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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30일 20시 49분 등록
1. 작가에 대하여


Anybody can make history. Only a great man can write it.
누구든지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위대한 사람만이 그것을 쓸 수 있다.
Will Durant를 가장 잘 설명한 말이다. 역사학자, 사회운동가이지만 내면에는 강한 휴머니스트이고 세상을 사랑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Durant는 1885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1900년에 St. Peter's Academy와 Jersey City College를 들어갔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모두들 성직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리 쉽게 정해지지 않는다. 18살이 되던 1903년부터 종교가 아닌 다른 길을 보게 된다. Darwin, Huxley, Spencer와 Haeckel 등을 만나게 된다. 생물학 등 자연과학 등에 심취되어 종교 대신 다른 길을 찾게 된다. 1905년에 사회주의자로 탈바꿈한다. 1907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New York Evening Journal에 주급 10달러의 수습기자가 첫 직업이다. 자칭 사회학자가 신문기자가 되어 어떤 일을 했을까? 신문특성상 강간범 등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주로 취급하는 신문사에서 사회학자는 더 이상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시 교편을 잡게 된다. 역사적인 사건은 1909년에 일어난다. 마르크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주로 배우는 새로운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학업과 독서가 새로운 개인적인 역사를 만들어 낸다. 3년 뒤인 1911년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뉴욕으로 간다.

개인적인 역사도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때와 장소,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다. 뉴욕의 대학에서 그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오게 되고, 평생 반려자인 Ariel을 만나게 된다. Freedman의 도움으로 1917년에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한다. 32살에 대학을 다시 졸업하고 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인생관이 바뀌게 되고 가족간에 화합이 생긴다. 이러한 변화의 순간에 Brisbane을 만나게 되고 문명사를 접하게 되면서 역사철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41살부터 95세까지 근 54년 동안 역사와 철학의 깊은 외길을 걷게 된다. 어려서의 종교적 색채와 청년시절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다양한 독서와 문명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어우러지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역사철학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왕성한 강연과 저술활동을 하였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총 11권의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을 저술하였고, 1926년에는 <철학 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 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문명이야기 중 열 번째 작품인 Rousseau and Revolution는 1968년에 General Non Fiction비소설 부분에서 플리처 상을 수상하였다.

책 머리말에 저자소개에서 “그는 명성보다는 명료성을 위해 싸운 철학자였다.” 라고 한다. 역사에서 명료성이란 무엇일까? Durant는 이 책의 의도를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명료성이라고 본다. 한정된 역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Durant 만의 독특한 역사관이라고 본다.

2. 나에게 다가온 책

<문명에 대하여>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역사적인 사실이나 교훈보다 더 큰 물줄기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역사속의 영웅들은 이러한 보다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사회를 이루면서 문명이 생기고 이러한 문명 속에서 종교, 관습, 정치, 경제, 사회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하나의 특정한 문명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비록 현대와는 그 도구만 다르지 그 당시에 고민했던 문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표현, 그리고 부의 편중과 집중의 문제, 그리고 종교의 문제는 그 정도만 다를 뿐이지 본질은 같다.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여진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문명화되었다. 남자는 천천히 여자에게서 사회적 특질을 배워 익혔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절, 절체, 협동, 공동체 활동 등이다. 이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자질이 미덕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다. 즉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17p>


남자라는 것에 대한 일말의 자부심마저 버리게 만든 말이지만, 정확한 표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살아온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키고 이어져 온 비결은 무엇일까?

문명은 이 천성을 질식시키려 하지 않았다. 어떤 경제 체제도 축적본증에 호소하지 않고는 그리고 훌륭한 보상을 통해 더 우수한 능력을 끌어내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문명은 받아들였다. 어떤 개인도 어떤 국가도 자기 보존을 위해 싸우려는 의지가 없이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어떤 사회나 종족, 종교도 번식하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축적의 욕심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산발적 도둑질, 대규모 강도질, 정치적 부정부패 등이 널리 퍼질 것이고 부(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집중되어 마지막에는 혁명을 부를 것이다. (18p)


막연하게 당연시 되어왔던 문명의 흐름에 정의와 법칙을 이해하게 되면서 문명의 큰 물줄기가 들어왔다. 특히 문명은 순환적인 부분과 방종과 그 반대사이의 이러한 진자운동 으로 변화한다는 것이 문명의 변화를 이렇게 재밌게 표한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로마의 정치체제가 독재관 통치에서 왕조, 이어서 귀족청지, 이어서 공화제, 이어서 독재관, 이어서 왕조로 다시 회귀한다. 이러한 선 순환전 구조에서 오랜 역사를 지속할는지도 모른다. 문명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진자운동의 반대편 운동이 시작된다. 이러한 문명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영웅이라고 본다면 너무 문명의 힘을 얕본 것일까?

