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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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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9일 04시 47분 등록
牧民心書 - 노태준 (동양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 서두에 붙이는 글 --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다.
물론 함께 떠나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 홀로 여행에 어찌 비하랴.
타박타박 걸어도 좋고 터벅터벅 걸어도 누구하나 탓하지 않는다.
한 잔을 마시든 두 잔을 미시든 내 기분에 따르면 그만이다. 거기다 수십 수백 가지의 맛을 지닌 바람을 혼자 안고 뒹굴 수 있는 그 황홀함을 그대는 아는가!

연구원 생활을 시작한 후로 나의 ‘홀로 여행’에 변화의 신호음이 찾아왔다.
또 다른 내 속에 ‘내’가 그동안 외로웠음인가.
책속의 인물과 독대를 하면 어김없이 방문객이 찾아든다. 그냥 오지도 않는다. 온갖 현란한 것으로 치장을 하고 와서 나를 유혹하고 저자를 유혹하여 끌어안는다. 그의 살살거리는 눈웃음에 넘어가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야기꺼리에 나도 저자도 함께 빨려 들어간다.

다산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이규태선생’이 찾아왔다. 120권의 저서와 23년간 써온 칼럼을
이고 들고 왔으며 웃음을 안고 지고 찾아왔다.

약속을 정하잔다, 다시 한 번 더 만나자고. 이규태 선생은 지하 서고 1만 5천권의 책속에서 만나자고 하고 다산은 강진에서 만나잔다. 지하 서고는 한가로워 좋고 강진은 짭짤한 바다 내음 있어 좋다. 그 어느 곳을 마다하랴. 불러주는 이 있으면 그곳이 낙원인걸.

다산 정약용에게 있어서 황사영 백서 사건은 단순한 사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 때의 쓰라린 앙금이 가라앉고 삭고 썩어서 증류수 되어 날아간 지금에야 할 수 있는 이야기인 줄 알지만 누가 감히 이 말에 부정의 언사를 달 수 있는가.
정약용의 강진은 이규태 선생의 지하서고다. 그 곳에는 수천 수 만권의 책이 있었고 실물 자료가 있었으며 망극의 은덕으로 18년이라는 긴 휴가를 즐긴 파라다이스였다.

1. 저자에 관하여

-다산은 1762년 광주군 초부면 아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재원은 진주목사를 지냈으며 어머니 해안윤씨는 공제 윤두서의 손녀였다. 다산의 아명은 미용, 송보이고 호는 사암, 열수, 다산 문암일인 등이며 당호는 여유당이다.
다산은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뛰어났으며 22세 때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그의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정조의 인정과 총애를 받게 된다. 28세 때인 1789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본격적인 벼슬살이를 시작하였으며 그의 첫 벼슬인 희릉 직장을 비롯하여 사간원 정언, 사헌부지평을 거쳤다. 이즈음 그는 ‘성설’과 ‘기중도설’을 지어 수원성을 쌓는데 유형거와 거중기를 만들어서 사용할 것을 건의하였으며 이로써 많은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서는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암행어사로서 그는 전 연천 현감 김향직과 몇몇 관리들의 폭정을 고발하여 처벌 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통해 책임과 관리의 의무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천주교와의 만남은 또 다른 세계 로에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계기였으며 동시에 갖은 좌절과 시련을 맞보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정조가 서거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다산은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았다. 신유사옥으로 유배형을 받게 되었으며 그의 셋째형은 옥사한다. 둘째형 정약전은 신지도로 유배되었으며 다산은 경상도로 유배되었다.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서울로 다시 불려와 조사를 받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된다.
강진에서의 유배는 다산 있어서 알찬 학문의 결실을 매은 시기였다. 제자들을 모아 교육을하고 경세학과 더불어 다산사상을 축을 이루는 경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다산의 많은 저술활동을 이루어 내기도 한 시기였다. 57세 되던해에 유배에서 풀려나 공향으로 돌아온 다산은 저술을 계속하여 미완으로 남아있던 목민심서를 완성하였으며 흠흠심서, 아언각비등의 저작을 내 놓았다. 다산은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조 후기 학자로서 정치,경제,역리,지리,문학,철학, 의학,교육학,군사학,자연과학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500여권에 달하는 이 저술들은 깊고도 넓은 다산의 학문세계로 오늘날에도 고전으로 남아 우리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다산은 고향으로 돌아온지 18년만에 75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 황사영 백서사건 )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자유를 강구하기 위하여 당시 베이징 주교에게 보내고자 했던 청원서이다. 황사영은 다산의 큰 형 정약현의 사위이며 다산의 조카사위가 되는 사람이다. 주문모 신부가 처형되고 왕족들까지도 사약을 받는 마당에 서울에서 숨어지낼 수 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황사영은 김한빈이라는 신도와 함께 산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 후 비단에 사건의 내용과 청나라에 도움을 청하는 내용을 기록하여 김한빈이 서울로 가져갔다가 체포당하고 황사영을 비롯한신도들도 잡혀서 결국 처형당한 사건이다.(야후 배과 사전 참고)

