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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8일 03시 33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이제껏 매번 저자가 어떤 주제 혹은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저술한 책만을 접하다 이렇게 자서전의 성격을 띤 책을 읽게 되니, 굳이 따로 저자 조사를 이중으로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해방감과 ‘저자에 대하여’ 하나는 제대로 쓸 수 있겠구나 싶은 두 개의 감정이 타이핑하느라 분주한 내 열 손가락 위에 나란히 앉아 있다.

어떤 내용을 전달해야 참 잘 읽었다는 말을 들을까 고심하다 나는 단순하게 쓰기로 마음 먹는다. 3 가지 소원 중 하나도 아니고 셋 다 대한독립을 외쳤던 김구 선생님께서 꿈꾸던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에 대한 답이 백범 일지의 마지막 몇 페이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 문자 그대로 옮겨 볼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김구 선생님께서 살아 온 70평생의 철학이 담겨있으며,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 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 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말하기에 넉넉하고 우리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 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의 자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성할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이 태탕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 번 마음을 고쳐먹으면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의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 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 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이란 것이다.

이러하므로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동포, 즉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 할래야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끝없는 계급투쟁을 낳아서 국토에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일본의 이번 당한 보복은 국제적 민족으로 그러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실례다.

이상에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용모의 일단을 그린 것이거니와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옛날 한토의 기자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께서도 우리 민족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셨으며 우리 민족을 인(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예부터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진다면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내 마음에 들어온 인용문>

“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p. 7)

“내가 내 경력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기는 것은 결코 너희에게 나를 본받으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너희도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니 동서고금의 많은 위인 중에서 가장 존경할 만 이를 택하여 스승으로 섬기라는 것이다” (p. 19)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p. 39)

“부모와 자식은 천 번을 태어나고 백 겁이 지나도록 은애의 인연이란 말이 진실로 헛말이 아니었다” (p. 98)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내가 죽을 날이 올 때까지 글이나 실컷 보겠다고 작정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의리는 학자에게 배우고 일체의 문화와 제도는 세계 각국에서 채택하여 적용하면 나라에 복이며 이익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p. 108)

“심사 숙고하여 탈옥을 결심했다” (p. 119)

“비록 더러운 애정이었지만 애정의 힘은 과연 컸다” (119)

“군자는 알고도 속아줄 수 있다” (p. 161)

“그 나라가 어느 나라건 그 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꾸려가는 큰 줄거리를 보아서 행실이 오랑캐 같으면 오랑캐로 대우하고 사람의 행실이면 사람으로 대우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탐관오리가 사람의 얼굴은 하고 있으나 행실은 금수일 때가 많으니 그것이 참으로 오랑캐인 게지요. 지금은 임금이 스스로 벼슬 값을 매기고 관직을 팔고 있으니 곧 오랑캐 임금인데 우리는 내 나라 오랑캐도 배척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 대양을 건너 사는 나라들은 공자 맹자의 그림자도 못 보았지만 국가제도와 문명은 공맹의 법도 이상으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랑캐 오랑캐 하고 배척만 한다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 소견에는 오랑캐에게서 배울 것이 많고 공맹에게는 버릴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p. 168~169)

“어머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왼쪽 허벅지에서 살 한 점을 떼어내어 고기는 불에 구어서 약이라 아뢰어 잡수시게 하고 흐르는 피를 받아 들이키시게 했다” (p. 171)

“자네 뜻에 맞는 낭자라면 어떤 낭자를 바라는가? 첫째, 재산을 따지지 말 것. 둘 때, 낭자라지만 학식을 지닐 것. 셋째, 서로 만나서 마음이 맞는지 알아보고 나서 결혼하렵니다……하지만 자네의 말처럼 만나서 마음을 알아보는 일은 가장 어려운 문제일 듯하네” (p. 173)

“애국사상을 지닌 이들 중에 전 민족의 대다수가 이 예수교 신봉자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p. 176)

