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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7일 23시 21분 등록
읽은 책: 백범 일지 돌베게(2007년 개정판) 도진순 주해
글쓴 이: 김구

[저자에 대하여]

김구(1876~1949)

반상이 존재하던 조선 말기에 태어나 상놈의 설움을 몸으로 느끼고 세상의 모순에 눈을 뜸.
독립운동가, 교사, 동학교도, 기독교도, 스님등 당시의 한국에서 벌어지던 제상황을 몸으로 체험하며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표현하였고 그 결과 투옥생활과 망명 생활 등을 거침. 그의 소원이었던 조국의 독립을 보았으나 같은 겨레의 사주에 의해 암살됨. (향년 74세)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14p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온 것이다. 이것이 내 생애요, 내 생애의 기록이 책이다. 15p

새벽 굼뱅이는 살고자 흔적 없이 가버리나
저녁 모기는 죽기를 무릅쓰고 소리치며 달려든다. 58p

선생은 주로 의리(義理)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무리 발군의 뛰어난 재주와 능력 있는 자라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재능이 도리어 화근이 된다는 것과, 사람의 처세는 마땅히 의리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때는 판단, 실행, 계속의 세 단계로 사업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일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라 할 수 있다. 63~64p

“만고 천하에 흥해보지 못한 나라가 없고 망해보지 못한 나라가 없네. 종전에는 토지와 백성은 가만두고 군주 자리만 빼앗는 것으로 흥망을 논하였지. 그러나 지금의 망국이란 나라의 토지와 백성과 주권을 모두 강제로 집어삼키는 것이네. 우리나라도 필경 왜놈에게 망하게 되었니. 소위 조정대관들은 전부 외세에 영합하려는 사상만을 가지고 러시아를 친하여 자기 지위를 보전할까, 혹은 영국이니 미국을. 혹은 프랑스를, 혹은 일본을 친하여 자기 지위를 견고히 할까, 순전히 이런 생각들뿐이라네. 나라는 망하는 데, 국내의 최고 학식을 가졌다는 산림학자들도 한탄하고 혀만 차고 있을 뿐 어떠한 구국의 경륜도 보이지 않으니 큰 유감일세, 나라가 망하는 데도 신성하게 망하는 것과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더럽게 망하게 되겠네. “
내가 놀라 질문하지 선생은 대답하였다.
“일반 백성들이 의(義)를 붙잡고 끝까지 싸우다가 함께 죽는 것은 신성하게 망하는 것이요, 일반 백성과 신하가 적에게 아부하다 꾐에 빠져 항복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일세. 지금 왜놈세력은 온 나라에 차고 넘쳐 대궐 안까지 침입하여 대신들을 마음대로 내치니 우리나라를 제2의 왜국(倭國)으로 만든 것 아니겠는가? 만고 천하에 망하지 않은 나라 없고 죽지 않는 사람이 없은즉 자네나 나나 죽음으로 충성하는 일사보국(一死報國) 한 가지 일만 남아있네.”
선생은 슬픈 낯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도 울고 또 물었다. 65~66p

조선의 四大物이라 함은 경주의 인경과 은진 미륵, 연산의 쇠솥, 함흥의 장승을 이르는 것이다. 71p

의리는 유학자들에게 배우고 문화와 제도 일체는 세계 각국에서 채택하여 적용하는 것이 국가의 복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5p

삼남 양반의 위엄이나 속박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런 중에도 약간의 미풍 양속이 없지는 않다. 모내기철에 김제(金堤) 만경(萬頃)을 지나며 보니 농사꾼들이 아침에 일을 시작할 때에 사명기(司命旗)를 들고 장고를 울리며 들에 나가 농기(農旗)를 세운다. 모를 심을 때에 선소리꾼이 북을 치고 농가(農歌)를 인도하면 남녀 농군들은 손발을 흔들고 춤을 추며 일을 한다. 논 주인은 탁주를 논두렁 여기저기에 동이째 놓아두고 마음대로 먹게 하고 행인이 지나면 다투어 권한다. 농군이 음식을 먹을 때는 현직 감사나 수령이라도 말에서 내려 인사한다. 149p

저녁 안개가 산 밑에 있는 마곡사를 마치 자물쇠로 채운 듯이 둘러싸고 있는 풍경을 보니 나 같이 온갖 풍진 속에서 오락가락하는 자의 더러운 발은 싫다고 거절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저녁 종소리가 안개를 헤치고 나와 내 귀에 와서 모든 번뇌(煩惱)를 해탈하고 입문하라는 권고를 들려주는 듯 하였다. 151p

