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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3일 16시 00분 등록
칭기스칸- 천년의 제국

12세기중엽부터 13세기초엽까지 살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이끈 칭기스칸은 세계영웅의 한사람이다. 그래서 그에 대해 한국인은 물론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었으며 서점가의 책 밭을 누비고 있다. 나는 그 중 몽고와 칭기스칸 그리고 그 후예들에 대해 심층 취재한 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책 한 권을 골랐다. 칭기스칸-천년의 제국, 책이름이 나의 시선을 멈추게 했기 때문이다. 책표지는 이렇게 씌어있다. ‘파괴적 창조자 칭기스칸,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어떻게 영웅으로 부활했는가.’

지은이 배석규는 역사학자도 아니요, 고고학자도 아니며 단지 기자출신이다. 그런 그가 14명의 YTN 취재진과 동행하여 장장 2만㎞이상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 현장을 발로 누비며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초원의 투쟁사를 멋지게 그렸다. 마치 말 등에 올라 초원을 누비던 칭기스칸 및 푸른 군대와 함께 유럽 정벌이라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현장감을 살렸다. 또한 서구인의 눈으로 본 세계 정복사가 아니라 동양인의 세계 경영사라는 점에서 책의 감칠맛을 더했다. 책의 두께와 관계없이 읽는 속도를 더할 수 있어 좋았다. 저자의 서슴없이 써내려간 기행문이 눈의 초점을 사로잡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 몽고가 우리와 같은 계통의 민족이라는 공감대가 나의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칭기스칸은 무슨 뜻인가.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칭기스’는 ‘단단하고 강하다’는 뜻을 지닌 몽골어 ‘칭’의 복수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대몽골 제국의 칸의 이름에 그 정도의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바다를 가리키는 투르크더 텡기스에서 따온 말일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칭기스칸 이후의 대몽골 제국의 대칸들이 인장에 ‘달라이-인 칸’이라고 새겨 놓은 것을 보더라도 칭기스의 의미는 ‘바다를 지배하는 군주’, ‘전 세상을 지배하는 사해의 군주’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설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은 세계사를 뒤흔든 전무후무한 대국이었다. 그 옛날 천년을 호령하던 로마 제국보다 크고,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도 비길 바 못되며, 후대의 영웅이라 일컫는 나폴레옹도 견주기가 멋쩍다. 역사적으로 동양이 서양을 능가했던 유일한 시대가 바로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이었다. 드넓은 영토며, 진취적 사고며, 선도적 기술이며, 앞선 정보며, 합리적인 회의체며 모든 면에서 서양을 압도했다.

인구 100만 명밖에 안 되었던 유목민족이 어떻게 과학기술과 무한한 인적자원을 갖춘 문명국가를 무릎 꿇리며 세계제국을 건설했는지, 거대한 중세 문명의 물줄기가 왜 바뀌었는지, 쿠빌라이 이후 그들은 왜 쇠락과 질곡의 역사로 후퇴하였는지, 유럽이 다시 깨어나 서세동점의 시대가 되었는지, 세계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파란만장했던 칭기스칸의 삶과 세계정복의 여정이 흥미진진하고도 생생하게 이 책에 담겨있다.

G.E의 전회장인 잭 웰치는 ‘21세기는 새로운 유목민 사회다. 나는 칭기스칸을 닮고 싶다’라고 말한 칭기스칸, 그는 무엇으로 어떻게 그 광활한 대륙을 종횡무진하면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는가. 그들에게 무엇이 있었기에 세계지배가 가능할 수 있었던가.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 수없는 내용을 들어 알고 있지만 이 책을 읽고 과거 칭기스칸 관련서적으로부터 종합해보면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겠다.

먼저 그들은 꿈을 갖고 있었으며 그 꿈을 키운 사람들이다. 칭기스칸은 몽골초원을 통일하면서 그 힘을 밖으로 돌리고 싶었다. 통일된 초원에 드리운 그림자는 여전히 어두웠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전쟁이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잡다한 여러 집단을 뒤섞으면서 만들어 낸 통합국가 초기에 지니는 취약점을 보완하고, 충격요법을 통해 전체 구성원의 일체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 그 하나요, 물자 부족과 유목민의 약탈 습성화를 전쟁으로 유도한 것이 그 둘이다. 유목민이 전쟁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전리품을 얻는 데 있다. 그들은 먹고 입고 살기가 척박한 초원에 머물러 있어서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칭기스칸은 백성들에게 바깥 세계로 눈을 돌리게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갖게 했으며 싹을 키워주었다.

