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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02시 19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서: 다산 문선 솔(2007년판) 민족문화 추진회 편
저자: 정약용(1762~1836)

정조 대왕의 사랑을 받으며 40세까지 벼슬을 살다가 순조가 즉위하면서 남인에 속했던 정약용은 경쟁당파에 의해 밀려나 귀양살이를 한다. 그는 순조 원년(1801) 신유사옥으로 인하여 18년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조선사회의 현실에 대하여 직접적인 분석과 비판을 가하는 많은 저서를 남기어 실학 최대의 학자로 불리고 있다.
저서로는 유명한 3부작인 목민심서(지방행정에 대한 개혁), 경세유표(중앙의 정치 조직에 관한 의견), 흠흠신서(형정에 대한 견해) 마과회통(종두법) 등이 있다.

다음은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한국사 신론에서 발췌해 정리하며 정약용의 삶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조가 왕위에 있는 동안 남인(南人)인 체제공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서학을 묵인하는 방향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서학에 대한 큰 박해는 없었다. 그러다가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대왕대비가 후견을 하자 서학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신유사옥이고 이 때 천주교와 관련 있었던 정약용과 정약전은 유형을 당한다.
신유사옥은 당시 대왕대비 김씨와 연결되는 노론(老論)벽파(僻派)가 남인(南人)시파(時派)를 타도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정약용의 다산 문선에서 보자면 천주교 신자라고 말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그 시대에서는 양반 중에서 정권에 참여하지 못했던 남인(南人)의 시파(時派)학자들이 많이 믿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박해가 심해지면서 19세기에는 대체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많이 믿게된다.

약한 자를 억누르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는 벌열들이나 부농, 거상들로 말미암아 빚어진 모순에 가득 찬 현실 속에서 이에 비판적인 재야학자들이 이 서학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암담한 현실 속에서 몸부림치던 일부 경세치용의 실학자들은 종교적 신앙을 통하여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데 새로운 희망을 느끼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서학이 유행한다는 것은 벌열중심의 양반사회, 성리학 지상주의의 사상적 질곡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다.

여기서 잠깐 조선 시대의 붕당의 역사를 살펴 보자. 당파싸움이라 기억되는 조선 시대는 어떤 면에서는 추한 모습도 있겠지만 다른 좋은 면으로는 서로 견제하는 면도 있었다.

먼저 신진관료인 동인(東人)과 기성관료였던 서인(西人)으로 붕당 초기에는 동인이 득세했다.
서인이었던 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자는 건저의사건을 전후하여 동인 중에서 서인에 대한 온건파:남인 (南人)와 강경파:북인(北人)로 대립하면서 광해군시대에 북인이 정권을 담당한다.

그러다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대세력인 서인이 정권을 담당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정치의 실권을 쥐게 된다. 숙종 때 남인이었던 장희빈 시대에 잠깐 남인들이 정권을 잡기도 하나 갑술환국이후 서인이 계속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권력의 장기 집권은 서인들 사이에서도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갈리게 하며 노론이 주로 정치권력을 쥐었다. 그리하여 서인, 특히 노론을 중심으로 한 장기 집권 가문 즉 벌열(閥閱)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그러자 자연히 정치적으로 패퇴하여 나라를 원망하는 무리들이 생기게 되며 당시의 현실을 개혁하려는 실학사상(實學思想)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여러 붕당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던 왕권의 권위가 실추되기도 하면서 그 사태를 시정하기 위해 우리가 많이 들었던 영조 정조시대의 탕평책이 취해졌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영조의 아들 장헌세자의 죽음을 계기로 그 죽음에 동정하는 시파(時派)와 벽파(僻派)의 대립이 또 생겨났다.

이러한 토양에서 탄생된 실학은 정치와 사회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정권 담당자들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었고 정권에 참여하지 못한 측에서 그러한 노력이 더 많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정권에서 축출되어 있었던 남인(南人)들 중에 실학자가 많이 나왔다.

