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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2일 11시 27분 등록

르네 그루쎄 (지은이), 김정수 (옮긴이), 간디서원, 2006

#1. 프롤로그

이번 주 목요일, 예비군 훈련이 있었다. 내년에는 훈련이 없고 그 이후에는 민방위로 편성될 테니,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다. 비가 내렸다. 실내 교육을 했다. 사실 교육이랄 게 없다. 그냥 앞에서는 시청각 자료를 틀어주고, 군복을 입는 순간, 만사가 귀찮아지는 예비군들은 여기 저기에서 몸을 푹 수그리고 잠을 청하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신나게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눈다. 어쨌던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르네 그루쎄의 '칭기즈칸의 생애'. 가끔 깐깐한 동대장의 방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리 큰 걸림돌은 아니었다.

내가 읽은 책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책과 같은 내용이라고는 했지만, 번역자와 출판사가 다른 탓인지 책의 짜임새가 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첨부된 그림이 어딘가 조잡했고, 편집이 조금 무성의해 보였다. 그렇지만 쉽게 읽혔다. 잭 웨더포드의 책을 절반 가량 읽은 탓에 그의 생애에 대한 조금씩 다른 기록과 해석이 신경 쓰였지만, 칭기스칸은 자신이 읽지도 못하는 문자와 후세의 기록 따위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말을 내달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안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있는 어느 부대의 낡은 나무 의자 위에서, 나는 그와 함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누비며, 사람들을 마구 베고,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찬란한 문명을 한 순간에 짓밟았다.

훈련 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바람을 쐬러 잠시 운동장으로 나왔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사방은 산이었다. 나는 조그만 운동장 위에 서있었지만, 그 무채색의 검은 산들에 갇혀 있었다. 나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었다. 책과는 다른 참 좁은 나라였다. 드넓은 초원과 극단의 기후가 그를 만들었듯이, 아마도 이런 지형과 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리라. 나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운동장에서 이 끝과 저 끝을 거닐었다.

이제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산을 올라야겠다. 몸으로, 마음으로 저 산을 넘어야겠다. 산은 끝이 없을 테지만 언젠가는 그 끝에 다다르리라. 언젠가는 드넓은 초원에 다다르리라. 언젠가는 드넓은 바다에 다다르리라. 내 영혼의 정수는 이 산과 저 산 사이에 있을 테지만, 내 영혼의 미래는 그 광활한 초원과 바다에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 시커먼 구름 너머 끝없는 하늘에 있으리라.

'움직이는 것은 멈춰있는 것을 쓰러뜨린다.' 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흘렀다. 커다란 빗방울이 한, 두방울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나는 교육장 안으로 후다닥 내달렸다. 궁금해졌다. '칭기스칸은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광대하지만 덧없는 꿈을 꾸게 하였던 것일까?'


#2. 저자에 대하여

르네 그루쎄((Rene Grousset)는 20세기 최고의 동양 학자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사학자로, 1885년 9월 5일, 프랑스 남부 오베(Aubais)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 대학의 강사로, 그루쎄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루쎄는 몽페리에 대학에서 역사와 지리 학위를 받았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교직에는 몸담지 않고, 1912년 예술성(French Ministry of Fine Arts)에 들어가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는 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부상을 입었으며, 전후에는 다시 예술성으로 돌아와 첫 번째 저서를 발표했다. 1914년 동양 관계의 미술품과 자료를 수집하는 파리, 기메 박물관(Musee Guimet)의 부관장이 되었고, 그후 '주르날 아지아틱(Journal Asiatique)'이라는 정기 간행물의 편집장이 되어 동양학의 온갖 전문 분야, 수많은 전문가와 접촉하면서 연구 결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1928년 루브르 학교의 인도학 교수, 1929년에서 30년에 걸쳐 시리아와 이란을 여행했으며, 1933년에 역시 동양 관계의 체르누스키 박물관 관장을 겸임했다. 1941년 국립현대동양어학교 교수를 거쳐 1944년 국립박물관장이 되었다. 제2차 대전 후에는, 1946년 프랑스 학술원(the French Academy)의 회원에 선임되었고, 1952년 9월 12일, 67세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방대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아시아의 역사 (Historie de l”Asie, 1922), '동양문명사(Les civilisation de l”Orient, 1929)', '극동의 역사(Historie de l”Extr e-Orient, 1929)', '극동의 예술 (L”Art de l”Extr e Orient, 1936)',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L”Empire des Steppes, 1939)', '몽골 제국사(L”Empire mongol, 1941)', '아르메니아사 (Histoire de l”Armenie, 1947)', '중국과 그 예술(La Chine et son art, 1951) 등이 있다.

40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는 거의 전부가 동양에 관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몽골에 초점을 둔 것으로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1939년)'과 '몽골 제국사(1941년)'이 있으며, 그에 이어 세 번째로 저술한 것이 바로 이 책 '칭기즈칸의 생애(1944)'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칭기즈칸의 행적을 면밀히 추적하여 가장 상세한 칭기즈칸 전기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책에 인용되고 있는 자료에 대해서 살펴본다면, 몽골 인의 자료로서 1240년과 1252년에 기록되었다가 후에 한역(漢譯)된 '원조비사(元朝秘史)', 중국 자료로 1369~1370년에 편찬된 '원사(元史)', 페르시아 자료 로쥬와이니의 '세계의 정복자 역사(1257년)' 및 '라시드 웃딘의 '집사(集史, 1303년)' 등이 있다. 그 밖에 본문 가운데 자주 보이는 사난 세치엔은 1662년경 '몽골사(漢譯명 蒙古源流)'를 지은 몽골 인이다.

간략하게 르네 그루쎄란 프랑스 역사가의 약력을 살펴보았으나, 더 자세한 자료를 찾기는 어려웠다.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를 번역한 역자들의 그에 대한 평가를 덧붙임으로써 아쉬움을 달래본다.

"르네 그루쎄는 이처럼 낯설기만 한 세계를 사건의 핵심을 꽤뚫는 통찰력과 박진감 넘치는 유려한 문체를 통해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 그루쎄의 놀라울 정도로 박람한 지식과 예술사가로서의 남다른 식견은 본서에 개설서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독자를 매료하는 힘을 불어넣고 있다. 사실 그의 저작 목록 가운데 일부만 열거해 보아도 ... 그가 얼마나 다양한 관심을 가졌고 또 얼마나 정력적인 작가였는지 금세 확인할 수 있다." …

"그가 이처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쉬지 않고 저술을 계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과연 그가 유라시아의 유목 제국에 대해서 얼마나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식견을 가졌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갖게 된다. 더구나 투르크어나 몽골어와 같은 유목민족의 언어에 대해 그가 정통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본서를 읽기 시작하면 그러한 의구심은 말끔히 사라지고 오히려 이처럼 방대한 지식을 그가 어떻게 수집하고 또 어떻게 이처럼 조리 있고 흥미 있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 아마 뻴리오, 샤반느, 마스뻬로, 발라즈와 같은 탁월한 동양학자들이 활약하던 당시 프랑스의 높은 학문적 수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루쎄 자신의 부단한 노력과 놀라운 종합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르네 그루쎄의 탁월한 식견은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의 저자 서언에도 확실히 드러난다. '칭기즈칸의 생애'를 읽은 뒤, 이 서언을 접하면서 나는 내가 읽었던 칭기즈칸의 생애가 비로소 명쾌하게 이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 길지만 몇 단락을 인용해본다.