몇 년 전 『CEO 칭기스칸』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다. ‘한 사람의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만인(萬人)의 꿈은 현실이다.’ 칭기스칸은 자신의 꿈을 만인에게 심어주고 그 꿈을 지상의 현실로 보여줬다. 인구 100만 명에 불과하고, 문자조차 없었던 나라가 어떻게 그토록 강하고 위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꿈’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의 꿈은 한낱 꿈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언제든지 현실로 가꿔낼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다. 바로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지닌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꿈을 현실로 전이시킨 것이다.

유목문명이 반드시 정주문명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이 그토록 찬연히 빛났던 정주문명을 발아래 놓았던 비결은 분명 있었다. 저자는 2만km를 내달리면서 현재의 팍스 아메리카를 능가하는 팍스 몽골리카의 비결을 찾아냈다고 말한다. 세계를 빠른 속도로 연결하는 정보체계인 '역참제', 하루에 200~300km을 이동하는 기동력, 귀족 중심의 봉건제를 부순 능력 위주의 조직 운영, 늘 사냥을 통해 다진 전술과 협동심, 가벼운 군장과 비상식량, 법률의 엄격한 적용, 유목민 연합체의 조직을 체계적으로 통솔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만장일치의 합의통치, 민족 인종 종교를 초월한 포용 정책, 비단길 조직, 평등한 교육, 활발한 문화 교류 등이 그것이다.

칭기스칸이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는 간단없이 배우고 익혔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해 옮겼다. 무엇보다 중요히 생각한 것은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유목민의 정신'이다. 바로 이 ‘유목민의 정신’이 이 책의 키워드다. 자신을 가두지 않는 사고, 모두를 아우르는 자세, 이것을 저자는 ‘열린 마음’으로 표현한다.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 유목민들은 낯선 곳,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자리를 잡으면 그곳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이웃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항상 열려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몽골인의 심성은 살아 온 환경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세상의 모두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을 터득한 칭기스칸은 하나 둘 문명을 바꿀 제도를 갖추어 나간다. 오늘날 인터넷을 연상케 하는 ‘역참제(약 5km마다 캠프를 설치해 그곳에 사람과 함께 말을 배치하고 이웃 캠프에서 전해진 소식을 다시 다른 이웃 캠프에서 전하게 한 제도)’. 세계를 가장 빠른 속도로 연결하는 정보체계가 바로 이 ‘역참제’였으니 정보선점이 세계지배의 초석임을 실감한다. 저자는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은 인터넷이 발명되기 700여 년 전에 전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개척해 놓았다. 칭기스칸은 사람과 기술을 이동시켜 세계를 좁게 만든 인물이다.’

