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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8일 13시 5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백범일지 - 김구 저. 도진순 역. 돌베개
백범 연보 (p319~ 325) 참조

2.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 및 나의 견해

어린 두 아들에게 나의 지난 일을 알리고자 하는 동기에서 유서 대신 쓴 것이 상권이다.
이 목숨을 던질 곳이 없어- 민족운동의 기회를 기다리게 되었다.
칠십을 바라보아 앞날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주로 미주와 하와이의 한인 동포를 염두에 두고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나의 경륜과 소감을 알리려고 쓴 것이 하권이다. 이것 역시 유서라 할 수 있다.
완전한 독립국가의 수립이 목적이고 원이었다. p3

나를 사랑하는 몇 친구들이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이 동포에게 다소간 이익이 된다고 권하기로, 나도 허락하였다. 이 책을 발행하기 위해 국사원 안에 출판소를 두고 김지림 군과 삼종질 홍두 그리고 여러 친구와 여러 기관에서, 혹은 번역과 한글 철자법 수정으로, 혹은 비용과 용지의 마련으로, 혹은 인쇄로 힘쓰고 수고한 데 대하여 고마운 뜻을 표현하여 둔다.
끝에 붙인「나의 소원」한 편은 내가 지금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의 개요를 적은 것이다. 무릇 한 민족이 국가를 세워 국민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며,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한 채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 추태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상을 보면 더러는 로크John Locke의 철학을 믿으니 이는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마르크스Karl Markㆍ레닌V.I. Lenninㆍ스탈린I.V. Stalin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니,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일제시대 동경을 우리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p4

우리 민족 철학의 대강령이다. 그러므로 동포 여러분은 이 한 편을 주의하여 읽어 주셔서, 저마다의 민족 철학을 찾아 세우는 데 참고를 삼고 자극을 삼아주시기 바라는 바이다.
무릇 난 자는 다 죽는 것이지만, 개인이 나고 죽는 중에도 민족의 생명은 늘 있고 늘 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 민족의 자손을 높이고, 우리의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 민족의 문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앞서 세상을 떠나간 동지들이 다 이러한 일을 하시고 간 것에 대해 나는 늘 감사한다. 나도 비록 늙었으나 앞으로 이 몸뚱이를 헛되이 썩히지는 아니할 것이다.
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삼천만이 저마다 이 이치를 깨달아 행한다면, 우리나라가 완전 독립이 아니 될 수도 없고, 또 좋은 나라 큰 나라로 길이 보전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p5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온 것이다. 이것이 내 생애요, 내 생애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내가 이 책을 발행하는데 동의한 것은, 잘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못난 사람이지만 민족의 한 분자로 살아간 기록이기 때문이다. 하층민 백정白丁 과 평민인 범부를 의미하는 백범白凡이라는 내 호가 이것을 의미한다. 내가 민족의 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만한 것은 대한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p6

책을 펴내면서
기초적인 부분조차 제대로 알려 지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일지逸志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의미이다. p7

대중용『백범일지』를 발간해 주길 희망하였던 것이다. p8
써니: 이 대목에서 갑자기 사부님의 대중용 COREANITY를 생각해 보게 된다.

상권
인仁ㆍ신信 두 아들에게
이 일지逸志를 기록하여 전하는 것은 너희들에게 나를 본받으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나는 너희들이 역사상 많은 위인들을 배우고 본받기를 원한다. 나를 본받을 필요는 없지만, 너희들이 성장하면 아비의 삶을 알 길이 없겠기에 이 일지를 쓰는 것이다. 오래된 사실들이라 잊어버린 것이 많아 아쉽지만, 일부러 지어낸 것은 없으니 믿어 주기 바란다. p17

제1장 황해도 벽촌에서의 어린 시절
1. 상놈이 된 집안 내력과 양반에 대한 울분
혼인의 천대, 취직의 천대, 경제적 압박, 언어의 천대 p19

3. 양반의 꿈, 궁핍한 배움길
석 달 뒤 서당은 인근 신존위申尊位의 사랑으로 옮겨 갔다. 나는 아침마다 고개를 넘어 집과 서당을 오가며 끊임없이 글을 외웠다. 동무들 중에는 나보다 수준이 높은 아이도 있었지만, 외우는 시험에서는 내가 늘 최우등이었다. 그런데 반 년도 되지 않아 선생님을 내보내게 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 선생님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신존위의 손자보다 내가 공부 잘하는 것을 시기했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시험을 앞두고 선생님이 나더러 일부러 글을 못 외우는 것처럼 하라고 부탁하셔서 그대로 한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신존위 아들이 닭 잡고 술상을 차려 내어 잘 먹었다. 그런데도 결국 선생님을 내쫒았으니 이는 분명 ‘상놈의 짓’ 이었다. p26

써니: 김구는 여기서 반상의 문제를 그들의 신분이 아닌 사고와 철학에 기초하여 일상에서 바르게 쓰여 지는 것이어야 함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나의 사부 구본형선생 역시 철학은 땅으로 내려와서 일상에 체화되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에 과제와 함께 추천해 주신 영화 <묵공>에서 보면 왕자 양적과 신하가 활솜씨를 겨루는 장면이 나온다. 왕자는 코웃음을 치면서 이제라도 포기를 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노라 위협을 가한다. 감히 자신과 경쟁을 겨루어 보겠다는 것조차 너무나도 치욕스럽게 생각하지만 현명한 묵자에 의해 경쟁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신하 또한 끝까지 겨루기를 포기하지 않고 활시위를 당긴다. 모두 5발을 쏘아서 그 승패를 가르는데 막상막하의 명사수들이기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듯 보였다. 두 발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더 이상 활을 꽂을 자리가 없어보이자 왕자가 신하에게 거만한 투로 말을 한다. 네가 활을 당긴다 해도 화살이 꽂힐 곳이 없으니, ‘네가 졌다.’ 지금이라도 포기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노라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신하는 화살을 당기고야 만다. 기와의 용머리가 완전히 박살이 나면서 모든 화살이 다 떨어져 나가고 마지막 한 발 만이 당당하게 꽂히게 된다. 왕자는 자기 앞에서 자기를 능가하는 신하를 보면서 왕자에 대한 도전이라 노여워하며 부들부들 떨면서 괘씸해하나 이때 현명한 묵자가 중재를 하면서 바른 말을 한다.

“지금까지 왕자님께서 이겨온 것은 신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안목을 넓혀야 합니다. 천하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영화<묵공>에서 혁리(묵자- 유덕화가 왕자 양적에게 하는 말

그렇다. 아무리 신분이 높고 학식이 많으면 무얼 하겠는가. 지식인이, 부든 명예든 지위든 가진 자가, 그 자리를 바르고 유용하게 지키고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분적 차별에 지나지 않는 바로 저속한 ‘상놈의 짓’ 인 것이다. 그러니까 임금도 임금답지 못하거나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위정자들, 교육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지식인 들, 부를 특정인에게만 편중시키고 마는 이기심이나 언제나 뒷짐만지고 구경만 하며 기회만 살피려드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와 불평등 등이 바로 ‘상놈의 짓’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무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동네 서당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들을 때는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p27

제2장 파란만장한 실패와 단련의 성장기
1. 과거 낙방, 양반의 꿈은 무너지고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相好不如身好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身好不如心好

태산이 앞에서 무너져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병사들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한다.
나아가고 물러섬을 호랑이와 같이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

2. 동학 입문으로 다시 태어나다
“동학은 용담龍潭 최수운崔水雲선생이 천명하였으나 이미 순교하셨고, 지금은 그 조카 최해월崔海月선생이 대도주大道主가 되어 포교 중입니다. p33

4. 적장의 집에서 만난 스승 고능선
당시 내 마음은 매우 절박한 상태였다. 과거장에서 낙심하고, 관상 공부에서도 실망하였으며, 동학당이 되어 ‘새로운 국가’, ‘새로운 국민’을 꿈꾸었으나 그도 역시 바람 잡듯 헛된 일이 되었다. 이제 모든 것이 실패한 패장敗將 신세가 되어 겨우 생명만 부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장래를 생각하면 대체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 답답한 심정이었다. 장래를 생각하면 대체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러니 과연 내가 고선생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오히려 선생께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마음에 있는 그대로 말하였다.
“선생님! 저는 불과 스무 살에 실패를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자질과 품성을 밝히 보시고 좋은 점이 있으면 사랑해 주시고 교훈도 해 주십시오. 그리하지 못한다면, 저의 발전은 고사하고 선생님의 높으신 덕에 누만 끼치고 말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p46

써니: 이 말에 토를 달면 좀 우스울지 모르나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나는 10여세 이후 평생 존경하는 스승을 꼭 갖고 싶었다. 물론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에 넘치게 욕심이 많았다. 무려 마흔 중반에 이르러서야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남몰래 많은 눈물을 흘린 이후에야 사부라 모시고픈 스승을 만난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할 지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것이 아직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겁이 나고 걱정이 많이 된다. 처음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겠지만 차츰 덤덤해 지는 듯하다가도 금방 덜컹 두려워지곤 한다. 완전을 추구하는 결벽증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소심증 때문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마도 실력 부족인 것 같다.