그러한 실학자 중에서 경세치용의 학문을 집대성한 학자는 정조 순조때의 정약용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쉰일곱에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그 후 저술에만 몰두하다 일흔 다섯에 생을 마감하였다.

정약용의 개인적인 모습은 본 다산 문선의 하기 인용 글에서 보기로 한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

가운데 봉우리의 정상에 서면 날듯이 세상을 가볍게 보고 홀로 특별히 다른 길을 가는 기분이 들어 인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마음에 둘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7p

중이 중노릇을 하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무릇 부모 형제 처자의 즐거움이 없고 술 마시고 고기 먹고 음탕한 소리와 아름다운 여색의 즐거움이 없는데 저들은 어찌하여 고통스럽게도 중 노릇을 합니까. 진실로 그와 바꿀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18p

어렸을 때 노닐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고 곤궁했을 때 지내던 곳을 입신 출세하여 찾아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며 홀로 외롭게 지나가던 땅을 좋은 손님들과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이끌고 온다면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19p

무릇 사물 중에서 아름다운 것은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그것을 얻을 때는 마치 사나운 새와 짐승이 먹이를 움켜잡고서 사방을 둘러보는 것과 같으며 그것을 얻지 못할 때는 마치 궁한 귀신이 슬퍼 울부짖는 것과 같으니 또한 가련하지 않은가. 22p

다만 달이 예로부터 하늘에 있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얻었으므로 본체 만체하며 버려두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슬프다. 내가 참으로 그것을 갖는다면 이는 내가 얻은 것이다. 그 예로부터 존재하여 모든 사람이 얻었던 것이야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23p

대체로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 하므로 매우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사방의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한 나머지 매우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 25p

우리나라의 일은 고려 이전까지는 물을 것이 없다. 32p

연못 빛깔은 옻칠과 같이 순흑색이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비록 봄날의 대낮이라도 이곳에 오면 음산하고 싸늘하여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41p

“네가 한 번 죽음으로써 나는 세 가지를 잃었다. 아들을 잃고 친구를 잃고 스승을 잃었다” 55p

내 몸을 이미 엄정하게 닦았다면 그 벗을 사귀는 것도 자연히 단정한 사람일 것이다. 서로를 알아주는 지기는 서로 모이게 되는 것이므로 결코 특별한 힘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61p

사람을 알아보려면 먼저 가정에서의 행실을 살펴야 한다. 만약 그의 옳지 못한 점을 발견하면 즉시 자신에게 비춰보아 자기에게도 그런 잘못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러지 않도록 힘차게 공부를 해야 한다. 62p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란 임금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에게 사랑 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임금에게 신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63p

아름다운 말과 글귀로 문장이나 꾸미는 조그마한 기교는 비록 한 시대에 회자된다 하더라도 배우가 무대에 올라 우스갯짓을 하는 것과 다름 없다. 64p

내가 죽은 뒤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안주를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흠향하고 기뻐하는 것은 내 책 한 편을 읽어주고 내 책 한 장을 베껴주는 일보다는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그 점을 기억해 두어라. 67p

유배되면서부터 지은 것들은 괴롭고 고통스러움을 토로한 시가 없지 않으나 나는 평소에 유자후의 유배시기의 글들이 처량하고 구슬픈 언어가 대부분인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던 터라 마침내 시 짓는 일을 그만두었다. 69p

하늘은 총명한 사람을 아껴 한 사람에게만 아름다운 이름이 돌아가게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험할 수 있다. 70p

무릇 시에는 정신과 기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쓸쓸하고 산만하기만 하여 결속과 단속의 묘미가 없는 시는 그 사람의 빈궁과 영달은 고사하고 수명도 길지 못하니 이 점은 내가 여러 차례 시험한 것들이다. 시경 3백 편은 모두 성현들의 뜻을 잃고 시대를 근심한 작품들이다. 그러므로 시에는 반드시 마음에 깊이 느낀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미묘하고 완곡하게 표현을 해야지 얄팍하게 드러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 72p