<영웅에 대하여>
역사속의 영웅에서는 내가 알아왔던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영웅은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 모든 것에서 완벽했고 보통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비범한 능력을지녔고, 가족, 인생에서 완벽한 인생을 살았다는 획일적인 영웅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벽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카이사르였다. 난봉꾼에 대한 얘기는 자주 나오지만, 그의 업적에 눌려서 상상이 되질 않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카이사르의 3권에 걸친 책보다 듀란트의 한 구절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는 카이사르가 처음에는 무자비한 선동가이며 거침없는 난봉꾼이었다가 책임감에 의해 천천히 역사상 가장 신중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의 결점을 보고 좋아하더라도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가 여자들을 유혹하고 교도관을 매수하고 책들을 썼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 자신을 그와 대등하게 여길 수는 없다.<195p>


역사 속에서 흔히 나타나는 싸움에서 이긴 장군의 이름이나 선정을 베푼 임금이나 황제들 외에 시인이나 예술가들로 범위를 넓히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그러한 예술가들의 작품에 그 시대적 배경에 맞게 왜 필요하였고, 그런 작품이 나오게 된 자세한 설명이 돋보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대한 설명이다.

레오나르도 자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우아함의 한 가지 비밀이 이것이다.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물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게 만들어라.> 그는 모나리자를 그릴 때 이 원칙을 잊었던 것일까? 아니면 여주인공의 눈과 입술에서 그 영혼을 읽어내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일까 <308p>


<종교에 대하여>
종교에 대한 단상은 논쟁밖에 없다. 무슨 종교학자나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전도자와 피나는 설전이 오갔고 결국 남는 것은 사람에 대한 증오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면에는 종교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자는 마음은 있었으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잘 몰랐다. 유대인과 기독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중세 사람들은 종교에 모든 것을 걸었다. 로마문명은 그 신들의 죽음 혹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혼란으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들었다.


모든 것을 다 걸은 만큼 종교는 고유한 틀 안에 있기 보다는 좀더 많은 세력화를 하였다.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죽음, 그리고 정식 국교가 되었고, 다시 기독교와 그리스 정교로 나뉘게 된다. 종교개혁과 함께 나타난 혁명으로서의 종교개혁까지 참으로 긴 역사를 함께 해왔다.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종교인으로서 아직도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전체적인 큰 흐름으로 이해가 되었다.

<우리의 역할>
민중사는 아니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거나 바꾸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역사로 문명의 발전에서부터 종교개혁까지 전반적은 흐름의 역사로 다가왔고, 변화의 순간에 함께하였던 영웅들의 이야기도 색다르다. 듀란트는 41세에 역사철학자의 길로 접어들어서 96세까지 긴 시간을 문명과 역사와 함께 하였다. 특히 역사속의 영웅은 그러한 대 역사철학자의 마지막 글이라는 점이 무척 공감이 간다. 반평생을 역사와 더불어 살다간 사람이 마지막에 남기고 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두운 역사, 전쟁의 역사, 핍박의 역사가 많았지만 듀란트는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준다.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23)


3. 내마음에 들어온 글귀

<윌 듀런트의 마지막 유언>

<10>
내게 있어서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 - 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 말이다.

<10>
나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려 한다고 말했다. 과학을 통해서는 그것을 찾아낼 수가 없다. 역사는 시간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결론적으로 나는 자신이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13>
웰 듀런트의 모든 저술의 주제는 문명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특정한 사상을 발전시켜왔다는 것, 그리고 이 사상의 효능에 대한 평결은 이미 역사의 법정에서 내려졌다는 것이다.

<14>
그의 언어의 매력을 통해 이 나라의 국경선이 열려 우리 영혼에게 잠시 방문하라 손짓한다. 함께 걸으면서 삶, 사랑, 전쟁, 시 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관용, 지혜, 깊어진 삶에 대한 더 많은 사랑의 위대하고 고귀한 전망을 향해 함께 올라가자고 우리를 부른다.

<제1장 문명이란 무엇인가?>

<16>
남자는 대단히 빛나는 존재일는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자궁이며 인간 종족의 주류인 여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존재다

<17>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여진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문명화되었다. 남자는 천천히 여자에게서 사회적 특질을 배워 익혔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절, 절체, 협동, 공동체 활동 등이다. 이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자질이 미덕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다. 즉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18>
남자들의 물려받은 사냥꾼 천성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어떻게 성장하였나? 문명은 이 천성을 질식시키려 하지 않았다. 어떤 경제 체제도 축적본증에 호소하지 않고는 그리고 훌륭한 보상을 통해 더 우수한 능력을 끌어내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문명은 받아들였다. 어떤 개인도 어떤 국가도 자기 보존을 위해 싸우려는 의지가 없이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어떤 사회나 종족, 종교도 번식하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축적의 욕심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산발적 도둑질, 대규모 강도질, 정치적 부정 부패 등이 널리 퍼질 것이고 부(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집중되어 마지막에는 혁명을 부를 것이다.