"그러나 그들 이상으로 대지의 자식이 없고 그들 이상으로 환경의 자연적 산물은 결코 없었다. 그들의 동기와 행동 패턴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의 왜소하고 단단한 - 극도로 험한 조건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패배를 모르는 - 체격은 초원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고원 지대의 매서운 바람, 혹심한 추위와 타는 듯한 더위는 주름진 눈매, 높이 솟은 광대뼈, 숱이 없는 머리털로써 그들의 얼굴을 조각하였고, 힘줄이 불거진 그들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목초지를 찾아 계절적인 이동을 해야 하는 목축생활의 조건은 독특한 유목주의를 규정하였고, 유목 경제의 절박함이 그들과 정주민과의 관계, 즉 소극적인 차용과 잔인한 약탈의 어느 쪽이 될지를 결정하였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이 발달된 농경 단계에 도달한 시기까지 이 목축민들이 잔존하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드라마에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그것은 이웃하는 민족들 간에 일종의 시차와 같은 현상을 낳았다. 기원전 2천년기의 사람들이 기원후 12세기의 사람들과 공존하였다.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옮겨가려고 한다면 북몽골에서 북경으로 내려오거나 키르기즈 초원에서 아스파한으로 가면 그뿐이었다. 그 단절은 돌발적이고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목민들의 생활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가난한 투르크-몽골 유목민은 가뭄이 든 해가 되면 말라버린 우물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면서 풀이 메말라버린 초원을 지나 농경지대의 언저리, 즉 북직예나 트란스옥시아나의 문앞에까지 와서 정주문명이 이룩해놓은 기적, 즉 풍부한 농작물, 곡식으로 가득 찬 마을들, 도시들의 호화스러움을 놀라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 그들이 거기에 매료되었다면 그것은 마치 눈오는 날 농장 가까이에 와서 나뭇가지로 된 담장 안에 있는 가축들이 노리는 늑대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울타리를 넘어서 약탈하고 노략물을 갖고 도망치고 싶은 오랜 충동을 갖고 있었다."

"농경사회와 동시에 목축, 수렵 공동체가 잔존한 것 - 달리 말해 한발이 드는 해가 되면 초원생활에 드러나는 끔찍한 굶주림을 겪고 있는, 여전히 목축 단계에 머물던 사람들이 보고 접촉할 수 있는 곳에서 농경 사회가 더욱더 발전해간 것 - 은 현격한 대조를 보여줄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잔인한 사회적 대조를 나타내었다. 다시 말하면 인문지리의 문제가 사회지리의 문제가 된 것이다. 정주민과 유목민이 서로에 대해 취했던 태도는 근대도시 안의 공존하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사회와 같은 느낌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작지역에 대한 유목민들의 주기적인 침투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 정주적인, 그리고 많은 경우 퇴폐한 공동체들은 그들의 공격에 굴복하였고, 유목민들은 도시로 들어가 처음 몇 시간은 학살을 자행하고, 그것이 끝나면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자기들에게 패배한 사람들의 지배자로서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모험의 대부분이 성공을 거두었고, … 어떻게 1300년 내내 되풀이될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유목민이 비록 물질문화에서는 뒤쳐졌지만 언제나 엄청난 군사적 우위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 어려서부터 광활한 초원을 뛰어다니는 사슴을 모는 것에 훈련되어있었고, 침착한 접근과 사냥꾼에게 필요한 각종 기술에 익숙해진 그들은 무적이었다. 그들이 자주 적과 정면대결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습공격을 감행하고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끈질기게 추격하여 괴롭히고 피곤하게 한 뒤 마치 궁지에 몰린 사냥감처럼 지쳐버린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이처럼 교묘한 기동성과 편재성을 갖춘 기마군이 제베나 수베에테이에 의해 지휘될 때에는 이러한 무력에 일종의 집단적인 정보력까지 더해지게 된다."

"초원의 기마궁사, 그것은 토지 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고 배고픔과 가난함의 소산이며 유목민이 굶주림의 나날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1300년 동안이나 유라시아에 군림하였다. … 칭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케롤렌 초원에 고아로 버려졌을 때 이미 자신의 동생인 '호랑이' 조치와 함께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필요한 사냥감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러한 우위에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일까? … 그 이유는 후자가 이제 그들에게 총포로 맞서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하루 아침에 그들에 대해 인위적인 우위를 획득하게 된 데에 있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위치는 역전되었다. … 처음으로 그리고 영원히, 군사기술이 다른 편으로 넘어갔고 문명이 야만보다 더 강해진 것이다. … 그러나 이들 궁사들이 세계의 정복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지금부터 불과 300년 전의 일이다."

그럼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담겨있는 칭기스칸에 대한 노래로 분위기를 바꿔본다.

이 고귀한 왕의 이름은 칭기스 칸이었으니 / 그는 당대에 큰 명성을 떨쳐 / 어느 지역 어느 곳에도 / 만사에 그렇게 뛰어난 군주는 없었다. / 그는 왕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부족하지 않았다. / 그가 자신이 태어난 신앙에 따라 / 스스로 맹세한 법을 지켰다. / 게다가 강인하고, 지혜롭고, 부유했으며, / 누가 보아도 정이 많고 의로웠다. / 그는 약속을 지켰고, 자비롭고, 명예로웠으며, / 그의 감정은 중심이 잡혀 흔들림이 없었다. / 그의 집의 어떤 남자 못지 않게 / 젊고, 생기있고, 강하며, 전투에서 앞서고자 했다. / 그는 잘생긴 사람이고 운도 좋았으며, / 늘 왕의 지위를 잘 유지하여, / 그런 사람은 달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이 고귀한 왕, 이 타타르의 칭기스 칸.



#3. 내 마음에 들어온 인용문

(9-10) 이 땅의 목초(牧草)는 산기슭인 아고산대 중간에서 나기 시작하는데, 특히 맛이 좋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고비 사막의 바람이 그와 같은 고산성 식물을 스텝의 풀과 바꾸어 버린다. 제각기 토질에 맞는 선인초, 나리, 쑥, 특히 가축이 가장 좋아하는 갯보리 따위의 풀이 무성하다.

봄이 되면 스텝은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이는데, 몽골의 모든 음유시인들이 이 광경을 읊었다. 6월에는 스텝이 갖가지 빛깔의 꽃으로 꾸며지지만, 7월 중순이 되면 작열하는 태양이 모든 초록빛을 불태워버려 들은 누런 빛깔로 변하고 만다. 이처럼 ‘스텝의 미소’는 오래 가지 못한다. 10월이 되면 벌써 눈보라를 몰고 오는 겨울로 바뀐다. 11월부터는 얼음이 물의 흐름을 가두어 버리고, 4월이 될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 이때의 몽골은 시베리아의 연장이다. 그리고 7월 중순이 지나면 열대와도 같은 더위가 몽골을 아시아의 사하라 사막으로 만들어버린다. 스텝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몸부림친다. 거의 매일같이 낮에는 맹렬한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진다.