“어쨌거나 양반의 세력이 쇠퇴된 것은 사실이었다. 당당한 그 양반들로서 보잘것없는 상놈 하나를 접대하기에 세력이 부쳐서 애쓰는 것을 보니 더욱 가련하게 생각되었다. 나라가 죽게 되니까 그 동안 국내에서 중추세력을 점하고 온갖 못된 위세를 다 부리던 양반부터 저 꼴이 된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양반이 삶으로 국가가 독립할 수 있다면 내가 양반의 학대를 좀더 받아도 나라만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p. 195)

“군이 나라의 일에 비분하여 용기 있게 활동하고자 함은 극히 가상한 일이네. 하지만 큰일을 도모하는 남아로서 총기로 자기 부인을 위협하고 동네에서 총을 쏘아대 민심을 소란케 하는 것은 의지가 확고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 그러니 지금은 칼과 총을 내게 맡겨 두도록 하게. 의지도 더욱 강고하게 수양하고 동지도 더 사귀어 얻은 후 때가 되면 내게 와서 찾아가 실행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p. 206)

“나부터 망국의 치욕을 당하고 나라 없는 아픔을 느꼈지만 사람이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을 때 슬퍼하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이 나라가 망하기는 하였으나 국민이 일치 분발하면 곧 국권이 회복될 것처럼 생각했다. 그렇다면 후세들의 애국심을 키워서 장래에 광복하게 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계속하여 양산학교를 확장하여 중, 소학부의 학생을 증원 모집하고 교장의 임무를 맡아 하였다” (p. 207)

“나는 평소에 무슨 일을 보든지 성심껏 한다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나라를 구원하고자, 즉 나라가 남에게 먹히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거듭 씹어대는 저 왜구처럼 일에 밤새워 본 적이 몇 번이었던가? 이렇게 자문해 보니 온몸이 바늘침대에 누운 듯 통절한 중에 내가 과연 망국노(나라 잃은 노예)의 근성이 있지 않은가 싶어 부끄러운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찼다” (p. 214)

“그러고 보니 국가는 망하였으나 인민은 망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18)

“내가 방밖에서 밥을 먹다가 고기 한 덩이와 밥 한 덩이를 입에 물고 방안으로 들어와 입 속에서 도로 꺼내 마치 어미 새가 새끼를 물어 먹이듯 했다” (p. 223)

“태산만큼 크게 상상하던 왜놈이 겨자와 같이 작아 보이는 것이었다” (p. 234)

“김구는 오늘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집물 창고에 봉하여 두는 것과 같이 네 자유까지 맡기고 옥의를 입고 입감하니 오로지 관리에게 복종하는 길밖에 없다” (p. 236)

“하지만 마침내 대면만 하면 울음을 참기가 무척이나 힘들 텐데 어머님은 참 놀라운 어른이시다” (p. 243)

“입과 코를 마주 대고 숨쉬게는 되어 있지 않지만 잠이 깊이 들 때보면 서로 키스하는 자가 많고 약한 사람은 솟구쳐 올라 사람 위에서 잠을 잔다. 그러다가 밑에 깔린 사람에게 몰려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날을 밝히는 것이 감옥의 하룻밤이었다” (p. 249)

“일반 사회에서도 감옥 간 사람이라 하여 멸시하지 말고 대학생의 자격으로 대우해 줘야 감옥을 세운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p. 251)

“그러므로 나는 다시 세상에 나가는 데 대하여 우려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역시 석회질을 품은 몽우리 돌이라면 만기 이전에 성결한 정신을 품은 채로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심의 표로 이름을 구(九)라 하고 호를 백범(白凡)이라 고쳐서 동지들에게 공포하였다. ‘龜’를 ‘九’로 고친 것은 왜의 민적에서 벗어남이요 ‘연하’를 ‘백범’으로 고친 것은 감옥에서 몇 년간 연구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하등사회 곧 백정 범부들이라도 애국심이 지금 나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그런 바람을 가지자는 것이다” (p. 266)