<20>
남자와 여자는 천천히 절제, 친절과 예의, 도덕적 양심과 미적 감각 등을 발전시켰다. 이런 것들은 만질 수는 없어도 소중한 우리 유산의 은총이다. 문명이란 문화적 창조를 격려하는 사회질서이다.

<21>
그러나 현재 우리의 이교적인 방종이야말로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증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종은 보통 그 반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연속장면의 한 가지는 이교적인 방종의 시대에 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22>
그러나 역사에는 방종과 그 반대사이의 이러한 진자운동 보다 더 즐거운 전망이 있다. 나는 저 볼테르와 기본(Gibbon)의 비판적 결론, 즉 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의 기록)이라는 결론에 동의하지 않겠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 말이 맞고 또한 수 억 가지의 비극들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생명의 흐름을 이끌어 온 것은 평범한 가족의 건강함과 남자들의 여자들의 노동 그리고 사랑이다. 이 소란스럽고 더러운 강 위에 부조리함과 고통 한가운데에서 진짜 신의 도시가 감추어져 있다. 이 도시에는 과거의 창조적 정신이 기억과 전통의 기적에 의해 아직도 살아서 적용하고모습을 다듬고 형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22>
이들과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이 가져다 준 선물이 인간 종족의 엄청난 유산이다. 씨줄과 날줄로 짜인 역사라는 피륙(천)을 이어가는 황금의 혈통이다.

<23>
우리에게 도전해오는 악을 향해 눈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불행한 왕을 변조해서 우리 여기에 앉아 고귀한 여자들과 위대한 남자들의 용감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자.

<제2장 공자와 추방당한 신선>

<29>
자연에서 모든 사물은 소리 없이 작용한다. 이들은 존재 속으로 들어오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기능을 모두 완수하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기능을 완수하지만 아무런 요구도 없다. 모든 사물은 똑같이 자기 맡은 바 일을 다 하고 물러난다. 사물은 절정에 도달하면 모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휴식, 혹은 사명의 완수를 뜻한다. 이런 귀환은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30>
저항이 일어났을 때 더 지혜로운 방식은 싸우거나 다투거나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히 물러나서 굴복하고 참음으로써 마침내 이기게 된다. 수동성이 능동적 행위보다 훨씬 더 자주 승리를 거둔다.

<제3장 붓다에서 인디라 간디까지>

<48>
죄라는 것은 이기심과, 개인적인 이익이나 쾌락을 찾는 일이다. 영혼이 모든 이기심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영혼은 되풀이해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해탈이란 죽음 뒤의 하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심을 극복한 고요한 상태이다.

<48>
욕심에 시달리는 우리의 자아는 실제로는 분리된 존재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강물위에 이는 순간적인 잔 물력이고 바람에 날리는 운명의 올가미 속에 얽혔다 풀어졌다 하는 작은 매듭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본다면, 전체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개선하고 우리의 소망을 바꾼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실망과 패배, 비탄과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이 더는 이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한성의 넓이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마지막에 우리는 해탈 , 곧 이기적이지 않은 평화를 찾을 것이다.

<49>
종교가 미덕과 축복뿐 아니라 공포심으로 설교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무법적인 개인주의를 통제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 등지에서 신학적으로 재구성된 불교가 번성하고 있었으며, 신을 생각지 않았던 붓다는 신이 되고 말았다.

<50>
대부분의 침략자들은 거친 인도 대륙에서 약간의 축복을 가져왔다. 회교예술과 영국의 행정 같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침략자들은 전설적인 <인도의 부>를 빼앗아 가고 가난에 지친 사람들을 뒤에 남겨 놓았다.

<제4장 피라미드에서 이크나톤까지>

<59>
피라미드에는 원시적인 요소가 있다. 그토록 난폭하고 엄청난 크기를 만들어 낸 일과 영원성을 향한 공허한 갈망이 그것이다. 역사에 의해 부풀려진 채 이들 건축물을 위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마도 구경꾼의 추억과 상상력일 것이다. 분명 사진은 이집트의 건축물을 지나치게 고상한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흙먼지 말고는 무엇이든지 다 잡아낼 수 있고, 대지와 하늘의 고귀한 원경을 이용해 인간이 만든 건축물을 웅장하게 만들 수 있다. 기자의 일몰이 파라미드보다 더 위대하다.

<제5장 구약성서의 철학과 시>

<73>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것이다.