화와 복의 이치에 대하여는 옛날 사람들도 의심해 온지 오래 되었다. 충과 효를 행한 사람이라 하여 반드시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음란하고 방탕한 자라 하여 반드시 박복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이 복을 받는 도가 되므로 군자는 부지런히 선을 행할 뿐이다. 76p

형체가 있는 것은 파괴되기 쉽지만 형체가 없는 것은 없애기가 어려운 것이다. 80p

무릇 하늘에게 부끄럽고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전혀 범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가 생기는 것이다. 82p

큰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백성들이 수 만 명이나 되므로 하늘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내가 굶어 죽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체로 모두 게으른 사람들이었다. 하늘은 게으른 자를 미워하여 벌을 내리는 것이다. 83p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에 있을 때 상추로 쌈을 싸서 먹으니 손님이 물었다.
“쌈을 싸서 먹는 것과 절여서 먹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나의 입을 속이는 법일세.”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모름지기 이런 생각을 가져라. 정력과 지혜를 다하여 변소간을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으리라. 85p

도량의 근본은 용서함에 있다. 용서만 할 수 있다면 좀도둑과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라 할 지라도 아무 말 없이 보아 넘길 수 있을 것인데 하물며 그 밖의 일이야 말할 게 있느냐. 95p

요컨대 알아야 할 점은 아침에 햇빛을 먼저 받는 곳이 저녁 때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피는 꽃은 그 시듦도 빠르다는 진리인 것이다. 97p

내가 저술에 전념하는 것은 단지 눈 앞의 근심만을 잊으려는 것뿐이 아니다. 부형이 되어서 이토록 누를 끼쳐준 것을 부끄럽게 여겨 이로써 속죄하고자 해서이니 이 뜻이 어찌 심각하다고 하지 않겠느냐. 109p

반드시 매우 총명한 선비가 지극이 곤궁한 지경을 만나서 사람들과 수레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는 곳에서 종일토록 외롭게 있은 뒤에야 경례의 정밀하고 자세한 뜻을 비로소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가려 뽑는 방법은 나의 학문이 먼저 주관이 있어 확립된 뒤에야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는 저울이 마음 속에 있어서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는 것이다. 112p

이 독서야말로 인간의 제일 가는 깨끗한 일로서 호사스런 부호가의 자제는 그 맛을 알 수가 없고 또한 궁벽한 시골의 수재들도 그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다. 오직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가 있고 중년에 재난을 만나 너희들 처지와 같은 자라야 비로소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저들이 독서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뜻도 모르고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독서라고 일컬을 수 없기 때문이다. 115p

성의(誠意)공부는 가장 먼저 황당한 말을 하지 않는 것부터 힘을 써야 할 것이니 한 마디의 황당한 말을 세상의 가장 큰 죄악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127p

두보의 시는 고사를 인용하는 데 흔적이 없어서 읽어보면 스스로 지은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근본이 있으니 이 점이 바로 두보가 시성이 되는 이유이다.
퇴지 한휴의 시는 자법(子法)은 모두 근본이 있으나 구어(句語)는 스스로 지은 것이 많으니 이 점이 그의 시가 뛰어난 이유이다.
동파(東坡)소식(蘇軾)의 시는 구절마다 사실을 인용하였는데 흔적이 남아 있어 얼핏 보면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반드시 이리저리 고찰하고 검사해서 그 근본을 캔 뒤에야 겨우 그 뜻을 통할 수 있으니 이 점이 바로 시의 박사가 되는 이유이다. 138p

폐족은 오직 벼슬길에만 꺼리는 바가 있을 뿐 폐족으로서 성인이 되고 문장가가 되고 진리를 통달한 선비가 되기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151p

나는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해 대략 알게 되었다. 책을 그냥 읽기만 하면 하루에 천 백 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한 글자를 볼 때마다 그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자세히 연구해서 그 근본을 터득하고 따라서 그 글의 전체를 완전히 알 수 있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을 때에 아울러서 수백 가지의 책을 널리 찾아보게 될 것이요, 따라서 본서의 의리에 대해서 분명히 꿰뚫을 수 있으니 이 점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171p