중이 되려면 제일 먼저 자기 마음을 낮추어야 한다고 하며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금수나 곤충에게까지 자기 마음을 낮추지 않으면 지옥의 고통을 받는다고 하였다. 154p

“견월망지(見月忘指)의 오묘한 이치를 말하고 칼날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참을 인”(忍)자의 해석을 하여주었다. 156p

아무리 급박하여도 국가 흥망에 대한 절실한 각오가 적은 민중과 더불어서는 무슨 일이나 실효 있게 할 수가 없다. 바꿔 말하면 아직 민중의 애국사상이 박약한 것이다. 196p

성장한 청년 중에 쓸만한 인재가 있는가 살펴보았지만 모양만 상놈이 아니고 정신까지 상놈이 되고 말았다. 그이들은 민족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 터럭만큼의 각성도 없는 밥벌레에 불과했다………………………….여하튼 양반의 세력이 쇠퇴한 것은 사실이다. 당당한 그 양반들이 보잘것없는 상놈 하나 접대하기에 힘이 딸려 애쓰는 것을 볼 때 더욱 가련하였다. 나라가 죽게 되니까 국내에서 중견세력을 가지고 온갖 못된 위세를 다 부리던 양반부터 저 꼴이 된 것아닌가. 만일 양반이 살아나 독립할 수 있다면 내가 양반의 학대를 받더라도 나라만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감상이 일어났다. 203p

환등(幻燈)기구를 가지고 고향에 갔을 때, 나는 인근 양반 상놈을 다 모아놓고 환등회 석상에서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라고 절규하였다. 204p

과거 러일전쟁, 중일전쟁 때만 하더라도 한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극히 우호적이었으나 그 후에 강압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나쁜 감정이 점점 격증하였다. 207p

내가 나루터에 도착하여 보니 건너편에 와 있던 소학생 전부가 의복을 척척 벗고 강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내가 크게 놀라 고함을 지르니 직원들이 강가에 웃으면서 안심하라고 답한다. 나룻배에 올라 강 가운데로 나아가자 거뭇거뭇한 학생들의 머리가 물 속에서 나타나 뱃전에 매달리는 것이 마치 쳇바퀴에 개미 붙는 듯 하였다. 나는 장래에 해군을 모집하게 되면 연해(沿海)촌락에서 인력을 모집하는 것이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211p

국가가 망하기 전 구국사업에서 성의 성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 죄를 받데 된 것으로 자인했다. 나는 깊이 생각했다. 이와 같은 위난한 때를 당하여 응당 지켜갈 신조가 무엇인가를 연구하였다. “드센 바람에 억센 풀을 알고 국가가 혼란할 때 진실한 신하를 안다”는 옛 가르침과 사육신, 삼학사가 죽어도 꺾이지 않았다는 고후조 선생의 가르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였다. 220p

나는 평소에 무슨 일이든지 성심껏 보거니 하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나라를 남에게 먹히지 않게 구원하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되씹는 저 왜구와 같이 밤을 새워 일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스스로 물어보니 온 몸이 바늘 방석에 누운 듯이 고통스런 와중에도 내가 과연 망국노(亡國奴)의 근성이 있지 않은가 하여 부끄러운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찼다. 221p

그처럼 서릿발 같은 절의를 듣고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끝이 없었다. 정신은 정신대로 잘 보전하지만 왜놈에게 소말이나 야만인 대우를 받는 나로서 당시 의병들의 자격을 평론할 용기가 있을까? 지금 내가 의병 죄수를 무시하지만 그 영수인 허선생 이선생의 혼령이 나의 눈 앞에 출현하여 엄중한 질책을 하는 듯싶다. 244p

그리하여 후일 우리나라가 독립한 후 감옥 간수부터 대학교수의 자격으로 사용하고 죄인을 죄인으로 보기보다는 국민의 일원으로 보아서 선으로 지도하기에 주력해야겠고 일반 사회에서도 감옥살이 한 자라고 멸시하지 말고 대학생의 자격으로 대우해야 감옥 설치한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254p