2. 내마음에 들어온 글귀

[28] 공경이나 대간을 찾아서 인사를 할 때는 언제나 자기 재능의 부족함을 말하고 상대방의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더욱이 이들 가운데는 일찍이 자기 고을을 비롯하여 인근 고을의 수령이나 본도의 감사를 지낸 사람들이 있을 것이므로 마땅히 그 고을의 실정을 자세히 물어서 알아두고, 또 그들의 의견을 들어서 앞으로의 행정에 참고가 되도록 한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38] ≪치현결≫에 말하기를, “군자가 백성 앞에 나설 때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성품부터 헤아려서 치우친 데를 바로잡아야 한다. 유약하면 강하게 하고 게으르면 부지런하게 바로잡으며, 강한 것에 치우치면 관대하게 고치고 느린 것에 치우치면 위맹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41] 관내의 선비들이나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서 기한을 정해 주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모든 병통이나 폐단들을 적어 내도록 하는 한편 건설적인 의견도 제출토록 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그 개혁에 힘쓰도록 한다.

[43] 인장 글씨가 마멸되어서 분명치 않으면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기 쉽다. 도임하는 즉시 인장 글씨가 분명치 않은 것은 곧 예조에 보고하여 개조하도록 한다. 화압이 졸렬하고 일정치 못하면 역시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기 쉬우니 숙달되기 함으로써 폐단이 생기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43] 향촌의 풍헌이나 약정들은 인신이 없으므로 관에 보고하는 문서가 중간에서 위조되는 수가 많다. 시무하는 첫날에 여러 향리에게 그 향리의 이름을 집어넣은 목각 인장을 만들어서 배부해 주고, 관에 올리는 문서에는 반드시 날인하도록 하여 중간에서 위조되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인장은 사방 두 치로 하면 된다.

[49] 수령들 가운데는 흔히 위엄을 세우기 위하여 사납게 화내는 자가 많은데, 처음 한두 번은 효력을 발생할지 모르나 반복될수록 체통에 손상을 가져올 뿐이며 영이 서지 않는다. 언제나 화내는 일은 삼가야 한다.

[52] 공사를 처결하고 틈이 있을 때는 독서를 함으로써 피로를 풀고 교양을 높이며, 어진 정치를 할 수 있는 참고 자료를 얻도록 힘쓰는 것도 좋은 일이다. 모든 진리는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53] 염결이란 목민관의 본무이며 모든 선의 원천이요, 모든 덕의 근본이다. 염결하지 않고서 능히 목민을 할 수 있었던 자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염결이란 천하의 큰 장사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염결할 것이니, 사람이 염결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55] 청렴한 소리가 사방에 이르고 아름다운 이름이 날로 빛나면 또한 일생의 지극한 영광인 것이다.

[63] 어진 정치를 행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백성들을 잘살게 하는 것은 목민관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다. 무엇이 자랑할 것이 되며 생색을 낼 일인가. 좌우명에 말하기를, “남에게 은혜를 베풀더라도 이것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였다. 나의 잘하는 일을 남에게 알리려 하는 것은 교양 없는 사람의 비열한 행동이라 하겠다.

[69] 사치스런 생활이란 처음부터 교양 있는 사람의 취할 바가 아니니 옛날의 성현들이 극히 경계하던 바이다.

[75] 관부 안은 언제가 엄숙하고 맑아서 털끝만큼이라도 사사로운 정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고을, 심지어는 이웃 고을의 인사들까지도 관아로 불러들여서 사사롭게 만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요즈음 풍속에 이른바 존문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존문이란 수령이 지방 인사들을 몸소 찾아보는 것이다. 지방의 토호나 간민들이 조정의 권문 귀족과 겨락이 되어서 부임 인사를 하는 날에는 권문 귀족으로부터 존문을 두며 보호해 줄 것을 청탁받는 일이 많다.