칭기스칸이 정주문명을 그토록 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속도이다. 그들은 상대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당시로서 하루에 200~300km를 이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칭기스칸은 그것을 해냈다. 오고 가지도 못할 곳은 그들에게 없었다. 물리학에서 E=MV²이다. 즉 에너지는 질량에 정비례하며 속도에 제곱 비례한다. 여기서 질량을 병력규모로 대체한다면 속도는 기동성이라 할 수 있다. 현대물리학을 모르는 그들이지만 적은 군대로 많은 적을 물리치려면 속도를 늘리는 길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의 무게를 줄이고 말을 이용한 기마병이 최강의 군사임을 알았다. 이동의 편리를 위해 무장을 가볍게 하였으며, 식용물을 압축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야생마를 길들여 가축화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보르츠라는 식용물을 만들었다. 보르츠는 소고기나 양고기를 말려 가루로 만든 것으로 식량의 경량화로 전장에서 최적이었다. 한마디로 인스탄트 식품(오늘날 칭기스칸이라 부르는 요리도 보르츠에서 착안해 개발한 요리라 함)으로는 제격이었으며 군사의 기동성을 높였다. 이러한 기동성이 유럽세계를 부르르 떨게 했던 푸른 군대의 요체였다. 탁월한 보급시스템과 병참시스템이 세계를 정복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몽골 병사들이 탁월한 능력과 뛰어난 기동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직화되지 않고서는 전투에서 그 힘을 극대화하기 어려웠다. 칭기스칸은 군대 조직을 새롭게 정비할 필요성을 느끼자 그 옛날 한 때 초원을 호령했던 흉노족의 십진법체계를 도입한다. 또한 기존의 씨족과 부족 제도를 파괴하는 바탕 위에서 천호제로 군사조직을 재편한다. 이로 인해 일사분란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사조직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하드웨어적 조직체계를 지탱하는 탁월한 소프트웨어가 있었으니 그것이 철저한 능력위주의 조직운영이다.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은 누구나 지휘자인 십호장이나 백호장, 천호장에 기용했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조직 안에서 능력 있는 인물로 즉각 교체했다. 연공서열과 신분보다는 능력을 중요시하는 혁신적인 조직 운영은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부족장이나 씨족장은 불만스러워했지만 일반 병사들과 백성들은 크게 환영하였고 강력한 군대를 지탱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칭기스칸은 전리품 획득과 배분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전리품은 있게 마련이며 이는 일종의 선착순 약탈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칭기스칸은 이 전리품에 공평분배제를 도입했다. 전리품을 공동 몫으로 두고 누가 얼마만큼 공을 세웠느냐에 따라 나눠 갖게 했다. 이 방식은 선봉에 선 사람이나 뒤에서 싸움을 도운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몫이 돌아갈 수 있었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자신의 몫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하게 되었으며 적은 군대로 많은 군사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기도 했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 모두가 자기 자신의 일로 여길 수 있는 제도를 구비함으로써 전 지구적 영토 정벌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쿠릴타이’. 이 책 속에는 수많은 쿠릴타이 이야기가 나온다. 중요한 전환기 때마다 열리는 쿠릴타이는 바로 만장일치의 합의 통치의 상징이다. 몽골종족의 대표들이 모두 참석해 총의(總意)를 한곳으로 모으고 중대사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쿠릴타이는 대단히 의미 있는 행사였다. 즉 힘을 한 곳으로 모으고 그것을 어떠한 목표를 향해 모두 쏟아 부을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국가 통치의 기반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대칸을 뽑는 거사와 관련해 열리는 쿠릴타이는 한 정권이 다른 정권으로 넘어가는 정도의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행사였다.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 일은 유목민들에게 자신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과도 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통치능력과 전쟁수행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를 뽑았을 때는 그들의 미래는 장밋빛 인생을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앞날은 물론 자신의 목숨도 담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칸을 뽑는 쿠릴타이는 만장일치 방식으로 결정된다. 만일 의견이 일치되지 않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회의는 계속된다. 일단 합의가 이루어져 대칸을 뽑게 되면, 그것을 신의 뜻으로 알고 전적으로 그 결정에 따랐다.

오늘날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갖고 있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그 이유는 정보와 기술이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후세인의 이라크를 한순간에 점령했다. 당시 몽골의 푸른 군대도 지금의 미국처럼 바그다드를 일순간에 접수했다. 그들도 당시에 최신예 무기라 할 수 있는 투석기가 있었다. 기술이 당시의 몽골군대를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다. 칭기스칸은 점령하는 나라의 기술자는 죽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테크노 헤게모니, 일종의 기술 패권주의다. 전쟁은 목청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술로 한다. 나름대로 보유한 첨단 무기와 첨단 기술로 수행한다. 특히 숫자가 적은 군대가 멀리 수천, 수만 킬로미터를 달려가서 원정전쟁을 벌이자니 그 열세를 속도와 기술력으로 보완하는 길밖에 없었다. 칭기스칸은 자기네 개발품이든 아니든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칼이 그랬고, 화살이 그랬으며, 투석기가 그랬다. 엄청난 전쟁기술을 바탕으로 세계를 누비면서 천하를 호령했다.