<74>
모세와 십계명에서도 그렇듯이 여기서도 종교적 신념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단결, 도덕성, 용기 등을 강화시켜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85>
이것은 행복한 결말이다. 길들여지고 기쁨이 없는 결론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가 누구기에 - 순간의 안개 속에 있는 티끌들- 우주를 이해하겠는가?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초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것은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91>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에고를 가장 많이 주고 살아있고, 평화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음과 팔을 활짝 여는 일이다. 영혼이 행복하면 그 사랑도 커진다.

<제6장 페리클레스에 이르는 길>

<95>
두 가지 생각이 그(헤라클레이토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변화가 보편적이라는 것과 에너지는 파괴할 수 없이 영속한다는 생각이었다.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언제나 현재의 존재이기를 중지하고 다른 것으로 된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리고 <흐르는 강의 동일한 물 속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쉬지 않고 중지하지 않는 <과정>이다.

<95~96>
이런 보편적인 변화 속에 무엇이든 시간이 흐르면 정반대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선은 악이 될 수 있고,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다. 삶은 죽음이 되고, 죽음은 삶이 된다. 이러한 대립은 동일한 사물의 두가지 측면이다. 힘은 대립하는 두 요소의 긴장이다. <싸움(경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며 모두의 동족이다. 싸움이 만들어낸 일부는 신이 되고, 일부는 인간이 딘다. 그것은 어떤 존재를 노예로, 또 어떤 존재를 자유롭게 만든다.> 마지막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싸움은 정의다> 개인들, 그룹들, 기관들, 국가들, 제국들의 경쟁은 자연의 최고법정이며, 거기서 나온 판결에 대해서는 항의할 길이 없다.

<99>
디오케네스라에르티우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처음으로 <세계에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부여한>인물이다. <코스모스>란 질서라는 뜻이고, 이것이 피타고라스의 핵심적인 단어이다. 우리의 소망이 질서를 이룬 것, 그리고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질서를 이룬 것이 곧 미덕이다. 그리고 국가안의 질서가 유지되면 그것이 곧 올바른 정부이다.

<105>
앞으로 사람을 노예로 파는 일은 금지되었다. 부자들은 이 법이 공공연한 사유 재산 침해라고 항의하였지만, 10년도 지나기 전에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조치가 아테네를 혁명에서 구해냈다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 노예제도가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

<107>
그의 친구였던 아나카르시스, 저 변덕스러운 스키타이 출신의 현자는 새로운 법안을 보고 이렇게 비웃었다. <이제 지혜로운 사람은 도망치고 바보들이 정의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그 밖에도 그는 <인간을 위해 지속적인 정의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강하거나 영리한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법이든 피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법은 거미줄과 같아서 작은 파리는 잡지만, 큰 벌레는 뚫고 도망친다.

<제7장 아테네의 황금시대>

<109>
1820년경 셀리는 이렇게 썼다. <페리클레스의 탄생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 사이에 들어있는 시대는 .....세계 역사상 가장 기억할 만한 시대이다.>

<115>
아테네 사람들은 너무나 똑똑해서 선량해지기 어려웠다. 그들은 악덕을 싫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순성을 경멸하였다. 어떤 민족도 이보다 더 큰 상상력이나 혹은 더 생생한 혀를 가진 적이 없었다.

<121>
분명 아테네의 소수 지식인 사이에서 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두 가지 일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였다. 널리 여행을 한 중산층이 많아진 것과 떠돌이 학자들을 통해 사교육이 퍼진 것이었다.

<122>
보통 한 시대의 철학은 다음 시대의 문학이 된다. 한 세대 동안 사색이나 탐구의 영역에서 논쟁이 이루어진 사상이나 문제들은 이어지는 세대에 가서 연극, 허구, 시 문학의 배경이 되곤 한다.

<131>
황금시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더불어 끝났다. 아테네는 몸과 영혼이 다 지쳤고, 한 세대 동안이나 계속된 싸움을 통해 품성이

<134>
플라톤은 이렇게 말한다. <아테네는 두 도시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와 부자들의 도시가 되어 서로 전쟁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법령제정이나 혁명을 통해 부자들을 약탈할 음모를 꾸몄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항해 방어조직을 만들었다. 지식인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섰다. 그들 중에는 플라톤처럼 부자도 섞여서 공산주의 사상을 드러냈다.

<135>
나이 든 부자인 이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은 기원전 353년에 이렇게 불평을 하고 있다. <내가 어릴 때 부유함은 아주 안전하고 찬양할 만한 것으로 여겨져 거의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부자로 보이려 했다.... 지금은 부자라는 것이 가장 고약한 범죄이기라도 한 것처럼 누구나 부자라는 것을 감춘다.> 중간 계층과 부유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질투심에 힘을 주는 것이라고 여겨 불평하기 시작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불평등한 부에 의해 바보가 되어버린 엉터리 평등이라고 여겨 불신하기 시작하였다.