[78] “가난하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나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라고 하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그래도 좋으나 가난하면서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느니만 같지 못하니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궁교와 빈족을 대하는 일이 극히 오렵다고 말하고 있다. 나를 찾아오는 궁교와 빈족이 있다면 따듯하게 맞이하고 후하에 대접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안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일와를 본다면 궁교와 빈족들을 잘 돌보아 줌으로써 후에 그들의 도움으로 입신 출세한 일이 많이 있다.

[81] 천지가 만물을 낳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누리고 쓰게 하였는데 한 물건이라도 버림이 없게 한다면 이는 재화를 잘 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1] 논어에 보면 ‘절용이애인’을 행정의 요체로 삼고 있으니, 즉 재정을 아껴 씀으로써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90] 권문세가를 후하게 섬겨서는 안 된다.

[90] 절용이란 은혜를 베풀 수 있는 근본이다.

[91] 관장으로서 궁교와 빈족을 구제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의복이나 생활이 매우 검소하다. 의복이 화려하고 얼굴에 기름이 흐르며 음란하고 질탕하게 놀기를 좋아하는 자로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보기 드물다. 무릇 사람이란 반드시 절용을 숭상해야 하며 절용하여 재화가 모이게 되면 그것으로써 곤궁한 친척이나 가난한 친구들을 구제하는 것이 의리이다.

[95] 사람들 중에는 권문세가를 후하게 섬기는 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내가 은혜를 받았거나 혹 의뢰하여 서로 좋게 지내는 사이에는 때때로 물건을 보내주되 먹는 것 몇가지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105] 아무리 조정의 명령이라 하여도 백성들이 괴로워하;여 시행할 수 없다면 벼슬을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다. 백성들에게 큰 폐단이 되고 백성들이 원치 않는다면 억지로 시행할 수 없으며, 또 조정의 명령을 시행하지 못한다면 수령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럴 때는 마땅히 벼슬을 내리고 물러나야 한다.

[108] 수령은 이익에 유혹되지 말고 위엄 앞에 굽히지도 말아서 확고부동하게 법을 지켜나가야 한다. 비록 상사의 명령이라 할 지라도 법에 어긋나는 일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112] 예는 공손하지 않으면 안되고 의는 염결하지 않으면 안 되니 예와 의 두 가지가 아울러 온전하고 온화한 태도로 도에 맞는다면 이를 일러 군자라 한다. 이웃 고을이 서로 화목하며 예로써 접한다면 뉘우침이 적을 것이요, 이웃 수령과는 형제의 의가 있으니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나는 그와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교대할 때는 동료의 우의가 있으니 뒷사람에게 미움받을 일을 앞사람이 하지 않아야 원망이 적을 것이다. 전관에게 잘못이 있으면 이를 가려서 드러내지 말고, 전관에게 죄가 있거든 도와서 죄가 되지 말도록 해야 한다. 무릇 정사의 관맹이나 명령의 득실 같은 것은 서로 이어받고 서로 변통하여 그 허물을 없애도록 한다.

[113] 몸이 하관이 되었으면 마땅히 삼가 본분을 지켜서 상관을 섬겨야 한다. 상대방은 무관이요, 자기는 문신이라고하여 상대방을 업신여겨서도 안되며, 노소를 가려서도 안되고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를 말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엄숙하고 공경하여 감히 실례를 범하지 않으면 화평하고 통달하니, 피차간에 간격이 없어지고 뜻이 서로 통하게 된다. 이것이 백성을 위하는 일이니 상대방이 비록 인자하지 못하더라도 그 비위를 거슬려서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117] 아무리 상사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국법에 어긋나거나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이라면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것이다. 확고한 신념과 의연한 태도로써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118] 예의 근본은 공손한 것이며 의의 근본은 염결이다. 수령은 마땅히 예를 숭상하고 의를 지켜야 한다. 예와 의를 온전히 하며 언제나 온화한 태도로써 도리에 맞도록 해나간다면 수령의 직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가 벼슬을 할 때는 마땅히 버릴 기자 한 자를 벽 위에 써놓고 아침 저녁으로 눈여겨 보아야 한다. 언제든지 그만둔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122] 폐단을 말하는 서장, 청구하는 서장, 방색하는 서장, 변송하는 서장 등은 반드시 그 문사가 사리에 맞고 정성스러우며 간절해야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125] 고을에는 참기 어려운 폐단이 있어서 그것을 고칠 것을 요청하는 문서 따위는 반드시 문장으로 그 정경을 그려내서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만들어야 상사의 공감을 얻게 되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

[127] 월종의 서장이란 여러 가지 월말 보고를 말하는 것인데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많다.