꿈을 갖게 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제도를 정비하고 기술을 향상시키는 등 몽골제국을 강대하게 한 요인이 많지만 이 모두를 지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칭기스칸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했다.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거대한 제국의 탄생은, 이를 엮어낸 주인공 칭기스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전쟁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단연 돋보였다. ‘나는 백성들을 갓 태어난 아이들처럼 생각하고 병사들을 내 형제처럼 생각한다. 백 번의 전투에서 나는 늘 선두에 섰다.’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는 병사들의 뒤에서 돌격하라가 아니라 늘 나를 따르라였다.

세계 최고의 권좌에 올라있었을 때도 그는 소박하고 검소했다. 병사들이나 백성들과 거의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 들었으며 화려한 궁정 의식을 멀리했다. 그러한 그의 모습은 병사들의 마음속에 존경받는 군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의 생활 태도는 조직의 민주화를 이루는 출발점이 되었다. 민주적인 조직 운영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칭기스칸은 그것을 수용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앞장서 이끌어간 인물이었다.

그는 군림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호칭을 스스럼없이 부르게 했는데,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가져온 무형적인 이익은 상당했다. 이러한 조치는 군주와 아랫사람간의 자유로운 대화를 가능하게 만들어 각 사안마다 많은 사람의 의견이 집약된 효과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칭기스칸의 성격 가운데 또 하나 두드러진 면은 친화력이다. 이 친화력은 주위에 사람을 모이게 하는 큰 요인이 됐다. 이 친화력의 밑바닥에는 사람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 평등의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친화력을 가진 칭기스칸은 일단 자신의 품으로 들어온 사람은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가진 모든 것, 그가 선택한 모든 것이 만들어낸 대몽골제국은 그의 대에서 끝내지 않고 후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몽골제국은 그가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그의 후손들에 의해 더욱더 넓게 육지로 바다로 뻗어 나가면서 명실공히 세계 제국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칭기스칸의 시대는 파괴로 시작해 그 바탕 위에 새로운 평화 시대의 문을 열였다. ‘팍스 칭기스카나’라고 일컬어지는 이 새로운 시대는 세계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출발점이었다.

칭기스칸은 떠난 이후 그 후손들은 더 넓은 제국속에서 몽골인의 꿈을 하나하나 세계에 펼친다. 또한 ‘제국은 말 위에서 건설됐지만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제국의 수도인 카라코룸을 세운다. 유목문명의 정주문명화라고 할까. 그러면서 차례차례 주변국을 정벌한다. 금, 남송, 러시아, 동유럽이 그들이다. 서유럽이 몽골군 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2대 대칸인 오고타이가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유럽의 여러 나라가 몽골을 몹시 두려워했으며 심지어 악마의 군대라 말할 정도로 치를 떨었다한다.

이토록 강대한 제국은 후손들에 의해 더 넓은 제국으로 발전하고 네 개의 칸국으로 분활지배되면서 150여 년을 더 흐른다. 하지만 모든 제국이 그렇듯이 그들도 몰락했다. 물론 멸망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를 말발굽아래에 놓고 세계를 호령하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라를 유지하고 있다. 몽골 제국은 많은 후계 국가들도 남겼다. 인도의 무굴제국은 1858년까지 계속됐다. 오스만 투르크도 몽골의 제국 성격을 이어 받은 후계국가로 꼽힌다. 킵차크칸국의 한 갈래인 크림칸국은 1783년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최대국가를 건설했던 몽골 제국은 쉽게 사라졌다. 그토록 쉽게 사라져간 이유는 무엇일까. 칭기스칸이 대칸의 자리에 오른 뒤 세계 정복에 나서기 시작한 때로부터 182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물론 182년이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세상위에 호령했던 나라치고는 종말이 너무 가파르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몽골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을까.