“사람이 자기를 알기도 쉽지 않거든 하물며 남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무쪼록 성현聖賢의 발자취를 밟아 가도록 하게. 예로부터 성현의 자리에 이른 자도 있고, 좀 모자라는 자도 있으며, 중도에 자포자기하는 짐승만도 못한 자도 있다네.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번 실패나 곤란을 경험하였더라도 그 마음 변치 말고 끊임없이 고치고 나아가게. 목적지에 이르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고민은 즐거움의 뿌리이니 상심 말게. 나 같은 늙은이가 자네 앞길에 혹시 보탬이 된다면 그 또한 영광이 아닌가?”
고선생의 말씀은 내게 위안이 되었을 뿐 아니라 주리던 아이가 어머니 젖을 빨아 먹는 것과 같았다.
“그러시면 앞으로 갈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마음을 다해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그 같이 결심하였으면 내 모든 힘을 다하겠네. 젊은 사람이 너무 상심 말고 매일 나와 함께 지내세.”
그날부터 나는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겠고, 고선생이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날마다 고선생 사랑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선생은 책을 차례대로 가르치지 않고, 나의 정신과 재질을 보아 떨어진 곳을 기워 주고 빈 구석을 채워 주는 구전심수口傳心受(말로써 요체를 전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함)의 방법을 이용하셨다. 선생은 주로 의리義理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능력이 있어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그 재능이 도리어 화근이 된다는 것, 사람의 처세는 마땅히 의리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때에는 판단ㆍ실행ㆍ계속의 세 단계를 밟아 성취해야 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셨다.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나, 得수거지무족이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마저 놓는다면 가히 대장부로다. 현암산수장부아 p48

“백성들이 의義를 붙잡고 끝까지 싸우다가 함께 죽은 것은 신성하게 망하는 것이지만, 백성과 신하가 모드 적에게 아부하다 꾐에 빠져 항복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일세. 지금 왜놈의 힘이 대궐까지 파고들어 대신들을 마음대로 내치니, 우리나라를 제2의 왜국으로 만든 것 아니겠는가? 그런즉 자네나 나나 죽음으로 충성하는 일만 남았네.” p49

3장 질풍노도의 복수 의거, 치하포 사건
1. 치하포 단독 의거
드디어 죽을 작정을 하고 나니, 백 가지 계책이 줄지어 떠올랐다. p69

“누구든지 이 왜놈을 위해 내게 덤벼드는 자는 모두 죽이리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금 내 발에 밟혔던 왜놈이 칼날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그놈의 옆구리를 차서 거꾸러뜨리고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 칼로 왜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피가 샘솟듯 마당에 흘러넘쳤다. 나는 손으로 그놈의 피를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p70

써니: 나는 솔직히 이러한 장면의 김구를 보면서 그의 애국심보다 그의 방법론을 생각해 보게 되는데, 이 장면을 대하면서 김구가 이승만과의 막판까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된 이유가 이러한 모습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이 부분에서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미국은 두 사람을 다 견주며 조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대로 이어진 양반집 자손이었고 체계적이라 할 수 있는 체득된 가르침과 교육을 받아왔으며 인텔리전트 한 반면. 그러니까 간판으로 내세울 때 험이 적고 무난하다고 할 수 있었던 반면에, 게다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민족주의 프롤레타리아 등을 내세우며 공산주의를 표방할 때, 분명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였고 그러한 일은 옳은 일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러한 맥락과 일들로 인해 미국의 신임과 지원을 요긴하게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김구나 이승만이나 크게 차이가 없는 우여곡절의 고통을 받고 세상을 떠난 점은 대동소이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에서 김구의 애국심보다 이승만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열정보다 통제의 힘, 지혜의 힘과 냉철한 판단력이 절실했던 시기요, 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바람직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구는 아쉬움을 남기는 헌신적 영웅이었을지 모르지만 민족의 역사를 우리의 삶의 양식으로 바꾸지는 못했고, 그의 웅지를 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다고 생각이 된다. 더욱이 세계정세는 프로레타리아적 이데올르기가 지배적일 시기에 미국 하나만 바라보며, 경우에 따라 철저히 미국적인 사람이었다는 재야인사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에 대한 가치는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 점에서 김구는 이러한 정신이 전혀 없었다. 민족이 하나로 뭉쳐지길 원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민족이 어디로 가든지 그것의 방향은 전혀 상관하지 않은 점, 아니 상관하였더라도 너무 고집스럽게 하나의 민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우왕좌왕 한 점은 김구의 결함적 판단 미숙이라는 생각을 한다. 너무 가혹한가. 끝내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다 꿩도 매도 다 놓치고 낙동강의 오리알이 되어 이 민족과 이 나라에 당신이 애쓴 보람을 찾지 못하고 비운 행사하고 만 점은 안타깝기 그지없음과 함께 과단성 부족과, 상황에 비해 그의 욕심이 너무 컸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 목표와 시점을 잡지 못하고 우유부단 했거나 미련했다고 하면 너무 욕이 되려나.

미국이 우리나라를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는 일종의 또 다른 신탁 통치와도 같은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때 김구같이 저돌적 밀어붙이기식의 부르도자형이 아닌 고급스런 이미지의 이승만으로 하여금 자유민주주의 체계를 신봉하게 하기에는 오히려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즉 이승만은 김구와 같은 괴성이 없어 보인다. 이승만은 합리적이고 신사적인 이미지요, 타협과 대화형이었다면, 김구는 너무나 과단성적 성향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어머니의 꿈에서 김구의 태몽이 잘 익은 반질반질한 갈색의 밤이 아니라 파란 밤이었던 것도 특이한 큰 인물 인 것은 상징적으로 나타났지만, 애석하게도 결실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 열매가 파란색이었던 점이 설익은, 따라서 결과를 보지 못하고 그토록 민족의 숙원을 가슴에 안은 채, 아직도 이승과 저승 사이의 구천에서 떠돌며 원통하고 절통하고도 애석한 한을 남기고 통탄 속에 있을 것만 같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민족이 하나로 건전한 사회민주주의로 아주 진실하고 세련되게, 자크아탈리가 그의 저서 <인간적인 길>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사회민주주의 로서 최대한 합리적 건전한 목표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프랑스보다 우월하게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절묘하게 조화된 그러면서 아주 건설적인 시대적 사명에 부응하는 COREANITY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정서와 신문화운동으로 거듭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간절히 바래보는 바다.

반세기를 넘게 이제는 부모형제의 혈연적 끈마저 다 별 의미 없게 사라져버리고만 이 때(이산가족의 나이가 벌써 이제 얼마인가? 60년이 가까워 오지 않는가) 이제 만나서 무슨 의미가 크게 있겠는가, 한 번 보고 싶은 것이지, 살기 바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즉 남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조선족이라고 하면서 그의 뇌리에 대국사상 운운하며 중국에 더 큰 의미를 두고 그곳 국민화 되어 대한민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조국을 살리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조국에 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이민지, 새로운 유목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민족 고유성은 점점 세력을 잃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여하간의 역사적 의미 때문에 자신들의 발목이나 의식에 족쇄가 채워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국식 교육을 오래 동안 받아오면서 우리는 전통성보다 합리성을 더 따지게 되었고, 민족주의보다 개인주의에 익숙해지는 교육에 길들여져 왔다. 즉 우리의 사고와 문화가 편하게 찾는 것은 뿌리를 찾기보다 익숙하고 편한 나를 반기는 문화일 뿐이다. 심지어 ‘미제라면 똥도 좋다’ 는 말을 만들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우리가 달려들어 생성해간 문화이다.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왜? 살기위해 또한 그것밖에는 보이는 것도, 배울 것도,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 온 탓이리라.