[134] 상사가 차견하면 마땅히 승순해야 한다. 일이 있다거나 병을 칭하여 스스로 편한 것을 꾀하는 것은 군자의 의가 아니다.

[136] 경관이 졸렬한 문장을 채택하려 든다면 이를 다투어야 하고, 좋은 글을 버리려 해도 다투어야 하며, 뇌물을 받은 흔적이 있어도 다투어야 하고, 사사로운 정을 둔 흔적이 있어도 다투어서 반드시 합격자 전원으로 하여금 어느 하나도 공도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한 도의 사람들이 모두 칭송을 할 것이다. 무릇 수령의 그릇이 적은 자는 명예가 한 고을에 그치고 그릇이 큰 자는 명성이 한 도를 진동케 하는 것이니 인물에 대한 평가가 이로부터 이루어지게 된다.

[139] 첫째, 이국 사람을 대할 때는 서로 공경하며 예의를 다해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들이 머리를 깎고 소매가 좁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겨서 접대하고 문답하는 사이에 예모를 잃게 되는데, 이는 국가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경박한 행동이다.

[141] 넷째, 좋은 것을 보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해외 여러나라는 선제가 기묘하며 물 위를 가는데 극히 편리하게 되어있다. 우리 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선제가 투박하고 고루하다. 매양 표류선을 만나면 그 선제도설을 각각 상술해야 한다. 재목은 어떠한 것을 썼고 백전 판자는 몇 장이고 길이와 넓이와 높고 낮음은 몇 도나 되며 저앙.헌지의 세와 범장, 봉최의 식, 탁로 , 외타의 모양과 유회, 염봉의 방법, 익판, 배도의 술 등 여러 가지 묘리를 자세히 물어서 기록해 두었다가 그것을 모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표류인이 상륙하자마자 큰 도끼로 찍고 부숴서 즉시 불살라 버리려고 하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법이란 말인가. 뜻 있는 선비가 문정하는 임무를 맡았다면 여기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146] 옛날의 어진 사람들은 양로의 예를 정성껏 행하여 백성들에게 효제의 도를 권장하였고 그것이 관례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으며, 사회 정화에 기여하는 바가 실로 크다고 하겠다. 그들의 아름다운 산업은 길이 빛날 것이다.

[147] <맹자>에도 말하기를, “내 집 노인을 공경함으로써 남의 집 노인까지도 공경하며 내 집 어린이를 사랑함으로써 남의 집 어린이까지도 사랑한다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서 움직일 수 있다. ”라고 하였다.

[148] “서울에는 고아를 맡아보는 직책이 있었는데 한 고아를 기르는 자는 아들 중 한 사람은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150] 목민관은 백성들에게 기아의 수양을 권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151] 흉년에 기아가 생기는 것은 별문제이지만 평년에 서울의 도랑 사이에서 혹 기아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흔히 불륜에 의한 사생아인 경우가 많다. 부모의 죄악을 갓난아이에게까지 미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역시 백성들의 수양을 허용하여 권장해야 할 것이다.

[151] 과년하도록 혼취하지 못한 사람은 관에서 마땅히 서둘러 주어야만 한다.

[153] <경국대전>에 말하기를 “사족의 딸로서 나이가 30에 가까운데도 출가하지 못한 자는 예조에서 계문하여 혼수를 지급해주고 가장은 중벌로 논한다.”라고 하였다.

[154] 합독이라는 것은 홀아비와 과부를 성혼시키는 것을 말한다. <관자>에 말하기를 “무릇 국도에는 중매를 맡아보는 자가 있어서 홀아비와 과부를 짝지어 주는데 이를 합독이라 일컫는다.” 라고 하였다. 합독 또한 어진 정사이므로 목민관은 이를 힘써서 불우한 홀아비와 과부가 제자리를 얻도록 해야 한다.

[157] 옛날에는 신하가 상사를 당하거나 죽게 되면 임금이 반드시 몸소 문상하고 소렴과 대렴을 살폈으며, 염에는 수의를 보내주고 장사에는 폐백을 보내주었으니, 이러한 것으로 보아 수령도 관속들에게 은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161] 전염병이 유행될 때에는 목민관은 반드시 그 병의 특효약을 연구하고 만들어서 구료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야 한다.