<150>
행동의 목적은 행복이지만 행복의 비결은 미덕에 있다. 그리고 최고의 미덕은 지성이다. 이것은 현실, 목표, 수단에 대한 조심스러운 관찰이다. 통상적으로 <미덕>이란 두 극단사이에 있는 황금의 중간(황금률)을 뜻한다. 정치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들 간의 타협적의 기술이다. 모든 사람은 불평등하게 만들어졌다.

<155>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통제의 능력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온통 정력이었다.

<제9장 로마공화국>

<162>
공공생활의 모든 국면을 종교적 엄숙함으로 덮어주고, 국가를 신들과 친근하게 융합시켜 신앙심과 애국심을 하나로 만들었다. 애국심은 역사상 알려진 다른 어떤 사회보다 더 강한 열정이 되었다. 종교는 가족과 힘을 합쳐 강철같은 성격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이 500년 동안 로마가 고대세계를 통치할 수 있게 해주었다.

<176>
영혼<아니마>이란 <생명의 호흡이다.>이것은 신체 곳곳에 아주 섬세한 물질처럼 퍼져 각 부분을 움직이게 해준다. 그것은 몸과 더불어 성장하고 나이를 먹다가, 몸이 죽으면 그 원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생명은 자유로이 간직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임시로 빌린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잘 이용해야한다. 우리의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잔칫상에서 일어나는 손님처럼 우아하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생명의 식탁을 떠나야 한다.

<178>
동과 서의 끝없는 싸움, <부드러운 마음>과 위안을 주는 신앙 대 <거친 마음>과 유물론적 과학의 끝없는 싸움속에서 루크레티우스는 거의 혼자 자기 시대의 갈등을 가장 멀리까지 밀고 났다. 물론 그는 철학자 시인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에게서 - 곧 이어 나타나는 카툴루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 라틴 문학은 성년이 되고, 문자의 지도력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왔다.

<제10장> 로마의 혁명

<195>
우리는 카이사르가 처음에는 무자비한 선동가이며 거침없는 난봉꾼이었다가 책임감에 의해 천천히 역사상 가장 신중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의 결점을 보고 좋아하더라도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우리는 그가 여자들을 유혹하고 교도관을 매수하고 책들을 썼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 자신을 그와 대등하게 여길 수는 없다.

<205>
그렇게 해서 정치에 대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완전한 순환을 겪었다. 즉 독재관 통치에서 왕조, 이어서 귀족청지, 이어서 공화제, 이어서 독재관, 이어서 왕조.. 로마는 그후 2세기동안 점점 약해졌지만, 서양의 중심지이자 역사상 최고의 영광과 잔혹성을 계속 누렸다.

<제11장 로마제국>

<214>
자신의 기술을 자신하고서 그는 젊은 작가들을 위해 좋은 글을 위한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뒷날 「시학(詩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명료함, 직접성 그리고 유용함과 즐거움을 뒤섞을 것 등이 강조되었다. 예술은 예술가와 그 수용자의 감정을 전제로 한다. <나를 울게 하려면 당신 자신이 먼저 슬픔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은 감정만은 아니다. 그것은 훈련된 형식으로 나타나는 감정이다. <평온함 속에서 기억된 감정>인 것이다.

<215>
당신의 작품이 이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남거든 그것을 8년 동안 감추어 두어라. 그리고 난 다음에도 그것이 당신을 즐겁게 하거든 그제서야 출판하라. 그러나 이것이 성숙해진 당신을 부끄럽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219>
죽음은 일흔 여섯살이 되는 해에 조용히 찾아왔다. 임종의 침상에 모여든 친구들을 향해 로마 정치가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 인물은 로마 희극의 마지막에 자주 사용되곤 하던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내 맡은 역을 다하였으니 여러분이 손뼉을 쳐서 박수로 나를 무대에서 쫒아내 주시요> 그는 아내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오랜 결혼 생활을 기억하시오. 리비아, 안녕히 이렇게 간단한 작별인사와 함께 그는 세상을 하직하였다.

<제12장 네로와 아우렐리우스>

<223>
64년 7월 18일 막시무스 곡마단에 불이 났고 빠른 속도로 퍼져 9일 동안이나 불탔다. 로마의 3분의 2가 불에 타서 무너져 내렸다. 로마의 3분의 2가 불에 타서 무너져 내렸다. 네로는 약 53킬로미터 떨어진 안티움(오늘날의 안치오)에 머물고 있다가 화재 소식을 들었다. 그는 서둘러 수도로 돌아와서 화재를 진압하고 불이 퍼지지 않게 하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그는 마르스 들판에 천막촌을 세우고 주변지역에서 곡식을 실어다가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공급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불을 시작하고(방화) 탑에서 불길을 관찰하면서 불타는 트로이아를 노래하는 서사시를 읊었다는 잘못된 비난을 받았다.