이제 이러한 복잡성과 다단한 사회의 현상과 더불어 우리 대한민국이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재 고찰하고 명실공히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거듭 나아가우리의 민족성과 문화의 꽃을 피워 동방의 빛, 아름다운 아침의 나라의 명성을 획득하고, 보다 이 민족의 정통성과 꿈과 노력의 단결된 의지와 철학으로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우기를 바란다. 하여 보다 나은 개념의 COREANITY 의 창조적 창의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며, 그러한 진보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위해 진정으로 합일된 노력을 기울여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바이다.

2. 첫 번째 투옥, 인천으로 이감
강화도를 지날 때쯤, 순검들이 마음 놓고 잠든 사이에 어머님이 조용히 입안엣 말씀으로, “네가 이제 왜놈 손에 죽을 터이니, 차라리 맑고 맑은 이 물에 나와 같이 죽어서 귀신이라도 함께 다니자.” 고 하시며 내 손을 끌고 뱃전으로 나가셨다. “어머님은 자식이 이번에 죽을 줄 아십니까? 결코 죽지 않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죽였으니 하늘이 도우실 테지요. 분명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그저 위안하는 말로 들으시고 다시 내 손을 잡아 끄셨다. 자식의 말을 왜 안 믿으시냐고 한 번 더 간곡하게 말씀드리자 그제야 투신할 결심을 버리고 말씀하셨다.
“너의 아버님과도 약속하였다. 네가 죽는 날이면 우리 둘도 같이 죽자고.”
어머님은 그때부터 내가 죽지 않을 거라 한 말을 어느 정도 믿으셨던 모양이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비비시면서 알아듣지 못할 낮은 음성으로 축원을 하셨다. p76

써니: 뭐라고 하셨을까? 김구의 어머니는 남다른 분이셨다고 하니 축원도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이왕 죽기를 기를 쓰고 하는 일이라면 제대로 일을 성사하라고 염원하였을 것 같다. 즉, 죽으려면 아예 여기에서 지금 같이 빠져죽고 그러니까 포기해 버리고, 끝까지 가볼 양이면 예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죽기를 무릅쓰고 철저하게 제대로 일을 도모하며 목숨을 아껴라. 즉,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람이 되어라 하였을 법하다. ‘그저 천지신명께서 도우사 백범으로 하여금 이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장부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굽어 살펴주옵소서.’ 하였을 것이고 절대 가볍게 죽을 생각 말고 세상의 주인공이 되라고 빌었을 것 같다.

왜냐면 사실상 부모는 누가 뭐라 하여도 자신의 자식에 대하여 잘 알며, 자식보다 더 큰 꿈과 포부를 더 먼저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구원들의 부모님 들을 인터뷰해도 아마도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 내 자식이니까 내가 야단 치고 하지만은 내 자식은 당신들의 꿈이요 이상이며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은 어떠한 현실적 제약도 뛰어넘는 대단한 혹은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테면 변.경.연이 있어 내 자식이 있다기보다 오히려 변.경.연을 빛내는 내 자식이라고 알고 그렇게 염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자식에 대한 평가를 그르게 하고 있다기보다 그렇게 대단한 자식의 자리를 지켜나가기 바라는 간절한 염원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식들도 그러한 부모님의 염원을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일상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결코 쉽지 않은 이 과정을 달게 받는 것이리라. 그래서 어쩌면 진정한 삼위일체로 나아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승님과 당사자와 가족의 염원이 오로지 같은 한 방향으로 오롯하게 일체성을 띠우며.

써니: 김구선생께서는 어머니께서 뭐라고 축원하셨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김구: 저의 가장 큰 힘의 근원은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사실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난관들이 많았지만 실제로 어머님이 제 마음속에서 저를 진두지휘하고 계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머님은 저를 위하여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든지 초개와도 같이 버리며 자식인 나를 걱정하신다는 것은 조금의 의심의 여지도 없는 것이지요. 차라리 어머니의 간절함이 저의 실체요, 저를 이끄는 원동력이며 저의 가장 큰 안전이었던 것임을, 특히 곤란의 매순간마다에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자식노릇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것을 어머니께서 대신 짐 져 주시고 나의 형편이나 상황을 설명들일 필요조차 없이 신앙 같은 믿음, 곧 어머니가 나고 내가 어머니여서 때로 어떨 때에는 저 자신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스승보다, 나 자신보다 먼저, 더 깊이 내 속에 들어앉아 계셨고,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는 핵심으로 자식을 갈파하고 계시다는 것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써니: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그러한 힘의 원동력에 대해 김구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김구: 그러게요. 그것이 저를 탄복하게 하는 부분이요, 불가사의한 일심一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믿어 주시는 것이지요. 사실 남자들은 내 자식이라 하여도 몇 년씩 만나지 않고 살다가 부쩍 커버린 자식을 대하면 낯선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정은 그러한 것 같지가 않아요.

써니: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0달 동안 함께 탯줄을 이어 서로의 살과 피가 섞여 둥지를 튼 동안의 10달이 세상의 100년과도 맞먹는 기간은 아닐까 하고요. 저는 한국인인데다가 핏줄에 대한 집착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러나 입양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던 사람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만- 그 시간이 결코 간과할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씨앗을 키워낸 발아에서 출생으로 나오기까지의 일체의 모든 나로부터 너와 나 혹은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우리가 형성된 공동운명체가 싹텄고, 그 끈끈함이야말로 우주의 진정성 혹은 정수나 혼 그런 단계의 관계가 아닐까, 한마디로 못 말리는 우리라는 개체의 원초적 동향同鄕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원적 불가사의한 고향故鄕이라고 할까요.

초아선생님은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자못 궁금합니다. 성경이나 불가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에 대해서 또는 그 존귀함에 대해서나 희생에 대해 여러 가지로 풀이한 것이 많이 있는데, 주역에서는 그 인연의 고리를 어떻게 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꼭 여쭈어 보아야겠습니다. 저가 아는 역술인 선생 한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2세 때에 당신의 어머니와 헤어졌더랍니다. 그리고 장성하여 어머니를 찾기 위해 수소문 끝에 외가에 가서 사람을 부르니 이모가 대답을 하는데, 그 첫 대답에서 정말 그 어렸을 때 들은 어머니의 목소리와 똑같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고 합니다. 저가 철없을 때 스치며 들은 이야기라 더 이상의 대화가 이어지지는 않았고, 지금은 그분과의 관계가 끊겨서 어디에 사시는지 알 수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만, 정말 두 살 때 헤어진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 나시더냐는 나의 질문에 “천륜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더라.” 하였던 기억만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아, 여기가 맞구나. 제대로 찾았구나.” 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마음들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소 차이야 있을 테지만 근본적으로 일반성은 그러한 경향을 띠는 것 같습니다.

4. 신지식을 접하고 교수형을 면하다
감옥에 있는 동안 나는 무엇보다 책 읽기에 힘썼다. 아버님이『대학』大學 한 질을 사 넣어 주셨으므로 매일 그것을 읽고 외웠고, 또한 신서적新書籍도 많이 읽었다. p85

어머님도 그날 밤 감리서의 전갈을 받고서야 비로소 이 일을 알게 되셨다. 이 일로 인해 누구보다도 어머님이 당신 아들을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셨다. p91
써니: 그랬을 것이다. 누구보다 정확하고 큰 꿈을 자식만큼이나 바라지만,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언제나 물가의 어린아이라. 김구선생의 웅지는 아마도 어머니의 담대함에서나 고집스런 의로움 등에 잘 나타나고, 정녕 참을 수 없는 지성으로 아들의 성취를 바라는 욕심에서 더 굳건해 졌을 것이다. 우리에게 나를 진정으로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의 기도라도 있다면 그리고 그 일상들이 늘 체화되어 있는 한, 우리는 결코 함부로 살 수 없게 된다. 자칫 길을 잃었다가도 돌아올 수 있는 힘을 받거나 찾아내게 되는 것이리라.

5. 탈옥, 조롱박을 박차고 나가다.