[162] 수화의 재해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휼전이 있으니 삼가 행할 것이며, 마땅히 항전 외에도 목민관이 스스로 구휼해야 한다. 무릇 재액이 있으면 그 불에서 구해내고 물에서 구해내는 것을 마치 내가 불에 타고 물에 빠진 것같이 하여 늦추어서는 안된다.

[168]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한 것을 성인은 경계하였다. 너그러우면서도 헤이하지 않으며 어질면서도 나약하지 않다면 이를 그르치지 않을 것이다. 이끌어주고 붙들어주며 가르치고 깨우쳐준다면 그도 또한 인성이 있으니 바로잡아지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위엄을 먼저 베풀어서는 안된다. 이끌어주어도 깨우치지 못하고 가르쳐도 고치지 못하며 마침내 사기를 일삼아서 원악이나 대간이 된 자는 형벌로써 임해야 한다.

[169] 지금의 향리들은 재상과 사귐을 맺고 감사와 연통하여 위로는 관장을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착취하는데, 여기에 굽히지 않는다면 어진 수령이다.

[171] 아전을 단속하는 지름길은 먼저 예의를 갖추어서 위엄을 보이고 은혜를 베풀어서 상대방을 감화시킨 뒤에 법으로써 다스려야 한다.

[171] 남의 윗사람이 뒨 자는 마땅히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이 옛 성인의 가르침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데는 너그러움으로써 해야 한다. 그러나 오직 너그럽게 하는데만 힘쓴다면 아전들이 농간을 부려서 정치가 어지럽게 된다. 따라서 너그럽게 하면서도 절도가 맞고 어질면서도 나약하지 않아야만 모든 정사게 제대로 시행되며 밝아지는 것이다.

[181] 아첨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충성되지 않고 간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배반하지 않는 것이니, 이를 살핀다면 실수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183] 인재 등용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인간성을 중시하고 재능이나 지혜를 그 다음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재주가 있고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성이 나쁘다면 그 지혜와 재주를 악용하여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혼란을 빚어내서 사람들에게 해독을 끼치게 마련이다.

[184] 현인을 천거하는 것은 수령의 직책이다. 비록 고금의 제도가 다르다 하더라도 현인을 천거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184] 과거라는 것은 과목별로 천거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법에 비록 빠진 데가 있더라도 폐단이 극도에 이르면 변경해야 한다. 거인을 천거하는 것은 목민관으로서 마땅히 힘써야 한다.

[186] 목민관은 혈연이 고립되어 있으며 일탑 외에는 모두 나를 속이려는 자들뿐이다. 사방을 보는 눈을 밝게 하고 사방을 듣는 귀를 통달하게 하는 것은 오직 제왕만이 할 바가 아니다.

[187] 무릇 변변치 않은 과실이나 조그만 흠은 마땅히 덮어둘 것이니 샅샅이 밝혀내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가끔씩 농간을 적발해 내서 그 기틀이 귀신과 같다면 백성들이 두려워할 것이다.

[191] 수령은 언제나 냉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수령의 주위에서는 별별 간계가 다 이루어지고 있다. 통인이나 관노, 심지어는 기녀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의 주고받는 말 속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게 마련이니 수령은 주위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자칫하면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정사를 그르치기 때문이다.

[193] 관리가 한 일은 반드시 그 공적을 따져야 한다. 그 공적을 따지지 않는다면 백성이 힘써 일하지 않는다. 국법에 없는 것을 혼자서 행할 수는 없으나 그 공과를 기록하였다가 연말에 공적을 따져서 상 줄 것을 의논한다면 오히려 그만두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198] 목민관의 직책 54조 중에서 전정이 가장 어려우니, 이는 우리 나라의 전법이 본래부터 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3] 진전은 부세를 가볍게 하고 그 경작을 권장하여 묵히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백성들을 구제하고 국용을 넉넉히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은결과 여결 등의 탈세 행위가 날로 늘어나고 궁전이나 둔전이 해마다 증가하여 국가의 세입이 날로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하여 국가의 앞날을 개탄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완벽한 측량방법에 의하여 지적이 정비되고 있으며, 은결이나 여결 같은 부정도 자취를 감추어서 거론할 여지가 없다.

