다. 어찌 크게 즐겁지 않겠느냐? 주자의 격물 공부도 이와 같은 것이다. 오늘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끝까지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에 대하여 끝까지 궁구한다는 것도 이와 같이 착수하는 것이다. 격이라는 것은 끝까지 연구하여 끝까지 도달한다는 뜻이니, 끝까지 연구해서 끝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p. 171


* 책을 읽을 때, 속도의 빠르고 급함을 균형있게 조절하는 것이 아주 중요함을 요즘에서야 배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책의 ‘재미’란 읽어가며 자연스레 떠오르는 내면의 목소리- 질문을 무시하지 않고 귀기울여 어둠속으로 좇아가 보는 것이 아닐까? 깨달음이란 내면의 촛불을 끄고, 그 어둠 속에 무수한 별이 환하게 빛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 했던가. ‘느낌’이 올 때 잠시 멈춰서고, 생각하고, 들춰보고, 비교하고, 다시 생각하여 뜻을 일궈라. 그제서야 들리지 않는 것이 속삭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가올지니.

“무릇 책의 내용을 뽑아서 쓰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서 만들 책의 규모와 항목을 세운 뒤에 뽑아야만 일관된 묘미가 있는 법이다. 만약 세워놓은 규모와 항목 이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책 하나를 따로 갖추어놓고 얻는 대로 기록해야 확고한 힘을 얻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느냐?” – p. 172

* 정말 멋진 비유이지 않는가? 사부님은 ‘보통 책 서너권을 동시에 쓰게 된다’ 하셨는데, 왜 그런지 이제 알겠다. 생대구와 소의 공통점은 ‘하나도 버릴 부위가 없다’인데 이럴 때 책은 마치 이들과 같구나. 재차 느끼는 것은 나의 ‘그물’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중반으로 접어드는 연구원 생활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번역서에 대한 ‘내가 저자라면’
번역에 아쉬움이 많다. <다산문선>은 얇은 책이었지만, 중간중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용어에 대한 설명이다. 고어나 한자어가 많아 읽기가 어려웠는데 주석까지도 전문용어를 남발하고 있어, 주석이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어버렸다. 부족한 내 배경지식만 탓할 순 없는 듯 하다.

구성 면에서 볼 때, <문선>이라고 이름 붙여 글을 엮게 된 배경이나, 어떻게 글들을 골라 내었는지 그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초반 도입부에 출간사나 편집 의도와 관련한 글들이 있다면 좋았을 것을. <백범일지>에서 처럼 중간중간 이해를 돕는 사진이나 자료들을 덧붙였다면 좋았을 것을. 각 장의 구분은 좋았으나, 한편의 글을 다산이 짓게 된 배경까지 함께 설명했으면 훨씬 깔끔한 편집이 되었을 것을.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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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6.25 10:17:22 *.249.167.156
밤을 꼬박 새웠다더니, 그 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구나!
난 단지 두 분의 '묵향'을 느끼고 말았는데, 그 틈을 치고 들어가 두 분의 글을 비교한 것이 아주 좋다.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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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2007.06.25 12:51:45 *.110.57.83
지난 번 꿈벗모임때 받은 문화상품권을 계속 아껴두고 있었는데,
다산문선 ! 방금 구매 버튼 눌렀어요. 승오님 글을 읽으니 바른 글, 바른 사람을 읽고 보는 즐거움을 저도 누리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서포터즈 댓글달기 오늘이 처음이네요. ^^;; 밤을 꼬박 새웠다니, 오늘 피곤한 월요일이겠네요. 점심식사 맛있게 하고 기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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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6.25 17:33:39 *.218.205.7
도윤형.. 아 힘들었사와요. 다음에 만나면 술 사줘요..

사무엘님.. ㅎㅎㅎ 고맙습니다. 그 상품권이 결국 이렇게 사용이 되네요. 의미있고 좋습니다. 문화상품권 돈 남은걸로 밥 사세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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