조롱을 박차고 나가야 진실로 좋은 새요
그물을 떨치고 나가야 예사 물고기가 아니리.
나라에 대한 충도 부모에 대한 효에서 비롯되니
그대여, 자식 기다리는 어머님을 생각하소서. p94

‘그렇지 않다. 사람이 현인군자에게 죄를 지어도 부끄러운 마음 견디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저들처럼 더러운 죄인에게 죄를 짓고서야 어찌 죽을 때까지 그 부끄러움을 견디랴?’ p99
써니: 사람을 보면 도와주어도 의리를 저버릴 사람을 알면서도 돕거나 편의를 봐주어야 할 때가 있다. 내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살이를 하면서 일을 하고 살다보면 그렇게 얽힐 수가 있고, 그런 사람과도 약속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에서 조덕근은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인 김구에게 등을 돌려 저버린다. 볼 장 다 보았다는 그를 왜놈은 때려죽여 난도질 하였다는 김구가 앙갚음을 하였다고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성질에 그냥 내버려 뒀을까? 가소롭지만 버르장머리는 고쳐 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어딜 감히... 더러운 놈. 퇴 퇴 퇴.
나는 조덕근 따위의 치사한 인간들을 보면 열이 절로 받친다. 쓰레기더미에 콱 처박아서 살이 섞어가게 만들어 버리고 싶다. 너무 심했나? 아니다.

* 돌아가신 외삼촌께서 어머님께 늘 말씀하셨다는 가르침 한마디가 떠오른다.
“세상 사람들 누구하고도 절대로 적을 지지 마라(원한을 사지 마라).” 언제나 이르셨단다.
외삼촌은 학식이 높으셨고 왜정시대 면장까지 하셨으며 반듯한 분이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오라버니였던 큰 외삼촌을 늘 그렇게 기억하고 계셨다.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었는데 시절을 잘못 만나서 자신의 웅지를 다 펴시지 못하여 안타까우시다 하셨다. 그래도 워낙에 강건하여 생전까지는 가업을 지키셨지만 그의 후손들은 그만 못 한 것이 늘 애달프신 모양이다.

나는 아직도 강건함과 유한 처세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하다. 심층적 분석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 개인의 역사 이전의 가족의 역사에서 비롯함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가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기 이전에 나 자신에게 미흡함부터 다스려야 할 터인데...
그래야, 덧없는 한 세상 미련과 회한보다 즐거운 한바탕의 놀이와 차라리 신선으로(?) 살다 갈 수 있으련만. 후련하고도 홀연하게...

망자亡者와의 대화: 외삼촌! 저는요, 그래서 늘 잘 살고 싶었어요. 내가 정당한 것을 부탁해도 상대는 그 마땅한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마치 기업주가 자기 기업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추진함에 있어 직원이 아이디어를 올리면 그것을 승낙하는 조건으로 다른 사적인 부탁을 해오거나, 은근 슬쩍 더 많은 업무를 마치 칭찬이나 상으로 내리는 듯 할 경우 등이 있지요. 그럴 경우 마지못해 그 덤터기까지도 껴안아야 하는 경우가 일을 하다보면 비일비재하게 많아요. 그런 치사스러운 경우를 당하기 싫어서 저는 정말이지 얼른, 하루라도 빨리 잘 살고 싶었어요. 것만 보면 욕심이라 할 만 하지요. 그러나 저는 참말로 이것은 욕심이 아니라, 경우 바르고 정당함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 목소리가 수용되게 하는 방법은 어떻게 해서라도 내 위치는 기를 쓰고 확보해야만 한다는 강박과 일시적 부적응을 바람직하게 합리화하는 적응, 그리하여 마침내 창조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길까지의 과정이 저는 꼭 필요하다고 봐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짜로 남의 노고에 편승하려는 행동 등을 저는 바람직하게 보지 않아요. 그런데 저의 이런 관점을 편협하게 보는 경우도 있고, 저 자신도 어디까지 수용하고 확대해야 할지 부담과 고민을 지니고 있어요. 그럴 때 마다 과제와 관련하여서는 사부님의 이런 말씀이 자꾸 떠오르곤 하지요. “저자조사를 철저히 하라. 글과 사람이 다른 경우가 많아 잘못 하면 속아 넘어갈 수가 있다.” 물론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야 엄선한 경우이니까 그럴 염려는 없지만요.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문제에 봉착할 때가 너무 많지요.
몸 따로 마음 따로 이듯 주장과 행실이 이어지지 않는 부조화로 인해 당혹감을 가지게 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독서와 경험과 스승을 통해 배우고 탐색함을 끊이지 않아야 하는 거겠지요. 저의 늦바람, 좀 더 빨리 날 걸 그랬나 봐요. 동의하시죠, 이삼촌? 히히힛.

남을 넘겨주기는 쉬웠으나 혼자서 한 길 반이 넘는 담을 넘기는 어려웠다. 상황이 급하지 않으면 줄사다리로라도 넘어 보겠는데, 벌써 옥문 여는 소리가 나고 감방 죄수들도 떠들기 시작했으므로 그럴 겨를이 없었다. 나는 약 한 길쯤 되는 몽둥이를 가져와 몸을 솟구쳐 담 꼭대기를 손으로 잡고 내리뛰었다. 누구든지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결단을 내버릴 마음으로 쇠창을 손에 잡고 정문으로 바로 나갔다. 정문을 지키던 파수 순검도 비상소집에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p99

써니: 경우에 따라서는 장대높이뛰기선수도 되는 김구선생을 본다.
정말 공감이 가는 하나, 우리가 힘이 넘쳐서 남을 돕거나 집안의 가장은 다 강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젊은 시절 데이트할 때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출장 가거나 하면 어린 자신에게 당신의 아내이자 그의 어머니를 부탁하고 가곤 했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비록 나이어린 철부지 소년에 불과했지만 아버지의 그 말씀에 힘을 입어 어머니를 지켜드려야 하는 어른으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그는 비록 평균보다 작은 체구였지만 나름대로 세상을 강하게 떠받치며 남아로서 자신의 웅지를 펴가며 살아갈 만 해 보였다.

실제로 나는 이러한 걱정을 몸소 체험한 경험이 있는데 새언니가 시집와서 식구들이 집에 없으면 무섭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런 언니를 위로하고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언니보다 10살 어린 내가 더 용감해 졌던 것 같고, 물론 나도 혼자 있으면 무서웠을 테지만 나를 믿고 의지하는 상대방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에 나의 두려움은 용맹스러움으로까지 나타나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도 대부분의 가장이 그러할 것이며, 대부분의 맏이들이 이러한 상황에 길들어 지고 훈련되다보니 정말로 든든하고 위엄을 갖게 되는 것이란 것을 알았었다. 실제로 두려움과 아무러한 상관이 없는 갓난아이에게서 조차 그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일념하에 도리어 그를 통해 내가 담대하고 현명해 지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그래서 사람은 사람 틈에서 어울려 살면서 이러한 일상의 영감들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이순신과 대화
써니: 실제로 장군은 어떠하시더이까. 장군의 능수능란한 전술과 전략의 백발백중 이더이까 책임의식과 사명감이더이까?
이순신장군: 나를 믿고 의지하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용맹하고 강건해 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만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두려움과 분노와 부적응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리워하다보면 해소되어 새로운 힘과 의지, 재충전이 될 수밖에 없질 않았겠습니까. 군사들의 다급함이나 어려움을 보면 즉, 나라의 위태로움에 맞닥뜨리게 되면 찰나의 거침도 없이 어머니의 형상이나 부하들의 걱정이 일순간에 오버랩되어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위급상황을 부하의 얼굴에서 전해 듣거나 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스위치가 눌러져 내 어머니의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오로지 이 난국을 구해야만 하는 방도 외에 떠오르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그 잠재적인 보이지 않는 영상에 어머니의 기뻐하실 모습과 촛불 같은 기도가 내 온몸을 통해 뻗어 나와 몰입하게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써니: 네, 그러하시군요. 저도 그것이 장군이 여성성을 승화한 진정한 남성의 승리라고 여겨지는 부분이랍니다. 그 관통하는 듯한 직렬, 수직의 혹은 분리란 있을 수 없는 일체의 합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완전한 무아無我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유행하는 마음공부나 불교교리를 그래서 더 해보고 싶기도 하답니다.^^ 아, 연구원 선배 도명수님이 말하는 정념正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써니: 안 그렇습니까. 도선배님?
도명수선배: 하여간, 써니님의 발상이란? 더 공부해서 알려줄게요. 그러나 나빠 보이지는 않는 것 같군요. 부지깽이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부지깽이님: 너한테 물어봤는데 왜 나한테 돌리냐?
모두들: 하하하. 호호호. 크크크. 히히히~