저자가 우선적으로 꼽는 것이 쿠릴타이의 전통이 무너진 점을 든다. 민주적 합의 정신이 무너져 내린 것이 멸망의 전단이었다. 쿠릴타이 때마다 크고 작은 진통이 있었지만 조정을 통해 총의를 이끌어 내는 모습이 사라지자 제국은 기울기 시작했다. 쿠릴타이를 통한 정당한 권력 승계가 아니라 대결이나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으면서 쿠릴타이는 형식적인 기구로 전락하고, 권력을 잡은 대칸은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 권력자가 아니었다. 유목민 사회의 원칙이 깨지면서 쿠릴타이가 무력화됐고, 그것이 세계 제국을 떠받쳐 온 한 기둥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모적인 후계자 경쟁을 재촉했다. 유목 기마민족은 예외 없이 여러 부족의 연맹체였다. 권력 중심부가 흔들리면 해체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원나라를 비롯한 몽골 칸국들 역시 계승 분쟁에 휘말려 들었고, 이는 결국 제국의 쇠망을 이끌었다.

소모적 후계자 경쟁과 정주문명속에서의 안주(安住)는 몽골인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졌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은 망할 것이다.’ 칭기스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손들에게 유목민의 기질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 당부는 유훈(遺訓)으로 자손들에게 전해져 내려갔다. 하지만 통치 지역이 넓어지고 유목민인 그들이 정주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유목 마인드의 본질을 잃기 시작됐다. 정주문명은 그들에게 안락한 생활을 선사했고, 이러한 생활은 고인 물이 썩듯이 몽고인의 변화추구정신을 황폐하게 했다.

또한 속도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테크노 헤게모니의 상실이 제국 해체의 한 이유가 됐다. 서구의 총의 발명은 몽골제국의 퇴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몽골 유목민이 세계를 정복한 무기는 말 탄 푸른 군대의 스피드, 기동성이었다. 그들은 날이 잘 선 칼과 멀리 날아가 깊숙이 꽂히는 화살촉이라는 두 날개를 달고 문명국가들을 정복했다. 그러나 총이 출현하면서 유럽인들은 몽골의 속박에서 벌어날 수 있었다. 이후 세계의 무게는 동양이 아니라 서양으로 기울었다. 몽골제국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것이다.

얇지 않은 책속에는 새로운 사실도 가득하다. 그 유명한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몽골제국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바로 몽골의 지도자와 티베트의 고승이 만나 몽골이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기로 결정하면서 몽골의 지도자가 티베트 고승에게 달라이 라마라는 명칭을 주었다 한다. 달라이는 몽골어로서 ‘바다’를 의미하며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달라이 라마’는 바다같이 넓은 스승을 뜻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적인 도시의 하나가 된 모스크바와 베이징도 몽골의 역사 유산에 힘입어 성장한 도시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군다나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을 이끈 것은 몽골의 세계 지배 때문이었다는 주장은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뒤집으니까 말이다. 230년간에 걸친 몽골의 러시아 지배가 서유럽의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사회주의 혁명을 발생시킨 원인이라는 주장도 이채롭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바그다드 점령과 몽골의 바그다드 장악이 매우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어 보인다. 당시 집권자가 막을 수 있다고 큰 소리 친 것이나 종파의 분리로 인해 시아파가 침략자에 동조한 점이 그렇다.

