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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4일 23시 06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435-447) 백범 연보

2. 마음을 울리는 글귀

백범 출간사
13-애초에 이글을 쓸 생각을 낸 것은 내가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내 몸에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한 일을 시작할 때, 당시 본국에 들어와 있던 어린 두 아들에게 나의 지난 일을 알리고자 하는 동기에서 였다. 이렇게 유서 대신으로 쓴 것이 이 책의 상편이다.

14-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이는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맑스-레닌-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카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예전 동경을 우리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 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15-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온 것이다. 이것이 내 생에요. 내 생애의 기록이 이 책이다.

인*신 두 아들에게
19-지금 일지를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나를 본받으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너희들 또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니, 동서고금의 많은 위인 중 가장 숭배할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배우고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나를 본받을 필요는 없지만, 너희들이 성장하여 아비의 일생경력을 알 곳이 없기 때문에 이 일지를 쓰는 것이다.

상권
1. 황해도 벽촌의 어린 시절
28-아버님의 어렸을 때 별명은 ‘효자’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왼손 무명지를 칼로 잘라 할머니 입에 피를 넣어드려 사흘이나 더 사시게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던 날 영원히 돌아가셨다.

29-“너희 집에 허다한 풍파가 모두 술로 해서 생기니 너마저 술을 먹는다면, 나는 단연코 자살하더라도 그 꼴을 안 보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겼다.

30-“진사는 어찌하여 되는가요?” “진사 급제는 학문을 연마하여 큰 선비가 되면 과거 보아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은 후부터 글공부할 마음이 간절하여 아버님께 어서 서당에 보내 달라고 졸랐다. 아버님은 “동네에 서당이 없고, 다른 동네 양반 서당에서는 상놈을 잘 받지도 않거니와 받아주더라도 양반 자제들이 멸시할 터이니 그 꼴은 못 보겠다”며 주저 하신다. 결국 아버님은 문중과 인근 상놈 친구의 아동을 몇 명 모아 서당을 새로 하나 만드셨다.

2. 시련의 사회 진출
37-“돈만 많으면 과거도 벼슬도 다 할 수 있다. 글을 모르는 부자들이 큰 선비의 글을 몇백 냥 명천 냥씩 주고 사서 진사도 하고 그제도 하였다”고 한다. 드디어 나는 과거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위의 몇 가지 현상만 보아도 과거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무슨 가치가 있는가? 내가 심혈을 다하여 장례를 개척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인데, 선비가 되는 유일한 통로인과거장의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니. 내가 시, 부를 지어 과문 6체에 능통하더라도 아무 선생 아무 접장 모양으로 과거장의 대서 업자에 불과할 것이니 나도 이제 다른 길을 연구하리라 결심하였다.

39-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이것을 보고 나는 상 좋은 사람 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이제부터 밖을 가꾸는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종전에 공부 잘하여 과거하고 벼슬하여 천한 신세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허영이고 망상이요, 마음 좋은 사람이 취할 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마음 좋지 못한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으로 되는 방법이 있는 가 스스로 물어보니 역시 막연하였다.

42-설명을 듣고 나는 매우 마음이 흡족하였다. 과거에 낙방하고 난 뒤 관상공부에서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나에게 하늘님을 모시고 도를 행한 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또한 상놈된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나에게 동학에 입도만 하면 차별 대우를 철폐한다는 말이나 이조의 운수가 다하여 장래 새 국가를 건설한다는 말에서는 작년 과거장에서 품은 비관이 연상되었다.

43-“그대가 동학을 해보니 무슨 조화가 생기더냐?”고 물으면,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 하게 되는 것이 동학의 조화이다”라고 정직하게 대답하였다.

44-“지기금지원대강”(至氣今至願大降) - 지극한 기운과 원을 내려주소서

58-새벽 굼벵이는 살고자 흔적 없이 가버리니 / 저녁 모기는 죽기를 무릅쓰고 소리치며 달려든다.