“무술년(1898) 3월 9일 야반에 탈옥 도주한 이 몸으로 17년 후에 철사에 묶이어서 다시 이곳에 올 줄 누가 알았으랴” (p. 267)

“그대가 빈손으로 왔으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으나 뇌물을 가지고 와서 청구하는 데는 그 말부터 듣지 않을 터이니 물건을 도로 가져가고 훗날 다시 빈손으로 와서 말하라” (p. 279)

“일생 나의 제일 행복이라 할 것은 체질이 튼튼한 것이다. 감옥에 고생한 것이 근 5년인데 하루도 병으로 노역을 쉰 적이 없었다. 인천 감옥에서 학질에 걸려 한나절 노역을 쉬었을 뿐이다. 병원이라는 곳에는 혹 떼고 제중원에 한 달, 상해에 온 후 감기로 20일 동안 치료한 것 뿐이다” (p. 293)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하여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고, 죽으려고 하여도 죽지 못한 이 몸이 필경은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p. 300)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키우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p. 437)

“대개 사람이란 전지전능할 수가 없고 학설이란 완전무결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한 사람의 생각, 한 학설의 원리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일시 속한 진보를 보이는 듯 하더라도 필경은 병통이 생겨서 그야말로 변증법적인 폭력의 혁명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생물에는 다 환경에 순응하여 저를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것이다. 작은 꾀로 자주 건드리면 이익보다도 해가 많다” (p. 440)

“이렇게 남의 나라의 좋은 것을 취하고 내 나라의 좋은 것을 골라서 우리나라에 독특한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도 세계의 문운에 보태는 일이다” (p. 442)



<내가 저자라면>

‘자서전’이란 장르의 책을 쓰는 데 관건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삶의 어떤 시점에서 쓰느냐 이다. 혈기왕성할 나이의 끓는 피 속에서 터져 나오는 단어들과 중년의 나이를 넘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고 난 후에 쏟아져 나오는 단어들과는 분명 차이가 나도 많이 날 테니까 말이다. 쉰 살이 넘어 기억의 파편을 짜 맞추어가며 바라본 과거는 아무래도 중요한 사건을 겪고 있을 그때 당시의 생생함과 오븐에서 갓 구워낸 음식이 아직도 지글거리는 것과도 같은 생동감은 퇴색되게 마련이니까. 내가 여러 자서전을 읽으며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김구 선생님이 백범 일지를 쓰기 시작했던 소기의 목적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다소 늦게 장가를 간 탓에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식들을 보았고, 연이은 옥중생활 때문에 자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으리라. 그리하여 교육에 몸 담았던 교육자로서 남의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했으나, 정작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위해서는 마음만큼 잘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에 더욱 백범일지 쓰기에 전념했으리라는 나의 짐작이다.

진정한 교육자답게 그에게는 지나침이 없다. ‘백범’이라는 호에서도 묻어 나오는 자기 절제가 철저한 그는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더 다가가고 싶은 리더인지도 모르겠다. 육체가 건강했던 만큼 정신도 그에 못지 않게 건강했던 그는 ‘독야청청’이란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아니한 것만 못하다는 말을 몸소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주고 받을 줄 알았다. 나로서는 알 수도 셀 수도 없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보며 영웅은 결코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절감했다.

백범 일지의 톤은 마치 어느 노인이 옛날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주듯 그렇게 읽혀진다. 그의 문체는 과장됨이 없고, 최대한 감정을 배제시킨 것처럼 느껴졌다. 글자 속에 남는 여운은 나로 하여금 중학교 때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한창 생각 많을 사춘기 나이였던 터라 별의별 생각을 다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덜 하지만 그때만 해도 어디선가 애국가가 들려오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져 눈시울을 적시곤 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나는 지금 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자문하며 혼자서 고민 아닌 고민을 했던 기억. 그러고 보면 나는 나이를 거꾸로 먹나 보다. 지금은 그런 고민을 조금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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