격이라는 것은 끝까지 연구하여 끝까지 도달한다는 뜻이니 끝까지 연구해서 끝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172p

참으로 술 맛이란 입술만 적시는 데 있는 것이다. 소가 물을 마시듯 마시는 저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는 적시지도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다. 173p

요새 사람들은 수령이 되었다 하면 번번히 “ 이 지방은 인심이 나쁘다” 하는데 이 말 한마디가 천 사람의 마음을 잃는 것이다. 동해이건 서해이건 마음의 이치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조그만 마을에도 반드시 충절과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있고 공자의 마을에도 역시 개구쟁이 짓을 하는 소년은 있게 마련이다. 182p

공자가 말하기를 “용모로써 사람을 취했더라면 자우에게 실수할 뻔 하였다”하였으니 참으로 성인이다. 198p

“풍수의 이치는 꼭 있다고도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꼭 없다고도 할 수가 없다.”
아, 쟁론(爭論)을 이런 식으로 판결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선비가 되기도 어렵다. 206p

아랫사람은 거짓으로 윗사람을 속이고 윗사람은 거짓으로 아랫사람을 농락하면서도 서로 모르는 체 시치미 뚝 떼고 구차스럽게 탓하는 사람이 없다. 이 지경인데도 예에 의거 이것이 거짓임을 발론하여 그 간사함을 밝힘으로써 풍습을 교화하는 것을 바로잡으려는 군자가 없으니 이는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상하 모두가 이것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 중하기 때문이다. 213p

무릇 간사한 짓은 오래 있는 데서 생기게 된다. 따라서 오래 있지 못하게 되면 간사함도 노련해 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237p

진실로 부모에 대하여 효도하는 자라면 비록 학문을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반드시 학문을 했다고 말하겠다. 290p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식을 모두 거느리고 와서 여한 없이 한 번 실컷 포식하라. 300p

[내가 저자라면]

몰락한 사대부 집안, 귀양 길에 오른 남자들, 남겨진 가족, 유교적인 굴레,
그저 忍苦하며 보내야만 했던 과거의 영광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밤마다 책상 앞에서 앉아 글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사람.
어린 아들에게 누를 끼쳤다면 속죄하노라 글을 쓰며 당근과 채찍을 보낸 아버지.
그리고 결국 주자의 格物致知라는 그 말대로 끝까지 연구하여 끝까지 도달하였던 학자….

너무나 유명한 다산의 글을 읽은 소감은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박식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다. 수려한 문장과 심지 있는 글들이 그의 인품을 짐작하게 하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관습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행히 이번 책에서는 그의 활동범위가 한국 내에서 머무는 지라 특별히 좋아하는 지도를 찾을 일은 거의 없었다. 대신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 배를 띄어 달빛을 즐기는 모습에서 언젠가 고수부지에서 보았던 한강의 강물이 떠 올라 친밀감과 더불어 그 시대의 현장 속에 있는 느낌마저 강하게 들었다. 물론 나는 달 빛이 아니라 유람선의 조명이었지만..

세검정이나 명례방 창의문과 같은 곳. 이 모두 다 지금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자연의 수혜를 받으며 현존하고 있다. 그 옛날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살며시 눈을 감고 빌딩들을 CG로 지워 과거를 상상해 본다. 참 많은 인공의 형태들로 변해버렸다. 저것들은 또 한 백 년 후쯤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차피 변할 수 밖에 없다면 인구가 밀집된 도시들만 변하고 푸른 숲은 그냥 그대로 남아주길 바라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도시인의 이기로 비춰질 수 있으리라.

여행기에서는 익숙한 남한의 모습뿐만 아니라 전 산하, 특히 북쪽의 서술은 새로웠다.
얼마나 산이 우거졌길래 이런 글을 썼을까? “연못 빛깔은 옻칠과 같이 순흑색이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비록 봄날의 대낮이라도 이곳에 오면 음산하고 싸늘하여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곡산 북쪽에서의 기록인데 이런 기술로 보아 그 쪽의 산 과 들의 모습이 짐작된다.