61-당시 나의 심리 상태는 매우 절박하였다. 먼저 과거장에서 비판적인 생각을 품었다가 희망을 관상서 공부로 옮겼고, 나 자신의 관상이 너무도 못생긴 것을 슬퍼하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리라는 결심을 했었다. 그러나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 또한 묘연하던 차에 동학당의 수양을 받아 신 국가, 신 국민을 꿈꾸었으나 이제 와서 보면 그도 역시 바람 잡듯 헛된 일이었다. 이제 패전한 장수의 신세가 되어 안진사의 후희를 입어 생명만은 안전하게 지키게 되었지만, 장래를 생각하면 어떤 곳에다 발을 드디어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던 참이었다.

62-“선생님! 선생님은 저를 분명히 살펴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불과 스무 살에 일생의 진로에 대하여 스스로를 속이고 그르쳐 허다한 실패를 경험한바 민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자격과 품성을 밝히 보시고 좋은 점이 있다면 사랑도 하여 주시고 교훈도 하여 주십시오. 그렇지 못한다면 저의 발전은 고사하고 선생님 높으신 덕에 누를 끼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 “사람이 자기를 알기도 쉬지 않거든 하물며 남을 어지 밝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현을 목표로 하여 발자취를 밟아 가도록 하게. 예로부터 성현의 지위까지 도달한 자도 있고, 좀 모자라는 자도 있고, 성현이 되는 길이 너무 높고 멀다 하여 중도에 달아나거나 자포자기하여 금수만도 못한 자리에 몰려 있는 자도 있다네.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번 길을 고치고 나아가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네. 지금 마음에 고통을 가지는 것보다 행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고민은 즐거움의 뿌리이니, 자네, 상심 말게, 나 같은 늙은이가 자네 앞길에 혹시 보탬이 된다면 그 또한 영광이 아닌가?

63-선생은 주로 의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무리 발군의 뛰어난 재주와 능력 있는 자라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재능이 도리어 화근이 된다는 것과, 사람의 처세는 마땅히 의리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때에는 판단․실행․계속의 세 단계로 사업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 등. / 나의 정신과 재질을 보아 떨어진 곳을 기워주고 빈 구석을 채워주는 구천심수(口傳心受 : 문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절실히 필요한 바를 파악하여 말과 마음으로 전수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의 교법이 가장 빠른 길이라 여기신듯하였다.

66-“자네만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지들이 만으면 청나라의 경제․학계․상계 각 방면으로 들어가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은 누그 그런 뜻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자네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겠다 싶으면 그대로 실행하여 보는 것뿐이지.”

3. 질풍노도의 청년기
66-‘아비만큼 아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나 내가 노형보다 아드님에 대해 좀더 알지는 알겠소? 아드님이 못생겼다고 그다지 근심은 마시오. 내가 보건대 창수는 범상입디다. 인중이 짧은 것이라든지 이마가 두툼한 것이라든지 걸음걸이라든지, 장래 두고 보시오. 범의 냄새도 풍기고 범의 소리도 질러서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할는지 알겠소?’

94-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나는 곧 자문자답해 보았다. 문:“네가 보기에 저 왜인을 죽여 설욕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는가?” 답:“그렇다.” 문:“네가 어릴 때부터 ‘마음 좋은 사람’ 되기가 소원이 아니었더냐?” 답:“그렇다. 도적의 시체로 남겨질까 미리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다 거짓이고, 사실은 ‘몸에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소원만 가졌던 것이 아닌가.”

106-부모님은 내가 태어날 적에도 많은 고생을 하셨고, 또 나를 먹여 살리시기 위해 천중만금의 고생을 겪으셨다. 불서에 말하기를 “부모와 자녀는 천 번을 태어나고 백겁이 지나도록 은혜와 사랑을 끼치며 사는 인연”이라고 한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 숨이 끊어진 잠깐 동안, 나는 고향으로 가서 평소 친애하던 재종동생 창학이와 놀았다. 고시에 “고향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굳이 부르지 않아도 혼이 먼저 가 있도다”라 하였는데, 실로 헛말이 아니었다.