(10) 몽골 인이 고대 세계에서 강철 같은 민족이 된 것도 그와 같이 거친 기후가 한 이유일 것 같다. 그 어떠한 환경에도 견디어낼 수 있을 만큼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 조건에서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15) "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것이 밤마다 우리 집 창문으로 들어와 내 밑으로 파고들었단다. 그것이 내 배에 세 번이나 진통을 주었지. 그것은 달빛이나 햇빛을 타고 사라져버렸어. 마치 노란 개와 같더구나. 명심해라. 그리고 두 형은 앞으로 절대로 경솔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너희들의 세 아우는 텐게리 님의 아들들이니까 말이야!"

(16) "잘 들어 두어라. 너희들이 제각기 따로 떨어지면 한 개의 화실이 쉽게 부러지듯이 각자가 금세 꺾이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다발로 뭉치면 아무도 너희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19-20) 이 모두가 잘치우트 족의 마음씨 좋은 대접을 그가 가장 음흉하게 배반했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몽골의 시인 역시 이 배반적인 불의의 습격을 가장 명예로운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보도차르의 다음과 같은 말을 스텝의 불가피한 법칙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서 이는 정글의 법칙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잘치우트 족은 문제없이 쓰러뜨릴 수 있다. 그들에게는 통솔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지도자, 타고난 조직가, 이것이야말로 보돈차르의 자손이 놀라우리만큼 훌륭하게 보여 준 재능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세계의 정복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알랑이 충고했듯이 몽골 인의 화살을 다발로 엮어 낱낱의 부족을 하나로 뭉치게 할 필요가 있었다.

(24) 그리고 카이두가 일가 몰살의 변을 당한 후 급격히 세력을 회복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유목민에게 있어서 전쟁의 승패가 얼마나 덧없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부족이 방목지를 잃고 아들이 피살되고 암말을 잃고 빈털터리의 처지로 몰려도, 수렵과 목축의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이상 새로운 인구는 자연적으로 증가된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36) "여러분들이 태어나기 전에 몽골의 땅은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워져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부족끼리의 싸움 뿐이었고, 편안히 몸 붙일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46) "그대의 도움에 대해 나의 감사하는 마음은 그대의 자식들, 그리고 그 자식들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전해질 것을 거룩한 하늘의 신(디에게 텐게리)과 대지를 두고 맹세한다."

(49) "메아리치는 울음소리는 오논 강의 잔물결을 어지럽혀 놓고 숲의 나무들도 설레게 했다."

(49) "네가 품에 안고 싶어 하는 사나이는 이미 강을 몇 개나 뛰어넘고 멀리 달아나버렸어. 네가 아무리 울어도 되돌아오지는 않을 테니 이젠 만날 수가 없을 거야. 발자국도 찾을 수가 없지. 자, 얌전히 하라고."

(50) 더없이 정숙한 아내이며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지는 남편을 못내 애석하게 여기고, 개인적인 유품을 넘겨주는 지극히 자연스런 동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녀는 남편을 분명 사랑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미련 없이 단념해버리는 현실적인 여성으로서 남편에 대한 애정으로 자기와 헤어지게 된 것을 위로하며 목숨을 보전하도록 권한다. 그리고 일단 예수가이의 집에 들어와서는 다른 생각없이 새로운 가정을 맺는다. 불운의 나날이 계속되던 끝에 예수가이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남자 못지않게 나서서 일가의 지휘권을 장악한다. 이렇듯 곧은 마음, 왕성한 기력, 정확한 분별력을 지닌 어머니가 없었다면 칭기즈칸의 생애도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55) "문리크야, 내 말을 잘 들어다오. 내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테무친을 약혼자의 집에 맡겨 두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타타르 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내게 독을 먹였어. 몹시 메스껍다. … 어린 것들은 장차 어떻게 될까. 뒤에 남는 아우들과 아내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죽는다. … 문리크야, 어서 가서 내 아들 테무친을 데려와 다오!"

(56) 세계의 정복자는 그 얼마나 가혹한 조건 아래서 인생을 배워야만 했던가! 몽골의 숲과 스텝의 야만스런 풍습은 앞에서 보아온 바와 같다. 매복, 배반, 유괴, 살인 등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사람까지도 야생의 나귀나 사슴처럼 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대들보와도 같은 아버지를 여읜 아홉 살의 아들 테무친은 그와 같은 강철 같은 사회 속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62) 추방된 일가는 이렇게 목숨을 이어갔다. 그들을 오논 강에 버려둔 씨족의 무리들은 그들이 굶주림과 궁핍에 시달려 죽어 버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무자비한 지역에서 버림받은 채 과부와 아비 없는 자식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래도 그들은 기어코 살아남았다. 그들 자신이 고대 세계의 강철과 같은 인종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65) "우리는 서로 죽일 것이 아니라 힘을 합해 원수를 갚아야 할 처지가 아니냐. 우리는 우리가 받았던 치욕을 아직 갚지 못했어. … 너희들은 어째서 나를 눈 안에 든 속눈썹, 입 안에 들어간 나무 조각처럼 보느냐?"

(66) "이 살인자들아! 너희들 가운데 하나는 태어날 때 핏덩이를 움켜지고 있었어! 또 하나는 이름 그대로 잔인한 카사르 개야. 너희들은 바위 위에서 덤벼드는 범과도 같구나. 미쳐 날 뛰는 사자와도 같구나. 먹이를 통째로 집어 삼키려 하는 구렁이, 자기 그림자를 덮치는 매, 다른 물고기를 슬쩍 들이 마시는 꼬치고기, 자기 새끼의 발굽을 갉는 낙타의 수컷, 폭풍우를 뚫고 먹이를 노리는 늑대, 뒤따라오는 병아리를 잡아먹는 오리,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사냥의 무리에 에워싸여서도 자기 구명을 파는 재거, 먹이를 끌고가는 호랑이, 무턱대고 덤벼드는 짐승이냐, 아무리 그래도 자기 그림자 이외에는 자기 편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너희들에게는 말총 이외에는 채찍조차도 없지. 그래가지고서는 타이치우트의 모욕에 대해 원수를 갚을 수 없을 거야!"

(71) "너는 그 영리한 머리, 눈에서 반짝이는 불꽃, 빛나는 얼굴 때문에 타이치우트의 형제들에게 짓눌리고 있는 거야, 거기서 움직이지 마라. 나는 아무에게도 일러바치지 않을 테니까."