[205] 위재라는 재해 조사를 할 때 부자가 돈을 집어주면 작황이 좋은 전지도 전재로 기록되고, 가난한 백성은 울면서 호소해도 작황이 거의 없는 전지가 내개로 지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원과 백성들이 농간을 부리는 데는 수령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209] 창고를 열려고 할 때는 창촌에 방유하여 잡류를 엄히 금해야 한다. 비록 민수가 기간을 어겼다 하더라도 아전을 풀어서 독촉한다면 이는 양떼의 우리 속에 범을 풀어놓는 것과 같은 것이니 반드시 해서는 안된다.

[210] 죄목을 알려주면서 형벌한다면 백성은 그 죄를 알것이며, 명목을 일러주면서 징수한다면 백성은 그 쓰이는 데를 알게될 것이다. 백성에게는 명목이나 용도를 깨우쳐 주지도 않고 쌀만을 토색하는 것이 어찌 관의 정당한 처사라고 볼 수 있겠는가.

[213] 놀고 먹는 선비들이 넓은 전지를 마련해 놓고 백성들에게 경작시켜 그 10분의 5를 받아먹고서 국세까지 소작인에게 맡기니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220] 사창은 곡식을 저장하는 일과 나누어 주는 일이 모두 항사에 있었고 관리는 이에 간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백성을 위하는 참마음으로서 지금의 환상법과는 그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281] 송사 판결의 근본은 오로지 문서에 달려 있으니, 그 속에 감추어진 간사한 것을 들추고 숨겨져 있는 사특한 것을 밝혀내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285] 인명에 대한 옥사는 예전에는 소홀하였으나 지금은 엄밀하게 하고 있으니, 전문적인 학문에 마땅히 힘써야 한다. 옥사가 일어난 곳에는 아전과 군교가 방자하고 횡포해서 집을 부수고 재물을 약탈하여 그 마을이 망하게 되는 것이니, 가장 먼저 염려할 것이 이것이다. 부임하여 처음 정사를 돌볼때 마땅히 이에 대한 약속이 있어야 한다.

[298] 도적이 생기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위에서는 행실을 단정하게 하지 않고, 중간에서는 명령을 받들어 행하지 않고, 아래에서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니, 비록 도적을 없애려고 해도 어찌할 수 가 없는 것이다.

[308] 봉산의 소나무가 차라리 썩어서 버릴지언정 사용하기를 청해서는 안 된다. 황장 봉산에서 벌채한 나무를 끌어내리는 부역에서 농간하는 폐단이 있는가를 마땅히 살펴야 한다. 장사치들이 금지하는 송판을 몰래 실어내는 것을 금해야 한다. 삼가 법을 준수하며 재물에 염결해야만 옳은 것이다.

[342] 농기구를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경작을 권장하며 베짜는 기계를 만들어서 여공을 권장하는 것은 목민관의 직책인 것이다. 전거를 만들어서 농사를 권장하고 병선을 만들어서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목민관의 직책인 것이다.

[355] 중국의 권부의 법은 모두 조미를 권하는 것이지 희미를 권하는 것이 아니며, 모두 은혜 베풀기를 권하는것이지 바치는 것은 권한 것이 아니며, 모두 몸소 먼저 실행하였던 것이지 입으로만 말한 것이 아니며, 모두 상을 주어 권하였던 것이지 위협한 것이 아니니, 지금의 권분이란 비례의 지극한 것이다.

[355] 권분은 스스로 나누는 것은 권하느 것이다. 스스로 나누는 것은 권한다면 관의 힘은 크게 덜어질 것이다.

[361] 지금의 유민은 떠나도 돌아갈 곳이 없으니 오직 불쌍히 여기고 권유하여 가볍게 움직이지 말도록 해야 한다.

[378] 벼슬 버리기를 신짝같이 한 것은 옛날의 의리이다. 이미 바뀌고서 슬퍼한다면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평소에 장부를 정리해 두어서 그 이튿날 홀연히 떠나가는 것은 맑은 선비의 풍도이다. 장부를 마감한 것이 염결하고 분명하여 후환이 없게 하는 것은 지혜 있는 선비의 행실이다.

[385] 명성이 널리 미쳐서 혹 이웃 고을에서 빌리기를 원하거나 혹 두 고을이 서로 다툰다면 이것은 어진 목민관의 빛나는 가치 때문이다. 혹 오래 임무를 맡겨서 서로 편안케 하였거나 혹 이미 늙었어도 부득이 유임시켜, 오직 민의를 따르고 법에 구애되지 않는 것도 세살을 다스리는 일이다. 백성들이 그 명성과 행적을 아끼고 사모하여 그 고을에 재임하게 하는 것도 또한 사책에 빛날 일이 될 것이다.