무엇보다 흥미진진한 것은 몽골 제국의 유산을 계승하지 못한 중국의 명나라가 중원의 패자가 됨으로써 뒤처졌던 서구가 동양을 따라잡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데 있어서는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명나라의 명(明)자가 이름과는 달리 실은 ‘어둠의 나라’였다는 점이다. 명의 주원장은 몽골의 원(元)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 진시황제의 문서갱유를 능가하는 언론 말살정책을 자행했고, 학문영역에서의 황무지를 만들어 문화의 암흑기를 연출했다. 정신적 발전을 멈추게 한 것이다. 또한 원의 황제였던 쿠빌라이가 바다로의 진출을 위해 닦아놓았던 해양교역로를 틀어막고 철저한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동서 교류의 흐름이 끊어지고 동양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책 속에 몇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몽골제국의 고려 침략사는 나를 슬프게 한다. 42년간의 몽골 침략으로 강산은 황폐화되고 민초들의 삶은 허덕였기 때문이다. 초기 몽골과 우리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집권층인 무인정권은 그들의 위세가 어떤지도 모른 채 그저 후진국의 오랑캐 정도로 생각했던지 정면충돌하기에 이른다. 결과는 백성의 질곡이요, 국토유린이었다.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끝없이 항쟁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나라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개성으로 환도 후 고려는 몽골과 화친을 맺게 되고 국권을 유지한다. 하지만 몽골이 존재하는 동안 속국으로 전락하여 그 고초가 원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된다. 힘없는 나라의 설움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21세기는 또 다른 유목사회로 일컬어진다. 저자는 이 책을 만든 목적을 이렇게 역설한다.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인의 ‘유목민 정신’을 회복하여 한반도에서 북방의 조선족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그리고 그 중앙의 몽골인을 연결해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꿈꾸고자 한다. ‘영광의 대제국 시대뿐만 아니라 무너져 버린 몰락의 시대까지 한 두름으로 엮어 놓은 흔치 않은 이 책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지혜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금 일고 있는 전 지구적 격변의 대폭풍은 인류의 삶을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 놓는 거대한 지각변동과도 같다. 과거 인류가 석기문명시대에서 청동기문명으로, 다시 철기문명으로 바뀌면서 예전에 상상할 수 없이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됐듯, 오늘날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는 변화의 핵심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는 ‘잡 노마드(Job Nomad)’ 사회로 가고 있다. 잡 노마드란 직업을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이란 뜻의 신조어로 과거의 직업 세계에 등을 돌린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평생 한 직장, 한 지역, 그리고 한 가지 업종에 매달려 살지 않는다. 이 신종 부류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분석하고 자신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는, 현재화를 실천하는 주인공이다. 잡 노마드는 과거 유목민의 기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결핍을 극복하는 능력, 본질에 집중하는 힘, 풍부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술,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 뿌리와 날개를 동시에 지니는 능력이 그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직업의 세계에서는 자유만이 진정한 안정을 보장해 준다. 이 책 칭기스칸-천년의 제국은 800여 년 전 잡 노마드를 품고 살았던 몽골인의 삶을 파헤치고 21세기를 해쳐나갈 핵심 키워드를 찾기 위해 씌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천년을 이어갈 생생한 역사를 품으며 우리는 가슴으로 눈으로 맥박으로 고동소리로 21세기를 살아갈 생존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 몫은 우리의 영혼과 심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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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23 19:57:35 *.70.72.121
1)‘한 사람의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만인(萬人)의 꿈은 현실이다.’
: 하물며 5천만이 꿈 꿀 수 있다면, 아니 우리가 백만 혹은 오백만의 깨어있는 꿈 벗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동방의 빛은 물론 하고 세계의 역사를 바꾸고,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를 이루게 될 것이다.

2) 무엇이 몽골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을까. 저자가 우선적으로 꼽는 것이 쿠릴타이의 전통이 무너진 점을 든다.
: 아직 언급하기에 역부족이지만 독서를 하면서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점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COREANITY 가 바로 서야 되겠다는 깨달음이다. 그래야 그동안의 지난한 역사의 질곡의 시간과 염원이 하나의 꿈 꽃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6월의 정원 가득 아름답고 환하게 어우러진 꽃물결처럼...

선배의 리뷰를 통해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드네요, 우리도 읽게 되겠지만 감사해요.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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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6.25 10:26:20 *.99.120.184
책을 보기전에 좋은 리뷰를 볼 수 있어 기쁩니다.
다음 인물이 칭기즈칸인데 미리 올려주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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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7.06.26 15:26:32 *.57.36.34
써니님

'한사람의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다' 제가 늘
가슴에 품고 있는 글귀의 하나입니다.

몽골의 쇠퇴길을 걷게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유목민정신의 상실'이지요. 즉 제도보다는
정신을 잃으면서 급속히 국운이 기웁니다.

우리도 국운이 쇠하지 않으려면 국가를 바로세울
정신 즉 혼이 필요합니다. 민족혼 말이지요.
저는 그 혼의 하나가 '홍익인간'이라 생각합니다.

여해님 늘 리뷰를 최우선적으로 올리니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두를 올리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지만
가능한 미리 올려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고가 될런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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