(79) 그처럼 평범한 첫걸음, 스텝의 젊은이라면 누구에게서나 일어날 법한 일로부터 세계의 정복자가 될 사람의 행적은 시작되었다. 잘못하면 목숨을 잃거나 잘 돼 봐야 종신 금고의 신세를 면치 못할 모험, 그것을 그는 용기와 침착성으로 극복해낸다. 그리고 말을 도둑맞았지만 그는 결단력과 의지의 힘으로 그것을 되찾는다. 아무튼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그가 자기와 접한 사람들에게 끼친 인격과 매력이라 할 것이다. 그는 아주 젊어서부터 늠름한 인격과 이를 뒷밭침하는 감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솔카 시라의 말을 다시 새겨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달빛 아래 오논 강의 수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테무친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 위에 설 자가 지니는 눈의 매력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쫓기는 젊은이를 구해 주었던 것이다. 지금의 보올추도 처음 만날때부터 테무친에게 자기 일신을 바쳤고 언제까지나 운명을 함께 하려 든다. 그 역시 '위대한 매력으로 빛나는 눈의 광휘'를 거스르지 못했던 것이다.

(88) 이처럼 복수는 부족에서 부족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유괴와 폭력이 되풀이되면서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89) "코아크친 할멈의 족제비 같은 귀와 암여우 같은 눈 때문에 나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부르칸 산에 이르러 사슴의 길을 딸라 말과 함께 숨어들 수 있었습니다. 나는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부르칸 산은 나를 구해주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침마다 산에 제품을 바치겠습니다. 내 아들, 내 손자의 대에 이르기까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변함없이 받들게 하겠습니다."

(93) "메르키트 족이 나를 슬픔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뜨렸네. 내 아내를 납치해 간 것일세. 이제 잠자리에는 사람이 없고 내 가슴은 슬픔으로 두 조각이 났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같은 핏줄 사이가 아니었던가? 함께 이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3) 생애의 중요한 전기를 맞이하여 큰 결단이 요구되면 그는 언제나 겁쟁이로 보일만큼 망설이기만 한다. 그리하여 아내 보르테가 남편 대신 결정을 내리면 곧장 아내의 의견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맡겼다.

(110) 게다가 차무하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변덕스럽고 친구로 삼기에 신의가 없으며 유난히 잔인했던 모양이다. 그 반면 테무친은 왕가 출신임을 젖혀 두고라도 언제나 흔들림이 없고 뛰어난 평형감각과 타고난 정치력 등을 발휘했다. 그리고 짐승의 가죽을 두른 추장치고는 자기 동맹자들조차도 어엿한 귀인임을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를 갗추고 있었다. 그러기에 다른 왕족들도 차무하의 결점 때문에 정이 떨어져서 테무친을 새 왕으로 뽑았을 것이다. 테무친을 추대하면서 그들이 한 말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그대를 칸으로 선출하고 싶다. 그대가 칸이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적을 향해서도 맨 먼저 말을 몰 것이다. 빼앗은 계집과 뺨이 아름다운 쳐녀는 그대의 올드 게르로 데리고 가겠다. 다리가 곧은 준마는 달음질쳐서 그대에게 끌고 가겠다. 싸움이 있는 날 만약 그대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우리들의 재물과 아내를 빼앗고 우리들의 검은 머리를 땅 위에 떨어뜨려라. 평화의 날에 약속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우리를 처자 곁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 저편으로 내어 쫓으라."

(117) 이렇듯 칭기즈칸 주위에 잇달아 부하들이 모여든 것은 그를 적으로 삼기보다 보호자로 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이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칭기즈칸의 권위는 질서, 절도, 혹은 인정미 등을 갖추고 있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적들이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한 인격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했다.

(117) 유목민의 생활은 성찬과 기아를 오간다. 배를 주린 씨족의 무리가 칭기즈칸과 그 이외의 우두머리 중 어느 편에 가담할지를 망설이다가 칭기즈칸이 지휘하는 사냥에 그들도 한 몫 끼워주기를 바라면 칭기즈칸은 두말없이 그들을 받아들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잡은 것보다도 더 많은 사냥감을 나누어 주었다.

(117) "테무친 님은 자신의 옷까지도 남에게 주고 만다. 자기가 탄 말도 남에게 주려고 거기서 내려선다. 그 분은 확실히 한 나라를 다스리고 병사를 기르며 동시에 집안 일도 어김없이 처리해 나갈 분이다."

(134) 장차 세계의 정복자가 될 칭기즈칸은 이렇듯 충신의 마음에 절대적인 헌신의 정신이 솟아나게 했다.

(140) "너는 상처의 피를 빨아내어 내 목숨을 건져 주었다. 또 네 몸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나의 갈증을 덜어줄 말젖을 찾아왔다. 네가 그토록 애써준 일을 앞으로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142) "칸의 말에게 상처를 입힌 화살은 제가 산마루에서 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벌로써 저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칸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저의 피는 기껏해야 손바닥 정도 밖에 땅을 적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칸께서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저는 칸에게 거역하는 모든 적을 상대로 싸우겠습니다. 칸을 위해서라면 제아무리 깊은 여울이라 해도 이를 건너고, 제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이를 부스러뜨리겠습니다."

(147) 완전한 승리를 거둔 다음이면 적의 물건을 빼앗아 나누어 가져도 좋지만, 승리를 거둘 때까지는 절대로 전리품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최초의 공격에서 후퇴를 하게 될 경우에는 어떤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다시 공격을 되풀이해야 한다.

(175) 발주나 못에 거의 물이 없는 계절이었으므로, 후세의 페르시아 사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칭기즈칸은 갈증을 덜기 위하여 진흙을 파서 얻은 물까지 마셨다고 한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탈하지 않은 사람들의 충절에 감동되어 그는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 앞으로는 일동과 고락을 함께 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그 말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자기는 발주나 못의 흐린 물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그 흐린 물을 자진하여 마시고 잔을 돌리자 다들 그를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들 칭기즈칸의 전우들은 훗날 발주나트라고 불리어지며 제각기 충절에 대하여 커다란 보상을 받게 된다."

(193) "이 끝없는 길은 흔히 상상하듯 살풍경한 곳이 아니다. 풀은 무성하고 꽃이 아로새겨져 있다. 선명한 황색의 미니리아재비와 십자화과의 꽃, 당아욱빛의 사향초와 총총이풀, 연미붓꽃 등이 핀 가운데 여기저기 새하연 별꽃 등이 섞여 있다. 그 갖가지 빛깔의 꽃들을 감상하는 것은 무척 즐겁다." …

"눈이 닿는 한 오직 노란 빛깔의 높고 낮은 언덕이 물결치듯 이어져 있을 뿐이고, 모래땅 여기저기에 시들어가는 풀들이 돋아나 있다."

(197) 전진할 때의 대형은 '풀숲'과 같을 것. 그리고는 '호수'의 형으로 대형을 전개시킬 것. 다음에는 '송곳' 모양의 돌격을 가할 것.

(197~198) "저들은 나의 '안다' 테무친의 네마리 개입니다. 모두가 사람 살코기를 먹고 자랐으며,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모두 이마는 청동 같고 입은 끌, 혀는 송곳, 심장은 강철, 꼬리는 칼날과 같습니다. 밥이면 이슬로 목을 축이지요. 바람을 타고 달려갑니다. 싸움이 있는 날에는 사람 고기를 먹습니다. 지금 저들은 사슬에서 풀려나 기쁜 나머지 입에서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저 네 마리의 개, 그들은 제베와 쿠빌라이, 제르메와 수부타이입니다."