[388] 법률에 저촉된 자를 백성들이 슬퍼하여 서로 임금께 호소하며 그 죄를 용서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오랜 옛날의 아름다운 풍속이다.

3. 내가 저자라면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지만, 그러나 목민관만은 구할것이 못된다.〔16〕
여기다 무슨말을 더 덧붙일 수 있을까? 이는 다스림은 군림이 아니라 끝임없이 자신을 경계하고 백성을 가르치는 ,자신을 받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책의 구성은 1.부임 2. 율기. 3. 봉공. 4.에민, 5. 이전, 6, 혼전, 7, 에전8, 병전, 9. 형전, 10 공전, 11. 진황, 12 해관의 12강과 이를 각각 6조로 나누어 총 12강 72조로 되어 있다. 각 조항마다 목민관으로서의 해야할 일을 비롯한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이 상세히 나타나 있다. 특히 아전들의 역할과 횡포는 수없이 되풀이 되는 고로 그 당시 아전들을 비롯한 일반 관리들 중에는 자기의 위치를 명예에 대한 허세나 착취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말해준다.
또한 세세한 내용으로 당시의 정치상을 비롯한 시대의 흐름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애민우국하는 충정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당쟁으로 얼룩진 그 시대 상화으로 보아서 다산의 ‘목민심서’는 조정과 관리들에게 혈서를 쓰는 마음으로 이루어 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정부 상황과 비교해보자. 어디에 이렇게 상세한 근무지침이 있는가. 어디에서 정부관리자의 봉사의 자세가 나타나 있는 것을 찾아낸 수 있는가?

다산을 만남에 있어서 처음에는 ‘다산문선’으로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목민심서’로 대체되었고 지금의 감흥으로는 ‘다산문선’ 으로 그와 또다른 독대를 하고 싶다. 목민관으로서 지켜야 할 세세한 조항들은 곧 나를 위한 다산의 ‘고언’이었고 생활의 지침이였으며 철학이었다. 구절구절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내마음에 들어온 글귀들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휩싸여 제출의 날짜까지 어기게 했다. 청심은 나의 가슴으로 파고 들고 여행은 격언이 되어 다가왔다. 백성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없었다면 과연 다산의 ‘목민심서’는 가능했을까?
다만 족을 달자면 역자의 지나친 친절이 오히려 본서의 깊은 의미를 다소 감하는 느낌을 가졌다. 현재의 정치 및 사회 상황과 비교해서 이야기 함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내용은 내용으로만 충실이 전달하고 강요와 같은 세세한 설명은 읽는 우리를 힘들게 한다.
목민심서는 나의 ‘심서’다.

목민관의 심서(좋은 교사의 심서).
첫째는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가져라.
배우려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사람의 열정이 보일 때 교육은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정답을 가르쳐주는 대신 정답으로 가는 과정을 가르쳐라.
흔히 세상에서 말하듯이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라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피교육자는 언젠가는 스스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피교육자를 사랑하라.
부모들은 자식이 사랑스러워서 잘 키우듯이 선생님들도 피교육자에 대한 사랑이 함께 할 때 교육의 효과는 높아지는 것이다.
넷째는 언제 어디서나 피교육자를 향해 몸에 밴 친절을 보여라.
이 친절이야말로 피교육자가 선생님을 향해서 가까이 다가오게 하고, 선생님 역시 피교육자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
다섯째는 동료끼리는 물론 모든 사람에 대한 남다른 배려의 정신을 가져라.
이 배려야말로 민주생활의 기본이고 서로 이해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 태도이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희생이 따르는 봉사의 마음과 행동을 가져라.
대가가 없더라도 피교육자를 가르칠 수 있고 피교육자를 위해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봉사 할 수 있는 자세인 것이다.
일곱째는 원칙과 관용을 실천하라.
원칙은 수많은 피교육자를 훈육하는 질서의 길이요, 모든 제자들을 골고루 사랑하는 선생님의 양심이며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인 것이다. 또한 관용은 아무리 제자가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하고 받아주는 자세인 것이다.
여덟째는 신뢰를 받도록 하라.
가르치거나 가르침을 받는 과저에서 이 신뢰야말로 서로 간의 이루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교류인 것이다.
아홉째는 용기와 희망을 주어라.
좌절하고 있는 제자에게 굳세게 세상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용기를 심어주어 희망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열째는 효도관과 국가관을 심어 주는 것이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내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출발하여 부모의 은공을 알고 효도 하는 마음이 필요하며 국가가 있기 때문에 내가 나라안에서나 밖에서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기에 애국애족의 마음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국가 발전에 써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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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19 04:52:19 *.86.55.231
하루 늦었습니다. 항상 조급한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처리하듯 해치우는 그 조급증에서 탈피해보고자 '늦춤'을 시도해 보았지요. 핑게같지만 의도적 '늦춤'이었습니다. 결코 추천할 만한 '시도'는 아니라는결론을 얻었습니다. '뚜벅뚜벅'걸어나감이 제대로 된 연구원의 걸음걸이임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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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6.19 08:12:50 *.152.82.31
좋은 내용입니다.
좋은 교사의 심서도 눈에 잘 들어옵니다.
읽기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한 근력이 아닌가 싶군요.