제4장 5년간의 방랑과 모색
1. 동지를 찾아서
약간의 노자를 얻어 가지고 은진 강경포의 공종렬孔鍾烈 집으 찾아 갔다. ....... 휴양하며 며칠 지내던 어느 날 밤, ........ “형이 매우 놀랐을 터이니 미안하오. 형과 나 사이에 무슨 숨기고 가릴 일이 있겠소. 내 누님 한분이 과부로 수절하다가 하인놈과 간통하여 얼마 전 아이를 낳고 죽고 말았소. ........ 그런데 그놈이 천주학을 하여 신부의 힘을 믿고 내 집 곁에 유모를 두어 수치를 끼치는 것 아니겠소. 형이 나가서 호령하여 그놈이 멀리 달아나도록 하여 주오.” 어디로 보든지 그만한 청을 안 들어주지 못할 처지였다. ........ “네가 이 댁에서 길러 준 은혜를 생각한들 주인을 그다지 무시할 수 있느냐?” “나리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러자 공종열이 그자를 다그쳤다. “네가 오늘 밤으로 네 자식을 내다 버리고 이 지방을 떠날 터이냐?” 그자는 “예, 예” 대답하고 물러났다. ........ 강경포를 채 벗어나기 전, 사람들이 길에서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지난 새벽 갯가에서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됐으니 아마도 아이다 죽은 것이라고 야단들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천지가 아득하였다.
‘오늘 살인을 하고 가는구나. 그자가 밤에 내 얼굴을 대하면서 심히 무서워하더니 제 자식을 안아다가 강변에 버리고 도망한 것 아닌가?’ 가뜩이나 울적한데다 아무 죄 없는 아이를 죽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큰 죄악인가. 소개받은 무주 진씨 집으로 갔으나 구구하게 오래 머물러 있으려니 우울한 마음만 더 쌓여 갔다.
드디어 무전여행을 떠났다. p106

2. 고기 먹고 시를 짓는 장발의 걸시승乞詩僧
중이 되려면 제일 먼저 자기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고 한다. p112

나를 위해 재산을 다 탕진하고 자기 몸까지 망친 김주경의 소식도 알고 싶었고, 해주 비동 고능선 선생이나 청계동 안진사도 만나고 싶었다. 나는 안진사가 천주학 하려는 것에 불만을 품은 채 청계동을 떠났었는데, 다시 만나면 지난날의 오해를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 때마다 가슴을 채웠다. 그러니 보경대사의 재산이나 보고 절에 계속 붙어 있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하루는 보경대사께 이런 말을 했다.
“소승이 이왕 중이 된 이상, 응당 해야 할 공부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금강산으로 가서 경전을 연구하고 충실한 불자가 되겠습니다.”
“내가 벌써 추측은 하고 있었다. 네 원이 그런데 어쩔 수 있느냐.”
즉시 하은당을 불러서 한참 다투더니, 나에게 가사와 바리때, 백미 열 말을 내주었다. 나는 그날부터 자유였다. 백미를 팔아서 여비를 마련하고 경성으로 출발하였다. p114

써니: 참으로 능청맞은 김구선생과 보경대사의 지혜로운 대화 이다. 이런 장면을 보면 절묘해서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세상을 살면서 설명할 필요 없이 이런 사람들과 이야기 하며 살 수 있다면 그 아니 무릉도원이랴. 서로는 상대를 안다. 그리고 그 때를 기다린다. 머무를 때, 가야할 때, 보내야 할 때 등,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 대화 또한 멋지지 않은가. 서로를 존대하며 자신의 입장을 떳떳이 밝히는 그리고 그것은 거짓이 아닌 예후임을 그 대답 또한 맞장구가 아닌 진실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담담함임을...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자연에 순명하는 삶 아닐까? 덧없음이 아니라 이런 모습은 신선으로 살다가 대각하는 삶일 지어다.

승복을 입은 채 드러내 놓고 고기를 먹었고, 염불하는 대신 시를 외웠다. 종종 평양성에 가서 최재학 등 시객들과 어울려 시를 짓고, 밤에는 대동문 옆에 가서 면을 먹었다. 처음에는 소면만을 먹다가 나중에는 고기가 들어 있는 육면을 그대로 먹었다. “손에는 돼지머리를 들고, 입으로는 거룩하게 경전을 외는 꼴”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지은 시가 평양 기생들의 노래 곡조로 불렸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평양에서는 나를 ‘걸시승乞詩僧 원종圓宗’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p117

써니: 어찌 보면 김구는 상당히 자유분방한 정신의 소유자이며, 사실 일지逸志를 읽다보면 약간의 해명스러운 부분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자신은 중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던가, 아니면 이러한 행동들에 대한 무마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는 이러한 부분들은 김구사망 이후에 덧붙여진 이야기로 독자로 하여금 낭만적 흥미를 돋우는 부분들이 아닐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실대로라면 아무리 시대를(1947년) 감안하더라도 이대로 임시정부의 수장으로서 후에 대통령에 나오기는 내용이 너무 엽기적이지 않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영웅의 특별한 면모라기보다는 도덕성에 오히려 도움을 주지 못했을 성 싶기도 하다.

3. 뜻이 있으면 어디서든 만나지 못하리.
“뱀의 꼬리를 붙잡고 올라가면 용의 머리를 볼 터이지요.” p123

4. 스승, 아버님, 미혼처와 영원히 이별하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먼저 그 나라 사람들과 제도에 오랑캐의 행실이 있으면 오랑캐로, 사람의 행실이 있으면 사람으로 대우함이 옳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탐관오리들이 사람의 얼굴을 가졌으나 짐승의 행실이 많으니, 이것은 참으로 오랑캐의 소행입니다. 또 지금은 임금이 스스로 벼슬 값을 매겨 팔고 있으니, 그것은 오랑캐 임금의 소행입니다. 내 나라 오랑캐도 배척을 못하면서 어찌 남의 나라 오랑캐를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저 대양 건너 각 나라에는 제법 국가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고 문명도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공자ㆍ맹자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지만, 그 이상으로 발달된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계속 오랑캐라고 배척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 소견에는 오히려 오랑캐에게서 배울 것이 많고, 공맹에게서는 버릴 것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p126

써니: 실제적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논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이 상놈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그의 진보된 성향을 미리 깨우쳐 단계적으로 밟아 나갈 수 있었을 것이요, 그토록 험하게 밑바닥에서 몸으로 때우는 식의 처절한 인생을 격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부모의 신분이 자식에게까지 미치고,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상황 하에서 개인의 애절한 고통과 웅지가 안타깝기 그지없으나, 역사적으로나 개인사적으로나 그것만이 신께서 허락한 가호임을 어쩌랴. 그러나 김구선생이 그토록 주장했던 바와 같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비전은 교육 백년대계로 말미암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지식인들의 능동적 현실참여만이 보다 나은, 보다 적합하며 지혜로운 미래를 열어가게 할 것임이요, 지식인들의 개인주의나 이기적 무사안일을 그래서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머리를 천 길이나 길러서 크고 훌륭한 상투를 얹는다 치더라도 왜놈이나 양놈이 그 상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지금 이 나라의 상류층은 백성을 학대하는 약탈자에 불과합니다. 백성들은 일자무식이라 탐관오리와 토호의 학대를 당연하게 알고 있습니다. 만약 탐관오리와 토호들이 자기 백성을 학대함같이 왜와 서양을 학대한다면, 왜와 서양은 멸종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의 피를 빨아 왜놈과 양놈에게 바치고 아첨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문명국의 교육제도를 본받아 학교를 세우고 자녀들을 교육하여 건전한 2세로 길러야 합니다. 또 애국지사들을 규합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나라 잃은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나라가 발전하는 복이 어떤 것인지 알도록 해야 합니다.“ p127

상놈의 딸은 고사하고 정승의 딸이라도 재물을 따지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p129
써니: 저토록 가정을 돌볼 줄 모른다면 왕의 자손이라 하여도 결혼하지 않으리라. 김구선생은 너무나도 커다란 웅지를 품었기에 사실 이러한 사람들은 혼자서 사는 것이 더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제야 역사에 길이 남아 그렇지 그런 뜻만을 품고 비명횡사하거나 자식만 줄줄이 낳아놓고 천지를 떠돌아다닐 그러한 사람에게 뉘라서 딸을 주고, 뉘라서 정을 줄 수 있으랴.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어머니 품과도 같은 여인의 희생과 헌신으로 아름다운 꽃과 흔적을 남기나니...