<226>
에드워드 기본의 판단을 들어보기로 하자. <누구든 세계 역사에서 인류의 조건이 가장 행복하고 번성했던 시대를 꼽으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아마도 지체 없이 네르바 황제의 등극(06년)에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죽음(180년)까지의 시대를 꼽을 것이다. 이 황제들의 통치기간은 아마도 대규모 국민의 행복이 통치의 확고한 목적이 되었던 역사상 유일한 시대일 것이다.

<234>
이 세상에서 훌륭한 기질이란 그것이 진지하기만 하다면, 아무것도 그것을 이길수가 없다. 정말로 선한 사람은 불행에 대해 면역력이 있다. 어떤 재앙이 덮쳐도 그의 영혼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논리나 배움이 아니라 이해와 받아들임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로 받아들여라.

<제13장 인간 그리스도>

<245>
그의 업적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덕성의 윤곽을 드러냈나는 점에 있었다. 그의 윤리법전은 하느님의 나라가 일찍 다가올 것을 예언하고 사람들을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제14장 기독교의 성장>

<256>
베드로가 교회를 세웠다면 바울로는 신앙을 세웠다.

<258>
바울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아마도 베드로가 죽은 것과 같은 해인 64년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노력으로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리스도 교회는 형태를 갖추고 역사적 과업을 시작하였다.

<262>
1198년에 교황이 된 인토켄티우스 3세는 이런 발전을 보고 교회와 국가에 대한 위협이라고 느꼈다. 그는 교회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참아주었지만, 자신이 수장으로 있고, 또 그의 생각으로는 폭력, 사회적인 무질서, 불충 등에 대해 주요한 방어체계가 되는 이 거대한 조직이 그 근간을 공격당하고, 물질적 바탕을 뺏기고 허풍스러운 풍자로 모욕 받고 있는 것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느꼈다. 부모 노릇을 금지하고 자살을 옹호하는 원칙위에 대체 어떤 사회가 질서가 세워질 수 있단 말인가?

<268>
중세의 가장 핵심적인 사건의 하나 그리고 중세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의 하나는 바로 단테가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 가는 여행길을 이야기하면서 라틴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어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274>
중세 사람들은 종교에 모든 것을 걸었다. 로마문명은 그 신들의 죽음 혹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혼란으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들었다.

<274>
중세 사람들은 수도사의 게으름에 분노하고 수녀들의 헌신에 감사하였으며, 교회의 자선사업을 높이 평가하였다. 대성당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밝은 창을 향해 미소짓고 괴물 꼴을 한 홈통 주둥이를 보고 함께 웃었다.

<275>
중세의 영혼은 자라나는 세포처럼 두 가지 역사적 유기체로 발전하였다. 남부유럽에서는 고전적, 에피쿠르스적, 이교적 르네상스이고, 북부 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적, 스토아적, 청교도적 종교개혁이다. 중세의 영혼은 이 두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문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세의 역사적 업적은 완성되었다. 그 죽음이 곧 완성이었다.

<제15장 르네상스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중심으로>

<281>
그래서 르네상스는 발생초기부터 이미 죽은 다음 천국의 불확실한 즐거움 대신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과 모험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르네상스는 고대의 문학만을 복원시킨 것이 아니라 그 쾌락주의적 자유로움도 똑같이 복원시켰다. 1천년동안이나 초자연적인 신앙에 기초한 도덕적 규율의 시간을 보낸 다음 부분적으로는 이교적인 감각이 자유롭게 되었다.

<282>
돈은 문명의 뿌리이다. 상인들과 은행가들의 기금과 교회의 기금이 필사본을 사들일 돈을 지불하였고, 이 필사본들이 고대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정신과 감각을 자유롭게 만든 주요한 힘은 그런 사본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산층의 힘이 커지면서 나타난 세속주의 덕분이었다.

<284>
르네상스란 시간상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과 사유의 방식이다. 그것은 상업, 전쟁, 사상의 통로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294>
그(로렌초)는 활자의 혁명적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는 학자들을 고용해서 가능한 정확하게 고전적 작가 작품이 인쇄될 수 있도록 여러 텍스트들을 정밀하게 검토하도록 하였다.

<295>
마르실리오는 학생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신 <플라톤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플라톤의 흉상 앞에 촛불을 켜놓고 그를 성인으로 숭배했다> 그에게 있어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았다.

<310>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실행이 아니라 구상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사리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천제적인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게 할 때 가장 많이 일한다.