작년 4월에 강진 다산초당을 갔더랬습니다.
선생님과 승완, 세나, 영훈과 함께였습니다.
천일각에 올라 구강포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속에 잠겼습니다.
혜장선사와 함께 걸었음직한 동백숲을 지나면서 제가 살아가야 할 의미를 되새겼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네요.
그날 제 직업의 비전을 구체화했던 것 같아요.
최선생님께서도 시간내서 다녀오세요.
다산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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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19 10:03:53 *.75.15.205
온니야, 같이 가자.

객기 좋고~ 하루를 슬쩍 넘겨 아름다운 기부(?)해 주심에 감사할 사람있을 거에요.^^

대안학교 교장님으로 모셔볼까? 아이들이 과제를 뒤바꿔해도 참아 주시겠지요?

[118] 예의 근본은 공손한 것이며 의의 근본은 염결이다. 수령은 마땅히 예를 숭상하고 의를 지켜야 한다. 예와 의를 온전히 하며 언제나 온화한 태도로써 도리에 맞도록 해나간다면 수령의 직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가 벼슬을 할 때는 마땅히 버릴 기자 한 자를 벽 위에 써놓고 아침 저녁으로 눈여겨 보아야 한다. 언제든지 그만둔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염결주의 [廉潔主義]
[명사]매사에 청렴결백하게 행동하려는 태도나 경향.

棄 총 12획 버릴 기 ㉠버리다 ㉡돌보지 않다 ㉢물리치다 ㉣잊다
[등급]고등용 [한자검정]3급 [부수]나무목部 [자원]회의문자
마늘모(&#21430;☞나, 사사롭다, 마늘 모양)部와 葉(기☞쓰레 받기)와 양손의 합자(合字). 청소 도구(道具)를 양 손으로 밀고 감을 나타냄. 따라서 널리 버림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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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근
2007.06.19 10:35:41 *.124.218.100
샬롬!
최쌤의 글은 이제 이름없이 보아도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
표현하는 방식도, 접근법도, 모든 것이 향기롭고 잔잔하게 다가옵니다.
아주 어릴땐 다산님이 우리 선조(?)인줄 알았습니다. 저도 정가이잖아요.ㅋㅋㅋ 그래서 참 자랑스러웠는데....
이젠 정말 자랑스러워 할, 아니 꼭 해야 할 선조인것 같습니다.
마음에 꼭 새겨야 할, 심하고도 아프게 찔려서 반성해야 하는 글도 보입니다.
좀 더 깨어지고 변화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여전히, 앞으로도 맹활약 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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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19 13:50:45 *.114.56.245
만나고 헤어지면 그리워함이 당연한가요? 내장산과 선운사 도솔암을 다녀온 후 그들이 그리워 잊기위해 또 다른 무엇을 찾아떠나곤 했습니다.강진에서 선생님을 뵈오면 또 그리워 할까 두렵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희근님. 다음에 경주에서 서울 나들이 하시면 꼭 연락주십시요.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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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근
2007.06.19 15:19:54 *.124.218.100
진짜로요. 이야 일부러라도 가야겠네. 사실 정말 뵙고 싶었거든요. 기회를 허락하신 것만으로도 감솨, 또 감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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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19 16:57:57 *.114.56.245
물론입니다. 저도 울산을 자주 가기는 하지만 내려가면 며느리랍니다. 꼬옥 연락주셔요. 감포도 참 좋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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