(226-227) "나의 병사들은 수많은 나무가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숲과 같은 것, 나의 소망은 그들의 입을 단 것으로 축여 주고 그들의 몸에 비단옷을 입히며, 훌륭한 말에 태워 상쾌하게 흐르는 물을 마시게 하고, 그들을 가축에게는 풍성한 목초를 먹이되 그 목장에는 가시나무 한 그루도 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227) "평소에는 두 살짜리 새끼사슴과 같고, 잔치 때는 망아지처럼 순진하게 날뛰지만, 일단 싸움에 임하면 매처럼 적을 덮친다. 낮에는 나이든 늑대처럼 방심하지 않으며, 어두운 밤에는 까마귀처럼 빈틈이 없다.

(235) "봐라, 이게 너희들의 빨았던 젖이다. 카사르가 설령 무슨 죄를 지었기로서니 그래 혈육을 나눈 아우를 죽이겠다는 거냐? 어렸을 때 너희들이 한 쪽 젖꼬지를 빨고, 또 한쪽은 카치운과 테무게가 빨았다. 카사르만은 양쪽 젖을 다 빨아먹을 만큼 튼튼해서 내 젖이 부는 것을 덜어 주었어. 테무친은 지혜가 뛰어난 대신, 카사르가 타고난 몫은 팔 힘과 활솜씨였다. 카사르의 화살은 적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여 네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들었지. 이제 그 적들이 다 평정되고 나니 너는 카사르가 보기 싫어졌단 말이냐!"

(255) 그의 견실한 평형감각은 항상 가능과 불가능을 분간하고 그때그때의 힘에 걸맞은 일을 기도한다.

(259) 칭기즈칸도 종래와 같은 방법으로는 조리 있게 일할 수 없음을 경험으로 깨달은 모양이었다. 1218년 9월, 그는 중국에서의 군사 행동을 고굉 지신인 무하리에게 맡기기로 하고 황금의 도장과 '고 옹'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무하리도 중국에서 성을 공격하려면 중국식 병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고, 기병 이외에 중국인 '보병'과 노포를 다루는 '포병'을 공용했다.

(261) 그는 유목민의 정복자를 설복하여, 경작지를 짓밟고 백성들을 몰살하기보다는 연공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익이 되며, 도시를 파괴하여 거기 쌓여있는 부를 송두리째 빼앗기보다는 부의 출처 그 자체를 보존하는 편이 제국을 위하여 더 현명함을 깨닫게 했다.

그는 훗날 칭기즈칸의 아들에게 제국은 '말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말에 의하여 다스릴 수는 없다'고 직언하고 있다. 그에게는 경세가(經世家)의 소질이 있었다. 그것을 남보다 먼저 인정하고 그의 말을 잘 받아들인 것은 바로 칭기즈칸이었다. 그것도 짐승의 가죽을 두른 우두머리와 북경 궁전의 전 고문관 사이에는 교양의 깊은 층이 가로놓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277) "칸께서는 높은 고개, 우뚝 솟은 봉우리를 넘고 넓은 강을 건너 원정의 군사를 이끌고 가기로 함을로써 수많은 백성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하오나 이 세상에 삶을 타고난 자는 언젠가는 죽어야할 몸, 모든 것은 잠시 동안의 생명입니다. 당신의 큰 나무와 같은 몸이 어느 날엔가 대지에 기울 때, 대마의 이삭이나 작은 새의 무리와 같은 민생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칸께서는 네 분 아드님 중에서 누구를 세자로 정하려 하십니까? 그 사실을 칸의 일가친척은 물론 신민이 함께 알고자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칸의 뜻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79-280) "오오, 차가타이 님, 왜 또 그처럼 거친 말을 하시는 거요. 당신들이 태어나기 전에 몽골 인의 땅은 어지러워질 대로 어지러워졌고, 곳곳에서 부족끼리 싸움을 벌여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치고 도처에서 유괴와 살인으로 날을 지새웠습니다." …

"당신들 네 분이 모두 그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벌써 잊어버렸단 말입니까, 차가타이님!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은 어머니를 욕되게 하며, 그 명예를 손상하는 것입니다."

(280) "그 당시 여러분의 부군께서는 제국의 기틀을 닦고 계셨습니다. 그 거룩한 몸에서도 수많은 피를 흘리시며, 베게 삼을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의 팔 뿐이요, 갈증을 덜 것이라곤 입 안의 침 뿐이고, 굶주림을 덜 것이라곤 이빨에 닿는 살 뿐이요, 허구한 날을 싸움으로 지새우니 솟아나는 땀이 이마에서 발바닥까지 적시는 형편… 어머님 역시 그 고생을 함께 하셨습니다. 당신들을 기르기 위해서 입에 넣었던 것도 도로 꺼내시고, 당신들을 그 목에 매달리게 하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 훌륭한 대장부로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님은 여러분들의 키가 무사의 어깨와 군마의 볼기짝에 닿을 만치 양육하셨습니다. 우리들의 거룩한 황후님은 태양처럼 밝고 추수(秋水)처럼 맑은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다."

(281) "너희들은 함께 살아서는 안 된다. 땅은 넓어 하천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제국을 분할하여 너희 하나하나가 제각기 정부를 가지고, 그 아래 백성들은 저마다의 목초지를 가질 수 있게 해주마."

(294) '너희들은 가장 무서운 죄를 범했다. 백성들 위에 서는 자가 가장 무거운 벌을 받는다는 것은 각오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무엇을 근거로 하여 그런 말을 하는가 하면, 나는 바로 알라의 신벌(神罰) 그 자체이며, 알라의 신 역시 너희들이 큰 죄를 짓지 않았던들 너희들 머리 위에 나를 풀어 놓지는 않았을 것임을 알아라.'

(294) '무서운 날이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영원한 이별을 슬퍼하는 남녀노소의 오열 뿐이었다. 몽골 군은 주민을 뿔뿔이 갈라놓았다. 야만인들은 불행한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여자들을 능욕했다. 불행한 사람들은 거역할 길 없이 오직 눈물에 잠길 뿐이었다. 이 참혹한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다 죽음을 택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

(308) 몽골의 영웅은 역시 관대하고 위대하고 마음이 넓고 모든 일에 절도를 지키는 건전한 상식가, 혹은 인정가였다. 그는 가장 공명정대한 정의를 위해서만 무기를 들었다. …

그러나 적에 의하여 정의의 전쟁을 강요당한 몽골 인의 유목민으로서 또는 타이가에 사는 반미개의 야만인으로서 그는 몽골 식으로서 전쟁을 밀고 나갔다. 거기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 여기서도 역시 칭기즈칸 개인은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중에서도 최대로 손꼽히는 위인이다. 또 몽골인의 알렉산더 대왕이 17세기 미국의 대평원에 살던 인디언과 별 차이 없는 군사를 거느렸다 하여 그를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다.