그리하여 결심의 표시로 이름을 “구”(九)라 하고 호를 “백범” (白凡)이라 고쳐서 동지들에게 언포하였다. 구(龜)를 구(九)로 고친 것은 왜의 민적(民籍)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요, 연하를 백범으로 고친 것은 감옥에서 여러 해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 하등사회, 곧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복역 중에 뜰을 쓸 때나 유리창을 닦고 할 때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달라”고. 267p

내 육십 평생을 회고하면 너무도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개 사람이 귀(貴)하면 궁(窮)함이 없겠고 궁하면 귀함이 없을 것이니 나는 귀해도 궁하고 궁해도 궁한 일생을 지냈다. 국가가 독립을 하면 삼천리 강산이 다 내 것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천하의 넓고 큰 지구면에 한치의 땅, 반 칸의 집도 내 소유가 없다. 과거에는 영욕의 심리를 가지고 궁을 면하려고 버둥거려 보기도 하고 독장수셈도 많이 하여 보았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옛날에 한유(韓愈)는 “송궁문”(送窮文)을 지었다지만 나는 “우궁문” (友窮文)을 짓고 싶으나 문장이 아니하므로 그것도 할 수없다. 자식들에게 대하여도 아비된 의무를 조금도 못하였으므로 내가 아비라 하여 자식된 의무를 하여 주기도 원치 않는다. 너희들은 사회의 은택을 입어서 먹고 입고 배우는 터이니 사회의 아들이라는 심정으로 사회를 부모처럼 섬기면 내 소망은 이에서 더 만족이 없을 것이다. 289p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으면 나의 최대 소원은 독립이 성공한 후 본국에 들어가 입성식(入城式)을 하고 죽는 것이며, 작은 소망은 미주 하와이 동포들을 만나보고 돌아오다 비행기 위에서 죽으면 시신을 아래로 던져 산중에 떨어지면 짐승들의 뱃속에, 바다 가운데 떨어지면 물고기 뱃속에 영원히 잠드는 것이다……………..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298p

나의 신조는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로 인하여 종종 해를 당하면서도 천성이라 평생 고치지 못하였다. 307p

나는 최초에는 정부의 문파수를 청원하였으나 끝내는 노동총판, 내무총장, 국무령, 국무위원, 주석으로 중임을 거의 역임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나의 문파수 자격이 진보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인재난, 경제난이 극도에 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명성이 쟁쟁하던 인가(人家)가 몰락하여 그 고대광실(高臺廣室)이 걸인의 소굴이 된 것과 흡사한 형편이었다. 319p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맞본 일본 방랑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나는 이씨의 위대한 인생관을 보고 감동의 눈물이 벅차오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봉창) 323p

나는 기념품으로 그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그에게 주었다.
윤군은 마지막 길을 떠나기 전 자동차를 타면서 가지고 있던 돈을 다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약간의 돈을 가지는 것이 무슨 방해가 되겠소?”
“아닙니다. 자동차 요금을 주고도5~6원은 남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목메인 목소리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건네었다.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윤군이 차창으로 나를 향하여 머리를 숙이지 무심한 자동차는 경적소리 울리면 천하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공원으로 질주하였다. 336p

농촌을 시찰한 나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당,송,원,명,청 각 시대에 관개사절(冠蓋使節)이 중국을 왕래하였다. 북쪽 지방보다 남쪽 지방 명조시대에 사절로 다니던 우리의 선인들은 대부분 눈먼 사람들이었던가. 필시 환상(幻想)으로 국가의 계책이나 민생이 무엇인지를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이니 어찌 통탄스런 일이 아니리오…………우리 민족의 비운은 사대사상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질적인 국리민복을 도외시하고 주희(朱熹)학설 같은 것은 원래 주희 이상으로 강고한 이론을 주창하여 사색 당파가 생겨 수 백 년 동안 다투기만 하다 민족적 원기는 다 소진하고 발달된 것은 오직 의뢰성뿐이니 망하지 않고 어찌하리오. 352p

남경에서 출발할 때 주애보는 본향인 가흥으로 돌려보냈다. 그 후 종종 후회되는 것은 송별할 때 여비 100원밖에 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근 5년 동안 한갓 광동인으로만 알고 나를 위하였고 모르는 사이 우리는 부부같이 되었다. 나에 대한 공로가 없지 않은데 내가 뒷날을 기약할 수 있을 줄 알고 돈도 넉넉히 돕지 못한 것이 유감천만이다. 362p