114-“문을 굳게 닫아걸고 자기 것만 지키려는 구 지식 ․ 구사상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가 없고, 세계 각국의 정치․문화․경제․도덕․교육․산업이 어떠한지를 연구해 보고, 내 것이 남만 못하면 좋은 것을 수입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 이 나라와 백성의 살림살이를 유익되게 하는 것이 시대 과제를 아는 영웅의 할 일인 것이오. 한갓 배외사상만으로는 이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오. 그러니 창수와 같이 의기 있는 남자는 마땅히 신지식을 구하여 장래 국가에 큰일을 하여야 하오.” /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하는 격으로, 내 죽을 날이 당할 때까지 글이나 실컷 보리라 하고 손에서 책 놓을 사이 없이 열심히 글을 읽었다.

117-김창수가 들어간 후로는 인천감옥이 감옥이 아니라 학교라고 쓴 기사를 보았다.

118-그것은 고선생 말씀 중 박태보의 보습 단근질 일화가 있었는데, 그는 보습으로 단근질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오히려 “이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너라”고 말했다 한다.

128-나는 죽이려 애쓰는 놈은 왜구들뿐인데, 내가 그놈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옥에서 죽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심사숙고하다가 탈옥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4. 방랑과 모색
137-이 동네에서 저 동네를 가는 마을 사람 모양으로 인천․부평 등을 지나갔다. 2,3년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감옥세계에서만 생활하다가 넓은 세상에 나와서 가고 싶은 곳을 활개치며 가노라니 심신이 상쾌하였다. 감옥에서 배운 시조와 타령을 하면서 길을 갔다.

138-3-4년 만에 비로소 망건을 쓰니 어찌된 일인지 저절로 눈물이 떨어졌다.

142-드디어 무전여행?

154-중이 되려면 제일 먼저 자기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고 하며,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금수나 곤충에게까지 자기 마음을 낮추지 않으면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고 하였다.

155-나는 깜짝 놀랐다. 망명객이 되어 사방을 떠돌아다니던 때에도 내게는 영웅심과 공명심이 있었다. 평생의 한이던 상놈의 껍질을 벗고, 평등하기보다는 월등한 양반이 되어 평범한 양반에게 당해온 오랜 원한을 갚고자 하는 생각이 가슴 속에 가득하였다. 그런데 중놈이 되고 보니, 이상과 같은 생각은 허영과 야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불씨 문중에서는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악마와 같은 생각이었다. 만일 이런 따위의 악한 생각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싹트고 자랄 때에는, 곧 호법선신께 의뢰하여 물리쳐내야 하는 것이었다. ‘하도 많이 돌아다녔더니 나중에는 별세계 생활을 다 하겠다’ 이런 생각에 혼자서 웃다가 탄식하다가 하였지만 순종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162-내가 보통이면 그대들도 보통이다.

173-“뱀의 꼬리를 붙잡고 올라가면 용의 머리를 볼 터지요”

174-조금 누락된 것이 있다. 창수라는 이름이 쓰기 매우 불편하다 하여 성태영과 유완무가 이름을 고쳐 지어주었다. 이름은 김구라 하고, 호는 연하, 자는 연상이라 고쳐서 행세하기로 하였다.

180-아, 슬프도다! 이 말을 기록하는 오늘까지 30여 년 동안 내 마음을 쓰거나 일을 할 때, 만에 하나라도 아름다이 여기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당시 청계동에서 고선생이 나를 특히 사랑하시고 심혈을 다 기울여 구전심수하시던 훈육의 덕일 것이다. 다시 이 세상에서 그같이 사랑하시던 위대한 얼굴을 뵙지 못하고, 다시 그 참되고 거룩한 사랑을 받지 못하겠으니, 아 슬프고도 애통하도다!