(318) 생명이 있는 것은 새짐승에 이르기까지 몰살할 것, 포로는 하나도 생기게 하지 말 것,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죽일 것, 전리품은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며 일체의 것을 파괴할 것, 이상과 같은 살육 작업을 마친 다음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남지 않게 된 도시를 '저주받은 도시'라고 명명할 것. …

"버림받은 음산한 언덕 위는 그 비극의 날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나는 언덕마루를 향하는 가파른 오솔길을 걸어 올라갔다. 폐허 가운데에서는 역시 성곽 중심부의 벽 일부가 단순한 흙벽이면서도 성채의 마지막 남은 유물이다. 이 일부 벽은 이 각박한 풍토의 불순한 기후에도 굽히지 않고 7세기를 거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옛날 건물에 아로새겨졌던 옥석에 섞여, 초라한 토기에 섞여 반짝이는 도자기 조각에서는 유약을 입힌 페르시아 도기의 장식을 엿볼 수 있다."

(322) 마지막에 가서 적의 전열을 격파할 수 없다고 깨닫자 그는 새로운 말로 바꾸어 타고 도망갈 길을 트기 위해 맹렬한 돌격을 시도했다. 몽골 병은 약간 뒤로 물러섰다. 그 점을 노리고 있던 자라르 웃딘은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인더스 강가로 달려가더니 6미터나 되는 높이에서 말과 함께 물 속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한 손에 깃발을 들고 방패를 등에 댄 채 헤엄쳐 달아났다. 그것을 보자 칭기즈칸도 강 언덕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라를 웃딘의 뒤를 따라 강물 속으로 뛰어들려 하는 병사들을 만류하고 적이기는 하나 훌륭한 황태자의 모습을 가리키며 그의 아들들에게 본받으라고 일렀다."

(325) 노래와도 같은 지명이 이어지는 오아시스 지대, '아라비아나이트'의 도시가 줄지어 들어선 지대, 아라비아, 페르시아의 세련된 문화의 꽃, 옛 오리엔트의 경이… 그 모든 것들은 유목민과 공모한 스텝의 건조한 바람에 의해 통째로 삼켜지고 말았다. 그것은 분명 세계의 파국으로 이어지는 '대지의 죽음'이었다. 동부 이란 땅은 예처럼 재건될 수 없었다.

(327) 이렇듯 두 회교도 학자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한 사실은 정복자의 생애를 통해서 중요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 그때를 경계로 하여 지금까지는 도시 문명의 조건을 전혀 알지 못했던 유목민의 수장은, 승리의 성과를 이용하여 옛 문명 제국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 제국을 불시에 찬탈한 자가 정복한 문명의 계승자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329) "시간에 앞서며 어떠한 때, 어떠한 곳에도 그것은 스스로 존재한다. 영원하고 무한하며 완전한 것이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지을 수는 없다. 인간의 언어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초의 존재는 느낄 수 있는 세계나 형태가 있는 세계를 처음부터 초월하고 있다. 그것은 도(道)라 불린다."

명상에 의하여 그것과 동화하는 신선 또는 지인은 만물을 움직이는 무명의 힘과 결합된다. 그는 우주에 합일한다.

"벼락이 산에 떨어져도 폭풍이 바다를 뒤엎더라도 신선은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신선은 대기나 구름에 몸을 싣고 일월에 걸터앉으며 공간 밖에서 노닌다."

(339) 오오, 모서리가 없는 위대한 사각이여 / 영원한 미완의 그릇이여 / 소리없는 아우성이여 / 커다란 무형의 모습이여…

(339) "나의 마음은 집중하고 나의 오체는 흐트러졌다. 오감의 모든 것이 같게 된다. 이미 이 오체를 지탱하는, 이 발을 디디는 감각도 없다. 나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동서를 헤매고 마침내는 바람에 날려 가는지 바람으로 날아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339) "우리들이 우리라고 부르는 것을 어떻게 우리인 줄 알 수 있을 것인가? 옛날 장자는 이 몸을 허공에 나는 나비라 여기고 마음의 행복을 느꼈다. 이 몸이 장자임을 깨닫지 못했다. 문득 그 꿈에서 깨어나 이 몸은 장자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 몸은 나비임을 꿈꾼 장자인가, 장자임을 꿈꾼 나비인가."

(340) "봉황은 바람을 타고 구천 높이 날아오른다. 그 높이에서 봉황이 창천 가운데서 보는 것은 질주하는 말의 무리인가, 원자의 티끌을 이루는 원조의 물질인가, 하늘 그 자체의 창천인가, 아니면 무한히 먼 빛깔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342) "하늘은 중국 천지에 만연하는 거만과 사치의 풍조를 싫어하였다. 나는 탐욕과는 인연이 먼 북방의 미개지에 머무르겠다. 나는 단순 소박으로 돌아가서 절제를 따르겠다. 몸에 걸치는 옷, 먹는 음식물도 소몰이꾼이나 마부와 같은 누더기를 입고 같은 음식을 먹겠다. 아래 백성을 철없는 어린이처럼 위하며 병사들을 형제와 같이 대하겠다. 나는 100번 싸움터에 나가서도 반드시 적 앞에 나아갔다. 나는 전후 7년 동안에 걸쳐 큰 사업을 이룩했으며 6개 방면에 걸친 토지를 통틀어 하나의 법률 아래 따르게 만들었다."

(344) 이 일화는 지난날 칭기즈칸이 '남자의 최고의 즐거움'에 대하여 보올추에게 대답했다는 말을 연상케 한다. 고지식한 보올추는 말했다.

"그것은 봄날의 사냥입니다. 아름다운 말에 올라타고 주먹 위에 매를 앉힌 다음, 짐승이 날뛰는 것을 보는 일입니다."

"아닐세, 그게 아냐. 남자로 태어나서 최고의 즐거움은 적의 무리를 무찌르고 그 뒤를 쫓아 그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것일세. 그리고 그들과 가까운 자들이 눈물로 얼굴을 적시는 것을 보는 일과 그들의 말에 올라타고 그들의 딸이나 아내를 품에 안는 일일세."

(346) "언덕이 갈대로 덮인 호수에는 기러기나 백조가 수없이 있습니다. 임자는 소원대로 그것들을 쏘아 맞힐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리들 가운데에는 젊은 아가씨와 유부녀가 많이 있습니다. 임자는 기호에 맞추어 행운의 여자를 고를 수도 있을 겁니다. 새 아내를 맞이하는 것도, 그 때까지 말을 듣디 않던 말에 안장을 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사람의 위업이란 덧없는 것! 그와 같은 가정 내부의 이야기는 십중팔구 지어낸 것일 테지만, 영웅이 죽은 지 4세기가 지난 다음 그의 자손들은 이슬람권 최대의 제국을 자기들에게 물려준 원정에 관하여 그 일밖에 기억해 내지 못했다.

(349-350) 거기서 몽골의 두 무장은 대담하기 이를 데 없는 계획을 세웠다. 카프카즈 산맥 이쪽을 짓밟아 버렸으니 이참에 20,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저편 미지의 세계, 유럽으로 쳐들어가자는 것이었다.