아들에게 전하는 말에서는 글을 쓰는 대상이나 자세에 관해 서술되었는데 자기연민에 빠져 세상을 한탄하거니 한 때 인기에 머무르려는 얄팍한 심리를 경계하고 있다. 뒤통수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낭랑하게 타이르는 목소리가 마치 내 자신에게 하는 소리 같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난 귀양지에서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잠시도 붓을 놓지 못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절절하고 엄하기도 하고 오직 글로써만 훈육을 해야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가 하면 아들 입장에서는 (실은 리뷰를 써야만 하는 본인의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다만) 그런가 보다, 맞는 말이야, 네에..하면서 읽는데 타이름이 계속해서 반복 되니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자꾸 들으면 슬쩍 도망갈 궁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는데 이것은 아버지를 생각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인지라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 보았으리라. 나중에 아들들도 책을 발행한다. 요즘 시대 같으면 정약용 어록이라고 불릴 만큼 좋은 말들이 많다.
곁에 두고 게으름이 올 때마다 한 번씩 읽어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글임에 틀림없다.

아들에게서 의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받고선 지엄하게 꾸짖는 모습이 특이했다. 당시 의원에 대한 인식이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2000년도의 다산이었다면 그래도 그렇게 아들에게 훈계했을까? 시대적 배경을 알면서도 그래도 몇 가지 딴지를 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의원이야기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그의 글에 나오는 성인의 다섯 가지 교훈에는 부모, 형제와 아들이다. 유감스럽게도 아내와 친구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 시대의 남성답게 다산의 글에는 아내나 딸에게 쓰는 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시대의 소명에 따르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으니 그도 그럴 법하다고 수긍은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이 글을 읽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역시 가부장적인 제도가 이런 합리적인 사람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구나 하며 유교적 이데올러기에 대해 다시 한번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여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거의 남자들만 나오는 문선. 이럴 땐 아무리 생각해도 유전자를 반씩 제공한 여성들의 지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0만년전의 아프리카에서 걸어나온 루시 아줌마를 찾기 위해 여성의 유전자에만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찾아서 인간의 기원을 밝혀낸 사실들이 엄연한데 여자들의 존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모습들을 보면 주자학과 같은 이데올러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백범선생의 글 속에는 이런 이데올러기의 폐해에 대해 준엄하게 한 마디 하시고 계신다.

"우리 나라의 양반 정치도 일종의 계급 독재이어니와 이것은 수 백 년 계속하였다. …..그러나 모든 독재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 백 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 중에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다만 정치에 있어서만 독재가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 생활까지도 규정하는 독재였다. 이 독재 정치 밑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소멸되고 원기는 마멸된 것이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치었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여기 있었다. "

그 시대의 그 문화 속의 남자로 자랐으니 도리가 없겠다만 이 부분에서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相에 대해 논하는 말, 풍수에 대해 논하는 말 그 모두가 그 시대의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합리적이다. 붓끝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소의 소신대로 그가 쓰고자 하는 대로 썼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문장이 이리도 술술 읽힌단 말인가.

부정부패와 뇌물에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이 이어지고 나라에 대해 바른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수 많은 글을 남긴 대 학자.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자세와 그로써 후대에 큰 업적을 남긴 다산 정약용을 찬찬히 인간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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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7.06.25 06:33:42 *.132.188.244
"도대체 여자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정약용의 마음 속 깊이 있었을 겁니다. "여보 사랑해, 당신 뿐이야 "라고 차마 글로는 표현을 못하고...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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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26 22:59:11 *.48.41.28
하하 양수님. 반갑습니다.
그랬군요..마음 속에 콕..
막연하게 그랬을거라고 믿지만 그럴듯한 표현이 있었음 했다는 거.
지난번엔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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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 [리뷰014] 백범일지, 김구 [2] 香山 신종윤 2007.06.18 2597
894 [14] 白凡逸志 / 金九 [3] 써니 2007.06.18 2076
893 백범일지-김구 file 海瀞 오윤 2007.06.18 2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