181-그래서 나는 허벅지 살을 베어내기로 결심하고, 어머님이 계시지 않을 때를 틈타 왼쪽 허벅지에서 살 조각 한점을 떼어내었다. 고기는 불에 구워서 약이라 아뢰고 잡수시게 하고, 흐르는 피는 드시게 하였다. 그래도 양이 적은 듯하여 다시 칼을 들어 그보다 크게 살조각을 떼어내려고 할 때에는, 처음보다 천백 배의 용기를 내어 살을 베었지만 살조각은 떨어지지 않고 고통만 심했다. 두 번째는 다리 살을 베어놓기만 하고 손톱만큼도 떼어내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 탄식했다.

182-나는 상놈의 딸은 고사하고 정승의 딸이라고 재물을 따지는 결혼을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183-첫째 재산을 따지지 않는다. 둘째 처녀는 학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 직접 상면하여 서로의 마음이 맞으면 결혼한다.

5. 식민의 시련
196-애국사상을 고취하여 인민으로 하여금 국가가 곧 자기 집인 줄을 깨닫고, 왜 놈이 곧 자기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자기 자손을 노예로 삼을 줄을 분명히 깨닫도록 하는 수밖에 다른 최선책이 없다고 생각했다.

214-“군이 국사에 비분하여 용기 있게 활동하는 것은 극히 가상하나,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대장부가 총기로 자기 부인을 위협하고 동네에서 총을 마구 쏘아 민심을 요란케 하는 것은 의지가 확고하지 못한 표정이오, 그러나 지금 칼과 총을 나에게 맡겨두고, 의지를 더욱 강하고 굳게 수양하고 동지도 더 사귀고 얻어서, 실행할 수 있을 때 총과 칼을 찾아가는 것이 어떠하오?”

221-나는 평소에 무슨 일이든지 성심껏 보거니 하는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나라를 남에게 먹히지 않게 구원하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되씹는 저 왜구와 같이 밤을 새워 일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스스로 물어보니, 온몸이 바늘방석에 누운 듯이 고통스런 와중에도 내가 과연 망국노의 근성이 있지 않은가 하여 부끄러운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찼다.

236-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에도 학생들이 나를 숭배함보다, 내가 학생들에게 천배 만배의 숭배와 희망을 두고 있었다.

239-왜놈이 나를 뭉우리들로 인정하는 것은 참 기쁘다.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들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들의 책무를 다하리라.’는 생각을 가슴 깊이 새겼다. 나는 죽는 날까지 왜마의 소위 법률이란 것을 한 푼이라도 파괴할 수만 있다면 계속 행하고, 왜마를 희롱하는 것을 유일한 오락으로 삼고, 보통사람으로 맛보기 어려운 별종생활의 진수를 맛보리라고 결심하였다.

246-우리 어머님은 참 놀랍다고 생각된다. 나는 17년 징역 선고를 받고 돌아와서 잠은 전과 같이 잤어도 밥은 한 끼를 먹지 못한 적이 있는데 어찌 이렇게 강인하신가 탄복하였다.

254-그리하여 후일 우리나라가 독립한 후 감옥 간수부터 대학 교수의 자격으로 사용하고 죄인을 죄인으로 보기보다는 국민의 일원으로 보아서 선으로 지도하기에만 주력해야 하겠고, 일반 사회에서도 감옥살이 한 자라고 멸시하지 말고 대학생 자격으로 대우해야 감옥 설치한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267-‘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달라’고.

6. 망명의 길
290-내 일생에서 제일 행복이라 할 것은 기질이 튼튼한 것이다. 거의 5년의 감옥 고역에 하루도 병으로 일 못한 적 없었고, 인천감옥에서 학질에 걸려 반절 동안 역을 쉰 적이 있을 뿐이다. 병원이란 곳에서 혹을 떼러 제중원에 1개월, 상해에서 온 후 서반아감기로 20일 동안 치료한 것뿐이다.