(355) 젊어서부터 고생에 이은 고생으로 시달려온 정복자도 그 사업에 관한 한 이제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58세에 이른 칭기즈칸은 완전히 노쇠하기 전에 휴식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적어도 그로부터 4세기 이후에 가서 칭기즈칸의 자손이 되는 몽골의 사가 사난 세치엔은 그렇게 상상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어느날 칭기즈칸은 상쾌한 들판에 서 있다가 문득 이상한 우수, 이 철인으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은 정적을 추구하는 마음에 휩싸였다. …

"이곳이야말로 평화로운 백성의 집단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경치이다. 사슴과 노루를 위해서는 훌륭한 목장, 노인을 위해서는 더할나위 없는 안식의 땅이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심심풀이가 그처럼 불교적이거나 목가적인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즐기는 최대의 휴식은 첫째 사냥이었다. … 그 다음이 유희이고 술 마시는 것이었다.

(357) 그러한 연회에서의 최고의 즐거움은 역시 술이었다. 칭기즈칸은 한 달에 세 번만 술에 취하는 것이 예의를 지키는 일이라 간주하고 있었다. 물론 두 번에 그치면 더 좋고 한 번이라면 더욱 더 좋다. 한번도 취하지 않는다면 더 바랄 나위 없지만 그렇게 행실 좋은 사나이가 과연 있단 말인가?

몽골군이 저지른 가공할 비인간적인 행동과 정복자 본인이 몰래 베푼 친절과의 기묘한 대조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살고 있던 환경에서 그와 같은 야만인에게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지 모르겠지만, 그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귀인다운 고귀한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364) "영원한 텐게리의 가호로 내가 호라즘과의 싸움에 이기고 돌아온다면 그때야말로 복수의 종이 울릴 것이다."

(369) 칭기즈칸은 누구보다도 이해력이 풍부하고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칭기즈칸이 가공할 잔학 행위를 방치해 둔 것은 당시의 몽골인 환경으로 미루어 유목 생활이 아닌 생활 형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이외의 방법에 의한 전쟁은 전혀 몰랐으며, 정착민의 토지는 약탈이나 학살, 인간 사냥의 대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이외의 방법도 있음을 터득하게 되자, 칭기즈칸은 곧 예류추짜이에게 명하여 정착민의 국토에 일정한 조세를 부과하는 등 규칙적인 행정의 방식을 갖추게 만들었다.

(374) "둘 다 잘 듣거라. 나도 이제 마지막이 다 되었다. 영원한 창천의 가호로 나는 너희들을 위해 중앙에서 끝까지 가는데 1년은 걸릴만한 제국을 정복해두었다. 그 제국을 잃기 싫거든 너희들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 적에게는 협력하여 대항하고, 충성스런 신하를 살찌우기 위해서도 힘을 합하여라. 너희들 둘 가운데 제위에 오르면 된다. 오고타이, 네가 나의 뒤를 이어라. 내가 죽더라도 이 일만은 중히 여겨서 여기 없는 차가타이가 난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라."

(377) "나의 자손은 훌륭한 옷을 입을 테지. 맛있는 것을 먹고 준마를 몰며 아름다운 계집을 품에 안겠지. 그 모든 것이 누구의 덕분인지도 모르는 채…"


#4. 내가 저자라면

칭기스칸의 삶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 듯 보인다. 르네 그루쎄는 전설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활용하여 그의 삶을 재구성해내었고, 잭 웨더포드는 직접 몸으로 움직이며, 몽골의 초원에서 그의 삶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나갔다. 어쩌면 우리는 그가 예전에 벗어놓은 낡은 가죽옷을 가지고, 이런 저런 뜬구름을 잡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또 다른 곳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을.

그러나 연도와 그의 태생 등에 대한 자료가 조금 부정확하면 어떠랴. 그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는 일종의 변화의 키워드이고,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의 증거이며, 운명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진정한 영웅의 본보기이다. 그의 질풍 같은 삶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1) 영원한 바람의 노마드

'움직이는 것이 멈추어 있는 것을 쓰러뜨린다.' 흘러가는 것은 맑고, 고여 있는 것은 썩는다. 움직임을 멈추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은 썩기 시작한다. 칭기스칸은 자신의 인생 동안 끊임없이 내달렸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초원에서 홀연히 일어나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호령하는 세계의 지배자로 우뚝 서게 된다.

그는 아마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리라. 극단의 기후가 그를 내달리게 만들었고,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처절한 환경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영원히 내달려야만 살 수 있는 바람의 자식이었다. 그가 멈출 때는 오직 휴식과 죽음 뿐이었다.

때문에 이동과 전쟁은 그의 삶의 정수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그 피로 점철된 복수와 복수의 순환 고리를 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토록 열심히 말을 달리며 거대한 '팍스 몽골리카'를 향해 모든 경계를 허물어 나갔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푸른 하늘 아래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아놀드 토인비는 이런 말을 했다. "노마드는 좋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들은 사라져버리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노마드가 된 것이다."

2) 강점의 적극 활용

그는 자신과 부족의 강점을 적극 활용했다. 그 강점은 바로 그들의 결핍과 거친 환경이 만들어냈다.

"몽골인은 키가 작고 탄탄하며 뼈대가 굵고 튼튼한 체격을 갖추었고, 스테미나가 엄청나다. 그들의 말 역시 작고 탄탄하며 우아한 데라고는 없다. "힘센 목, 굵직한 다리에, 가죽은 털이 뻑뻑하며, 불 같은 투지와 정력, 지구력, 꾸준함, 걸음걸이의 확실함은 경탄할 만하다."

"실상 몽골인들의 전술은 흉노와 돌궐이 사용하던 옛날 방법의 개선된 형태에 불과했다. 그것은 농경지역 변방에 대한 지속적인 습격과 초원의 대규모 몰이사냥에서 발전된, 유목민들에게 있어 영원불변의 전술이었다. 전해 내려오기로는 칭기스칸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낮에는 늙은 늑대의 경계심으로, 밤에는 갈가마귀의 눈으로 지켜보아라. 전투에서는 적을 매처럼 덮쳐라."

자신들의 타고난 체력, 말, 지형, 전술, 무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발전시켜 나간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들은 마치 그들이 사냥감을 몰아서 죽이듯이 전쟁을 수행했다. 정주민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속도'는 그들의 핵심 역량이었다.



3) 변화에 대한 적응

그들은 자신의 강점 만으로는 넘지 못하는 벽이 있음을 발견할 때는 적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정주민들의 높은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양한 공성용 무기들을 연구했고, 또 기술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몽골인들은 자신의 전쟁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속도와 기술이 결합되자, 그들은 전쟁에 있어서는 세계 최강의 군대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 칭기스칸은 열린 마음과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였다. 그가 정복한 성들을 그토록 짓밟았던 이유는 그것이 바로 그들이 알고 있던 유일한 전쟁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복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 둘씩 바꿔나갔다. 그는 정복한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철학을 이해하려 했다. 르네 그루쎄가 말한 1,000년 이상의 시차를 훌쩍 뛰어넘으려 했다.