“자네 뜻에 맞는 처녀란 어떤 처녀인가?”
“첫째 재산을 따지지 않는다, 둘째 학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직접 만나보고 마음이 맞으면 결혼한다, 이렇습니다.” p130

제5장 새로운 교육사상, 새로운 교육
1. 근대적 교육 사업에 투신한다.
아무리 사정이 급하여도 민중이 깨닫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당시 민중의 애국사상은 얕기만 하였다. 경성에 모인 동지들은, 신교육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나도 황해도 장련 사직동으로 돌아와 다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였다. p138

3.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그러면 언제부터 공대를 하오리까?”
“잘못인 줄 아는 사간부터니라.” p142

제6장 일제의 모진 감옥에서 백범白凡이 되다.
1. 세 번째 투옥, 고문에서 얻은 교훈
“드센 바람에 억센 풀을 알고, 나라가 어지러운 때 참된 신하를 안다.”고 한 옛 가르침과, 죽어도 꺾이지 않았다는 사육신과 삼학사에 대해 가르쳐 주신 고능선 선생의 말씀을 다시금 생각하였다. p156

왜놈이 신문하는 방법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가혹한 고문이다.
둘째, 굶기는 것이다.
셋째, 온화하게 우대하는 방법이다. 아카시 방에서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점잖게 공경하여 대우하면, 가혹한 고문을 참아 낸 자도 더러 그 자리에서 실토하곤 했다.
나도 신체적인 고문은 한두 번 참아 보았고, 제 놈들이 발악할 때면 저절로 감정이 생겨 저항하며 인내했지만, 굶기는 고문과 우대하는 고문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p162

써니: 만일 이승만 선생이라면 어떠했을까. 물론 그도 7년여 간 옥살이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김구의 예와는 달리 관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 찾아보아야 하겠지만 고문도 절대 아무나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렇기에 각자에 맞는 독립운동과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김구선생의 방법은 너무 직접적이고 생고생하면서 무식한 방법으로 나아가지 않았던가 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날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민중의 봉기와도 같은 노동자 농민에게 인식될 수 있는 밑바닥에서의, 가장 서민적인 정신에 입각한 실제적 얼과 정신의 태동과 정신적 지주 혹은 철학의 끈으로서의 연결이었다는 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 듯 전문가적 지식을 갖추고 일상에서 체화되어 절연되지 않는 영감으로 다가서는, 무엇보다 일반 대중과 민족의 혼과 힘을 이끄는 스승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점이 역사가 증거하고 국민이 인지해야할 대단한 인물이라는 평을 아낌없이 찬사하기에 이르는 점이리라.

매일 아침저녁 음식냄새를 맡을 때면, 나도 남에게 해가 될 말이라도 해서 밥을 받아먹을까, 또 아내가 젊으니 몸이라도 팔아서 좋은 음식을 해다 주면 좋겠다는 더러운 생각도 들었다. p163
써니: 나는 이 대목이 허벅지 살을 베어 아버님께 고기로 구워드렸다는 장면보다 훨씬 인간적인 모습이요, 실제적 생각이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영화 <묵공>을 보고난 연후에 <흑수선>도 보려하였으나 비디오 가게에 DVD가 없어 간 김에 외화 <대통령의 음모>라고 하는 닉슨의 워터게이트사건을 다룬 영화를 대신보고 왔다.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일에 건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이 사건을 밝혀내는 기자들(더스틴호프만과 로버트레드포드 주연)의 자세란 “비결은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라는.

지난 <사량도 여행>에서 사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생에서 두려워 할 것이란 별로 없다.” 귀자와 나눈 이야기를 귀동냥 하였는데 사실 그다지 두려워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그것에 변화를 이루는 단초가 있음이 얼핏 느껴졌다.
나는 최근 10년간 혼자 모든 일을 주관해 오면서 아니 헤어짐을 선택하면서 인생을 참 많이 두려워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도저히 혼자서 풀어낼 수 없는, 그렇다고 참고 견딜 수도 없는 절박함에 참 많이 겁먹고 속이 탔으며 힘들었던가 보다. 이제 이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의식을 되찾고, 참 나를 살아보고픈 소망이 있다. 더 늦기 전 아직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때에, 한 살이라도 더 먼저, 하루라도 더 빨리...

제7장 전격적인 망명과 상해 임시정부
2. 농장 감독으로 뜻을 숨기고
• 도박하는 소작인에게는 소작권을 허락하지 않음.
• 학령 아동을 입학시키는 자는 현 소작지에 좋은 논 두 마지기씩을 더해 줌.
• 학령 아동을 입학시키지 않는 자는 현 소작지 중 좋은 논 두 마지기를 회수함.
• 농업에 근실한 성적이 있는 자는 추수 때 곡물로 상을 줌. p196

써니: 당시 그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이토록 교육의 백년대계에 힘썼거늘, 오늘날 통치자들은 도대체 민족의 사명과 우리 대한민국의 사활을 어디에 두고 정치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4년이고 5년이고 죄다 한몫 챙겨 수하들과 작당하여 한바탕 한풀이나 하고나면 그 뿐, 어찌 최고 자리에 있던 자들이 국민에 앞선 안위를 천년만년 누리며 살려하는지 그 정신과 혼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야 말로 김구선생께서 말씀하시는 오랑캐짓거리 일 것이다. 그러한 높고 위대한 자리에 머물면서 하는 일이 고작...
일개 써니의 생각만도 못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누가 나 좀 안 시켜주나, 최고 좋은 옷과 맵시내는 것 정도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비록 나라고 하여도 창피할 것 같은데... 예전처럼 혼자 살신성인해서 대한민국을 통치해 달라 감히 바라지는 않겠다. 아니 그런 요굴랑은 할 의사도 전혀 없다. 제발 국민이 사랑하는 마음의 5천만분의 일이라도 안다면 얼마든지 지금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건설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렇습니까?

6. 혈혈단신이 되어 육십 평생을 돌아보니
대게 사람이 귀하면 궁함이 없고 궁하면 귀함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직위가 올라가 귀해져도 궁하고, 궁해도 궁한 일생을 지냈다. 나라가 독립하면 삼천리강산이 다 내 것이 될지 모르겠으나, 하늘 아래 넓고 큰 지구에 한 치의 땅도, 반 칸의 집도 내 소유가 없다. 옛날 중국의 한유韓愈는 가난 귀신을 쫒아 버리려고「송궁문」送窮文을 지었다지만, 나는 차라리 가난을 벗하며 사는「우궁문」友窮文을 짓고 싶다. p217

자식들에게 아비 된 의무를 못하였으므로 너희들이 자식 된 의무를 해 주기도 원치 않는다. 다만 너희들은 이 사회의 은혜로 먹고 입고 배우고 있으니, 스스로 사회의 아들이라는 마음을 갖고, 사회를 부모처럼 섬기면 이상 만족이 없을 것이다. p218

써니: 여기에서 분명하게 하나 배운다. 나는 내 일생의 어떤 조화로 인해 더 극명하게는 나의 어설픈 삶의 자세로 인해 내 자녀에게 일반적 사랑을 주지 못하는 어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늘 죄인 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가 이 과정에서 김구선생을 배알하고 배우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나 개인의 써니의 자궁에 집착할 이유 없이, 이 나라 이 사회의 일원임을 먼발치에서나마 기도하고 깨우쳐 줘야하겠다는 새로운 자각이다. 사사로움에 너무 오래 깊이 집착하여 나는 나를 많이 잃어왔다. 물론 사람 된 그릇이 그것 밖에는 되지 못하였음을 스스로 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감히 희망을 가져 본다.

적어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훨씬 나은 삶을 선택하여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며 그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지해 나가려 딴엔 애쓰고 있는 참이다. 능력이 부족해서 그 걸음이 더디나 무엇을 탓하고 무엇을 부러워하랴. 나의 개인사와 현재를 알고 이제라도 씻김의 굿을 한바탕 치른 연후에 한사람의 인생, 한 모양의 삶을 가꾸고 만들어 나가자. 변혁.......
혼돈의 기나긴 삶이었더라면 어쩔 번 하였더냐, 다만 이제라고 깨우침의 길에 들어선 것 그 아니 다행이랴, 이렇게나마.