하권
296-지금 하권을 쓰는 목적은 내가 50년 동안 분투한 사적을 기록하여. 숱한 과오를 거울삼아 다시는 이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것이다.

298-자살도 자유가 있는 데서나 가능한 것이다. 자유를 잃으면 자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1. 상해 임시정부 시절
307-나의 신조는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로 인하여 종종 해를 당하면서도 천성이라 평생 고치지 못하였다.

4. 다시 민족운동의 전선으로
365-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내 나이 오십여라, 과거를 회상하고 장래를 추상하니 신세 가련하다. 서대문감옥에서 소원하기를, 천우신조로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가 성립되거든 정부 문지기를 하다가 죽으면 여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 소원을 초과하여 최고직을 경험한 나의 책임을 무엇으로 이행할까 하는 생각에서 모험사어에 착수할 것을 결심하고, [백범일지]를 쓰기 시작하여 1년 2개월 만에 상편을 완성하였다. 경과 시실의 모년 모일을 기입한 것은 본국에 계신 모친께 편지를 올려 답장을 받아 기입하였으나, 지금 하편을 쓰는 때에도 어머님이 곧 생존하셨더라면 도움이 많았을 터이건만, 슬프도다!

367-“나는 지금부터 시작하여 ‘너’라는 말을 고쳐 ‘자네’라 하고, 잘못하는 일이라도 말로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네, 듣건대 자네가 군관학교를 하면서 다수 청년을 거느리고 남의 사표가 된 모양이니, 나도 체면을 세워주자는 것일세.”

5. 중정 임시정부와 광복군
386-봉빈은 비록 여성이나 총명․과감하여 전시공작의 효과와 능률이 중국 방면에까지 널리 알려져 칭찬을 받았으며, 봉빈 자신도 항상 자기가 경이적인 공헌을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어 장래가 촉망되는 바이다.

6. 해방 전후의 대륙
392-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가 주의를 논의할 때가 아니고, 민족적으로 조국을 광복한 후 가각의 주의로써 당적 결합을 할 셈하고, 지금은 단일적으로 각 단체럴 합동․통일하는 것이 옳다고 제의하였다.

7. 고국에 돌아와서
409-착륙 즉시 눈앞에 보이는 두 가지 감격이 있으니, 기쁨이 그 하나요 슬픔이 그 하나이다. 내가 해외에 있을 때 우리 후손들이 왜적의 악정에 주름을 펴지 못하리라 우려하였던 바와는 딴판으로, 책보를 메고 길에 줄지어 돌아가는 학생의 활발 명랑한 기상을 보니 우리 민족 장래가 유망시 되었다. 이것이 기쁨의 하나이다. 반면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동포들의 사는 가옥을 보니, 빈틈없이 이어져 집이 땅같이 낮게 붙어 있었다. 동포들의 생활수준이 저만치 저열하다는 것을 집작한 것이 유감의 하나였다.

420-그러나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 옛날 나를 따라 오시던 어머님 얼굴만 뵈올 길이 없으니, 앞이 캄캄하여 쏟아지는 옛 추억의 눈물을 금할 길 없었다. 중경에서 운명하실 때, “나의 원통한 생각을 어찌하면 좋으냐.” 하시던 어머님 최후의 말씀을 생각하니, 그것이 이날 이 자리에 모자가 같이 옛이야기를 하지 못할 줄 예측하시고 하신 말씀 같아 슬픈 마음을 진정키 어려웠다.

305-318 나의 소원 전문


3. 내가 저자라면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 밖에 없다.

마술처럼 모든 시간이 멈추었다. 가슴이 떨렸다. 연구원 과정 중 이렇게 가슴 떨리며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늘 머리로 정리하고 이해하고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 안전부절했던 시간들은 사라지고, 그냥 그가 보였다. 그가 좋았다. 그냥 너무 좋았다.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준 그의 이야기들은 바로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때로는 가슴 아프게, 때로는 웃기게,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따스하게, 때로는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나의 소원’에 담긴 김구의 70년 철학. 백범일지 상하권에 펼쳐진 그의 삶의 실타래들이 얽히고 어우러져 만들어낸, 단단하게 짜여진 소박하고 아름다운 스웨터를 떠올리게 했다.