<317>
지식을 향한 정열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성이다. 전쟁과 범죄에 대한 충격을 받고 능력의 이기심과 빈곤의 영속성에 낙담하고 수많은 민족들과 세대들이 미신과 경박한 믿음을 가지고 삶의 짧음과 품위 없음을 잊기 위해 겉만 꾸미는 것에 마음이 슬퍼질 때, 인류의 정신과 마음속에 3천년 동안이나 미행의 꿈이 간직되어 있음을 보게 되면 어딘지 구원받은 느낌이 든다. 다이달두스와 이카루스의 이야기에서 레오나르도의 실패한 암중모색과 다른 수많은 시도들을 거쳐 마침내 우리 시대의 빛나면서도 비극적인 승리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비행의 꿈 말이다.

<321>
하루를잘 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322>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토록 강하고 격하던 시대를 대표하기에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내성적이고 섬세하였다. 그리고 <보편인>도 아니었다. 그의 다양성안에는 정치가나 행정가의 자질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르네상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원천으로부터 한 사람이 왔었다는 것, 그가 인류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주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된다.

<제16장 르네상스 Ⅱ 로마>

<340>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문명이란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원래의 정당성을 넘어 과대하게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이다.

<352>
스콜라 철학자인 장 부리단이 망설임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다. 철학적인 나귀가 절망적으로 배가 고팠지만 두 개의 건초더미가 같은 거리에 떨어져서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어느 한쪽을 선택할 아무런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기에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제17장 르네상스 Ⅲ 베네치아의 일몰>

<371>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악과 선, 고통과 사랑스러움, 파괴와 숭고함을 뒤섞은 듯이 보이는 우주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거나 혼돈에 질서를, 사물에 의미를, 형태나 생각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지적인 의지를 보면, 우리는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삶과 법칙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얻는다.

<제18장 종교개혁 Ⅰ 위클리프와 에라스무스>

<373>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역사상 가장 특기할 만한 조직의 하나이다. 그 기원, 목적, 방법, 흥망성쇠, 잘못, 업적 등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면 다른 어떤 주제나 제도의연구보다 인간의 본성과 가능성에 대해 많은 빛을 던져 줄 것이다.

<404>
그것은 중세 관습의 딱딱한 표면을 깨고 모든 기준과 제약들을 느슨하게 풀고 유럽을 국민과 종족으로 흩어놓고 전통적인 신앙의 위안과 후원을 점점 더 없애버릴 참이었다. 그리고 유럽인의 정신적, 도덕적 삶에서 기독교가 지배적인 역할을 해온 일의 종말이 시작된 것이기도 하였다.

<제19장 종교개혁 Ⅱ 루터와 공산주의자들>

<409>
육체적 탐닉에 빠질 정도로 건강하고 보기에도 정상적인 본능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집과 학교에서 인간은 천성적으로 죄가 있으며 죄는 전능하시고 형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을 화나게 만든다는 신념을 주입받았기에 그는 자연의 충동과 자신이 습득한 신념을 화해시킬 수가 없었다. 그가 배운 하느님은 공포의 하느님이었다.

<414>
루터는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이 상황에 대응하였다. 그는 자신의 글을 출판해 줄 사람을 찾아냈다. 라틴어가 아니라 도이치말로 된 문서였다. 곧 <기독교 재산에 대해서 도이치 민족의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다

<440>
에라스무스는 놀라고 슬퍼하면서 유럽이 신학과 전쟁으로 찢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루터 반란의 초기 국면을 후원하였지만 그것이 유럽이 사회적 기둥의 하나인 가톨릭교회의 붕괴를 가져오려고 했을 때 그로부터 멀어졌다. 그는 루터의 길을 여는데 동참하였다. 그의 어리석음의 예찬은 당시 유럽을 통해 수천부가 전파되면서 수도사와 신학자들을 비웃었고, 루터의 둔중한 폭발을 위한 폭발 지점으로 제공하였다.

<제20장 가톨릭 종교개혁>

<449>
테레사의 규칙은 명랑하고 단호하게 사랑하는 것이었다. 수녀원은 속세를 향해 닫혀졌다. 창문들은 천으로 가렸다.

<462>
예수회의 정신은 - 자신만만하고, 명확하고, 정력적이고, 규율이 있는 - 군사적인 교회의 정신이 되었다

<제21장 세익스피어와 베이컨>

<463>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은 르네상스(셰익스피어), 종교개혁(엘리자베스), 계몽주의(베이컨)등이 하나로 합쳐져 천재와 역사가 폭발적으로 집약된 시대였다.

<466>
햄릿에 따르면 세계란 <잡초를 제거하지 않은 정원이 자라 씨앗을 맺는 것, 사물들을 소유라는 자연 속에서 사납게 우거져 있을 뿐이다.