나는 나석주에게 그처럼 영광스럽게 대접받은 것을 영원히 기념하고, 그간 생신을 차려드리지 못한 어머님께도 너무나 죄송하여, 죽는 날까지 생일을 기념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p218
써니: 나도 그랬다. 나는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적어도 내 생일을...
내가 어찌 생일상을 탐하겠는가. 나는 조용히 그날들을 넘기고 있다. 그렇게 살다보니 익숙해지고 다른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언젠가 직장에서 상사가 일시적으로 이벤트성 행사를 가졌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그는 내 전후사정을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직원의 가족화가 아니라, 그 자신 동기부여의 실천적 표방으로 딱 한 번을 시행하였는데 제풀에 꺾여 두 번 다시 시행되지도 않는 것이었다. 축하란 조건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감사면 족할 것이다. 그 이외에 어떠한 야심도 다 구차하며 달갑지 않다.
그래도 어머니만은 내 생일 미역국을 거르지 않으시고 아직도 끓여 주신다. 미역 줄기 한 올 한 올과 국물 한 방울 한 방울에 내 허물을 다 없애 주시고 그의 염원이 담겨 있으리라. 그 얼마나 달고 맛이 있는지 오직 감사할 뿐이다.

하권
하권을 쓰고 나서
세상은 고해苦海라더니, 살기도 어렵거니와 죽기 또한 어렵다. 자살도 자유가 있는 데서나 가능한 것이다.

칠십 평생을 돌이켜 보니, 살려고 해서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다.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p226

써니: 세상 끝 날에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허허로운 웃음이 나온다. 허허허...

제8장 대륙을 진동시킨 이봉창과 윤봉길
4. 홍구공원의 쾌거
“모험은 실제로 하는 사람에게 전권이 있는 것이오. 윤군이 무슨 일이든 하겠지요.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들어나 봅시다.” p238
써니: 모험은 실제로 하는 사람에게 전권이 있는 것이로구나. 그렇다. 내 삶의 모든 전권이 실제의 나로 인해 만들어 지는 것이로구나. 그래, 나에게 내 삶의 전권이 부여되는 것임을.

제9장 피신과 유랑 속의 민족운동
3. 여 뱃사공 주애보와 선상 생활
우리 민족의 비운은 대체로 사대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p255

어머님은 상해 안고은 군의 집에 하룻밤 묵으시고, 가흥 엄항섭군의 집으로 오셨다. 남경에서 이 소식을 듣고 나는 가흥으로 가서 어머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9년 만에 다시 만나서 어머님이 하신 첫 말씀은, “나는 지금부터 ‘너’라는 말을 고쳐 ‘자네’라 하고,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말로만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네. 듣건대 자네가 군관학교를 하면서 많은 청년을 거느리고 남의 사표師表가 된 모양이니, 나도 체면을 세워 주자는 것일세.”였다. 이로써 나는 나이 육십에 어머님이 내리시는 큰 은혜를 입었다. p261

써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드의 신가? 가 있다. 단연 그 맑고 순수함에서다.
어머니가 김구를 인정한 것은 그 바람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서 먼저 인정을 받고난 연후에서 이다. 이것은 60의 아들이 80노모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에 앞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을 통해 끝없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고 본다. 우리의 그릇된 사대주의적 유교문화는 이러한 열린 교육에 대해 터부시해온 경향이 없지 않다고 본다.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기득권과 우월한 위치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좁은 안목에 얽매일 때가 없지 않다고 본다. 내 자식이 나보다 현명하며 나보다 낫기를 바라면서도 끝내 그 지배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올가미를 씌우는 한계성과 집착, 편협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예가 더러 있다. 해서 창의성과 고유성 등이 말살되어 길들여지거나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이나 도전정신에 입각한 신문화의 창조성보다는 기존의 제한된 영역 안에서의 선택이나 성취를 강요받는 경우나, 또한 그 한가지의 예로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적 측면에서도 심심찮게 발생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기성은 새로운 것을 자신에 대한 도전이나 침략 혹은 심한 경우에는 그릇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사회 전반적 측면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어느 면 가족을 설득하였거나 그 가족에게서 신뢰를 얻었다면 성취의 반은 해결되었다고 전망할 수 있다.

어머님은 조금도 흔들리는 기색 없이 이 말씀뿐이셨다.
“자네의 생명은 상제上帝께서 보호하시는 줄 아네. 사악한 것이 옳은 것을 범하지 못하지. 허나 참으로 유감스럽네. 정탐꾼 이운환도 한인이니, 한인의 총을 맞고 산 것은 일인의 총에 죽든 것보다 못하네.”

써니: 참으로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역사에서 이러한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참 안타까운 사실이다. 글쓰기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좀 더 잘 쓰는 것이, 먼저 훈련된 것이 새로움에 대한 인식이나, 제 식구에 필요한 도움을 주기보다 상처를 주기가 더 쉬움을 경험한다. 반드시 개선되고 지양되어야할 부분이라고 본다. 어쩌면 우리에겐 누가 어떤 재능을 얼마나 빨리 기여하느냐보다 우리 자신 있는 그대로가 어떤 방식과 어울림으로 상생과 조화 또한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격려와 도움과 나눔으로 자기다움을 찾아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어떠한 것도 역사 속 깊이 오래 남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한다면 말이다. 몰라서 왔고 필요해서 배우며 절실해서 머무는 것이 먼저의 전제가 아닐까? 그놈의 제살 뜯기만은 청산되었으면 좋겠다.

제10장 전시수도 중경의 임시정부와 광복군
5. 중경 생활 7년의 회고
산처럼 쌓인 시체를 짐짝처럼 화물차에 실어 운반하였다. 차가 달리다가 흔들리면 시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는데, 다시 싣기 귀찮다고 화물차 뒤에 목을 매달고 그냥 달렸다. 화물차가 시체를 땅에 끌면서 달리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족 시체를 찾아 가는데, 어떤 곳은 집조차 타서 검은 벽돌과 재만 남은 빈터에 시체를 갖다 놓고 통곡하니, 또한 차마 귀로 들을 수 없고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p286

써니: 영화 <묵공>에서 왕자와 활쏘기를 겨룬 젊은 장군은 말한다. 그는 손목의 힘줄을 끊어 옹성을 지키고자 했을 뿐 상대의 적을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는 독백한다.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끝낼 수는 없는 건가?” 하면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연후 스스로 자결하여 덧없음을 나타낸다.
한편 묵공혁리(우덕화분)와 조나라의 장군(안성기분)의 대화도 나온다. 싸움당시 조나라 장군 안성기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라고 말하며 명분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러자 묵자 혁리(유덕화)가 말하기를 “전쟁에서 산자나 죽은 자나 다 마찬가지다.” 라고 말하니 상대편 장군 안성기가 말하기를 “전쟁에서는 산자가 승리다.”라고 말하자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당신이 살아 돌아간다고 해서 이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5000명의 희생이 살아 돌아 올 수 있는가?”라고 말함으로써 전쟁의 무의미함을 일깨운다.

한편 이 영화에서 여자장군으로 나온 아무개?는 권력을 도모하기 위해 너무나 비참하고 무모하게 희생되어가는 백성들의 입장을 지켜보다 왕에게 대드는 충신의 딸로서 사랑에 갈등하다가 목청이 제거된 채 죽어간다. 이 부분에서 물론 갈등을 하지만 남녀간의 애정에 명분마저 저버리는, 용감한 여장군으로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는 큰일은 못하고 결국에 애정행각에 한 남자의 품에 모든 것을 저버리게 되는, 용감함이라기보다 소극적 한계성을 보여주는 듯 해 아쉽다. 여자는 왜 한 남자에게 예속됨에 목을 매고야 마는 것일까? 영화를 남자가 만들고 여성을 청순가련하게 현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랬을까? 그녀가 비록 할 말은 하고 목청이 제거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해도 낭만적 유희로나 비춰짐은 영화의 맛을 감했다고 본다. 사극 전쟁영화의 한계를 들어 낸 듯해서 아쉽다. 만약에 내가 연출을 한다면 좀 더 분명한 부분에서 완전한 역할을 주고 뜻있는 장엄함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싶다. 내용이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그 적절함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불행 중 혹 행운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 방공호에 피난한 이들은 거의 모두 귀중품을 지니고 있었다. 경관의 지휘로 죽은 자의 귀중품을 모으니, 금은보석 역시 시체처럼 산을 이루었다. 사람들 중 그 귀중품으로 큰 부자가 된 자도 있다고 들었다. p286

써니: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때가 기억난다. 건물이 무너지고 아수라가 따로 없을 때, 그 가운데서도 귀중품을 훔쳐 내오는 이들이 카메라에 잡히던 생각이 난다. 전쟁 때에야 모두가 최악까지 간 상태라 어차피 산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그러할 수도 있겠지만, 건물더미에 갇히고 생사고락과 많은 소방대원들과 시민들이 밤잠을 안자고 애타게 수색에다 참상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차대기로 귀중품을 실어 나르는 장면을 접할 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궁핍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리라. 인간이라면 도리와 체면이 있는 것이니 분명히 취해야 할 것과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건물더미에 깔려 죽었을 수도 있는 자신의 처지가 다행이라는 겨를도 없이 삶이 척박하였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자동차를 대기해서 싣고 나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폭력에 가깝다. 오로지 한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는 무지는 반드시 극복되어야하는 심한 사회악이라 생각한다.