3-1. 생생 스토리

그의 책은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 살아있다.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해 나간 단순한 그의 책이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을까. 그의 험난한 인생의 굴곡의 내용이 한 몫을 했더라도, 그가 가진 문장력과 탄탄한 스토리 전개는 과히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생한 장면 묘사와 적절한 설명과 사진들, 그의 경험과 맞물려 있는 역사적 배경과 느낌들이 과거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과장됨과 축소됨이 없이, 그 맛이 아주 단백하고 쫄깃하다.

3-2. 가슴으로 만난 김구

E. H. Carr는 영웅은 시대의 산물이라 했던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영웅 김구를 만나게 되면서 영웅의 탄생 안에는, 우연적이고 비밀스러운 천가지 빛깔의 일상들이 어우러져 있음을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내 무의식에서는 한 나라의 독립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그럴만한 환경과 대단한 사건, 사연들을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상권을 읽는 내내 그러한 생각을 했던 내가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는 결코 영웅적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으며, 존경받는 자리에서 자신을 영웅적으로 표현하려 하지도 않았다. 두 아들에게 바치는 이야기이기에 더더욱 아비로서 치부를 숨기고, 좋은 이야기만을 늘어놓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다양한 빛깔의 일상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 두 아들들과 후세의 자신을 본받을 사람들에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온 것이다. 이것이 내 생에요. 내 생애의 기록이 이 책이다.(15)”

3-3. 도진순의 힘

이 책의 가장 첫 페이지에 등장한 내용은 ‘교감 원칙’이다. 이것은 도진순이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이 책을 만들어 냈는지 절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는 한국현대사 전공의 소장학자로서, 백범 관련 글과 논문이 10여 편이 넘는 이 분야의 권위자로 오랜 기간 동안 백범에 관한 학문적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백범일지』 출간을 위해 4년여에 걸친 집중적인 작업을 해오면서, 친필 원본은 물론 등사본, 필사본, 추가본과 수많은 출간본을 검토하고, 옛 문헌과 자료들을 수집·분석하는 등 새로 출간하는 『백범일지』 정본화 작업에 완벽성을 기하기 위하여 노력했다고 한다. 원본의 순수성을 지켜나가면서 국한문 혼용의 어렵고 난삽한 고문을 쉬운 현대문으로 교열하고, 정확한 자료제공을 위하여 비평을 아끼지 않았으며 현장성을 살기 위하여 적절히 사진, 문서, 지도 등의 자료를 활용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백범일지를 좀더 정확하게,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이 책에 감동을 더하는 부분이다.

3-4. 아직도 가야할 길

세계화,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이름아래, 자본에 따라 문화가 이동, 혼재, 사라져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의 문화가 언제 빛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 속에서, 김구의 ‘민족’과 교육 사상은 보수적인 사상이 아닌,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가장 진보적인 사상이자 앞으로 가야할 길을 안내해주는 등불이다. 그 빛을 따라 현실에 맞추어 길을 걷는 것이 구본형이 말한 ‘코리아니티’를 규정해 내는 것일 게다. 구본형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수의 한국인을 규정하는 ‘코리아니티’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라는 수수께기를 풀어야 한다. 내면적 자산인 코리아니트를 명료하게 찾아내어 계발하고 보완하고 강화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비즈니스 영역에서 특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적 자산인 코리아니티를 명료하게 찾아내고 계발하여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현실을 꿈꾸는 것. 이것이 김구가 말한 현실의 진리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독립을 실현해 나가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의 사상과 뜻을 이어받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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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2007.06.24 22:53:35 *.147.1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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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6.24 22:59:32 *.232.147.203
붸리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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