"칭기즈칸은 누구보다도 이해력이 풍부하고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칭기즈칸이 가공할 잔학 행위를 방치해 둔 것은 당시의 몽골인 환경으로 미루어 유목 생활이 아닌 생활 형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이외의 방법에 의한 전쟁은 전혀 몰랐으며, 정착민의 토지는 약탈이나 학살, 인간 사냥의 대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이외의 방법도 있음을 터득하게 되자, 칭기즈칸은 곧 예류추짜이에게 명하여 정착민의 국토에 일정한 조세를 부과하는 등 규칙적인 행정의 방식을 갖추게 만들었다."

"시간에 앞서며 어떠한 때, 어떠한 곳에도 그것은 스스로 존재한다. 영원하고 무한하며 완전한 것이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지을 수는 없다. 인간의 언어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초의 존재는 느낄 수 있는 세계나 형태가 있는 세계를 처음부터 초월하고 있다. 그것은 도(道)라 불린다."

13세기의 잉글랜드 과학자 로저 베이컨은 몽골이 승리한 것은 군사 분야의 우월성 때문만이 아니라, "과학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철학 원리를 습득하는 데 여가 시간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4) 동양과 서양의 연결

그들은 길을 만들었다. 멈추어 있게 만드는 것들을 무너뜨렸다. 방해가 되는 벽들을 허물었고, 걸림돌이 되는 논과 밭을 초원으로 만들었다. 움직이는데 거침이 없어야 했다. 멈추어 있는 것들은 구역질이 났다. 그들은 고정되어 있는 땅과 건물이 아닌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는 흐름을 통제했다.

"몽골인이 손을 댄 나라의 주민은 대개 처음에는 미지의 야만적인 부족의 파괴와 정복 때문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 유래 없는 문화교류, 교역 확대, 생활 수준 개선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

그렇기에 유럽은 우리보다 더 몽골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징기스칸으로 인해 동양의 풍부한 문화 유산과 과학 문명이 유렵으로 전파되기 시작했고, 중세의 긴 잠에 빠져있던 유럽은 새로운 피의 수혈을 통해 기지개를 켜며 하나 둘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징기스칸 이후의 유럽은 그 전의 유럽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5) 야만 VS. 문명

아마 칭기스칸의 생애가 나에게 주었던 가장 큰 화두는 이것이었으리라. 도대체 '야만'이란 무엇인가? 이 의문은 다음과 같은 글을 만난 순간, 더욱 증폭되었다.

"이 일화는 지난날 칭기즈칸이 '남자의 최고의 즐거움'에 대하여 보올추에게 대답했다는 말을 연상케 한다. 고지식한 보올추는 말했다.

"그것은 봄날의 사냥입니다. 아름다운 말에 올라타고 주먹 위에 매를 앉힌 다음, 짐승이 날뛰는 것을 보는 일입니다."

"아닐세, 그게 아냐. 남자로 태어나서 최고의 즐거움은 적의 무리를 무찌르고 그 뒤를 쫓아 그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것일세. 그리고 그들과 가까운 자들이 눈물로 얼굴을 적시는 것을 보는 일과 그들의 말에 올라타고 그들의 딸이나 아내를 품에 안는 일일세." (P. 344)

내가 보기에 이 일화에는 그들이 승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대답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가령 그들은 자신의 야성에 더욱 충실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문명이란 번지르르한 기름으로 얼룩져 자신의 본질에서 멀어진 적들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몽골인들에게 준 것은 아닐까?

혹, 이것은 정주(定住) VS. 이동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닐까? 일단 멈추고,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가족들을 키워나가면 마음 속에 수많은 집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렇게 잃을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찬 문명인들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털고 떠나는 데 익숙한" 별로 잃을 것 없는, 또 잃는 것에 익숙해진 유목민 군대와의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싸우기도 전에 심리전에서 결판이 났는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카타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이기는 이유? 항상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야."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칭기스칸은 단지 진정한 남자의 즐거움에 대해서 말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바꾸는 커다란 힘은 바로 그 야만과 문명이라는 서로 모순된 힘의 조화 속에서 나오는 것 만은 분명한 듯 보인다. '내 안에 짐승과 사람이 같이 있다. 그러나 그 사나운 짐승을 죽여서는 안된다.' 내 안의 야성을 잃는 순간,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도 잃어버린다.



#5. 에필로그

일주일을 칭기스칸과 함께 드넓은 초원을 내달렸다. 책과 자료를 오고 가며 그의 삶을 따라가보았다. 그의 삶은 인간 역사의 큰 울림이었다. "종소리가 멈춘 뒤에도 간질거리는 진동은 계속 느낄 수 있듯이" 칭기스칸의 삶은 우리들을 매혹시키고,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자꾸 일깨워주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코 영원한 것은 없다. 너희들이 혹시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게 보여주어라. 내가 단 칼에 베어버리겠다. 그리고 너희들의 그 뜨거운 눈물조차 목과 함께 베어버리겠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서있는 이 곳이 얼마나 덧없는 세상인지를..."

멈추는 순간 썩기 시작한다. 자크 아탈리의 말처럼 "선(善)은 노마드적이고, 악(惡)은 정착민적이다." 몸을 일으켜 다시 움직여야겠다. 마음을 다시 세워야겠다. 책을 읽다 기쁠 때는 언제인가?

이것과 저것이 연결되어 제3의 무언가가 될 때이다. 새로운 길을 발견할 때이다. 그 길을 따라 조금씩 나아갈 때이다. 그 언덕을 힘겹게 넘었을 때, 펼쳐질 그 미지의 세상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릴 때이다. 드디어 언덕에 올라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볼 때이다. 그 시원한 바람에 이마의 땀을 식힐 때이다.

칭기스칸을 만나니 다시 자크 아탈리와 제러미 리프킨이 서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잠시 멈추고 8월에 만나게 될 몽골의 광활한 초원과 영원한 푸른 하늘을 그려본다.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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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7.03 10:27:06 *.249.167.156
내가 다시 읽고, 다시 답글달고^^;;

6월의 리뷰는 '내가 저자라면'이 조금 헷갈렸다. 아마 난중일기를 읽으며 내가 했던 생각때문인 듯 하다.

"그렇다면 이 달의 리뷰에서 ‘내가 저자라면’은 그의 책을 ‘내가 한번 써 본다면’의 의미보다는 ‘내가 그의 삶을 한번 살아본다면’의 의미가 더욱 클 듯 하다."

특히 칭기스칸은 자신이 쓴 글이 아니므로, 인물과 저자 사이에서 많이 헷갈렸는데, 결국 인물 쪽으로 기운듯 하네. 이제 인물 속에서 나와서 다시 저자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7월에는 이런 고민은 줄어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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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03 16:54:37 *.72.153.12
도윤의 고민은 진지하네. 그가 달릴 수 있던 이유를 말해줘서 고마워.
소현의 리뷰에서도 그것에 대한 언급이 있던데...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아는 것, 야만성이라고 하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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