나의 소원
민족국가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貧賤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富貴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p306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되지 못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는 것은, 마치 형제도 한집에서 살기에 여려운 것과 같은 것이다. p306

철학도 변하고 정치ㆍ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p307

써니: 김구선생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였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간단하게 살아오지 못했다. 남과 북으로 대치되어 한 많은 생애를 살게 된 것이다. 그렇다. 독립은 너무나 중요했다. 하지만 내 나라가 공산주의였다면 내 삶은 피폐했을 것이고 오늘의 이 시간은 없었을 것 아닌가. 나는 공산주의라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독립보다 자유가 더 그리웠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남는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네요 내요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밀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의 희망이요 이상이다.
써니: 이 부분에서 자크 아탈리의 <인간적인 길>에서 그가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는 대안이 될까하고 떠오른다.

정치이념
모든 계급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백 년 동안 조선에서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 중에서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정치뿐만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 규정하는 독재였다. p310

자연의 변천도 변증법에 의하지 아니함은 뉴턴ㆍ아인슈타인 등 과학자들의 학설을 보아 분명하다. p310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을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할 것이다. 이래야만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 p312

써니: 이토록 위대한 사상을 갖은 선생이었거늘, 어이하여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과 같은 분단된 조국을 가슴 아파 하다가 돌아가셨으니 지하에서나마 선생의 한이 풀리지 못하였으리라. 남북이 통일 되는 그날 그대 진정으로 눈 감을 수 있고, 진정으로 살아나는 것일지어다.

나는 노자老子의 무위無爲사상을 그대로 믿는 자는 아니지만, 정치에 너무 인공을 가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개 사람이란 전지전능할 수 없고 학설이란 완전무결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한 사람의 생각, 한 학설의 원리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빠른 진보를 보이는 것 같지만, 끝내 병통이 생겨 그야말로 변증법적인 폭력의 혁명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생물에는 다 환경에 순응하여 자신을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것이다. 작은 꾀로 자주 건드리면 이익보다도 해가 많다. p312
써니: 진실로 심오한 바른 말씀이다. 여러 번 되풀이 하여 읽고 새겨야 하겠다.

백성들의 작은 의견은 이해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 미처 철학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생긴다.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p314

남의 나라의 좋은 것을 취하고 내 나라의 좋은 것을 골라서, 우리나라에 독특한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세계문명에 이바지 하는 길이다. p315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p315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적으로 인류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에게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p316

써니: 이 장면에서 영화 <묵공>이 다시 떠오른다. 여장군은 통치자들의 권력과 체제유지를 위해 애꿎은 국민들만 하염없이 희생되는 현실을 왕에게 강하게 어필하다가 마침내 목청을 잃고, 벙어리처럼 살다가 육실의 찢김을 당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녀야 말로 할 말을 하고 벙어리가 되었다.

분단된 우리 민족의 상황 또한 무엇이 다르리. 체제유지를 위해 통치자들끼리 만나 야합하고 서해교전과 같은 협박성 으름장이나 놓아가며, 나눠 먹기식 이유를 만들고, 진정으로 민중을, 대다수의 착하고 성실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가 과연 오늘날 존재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선거 때만 되면 무수한 악성루머와 상대를 헐뜯어가며 이합집산하고 이리저리로 몰려다니는 꼴이란 김구선생과 같은 선열 앞에 창피하고도 한심한 작태이거늘, 언제가 되어야 진정 국민을 위하고 나라에 헌신할 통치자들이 많이 생겨나 건전한 민주국가와 자유대한의 정당성과 세계 속의 대한민국과 동방의 빛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지 자못 염려되고 궁금하도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듯,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중오와 투쟁은 망할 징조이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봄바람이 가득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만음을 고쳐먹음으로써 가능하게 되고, 그러한 정신을 교육함으로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최고의 문호로 인류의 모범이 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우리 민족의 개개인은 이기적 개인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는 데 쓰이는 자유이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보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것이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는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 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좋아하던 인자하고 어진 덕이다. p317

써니: 따로 소감을 적을 필요가 없는 문장이다. 김구선생의 나의 소원은 오히려 60여 년 전 그때 필요했다기보다 지금, 바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통치와 이념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하겠다. 우리에게 당면한 현실에 적용하여 볼 때, 이제 선거는 예전과 달리 우리나라가 어떻게 도약하느냐의 중요한 철학적 분수령의 위치에 놓이게 할 대역사적 기틀이 될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하여야 한다.

우리는 식민통치를 벗어나 민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며 분단된 조국으로 반세기를 넘게 살아왔다. 체제의 빈곤과 악습 속에 적어도 국민만은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믿음으로 살아나왔다고 전혀 의심치 않는다. 제발 좀 깨어들 주시라, 통치자들이여! 당신들의 적은 이해에 놀아나다 세상을 하직하지 말고, 역사의 퇴보에 얇고 치졸한 증인이 되지 말고, 민족의 대역사 창조에 부끄러운 모습이 되지 말고, 우리 민족의 대동단결로서 대한민국이 동방의 빛으로 세계역사에 소임을 다해 갈 수 있도록, 보다 지혜로운 가치와 의미로 뚝심 있는 대한민국의 건설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과업을 위하여, 우리 민족과 국가와 세계역사의 앞날에 한마음 한 몸으로 나아가 죽도록 헌신함이 그 아니 옳겠는가. 하여 사육신과 삼합이 다시 살아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민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죽음으로까지 맞서가며 마다하지 않았던 선열들의 넋이 되살아나 급물결 치는 6월의 꿈 꽃 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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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6.18 12:54:55 *.99.241.60
오랜만에 누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주 좋네요.
누나~ 이런면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백범하고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여자 1순위
아울러 어머니 역할로도 잘 맞는 것 같네요.
웃찻사의 형님뉴스 분위기도 잘 어울리구요.

통치지가 통치자 다워야 통치자지..~~~

써니누나는 자신보다는
더 큰 역사속으로,
사회속으로 외치는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남선생과 백범 선생의 비교는 저한테는 어렵더라구요.
승자와 패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아요. 꼭 두분이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우남선생이 외교적인 부분을 맡고
백범선생이 민족화합과 통일 부분을 맡는다면
더 좋은 결과과 나올수 있지 않았을까?

어차피 강대국에 의하여 나누어진 나라지만 해방부터 휴전까지
약 10여년 동안을 이끌어줄 지도자가 있거나, 아님 지식인들이
이념을 극복하고 화합의 장을 만들기만 하였더라면
그런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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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18 15:22:44 *.72.153.12
써니 언니 드디어 폭발해서 나오는 구나. 책 한권 더 읽은 기분이다.

언니는 칼을 쥐면 밖으로 휘두드고 나는 안으로 휘두르는 스타일인가봐. 하하하 같이 책 읽고, 같은 영화 봤지만 할 말은 서로가 다르지. 허허허. 그래서, 언니 리뷰 열심히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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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18 17:29:04 *.70.72.121
그래요, 좋은 의견이네요. 그러나 언제나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지요. 나는 자유민주주의가 좋았기 때문에 우남을 폄하하는 듯한 기존의 저서들에 약간의 반감을 샀더랬어요. 특히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을 때- 다 못 읽었음.
소전의 제안 같은 경우가 있었더라면 정말 좋았겠지요. 그러나 과연 그러한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반문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요.

정화, 대단하네. 공연히 걱정했는데 나보다 더 빨리 올리더라고.
담부턴 열부터 받지말고 컴아저씨를 이뻐해 줘. 남자들은 사랑에 굶주린 족석(?)들이야. ㅋㅋ 에그~ 내가 그때 알았더라면... ㅎㅎㅎ 뻐덩일 때엔 무조건 달래야 해. 하긴 나도 그걸 못해서 탈이지... 초아선생님께서는 아실거야. 나의 이런 못된 성정을. 그래서 꽁꽁 묶어 꿇어 앉혀 글을 쓰게 만드시지.

아참, 아까 공연히 윤트리오 땜에 생각난 건데 소전 우리도 소트리오팀 한 번 만들어 볼까? 소전, 소현, 소새끼 ㅋㅋㅋ 재밌지 않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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