<489>
베이컨의 생각에서 궁극적인 목적은 과학의 방법을 인간 성격에 대한 엄격한 분석과 단호한 개조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바다에 부는 바람과 같은 작용을 하는 바람과 같은 작용을 ㅎ는 본능과 점쟁이의 연구를 촉구하였다.

<498>
그는 모든 과학을 위하여 깃발을 들어올리고, 그것을 다음 세기의 가장 열렬한 정신들에게 남겨주었다. 그 원했던 아니건, 그가 요구하였던 기획 - 자연 탐구 위한 포괄적인 기구, 지식의세계적이누 확장과 보급- 은 현대의 가장 심오한 드라마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오늘날 가톨릭이건 개신교이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 및 철학의 확산과 맞서 싸우고 있다. 이 현대의 드라마는 베이커를 통해 세계를 향하였고, 그 프롤로그를 말했던 것이다.

4. 내가 작가라면

아쉬운 것은 마지막까지 완성을 하지 못한 책을 읽은 것이었다. 23장까지 계획되었으나 갑작스런 병마로 인해 21장까지 밖에 완성을 하지 못하였다. 빠진 2개의 장이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23장이 아닌 근대의 역사까지도 보고 싶은 바램이다. 수많은 독자들을 위해서 앞 부분 1장에서 5장 정도에서 두개 장을 줄이고 나머지 쓰지 못한 2개 장을 썼으면 어떠하였을까? 책 앞부분의 작가소개에서도 나와있듯이 무섭게 찾아오는 병마와 배우자의 죽음까지 모르는 상태에서 집필에 열중을 하다가 끝내 마치지 못하는 심정을 작가보다 더 아쉬웠던 사람이 또 있으랴?

강한 문체가 아니면서도 도도히 흐르는 문명의 역사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중간 중간 시와 노래를 넣어서 편안하게 쉬어 갈수 있는 여백도 좋은 부분이었다. 기원전 4천년부터 종교개혁까지 약 6천년에 걸친 역사가 그렇게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평범하지 않게 다가왔다. 특히 중간중간 나오는 비사와 같은 자세한 설명은 사건의 중요성을 보태어 쉽게 넘어가지 않고 차근차근 밟고 나가려는 안배였다.

구성 면에서 본다면 두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하나는 서양의 역사라고 해놓고 맨 첫 장에 공자와 이태백이 나온 사실이다. 첫 장만 본다면 공자의 뒤를 이어 동양의 역사가 다시 한번쯤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칭기스칸일까? 아님 누구일까?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다. 두 번째로는 13장 인간 그리스도의 출현부터 18장부터 3개장에 걸쳐 종교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종교개혁에 대한 부분이 많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사회학자와 교단 경험, 그리고 이미 11권의 문명이야기를 써왔던 부분이라 그런지 부담되지 않게 쉽게 읽혀졌다. 앞서 말한대로 문체도 그렇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1인칭의 직설화법이 그 흐름을 쉽게 타게 해주는 것 같다. 에릭 홉스바움의 미완의 시대 초반에 나오는 광활한 인명과 끊이질 않는 역사적 사건들에 비하면 아주 일정함 흐름으로 가고 있다. 자크 아탈리의 휴먼 노마드에서 중반까지 나오는 다양한 종족의 이름과 이동경로도 역사속의 영웅들과 대비된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저자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의 가정관이다. 듀란트는 40대에 되어서야 갈 길을 정하였다. 어릴 때부터 믿고 공부했던 종교도 버렸다. 부모와도 단절되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다시 부모와 화해하였고, 이러한 가정의 소중한 사랑이 인류애로 발전하게 되었다. 유서로 쓰일만큼 죽음에 가깝게 다가가서 쓴글이고 심장병의 고통을 이기고 쓴 글이기에 아래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그의 언어의 매력을 통해 이 나라의 국경선이 열려 우리 영혼에게 잠시 방문하라 손짓한다. 함께 걸으면서 삶, 사랑, 전쟁, 시 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관용, 지혜, 깊어진 삶에 대한 더 많은 사랑의 위대하고 고귀한 전망을 향해 함께 올라가자고 우리를 부른다. <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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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5.30 18:11:11 *.114.56.245
듀란트의 강의에 우리 연구원 모두가 매료되었습니다. 저도 가까운 날
차근히 한 번 더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잠시 혼란스럽네요. 작가의 이야기에 매료됨이 듀란트의 흡입력인지 아님 우리연구원 개개인이 책읽기에 몰입되어 가고 있다는 것인지. 아무튼 기분은 참 좋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최영훈
2007.05.31 08:53:08 *.99.241.60
책읽가 서서히 정착되어가고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어려운 내용은 여전히 버벅거리지만, 책 읽은 속도가 점점 붙는 것
같습니다.
저도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와 문명이야기를 꼭 읽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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