9년 만에 모자 상봉하는 첫 말씀.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여 “너”라는 말을 고쳐 “자네”라 하고, 잘못하는 일이라도 말로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네. 듣건대 자네가 군관학교를 하면서 다수 청년을 거느리고 남의 사표(師表)가 된 모양이니 나도 체면을 세워주자는 것일세.”
이로 인해 나는 나이 육십에 어머님이 주시는 큰 은전을 입었다. 367p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어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는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남는 것이다. 425p

우리 나라의 양반 정치도 일종의 계급 독재이어니와 이것은 수 백 년 계속하였다. …..그러나 모든 독재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 백 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 중에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다만 정치에 있어서만 독재가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 생활까지도 규정하는 독재였다. 이 독재 정치 밑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소멸되고 원기는 마멸된 것이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치었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여기 있었다. 427p

백성들의 작은 의견은 이해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과 철학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생긴다.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떠한 철학의 기초 위에 어떠한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곧 국민 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430p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431p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432p

[내가 저자라면]

분명 어릴 적에 백범 일지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굉장히 인간적이었다는 느낌만을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감히 과거에 읽었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졌다. 역시 책은 제목이나 활자화된 글을 쫓아서 눈으로만 읽은 것은 읽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백범은 이 책의 출간사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애초에 이 글을 쓸 생각을 낸 것은 내가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내 몸에 언제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을 시작할 때 당신 본국에 들어와 있던 어린 두 아들에게 나의 지난 일을 알리고자 하는 동기에서였다. 이렇게 유서 대신 쓴 것이 이 책의 상편이다.

그리고 하편은 윤봉길 의사 사건 이후 중일전쟁의 결과로 우리 독립운동의 기지와 기회를 잃어 이 목숨을 던질 곳이 없이 살아남아서 다시 오는 기회를 기다리게 되었으나 그때 내 나이 벌써 칠십을 바라보아 앞날이 많지 않으므로 주로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를 염두에 두고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나의 경륜과 소감을 알리려고 쓴 것이다. 이것 역시 유서라 할 수 있겠다. 13p

이럴 듯 그는 자신이 살아 이것을 책으로 출판 할 것은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 출판되어 당시의 그의 활동과 그 시대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셨다.
혼란스런 시기였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꼼꼼하게 기록이 잘 되어있으며 같이 고생했던 이들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독립운동 자금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홰외에서 모금되어 전달되는 사실과 특히 윤봉길의사의 장례를 한국땅에서 다시 치루는 모습등은 감격적이다. 고생한 이들의 지난 일들을 잊지 않고 챙겨주고 보답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겠는가.

백범이 백범이 된 것은 그의 탁월함도 있겠지만 그 계기가 되는 부분은 그의 스승 고능선과의 만남인 듯하다. 그를 인정해 주고 평범에서 비범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백범은 일지 속에서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스승의 교훈을 생각하곤 했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일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라 할 수 있다.” 64p

백범을 키운 선생은 백범의 변화에 동참하지는 못하고 급격한 그 시대에서의 신구(新舊) 논쟁을 벌이지만 그 모두가 배울만한 점이 있는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독립운동과 그의 민족주의의 이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지만 더욱 흥미를 끄는 사실들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인정이다.
감옥에 투옥되거나 도피 중이거나 자금이 필요할 때 소문을 듣고 찾아와 밥을 사주고 의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바쳐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험한 시대의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소위 야인들의 활약이 눈부시며 나라는 위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 본다고나 할까. 나라를 팔아 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에서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청소년 지정도서로 되어 있어 어떨까 했지만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는 책이다. 탈옥장면에서는 쇼생크탈출이나 빠삐용 같은 영화가 연상될 정도로 스릴도 있다.
뱃사공 여인 주애보와의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다시 못 만날 줄 모르고 100원만 주어 보낸 것에 대해 후회하는 대목에서 백범이라는 한 남자의 모습도 있다.
이 사연에 대해서는 중국인이 책을 쓴 것도 있고 언젠가 영화화 되리라는 말도 들었다.
로맨틱한 영화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꿈에도 그리던 그의 소원인 대한 민국의 자주독립을 이루고 혼란한 시대 속에서 암살범 안두희에게 저격 당해 죽음을 맞는다. 그래도 그가 그토록 원하던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 난 후이니 선생의 소원을 달성되었는지 모른다.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세력들을 이해해야만 하는 숙제로 남겨 놓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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